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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시인의 <방을 얻다>시 한편이 있는 하루
김영동  |  deom-pastor@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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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07월 26일 (화) 00:00:00 [조회수 : 8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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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을 얻다


나 희 덕


   
▲ 박흥규목사님의 대관령 산막
담양이나 창평 어디쯤에 방을 얻어

다람쥐처럼 드나들고 싶어서

고즈넉한 마을만 보면 들어가 기웃거렸다.

지실마을 어느 집을 지나다

오래된 한옥 한 채와 새로 지은 별채 사이로

수더분한 꽃들이 피어있는 마당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섰는데

아저씨는 숫돌에 낫을 갈고 있었고

아주머니는 밭에서 막 돌아온 듯 머릿수건이 촉촉했다.


― 저어, 방을 한 칸 얻었으면 하는데요.

일주일에 두어 번 와 있을 곳이 필요해서요.

내가 조심스럽게 한옥 쪽을 가리키자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 글시, 아그들도 다 서울로 나가불고

우리는 별채서 지낸께로 안채가 비기는 해라우.

그러제마는 우리 집안의 내력이 짓든 데라서

맴으로는 지금도 쓰고 있단 말이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정갈한 마루와

마루 위에 앉아 계신 저녁 햇살이 눈에 들어왔다.

세 놓으라는 말도 못하고 돌아섰지만

그 부부는 알고 있을까.

빈방을 마음으로는 늘 쓰고 있다는 말 속에

내가 이미 새들어 살기 시작했다는 걸.

*

*


  벗님,                                            2005.   7.   15

  나는 이 나이가 되어서도 나만 쓸 수 있는 빈방 하나 얻어 볼까하는 생각이 전혀 없는 걸 보면 글쟁이가 될 소질이 없는 게 분명합니다. 이십년도 지난 그전에 이오(二吾) 형님이 울진군 바닷가 죽변에서 목회할 때 빈방 하나 얻으려는 노력으로 교회 창고 방을 그럴듯한 서재로 꾸며 드는 것을 보고 내 마음조차 참 푸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총각 전도사였던 나도 창문이 없어서 굴 같은 작은 건너 방에 책장과 탁자 놓고 서재인양 했는데…… 어린 자녀가 셋이나 있는 목사라면 당연히 생활공간과 외떨어진 다른 공간인 서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 후에 이오 형님은 생활공간과 좀더 멀리 떨어진 한적한 시골 토담? ?방 한 칸을 얻었습니다. 이오 형님이 주간에 며칠은 그곳에 머물며 글을 쓰는 것을 바라보며 그곳은 서재라기보다는 글을 빚어내는 산실이요 땀을 흘리며 창작하는 공방(工房)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의 생각입니다만 창작(創作)은 자기와의 고독한 대면(對面)이고 시시때때로 철저하게 혼자 걸어야만 하는 길이라는 사실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담양이나 창평 어디쯤에 방을 얻어

다람쥐처럼 드나들고 싶어서

고즈넉한 마을만 보면 들어가 기웃거렸다.

지실마을 어느 집을 지나다

오래된 한옥 한 채와 새로 지은 별채 사이로

수더분한 꽃들이 피어있는 마당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열린 대문 안으로 들어섰는데

아저씨는 숫돌에 낫을 갈고 있었고

아주머니는 밭에서 막 돌아온 듯 머릿수건이 촉촉했다.


 

   
▲ 이현주목사님의 엄정리 시골집에서
요즘 이오(二吾) 형님은 충주 옆에 있는 엄정면의 시골집에 살고 있습니다. 형수님이 낡은 시골집을 수리하면서 형님을 위해서 집 뒤편으로 통유리 창이 산 쪽으로 열린 토끼 굴 같은 작은 방을 하나 덧이어 만들어 주었습니다. 하도 좁아 겨우 세 사람이 앉았을 뿐인데도 꽉 찬 방은 터지기 일보직전이었지만 형님을 찾아간 우리의 눈은 산 쪽으로 열린 통유리 창을 지나 드넓은 세상으로, 하늘로 자유롭기만 하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그러 할진데 창작의 산실이요 공방의 주인공인 형님의 마음이야 두말할 것도 없겠습니다. 그러니 시를 창작하는 시인이라면 활발한 활동을 위해서라도 생활공간과 동떨어진 방을 하나 굳이 찾아 나설만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오늘 그런 방을 하나 얻으려고 찾아 나선 시인의 길을 따라 걸어 봅니다. 아, 그래! 방을 얻으려 나선 시인의 길을 따라! 가보면 나도 내친 김에 방을 하나 얻어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 저어, 방을 한 칸 얻었으면 하는데요.

일주일에 두어 번 와 있을 곳이 필요해서요.

내가 조심스럽게 한옥 쪽을 가리키자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 글시, 아그들도 다 서울로 나가불고

우리는 별채서 지낸께로 안채가 비기는 해라우.

그러제마는 우리 집안의 내력이 짓든 데라서

맴으로는 지금도 쓰고 있단 말이요.


  7년여 전에 나는 교회를 떠나 기관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교회 마당가의 목사관이 아니라 따로 아파트를 구해 살고 있습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남매가 크니 각기 따로 방을 써야하고…… 나는 아파트 베란다에 내 책장을 들여놓고 가족들이 오고가는 생활공간에서 그냥 등 돌려 앉으면 내 서재가 되는 그런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늘 같이 있는 것을 당연시하고 떨어져 있기를 싫어하는 아내를 두고 나는 감히 내 생활공간과 조금 떨어진 방을 하나 얻어야겠다는 생각을 전혀 해보지 못했습니다. 집에서 아내도 책상이 필요할 때마다 식탁이나 아들방의 책상을 쓰고 있는 형편이니 그냥 각자의 사무실 방에서의 직장생활을 생활공간과 동떨어진 방으로 여기며 살았습니다. 나에게는 아내에게 없는 특별한 기도의 방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사무실 뒷동산의 늘 텅 비고 고요한 뒷산 숲길입니다. 아 물론 아내는 가끔 토요일 이곳에 들려 숲길을 함께 걷기도 합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정갈한 마루와

마루 위에 앉아 계신 저녁 햇살이 눈에 들어왔다.

세 놓으라는 말도 못하고 돌아섰지만

그 부부는 알고 있을까.

빈방을 마음으로는 늘 쓰고 있다는 말 속에

내가 이미 새들어 살기 시작했다는 걸.

*


  요즘은 대학생인 아들과 딸이 봄 가을학기 중에는 기숙사로 들어갑니다. 아들과 딸이 기숙사로 떠난 텅 빈방은 오히려 우리 부부의 마음에 늘 쓰고 있는 가득 찬 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글쓰기와 상관없이 살고 있는 목사인 나는 늘 사소한 일로 분주한 생활공간에서 뚝 떨어진 곳에 방하나 얻어 볼 생각도 못하고 살고 있지만 생활공간에서 뚝 떨어진 곳에 방하나 얻으러 나선 시인의 시를 읽으며 어느덧 텅 빈 아들과 딸의 방에 슬그머니 세 들어 살고 있는 우리 부부의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시의 행간에 머물며 그리움을 쓸어 담고 있습니다.


그 부부는 알고 있을까.

빈방을 마음으로는 늘 쓰고 있다는 말 속에

내가 이미 새들어 살기 시작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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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칠 ()
2005-07-26 16:39:36
시 한편이 계속되는 하루를
나 시인의 시와 김 목사님의 해설이 조화를 잘 이루어 시의 세계에 문외한인 저희를 이끌어 주고 계십니다. 두 분이 시편을 이런 형식으로 구성하여 하루를 시작 전에 매일 시 한 편을 읽으며 시작하는 은혜를 저희들에게 베풀어 주시면 합니다.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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