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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은 위안부가 아니라, 이용수입니다”
최윤희  |  youloveme1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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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년 05월 12일 (금) 08:01:49
최종편집 : 2023년 05월 16일 (화) 11:02:22 [조회수 :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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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제 이름은 위안부가 아니라, 이용수입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4). 그녀의 삶은 굴곡이 많았다. 어느 누구도 그 삶의 아픔을 가늠할 수 없을 것이다. 열여섯 살 나이에 위안부로 끌려가 말도 안 되는 고통을 겪은 할머니의 삶을 그 누가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가족한테도 말하지 못하고 부모가 돌아가고 나서야 무덤 앞에서 말을 했다는 할머니의 기막힌 위안부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자.

글. 최윤희 │사진. 김행옥

 

   
 

내가 왜 위안부입니까?

“위안부, 위안부라고 두 번 말하면 참지만, 세 번 말하면 난 벌떡 일어서요. (왜요?) 더러워요. 내가 왜 위안부예요? 내가 왜 일본군을 따라다니면서 일본군을 즐겁게 해줬다는 겁니까? 그런 더러운 말이 어디 있어요? 나는 엄연하게 내 이름이 이용수이고, 엄마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왜 위안부입니까?”

할머니의 분노가 느껴지는 말이다. 할머니는 대중 앞에서 자신의 이름 앞에 ‘일본군 위안부’라는 수식어를 붙여 소개하지만, 그 말이 썩 마뜩잖은가보다.

 

많이 우울해요

할머니를 처음 만난 건 일본군 위안부 전시회가 열린 종로구 청운동 류가헌 갤러리에서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할머니의 첫인상은 정정해 보였다. 올해 아흔네 살인데도 허리가 거의 안 굽고 지팡이를 짚고 있었지만, 지팡이는 거들뿐 꽤 건강해 보였다. 인터뷰는 전시회를 둘러보고 나서 하기로 했다. 지하 1층과 2층에 그림과 영상이 전시돼있었는데 할머니들의 젊었을 때의 모습과 나이 든 모습이 다 있었다. 할머니는 사진 속 친구들이 너무 반가운가 보다.

“아이고, 김학순 할머니도 있고 김복동 할머니도 있네.”

사진을 둘러보고 할머니들의 증언이 틀어져 있는 스크린 속의 영상을 보면서 의자에 앉아 한참을 보기도 했다. 할머니에게는 다 아는 사람이고 아는 내용이지만 다시 한번 되새기는 듯했다.

전시회 관람을 마치고 2층에 올라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요즘 근황부터 물었다.

“많이 우울해요 즐거운 게 없어요. 내가 어딜 가면 잘 웃어서 사람들이 웃는 얼굴이라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런 소리를 거의 못 들어요. (왜 그럴까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우울해요.”

무엇이 할머니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

 

예민해진 할머니

할머니는 많이 예민해진 상태라고 한다. 할머니의 손과 발 역할을 하고 있는 사단법인 ‘정신대할머니와함께하는시민모임’의 서혁수 대표는 요즘 할머니의 상태에 대해서 이렇게 얘기한다.

“할머니가 문제 해결하고 싶은 집념도 있으시고 작년에 저희 행적을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일들이 잘 안 풀렸어요.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서 뭔가 해결이 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잘 안됐고, 새로운 대통령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할머니가 기운이 없고 우울하고 웃을 일이 없는가 보다.

사실 윤 대통령은 대통령 후보 시절 할머니를 직접 찾아가서 약속을 했었다.

“우리 할머니들 그동안 상처받았던 것 다 해결해드릴게요.”

윤 후보의 말에 너무 기쁜 나머지 할머니는 윤 후보를 껴안기까지 했다.

 

의욕을 상실하다

그런데 막상 대통령이 되고 나서 대통령의 말은 지켜지지 않았다. 한껏 기대에 부풀어있던 할머니는 약속이 이행되지 않자 모든 의욕을 상실하고 말았다. 윤 대통령의 말만 믿고 있었는데 이뤄지지 않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하는 부처인 여성가족부(여가부)가 폐지된다는 말도 나오자 희망은 점점 없어져 가는 듯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모멸감을 느끼는 일까지 겪었다. 지난 2007년 미국 하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하고 통과시킨 낸시 펠로시 미국 연방 하원의장이 방문했을 때 청와대에 가서 만나기로 했는데 국회 경호원의 과잉 경호로 인해 큰 부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그 충격으로 할머니는 양 손바닥이 긁히고 심한 정신적 충격을 입어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했다. 지금도 그때 그 후유증으로 다리가 불편하다고 한다.

 

이젠 대화할 할머니도 거의 없어요

이래저래 심리적, 육체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할머니는 거의 집에 없다고 한다.

“이러한 스트레스에다 삶에 대한 스트레스까지 겹쳐 집에 계시면 답답하고 더 우울해지니까 자꾸 밖으로 나오세요. 영화를 보시기도 하고 (영화를 좋아하시나요?) 좋아하신다기보다 영화를 보면서 꾸벅꾸벅 졸아도 그냥 보시는 거예요. 집에 있으면서 우울해하는 것보다 낫고, 영화 볼 때만은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으니까요. 이제는 위안부 할머니들도 거의 세상을 떠나셔서 11명밖에 안 남았는데 그나마도 대부분 알부민을 꽂고 계실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 대화상대도 거의 없으세요.”

현재 할머니는 요양보호사랑 같이 살고 있다. 그래도 덜 외로울 것 같다.

 

   
 

할머니 성격

“할머니가 평생 혼자 사셔서 남하고 사는 것이 익숙지 않으세요. 그래서 요양보호사가 계셔도 할머니가 하시는 것들이 많아요. 게다가 할머니가 좀 까다로우셔서 여행 간다고 하면 이틀 전부터 짐을 싸고 출발 한 시간 전부터 계속 저한테 전화하셔서 어디까지 왔느냐고 몇 번이나 물어보세요. 누구를 만난다고 하면 밤새도록 무슨 얘기할까 고민도 하시고 밤잠을 못 주무실 정도예요. 그래서 할머니 스케줄이 있으면 전날 말씀 안 드리고 당일 아침 식사하면서 말씀드리는 경우가 많아요.”

오늘 인터뷰도 오늘 말했냐고 물었다.

“아니에요. 미리 말씀드렸어요. 대답하실만한 질문이라 먼저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만약 즉답할 수 없는 질문이라면 미리 말씀드려서 준비하시게끔 해요. 할머니의 스트레스를 덜어드리기 위해 마련해낸 방법이죠.”

서 대표는 이런 할머니를 위해 인형 하나를 마련해주기로 했단다.

“(어떤 인형이죠?) 노래도 해주고 이야기도 해주고 이야기도 들어주는 인형인데 누가 한번 테스트 하겠다고 해서 할머니한테 시험 삼아 해보려고요. 어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그 인형 잡고 안 놓으신 분도 계셨대요.”

 

먹는 약만 10개

할머니는 약을 많이 먹고 있었다.

대부분의 노인들이 약을 한 움큼씩 먹긴 하지만 할머니의 경우는 더했다. 무슨 약이 그렇게나 많은지... 혈압약, 심장약, 변비약, 청심환, 치통약, 소화제, 감기약, 정형외과 약, 수면제, 공진단 등 10개 정도 됐다. 게다가 워낙 추위를 많이 타서 벌써 무릎에 ‘레그토시’를 양쪽에 신고 있었다.

기자는 할머니 집이 있는 대구에 내려가 하룻밤을 자게 됐는데 밤에 잘 때는 두꺼운 수면양말에, 전기요를 켜고 이불을 두 개나 덮고 잤다. 기자도 엄청 추위를 타는데 바닥에서 잔 기자는 괜찮았는데 할머니는 그렇지 않은 걸 보니 몸이 많이 상한 모양이다.

할머니는 자면서 자주 깼다. 화장실에 가려고 깨고 부스럭 소리에 깨고. 잠이 깨고 나서는 “왜 이렇게 밤이 기노?” 하면서 긴긴밤을 못 견뎌했다. 잘 때는 수면제를 두 알이나 먹고 잔다는 말에 괜히 마음이 저렸다.

 

여자가 나오래요

도대체 할머니는 언제 어떻게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걸까?

“어느 날 저녁이었어요. 잠자리에 누웠는데 잠이 안 오더라고요. 누워서 창문 쪽을 보고 있는데 어떤 여자아이가 들여다보고 있는 거예요. 깜짝 놀랐죠. 그런데 뒤에서 어떤 군인이 여자 목을 누르고 있는 게 보였어요. 내가 보니까 여자가 나를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어요. 무슨 일인가 하고 나갔더니 군인이 갑자기 등 뒤에 뭐를 대는데 그 상태로 대구역으로 갔어요.”

그게 대만으로 향하는 길인지도 모르고 멋모르고 따라나선 할머니는 그 길로 1년 반 동안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대구에서 출발한 기차는 평양, 중국 다롄, 상하이를 거쳐 최종목적지인 대만에 도착했다. 쉽게 갈 수 있는 길을 참으로 멀리도 돌아간 셈이다.

 

군인 팔을 물다

“저는 그때 배를 처음 타봤는데 얼마나 멀미가 나든지 머리도 아프고 토하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래서 거의 기다시피 해서 화장실에 갔는데 일어서려고 보니까 군인 구두가 보이는 거예요.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니까 못 나오게 하는 거예요. 억지로 나와서 제자리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계속 못 가게 해서 군인 팔을 물었더니 군인이 나를 발로 차고 어디론가 막 끌고 갔어요.”

그러다가 엎어졌다고 한다.

“너무 아프더라고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살려달라고 빌었어요. 그리고 얼마나 때리던지 엄청나게 맞았어요. 그때 맞은 상처가 지금도 이렇게 흉터로 남아있어요.”

옷을 걷고 흉터를 보여주는데 배꼽 오른쪽으로 깊게 파인 자국이 있었다.

그리곤 머리를 세게 얻어맞고 정신을 잃었다.

“언니들이 내가 안 오니까 찾아다니다가 피투성이가 돼서 쓰러져있는 나를 발견하곤 데리고 와서 담요로 덮어주면서 절대로 담요 들지 말라고 했어요. 왜 그런지 몰랐죠. 궁금해서 살짝 담요를 걷고 보니까 일본 군인들이 언니들한테 막 달려드는 거예요 그때까지도 왜 군인들이 달려드는지 몰랐어요.”

열여섯 나이에 그런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 어린 소녀는 얼마나 충격이 심했을까.

“그 얘기하면 막 되새겨져서 마음이 무척 쓰리고 아파요.”

 

반항하다

할머니의 대만 생활은 어땠을까. 묻기가 많이 조심스러웠다.

“위안소는 복도가 있고 오른쪽은 큰방, 왼쪽은 한 칸씩 조그마한 방 5개가 있었어요. 무서워서 떨고 있는데 일본군이 오라고 하는 거예요. 가기 싫은데 언니들이 말 들으라고 해서 방 쪽으로 가서 방문을 여니까 일본 군인이 앉아있는 거예요. 너무 무서워서 안 들어간다고 하고 나오는데 군인이 내 머리를 잡고 어디론가 가더라고요 자물쇠를 뜯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곳간인 것 같았어요. 큰 테이블과 작은 테이블이 하나 있었어요. 저를 안으로 밀어놓고 테이블 앞에 저를 세워놓더니 머리채를 잡고 허리를 세게 발길로 차는 거예요. 얼마나 아프던지 눈물이 날 정도였어요. 죄도 없는데 살려달라고, 잘못했다고 엄청 빌었어요. 칼로 허벅지와 배를 긋고 손에다 뭘 감더니 전기충격을 가하더라고요. 온몸이 찌릿찌릿했어요. 앉았는데도 땀이 주르륵 흐를 정도였어요.”

 

606호 주사

군인은 나와서 언니들한테 이런 얘기를 했단다.

“아이 너무 어리더라” “죽었으면 내가 묻어줄게”

“언니들이 저한테 와서 자물쇠를 뜯고 저를 데리고 나왔어요. 언니 방으로 데리고 가서 담요도 덮어주고 약도 갖다주고 건빵 같은 것도 갖고 왔던 것 같아요.”

할머니는 606호 주사도 맞았다고 한다. 위안부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야전병원’에서 성병 검사를 했는데 성병에 걸린 소녀는 어김없이 606호 주사를 맞았다고 한다. 이 주사는 매우 뜨겁고 아팠다고 한다. 606호 주사의 정식 명칭은 ‘살바르산’인데 매독, 회귀열 등에 효과가 있어 과거에 널리 사용됐는데 불임의 원인이 되는 등 부작용도 심하다고 한다.

 

   
 

차라리 오지 말지

1945년 5월 드디어 할머니는 고국 땅을 다시 밟았다. 못 밟을 것만 같았던 그리웠던 고국 땅. 보고 싶었던 엄마 아버지 오빠 남동생. 대만으로 끌려간 지 1년 반 만이었다.

“집 문 앞에 서니까 우리 아버지가 뒤로 넘어가시더라고요. 엄마는 나를 귀신 본 듯 놀라서 믿지 못하는 눈치였어요. 믿기지 않아서 나를 귀신이라고 생각하신 엄마는 ‘니가 이렇게 죽어서 귀신이 돼서 올 줄은 몰랐다’ ‘차라리 오지 말지’하셨어요.”

엄마는 연락 한번 없던 딸이 돌아와서 멀쩡히 눈앞에 서 있으니 너무 놀라고 당황스럽고 해서 그렇게 행동한 것이다. 그렇지만 얼마나 반갑고 꿈만 같았겠는가.

 

무덤 앞에서 말하다

피해사실을 알린 건,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 신고하고 나서야 비로소 돌아가신 부모님 무덤 앞에서 말했다.

“배 타고 기차 타고 갔는데 거기 군인들이 많더라. 일본군인들이...”

할머니는 말을 잇지 못하고 엉엉 울었다.

“부모님이 말씀이 없으시데요. 아무 말씀이 없으시더라고요. 계셨으면 우리 엄마는 가슴을 치며 통곡했을 거예요. 엄마는 살아계실 적에 내가 그런 얘기를 했으면 우리 엄마는 못 살았을 거예요. 같이 죽자고 하면서...”

 

피해자 신고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사실에 대해 가족은 물론 어느 누구한테도 말하지 못했다.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밖에도 못 나갔다고 한다.

이런 할머니가 무슨 용기가 생겨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신고를 한 걸까?

“김학순 할머니가 먼저 신고를 했어요(1991년 8월 14일). 그래서 저도 용기를 얻고 그다음 해 6월 25일에 신고를 했죠.”

친구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친구들이 전화해서는 ‘봐라봐라! 여기 와봐라! 너 티브이에 나왔다’ 하는데 내가 막 미치겠더라고요. 내가 막 울면서 ‘그래그래 나도 끌려가서 당했다. 내가 그랬다’ 부끄럽고 미안하고 막 겁이 나고 못 견디겠더라고요. 전부 다 그 사실을 알아버렸으니 어떻게 해요. 죽어버리고 싶은 생각밖에 없던데...”

 

   
 

누가 이 속을 알겠소?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신고를 하고나서 정말 열심히 활동했다. 할머니가 이뤄낸 업적은 대단했다.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도 나왔고, 미국 하원에서 ‘위안부 결의안’도 통과시키고, 일본 도쿄 여성국제전범법정에서 증언도 하고, 유엔본부 초청 세계 여성의 날에 기자회견도 하고, 세계여성의 날 프랑스 하원 의사당에서 위안부 증언도 하고, 유엔 일본외교부에 항의 서한 전달도 하는 등 정말 많은 성과를 냈다.

그런데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사실을 신고한 것이 후회되나 보다.

“나는 김학순 할머니가 밉더라고요. 뭐 하려고 그런 과거 얘기를 했나 싶은 게 말하지 않았으면 나는 그냥 살았을 텐데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한 할머니가 갑작스레 왜 이런 말을 한 걸까?

“김학순씨, 아무리 아픔을 알고 안다고 해도 당신이나 알고 내가 알지 누가 이 속을 알겠소? 아무리 아프다고 해도 우리만큼 아프겠어? 니 마음 내가 알고, 내 마음 니가 알지요. (남들이) 정말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렇지요?”

요즘 여러 가지로 일에 진전이 없으니까 김학순 할머니 사진 앞에서 신세한탄을 하는 거다. 같이 활동하며 대화를 나누던 친구 같은 김학순 할머니가 없으니까 더욱 외로운가 보다.

 

너 여태까지 뭐 했노

수요집회하면 이용수란 등식이 성립될 정도로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상징이 되었다. 할머니가 수요집회에서 외치는 소리를 들으면 정말 열사 같기도 하다.

“거짓은 밝혀지게 마련입니다. 진실은 밝혀지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이길 수 있습니다.”

다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많이 봤지만, 할머니는 그분들보다 많이 정정했다. 그 이유가 이렇게 활동을 열정적으로 하고 간절한 소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제 평생소원은 ‘위안부 문제 해결’입니다. 해결을 하고 하늘나라를 가야 할 말이 있잖아요. 해결도 못 하고 가면 제가 뭐라고 이야기하겠어요? ‘너 여태까지 뭐 했노’라고 하면 제가 할 말이 없잖아요.”

아, 할머니의 동력은 이거였구나. 그래서 기를 쓰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수요집회에 나가서 그 자리를 꿋꿋하게 지켰구나...

 

이용수는 가짜 위안부다?

할머니의 열정을 무너뜨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미디어워치TV’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변희재씨는 자신의 채널에 패널로 나온 김병헌 국사교과서연구소장과 함께 ‘횡설수설 이용수! 일본군 위안부가 아니었다!’(2021.2.8.)란 제목으로 50여 분 가까운 시간을 할애하면서 ‘할머니가 가짜 위안부’라는 주장을 했는데, 할머니가 ‘평범한 매춘부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말까지 해서 할머니의 명예를 실추시켰다.

게다가 방송인 김어준씨는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윤미향 전 이사장이 기부금 유용 등 관련 의혹이 있을 때 할머니가 관련 기자회견(2020년 5월 25일)을 했는데, ‘기자회견문 배후설’을 언급해 할머니를 분노하게 했다.

“누군가 자신의 입장을 반영한 왜곡된 정보를 할머니에게 줬다.”

“그 연세 어르신이 쓰지 않는 용어가 많아서 이용수 할머니가 회견문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 명백하다.”

사실 기자회견을 할 때는 주요 인사들도 연설비서관이 따로 있어서 연설문을 대신 써준다. 할머니도 중요한 기자회견을 앞두고 연설문을 다른 사람이 썼다. 워낙 이 당시 ‘윤미향 사건’은 사회적 이슈가 컸기 때문에 연설문을 맡긴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할머니가 기자회견장에 연설문을 들고 나가긴 했지만, 하나도 안 보고 할머니 말로 연설을 했다는 것이 서혁수 대표의 전언이다.

 

불편한 시선

할머니가 그렇게 열심인 수요집회에서도 할머니를 힘들게 하는 일이 있다고 한다.

“제일 괴로운 게 수요집회에 나와서 앉아 있는 거예요. 왜 내가 이렇게 앉아있어야 하나 싶어요. (왜요?)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다 쳐다봐요. 어떤 사람은 히히 웃고 가는 사람도 있어요. 나라면 가다가도 이렇게 와서 고개라도 숙이고 가든지 할 텐데, 독사 대가리 마냥 고개를 바싹 들고 히히덕거리며 가는 거를 보면 ‘에라 이 나쁜 놈아’ 싶은 생각이 듭니다.”

정말 온 힘을 다해 부르짖는 할머니에게 힘을 실어주면 얼마나 좋으랴. 사람 마음이 다 똑같지 않으니 어떻게 하겠느냐마는 박수는 쳐주지 못할망정 할머니의 의욕을 떨어지게 만드는 일은 안 하는 게 어떨까.

 

200살짜리 살 겁니다

“시위하는 데는 일본 카메라가 있어요. 일본대사관 앞에. 우리 시위 끝나면 돌리고, 시위할 때는 지켜보고 있어요. 카메라로 지켜보면서 ‘아, 저 노인 보니까 말이지. 이제 힘도 없고 죽을 때가 다 되었구나’ 이렇게 좋아합니다. 그래서 죽을힘을 다해 절대로 거기서 내색 안 합니다. 난 당당하게 외쳐요.”

할머니는 200살까지 살면서 투쟁을 계속할 거라고 한다.

“할머니들이 죽기만 기다리는 이 더러운 인간들 앞에서 우리는 죽지 않을 겁니다. 나는 200살까지 살 겁니다. 200살까지 살아서 저들이 먼저 죽는 걸 내가 볼 겁니다. 그게 전부 다 세계적으로 소문이 나 있거든요. 미국 가서도 말했고, 일본 가서도 말했고. 일본 가면 으레 내가 200살까지 사는 줄 알아요. ‘아, 200살 사는 할머니 왔구나’ 한다고요. 내가 200살을 살아야 일본하고 끝을 내지.”

 

할머니, 힘내세요

원래 할머니는 ‘러브스토리’ 같은 로맨틱한 영화를 좋아하고 친구들이 할머니가 없으면 재미없어할 정도로 유쾌한 사람이었다. 흥도 많아서 기분이 좋으면 춤도 추고 노래도 잘 부른다. 여러 가지로 우울하신 할머니를 위해 우리가 할 일은 없을까?

“(정권이 바뀌어도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기자들이나 정부에서 되도록 희망적인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어요. 안 되는 거 알지만 한마디라도 ‘할머니,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요. 내가 운다고 해서 같이 울면 안 되지. 그때는 자기가 웃어줘야 하는 거고, 힘들지만 힘내라고 얘기해줬으면 좋겠어요. 힘이 나게.”

할머니는 아직 상처로부터 치유가 안 됐다. 너무 깊은 상처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할머니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교황이 준 묵주(할머니의 종교는 천주교다)를 목에 걸고 간절히 기도한다. “도와달라”고. 할머니는 우울하다고 말하지만,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서혁수 대표도 그렇고 요양보호사도 그렇고 서울에 있을 때 데리러 오라고 하면 올 수 있는 대구의 양아들도 있고... 그분들이 있기에 할머니가 잘 버텨나가고 있는 것 같다. 전국에 양아들, 양딸들이 많아서 행복한 할머니에게 늘 힘이 되는 일들만 많이 생기길 기원한다.

“할머니,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이 기사는 계간 ‘치유’ 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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