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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길에서는 누구나 자기 삶의 작가입니다[안면도 뒤안길] 삶의 흔적 지난한 노을길을 밟으며
김학현  |  nazunj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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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9월 29일 (금) 15:20:14
최종편집 : 2017년 10월 03일 (화) 00:06:02 [조회수 : 4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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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을길에는 홀로 외로운 바위가 있습니다. 누구를 그리워 기다리는 모습 같기도 합니다.
   
▲ 백사장해수욕장에서 삼봉 쪽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세 개의 봉우리가 있다 하여 삼봉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모두는 자기 삶의 작가입니다. 작가는 홀로 맞서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대신해서 글을 써줄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대신해서 삶을 살아줄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과 더불어 함께 살지만, 홀로 맞서 절대고독의 높은 돌담 벽을 넘어서야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 <절대고독> (고도원)

사람은 다 작가입니다. 글을 쓰든, 글을 쓰지 않든. 사람은 모두 자신의 삶을 나름의 방식으로 쓰는 작가입니다. 내가 걷는 노을길에도 작가들이 많이 삽니다. 사람 작가도 있고, 동물 작가도 있고, 식물 작가도 있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개성 넘치게 자신들의 삶을 쓰는지 모릅니다.

오늘은 그들과 마주했네요. 나는 그들과 대화하며 나의 삶을 씁니다. 내 걸음은 걸음이 아니라 진한 그들의 삶에 거나하게 취하는 독백입니다. 나의 마음을 그들에게 줍니다. 그들의 마음을 되돌려 받습니다. 누가 그랬나요? 그가 내가 되고 내가 그가 된다고요. 네, 그렇게 노을길이 나를 맞아주고 마중합니다.

50년 만에 발견한 나문재 때문에 좀처럼 백사장항에서 발걸음을 뗄 수가 없습니다(참고 글 : 나문재와 50년만의 해후, 행복합니다). 인생은 머무는 것이지만 떠날 줄도 알아야 하잖아요. 백사장항 주변의 나문재에게 안녕을 고하고 일어섭니다. 주꾸미 낚시꾼들과도 아쉬운 이별을 하고요.

인간의 흔적, 상쾌하지 않습니다

   
▲ 이곳부터 노을길이 시작됨을 알리는 현수막입니다. 어째 맘에 안 드는군요.
   
▲ 이곳이 본격적으로 노을길에 들어서는 입구입니다. 표지판이 정갈하지 않아 좋은 모습은 아닙니다.

 

백사장항에서 삼봉까지, 노을길을 걷습니다. 해변길로 갔다 바닷길로 돌아옵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같은 말 아니냐고요? 아, 설명이 필요하겠네요. 내가 말하는 해변길은 그야말로 바다를 옆으로 두고 나 있는 육지의 길입니다. 바닷가의 길이죠. 바닷길은 바다 속에 있는 길입니다. 썰물일 때 드러나 걸을 수 있는 길입니다.

사람만 걸을 수 있는 길이 해변길, 바닷가 길입니다. 바닷물과 내가 시차를 두고 걸을 수 있는 길이 바닷길입니다. 물론 바닷길은 배들고 다니는 길이고요. 걸을 수 있는 안면도 바닷길은 대부분이 해수욕장 길로 물 빠졌을 때 드러납니다. 밀물 때도 보통의 다른 바다와 달리 배가 다니기에는 얕습니다.

태안의 해변길이 안면도 입구인 백사장항에서 노을길이란 이름으로 꽃지해수욕장까지 이어집니다. 나는 오늘 본격적으로 노을길에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마주한 그네들의 삶과 맞닥뜨립니다. 실체를 보기도 하지만 실체를 보지 못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후자들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못 만난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나를 만나 줍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흔적으로 나와 진한 대화를 합니다. 이 만남이 그리 상쾌하지만은 않습니다. 노을길의 알림판부터 너저분하거든요. 자신만의 영역이라고 현수막도 걸어놓았군요. 압권인 문장 하나 소개합니다.

"사유지 무단출입금지“

허! 안 들어갔습니다.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역을 존중해 주기로 했습니다. 잘한 결정인지는 모르지만 마음이 무겁지는 않습니다. 공정하지는 않지만 죄를 지었다는 생각은 안 하게 됩니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요.

인간의 흔적, 상쾌합니다

   
▲ 자신의 영역을 확실히 표현하는군요. 얼마나 많은 삶들이 이곳을 훼손하면 이런 현수막이 내 걸렸을까요.
   
▲ 곰솔 사이로 캠프촌이 있습니다.
   
▲ 어떤 꼬맹이의 작품일까요. 12제자는 아니겠지요.

 

노을길을 알리는 안내판도 깔끔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 너저분함은 거기까지입니다. 다음은 너무 좋습니다. 인간이 조성했지만 인간만의 길이 아니기 때문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너저분함으로 시작하지만 상쾌함으로 남습니다. 인간이 빠지면 상쾌하군요.

'인간만 빠지면...' 한참을 서서 머릿속으로 만든 문장입니다. 그렇게 곰솔 밭을 누빕니다. 곰솔 아래 다소곳이 몇 채의 텐트를 보니 젊을 때 생각이 나더군요.

지리산 뱀사골 계곡에 두 아이와 함께 텐트를 쳤다가 갑자기 내린 폭우를 피하려 오밤중에 텐트를 부랴부랴 걷었던... 그때 잠에 취해 내 등에 업혔던 아이들은 다 커버렸네요. 그때 또 벌들이 얼마나 많던지. 그때처럼 벌이 매웠던 적은 없습니다.

이른 아침 곰솔 밭 아래 텐트촌은 조용하기만 하네요. 그들이 깰세라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깁니다. 오는 길은 바닷길입니다. 거기에도 인간의 흔적이 있습니다. 꽤 오래 전 흔적이 분명한데 오롯이 남아 있습니다.

인간은 이리 무언가를 지으려 합니다. 건설하는 게 인간의 본성일까요. 토목공사가 MB정부만의 특기가 아니었던 걸까요. 파도에 떠 밀려 온 송판에 가지런히 몽돌 13형제가 도란거립니다. 어떤 꼬맹이들의 작품이겠죠?

아이들이 늘어놓은 몽돌들을 보며 그 아이의 엄마는 '참 잘했다' 하지 않았을까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아이의 엄마는 그런 엄마였으면 좋겠습니다. 내게는 몽돌들의 수가 자꾸 12개로 보입니다. 12제자 때문일까요. 12지파 때문일까요.

하여튼 그놈의 신앙은 이런 흔적을 보면서도 포기할 수 없군요. 하하하. 13개가 아니라 더 많은 수의 돌들이 이 널판 위에 놓였을 수도 있습니다. 파도가 데리고 갔겠지요. 이 몽돌 형제들을 창조한 아이들은 지금쯤 코 잠자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전 몽돌 형제들과 한참을 대화했습니다.

인간의 영역 표시는 주로 사랑과 연결되는군요. '영아 ♡ 광'은 어떤가요. 조가비로 성을 쌓고 하트를 조가비로 만들어 놓은 것은요. 그러지 않아도 둘이는 알겠죠. 사랑하는 사이란 걸. 하지만 인간은 이리 흔적을 남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심성을 가졌습니다.

하나는 글씨가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얼마 안 되었죠. 하나는 조가비가 모래 속으로 묻혀 들어가고 있습니다. 나중에 하트가 다 사라진데도 그들의 사랑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곰솔 사이로 난 길은 곰솔 맞아 좋습니다. 바닷길은 진한 사랑의 짠맛이 나 좋습니다.

이러면 이래서 좋고, 저러면 저래서 좋습니다. 내 인생도 그러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 글의 독자들의 인생도 모두 좋았으면 합니다. 삶은 흔적을 남기든, 안 남기든 살아 볼만하기에 좋습니다. 인간은 혼자 자신의 삶을 쓰는 작가입니다.

기록이 남든, 기록이 없든 삶이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요. 오늘 내가 걸은 길엔 흔적이 있습니다. 사람의 흔적이 있습니다. 이기적인 흔적, 사랑어린 흔적. 모든 흔적이 그렇게 어울리며 자신들의 삶을 이야기로 승화시킵니다. 내 삶의 작가는 접니다. 당신 삶의 작가는 당신입니다. 당신이 쓰는 이야기가 노을길처럼 아름답기를 바랍니다.

[안면도 뒤안길]은 김학현 목사가 안면도에서 목회하면서 걷고, 만나고, 생각하고, 사진 찍고, 글 지으면서 들려주는 연작 인생 이야기입니다. 안면도의 진면목을 담으려고 애쓸 겁니다. 기대해 주세요. 일반 매체에도 실리기에 신앙면이 덜한 점을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 조가비로 성을 쌓고 하트를 조가비로 만들어 놓은 게 인상적입니다.
   
▲ 영아 ♡ 광’, 둘의 사랑이 지워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백사장항에 서 있는 노을길 표지판입니다. 여기서 방향이 결정되듯 인생의 방향도 어느 지점에서 바뀌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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