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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안보와 한반도 평화통일 : 전쟁, 독일통일 그리고 한반도”
김상국  |  sangkuk.kim@fu-berli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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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7월 16일 (일) 23:37:39
최종편집 : 2023년 07월 17일 (월) 00:01:41 [조회수 : 1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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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사)평화드림포럼(이사장 은희곤 목사)이 지난 6월 25일부터 7월 7일까지 유럽5개국 10개 도시를 순례하는 <평화드림5만리> 행사 중 베를린 백림교회에서 진행했던 평화의날 기념 세미나에서 베를린 자유대학교의 김상국 교수가 발제한 논문이다.  김상국 교수의 허락을 받아  전문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유럽 안보와 한반도 평화통일 : 전쟁, 독일통일 그리고 한반도”

 

김상국/독일 베를린 자유대 정치학 박사, 역사문화학부 전임연구교수

 

서문. 유럽 전쟁과 한반도
1. 한반도의 통일 딜레마
2. 독일신동방 정책에서 시작된 동서독 통일의 대장정
3. 동서독 관계와 한반도의 유사점과 차이
4. 한반도 통일 프로세스 진전을 위한 국제/국내적 조건
5. 한반도 평화를 위한 우리의 실천과제
결론

 

   
▲ 김상국 교수 /베를린 자유대

서문. 유럽 전쟁과 한반도 평화

 

“Der Frieden ist nicht alles, aber alles ist ohne den Frieden nichts.”
Willy Brandt, 3. November 1981

“평화가 전부는 아니지만 평화 없이는 모든 것이 소용없다.” 이는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가 냉전이 엄혹했던 지난 1981년에 한 말입니다. 평화가 없으면 어떠한 부나 가치도 의미가 없는 현실을 우리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목도하고 있습니다. 유럽뿐만 아니라 대만을 둘러싼 미중갈등으로 그렇지 않아도 엄혹한 한반도 정세 긴장이 더욱 촉진되고 있습니다. 

먼저 한반도 안보와 통일에 독일의 경험이 중요한 이유를 먼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 독일에서 해결안은 우리 것이 아닐 수 있으나 발견된 문제는 모두 한반도에 더 심각하게 반복될 수 있다.
2. 독일 통합은 아직 완결되지 않은 진행형이며 이를 다양한 관정에서 재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동서독 통일 3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한반도에 의미가 있다.
3. 동서독 통일은 한반도 통일의 최선의 길은 아니지만 한 국가로서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공산독재 시스템을 포괄한 유일한 사례이다.
4. 서독의 정책과 동독의 대응을 비판적으로 고찰 함으로써 창조적 해결안을 모색할 수 있다.
5. 통일은 공동의 테마로서 독일과 유럽을 이해하는 첩경이 된다.

오늘 또한 저는 “모든 작품은 대체로 작가를 닮게 되어 있다.”는 스페인 국민작가 세르반테스의 말을 되새기게 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라는 역사의 작품을 만드는 것은 작가인 한반도에 뿌리를 둔 사람들, 가장 중요하게는 남북한의 주민과 우리들이 어떠하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1. 한반도의 통일 딜레마

 

“현재에서 미래는 태어난다.” 1694년 파리에서 태어난 위대한 계몽주의 사상가의 이 말로 지난번 파리 민주평통 남유럽협의회 출범식에서 강의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은 18세기에 제가 사는 베를린과 포츠담을 자주 오가며 계몽군주인 프리드리히 2세의 친구였던 볼테르의 명언입니다.
한반도 통일미래는 “현재에서 미래는 태어난다”는 교훈처럼 현재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평화적, 무력적, 또는 급진적 단계적 통일이냐, 나아가 평화적 공존의 지속인가 통일인가의 미래도 오늘의 우리 행보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여리분은 어떤 통일을 소원하십니까?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라는 우리 조직이 이름처럼 통일은 민주적인 틀에서 평화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그런데 민주라는 말도 평화라는 말도 해석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통일, 현재의 대한민국과 같은 사회로의 통일, 남북이 통합된 제3의 길을 생각하시나요?
그런데 솔직히, 우리의 소원은 나의 승리이며 너의 패배를 갈망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우리의 통일은 멸공통일이라 믿었습니다. 아마도 북에서 염원하는 통일은 유일 체제의 적화통일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 통일의 딜레마는 시작됩니다.

남북한 주민은 서로 형제이지만 동시에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Covid-19가 터지기 직전 저는 학술교류 때문에 평양과 개성을 방문하고 북측 휴전선에서 군인을 만났습니다. 친절하고 순박해 보이는 이 젊은 병사가, 제가 태어나고 자란 대한민국의 제 아들 갈은 젊은이의 총에 죽을 수도 있다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2019년 겨울 저는 베를린에서 평양에서 연수를 온 북한 대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헌법으로는 한반도 전체가 우리의 영토이고 그들도 우리 국민이지만 국가보안법상 북한은 적국이며 우리 형제를 돕는 것이 이적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현실에 직면해야 했습니다.

남북관계의 국면에 따라 큰 차이가 나지만, 한국에서 시행된 최근 설문조사에서 75%가 한국인이 북의 침공은 가능하다 하면서도 동시에 60%는 북을 도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해할 수 있으나 우리가 돕고 싶은 관계, 상생의 관계인 형제이지만 나의 득이 상대의 실이 되는 제로섬 게임의 적이기도 합니다. 북한을 도우려면 인권문제로 비판받는 북한 지도부와 합의해야 하고, 합의하려면 지도부의 이익에 반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결정은 /비인권적/이라 비난받게 됩니다. 다른 한편, 지원을 거부하면 또 어려운 상황을 돕지 않아서 /비인도적/이 됩니다.

또한,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 간의 경쟁은 한반도 전쟁의 씨앗이 되었고 안보 딜레마와 (베트남전, 이라크전 같은) 동맹 딜레마를 낳았습니다. 상호 신뢰 부족에 따른 안보 딜레마는 (핵 개발을 비롯한)군비경쟁의 가속화를 낳았습니다. 핵 개발로 북미 양측의 갈등은 이제 한반도를 벗어나 국제질서를 위협하는 복잡한 운세로 발전했습니다. 이는 통일독일과 한반도의 가장 큰 차이 중에 하나입니다

나아가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동맹은 동맹 딜레마를 낳았습니다. 위험 상황에서 미국이 우리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으로 의존을 낳았고 공짜는 없다 했듯이 동맹관계는 베트남전과 이라크전 창전과 같은 연루의 위험성이 높아지게 했습니다. 

한미 동맹은 우리에게 안보를 제공하는 대신 전시작전권을 포기하게 하고 개성공단, 남북교류 등 모든 중대한 결정에 미국의 의사를 물어야 하는 주권의 제약을 가져왔습니다.

분단은 또한 동서 냉전의 한국화를 낳았습니다. 과거 남북 양측의 권력자들은 정치적 목적으로 위협을 과장하여 적대적 공존을 꾀했습니다. 외세에 의해 주어진 분단 상황에 남북한이 스스로 갈등하면서 냉전이 한반도화 되었습니다. 대북정책을 국내 정치화하여 남.남 갈등은 깊어졌습니다.

지금은 이러한 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대북정책협의체제가 필요 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각계각총의 대표자들을 모으면 서로 대화가 안 됩니다. 우리가 좌우대립을 너무 심하게 겪었고 전쟁까지 치르고 독재의 세월을 거치는 동안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조사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남북한 주민의 다수가 통일을 원한다고 합니다. 정치학자 로버트 달의 이론을 빌리면 "모든 시민에게 완전히 반응하는 정치체제라면" 모든 남북한 주민이 원하는 통일은 돼야 했습니다. 그런데 왜 통일은 아직 요원할까요? 통일에 대한 지배세력 그리고 국제적 이해관계가 우리 국민 대다수의 이해관계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북측의 경우에도 생존을 위해 중국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북측은 체제유지의 절박함으로 개방과 폐쇄의 갈등을 지속하게 되었습니다. 체제유지를 위해서는 개방이 필요하지만, 개방은 또한 체제를 위협할 수 있다 경계합니다.

북은 또한 핵무기 개발의 딜레마를 가지고 있습니다. 취약한 경제력으로 재래식 무기로 남과 군사력 균형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해 졌고 이는 핵무기를 더욱 포기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경제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제재를 걸어야 하고 여기에는 비핵화가 전제되어 있습니다.

한반도의 역사적 짐은 통일을 더욱 힘들게 합니다. 우리는 해방이후 하나의 주권국가, 민족국가로 서지 못했습니다. 냉전체제의 희생양이 되어 함께 민주주의의 경험을 축척할 수도 없었습니다. 한반도는 심지어 고조된 냉전의 희생양이 되어 냉전이 열전으로 바뀌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습니다.

 

   
 


2. 신 동방 정책에서 시작된 동서독 통일의 대장정

 

여기서 저는 평화통일을 달성한 독일의 최근 역사에 주목합니다. 독일인들은 독일을 방문하며 독일 통일의 교훈을 묻는 한국인들에게 통일을 매일 이야기하기만 하며 왜 적극적인 실천은 볼 수 없느냐고 지적합니다.

독일은 통일을 추구했던 30년간 통일이란 표현을 공식적으로 쓰는 것을 피했습니다. 어쩌면 통일을 포기하고 동서독 관계 개선에만 우선 주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결국 통일이라는 결실을 보았습니다. 말보다는 실천이 있었습니다.

독일 통일의 시작은 89년이 아니라 6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통일의 첫 단추를 끼우기 시작했습니다. 69년부터 동방정책을 적극 추진한 빌리브란트의 오른팔이었던 에공 바 장관은 미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를 만난 자리에서

ich habe Kissinger gesagt, ich bin nicht hierhergekommen, um zu konsultieren, sondern um zu informieren. "나는 자네에게 논의하러 온 게 아니라 통보하러 왔다네..."라고 말했습니다.

서독은 이로써 동서 관계에서 제한적 독자노선을 걸었습니다. 이는 나토에서 서독의 지위, 동서냉전의 경계에서 전략적 비중, 무역 및 유럽 내 자본주의권 독일의 위상 등 미국에 대한 정치적 지렛대(political leverage)의 힘이 컸습니다.

물론 이는 또한 교역과 투자 같은 경제적 상호 의존의 증대가 정치 및 안보적 고려와 직결되었던 냉전 시대 (마살플랜, 경제 협력. 라인강과 한강의 기적)와는 다르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탈냉전 시대 국제체제의 경제적 상호의존과 정치안보적 고려가 독립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신동방정책의 핵심은 Wandel durch Annäherung 접근을 통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평화가 있었습니다. 빌리 브란트는 “Nicht Demokratie und Menschenrechte, nicht einmal die Freiheit, sondern der Frieden muss global der oberste Wert bleiben", 민주주의 인권, 아니 자유보다도 평화가 가장 중요한 가치가 되어야 한다고 단언했습니다. 이러한 평화로 시작된 대장정은 결국 동서독 통일, 냉전의 종식으로 유럽의 자유와 인권 증진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3. 동서독 관계와 한반도의 공통점과 차이점

 

독일과 한반도의 통일여건은 서로 차이가 많아 독일의 경험을 그대로 한반도에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①공산 독재체제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전환된다는 점, ②사회주의 중앙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체제로 바뀐다는 점, ③적대적.이질적 체제에서 살아온 민족이 하나의 체제 밑에 통합되는 과정이라는 점에 서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차이점은,
첫째, 독일은 전범국으로 분단된 반면 한반도의 분단은 일방적 희생이었습니다.

둘째, 독일은 우리처럼 동족간의 잔인한 전쟁을 겪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반도에는 한국전쟁과 남북 갈등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정리/청산/화해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세째, 동서독은 지리적으로 정치적으로 동서갈등의 중심에 서 있었던 반면 한반도는 지리정치적으로 중심적이지 않습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한반도 문제가 미중간 세력경쟁의 도구는 될 수 있지만 미중 문제의 핵심은 아닙니다. 

네째, 이론적으로 남북한은 통일전 동서독과는 달리 국제법상 완전한 자주국가이지만 현실적으로 핵문제와 북미/한미 관계 때문에 양자간 자주적인 관계 설정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다섯째, 남북한은 동서독에 비해 인적교류가 너무나 적고 안정적/제도적 경제협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동독인에게 서독은 대안적 사회/매력적인 사회였지만 북한 주민들에게 한국사회가 그들의 대안적 사회로 간주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입니다. 분단기간 동안 서독으로 탈출/이주민이 3백만이있던 반면 (북의 통제가 동독보다 강하다고 하나) 북에서 남으로 이주한 주민이 3만을 겨우 넘는다는 점은 시사해 주는 바가 큽니다. 

여섯째, 남북은 중미와 동맹관계이지만 한미 관계와 독미 관계 그리고 동독-소련과 서독-미국 관계와는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서독은 대동독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대소련 관계를 먼저 개선했습니다. 서독은 또한 강력한 경제력과 외교력을 바탕으로 대동독 관계 개선에 대한 미국의 이해를 얻었고 이는 (동서독)내독관계의 정진적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남북간 관계에서 북은 중국에 독립적인 반면 한국은 안보를 위해 의사결정을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즉 대중 관계의 개선이 대북 관계의 발전으로 이어질 수 없는 구조입니다.

일곱째, 동서독 관계의 틀이 되었던 헬싱키 협정/유럽 안보협력 기구와 같은 다국적인 안보협력 기반이 동아시아에 아직 존재하지 않습니다. 즉 남북한의 합의가 있더라도 이를 지키도록 강제할 수 있는 기반이 없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어쩌면 다국적 차원의 북핵문제 해결의 노력은 동아시아 안보 체계를 구축하는 발판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미중간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협력의 고리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여덟째, 남북 갈등에 비해 동서 갈등은 경미했습니다. 양국간 갈등은 있었지만 전쟁은 없었습니다. 독일 국내적으로 60년대 중반 시작된 신동방정책은 70년대 양국간의 기본협정으로 결실을 맺어 (좌우)정권과 관계없이 추진될 수 있었고 국외적으로는 동서진영간의 데탕트 시대의 시작으로 갈등이 악화되지 않았습니다. 더불어 독일 국내 정치에서 여야간 동서관계의 정치도구화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 외에도 양측간의 통일의 물리적 조건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인구 서동4:1 – 남북2:1, 경제규모는 11:1 – 60:1, 분단 기간 40:70년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동서독 통일은 한반도 미래에 교훈을 제공합니다. 동서 통일 과정과 통합과정에서 발생한 모든 문제점은 한반도 통일 과정에 우리가 맞을 도전에 대한 대비를 가능하게 하며 또한 신동방정책에서 시작된 화해와 평화의 노력들 그리고 구체적인 정책들은 우리에게 일종의 공구상자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 김상국 교수/베를린자유대


4.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을 위한 국제/국내적 조건

 

2018년 급진적인 대화의 물꼬가 트인 것은 트럼프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비전통적 정치 + 북한의 핵무기 완성 + 2017년 부터 시작된 한국의 중재 노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프로세스가 좌절된 것은 무엇보다 비핵화의 정의와 이에 이르는 방법에 대한 합의 즉 장기적 로드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비핵화의 시작은 신뢰입니다. 미국과 북한간의 최소한의 신뢰가 필요합니다. 비핵화도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신뢰는 대화와 소통 그리고 협력을 통해서만 가능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북미간의 갈등을 해소하는데 한국 정부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이러한 신뢰의 시작/마중물로서 70년 휴전의 종지부를 찍는 종전선언은 매우 중요합니다.

북미간 단계적인 접근과 해법을 찾는 프로세스에 합의해야 합니다. 이는 단기적 보다는 중장기적인 로드맵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미국은 통일된 외교노선을 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긴급한 아젠다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실 북미대회가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은 북한의 핵실험으로 미국 정부에 해결해야 할 긴급하고 중대한 아젠다로 등장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역설적으로 핵무기가 완성되지 않았을 때 시간은 북한편이었지만 완성된 이후에는 핵탄두의 수와는 관계없이 미국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미국 정부에게 딜레마적 상황에서 가장 쉬운 선택은 현상유지일 수 있습니다. 대북 제재, 대북 인권 정책은 현상유지를 위한 변명/근거 모색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한미 동맹의 기본 안보의 목표에 대한 시각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전쟁반대와 평화를 우선시하는 우리와 비핵화/확산금지가 가장 중요한 미국/유럽간의 목표의 차이가 발견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real realist가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미국의 한 학자는 미국이 국가 이익만을 생각한다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북한과 협력할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대북 제재에 전위적 입장을 취한다면 북한도 중국보다는 미국을 선택할 가능성이 낮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국가이익만으로 정책이 만들어지지 않으며 (민주주의 시장주의, 인권 등)가치도 여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해결 방정식은 더 복잡합니다.

북한내에 새로운 변화가 있어야 장기적인 평화 그리고 통일이 가능합니다. 변화를 위한 새로운 사회 계층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경제 개방과 개혁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제재를 단계적으로 풀어야 합니다. 제재는 풀었다 언제든지 다시 할 수 있지만 북한에게 핵포기는 일회적이고 불가역적일 수 있습니다.

한반도 문제 해결에 중국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중국의 긍정적 역할을 견인하기 위해 이중관계가 악화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아까도 언급한 바 있는 다국적 차원의 핵문제 해결의 노력은 평화를 위해 필요한 동아시아 안보 체계를 구축하는 발판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미중간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협력의 고리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리하면 남북 관계가 우호적이면 한미 관계가 덜 중요하지만 남북 관계가 적대적이면 한미 관계가 더 중요해집니다. 반대로 북미 관계가 우호적이면 남북관계가 좋을 수 있으나 적대적이면 어려워집니다. 또한 남북관계는 한중관계가 우호적이면 유익하고, 북중 관계가 나빠지면 유익하며, 미중 관계가 좋아지면 유익해지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통일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많은 도전들이 있습니다. 경제적 비용, 북의 민주화. 전쟁과 갈등의 과거를 청산하는 일, 사회를 통합하고 법제도 차이를 극복하는 일, 학문과 예술을 통합하는일 등.

그래서 통일은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합니다. 독일 통일에도 많은 비용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분단 때문에 더 많은 비용이 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분단 비용은 지속적이고 증가 하지만 독일통일을 봤을 때도 알 수 있지만 통일이 되면 분단비용은 일시에 사라지고 통일비용은 점차적으로 감소하고 언젠가는 미래를 위한 투자로서 결실을 맺게 될 것입니다

 


5. 한반도 평화를 위한 우리의 실천과제

 

북미관계 긴장의 안전판으로서의 한국의 역할이 중대함을 이해하고 대북정책에 관한 여론을 환기시키고 대북정책의 국내 정치화를 최소화 할 수 있도록 합의를 도모해야 합니다.

한국 (정부/사회) 통일론의 포괄적 이해를 바탕으로 다양한 통일론에 대한 비판적 이해(일방적 통일논의 극복)가 필요합니다. 또한 평화와 통일에 대한 주체적 의견을 정립해야 합니다.

개방적 통일논의로 보수/진보간 대결을 극복하고 포괄적/합리적 통일 담론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정부가 추진한 한반도 정책에 포함된 통일국민협약은 이런 의미에서 통일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한 핵심적인 전제입니다.

특히 여러분들이 여론 형성의 주체로서 적극 의견 개진하고 통일 사안 이외에도 지역사회/정부/시민 사회와 연대하여 인도적 협력의 계기를 마련해야 합니다. 

정치적 Agenda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사회내 통일문제를 공론화해야 하고 지역사회의 논의와 교육을 강화(장기적 차원의 접근이 중요함)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민족 차원의 대북지원/경제 협력/교두보 역할 등으로 참여확대를 통한 협력이 확대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남북관계의 발전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민주주의 체제가 질적으로 발전될수록 남북협상을 통한 장기적 돌파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결론

 

저는 가까운 독일에서 동서독 장벽으로 도시가 둘로 나뉘었던 베를린에서 살고 있습니다. 독일은 벌써 통일된 지 30년이 넘었지만 우리는 분단된 지 70년이 훌쩍 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독일이라는 통일국가의 역사는 (1871년 후) 약 100여 년에 불과한 반면, 한반도의 통일된 정치공동체는 668년 3국통일 이래 1300년이 넘습니다.

우리 두세 세대에 고통인 분단 70년은 어쩌면 통일 1300년에 비하면 짧은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일 독일은 역사에 특수인 반면 한반도 통일은 비정상이 정상화되는, 역사의 제 갈길을 찾는 것입니다.

독일의 정치학자 막스 베버는 "정치란 열정과 통찰력을 가지고, 강하고 꾸준하게 두꺼운 판자에 구멍을 뚫는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통일은 열정과 통찰력으로 무장하고 판자, 아니 철판이라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구멍을 뚫는 과정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서두에서 시작했던 세르반테스의 말로 오늘 강연을 맺을까 합니다. "모든 작품은 대체로 작가를 닮게 되어 있다." 오늘 한반도의 평화통일의 열망으로 강의를 경청하신 여러분이 그리고 민주화와 한강의 기적을 이문 대한민국 국민들을 닮은 (평화로운 한반도의) 미래를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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