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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을 부리는 길, 인생을 가르치는 길[안면도 뒤안길] 당신의 삶, 짓밟아서 미안합니다
김학현  |  nazunj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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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10월 02일 (월) 11:28:02
최종편집 : 2017년 10월 02일 (월) 11:41:15 [조회수 :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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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숲길을 걸으며 바다쪽을 보았습니다. 어부가 이른 아침에 삶의 터로 힘껏 달리고 있습니다. 그 풍경이 솔가지 품 안에 폭 들어옵니다.

 

(이전 기사 : 노을길에서는 누구나 자기 삶의 작가입니다)

내가 당신을 밟았습니다.
내가 당신의 삶을 짓밟았습니다.
내가 당신의 흔적을 지웠습니다.
죄송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죄스러울 따름입니다.
몸 둘 바 없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이 이리 부끄러울 수가 없습니다.
걷고 있다는 것이 이리 용감무쌍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도

살아있으므로
당신을 짓밟고 지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부디 이 용골때질을 용서해 주시길.

시간의 차이일 뿐
당신이나 나나
다 죽어있습니다.
다 살아있습니다.

노을길에서는 - <살아있다는 것>(김학현) 전문

오늘은 걸음이 무겁습니다. 내가 가는 길은 그 누군가가 이미 만들어 놓은 길입니다. 오늘 걷는 길은 누군가의 지난한 삶의 현장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지나가면 망가지고 마는 것들이 있습니다. 내 발자국이 덤벼드는 순간 먼저 영역표시를 했던 이들의 삶의 영역이 무너져 내립니다.

발걸음이 무겁습니다

   
▲ 바닷물이 그려 놓은 모래 위의 그림입니다. 피카소는 바로 안면도의 바다입니다. 더 훌륭한 화가가 또 있을까요.

 

그래서 걸음이 무겁습니다. 오늘은 숲길로 가 바닷길로 왔습니다. 숲길에서 느끼지 못한 상념이 바닷길에서 나를 머뭇거리게 만듭니다. 한참을 서서 게 구멍을 들여다봤습니다. 내게는 그냥 바다모래 위에 무수히 뚫린 구멍일 뿐이지만 게에게는 생명의 터요, 삶의 집입니다.

내가 무심코 밟고 지나면 그들의 집은 한 순간 뭉그러져 버립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지난한 싸움을 해야 다시 자기 집을 건설할까요. 이 무슨 시름의 장난이래요.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 든 숲길의 피톤치드의 상쾌함이 여기서 와르르 사그라지는군요. 이렇게 노을길은 내게 인생을 훈수합니다.

백사장항을 조금만 벗어나면 숲길로 갈 것인지 바닷길로 갈 것인지를 냉큼 결정해야 합니다. 이 작은 선택이 새벽에 머리를 갈팡거리게 만들지는 말자, 그게 내 생각입니다. 발이 내키는 대로 들어섭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발이 내키는 대로가 아니고 환경이 허락하는 대로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물이 빠졌으면 바닷길로 들어갑니다. 물이 들었으면 숲길로 들어갑니다. 오늘은 물이 많군요. 당연히 숲길로 들었습니다. 숲길로 가면 바닷길로 옵니다. 바닷길로 가면 숲길로 옵니다. 우리 인생도 이리 다른 길을 택할 수 있는 걸까요? 그럴 수는 있지만 이처럼 쉽게 결정할 수는 없겠지요.

똑 같은 태안의 해변길 중 노을길인 5코스를 걷지만 날마다 다른 감흥에 빠지는 것은 갈 때마다 물때가 달라 전혀 다른 새로운 길을 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어느 등산길이 사시사철의 변화 말고 다른 게 있습니까. 그러나 안면도의 해변길은 갈 때마다 다릅니다.

마치 마술을 부리는 것 같습니다. 어제까지 선명했던 글씨가 오늘은 싹 사라졌습니다. 어제 바다 동물들이 그려놓은 그림이 오늘은 파란 바다로 변했습니다. 나야 하루 걸으며 그 흔적들 가운데서 쉼을 얻지만 그들에겐 삶 그 자체였을 흔적이 다 사라졌으니...

마술을 부리는 길이 있습니다

   
▲ 삼봉의 꼭대기 전망대에서 백사장해수욕장을 잡았습니다. 저 끝 너머에 백사장항이 있습니다.

 

어제의 그림이 아닌 또 다른 그림 앞에서 한참을 멈춰 섰습니다. 멍하니 먼 수평선을 바라봅니다. 저 수면 아래 어디쯤 삶의 지난한 울부짖음이 남아 있겠지요. 그러다 다시 이곳에 와 또 다른 영역의 흔적을 남기겠지요. 나는 날마다 노을길을 걸으며 철학자가 되어가나 봅니다.

이러다 철학박사 학위 하나 받으려나 봅니다. 존재감만 흔적으로 남기고, 존재는 보여주지 않는 조그만 바다 동물들이 나에게 삶이란 그리 지난한 것이라고 말하는 듯합니다. 어느 화가가 이리 멋진 그림을 그릴까요.

물결이 그린 모래 그림, 게가 그린 생활미술, 물길이 만든 너와 나의 경계, 모두가 환상입니다. 내 다리가 멈춥니다. 내 발이 멈춥니다. 내 생각도 머뭅니다. 나의 지체 하나가 멈추니 모든 지체가 멈추는군요. 그리고 덩달아 머리는 수도 없이 많은 정보를 비축하기 위해 눈과 협치를 합니다.

그리도 못하는 정치인들의 협치는 제 눈과 머리가 해내는군요. 멈춘 곳은 서덜길과 모랫길이 만나는 그 지점, 바로 여깁니다. 어떻게 같은 바닷길이 이리 다른지요? 여기가 거기잖아요. 안면도 삼봉해변 바닷길, 물이 들어오면 바닷길이 되고 물이 빠지면 내가 걷는 길이 되는, 그 바닷길 말입니다.

그런데 보고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다릅니다. 서덜길과 모랫길의 형태가. 모습도 다르지만 색깔도 다릅니다. 촉감도 다르고 사는 생물의 종류도 다릅니다. 하나는 굴이 붙어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엄청나게 작은 게들이 엄청나게 많은 집들을 지었나 봅니다. 파낸 건축자제들이 즐비합니다.

모두가 예술입니다. 모두가 삶의 흔적입니다. 이리도 아름다운 삶의 현장에 취하는 게 나의 아침 운동입니다. 나의 노을길 걷기입니다. 이러면서도 행복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냉혈한이겠지요. 이런 행복은 아무나의 것은 아닙니다. 안면도에 사는 나 같은 사람의 것이지요.

누가 그랬나요. 운동은 건강하려고 한다고. 맞습니다. 나의 댓바람 운동은 건강을 위한 것입니다. 몸의 건강, 마음의 건강, 영의 건강... 너무 나갔나요? 나의 걸음은 발과 다리로만 하지는 않습니다. 나의 걸음은 머리로도 합니다. 가슴으로도 합니다.

게의 집이 때로 내 집입니다. 물길이 파놓은 웅덩이가 때론 내 목욕탕입니다. 마음과 심령을 깨끗이 씻는 목욕탕 말입니다. 서덜길이 덜컹거리는 내 인생길이 되기도 하고, 숲길이 내 잔잔한 인생을 비추기도 합니다. 행복에 겨워 피톤치드를 맘껏 뿜어내는 인생이길 고대하면서, 걷습니다.

또 걷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안면도 뒤안길]은 김학현 목사가 안면도에서 목회하면서 걷고, 만나고, 생각하고, 사진 찍고, 글 지으면서 들려주는 연작 인생 이야기입니다. 안면도의 진면목을 담으려고 애쓸 겁니다.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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