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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드림포럼1 "화해와 평화의 좁은 길"
왕대일  |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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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6월 25일 (금) 23:21:55
최종편집 : 2021년 07월 26일 (월) 22:02:26 [조회수 :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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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기까지(시 85:10), 화해와 평화의 좁은 길"

- 평화드림포럼 기조강연(2021. 06. 25)

 

왕대일(한국기독교학회 회장⦁하늘빛교회 담임목사, 전 감리교신학대학교 구약학교수)

   
 

1. 평화를 외치는 이유

 

예수 그리스도 이야기는 평화를 잊고⦁잃고 사는 자들에게 들려주는 평화 스토리로 시작한다. 로마제국의 평화(Pax Romana)에 눌려 지내던 자들에게 천사가 들려준 소식-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은 교회가 추구하는 평화가 세상이 주는 평화와 그 성격에서 전혀 다른 것임을 온 누리에 공표한다. 이런 소식은 창세기의 창조신앙에서도 들을 수 있다. 세상의 기원을 신들의 싸움(전쟁)의 결과로 보던 고대서아시아의 담론(에누마 엘리쉬)에 길들여 있던 자들에게 들려진 창조신앙(창 1:1-2:3)- ‘세상은 창조주 하나님이 말씀으로 평화롭게(!) 지으신 하나님의 작품이다’-은 제국(바벨론)이 장담하는 평화가 이스라엘의 생존의 울타리가 되지 못함을 만천하에 선포한다.1) 창조주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가 세상에 구현될 때 하늘과 땅은 평화의 교과서가 된다(시 19:1-6). 교회가 익히고 나누어야 할 평화는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평화(에이레네)”(빌 4:7)이자‘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평안⦁평화(에이레네)’(요 14:27)이다. 평화가 정치사회적⦁윤리적 담론이기이전에 먼저 기독교 신앙의 영성의 보금자리라는 소리이다.

평화라는 글자는 그 쓰임새가 명사적이기보다는 동사적이다. 흔히 평안, 화목함, 전쟁 없는 상태 등을 가리켜 평화라고 부르지만, 평화는 늘 평화이루기⦁평화누리기⦁평화지키기 등과 연계되어 쓰인다. 그만큼 그 본디 뜻이 정적이지 않고 동적이다. 히브리어 “샬롬,”헬라어 “에이레네”도 이런 의미에서 멀지 않다. 평안을 누리려면 “평화의 말”(신 2:26)을 주고받아야 하고, “평화의 사신들”(사 33:7)을 보내야 하며, “평화를 만드는 자들”(마 5:9)이 되어야 한다. 전쟁 없는 상태가 평화가 아니라 전쟁을 극복하려는 생존방식이 평화이다.

평화의 쓰임새가 동사형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평화가 사람의 평화로 이루어지게 하는 촉매제가 된다. 평화의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하나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야 한다. 이 하나님의 뜻을 한반도 상황에서 되새길 때 한반도의 평화⦁평화운동은 통일운동과 연결된다. 1948년 8월15일부터 2021년에 이르는 긴 세월동안 한반도를 삶의 둥지로 삼는 자들은 남북분단이라는 상황에 짓눌려 지내왔다. 한겨레이어야 할 사람들이 분단의 세월을 견디는 동안 남북으로 나뉜 이질집단이 되어버렸다. 통일이 한반도⦁한민족의 지상과제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한반도에서 평화통일로 나아가는 길을 한민족이 들어서야 할 “비아 돌로로사”로 삼은 것이다.

평화와 통일은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르다. 평화가 더불어 지내기라면, 통일은 하나 되기이고, 평화가 어울림이라면 통일은 하나로 모으기(통합)이다. 6⦁25로 기억하는 한국전쟁은 평화와 통일이 자아내는 이중주에서 통일과 평화가 불협화음을 연출한 경우이다. 어떻게 하면 평화와 통일의 이중주가 불협화음이 아닌 화음이 될 수 있을까?

한반도⦁한민족의 절대가치는 통일이기 전에 평화이어야 한다. 평화로 통일을 이야기해야 한다. 통일은 평화의 열매이다. 물론 평화와 통일 가운데 ‘어느 것이 먼저이고 어느 것이 나중이냐’를 따지는 것은 적절치 못할 수도 있다.2) 한국전쟁 70주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에서는 통일이나 평화가 “분단정전체제유지”의 도구로 활용되었기 때문이다.3) 그럼에도 한반도가 내걸어야 할 으뜸가치는 평화운동, 평화를 위한 노력이다. 평화를 간과한 통일은 언제라도 전쟁이라는 구조적 폭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평화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평화를 이루려는, 평화를 누리려는, 평화를 지키려는 노력 없이는 평화가 주어지지 않는다. 평화의 본질은 하늘의 은총이지만, 땅에서 하늘의 대사로 살아가는 자들이 그 하늘의 평화를 향한, 그 하늘의 평화에 의한, 땀을 흘리지 않고서는 이 땅에 평화는 구축되지 않는다. 정치사회군사적인 평화체제(평화조약)를 한반도에 구축하자는 소리가 아니다. 4)  평화에 기반 한 이해⦁화해⦁어우러짐이 없이는 이질적인 두 정치사회체제가 하나로 통합되는 일이란 요원하다는 지적이다.5) 위로부터 오는 평화는 아래로부터 일어난 평화운동을 통해서만 구현된다. 삶의 저변에서 실천하는 평화사역이 없이는 정치사회적 평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평화를 어떻게 이해하든, 평화운동의 대상을 무엇으로 단정하든, 평화의 자리를 무엇으로 설정하든, “평화운동은 개인의 자세와 국가의 존재방식을 바꿔야 하는 매우 근본적인 운동”이다.6)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에서 되새겨보는 평화운동은 우리 안의 부끄러운 과거를 들춰내는 운동이자,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답답한 현실을 고발하는 운동이며, 우리의 미래를 우리가 기대하는 방향으로 변혁시키는 운동이다.

 

   
 

 

2. 한반도에서 평화말하기

 

한국의 근현대사는 한반도에서의 생존가치로 평화를 내세웠던 자들이 겪어야 되었던 수모와 수난을 증언한다. 남북대치라는 한반도 상황에서 평화운동을 삶의 양식으로 삼기에는 태생적으로 쉽지 않았다는 소리이다. 가령 우리 사회는 1948년 8⦁15부터 유신정권(1971- 1979)에 이르기까지 “평화”는 “북진통일”에 반대하는 정치담론이거나 “자주국방”과 “반공정책”에 찬동하지 않는 사상으로 간주되었다.7) 1970년대 이후 정부가 구상했던 평화담론들이 등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8),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평화를 남북대치의 외교 전략으로 받아들인, 정권의 체제 강화를 위한 정치적 담론에 지나지 않았다. 국가가 주도하지 않고 시민사회가 선도하는 평화운동은 늘 반정부활동이라는 카테고리에 묶여 있었다. 1988년 정부가 내걸었던 “북방외교”가 우리사회의 평화담론을 평화운동으로 분출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었지만9), 그마저도 동서독의 통일(1989)과 소련의 해체가 빚은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른 체제유지 차원의 정치적 담론이었지 ‘반공이 아닌 평화와 통일을 국가경영의 토대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10) 대승적으로 수렴하는 사회분위기를 창출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우리사회에서 평화운동이 움돋게 된 것은 순전히 1980년대 민주화운동 덕분이다. 이 땅에서 일어난 평화운동은 민주화운동을 그 자양분으로 삼았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동력이 평화보다는 통일에 쏠리는 경향을 띄기는 했었지만, 냉전 중인 남북분단의 상황에서 평화 일구기를 우리사회의 내일을 향한 정초작업으로 다진 노력은 전적으로 민주화운동의 결실이었다.11)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방향은“정치개혁”이었는데, 그 정치개혁을 부르짖던 시민사회단체가 민주화공간을 통일운동으로 나아가는 모판으로 삼게 되면서 민주화운동에 평화운동이 접목되게 된다. 문제는 1980년대 당시 민주화 운동이 펼친 통일운동의 모판이 “민족주의”에 갇혀(?) 있었다는데 있다.12) 한반도에서 통일은 평화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어야 함에도 민족통일이라는 이름으로 전개된 통일지상주의는 대중의 눈높이와 일정 부분 거리를 두고 말았다.13)

1990년대에 우리사회는 평화와 통일을 하나의 담론으로 수렴하는 변곡점을 맞는다. 1994년 제1차 북핵위기가 한반도에 전쟁발발의 광풍을 몰아치게 하였지만,14) 1998년에 경험한 우리사회의 정치 환경의 변화는 “북한을 적국이 아니라 포용해야할 대상”으로 보게 하는 시각을 제시하였다.15) 남북대치라는 상황을 남북공존이라는 지형으로 새롭게 보게 하는 접근법은 통일운동에 평화운동이 접목되는 계기로 작용하였다.16)

2000년대에 들어서서 우리사회는 평화운동을 한반도의 내일을 향한 실존적 가치로 내세우기가 어려운 정치사회적 환경 속에 다시 빠져들고 있다. 우리사회 안에서 증폭되고 있는 이른바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평화운동의 현실을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물론 2000년대에 들어서서 우리사회는 다양한 영역에서 평화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평화를 그 입에 올리기조차 꺼렸었던 사회 분위기를 뒤로 하고 평화 이루기를 삶의 보편적 가치로 실천하려는 노력이 평화운동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되고 있다.

평화가 평화운동으로 커가기 위해서는 평화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갈무리해야 한다. “평화운동은 기본적으로 ‘관계’에 관한 운동이다.”17) 평화가 구축되어야 할 자리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회, 인간과 국가, 인간과 자연,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 우리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비폭력 평화운동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마음의 평화를 강조하는 영성운동, 자연과의 평화를 실천하려는 생태계보전운동, 생활공간에서 조우하는 평화운동, 한반도평화를 위한 남북교류협력, 세계시민과 연대하는 반전평화운동, 평화문화를 이루기 위한 평화교육 등은 모두 평화운동의 지평선을 정치⦁사회⦁군사부문에서 자연⦁생태⦁환경⦁교육⦁영성 등으로 확장시켜 놓는 결실들에 해당된다.

그럼에도 우리사회는 평화를 거론할 때 사회구성원들 사이에서 ‘누구를 위한 평화인가,’ ‘무슨 평화인가?’ ‘어디에서, 어떻게 이루는 평화인가’ 등을 놓고 여전히 갈등을 벌이는 구태에서 벗어나 있지 못하다. ‘평화를 위한 통일’과 ‘통일을 향한 평화’ 사이에서 벌어지는 긴장과 다툼도 여전하다. 북한을 향한 포용정책이 북한의 핵무기개발을 도왔다고 보게 된 남북관계의 단면은 우리사회에 “남남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모판이 되고 말았다. 한반도의 내일을 향한 보편적 가치로 재구성되어야 할 평화담론이 그 자리를 잃고 만 것이다. 평화드림포럼의 자리가 여기에 있다. 평화운동을 일구기가 힘든 오늘의 현실에서 평화의 실천을 시민운동의 차원으로 실천하고자 나선 것이다.

 

3. 한국교회와 평화운동

 

평화드림포럼이 서 있는 자리는 한국교회이다.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분단의 질곡 탓에 평화말하기가 차단되어 있던 시절에 평화를 운동의 차원에서 포용한 흐름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이었다. 그 운동의 중심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있었다. NCCK는 남북분단에 짓눌려 지내던 한국교회 안에 평화운동의 물꼬를 튼 주체였다.

한국교회사의 지평에서 볼 때 1980년대는 한국교회의 주류가 복음주의의 지평에서 교회성장에 몰두하던 시기이다. 이 시절에 NCCK를 중심한 에큐메니컬(ecumenical) 진영의 교회들은 민족통일을 한국교회가 감당해야할 사명으로 천명하게 된다. 이때부터 한국교회의 평화운동은 민주화운동이 내걸었던 통일운동에 대한 대안(代案)적 이정표를 제시하게 된다. 교회가 걸어가야 할 선교의 이정표로 통일보다는 평화를 앞세우게 된 것이다.18) 한반도⦁한민족의 생존을 향한 절대가치가 평화여야 한다는 담론이 제기된 계기는 1984년 일본 도잔소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 주최로 열렸던 한반도 문제에 대한 토론회이다.19) 하지만 그 이면에는 1981년 제4차 한독교회협의회가 있었다. 분단국가의 멍에를 공유하던 교회들이 나서서 NCCK 안에 통일문제를 연구하는 기구를 두자고 제안하면서 한국교회가 통일운동의 기치를 평화의 지평선에서 수렴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분단의 문제는 기독교신앙의 시각에서 풀어야 할 시급하고도 소중한 선교과제였지만 1980년대의 시국은 그런 과제를 하나님의 선교로 천명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반공을 국시로 삼던 정치사회환경 체제 속에서 남북통일을 이루자는 비전을 기독교신앙의 이름으로 대내외적으로 공표하기란 대단히 어려웠다. 경직되어 있었던 한반도의 정치사회구조나 자주국방에 기초한 강한 국가건설을 체제의 우월성을 향한 지표로 삼던 동북아 정세는 한국교회가 나서서 한반도의 내일을 향한 청사진을 제시하는 시도를 허용하지 않았다. 1984년 세계교회협의회 도잔소 회의에서 논의되었던 한반도문제가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선언”으로 천명되기까지에는 1988년이 오기를 기다려야 했다.

1988년은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해이다. 이 때를 전후로 세계의 정치사회기상도는 독일 통일(1989년)과 소련의 해체로 이어지는 변혁의 흐름을 타게 된다. 그런 흐름 속에서 맞이한 1988년은 한국교회에게도 그간의 민주화운동⦁통일운동이 평화운동의 맥락에서 펼쳐지는 기회가 되었다.20) 그러나 한국교회가 1988년에 공표하였던 평화운동은 얼마 가지 않아서 그 주도권이 정부로 넘어가버리고 만다.21) 역설적으로 이 때부터 한국교회의 NCCK는 민주화운동의 속내를 평화운동으로 더욱 채우게 된다. 자주국방을 전제로 한 정부의 평화담론이 결코 평화적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22)

한국교회가 평화운동을 통일운동의 속내로 채우게 된 이면에는 스위스 글리온 회의(1986년 9월 2-5일)에서 이루어졌던 남북교회대표들의 “뜨거운” 만남이 있었다.23) 야곱이 에서를 뜨겁게(!) 만나듯(창 33:4-10) 남북교회의 지도자들이 처음 상봉하면서 주고받았던 감격과 도전은 한국교회의 나아갈 길을 민족의 통일과 평화로 노정시키게 된다. 1988년 2월 NCCK 총회에서 선포된, 이른바 “88선언”이라고 불리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선언”은 이런 노정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선언”에 관한 논의는 길다.24) 이 선언의 포인트는 남북통일을 염원(소원)이 아닌 과정으로 수렴하도록 이끄는데 있다.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이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도로 부름 받았다”는 사실을 주지시키면서 한반도의 분단 상황이 고착화되는 일에 일정부분 한국교회의 책임이 있음을 회개하였다. 그런 토대 위에서 한반도 분단 50년인 1995년을 우리민족의 “평화와 통일의 희년”으로 선포하였다. 성경(레 25:8-55)의 희년을 오늘의 희년으로, 이스라엘의 희년을 우리민족의 희년으로, 하나님의 땅에서 이루어지는 희년(레 25:23)을 한반도의 희년으로 삼자고 공표하면서 “통일희년”을 향한 “인간띠잇기대회”를 개최하였다.25)

한국교회의 평화운동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NCCK가 주도하던 평화통일운동시대가 저물고, 개체교회⦁교단⦁선교기관⦁NGO 등이 각각 또는 연대하여 평화통일운동의 주체로 나서게 된다. 평화운동의 창구가 다변화, 다양화, 다층화 되었다. 여태껏 민주화운동, 통일운동, 평화운동에 미온적이거나 폐쇄적이었던 교회와 교인들이 평화통일 논의에 뛰어드는 사회적환경이 조성된 것이다.26) 한국교회 지도자들의 북한방문이 이루어지고, 1996년 북한식량위기를 맞아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북한정권이 아닌 북한동포를 돕는 일에 뛰어들면서 평화운동의 속내를 인도주의적 베풂과 나눔으로 채워나갔다. 그런 사이에 NCCK의 영향력이 주춤하게 되자 여러 교회와 교단, 선교단체 등이 나서서 평화운동의 지평을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현장으로 넓혀 나갔다.

그러나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선언”이 선포된 지 30년이 지났는데도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은 여전히 1988년의 반성과 기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3년에 부산에서 개최된 세계교회협의회 제10차 총회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관한 선언문”을 채택하기도 했지만,27) 그 선언대로 한국교회 모두가 화해와 일치, 평화를 향한 걸음을 힘차게 뗐는지는 장담하지 못한다. 게다가 지구촌사회가 맞닥뜨린 코로나19라는 2020-2021년의 펜데믹 상황은 둘이 하나가 되고, 여럿이 하나가 되다가, 이웃이 서로 이어지면서, 마침내 남과 북이 하나로 연결되는 평화행진의 도래를 원천적으로 차단시키고 말았다. 평화 이야기가 실종되어 버린 것이다.

 

   
 

 

4. 평화는 공의와 어우러져야

 

잃어버린⦁잊어버린 평화 이야기를 다시 풀어가기 위해서는 평화⦁평화운동의 본질을 새삼 추슬러야 한다. 하늘 아버지와 나누는 평화에만 머물러 있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가 주셨던 사랑, 용서, 배려, 존중의 가치를 교회 밖으로 흐르게 해야 한다. 가난, 기근, 질병, 폭력, 살인, 자연재해, 전쟁 등으로 평화를 빼앗긴 채 고통 속에 살아가는 자들에게 평화를 되찾아 주는 사역에 동참하는 일을 교회의 선교로 실천하게 해야 한다.28)

평화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정책의 문제보다도 그런 정책의 바탕이 되는 규범과 가치를 세우는 일이다. 한반도가 지고 있는 분단의 십자가를 구원⦁해방⦁자유로 가는 은총으로 수렴하는 길은 “리얼리즘(realism)과 이매지네이션(imagination)의 결합 속에서” 찾을 수 있다.29) 남북이 여전히 정치사회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정치사회군사적인 한계를 돌파(!)하는 은총의 역사(役事)를 상상력으로 풀어내야 한다. 이 둘 - 리얼리즘(현실적 고민)과 이매지네애선(상상력) - 사이를 잇는 가교가 공의와 동행하는 평화운동이다.

한국교회의 현주소는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분단현장이다. 한국교회는 이 분단현실을 뛰어넘는, 또는 분단현실을 풀어가는, 평화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 이 사도가 되기 위해서는 평화를 향한 꿈을 다시 꿔야 한다.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고 낫을 쳐서 창을 만들어야 했던”(욜 3:10) 현실 속에서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꿈을 꾸었던 선지자의 꿈을 다시 꿔야 한다(사 2:4; 미 4:3; 비교, 겔 37:16-17).30) 이사야와 미가가 공유하였던 평화의 꿈이 그 속내에서는 차이가 나지만,31) 땅의 과제를 하늘의 은총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는 이사야나 미가가 똑같다. 현실의 한계를 하늘의 언어로 풀어내는 평화운동이야말로 한국교회의 정체성과 사명을 일깨워준다. 한국교회는 분단된 한반도에서 태동된 그 어떤 시민사회단체보다도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구원⦁해방⦁자유의 은총(눅 4:17-19; 사 61:1-3)을 신앙적 상상력으로 풀어나가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성경이 증언하는 평화의 가치는 다음 두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다.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 맞추었으며”(시 85:10)와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 3:18, 새번역에서는 “정의의 열매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평화를 위하여 그 씨를 뿌려서 거두어들이는 열매입니다”). 시편기자에 따르면 이 땅에 구현되는 하나님의 구원(자유와 해방)은 평화와 공의로 구현된다(참조, 사 52:7). 인애(헤세드)와 진리(에메트)가 만나야 하고, 의(체데크)와 화평(샬롬)이 서로 입 맞추어야 한다. 이 때 “헤세드”(사랑, 또는 사랑을 이루는 헌신)는 치유⦁용서⦁화해로 바꿔 부를 수 있다. 치유⦁용서⦁화해는 옳게(진리, ‘옳음,’에메트) 펼쳐져야 하고, 화평(샬롬)은 바르게(의,‘바름,’ 체데크) 구현되어야 한다.32) 치유⦁용서⦁화해가 옳음(진실, 진리)과 ‘연결되어지면’(니프가슈, 수동태), 바름과 평화가 능동적으로 동행하게(파가쉬) 된다는 것이다. 그 깨달음을 야고보서는 평화를 심어야 의의 열매를 거둘 수 있다고 바꿔 불렀다.

평화는 정의와 동행해야 한다.33) 평화운동은 공의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정의도 평화와 함께 가야 한다. 공정하지 않은 평화, 의롭지 않은 평화, 바르지 않은 평화, 옳지 않은 평화는 폭력을 정당화하게 된다.34) 용서와 화해가 없는 정의는 관계를 단절시키고 만다. 평화이루기는 그것을 실천하는 과정부터 공의로워야 한다. 공의로운 평화를 세워가는 실천이 한국교회 평화운동의 내용이어야 하고, 그런 평화운동의 지평이 한반도의 남북으로 퍼져나가게 해야 한다.

평화와 공의가 어우러진 공동체로 나아가는 길은 좁은 길이다. 치유⦁용서⦁화해가 옳게⦁공정하게 연결되어야 바름(공의)과 평화(화평)가 이어지는 지평선이 열리는데 그런 길을 닦기가 쉽지 않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는 식의 긴장과 다툼을 넘어서야 평화운동은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는”(요 11:52) 하나님의 선교가 된다.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오고 가는 길은 선정된 어느 한두 사람만을 위하는 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길은 모두가 함께 오가는 길이어야 한다. 분단된 한반도가 지리적으로 결합되거나 남북체제가 정치사회적으로 통합되기 위해서는 먼저 73년간 지속되고 있는 분단의 환부부터 치료해야 한다. 통일을 이야기하기 전에 분단현실에 머무르려고 하는, 분단현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의 장벽부터 허물어야 한다. 평화의 가치가 여기에 있다.

 

5. 평화운동과 평화드림포럼

 

흔히 평화운동은 개인이 아닌 공동체가, 교회가 아닌 사회가, 시민단체가 아닌 국가가 이루어야할 사명으로 간주한다. 평화를 일구는 노력이 효과적이려면 개인보다는 공동체, 교회보다는 사회, 사회보다는 국가이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간과하지 말 것은 통일을 이루는 주체가 궁극적으로는 관(官)이 아니라 민(民)이라는 사실이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하나님의 사람들) 속에 있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눅 17:21)! 하나님의 나라가 임(臨)할 때 그 은총을 누릴 최대의 수혜자는 사회나 국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다. 한반도의 토양 속에서 일구는 평화운동의 주체는 “민”(民)이어야 한다. 그 “민”끼리의 연대가 힘이 되고 동력이 되어 “관”을 움직여야 한다.

한국교회의 NCCK가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한반도 통일을 위한 협의⦁논의⦁선언 등을 펼쳐가는 과정에는 세계교회협의회를 비롯한 여러 외국교회들과 연대가 있었다. 우리 힘만으로는 민주⦁통일⦁평화를 외치기가 어려웠던 사회구조적 환경을 외국교회와의 연대라는 실천적 형태로 돌파하고자 했다. 한반도 통일과 한민족 평화를 논하는 자리에 세계교회협의회 같은 단체가 끼어든다는 것은 어찌 보면 바람직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한반도 평화를 논해야 되는 당사자는 어디까지나 남과 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반도문제를 풀어가는 당사자는 한반도 주변에 포진한 여러 나라들이 아니라 서로 마주하고⦁대치하고 있는 남과 북이어야 한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남북의 정부가 수많은 전략과 전술을 제기하였지만, 아무런 실질적 진전이 없었다는 사실은 “한반도 통일의 장애요인이 북한과 남한 자체에 있다”는 지적을 떠올리게 한다.35)

그럼에도 한국교회의 NCCK가 일구어 왔던 민주⦁통일⦁평화를 향한 여정은 다음 몇 가지 교훈을 민주⦁통일⦁평화운동의 유산으로 남겨 주었다. 한국교회가 세계교회들과 연대하지 않았다면 한국교회는 민주⦁통일⦁평화에 관한 오랜 동면(冬眠)에서 깨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한국교회는 한반도 문제를 세계교회와 논의하는 과정에서 한반도평화가 세계평화를 이루는 지렛대가 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한국교회가 세계교회협의회 등과 협력하는 과정은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이 분단의 장벽을 뚫고 북쪽의 그리스도인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창출해 주었다.

평화운동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를 이 땅에 담아내는 그릇이다. 이 그릇은 혼자서, 홀로 받들 수 없다. 평화운동은 연대해야 한다. 한국교회의 평화운동도 당연히 연대해야 한다. 교회와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해야 한다. 신앙공동체의 결이 다른 교회⦁교단끼리도 연대해야 한다. 케리그마(kerygma)는 서로 나누지만 디아코니아(diakonia)는 서로 연대하게 만든다. 이런 과제가 평화드림포럼에 주어져 있다. 한국사회에서 평화운동은 교회가 나서기 전에 시민단체가 먼저 나섰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36) 평화드림포럼은 교회⦁교단⦁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해서 세계교회의 다양한 기관⦁기구 등이 연대해서 한반도에 평화를 이루게 하는 플랫폼(platform)이 되어야 한다. 혼자서 열 걸음 앞서 가는 평화운동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연대하여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평화운동을 이루는 장(場)이 되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평화운동은 남북의 교류와 연대가 국지적(한반도)이거나 민족적(한민족)인 것에 머물지 않음을 일깨워 주었다. “한반도에서 화해가 일어난다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예언 그리고 세계 어디에서나 화해는 일어날 수 있다.” 37) 오늘의 남북관계나 한반도 주변의 국제정치의 역학관계가 복잡하지만, 갈등⦁분열⦁대립⦁원망, 증오가 아닌 화해를 이루는 삶을 한국교회부터 담대하게 살아내야 한다.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의 평화이고, 동북아의 평화는 세계평화의 지름길이다. 그 길을 닦는 일이 바로 평화운동이다. 평화드림포럼은 이 운동에 쓰임 받으려고 한다.

전쟁의 아픔이 낳은 분단은 한국교회가 걸머져야할 십자가이다. 남과 북의 화해⦁교류⦁연대⦁평화는 남북의 시민들이 그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이다.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사 40:3)는 소리는 분단의 멍에에 짓눌려 살았던, 정치사회적인 구조적폭력에 심하게 상처를 입었던, 그러면서도 여전히 전쟁의 공포를 마주 대하고 있는,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이 들어야 할 소리다. 하나님은 오늘도 다른 사람이 아닌 고난 받는 종들에게 하나님이 뚫으시는 길을 광야 같은 세상에다가 차리는 손발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평화드림포럼은 이 하나님의 목소리를 한국교회가, 한국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한국사회가 듣게 해야 한다.

평화드림포럼의 평화운동은 하나님이 한반도에 놓으시는 길을 닦는 하나님의 노역에 동참하는 사역이다. 하나님의 노역이 사람의 실천으로 전개될 때 평화는 통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 된다. 평화를 외치는 자들이 한반도의 남북에서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게 해야 한다. 실천적 의미에서 평화는 전쟁의 반대개념이지만, 신앙적 시각에서 평화는 한반도의 분단과 사회의 분열을 넘어서게 하는 은총이다. 죽이기(殺)가 아니라 살리기(生)가 한반도의 얼개여야 한다. 평화운동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시는”(요 1:14) 성육신의 진리를 이루는 현장이고, 하늘의 뜻이 한반도에 구현되는 마당이며, “화평하게 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어지게”(마 5:9) 되는 자리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평화드림포럼이 나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평화를 잊어⦁잃어버린 그리스도인들에게 평화를 되찾게 하려고 한다. 평화운동의 높낮이를 두고 갈등하는 한국교회를 하늘이 주는 평화로 치유하려고 한다. 그 연장선에서 한국사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를 심으려고 한다. 거기에 평화드림포럼의 역할이 있다.

 

나누어진 남북의 손과 마음이 다시는 떨어지지 않게 붙잡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어리석음을 주십시오.

하나님, 우리가 손을 모아 기도할 수 있게 잡아주시고

남북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일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남북을 화해와 평화를 향한 당신의 여정으로 인도해 주십시오.

아멘.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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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창세기의 창조이야기(창 1:1-2:3)의 본질은 바벨론포로기의 이스라엘이 들어야 했던 바벨론 창조신화(에누마 엘리쉬)와 비교해서 살펴야 한다. 바벨론 창조신화의 얼개는 창조가 신들 사이에 벌어진 싸움의 결과로 본다. 비(폭풍우)의 신 바알(Baal) 또는 마르둑(Marduk)과, 바다(혼돈)의 신 얌(Yam) 또는 티아맛(Tiamat)이 벌인 전쟁의 결과 인간세상이 생겨났다고 보았다. 창세기의 창조신앙은 이런 바벨론신화와 엄격하게 거부한다. 세상은 신들의 전쟁의 결과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창세기 창조신앙은 하나님이 세상을 지으셨을 때 거기에 대적하는 무리는 아무도 없었다고 힘주어 말한다. “갈등⦁긴장⦁대적이 없는 창조”(creation without opposition)를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창세기 1:1-2:3은 이스라엘신앙의 평화 이야기의 대본이 된다.

2) 서보혁⦁나핵집 지음, 한국기독교회협의회(NCCK) 화해⦁통일위원회 엮음, 『지속가능한 한반도 평화를 향하여』(서울: 동연, 2016), 12-19.

3) 1950년 한국전쟁이후 한반도에서는 여전히 휴전 중이다. 남북한이 주고받는 상호불신과 적대는 남북한정부, 남북한사회, 남북한 주변의 국가들에게 분단체제의 민낯이 얼마나 곤혹스러운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런 환경 속에서 분단정전체제는 “식민주의, 군사주의, 권위주의”의 속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서보혁⦁나핵집, 『지속가능한 한반도 평화를 향하여』, 64-71.

4) 여기에 대해서는 서보혁⦁나핵집, 『지속가능한 한반도 평화를 향하여』, 128-142.

5) 유경동, “남북한 평화통일과 기독교윤리의 과제,” 「신학과 세계」 78(2013), 242-265, 특히 260.

6) 이기호, “한반도 평화운동의 역사적 성찰과 과제,”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화해⦁통일위원회, 『기독청년들이 만드는 통일의 희망- 2015 기독청년 통일아카데미』(서울: 한국기독교회협의회, 2015), 21.

7) 1948년 제헌의회에서 남“북평화통일방안 7원칙”을 발표했던 국회의원(김약수, 노일환)이 이듬해 3월 이승만정부에 의해서 국회프락치사건으로 구속되었던 일이나 1956년 대선후보였던 조봉암이 “평화적 방식에 의한 조국통일실현”을 주장했다가 간첩으로 몰려 사형을 당한 경우 등이 그런 사례다. 1960년 4⦁19 때 시민들이 외쳤던 구호 속에 평화가 등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곧이어 터진 5⦁16은 평화를 공개적으로 천명하기 어려운 정치사회적 구조(반공정책)로 시민사회를 몰아갔다. 이기호, “한반도 평화운동의 역사적 성찰과 과제,” 9-10.

8) 이를 테면 박정희 체제강화를 위한 목적으로 선포된 “8⦁15평화통일구상”(1970)이나 유신체제의 틀 속에서 구상된 “6⦁23평화통일외교선언”(1973) 같은 것들이다. 이런 구상이나 선언들은 냉전(cold war)의 양극이었던 미국과 소련 간의 긴장완화를 추구하였던 1970년대 데탕뜨(Detente) 시대에 대한 정부의 반응으로 간주된다.

9) “북방외교”라는 용어는 노태우 정부(1988-1993년)가 그 정치적 정통성을 만회하고자 내걸었던 외교전략 이었다.

10) 예컨대 야당(신한민주당) 국회의원 유성환은 1986년 10월 16일 국회 대정부질문 중 ‘국시는 반공보다 통일이다’라는 발언을 했다가 “용공주의자”로 몰려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었다.

11) 이기호, “한반도 평화운동의 역사적 성찰과 과제,” 10, 14.

12) 1989년 문익환, 임수경의 방북, 1990년에 결성된 “조국통일범민족연합”이 그런 예에 속한다.

13) 참조, 전현준, “정전체제의 장기지속 메커니즘과 평화체제의 가능성,” 『2015 기독청년 통일아카데미』 (서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2015), 23-29.

14) 제1차 북핵위기는 1993년 3월 12일에 북한이 NPT 탈퇴 선언을 하면서 미국이 레드라인(금지선)으로 설정한 영변 핵연료봉 교체를 강행하면서 터진 사건으로 한반도를 전쟁위기로 몰아넣었다. 당시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전쟁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막고자 했다. 이 위기는 1994년 10월 21일 북한과 미국의 제네바 합의로 소멸되었다.

15) 1998년에 시작된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Sunshine Policy, Engagement Policy)은 북한사회를 향한 협력과 지원이 평화통일로 가는 길이라고 천명하였다.

16) 이런 흐름을 대변하는 상징적 사건으로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꼽을 수 있다.

17) 이기호, “한반도 평화운동의 역사적 성찰과 과제,”7.

18) 1980년 5⦁18을 기점으로 한국사회 안에서는 “선통일 후민주”와 “선민주 후통일”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어졌다. 당시 진보지식인들은 통일이 되지 않고서는 우리 사회에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없다고 보았고, NCCK는 민주주의가 먼저 이루어진 상태에서 통일을 논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서광선, “교회통일운동의 평가와 과제- 88선언(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선언)을 중심으로,” 『2015 기독청년 통일아카데미』, 70쪽.

19) 한국 교회의 통일운동이 평화담론으로 작성되기까지에는 일련의 에큐메니컬 모임들이 있었다. 그 모임의 초석을 예컨대 1981년 6월 서울에서 열린 제4차 한독교회협의회, 1984년 10월 일본 도잔소에서 열린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정의 협의회”가 깔았다면, 1986년 8월 26-26일에 인천송도비치호텔에서 열린 NCCK 통일위원회⦁국제위원회 주최 “한반도통일문제협의회”나 1986년 9월 세계기독교회협의회(WCC)의 국제문제위원회가 주최한 스위스 글리온 회의 등은 그 모임의 핵심이 되고, 그 결과물이 1988년 2월 29일 한국기독교회협의회(KNCC) 제 37차 총회가 공포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교회 선언” 으로 공포되었다. 강문규 지음⦁강혜정 엮음, 『한반도 평화통일과 에큐메니컬 운동』(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6), 70-87을 보라.

20) 올림픽 직전에 노태우 정부가 발표한 7⦁7선언은 한반도 북쪽을 향해서 “우리는 이제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 형제와 동포의 관계”라고 명기하였다. 이런 표현은 1991년에 발표된 남북합의서에도 나온다.

21) 당시 노태우 정부는 정권의 정당성을 북방외교로 내세웠으면서도 교회가 주도하는 통일논의에는 쐐기를 박았다.

22) 이기호, “한반도 평화운동의 역사적 성찰과 과제,” 10-11.

23) “글리온 선언”을“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남북 기독자 만남과 <기드온 선언>”으로 해설한 강문규 지음⦁강혜정 엮음, 『한반도 평화통일과 에큐메니컬 운동』, 46-69를 보라.

24)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88선언)의 전문은 한국기독교회협의회 화해⦁통일위원회,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선언문 모음집』, 5-22에 수록되어 있다. 이 선언문 모음집에는출판에 대한 정보가 소개되어 있지 않다. 이 선언문은 서보혁⦁나핵집, 『지속가능한 한반도 평화를 향하여』, 158-180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선언문에 얽힌 숨은 이야기는 서광선 “교회통일운동의 평가와 과제- 88선언(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선언)을 중심으로,” 70-87을 보라.

25) 1993년 8월 5일 독립문에서 임진각까지 48km를 65,000명의 시민들이 민족의 평화통일을 이룬다는 상징으로 “120리 인간띠잇기대회”에 적극 첨여하였다. 강문규 지음⦁강혜정 엮음, 『한반도 평화통일과 에큐메니컬 운동』, 111-121.

26) 예컨대 1980년대 말 동구 공산정권의 붕괴, 독일의 통일(1989년), 남북한의 UN 동시가입(1991년) 등은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사회정치적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

27) 세계교회협의회 13차 부산총회가 채택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에 관한 선언문”은 한국기독교회협의회 화해⦁통일위원회,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선언문 모음집』, 37-48을 보라.

28) 정주진, 『세상의 평화 나의 평화』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2), 16-21.

29) 한배호, “한반도 통일논의의 문제점과 전망,”「기독교사상」 749 (2021, 05), 63. 이 글은 1986년 8월 25-26일 인천송도비치호텔에서 NCCK 통일위원회⦁국제위원회가 주최한 “한반도통일문제협의회”에서 발표된 원고이다. 그 원고가 「기독교사상」 749(2021, 05), 62-75에 한국교회의 사료로 소개되어 있다.

30) 이 문제와 관련된 논의는 왕대일, 『구약성경의 종말론- 그 날을 향한 소망』 (서울: 한국성서학연구소, 2017), 71-141을 보라.

31) 이사야가 평화의 꿈을 신앙적 언어로 풀었다면(사 2: 2-3), 미가는 그것을 농부의 언어로 풀었다(미 4:4).

32) 구약에서 ‘바름’(공의, 체데크)은 사법적 정의(공법, 공정함, 미쉬파트)의 초석이다. 그래서 늘 “공의와 공법”(체데크 우미쉬파트)이 함께 간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바르다고 여겨지는 의(체데크)는 사람들도 바르게 여기는 의(미쉬파트)가 된다.

33) 정주진, 『세상의 평화 나의 평화』, 22-28.

34) 정주진에 따르면 폭력에는 세 유형이 있다. 직접적인 폭력, 구조적인 폭력, 문화적인 폭력. 직접적인 폭력은 구타, 상해, 납치, 감금처럼 신체의 힘을 이용해서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이다. 구조적 폭력은 규칙, 제도, 법, 정책 등이 생존과 안전을 위협하거나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이다. 문화적 폭력은 어떤 사회를 주도하는 사상, 이념, 가르침, 차별 등이 직접적, 구조적 폭력을 정당화하거나 강화하는 시스템이다. 정주진, 『세상의 평화 나의 평화』, 29-49.

35) 한배호의 “한반도 통일논의의 문제점과 전망.”62-75.

36) 통일에 대한 논의가 금기시되던 사회체제 속에서 통일의 바람을 지피는 불꽃은 한국교회의 안이 아닌, 한국교회의 밖에서 먼저 일어났다. 독일 거주 그리스도인들과 조선기독교교도연맹 대표자들끼리의 만남(1981년), 1989년 문익환 목사의 방북에 이은 임수경 학생과 문규현 신부의 방북 등이 그런 경우이다.

37) 정희수, “담대하게 화해하기,” World Council of Churches⦁한국기독교회협의회, 『평화의 빛- 한반도와 함께 연대하는 세계교회』 (Geneva: WCC Publication, 2020), 82-83.

38) 장위현 목사의 기도. 장위현 목사는 연합감리교회 뉴잉글랜드 커먼웰스 동부 연회 지방감리사로 한반도 에큐메니컬포럼 옵저버이자 한인연합감리교회 평화위원회 위원장이다. World Council of Churches⦁한국기독교회협의회, 『평화의 빛- 한반도와 함께 연대하는 세계교회, 100.

 

 

 

참고문헌

 

강문규 지음⦁강혜정 엮음. 『한반도 평화통일과 에큐메니컬 운동』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6.

서광선. “교회통일운동의 평가와 과제- 88선언(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선언)을 중심으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화해⦁통일위원회.『2015 기독청년 통일아카데미』서 울: 한국기독교회협의회. 2015, 70-87.

서보혁⦁나핵집 지음. 한국기독교회협의회(NCCK) 화해⦁통일위원회 엮음. 『지속가능한 한반도 평 화를 향하여』. 서울: 동연, 2016.

왕대일. 『구약성경의 종말론- 그 날을 향한 소망』. 서울: 한국성서학연구소, 2017.

유경동. “남북한 평화통일과 기독교윤리의 과제.” 「신학과 세계」 78(2013), 242-265.

이기호. “한반도 평화운동의 역사적 성찰과 과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화해⦁통일위원회. 『2015 기독청년 통일아카데미』. 서울: 한국기독교회협의회. 2015, 7-22

전현준. “정전체제의 장기지속 메커니즘과 평화체제의 가능성.”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화해⦁통일위 원회. 『2015 기독청년 통일아카데미』. 서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2015, 23-29.

정주진. 『세상의 평화 나의 평화』.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2.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화해⦁통일위원회.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선언문 모음집』. (출판지, 출 판연도, 출판사를 소개하는 정보 없음)

한배호. “한반도 통일논의의 문제점과 전망.”「기독교사상」 749(2021, 05), 62-75.

World Council of Churches⦁한국기독교회협의회. 『평화의 빛- 한반도와 함께 연대하는 세계교 회』. Geneva: WCC Publication,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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