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찬양사역자 브라이언 킴의 인생 스토리고3때 예수님 영접하고 ‘소울브로즈’의 대표가 되기까지 인생 스토리
최윤희  |  youloveme12@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3년 04월 27일 (목) 18:12:37
최종편집 : 2023년 05월 02일 (화) 21:28:05 [조회수 : 1999]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열정 인터뷰

‘주가 일하시네’의 찬양사역자

브라이언 킴

고3때 예수님 영접하고 ‘소울브로즈’의 대표가 되기까지 인생 스토리

 

‘주가 일하시네’로 잘 알려진 브라이언킴. 그는 이곡을 발표한 후 잠시 사라지게 된다. 그 이유를 여기에서는 밝힐 수 없지만, 현재 시련을 극복하고 비영리단체인 ‘소울브로즈’를 설립해 후배 찬양사역자들을 양성하는 일을 하고 있고, 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가수인 ‘돈 모엔’과 듀엣 앨범을 발표하고, 앞으로 열방으로 진출하고 싶다는 소망까지 그의 사역은 넓게 펼쳐져있는데 할 말이 너무 많아 세 시간의 인터뷰도 부족했던 그와의 인터뷰 내용을 지금부터 공개한다.

글. 최윤희/ 사진. 브라이언킴 제공

 

   
 

‘댄디한’ 모습의 브라이언킴

기자가 브라이언킴을 만나러 간 날은 그가 합정역에 있는 ‘가온스테이지’ 공연장에서 정기예배인 ‘더 워십 플레이스’를 하는 날이었다. 인터뷰 시간을 살짝 넘긴 시간에 그는 댄디한 모습으로 카페에 들어섰다.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목사님?”하는 거다. 기자는 한눈에 알아봤다. 방송매체를 통해 그를 이미 접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기자가 그를 처음 본 것은 CBS TV ‘새롭게 하소서’를 통해서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진행자를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는 등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의 이야기를 재미나게 풀어놓았다. 그래서 굉장히 인상적으로 그 프로그램을 본 기억이 있다. 평일 합정동의 낮 카페 안은 음악소리로 시끄러웠다. 다른 때 같았으면 음악이 기분 좋게 들렸건만 이날은 녹음도 해야 하고 노트북으로 워드도 쳐야하는 등 작업을 해야 했기에 음악 소음이 많이 신경이 쓰였다. 브라이언킴에게 얘기를 하자 그도 귀가 나쁘다며 자리를 옮기자고 해서 지하 1층에 있는 가온스테이지 공연장으로 옮겨 조용한 가운데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소울브로즈’ 대표, 돈 모엔과 듀엣 앨범 발표

먼저 요즘 근황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우선 오늘 저녁 7시에 여기에서 ‘더 워십 플레이스’ 정기예배를 드려요. 작년 12월부터 시작을 해서 오늘이 벌써 9번째 예배예요. 그리고 제가 양재 시민의 숲 근처에 ‘소울브로즈’라는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면서 찬양사역자를 양성하고 영상제작과 공연기획 등을 하고 있어요. 또 이번 달에(5월 23일) ‘나의 모습 나의 소유’를 만드신 돈 모엔(미국의 싱어송라이터이자 가수)과 듀엣 앨범을 내요.”

다들 코로나로 인해 찬양사역도 끊기고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있던 터라 브라이언킴도 그런 축에 끼지 않을까 다소 걱정하며 질문을 했는데 사역이 많은 것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었다.

그는 벌써 후배 찬양사역자를 양성해서 음반시장에 내놓았다. 래퍼 ‘포디퍼’인데 벌써 싱글 앨범 2장을 발매했고 현재 찬양사역 관계자들이 크게 주목을 하고 있는 올해 스물한 살의 젊은 찬양사역자이다. 브라이언킴은 포디퍼와 함께 다니면서 찬양사역을 하고, 뮤직비디오도 개인 돈을 들여서 만들어주고, 같이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하고 자신의 정기예배인 ‘더 워십 플레이스’에도 세우는 등 후배 찬양사역자를 세우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그가 이렇게 후배들을 키우는 이유가 무엇일까?

“제가 G2G 밴드로 데뷔를 하고 가요 앨범도 내고 기획사에 사기도 당해보고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후배들을 위한 장을 마련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소울브로즈’를 설립하게 된 것이고 이곳을 통해 후배들이 저와 같은 안 좋은 일들을 당하지 않게 돕기 위한 것입니다.”

 

고3때 연합수련회에서 처음 예수님 영접

데뷔 당시 재미교포 2세 찬양사역자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그가 ‘크라이젠’으로 데뷔했을 때 기획사 대표로부터 사기를 당하고 이후에 고난들이 찾아오고 하나님을 떠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됐는데 그의 과거 얘기들이 궁금했다. 언제 예수님을 영접한 걸까? 브라이언킴은 한국에선 네 살까지 외할아버지 손에서 키워지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간 엄마, 아빠에게로 갔다. 그러고 나서 대학교 1학년 때까지 미국에서 자랐다.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교회에서 열린 청소년 연합수련회에 참석했는데 그때 예수님을 만났어요.”

그때까지 그는 믿음이 좋았던 엄마를 따라 철야기도회를 다니고 주일예배를 드리는 정도에 불과했는데 그 연합수련회를 기점으로 해서 그는 완전히 딴사람으로 변했다.

“수련회에서 ‘나 주님의 기쁨 되기 원하네’ 찬양을 은혜 받으면서 부르고 있었어요. 그런데 성령님이 저를 처음 만나 주신 거예요. 그날 성령님이 저한테 ‘나, 너 너무 사랑하고, 네가 지금까지 나를 위해 기쁘게 살지 않았던 거 알고 있다.’며 내 죄를 보여준 거죠. 죄를 알아야 주님을 만나는 거니까.. 그냥 그 십자가가 나 때문이었구나.. 내 죄 때문에 예수님이 못 박혀 죽은 거구나.. 내 죄가 예수님을 못 박게 한 거구나... 그때 하나님이 저를 용서하시는 게 느껴졌고 많이 깨달았어요. 설교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 목사님이 한국말로 설교를 하시는데 그때 저는 한국말을 잘 못했거든요. 은혜라든지 십자가라는 단어밖에 몰랐을 때였어요.”

 

 

   
 

‘빛 되신 주’가 유명해지면서 ‘한국행’

이후 브라이언킴은 예수님을 진정으로 영접하고 대학(텍사스 주립대학교 영문과)에서 G2G 밴드를 만들어서 활동을 하면서 앨범도 만들고 앨범에 수록된 곡인 ‘빛 되신 주’가 유명해지면서 한국까지 오게 되었다.

“‘빛 되신 주’가 유명해지면서 한국에서 찬양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풀타임 사역까지 하게 되면서 대학 졸업장을 코앞에 두고 한 과목만 이수하면 되는데 그걸 포기하고 한국엘 왔어요.”

집안에서의 반대가 심했다. 한 과목만 이수하면 눈앞에 미국 대학 졸업장이 생기는데, 그것도 집안에 최초로 미국 대학 졸업장인데 그걸 다 포기하고 한국에 와서 고생길이 훤한 찬양사역자의 길을 걷는다니 아무리 믿음을 갖고 있는 부모라 하더라도 찬성할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불타는 열정을 막을 길이 없었던 그의 부모님과 제일 반대가 심했던 외할아버지는 그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그의 앞길을 축복해주는 수밖에 없었다.

 

‘번아웃’이 오다!

그러나 그는 G2G 밴드 활동을 하면서 그만 번아웃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시작한 사역이 그만 ‘일’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말씀을 배우는데 내가 순종하는 게 어려운 것 같은 거예요. 어떤 부분은 순종하고 어떤 부분은 순종하지 못하고.. 저도 제안에 정리가 안 되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하나님께 너무 미안하고 번아웃이 되는 거예요. 그때 잠시 사역을 6개월 정도 내려놓은 거 같아요. 제가 활동하던 선교단체에서 나오려고 했는데 리더 중 한 명이 마지막으로 멤버 겨울 수련회에 참석하라는 거예요. 저도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갔는데 저녁 기도시간에 무릎 꿇고 기도를 하는데 성령님이 만져주시는 거예요. 피터라는 예배인도자가 있었는데 그 친구한테 고백을 했어요.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사역을 하는데 나는 아직도 죄를 짓는 부분이 있다. 내가 제대로 된 사역자가 되지 못해서 부끄럽다.’ 이 고백을 하는 순간 성령님이 저를 회복하시는 거예요. 이 부끄러웠던 나의 모습을 내 친한 동역자에게 얘기하니까 그동안의 무거운 짐이 사라지고 그 친구도 본인의 아픔과 죄를 고백하는 거예요. 알고 보니 둘 다 비슷하게 힘들었던 거예요. 그날 밤 서로 껴안고 3시간 동안 울면서 기도했는데 저는 아직도 그날이 생각나요. 그걸로 하나님께서 새 힘을 주셨고 그걸로 제가 한국 와서 G2G 밴드 사역도 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여기까지 지치지 않고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해요.”

 

가요 기획사에 사기 당하기도..

그러고 나서 한국에 와서 G2G 밴드 활동도 열심히 하고, 가요 기획사에 들어가서 앨범도 내는 등 활발하게 활동을 했지만 가요 기획사 대표가 그에게 사기를 치는 바람에 1년 동안 돈 한 푼 못 받고 기획사를 고소할 생각도 못하고 그냥 나와 버렸다. 왜 똑똑한 머리를 갖고 있는 그가 계약서에 있는 내용들을 들이대며 기획사 대표를 고소할 생각도 못하고 어찌 보면 바보처럼 그냥 나왔을까? 그때를 생각하면 속상하지 않을까?

“그때 당시에는 제가 몰랐어요. 그런 거를 잘 몰랐어요. 그게 벌써 2009년도예요. 그리고 저 말고도 많은 음악 하는 분들이 그런 거에 대해서 잘 몰라요. 그런데 저는 그 시간들이 너무 감사했어요. 어차피 제 돈으로 앨범 하나 만들려면 그때 당시 2천만 원 정도 들었는데 돈이 없어서 못 만들잖아요. 그리고 일반 방송에도 못 나가잖아요. 그리고 그분은 결국에는 망했고 저는 지금 회사 대표잖아요.”

세 시간 가까이 그와 긴 인터뷰를 하다 보니 그는 매사에 그랬다. 어찌 보면 정말 바보 같은데 또 어찌 보면 예수님을 닮은 것이 ‘착한 순둥이’ 같았다. 그렇게 사기를 당하는 와중에도 그는 감사한걸 먼저 찾는 사람이었다. 그는 천성이 착한 사람인 것 같았다. 아니 예수님이 그의 삶의 머리를 그렇게 바꿔주신 것 같기도 하다.

 

   
 

말 버벅거림이 심해 ‘스피치 테라피’를 다니기도...

그의 지금 외모는 키 182cm에 슬림한 외모를 갖추고 있지만 원래 그의 모습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고 한다. 영화 ‘미녀는 괴로워’의 주인공 여자의 모습?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교 영문과 졸업(졸업은 후에 연세대 교환학생을 하면서 했다), 일반 방송에 출연해서 실시간 1위까지 하면서 유명세도 맛보았던 그가 부족한 것이 없을 것 같은데 콤플렉스가 엄청 많았다고 한다. ‘콤플렉스 덩어리’였던 그의 과거사를 들어보자.

“제가 원래 말을 버벅거리는 습관이 있었어요. 그래서 병원까지 갔었어요. ‘스피치 테라피’라는 곳이요. 그런데 제가 대학교 때 청소년 사역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책도 많이 읽고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도 거울보고 연습하고 G2G 밴드 활동을 하면서는 간증을 A4용지에 다 적어서 연습하고 농담 같은 것도 누구한테 물어봐서 해보고 버벅거림에서 벗어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G2G 밴드 활동을 하면서 20년 전인가 배화여중에서 사역을 하는데 저보고 간증을 하라고 하는 거예요. 한국말로 10분 정도 했는데 그게 너무 반응이 좋았던 거예요. 그리고 미국에서 우리 찬양팀 안에서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제가 얘기를 하니까 찬양팀원들이 막 웃고 은혜받고 해서 내가 이런 달란트가 있나 하고 그때부터 좀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몸무게가 110kg을 넘다?

게다가 그는 지금 슬림하지만 20년 전에는 몸무게가 110kg이 넘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뚱보’였던 것이다. 근데 어떻게 이렇게 살을 뺄 수 있었을까?

“미국에 살면 외모에 대한 생각은 별로 안 해요. 하루에 5개씩 먹었던 거 같아요. 햄버거도 먹고 밥도 먹고, 먹고 싶은 대로 다 먹었어요. 주님을 만나고도 그렇게 외모 신경 안 썼어요. 저는 영성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나님이 살 때문에 사용하시고 안 하시고 하시지는 않잖아요. 하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거지.. 그런데 재미있는 게 한국에 왔는데 저는 한 번도 주님을 만나고도 살빼야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청소년 사역을 하고 문화사역을 하면서 제가 너무 준비 안된 모습이 느껴지는 거예요. 살찐 것뿐만 아니라 노래도 그렇고 무대 매너도 그렇고.. 뭔가 전문적인 게 너무 부족한 거예요. 그래서 ‘내 관리가 필요하지 않을까’해서 그때 깨달은 게 ‘살 빼고 연습하자’였어요. 6개월 동안 텍사스에 가서 매일 러닝머신 뛰고 식단관리도 했어요. 맥도날드 가도 칼로리 낮은 거만 시키고.. 그런 식으로 제가 비주얼 관리를 했어요. 국내 가요팀 중에서 god를 보면서 러닝머신을 뛰었는데 ‘내가 언젠가는 저들처럼 될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운동했어요. 그전까지 저는 오직 성경, 오직 말씀, 오직 영성, 오직 양육이었는데 이때부터 처음으로 눈이 열리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 처음으로 염색도 하고 귀걸이도 하고.. 근데 저는 이게 연예인이 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더 쓰임 받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그렇게 한 거예요.”

이렇게 해서 약 30kg을 빼다 보니 너무 많이 빼서 한국에 왔는데 친척들이 못 알아볼 지경이었다고 한다.

“1년 뒤에 한국에 왔는데 공항에서 다들 못 알아보시는 거예요. 작은 엄마도 저한테 인사를 하시는 거예요. ‘안녕하세요?’하고요.”

살을 빼고 났더니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지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제가 사역을 하는데 반응이 좀 다른 거예요. 이제는 예전의 뚱보 브라이언킴이 아니니까 완전 다른 세상인 거예요. 진짜로 제가 문화사역자나 가수가 될 수 없는 존재인데.. 제 고향 사람들은 다 알죠. 예전의 저의 모습을. 그래서 다 안 믿는데.. 이렇게 돼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으니 그게 은혜인 거죠. 저는 하나님을 위해서 연예계에서 활동을 하든 찬양사역을 하든 정말 주님께 제 삶을 드리고 싶었고 영혼을 전도하고 싶었어요.”

 

대학교 3학년 때 70명의 아이들을 양육?

그의 간증이나 ‘더 워십 플레이스’의 정기예배를 보다 보면 그가 찬양사역자인지 목사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 안에 말씀이 풍성하기 때문이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마다 성경말씀이고, 그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성경책이 나오고 기도하는 손이 나오고 찬양사역자란 타이틀이 있기 때문에 그런 이미지가 들어가지 않아도 충분히 그의 정체성을 알 수 있으련만 그는 굳이 그런 것들을 넣는다. 그 이유가 그의 이야기들 중에서 나왔다.

“대학교 때부터 정말 열심히 다음세대를 위해 사역했어요. 주말마다 우리 학교에서 왕복 3시간 반 거리의 ‘킬린’이라는 도시가 있는데 거기에서 많은 아이들을 양육하고 기도해주고 찬양 공부를 시켜줬어요. 나중에 몇 년 뒤에 대학교 3학년 때 저희 고향 샌안토니오에서 오스틴이 왕복 2시간 거리밖에 안되는데 제가 70명의 아이들을 매주 두 번이나 예배 인도를 하면서 설교와 찬양, 기도, 상담까지 다 했어요. 거기 있는 교회 목사님이 저를 전적으로 믿고 맡겨주셨거든요. 저는 영문과이고 신학생도 아닌데 제 마음에 하트(마음)가 있으니까 그걸 보시고 목사님들이 저에게 맡기신 거예요.”

이런 사역을 4년 동안 하다 보니 G2G 밴드를 통해서 한국에 올 때 하기 싫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의 열정은 글 쓰고 말씀과 양육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한때는 그의 꿈이 목사이고 작가였다고 한다.

“세월이 많이 지났는데 지금 시대에 저는 목회하고 있는 것 같아요. 목회자의 마음과 사명으로 문화로, 찬양으로, 제작으로, sns로, 양육으로 복음을 전하고 복음의 전도자들을 키우는 게 목사인데 제가 지금 그 일을 하고 있잖아요.”
그가 잠시 주님을 떠나고 힘들었을 때도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킬린’에서의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성경을 배우고 신앙서적을 많이 읽고 주님 앞에서 눈물로 기도를 드렸던 그 시간들이 없었으면 사실 이렇게 돌아올 수 없었을 거예요.”

 

   
 

그에게 고난과 치유란?

그랬다. 그는 그때 그 기억을 오래도록 기억하면서 고난과 상처들을 씻어내며 시련들을 잘 이겨내고 있다. 그에게 고난이란 무엇일까?

“저한테 고난은 힘들고 돈이 없고 협박받고 상처받고 그런 것도 고난이에요. 하지만 저한테 진짜 고난은 내가 모든 걸 다 누렸을 때 주님이 없는 거.. 엄마와 아빠가 하시던 슈퍼마켓이 너무 장사가 잘 돼서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니고.. 전 그때 다 누렸었어요. 근데 저는 그때 하나님을 몰랐어요. 그게 고난이더라고요. 저한테 고난은 기획사에서 사기당할 때가 아니었고 지하에서 몇 평 안 되는 공간에서 살면서 고생했을 때도 고난이 아니었고 오히려 그때 제일 행복했었죠. 그때 주님이 나와 함께 하셨거든요. 저는 눈물을 흘릴 때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에요. 힘들 때 울지 않아요. 많은 사람이 저를 오해해요. 집회 때 많이 우니까. 근데 저는 힘들어서 우는 게 아니에요. 진짜 고난은 주님이 없는 순간들이에요.”

그의 고난에 대한 정의를 듣고 나니 마음의 감동이 밀려왔다. 이렇게까지 고난을 해석하는 사람이라니 그의 영성이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그에게 있어 치유란 무엇일까? 이번에도 그의 대답이 기대가 됐다.

“치유가 그(고난)의 반대겠죠? 우리가 일상 속에서 예배뿐만 아니라 버스를 타고 가다가 그리고 힘든 상황 속에서 주님을 느낄 수가 있으면 반드시 이겨낼 수 있거든요. 주님을 느낄 수만 있다면 그게 기독교잖아요. 치유라는 거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겠죠. 저는 룻기 말씀을 좋아하는데 나오미의 남편이 죽고 아들 둘이 다 죽잖아요. 그런데 룻은 그 나오미를 붙들잖아요. 나오미를 따라가서 일하다가 당연히 힘들 법도 한데 거기에서 치유가 일어났던 이유가 보아스라는 사람을 만난 거고 보아스가 예수님이잖아요. 종들에게 뒤에서 룻을 돌봐주고 보호해주고 이삭을 다 뽑지 않게 했던 것도 다 룻을 위한 것이었고 더 호의롭게 은총을 베풀어주라고 했고.. 제가 지금 그렇게 살고 있거든요. 제가 룻이에요. 하나님이 항상 함께 했고 결국에 룻은 다윗의 증조할머니로 이방인이지만 유대인도 못 누렸던 영광스러운 일들을 누렸잖아요. 그게 치유의 과정인 거 같아요.”

보아스가 예수님이라는 해석이 기가 막혔다. 참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능력이 남달랐다. 그의 이러한 영성은 ‘킬린’에서의 경험과 매일 드리는 가정 철야기도를 통해서도 쌓인 것 같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 그만의 정의를 내렸다.

 

열방으로의 사역 확장이 비전

“하나님은 아버지예요. 아버지는 내가 무엇을 해도 저는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인 거예요. 내가 성공했다고 아버지의 자녀인 것도 아니고 그냥 나 존재 자체가 아버지 아들인 거예요. 아버지는 저를 늘 기다렸고 그런데 저는 오히려 기다리지 못했고 그런데 그런 저를 신실하게 여겨주시고 안아주시고 올려주시고 같이 춤추게 해 주시는 내 아버지예요.”

브라이언킴은 신실한 하나님의 일군이었다. 하루하루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기쁨으로 그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때가 되면 ‘소울브로즈’를 통해서 그가 키우는 후배 찬양사역자들과 함께 열방으로 나가고 싶다고 바람을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더 높이 날아오를 그의 미래를 보게 되었다.

 

<이 기사는 계간 ‘치유’ 에 실렸습니다>

   
 

-1구좌에 10,000원
-후원비는 <치유> 잡지 제작비로 사용됩니다.
-정기구독 신청계좌 신한은행 110-541-777944 (예금주:최윤희)

정기구독자가 되시면
-<치유> 잡지 선교사역에 동참하게 됩니다.
-발행과 동시에 어디서나 편히 책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오프라인 구매-광화문, 목동, 잠실, 천호, 일산, 평촌, 인천, 대구, 울산
온라인 구매-인터넷 교보문고(‘계간 치유’로 검색)와 쿠팡(‘계간 치유’, ‘치유 잡지’로 검색) 등

https://blog.naver.com/yunhichoi1/223082137122

‘치유’ 잡지 블로그 주소
값 5,000원

최윤희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44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