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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탤런트 김혜은 “성악, 기상캐스터, 배우로까지 스펙터클한 그녀의 인생 이야기”
최윤희  |  aa2291415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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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년 02월 02일 (금) 18:15:51
최종편집 : 2024년 02월 07일 (수) 03:52:27 [조회수 : 10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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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탤런트 김혜은
“성악, 기상캐스터, 배우로까지 스펙터클한 그녀의 인생 이야기”

 

인기 기상캐스터에서 탤런트로 전환해 활동하고 있는 연기자 김혜은.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나이트 여사장 역할은 많은 이들에게 그녀의 이름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올해로 벌써 연기 생활한지 16년이라는 그녀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글. 최윤희 │사진. 이종관

 

 

   
 

성악을 포기하다
그녀의 전공은 성악이었다. 서울대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한 프리마돈나를 꿈꾸던 앞날이 창창하던 학생이었다. 그러나 대학교 4학년이 되면서 오랫동안 해온 성악을 접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어머님께서 의류 사업을 하고 계셨는데 IMF가 터지면서 사업이 어려워졌어요. 그때는 다 어려웠던 것 같아요. 제가 집에서 맏딸이고 집안이 기운 상태에서 세계적인 프리마돈나가 되겠다는 원대한 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장학금을 받아서라도 꼭 성악을 하고 말거야 하는 확고한 결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성악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 거 같아요.”

앵커의 꿈을 꾸다
그런데 어떻게 성악밖에 안 했던 그녀가 기상캐스터 쪽으로 눈을 돌렸을까? 어떤 계기가 있었을 것 같다.
“대학교 4학년 졸업 연주까지 마치고 나서 고민을 했죠. 뭘 먹고 살까. 그 당시 나라나 가정이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절이었으니까 뉴스를 계속 보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뉴스 하는 앵커를 보는데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드는 거예요. 한 번도 아나운서를 꿈꿔본 적이 없었는데 그걸 하려고 해서 그랬는지 눈에 딱 들어오더라고요. KBS 뉴스를 봤는데 그 당시 여자 앵커가 이규원 아나운서였어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목소리와 지적인 외모를 갖고 계셨죠.”

아카데미를 다니며 신나게 공부하다
아나운서가 되기로 결심한 그녀는 아카데미를 다니기로 결심하고 여기저기 방송국 아카데미를 알아봤다. 
“다른 곳들은 다 마감되고 SBS아카데미가 그때 신설됐는데 결원이 있어 들어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장소가 경기도 탄현이었어요. 저희 집이 서초동이었는데 좌석버스 타고 가면 오고가는데 4시간이 걸렸어요. 그 과정을 6개월을 했어요. 아무래도 제가 평생 복식호흡도 하고 성대를 써온 사람이라 남보다는 오디오 속도도 빨리 붙고 그러다보니 자신감도 생겼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보다 빨리 풀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신나게 공부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생각같이 그녀의 뜻이 이뤄지지 않았다. 지방방송국도 떨어지고 그때 당시 개국한 케이블TV도 떨어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험본 게 MBC였다. 그런데 그마저도 2명 뽑는데 3등을 하는 바람에 아나운서 시험에 낙방하고 말았다.

청주 MBC 아나운서가 돼서 여관에서 지내다
“다행히 청주 MBC 아나운서가 돼서 한 달간 근무했어요. 그때 당시는 하숙하는 곳도 없어서 여관에서 지냈어요. 무서웠죠. 회사 갔다 오면 여관방에 앉아서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지?’ 하는 생각 등을 하면서 보냈어요. 초봉이 얼마 되지 않으니까 집을 얻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어서 더더욱 힘들었던 것 같아요.”

기상캐스터가 되다
그러다가 서울 MBC 보도국에서 기상캐스터 제안을 하는 바람에 힘든 여관 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다. 정규직은 아니었다. 계약직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악바리 근성이 발휘되어 정말 불같이 열심히 일했다.
“저는 뭘 하면 대단히 열심히 하는 근성이 있어요. 지는 거 싫어하고. 식상한 거 싫어하고 빤한 얘기하는 거 싫어해요. 그래서 다른 방송국에서 하지 않는 멘트를 안 하려고 했어요. 예를 들어, ‘맑겠습니다’ ‘덥겠습니다’ 이런 말은 너무 빤한 말이잖아요. 이런 말을 하기 싫었어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손수건 하나 더 가지고 나가세요’ ‘오늘 부채 챙겨나가세요’ 이런 말로 표현했어요. 대본을 제가 써야 했기 때문에 한 문장 한 문장 한 단어 한 단어 고민하면서 썼던 것 같아요.”

민소매를 처음 입은 기상캐스터
민소매를 입은 사람도 그녀가 처음이었다. 지금이야 민소매를 입고 나오는 기상캐스터들이 그녀 때문에 많아졌지만, 그 당시 민소매를 입는다는 건 금기시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고정관념마저도 그녀가 깨뜨렸다.
“아마 뉴스에서 민소매를 처음 입은 게 저일 거예요. 그때 민소매 입는다고 되게 혼났어요. 민소매 입을 때가 아니었을 때니까요. 그렇지만 저는 제 논리로 설득을 했어요. 민소매 입고 ‘오늘 덥겠습니다’ 하는 것과 정장 입고 ‘오늘 덥겠습니다’ 하는 거랑 ‘뭐가 더 더운 날씨를 잘 표현하는 거냐?’고 강하게 설득을 시켰죠. 시청자들은 민소매를 입고 나오는 순간 오늘 덥겠구나 하고 느낄 거 아니에요? 저는 그걸 주장했어요. 그리고 ‘앵커도 아닌 내가 왜 정장을 입어야 되느냐?’며 강하게 항변했죠.”

 

   
 

독보적인 존재
그때 기상캐스터로서 그녀의 위상은 대단했다. 기상캐스터하면 김혜은 밖에 생각이 안 날 정도였으니까. 그녀가 입었던 민소매는 생각이 잘 안 나지만 노란색 우비를 입고 나와서 비 온다는 예보를 하고, 여러 도구를 사용해서 예보를 하고, 날씨에 맞게 야외에 나가서 예보도 하고, 예보와 관련된 사람을 인터뷰하기도 하고. 한마디로 파격적으로 기상캐스터를 진행했던 것이 생생히 기억난다. 한마디로 기상캐스터로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녀의 위상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한번은 9시 뉴스데스크에 다른 기상캐스터가 한 적이 있는데 ‘다시 김혜은으로 바꾸라’고 해서 바뀐 적도 있어요. 현충일 때였나? 신입 기상캐스터를 뽑는 면접이 있었어요. 그때 면접에서 기상캐스터 수험생들이 전부 ‘김혜은 같은 기상캐스터가 되고 싶습니다’를 얘기했대요. ‘왜 그러냐?’고 면접관이 물어보니까, ‘김혜은 선배처럼 드라마도 하고 CF도 하면서 영역을 확장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사표를 품고 살다
그녀의 독보적인 위상과는 달리 그때 그녀는 늘 사표를 품고 살았다. “제가 8년을 기상캐스터를 했는데 4년 차 됐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마치 내가 조직의 부속품 같은 느낌이랄까? 왜 자동차 부품 낡으면 새로 갈아 끼우잖아요. 그렇듯 제가 방송을 안 해도 섭섭해 할 사람도 없을 것이고, 말릴 사람도 없을 것이고, 누구든지 대체할 수 있는, 그러니까 나여야만 하는 자리가 아닌 거예요. 그리고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건, 제가 존경하는 여자 앵커들이 명예퇴직을 하고 나가는데 그분들 간판 앵커들이었거든요. 그런데 아무도 그분의 가치를 알아주지 않더라고요. 아무도 그 가치를 몰라주는 거예요. 그냥 일반 사원이 명예퇴직하는 거랑 똑같이 나가는 것을 보니까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간판 앵커들의 씁쓸한 퇴직 장면을 보면서 그녀는 허탈해했고, 조직에서 나가라고 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방송국이 나를 가장 원할 때 나갈 거라는 목표를 세웠다.

내가 자리를 비켜줘야겠구나
“그리고 새로 입사한 기상캐스터들을 보면서 후배들의 꿈을 키워주려면 내가 그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됐어요. 직업적인 회의가 들었을 때 제 밑으로 4명이 들어왔는데 후배들한테 잘 물려주고 내가 빨리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더 굳히게 됐어요. 후배들이 들어오니까 ‘2~3년 더한다고 해서 나한테 어떤 이득이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가 그 기간을 더한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러면서 ‘직업을 바꿀 거면 내가 하루빨리 다른 일을 시작하는 게 더 좋지 않겠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어쩌면 내가 멋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나가야 나가는 뒷모습도 더 아름답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아프기 시작했어요.”

귀가 안 들리다
귀 한쪽이 안 들리기 시작했다. 스트레스를 워낙 많이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귀가 안 들리는 게 신장이 나빠서 그런 거래요. 계속 침을 맞고 서울대병원에 입원해서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았는데 청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더라고요. 치료하는데 무려 6개월이나 걸렸어요. 그러고 나니까 애가 생겼어요.”

아기를 갖기 위한 노력
그녀는 결혼한 지 6년 만에 아기를 가졌다. 
“기상캐스터로 있을 때 시험관 아기도 하고, 인공수정도 했어요. 시험관 아기를 한 다섯 번 정도 했나? 그런데 다 실패했어요. 그런데 퇴사하고 6개월 만에 아기가 생겼어요. 그러고 보니 아기를 못 가진 게 스트레스 때문이란 게 분명해지더라고요. 아기를 갖기 위해서 정말 노력을 많이 했어요. 전국 방방곡곡 안 다녀본 곳이 없는 것 같아요. 제주도도 가고, 경북 울진인가... 생각도 안 나네요. 너무 오래돼서... 침 맞으러 맨날 다니고 그랬어요. 전국의 유명한 한의사들은 다 찾아다녔죠.”

힘든 임신
임신이 되기까지도 되게 힘들었다. 
“임신이 된 것도 아니고 안 된 것도 아닌 시기가 있었어요. 피검사를 했는데 자궁외 임신인가 할 정도로 임신 호르몬 수치가 15 정도밖에 안 나왔어요. 보통 사람들의 수치가 80 정도 나와야 하는데 저는 수치가 너무 낮은 거예요. 어쨌든 임신에 성공했는데 제가 유산을 할까봐 조심해서 걷지도 않았어요. 소파에 누워서 지내면서 일하시는 도우미 이모님한테 밥 좀 갖다 달라고 하면서 전복만 먹고 화장실 갈 때만 걷고 진짜 안 움직였어요. 그때 성경책을 많이 읽었던 것 같아요. 앉아서 성경 보고 영화 보고 성경 보고 영화 보고 은혜를 되게 많이 받았죠. 가은(딸)이는 ‘성경 태교’를 한 거나 다름없었어요.”

 

   
 

엄마의 가장 큰 지지자
이제는 가은이가 커서 고등학교 2학년이 됐다. 어렸을 때 방송에도 나와서 똑 부러지게 말하던 모습이 기억에 선한데 벌써 이렇게 컸단다. 공부도 제법 잘한다고 한다. 이제는 엄마가 연기하는데 가장 큰 지지자로 엄마의 큰 힘이 되고 있다. 
“가은이는 엄마가 배우인 걸 너무 좋아해요. 연기하러 나가라고 하고, 드라마에 안 나오면 ‘왜 안 나오냐?’고 하고, ‘다음 작품 안 잡혔냐?’고 물어보기도 해요. 어떨 때는 ‘왜 연기상을 못 받는 거냐?’고 타박하기도 해요. 가은이는 제가 배우인 걸 너무 자랑스러워하고 저를 제일 많이 지지해줘요. 그래서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만약에 가은이가 ‘엄마 나가지 말라’고 했으면 저 못 나갔을 거예요. 제가 그렇게 독하지 못하거든요.”

연기할 때 반대한 남편과 친정엄마
처음에 연기를 할 때 친정엄마와 남편의 반대가 무척 심했다고 한다.
“저희 엄마는 애를 키워야 하는데 애 안 키우고 연기를 하겠다고 하니까 ‘제정신이냐?’고 말씀하시고, 남편은 ‘당최 왜 그러느냐’며 반대를 했죠.”

두손 두발 다 든 남편
그런데 남편이 그녀가 연기하는 것에 대해 포기하는 일이 일어났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이 개봉하고 남편의 병원(치과의사) 직원들이 영화를 보고 다 그랬대요. ‘원장님, 게임 끝났습니다’ ‘원장님이 반대하셔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들 얘기하니까 남편도 두손 두발 다 들더라고요.”

1년을 매달린 영화 ‘범죄와의 전쟁’
그녀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이 바로 남편이 포기하게 만든 영화 ‘범죄와의 전쟁’이다. 그녀는 이 역할을 위해 1년을 매달렸다. 작은 배역이었지만 극중 역할을 위해 1년을 그 배역에 매달리면서 살다시피 했다. 극 중에서 나이트 여사장 역할을 했는데 실제로 모델을 찾아가 같이 생활하며 치열하게 배역을 연구했다.  
“정말 매일 갔던 것 같아요. 그 언니의 집이 역삼동이었는데 저희 집에서 가까워서 매일 가서 살다시피 했죠. 지금은 오래돼서 얼마나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몇 달 동안 그랬던 것 같아요. 가서 그 언니의 인생 얘기를 들었어요. 지하 세계에 살면서 남자들이 여자를 어떻게 대하는지도 들었고, 남자들이 무례하게 자기를 만져서 옷을 다 벗고 위스키를 알몸에 부으면서 건들지 말라고 했던 얘기도 듣고... 그 얘기를 들으면서 저는 막 부르르 떨었죠. 너무 화가 나잖아요. 그런데 그 언니가 집에서는 가장이더라고요. 굉장히 효녀인 것을 보면서 ‘내가 이 역할을 정말 열심히 표현해 봐야 되겠다’는 동기부여가 됐어요. 그런 생각이 드니까 최민식 선배를 때릴 때나 악다구니 연기를 할 때 그것이 생존, 가족을 위해서 살아남아야 된다는 진심을 잊지 않고 연기했던 것 같아요.”

영화 이후 우울증에 걸리다
연기자들은 역할에 너무 몰입하다보면 거기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다는 말을 들었던 터, 그녀는 어땠는지 궁금했다.
“영화가 끝나고 한 3개월 정도 우울증이 되게 심하게 와서 6개월 정도 치료를 받았어요. 약을 먹었어요. 1년 정도 되는 영화 준비 기간에 제 신은 몇 개 안 돼도 너무 길게 마담으로 살다 보니까 영화가 끝났는데 그다음 날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그전에는 어떻게 살았나 싶을 정도로 ‘뭐부터 해야 되지?’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어요. 영화를 찍고 나니까 되게 허탈하고 붕 떠서 살았던 것 같아요.”

가족들의 배려
그 기간 동안 가족들의 배려로 잘 극복해 낼 수 있었다. 
“될 수 있으면 건들지 않고 마음으로 배려해 줬어요. 기도도 해주고.”
그렇게 힘들게 고비를 넘기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연기가 수월해졌다. 
“약간 굳은살이 배겼다고 해야 될까요?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연기가, 배우라는 게 이런 거구나!’ 연기라는 직업에 대한 숭고함이나 연기는 아무나 하는 거가 아니구나 하는 걸 몸소 겪으니까, 배우에 대한 경외심이 그때 생긴 것 같아요. 저는 제가 배우로 살면서도 경외심이 없었는데, 배우로 사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이 그때 생겼어요. 얼마나 힘든 줄 아니까. 그래서 배우들은 연기 잘하는 배우를 존경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어떤 삶을 살아내는 거, 어떤 고민을 하는 거, 그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경외심이나 존경심을) 아는 거죠.”

 

   
 

역할보다 작품의 메시지가 중요
그녀는 선한 역할도 했지만, 시청자들의 뇌리 속에는 센 역할만 기억이 남는 건 왜일까? 그만큼 그녀에게 찰떡같이 그 역할이 맞고 잘 해냈기 때문이리라. 그녀가 배역을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작품의 전체적인 메시지이다. 과연 어떤 메시지를 주려고 하는 것일까? 하는. 그렇기 때문에 배역에 더 몰입해서 남들이 꺼려할 수 있는 악역도 찰떡같이 소화해 내는 건 아닐까?
“저는 무슨 역할이냐 보다, 이 작품 자체의 메시지가 뭐냐를 보는 것 같아요.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제가 그 역할을 하게 된 것도 결국에는 감독이 말하는 메시지가 있었거든요. ‘가족’이에요. 아버지 이야기를 파퓰러하고 추억의 어떤 코드로, 겉 멋든 남자 얘기로 풀고 싶었던 거죠. 악마와 관련된 영화가 들어왔을 때는 ‘악마 얘기를 꺼내서 영화로 만드는 이유가 뭘까?’를 생각해 보고 메시지가 아무 것도 없으면 대본 읽어보고 안 해요.”

그리고 함께 작업하는 사람들
그리고 메시지와 함께 보는 것이 같이 작업하는 사람들. 
“저는 대본을 의뢰하는 사람들도 많이 본 것 같아요. 그들을 많이 봐요. 그러니까 감독님은 이런 분이라서 그렇게 작품을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이 제작자는 이런 사람이라서 그런 작품을 만들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보는 거죠.”

역할 편견에 대한 견해
그녀는 우리가 우려하는 것처럼 역할에 대한 편견은 전혀 없었다. 극 중에서 보여지는 모습처럼 아주 쿨하고도 당당하게 역할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를 밝혔다.
“배우는 모든 삶을 사는 직업이에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배우는 편견이 없어야 하고 또 내가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나는 목사 역할만 해야 되는 건가?, 교인 역할만 해야 되는 건가? 그렇게 따지고 보면 할 역할이 없어요. 어느 순간 그런 게 되게 편협한 사고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가 크리스천이니까 선한 역할만 해야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생각한다는 거잖아요. 배우로서 그게 굉장히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경에도 창녀가 나오고, 귀신 들린 사람이 나와요. 성경이 작품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면 누군가는 그런 역할을 해야잖아요. 그래야 하나님의 얘기가 완성되는 거니까요.”

지나친 편견은 지나친 걱정
생각이 짧다는 생각을 했다. 연기자는 모든 삶을 사는 직업임이 맞다. 그렇기 때문에 역할에 귀천이 없다. 배우라면 역할을 맡았을 때 그 역할에 몰입해서 스토리를 만들어내고 그 역할을 잘 표현해서 그 작품을 잘 살려내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삶에도 여러 역할의 사람들이 있다. 집안에서는 아빠와 엄마, 딸과 아들의 역할이 있다. 이런 역할들을 하기 싫다고 하지 않는다면 가정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직업에도 귀천이 없다고 하질 않나? 새벽에 보면 쓰레기 청소하시는 분들과 택배기사 차들을 제일 많이 본다. 만약 그들이 없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깨끗하게 살 수 있고 어떻게 택배를 시켜서 필요한 것을 살 수 있을까? 이제는 예전에 비해 편견이나 선입견들이 많이 없어진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다. 하여간 연기에 있어서도 주연과 조연, 단역이 필요해서 한 작품이 구성되는 것처럼 모든 역할이 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녀의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에게 있는 지나친 편견은 지나친 걱정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매일 ‘영적 운동’을 하세요
마지막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일지 물어봤다.
“내가 아플 때는 어떤 말도 안 들리잖아요. 어떤 위로도 안 들리죠. 제가 요즘 성경 ‘욥기’를 묵상하고 있어요. 근데 고통 앞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일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잘못된 위로나 어설픈 위로가 얼마나 더 큰 상처를 내며 얼마나 외롭게 만드는지 알게 됐죠. 저는 너무 아플 때는 말씀도 안 들어오고 기도도 안 나오지만 그래도 말씀(성경)을 읽으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무언가를 해야 된다면 그래도 그건 말씀을 보는 일이다. 그게 가장 회복이 빠르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말씀을 먹으면(읽으면) 하나님께서 에너지를 주시고, 치료도 해주세요. 내가 매일 운동을 한다고 생각하고 ‘영적 운동’을 말씀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강한 이미지와는 달리, 선한 인상과 조곤조곤 말하는 모습이 천생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믿음도 너무 좋고. 게다가 너무 털털하고, 게다가 진짜 사람 좋은 사람이고. 앞으로 작품 속에서 어떤 역할을 만나더라도 그녀를 마음껏 응원할 것 같다. 

 

<이 기사는 계간 ‘치유’ 6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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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봉성도 (122.101.20.19)
2024-02-15 13:43:43
영화 "범죄와의 전쟁"은 아직도 유튜브를 통해서 간혹 보게 되는데 김혜은 씨의
나이트클럽 女사장 신은 무조건 나옵니다.
최익현(최민식)과 최형배(하정우)가 같이 합작(?)을 해서 김판호 패거리들이
관리하던 나이트글럽을 접수 후 나이트글럽의 모든 요직을 최익현이 접수를 하고
후에 경리부서까지 접수를 하자 나이트클럽 女사장(김혜은)이 최익현에게 다가가
대들면서 날리던 멘트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면서 둘이 욕하면서 서로 싸우던 장면도 강한 장면으로 기억이 됩니다.
참으로 대단한 연기력이었지요.
이런 역할 하나를 하기 위해 깡패를 찾아가서 그 분위기를 배워 온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프로의 정신이 몸에 배신분 같습니다.
앞으로 더 승승장구하시어 모든 사람들이 알아주는 명 배우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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