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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종양에 걸리고 신의 한수를 알았어요”
최윤희  |  aa2291415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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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년 01월 06일 (토) 14:44:53
최종편집 : 2024년 01월 12일 (금) 17:51:42 [조회수 : 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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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찬양사역자 유은성

“뇌종양에 걸리고 신의 한수를 알았어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온 맘 다해’ 등의 찬양을 통해 기독교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찬양사역자 유은성. 연기자 김정화의 남편으로도 유명한 그가 현재 뇌종양을 앓고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마음으로 잘 견뎌내고 있는 그를 만나 7년 무명 생활 얘기와 뇌종양 얘기, 목회자 가정의 자녀로 태어나 목회자 아들로서 겪어야 했던 어려움 등을 나눠봤다.
글. 최윤희 │사진. 이종관

 

   
 

뇌종양 판정을 받다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병이 무엇일까. 암이지 아닐까. 암이란 이름만 들어도 두려운 존재, 무서운 존재이다. 그런데 그 암을 그가 앓고 있다. 뇌종양이란다. 뇌암이라고도 하는데 올해 판정을 받고 처음에는 놀랐지만, 지금은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뇌종양 판정을 받고 제일 힘들었던 사람이 바로 아내였어요. 엄마가 11년 전에 유방암으로 돌아가셨거든요. 그러고 나서 제가 11년 만에 암에 걸렸으니 심정이 어땠겠어요? 그래서 제가 정신을 차려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내 김정화는 시트콤 ‘뉴논스톱’ ‘논스톱3’에 출연하면서 한창 인기를 끌었던 탤런트이다. 그러던 그녀가 한창 잘나가던 시절에 결혼해 사람들이 의아해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쨌든 그녀는 사랑하는 엄마에 이어 남편까지 암에 걸리자, 그것을 자기 탓으로 돌렸단다. 왜 그랬을까?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 암에 걸리지?
“제가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아내가 너무 힘들어하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혹시 내가 암에 걸린 게 당신 탓으로 생각하느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맞는다고 하는 거예요. ‘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은 다 암에 걸리느냐?’는 거였어요. 엄마도 그렇고 남편도 그렇고. 유일하게 사랑했던 사람이 엄마였고 유일하게 의지하고 살았던 사람이 엄마였는데, 암으로 돌아가시자마자 만난 저마저 암에 걸리니까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 암에 걸리지?’ ‘하나님,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전부 암이라는 아픔을 주세요?’ 그거였던 거죠.”

내 탓이지 당신 탓 아니야
그는 아내에게 그게 그녀 탓이 아니란 걸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은 것이고 그게 축적이 돼서 일어난 것이지, 그리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일 뿐인데, 그건 내 탓이지 당신 탓이 아니니까, 좌절하지 말라고 얘기를 했어요.”
그리고 감사를 했단다. 어떻게 그 상황에서 감사가 나왔을까? 무엇을 감사한 걸까?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까 아내와 아이들이 뇌종양이 아닌 게 감사하더라고요. ‘만약 뇌종양이 우리 아이들과 아내에게 왔다면 난 어떻게 살지?’ ‘만약 아이들이나 아내한테 뇌종양이 있으면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되지?‘라고 생각하니까 내가 걸린 게 너무 감사하고 다행인 거예요. 이걸 깨닫고 나니까 모든 게 감사했어요.”

오진
그에게 감사할 게 또 있다. 바로 ‘오진’이다.
“제가 작년과 올해 MRI 검사를 했는데, 사실 2015년도에도 뇌 MRI를 찍은 적이 있어요. 좀 이상해서 말이죠. 그때도 발견을 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제 팬이셨어요. 그러다 보니 선생님이 병 얘기보다 제 얘기를 더 많이 하셨는데 ‘피곤해서 그럴 경우가 있다’고 하시는 거예요. 오진을 하신 거죠. 뇌는 판명을 받으려면 수술을 해야 하는데, 그때 만약 수술을 했다면 90퍼센트 장애를 얻었을 거래요. 한쪽 귀가 안 들리거나 기억력을 잃을 수 있는 장애... 그것을 토대로 최근에 찍은 MRI에서, 뇌종양이 안 자라서, 지금 수술 안 해도 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거예요. 오진이 신의 한수였던 거죠.”

신의 한수
그래서 그는 최근에 ‘신의 한수’라는 단어를 알게 됐단다.
“‘신의 한수, 하나님의 한수가 있구나’ 이걸 알게 됐어요. 하나님의 한방. 위기일수록, 어려움이 있는 분일수록 하나님의 신의 한수를 기대해도 좋다고 저는 봐요.”
수술을 안 하게 되면서 SNS에 병명을 올렸는데 기사가 100개가 났다고 한다. 
“전 기사가 난 줄도 몰랐는데 전화가 막 쇄도하는 거예요. 기사 올리자마자. 기자들한테 전화 오고, 일반 방송에서 부부 출연 요청이 들어오고... 그런데 기사에 제가 마치 시한부 인생을 살아서 죽는 것처럼 나온 거예요. 그래서 아내랑 방송 하나는 나가서 그렇지 않다는 얘기를 하자고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출연 제의가 들어온 것이 SBS의 ‘동상이몽’이었어요.”
방송 출연하기 전까지 하나님께 계속 기도를 했다고 한다. 
“하나님 방송이 두렵습니다. 저희가 드러나는 게 아니라 하나님만 드러나셨으면 좋겠습니다.”

 

   
 

 

‘동상이몽’ 출연
‘동상이몽’ 출연하고 나서도 기적을 체험했다.
“방송에는 두 커플 이야기가 나가는데 저희 커플 이야기만 나가게 됐어요. 제작진한테 전화가 왔는데 저희 얘기가 너무 영향력이 커서 저희 이야기를 통으로 나갔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데스크의 허락을 받느라고 일주일 연기가 돼서 저희 이야기만 일주일 뒤에 나가게 됐는데, 방송할 때 보니까 제가 CCM 가수로 활동하는 내용부터 하나님 얘기, 기도하는 모습, 선교사님이란 통화하는 내용, 제 찬양을 가수 시아준수씨가 부르는 것까지 다 나온 거예요. 공중파에서는 주일이라는 단어도 못 써서 일요일이라고 하는데, 공중파 방송에 기독교적인 내용이 다 나온 거예요.”

은혜로운 댓글 많이 달려
게다가 시청률도 갑자기 반등을 하기 시작했고 시청자 반응도 놀라웠다.
“시청률이 5.8퍼센트가 나왔어요. 저희가 볼 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그랬어요. 그전에는 시청률이 그렇게 되지 않았거든요. 게다가 시청자들의 반응이 놀라웠어요. ‘SBS 보면서 기독교 방송 보는 줄 알았다’ ‘공중파 보면서 은혜받는 건 처음이다’ ‘나 예수 안 믿는데 당신을 응원한다’라고 하기도 하고, 제 인스타그램에 들어와서 ‘저는 교회 안 다니는데 당신처럼 예수 믿는 사람들 보니까 교회가 너무 좋아 보인다’ 이런 이야기들이 많은 거예요.”
게다가 SBS 제작진 중에 예수 믿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데스크에 1시간 40분 동안 이 커플 이야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권유했을 때, 오케이 사인했던 데스크의 CP가 예수님 믿는 분이었대요.”
이후 그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게 됐단다. 
“방송 이후에 제가 깨달은 게 있어요. ‘하나님이 하시니까 되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나님이 하시니까 공중파에도 신의 한수가 있구나!’ 그걸 알게 됐죠. 그래서 이제 저의 간증제목이 다 ‘신의 한수’예요.”

작곡가가 꿈
그는 언제부터 음악을 하게 된 걸까?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했어요. 그래서 작곡가를 가려고 했죠.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2학년 때 아버지가 목회를 하셨는데 성전 건축을 하시면서 집안이 어려워졌어요. 그러니까 레슨 받을 돈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음대 가는 걸 포기했어요. 그러면서 선교사가 되겠다고 신학대학교 선교학과를 갔어요.”

첫 음반이 망하다
그는 선교학과를 다녔지만, 음악에 대한 것만은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2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서 음반을 직접 만들었다. 그런데 음반이 망했다.
“첫 음반이 나온 게 2000년도였어요. 1998년에서 1999년까지 2년을 준비해서 만든 음반이었는데, 1998년 IMF가 왔잖아요. 그 시기에 준비를 하고 2000년 1월 1일에 출시를 했는데, IMF 역풍이 기독교 음반시장에도 휘몰아쳐서, 결국은 2년 동안 준비한 음반이 음반 유통회사가 부도가 나면서 대표님이 잠적하시고 음반을 출시하자마자 반품을 받게 되는 등 상황이 어려워졌어요.”

혼자 홍보해서 3천 명 팬카페가 생기다
그렇지만 활동은 꾸준히 했다고 한다. 
“불러주는 곳이 없어도 갔어요. 음반을 냈으니까 홍보를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저 혼자 박카스 사 들고 기독교 방송국을 한주씩 돌아다니면서 PD들에게 인사하다 보니 길이 열리기 시작했어요. 노래할 자리가 생기게 되고 팬클럽이 생겼어요. 제가 군대 가기 전까지 포털사이트 프리챌이랑 다음(DAUM)에 한 3천 명 넘게 팬카페가 생겨서 그 친구들을 기반으로 카페 빌려서 카페콘서트를 했는데 한 300명 정도 모여서 콘서트를 했어요.”
소속사도 없는 상태에서 혼자 그렇게 했다는 것이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고서도 또 좋은 일이 일어났다.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오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기획사였던 트리니티라는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어요. 그래서 제가 그 회사의 CCM 1호 가수가 됐어요. 그리고 찬양을 부르고 보컬디렉터도 하고 코 프로듀서(co producer)를 하다가 군대 갔다 와서 2집을 냈어요.”
그게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2집 음반 출시 후 2주 만에 우리나라 모든 차트들을 다 석권했어요. 멜론, 벅스뮤직, 씨씨엠러브, 싸이월드, 갓피플 등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든 차트에서 1위를 했어요. 재주문이 들어오고 음반 관계자들을 만나면 전부들 ‘너 난리 났다’고 했는데 전 잘 와 닿지 않았어요.”

인기가 치솟다
그는 실감을 못했지만, 그의 곡은 싸이월드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됐고, 2집 안에 수록돼 있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주님은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죠’ ‘온 맘 다해’ 이런 찬양이 다 유명해지면서 외국 시드니와 뉴질랜드에서 초청도 받고 한국에 있는 교회들에서 초청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활동을 많이 하게 됐는데 방송도 하고 라디오 진행도 하게 되면서 그의 인기는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가 신의 한수가 놀랍다고 했는데 그의 얘기를 듣다 보니 신의 한수가 그의 인생에 있어 중요한 계기가 됐던 시기가 많았던 것 같다. 어렸을 적 음악을 좋아했지만, 아버지가 교회 성전 건축을 하면서 재정이 어려워지자 전공하려던 작곡을 못 하게 되고 선교학과를 들어간 것도 신의 한수였다. 

작곡가 포기, 선교학과 지원
“사실 어렸을 때 엄마가 목회자 서원기도를 하셨어요. 제가 목회자가 되기를 원하셨죠. 그러나 저는 어렸을 적부터 목회자 자녀로 자라나다 보니 안 들어야 될 것도 다 듣게 되고 교회에 염증을 느끼게 되면서 목회자보다는 어차피 하나님의 일을 해야 된다면 선교사를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서 선교학과를 진학한 거거든요.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것도 신의 한수였어요. 문화선교를 하고 있잖아요.”

아픈 사람들에게...
그는 현재 뇌종양을 앓고 있기 때문에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말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제가 감히 아픈 분들에게 뭐라고 얘기를 하겠어요? 어렵고 힘드신 부분들을 저는 잘 모르니까. 그런데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저만 어려운 건 아닌 것 같아요. 아프신 분들만 어려운 것 같지는 않아요. 저는 육체적으로 아프지 않으신 분들도 어려움 있는 분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질병이 있는 분도 있고, 금전적으로 어려운 분도 있고, 생활 자체가 힘든 분도 있고, 인간관계가 힘든 분도 있고, 직장에서 힘든 분도 있고... 다들 어렵고 아픔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분들에게 제가 공통적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리가 선교적인 삶을 살면 하나님이 책임지지 않을까요? 내가 내 아픈 거 어떻게 못 하잖아요. 내가 내 인생을 책임지려 하지 말고 내 인생을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게끔 하면 내가 책임지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가 있지 않겠어요? 내가 일찍 죽는 게 나쁜 결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에 대한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어떻게 되든 지금 당장 풀리지 않는 일이 있어도 그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서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게 한다면 조금 더 편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마음속으로도 이왕 아픈 거, 이왕 힘든 거, 이왕 어려운 거, 내가 못 하니까 마음속에라도 하나님이 알아서 하세요라고 하면 왠지 괜찮을 것 같아요. 저는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인생에 포인트를 맞추면 신의 한수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
역시 긍정적이다. 그는 지금까지 어려운 점들이 많았지만 어렵다고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뇌종양을 앓고 있는 지금도 ‘시한부 인생을 살고 싶지 않다’가 그의 결론이다. 어찌 보면 우리들은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언제 죽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단다. 이왕 사는 거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하고, 내 안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간증하고 전하고 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단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 그게 조금 빠를 수가 있고 조금 느릴 수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 어떻게 사느냐에 초점을 맞추고 살다 보면 삶이 보다 윤택해지지 않을까?

 

<이 기사는 계간 ‘치유’ 6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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