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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위한 여정에 함께할 스무살 친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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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7월 01일 (일) 21:34:04 [조회수 : 2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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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앤조이에 실린 기사입니다.

   
 
  ▲로로사에(해가 뜬다)와 로로모누(해가 진다)는 아름다운 지명을 가진 동티모르에서 지난해 잔혹한 소요사태가 일어났다.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한 이후 어떤 증오의 불씨가 그들을 또 다른 분쟁의 한가운데로 몰아넣었을까. 지난해 한 달 동안 경험한 평화캠프는 평화에 관한 무수한 물음들에 대답의 작은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뉴스앤조이 최소란  
 
안녕! 우리가 함께 ‘평화 책 읽기 모임’을 한 지도 세 달이나 지났구나. 지난해 ‘The Frontiers’(개척자들)평화캠프를 통해 너처럼 대학 신입생이던 06학번 OO를 만났지. 내가 96학번이니까 딱 십년 차이인거야. 십년 후배와 평화캠프를 같이 간 것도 신선했는데, 그 친구가 학교 후배라며 07학번 신입생인 너를 ‘평화 책 읽기 모임’에 데리고 온 거야. 평화캠프에 다녀온 뒤 떠오른 무수한 생각을 같은 경험자들과 함께 책을 통해 배우고 나누고자 마련한 이 모임에서 새로운 세대인 너와 소통할 수 있어 반가웠어. 더구나 네가 대학에 입학해 처음 맞는 올 여름방학을 아르바이트나 유럽여행이 아닌 평화캠프로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 참 기뻐. “내가 분쟁 현장에 가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눈을 반짝이며 질문을 던지던 너에게 대답의 작은 실마리가 될 수 있을까 해서 이렇게 편지를 띄운다.

얼마 전 학교 선배로부터 현실적으로 전쟁은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지? 그리고 전쟁을 통해 새로운 문물이 들어가고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에도, 수백 명, 수천 명이 희생당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말에도 마땅한 반박을 하지 못했다며 씁쓸해했지? 나는 그 친구들이 자기와 같은 인간이 이유 없이 죽어가고 있는 현실을 잘 몰라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폭력이 끊이지 않고,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삶의 터전을 잃고 상처와 증오심을 뿌리 내리고 있지. 다른 사람이 아파하는 현실에 대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 또한 우리가 외면한 그들의 고통은 부메랑이 되어 언젠가 우리에게도 돌아오는 것도 시간문제지. 당장 전쟁을 막아낼 수 없다면 그들의 아픔에 동참이라도 해야 한다는 내 생각이 너무 당위적인 평화를 얘기하는 것으로 들릴까?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령인 서티모르와 국경 하나를 두고 매우 큰 도시 발달의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서티모르 내에 있는 동티모르령 오에쿠시 지역의 시장. ⓒ뉴스앤조이 최소란  
 

내가 지난해 참가했던 동티모르 평화캠프 이야기를 들려줄게. 동티모르(Tmor-Leste)는 세계지도에서 우리나라 남단으로 눈을 내리면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찾을 수 있는 티모르섬의 나라란 건 이미 알고 있지? 티모르섬의 서쪽 지역은 인도네시아령인데, 서티모르와 동티모르는 우리나라 남과 북을 가르는 휴전선과 같은 국경으로 나뉘어져 있어. 물론 한 민족이었던 그들이 이렇게 나뉘게 된 배경에는, 400년여 전 이곳을 ‘발견’한 서구열강들의 식민지배 역사가 있어. 동티모르는 포르투갈, 서티모르와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지배를 각각 받아온 긴긴 세월동안 문화적 격차도 커졌지.

그러다가 1961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인도네시아는 자연스럽게 서티모르를 자기네 영토로 편입시키고는, 1975년 포르투갈이 동티모르에서 철수한 직후 동티모르를 무력으로 침공했어. 그때부터 유엔이 나서서 독립이 이뤄질 때까지 동티모르 전체 인구의 1/4인 2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니, 너무도 끔찍하지 않니? 동티모르는 무수한 희생과 오랜 독립투쟁 끝에 드디어 1999년 전 세계에서 가장 늦게 독립한 신생독립국이 되었지. 전쟁 때 친인도네시아 민병대로 활동한 동티모르인들은 고향(동티모르)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지금 서티모르에서 난민으로 어렵게 생활하고 있대. 동티모르는 이처럼 난민 문제를 비롯해서 독립 이후의 무수한 과제가 산적한 나라였어.

현지 문화로 함께 먹고 자면서 언어, 종교의 벽 넘는 친구 되다

우리는 서티모르에서 비행기를 내려 차를 타고 국경을 지나 동티모르로 들어갔는데, 국경을 사이에 두고 도시 발달의 차이가 매우 큰 것에 놀랐어. 인도네시아부터 모든 물자가 유입되는 서티모르와 달리 동티모르는 경제적으로도 매우 ‘가난’하고, 문명도 거의 발달하지 못한 수준이었어.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오지에 가깝다고 할 수 있지. 전기나 수도 등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자연 속에서 그들 나름대로 삶을 일궈가고 있어. 그러나 만약 이곳에도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국제금융기업의 투자로 산업개발이 되면, 빈부격차나 기아 문제가 발생해 더 불행하게 되지 않을까 상상해보았다.

   
 
  ▲동티모르와 서티모르를 나누는 국경. 이곳에서 우리는 긴 시간 동안 짐을 일일이 다 열어보는 검문을 받아야 했다. 동티모르인들은 한 달에 이곳을 넘나들 수 있는 횟수가 제한된다고 한다. ⓒ뉴스앤조이 최소란  
 
이곳에서 한국을 비롯해 일본·독일·대만·인도네시아에서 온 50여 명의 젊은이들이 한 달 동안 평화캠프에 참가했어. 물론 현지 티모르 청년들도 참가했지. 당연한 얘기겠지만, 여러 국적의 청년들이 함께 평화캠프를 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어. 서티모르와 동티모르 청년, 동티모르와 인도네시아 청년, 그리고 한국과 일본 청년은 역사 청산과 사죄라는 것이 평화의 전제라는 것을 공감했지. 독일 청년은 분단과 통일이란 공통분모로 한국 청년과 토론했고, 대만 청년은 중국의 간섭에 대해 얘기하며, 인도네시아에 이어 티모르해의 석유를 노린 오스트레일리아의 손길이 뻗치고 있는 동티모르의 미래를 우려했어. 분쟁과 관련된 나라들의 청년들이 평화캠프에 관심이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잘 생각해보면 전쟁과 폭력의 기억에서 자유로운 나라가 지구 어디에 있을까 싶어. 자기 나라의 역사적 과제에 민감하다 보면 다른 나라의 상황, 세계 평화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게 당연한 이치인 것 같아.

우리는 캠프 기간 동안 철저히 현지인들의 문화에 따라 생활했어. 현지 서민들 생활수준에 맞춰 최소한으로 소비해야 한다는 개척자들 원칙에 따라 말이야. 밥을 짓기 위해 장작불을 펴야 하고, 고기는 1~2주에 한번 정도 먹을까 말까 하고, 화장실에서 휴지 대신 물로 뒤처리를 하고, 때로는 전기 없이 촛불로 지내야 하고…. 그러다보면 현지 청년들이 캠프를 주체적으로 이끌어간다는 장점이 있지. 한편으로는 그동안 냉장고와 전깃불·수도꼭지·가스레인지·양변기·마트에 종속되어서, 문명의 옷을 벗은 자연인으로서 맨손으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나란 존재에 대해 새삼 깨닫고 반성하기도 했어. 나름대로 ‘고통당하는 그들의 평화’를 위해 갔지만, 평화는 현지인의 삶의 양식을 원시적인 것으로 판단하고 그들을 계몽하고 자본화·기계화된 현대문물을 전파하는 것은 결코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 그동안 단기선교도 몇 번 다녀오고 외국여행도 해봤지만, 이처럼 현지인들과 밀접하고 ‘대등’한 관계로 지낸 적은 처음이었어. 외국인이 오면 그들이 주는 돈이나 물품에 익숙해 있던 현지인들도 처음에는 개척자들에게도 기대를 걸었다가 실망하기도 했는데, 몇 년이 지나니까 이제는 잠깐 와서 뭘 주고 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삶을 함께하려고 온 사람들이라는 걸 알았나봐.

   
 
  ▲철저히 현지 문화와 수준에 맞춰 함께 밥 해먹고 잠자는 것이 개척자들 평화사역의 원칙이다. ⓒ뉴스앤조이 최소란  
 
그곳에서 한 달 동안 함께 먹고 자면서, 현지인들과도 그리고 다른 국적의 친구들과도 서로 모든 경계심과 편견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어. 피부색·언어·문화·경제수준 심지어 종교가 달라도 우리는 차이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공존 속의 평화를 배우고,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지. 한편으로는 단일민족이나 혈통 따위를 고집하며 이주노동자를 차별하고 공존하지 못하는 우리 한국의 현실이 가슴 아프게 와 닿았어.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건 평화의 미래를 꿈꾸는 것

자, 그럼 이제 평화교육 얘기도 해야겠지? 캠프 기간에 하는 가장 중요한 활동이 바로 현지 아이들을 위해 마련한 평화학교니까. 개척자들이 수년 동안 지속적으로 평화학교를 열면서 시행착오를 거쳐 만든 평화교육 커리큘럼은 꽤 체계적이고 유용한 것이었어. *다양성과 차별 *자존감 *편견 *의사소통 *상처 *갈등 해결 *폭력 *비폭력 *용서와 화해 등의 주제에 대해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감수성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 평화학교 교사가 되는 우리도 정규학교에서 거의 배우지 못한, 이 내용들을 새롭게 배우고 깨달을 수 있었어. 때로는 아이들에게 ‘폭력’의 개념을 가르치면서 오히려 부추기는 건 아닌지, 혹은 너무 조심스러워서 극심한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의 실제와 동떨어진 피상적인 교육을 하는 건 아닌지, 가정폭력의 원인인 가난의 사회구조적 맥락을 간과한 채 무조건 가정폭력이 나쁘다고만 가르치는 것은 아닌지 등 평화교육이 단순 명확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고민하게도 되지.

   
 
  ▲다양한 국적을 가진 다양한 인종이 모여 공존 속의 평화를 배웠다. ⓒ뉴스앤조이 최소란  
 
평화교육은 단지 뭔가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소통하고 관계를 맺어가는 모든 과정을 포함하는 것이야. 언어가 다양하다보니 통역이 매우 중요한데, 어떨 때에는 한국어 → 영어 → 동티모르어(떼뚬어) → 지방 사투리와 같이 여러 통역의 과정이 필요하기도 해. 매번 이렇게 들이는 시간과 에너지가 다소 소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한 사람이라도 소외되거나 의사소통이 왜곡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평화’이기에 인내해야 하는 것이지.

   
 
 

▲평화학교는 아이들이 평화 감수성을 키워주는 것이다. 마지막 날 마을의 개울에서 한 세족식 장면.
ⓒ뉴스앤조이 최소란

 
 

동티모르의 아이들은 대부분 군인이나 수녀가 되는 게 꿈이야. 분쟁의 상흔이 남은 땅에서 미래의 희망을 갖는다는 건 어쩌면 무척 어려운 일일 수도 있어. 이곳의 청년들도 뭔가 진출할 수 있는 기회는 가까운 ‘선진국’인 오스트레일리아로 유학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지. 이들에게 평화학교가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주는 희망의 통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고 감히 생각보기도 했어.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이기에, 그 아이들이 평화를 배우면서 자신들의 터전에서 스스로 평화를 일궈가는 주체가 되는 꿈을 꾸지 않을까.

독립으로, 분쟁의 종식으로 모든 게 해결된 걸까?

지난번에 너는 아이들 평화교육으로 무엇이 바뀔 수 있느냐고 물었지? 현지에서는 너무 지난한 활동이고 단지 우리만의 자위에 그치는 것 아니냐고…. 너도 알다시피 평화활동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 전쟁을 막거나 중단시키기 위한 반전시위, 피해자들을 돕는 긴급 구조와 구호활동, 전후 재건과 재활을 위한 사업…. 개척자들은 학교 재건과 아이들을 위한 평화학교에 주력하는 단체야. 반전운동과 구호활동도 매우 중요하지만 다소 일시적일 수 있는 활동인 반면, 평화교육은 더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해. 전쟁이 끝나면 언론도 철수하고 세인들의 관심도 사라지지. 그런 다음 뒤처리 하는 셈인 개척자들의 활동이 대중적으로 알려지지도 않고 후원도 못 받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 같아. 그러나 물리적 충돌이 끝났다고 평화가 온 것은 결코 아니지. 정말 중요한 것은 그때부터인 거야.

분쟁전문기자 김재명 씨는 <나는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에서 1990년대부터 세계 전쟁의 양상이 바뀌었다고 분석하고 있어. 미소 냉전체제의 대리전이나, 서구열강의 식민주의로부터 독립하려는 민족해방전쟁이 아니라 제3세계국가들 내부에서 그동안 억눌려왔던 종족이나 종교 간 갈등이 분출해 벌어진 내전이 대부분이라는 것이지. 영화 <호텔 르완다>에서처럼 제3세계 내전은 제국의 오랜 침략과 지배가 남겨놓은 불씨였을 거라고 생각해. 여전히 무기 생산과 수출국 1위는 미국이니까. 게다가 미국의 패권 앞에서는 유엔도 국제관계 속의 갈등조정과 평화유지를 할 강력한 국제체제가 못되고 있는 현실이지. 평화를 위한 국제적인 노력도 커져야겠지만, 결국엔 스스로 민주화와 평화체제를 이뤄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했다고 모든 게 해결된 줄 알았던 동티모르도 마찬가지야.

   
 
  ▲동티모르인들을 노린 서티모르인들의 습격으로 마을 전체가 불타 버린 뱃고라.
ⓒ뉴스앤조이 최소란
 
 
지난해 4월 동티모르에서 대규모 소요사태가 일어났다는 언론보도를 기억하니? 독립 이후 수년 동안 동티모르에 대한 뉴스가 전무하다 갑자기 소요사태만 알려지니까 사실 국내에서는 동티모르 사태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는 편이라고 볼 수 있어. 동티모르는 크게 동부와 서부로 나뉘는데, 각각 ‘해가 뜬다’는 뜻의 ‘로로사에’(Loro sae)와 ‘해가 진다’는 뜻의 ‘로로모누(Loro monu)’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어. 이런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동부와 서부가 서로를 증오하고 죽인 게 지난해 사태의 본질이야. 당시 폭력사태로 30여 명이 죽고 15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어. 그 후에도 간간히 살인과 방화가 이어지고 난민들도 아직 두려움에 떨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야.

독립 이후 로로사에와 로로모누의 기득권 다툼으로 인한 지역감정은 극도로 악화됐고, 인도네시아의 오랜 억압은 그들에게 정치적 욕망을 불러일으켜 지금 정당이 40여 개나 된다고 해. 게다가 동티모르의 유전개발권을 확보하기 위해 1500명의 평화유지군을 파견한 오스트레일리아의 전략까지 더해 동티모르의 앞날은 매우 불투명해보이는 것 같아. 무수한 학살 속에서도 민족 독립을 향한 열망을 포기하지 않던 그들이 다시 일어나서 스스로 평화를 지켜나가도록 도와야 한다고 생각해. 동티모르의 미래인 아이들과 청년들과 함께 하면서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너와 내가 이번 여름에 할 일이지 않을까?

   
 
  ▲동티모르의 미래인 아이들과 청년들과 함께 하면서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 아닐까? 자신의 꿈을 적어서 친구들에게 발표하는 시간. ⓒ뉴스앤조이 최소란  
 

아프간·카슈미르·아체·동티모르 등 분쟁 지역에서 평화캠프 열려
 

기독교평화단체 ‘The Frontiers’(개척자들)가 아프가니스탄·카슈미르·아체·동티모르 4곳에서 평화캠프를 연다. 참가를 원하는 사람은 개척자들 홈페이지(www.thefrontiers.org)에서 참가신청서를 다운 받아 작성한 후 이메일(korea@thefrontiers.org)로 보내면 된다. 신청 기간은 6월 15일까지이며, 참가비는 160만 원이다. 캠프 참가자는 철인삼종경기와 산행 및 공동생활 등으로 이뤄지는 사전 교육에 참가해야 한다.

문의 : 02-744-5072, 5071

 @ 동티모르
기간 : 7월 25일~8월 23일
활동 : 평화학교 및 화해 축제
지역 : 딜리, 서부국경, 오에쿠시, 서티모르 난민촌
인원 : 총 70명

 @ 아프가니스탄
기간 : 7월 21일~8월 19일
활동 : 평화학교 및 화해 축제
지역 : 버미안주
인원 : 총 30명

 @ 반다 아체
기간 : 7월 25일~8월 23일
활동 : 평화학교 및 화해 축제
지역 : 아체 2지역
인원 : 총 10명

 @ 파키스탄
기간 : 7월 21일~8월 19일
활동 : 평화학교 및 화해 축제
지역 : 인도-파키스탄 접경 마낙파이얀 난민촌
인원 : 총 1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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