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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은 많아도 낮잠은 꼭 자라.
김학중  |  hjkim@dream10.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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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5월 26일 (일) 21:31:54 [조회수 : 4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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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일 없으면 낮잠이나 자라’는 속담이 있다. 이 속담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는 사람을 비꼬는 말로 쓰인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낮잠이라 하면 게으름을 상징하거나 쓸 데 없는 일 정도로 생각한다. 그런데 낮잠이 하나의 풍습으로 전해 내려오는 나라도 있다. 스페인, 이탈리아와 그리스 등의 지중해 연안 국가와 라틴아메리카에 사는 사람들에게 낮잠은 풍습이다. 이 나라들은 한낮에는 습도와 온도가 높아서 찌는 듯한 더위로 견디기 어렵기 때문에 잠깐의 낮잠으로 원기를 회복한다. 이렇게 한낮의 더위를 피해 잠시 휴식을 갖는 풍습을 ‘시에스타(siesta)’라고 부른다.

시에스타는 스페인어인데, 원래는 라틴어의 ‘여섯 번째 시간’을 나타내는 단어에서 시작되었다. 시에스타가 어떤 식으로 지금까지 전해졌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그런데 대체로 포르투갈 남부 지방에서 시작되어 에스파냐와 그리스 등의 유럽을 거쳐 멕시코·아르헨티나 등 라틴아메리카 국가들로 퍼졌다고 한다. 각 나라들 마다 시에스타 시간은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보통 2시간에서 4시간 정도이다. 그러니까 하루 중 2시간에서 4시간 정도를 낮잠으로 보내는 것이다.

하루 24시간 중에 최고 4시간을 낮잠으로 보낸다니 도저히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에스타를 즐기는 나라를 방문한 우리나라 관광객들은 웃지 못할 ‘헤프닝’을 겪는다고 한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 위치한 구엘 공원에서는 목이 말라도 음료수를 구할 수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른다. 반면에 곳곳의 벤치에 누워 낮잠을 즐기는 현지인들의 모습도 함께 볼 수 있어서 참으로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이러한 진풍경이 벌어지는 이유는 시에스타 중에는 상점들은 물론 관공서도 문을 닫고 낮잠을 즐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에스타 중에는 모든 일은 그대로 멈추고 몇 시간이고 쉬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사람들의 게으름을 피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일정 시간의 낮잠은 우리 몸에서 원하는 필요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 밝혀졌다. 매일 30분 정도의 짧은 낮잠은 원기를 회복하고 지적·정신적 능력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직장인들에게는 낮잠이 일의 능률을 올리고 피로를 회복하는데 효과적이다. 또한 성장기 어린이들에게는 학습 효과를 높여주고 입시를 앞둔 수험생들에게는 집중력 향상과 밤에 깊이 잠드는데 도움이 된다. 앞서 ‘할 일 없으면 낮잠이나 자라’는 속담은 이제 ‘할 일은 많아도 낮잠은 꼭 자라’로 고쳐야 할 것 같다.

목회자에게도 낮잠이 필요하다. 게으름의 상징으로써의 낮잠이 아니라, 지치고 힘들 때에 꼭 필요한 충전을 해 주는 유익한 낮잠이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자신의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을 돌보지 못한 채로 목회의 현장에서 탈진하는 경우를 본다. 주위에 선후배 목사님들을 만나보면 자신의 몸을 돌보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거나, 젊은 나이에 하늘의 부르심을 받는 동역자도 있다. 또한 수많은 영혼들을 챙기다가 정작 자신의 영적인 상황은 기근이 들어서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와 같은 질병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다 보면 목회에 대한 패배감과 절망감으로 영향력 있는 목회 리더십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자칫 불미스런 사고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밑빠진 독에 물 붓기’식의 목회가 지속된다면 과감하게 시에스타를 선언하라.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정해서, 때로는 현장에서 한 걸음 물러나서 주님 품 안에서 안식하며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고요한 침묵과 말씀 묵상으로, 영혼에서 울려나는 찬양과 기도의 고백으로 자신의 어려움을 내려놓고 솔직하게 주님 앞에 나아가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에게 새롭게 부어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재충전할 수 있다.

목회자의 자기관리는 목회의 성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누가 시켜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자기 스스로 민감하게 대처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선한 통로로 부르심을 받은 소명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으로부터 찾아오는 한계에 주저앉을 수 없는 것이다. ‘영적인 시에스타’를 가진 다음에 찾아오는 더 큰 성장을 기대해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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