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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예수목회 세미나 안내1월 22일(월) 오후 2시- 24일(수) 11시, 전주 한일장신대학, 한기연주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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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1월 06일 (토) 00:00:00 [조회수 : 2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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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예수목회 세미나 안내문 및 등록신청서


한국기독교연구소와 예수 아카데미가 공동 주최하는 제3회 예수목회 세미나를 다음과 같이 개최합니다.

주제: <예수 목회>로 나의 신학 세우기
일시: 2007년 1월 22일(월) 오후 2시- 24일(수) 11시
장소: 전주 한일장신대학     후원: 전주강림교회(양인석 목사)
참가 예상 인원: 약 35명     참가비: 10만원.             등록마감일: 1월15일

1. 강사진
한인철 박사(연세대학교 교목실장, 조직신학 전공, 감신대, 드류대학교 Ph.D.)
-- <속세에서 경험한 기독교 언어>
박원일 박사(SFTS 객원교수, 성서학 전공, 프린스톤신학대원, 클레어몬트대학원 Ph.D.
-- <성경의 일관성 & 다양성>
김준우 박사(한국기독교연구소 소장, 윤리학 전공, 서강대학교, 드류대학교, Ph.D.)        
-- <생명목회의 신학 구상하기>
홍정수 박사(예수 아카데미 소장, 한아름교회 담임, 에모리대학교 Ph.D.)
-- <삼위일체론을 내 목회신학으로 만들기>

2. 참가 대상: 목회자, 정기 설교자.
3. 세미나 내용 안내:  
<출발점> 목회자는 신앙인이요 또한 이미 신학자다. 단지 자신의 신학을 확연히 규명하고 있지 못할 뿐이다.
<문제의 원인> 근대(모던)신학교육 패러다임의 한계
<문제의 결과>1) 기독교 메시지가 말이 안 된다 (예수의 삶은 우리가 따를 수 있는, 따를
                     이유가 있는,  아름다운 범례가 못 된다).
             2) 성공한(?) 목회자 노후에 엉뚱한 처신, 성공 못한 목회자, 자괴감의 포로,
             3) 기독교 인구의 감소
<문제 극복의 실마리>
        1) 성경에 대한 역사적 접근은 성경 앞에서 우리를 자유하게 한다.
        2) 성경과 도그마라는 신앙 언어의 특징을 조금만 알게 되면, 성경과 도그마의  진의가 보인다.
        3) 지난 25년 간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에 대한 엄청난 연구 결과가 출판되었다.
        4) 엔드 유저(복음의 실수요자)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으면, 신학이 다시 보인다.
        5) 사회학자들조차 예수의 복음의 진가를 알아차리고 있다!

4. 참여자가 얻는 것
        1) <나의 신학하기>를 익힌다.
        2) 목회자/설교자의 권위와 자긍심을 찾는다.
        3) 성경과 도그마를 다루기에 편안해진다.
        4) 교인들은 예수의 삶에 동참하는 기쁨을 얻을 수 있다.

5. 참여자가 미리 준비해 올 과제(필수)
        1) <기독교에서 내가 (이미) 얻은 것>이라는 주제로 반(1/2) 페이지의 구원 체험론을 적어온다.

제3회 예수목회 세미나(07년 1월 22-24일. 전주 지역) 
      
                         시간표와 등록신청서 다운받기 ,여기 클릭!

10만원 (미자립교회 목회자는 장학금 가능합니다. 등록처 한국기독교연구소 031-929-5731에 문의바랍니다)
입금방법: 중소기업은행 071-004407-03-011 (김준우)   등록마감: 1월 15일
한국기독교연구소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2동 730 우인1차 1322호 (우 410-830)

<예수 목회로 나의 신학 세우기> ㆍ제3회 예수 목회 세미나를 열며 ...

        <> 정해년(丁亥年), 황금돼지의 해에도 우리는 예수를 찾습니다.<>

안녕하세요?

1.  한국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600년만에 찾아온 황금돼지의 해, 정해년(丁亥年)의 열풍," 역술가들조차 근거 없는 낭설이라고 힘주어 말하지만, 한국 젊은층들의 출산율이 20% 정도 상승할 것이라는 게 관련 업계의 전망! 그러고 보면, 희망 혹은 믿음은 근거가 있든 없든 세상, 현실을 바꾸는 큰 힘이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2.  그러나 기독교, 기독교 신자, 목사라는 말이, 한국인 사회, 미국인 사회에서, 그 신용을 잃은 지 이미 오래라는 보고서는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 보수진영의 한 대표적인 사회윤리학자, Ronald Sider는 <왜 기독교인들 양심이 비기독교인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는가?>(The Scandal of the Evangelical Conscience:  Why are Christians Living just like the Rest of the World? 2005) 책에서, 가정 폭력, 약속 위반, 성 도덕, 인종 차별, 인색 등등의 지표에서 중생을 체험한 기독교 신자들이 세상보다 더하면 더했지 나을 게 없다는 충격적 보고서를 냈습니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바나연구소 소장 George Barna와 함께, "성서적 신앙"을 잃은 게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같은 현실을 놓고 보는 대안에서, 우리는 아주 심각하게 그리고 근본적으로 이들 맹목적 보수주의들의 생각과 다릅니다. 성서의 신앙으로 돌아가자는 논리는 마치, 황금돼지의 꿈과 같습니다. 세계 갑부 50인 중 실제로 "정해년(1947년)에 태어난 사람은 스웨덴의 유명 의류 브랜드 H&M의 소유주인 스테판 페르손(32위) 씨뿐"이라고 동아일보는 (인테넷 자료) 경고하고 있습니다.
  아기를 낳는 일은 언제든 좋은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황금돼지의 해"이기 때문에, 황금을 나으려고 아기를 낳는다면, 젊은 엄마, 아빠가 계시다면, 나라의 장래가 걱정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짜라면 양잿물로 큰 것 먹는다는, 옛 말이 생각납니다.

3.  한편, 개신교 목회자들, 미국에서, 이직율이 상당히 높다는 보고서도 있습니다. 생계비 걱정, 시달리는 잡무, 그리고 평신도들의 고학력, 이것이 주요 원인이라 합니다(Dean R. Hoge and Jacqueline E. Wenger, Pastors in Transition: Why Clergy Leave Local Church Ministry, 2005). 여기서 우리 모두는 평신도의 "고학력"이 왜 목회자에게 문제거리인가에 주목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4.  이미 고전이 된 책이 하나 있습니다. Los Angeles, USC 사회학자 Donald E. Miller가 연구한 충격적 보고서입니다. Reinventing American Protestantism: Christianity in the New Millennium (1997).
  "During the past thirty years the American religious landscape has undergone a dramatic change. More and more churches meet in converted warehouses, many have ministers who've never attended a seminary ..."
  신학을 모를수록 목회를 잘 한다는 우리들의 경험, 우리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현장에서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죽은 신학교육, 너와 나만의 문제,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닙니다. 죽은 신학하기, 그것이 문제란 간접적 증언입니다.

5.  또 다른 보고서가 있습니다. 유대인의 장래를 걱정하는 하바드 법대 교수, ALAN M. DERSHOWITZ의 작품입니다. The Vanishing American Jew: In Search of Jewish Identity for the Next Century.
The "Jewish Question" for the Twenty-first: Century: Can We Survive Our Success? American Jewish life is in danger of disappearing, just as most American Jews have achieved everything we ever wanted: acceptance, influence, affluence, equality. As the result of skyrocketing rates of intermarriage and assimilation, as well as 'the lowest birth rate of any religious or ethnic community in the United States,' the era of enormous Jewish influence on American life may soon be coming to an end. Although Jews make up just over 2 percent of the population of the United States -- approximately 5.5 million out of 262 million -- many Americans mistakenly believe that we constitute a full 20 percent of the American people, because of our disproportionate visibility, influence, and accomplishments. But our numbers may soon be reduced to the point where our impact on American life will necessarily become marginalized. One Harvard study predicts that if current demographic trends continue, the American Jewish community is likely to number less than 1 million and conceivably as few as 10,000 by the time the United States celebrates its tricentennial in 2076.
  히틀러 덕(?)에 배운 교훈 한 가지, 자기네들을 선택해 준 하느님 야훼께서 히틀러(의 신) 앞에서는 아무 힘도 없었다는 슬픈 진실을 배운 후, 드디어 "황금의 신"과 키스하게 된 미국 유대인들, 그들은 자멸의 길을 가고 있답니다. 히틀러가 못 이룬 꿈(유대인 멸종), 유대인들 스스로가 이루어가고 있다는 아픔의 고발입니다. 무엇입니까? 황금의 시대에도 의미 있는 하느님 이야기는 그들에게 아직 없다는 증언입니다.  

6. 홍정수가 미국에서 발견한 것?
  1978년 텍사스, SMU에서 Schubert Ogden에서 배운 것 한 가지, 현재의 기독교 이야기, 일관성이 없고, 따라서 "신빙성(credibility)이 없다"는 충격적 지적이었습니다. (홍정수가 신학 공부를 시작한 것은 아담-이브 때문에 우리 한국인이 지옥간다는 설교를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같은 시기, 또 다른 세계적인 신학자, Albert Outler 교수 방을 찾았을 때, 노 교수는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습니다. 물었습니다. 교수님의 지금 연구 작업, 과제는 무엇인가요? "나는 종교의 핵심을 찾고 있다네!" 18세기 영국에서 발간된, 아직 정리도 안 된, 경건주의 자료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둔 교수, 그는 책 무더기를 가리키면서, "거룩함의 핵심"은 과연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다 했습니다.

7. 우리의 대안
  1988년, 서울, 냉천동에서 한국기독교 연구소(현재 소장, 김준우 박사)는 세워졌습니다.  예수를 찾고자 함이었습니다. 왜 예수?
  서점엔 책이 있고 아이스크림 가게엔 아이스크림이 있듯이, 기독교 안에 무엇이 꼭 있어야 한다면 무엇일까요? 신? 성직자? 기도? 기적? 아닙니다. 그런 것은 어디나 있습니다. 백화점에 가면, 모든 게 있듯이, 서점에서도 커피, 아이스크림, T 셔츠, 다 팝니다. 기독교 안에만 있어야 하는 전문 품목은 역시 예수입니다. 그것도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예수이어야 합니다. 우리를 희생시키는 예수, 폭군적 예수, 환상의 예수는 소용없습니다.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예수란 역사 속에서 살았던 갈릴리의 예수, 복음서에 그려져 있는 사람 예수, 그래서 우리가 시시때때로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원천적 교사 예수라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 대다수가 알고 있는 예수는, 두 가지 점에서 죽은 예수입니다.
  첫째, 우리가 오늘, 여기서 실천/반복할 수는 예수입니다(따를 수 없는 예수). 예, 이상한 탄생, 죽음, 그 후.... 그리고 물 위로 걷기, 물을 포도주라고 하여 잔치집에 갖다 주기, 장님 눈 뜨게 하기 등등. 둘째, 시작은 어찌 되었든, 끝내는 배신당하고, 몰이해 속에서, "아버지"의 버림까지 당하면서 "치욕"의 최후를 마친 비극적 삶의 주인공, 따르고 싶지 않는 예수입니다. 한때는 오늘날의 빈 라덴처럼, 예수에게도 그를 죽기까지 따르던 많은 광신자들(?)이 있었다는 역사적 기록은 남아 있지만, "황금돼지의 해"에는 그의 길은 가고 싶지 않은 길입니다. 재미 유대인들이 자기네 신을 피하듯,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피해 달아나고 있습니다. 오늘도 예수는 치욕(스캔달)입니다.

  누구의 잘못입니까? 약삭빠른 현대인의 죄악인가요? 아닙니다. 사람은 늘 이기적이며, 신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때조차 인간은 이기적입니다. 만물(유생, 무생 동일)은 그 자신을 보호ㆍ보존하려는 이기심이 있습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예수께 다가선 병자가, "낫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였을 때, 그는 정직한 이기주의자였으며, "왜 그리 속물인가?" 하시며, 예수께서, 반문ㆍ외면하시지는 않았습니다(물론 그 이야기 속의 예수가 무면허의료 행위를 하였다는 데 핵심이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누구의 잘못입니까? 예수 이야기가 그 이야기를 듣는 최종 이용자(end-users)에게 "복음"이 되지 못하는 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즉 예수 이야기 자체에 있습니다. 즉 오늘날의 (교회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예수 이야기는 그 포맷, 프레임이 크게 잘못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어제 밤, 한 청년과 대화를 했습니다. 한국말이 서투른, 미국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저것 기독교에 대하여 묻고는, "내가 잘못 배웠네요!" 하면서, 새롭게 프레임된 예수 이야기에 다소 희망을 걸고 돌아갔습니다.
        
8.  오십시오, 함께, 고민하며, 숲을 해쳐 나갑시다. 예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한국기독교연구소 & 예수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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