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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감신이라는 이름아래...
천세기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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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년 07월 04일 (화) 13:22:07
최종편집 : 2017년 07월 06일 (목) 22:07:05 [조회수 : 38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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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 어머니(모교감신)가 많이 아프답니다. 말할 기력도 없고, 숨조차 쉬기 힘들 만큼 많이 아파보입니다. 이러다가 혹시 돌아가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두렵기도 하고 가슴이 저려오기도 합니다. 아직 아무런 장례준비도 못했는데 자식들끼리 서로 잘났다고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눈물만 납니다.
 
  어머니(모교감신)가 아프신 것이 어제 오늘만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머니는 내가 힘들 때 찾아오면 아픈 기색을 감추시고 엷은 미소로 나를 반겨주시던 분이었습니다. 내가 힘들어하면 무엇이 널 그렇게 힘들게 하니 하시며 걱정 섞인 어조로 물으셨고, 괜스레 눈물이 나서 울고 있노라면 당신의 속치마로 닦아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실수로 넘어져 발버둥 치고 있을 땐 세월의 무게 속에 깎여나간 가냘프신 그 몸으로 날 일으켜 세워 주시고 보듬어 주기까지 해주시던 어머니는 지금은 아무 말씀도 못하시고 그냥 누워만 계십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자식들을 낳으시고도 단 한 번도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으셨던 어머니셨습니다. 자식들을 시집‧장가(목회) 보내실 땐 그 길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셨기에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시던 그 어머니의 모습이 아련히 생각납니다.

  6.25라는 동족상쟁의 비극을 몸소 겪으셨던 어머니, 민주화 항쟁 속에서 최루탄에 자식들이 울고 있을 때 재채기와 콧물을 흘리며 우리를 가슴에 품어 주셨던 어머니, 경찰들의 군화발로 자식들을 짓밟으려 할 때 당신의 품에 우리를 안으시고 우리 대신 짓밟힘을 당하시면 서도 우리에겐 애써 웃음을 보여 주시던 어머니... 그런 어머니 덕분에 우리가 여기까지 와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서 좀 더 잘해보겠다고 몸부림쳤던 것들이 오히려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어머니가 그토록 아끼셨던 외투(충정로 기숙사)를 자식들이 팔고나서 외투 대신 건강을 논하며 영양제(현 종합관 건물)로 대신 하려는 자식들에게 끝내 자신의 몸을 내어 주시면서 까지 그냥 엷은 미소만 보이셨던 어머니.

  어머니는 목욕만 하면 된다는데도 자식들은 그게 아니라며 억지로 어머니의 심장(웰치기념예배당)을 들어내고 이식 수술해 감행 했습니다. 그때도 어머니는 눈물만 흘리셨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이젠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만큼 중병에 걸리셨는데 여전히 우리들은 자신들의 방식으로 효를 말하고 서로 다른 방법으로 어머니의 중병을 고쳐 보겠다고 난리 법석을 부립니다.

  옛말에 ‘긴 병에 효자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금껏 한 번도 어머니를 제대로 모셔 본적이 없던 맏아들(이사장‧이사회)은 어머니를 이 지경까지 오도록 뭐하고 있었냐며 그동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어머니를 모시던 동생들을 몰아세우며 이제라도 어머니의 병을 고쳐 드려야겠다며 지금까지 쌓아온 명성과 권력, 게다가 돈까지 쏟아 부어가며 느지막하게 효도를 하겠다며 효도 아닌 편법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둘째(총장‧교수)는 녹녹치는 않지만 어머니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으로 살아 왔으니 그 누구보다도 막중한 책임을 가지고 어머니의 건강을 지켜드리고 싶었지만 오히려 불순한 생각들과 욕심으로 인해 자기들끼리의 자리다툼과 자존심 싸움으로 터지고, 깨지고, 망가지고, 상처투성이로 이젠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기까지 하고 있으며, 때론 사명도 문제의식도 잃은 채  무관심으로 일관하기도 합니다.

  손주들(재학생)은 신음하는 할머니(모교 감신)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한 채 한없이 울부짖고 절규하고 있는데도 아버지(모 교수)라는 사람은 거짓뉴스에 눈이 멀고 귀를 닫아 진실을 왜곡한 채 자식에게 있지도 않은 허물을 들추어가며 자신의 과오를 변명만하고 합리화 하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자기들이 어머니를 사랑하는 가장 옳은 방법이라고 억지주장을 하고 있으니 울 어머니의 심장은 시커멓게 타서 이제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어머니 곁에서 간병만 해 줄 것을 부탁하고 모셔온 값비싼 간병인(법인처)들은 지금 어머니의 등에는 등창이 생겨 썩어 문 들어가고 썩은 냄새가 진동 있는데도 그 아픔과 고통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오히려 문제를 부풀리고 자식들끼리 싸우는 것을 돈까지 챙겨가며 즐기고 있는 듯 보입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오래전에 출가한 셋째(81‧85학번)는 어머니를 위해 뭐라도 해 드리고 싶은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고 힘도 없어 쇠약할 대로 쇠약해진 어머니의 가슴을 얼싸 앉고 기도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기도하기를 벌써 784일째(18,816시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병세는 전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많은 오해와 편견들만 난무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들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몰랐던 손자‧손녀 녀석들(감신 재학생)은 이건 우리 일이 아니고 어른들의 일이니 나서지 말고 어른들에게 맡기자고 외면하고 돌아섰다가 그래도 이건 아니지 싶어 ‘악’이라고 소리라도 내보려고 법인처를 점검하고, 때론 단식농성으로, 때론 종탑에까지 올라가서 울분을 토해 보았지만 돌아온 것은 냉소적인 반응과 고소, 고발뿐이었습니다.

  돌아보면 모두들 어머니를 살려보자는 효도에서 출발했지만 오히려 문제만 더 키우고 모두가 실패한 채 어머니는 여전히 아파하고 돌아가실 날만 기다리고 계십니다.
 모두가 잘해보려고 하다가 우리 모두가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 상처로 인해 지금은 서로가 남의 탓이라고만 있습니다.

  감신 동문, 재학생 여러분, 어머니를 이렇게 돌아가시게 그냥 방치하시렵니까? 무엇이 답인지, 어디가 길인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내 아픈 상처만 보면서 아프다고만 말할 것이 아니고 이젠 다른 이들의 아픔을 바라보며 그 상처를 보듬어 주면서 어머니를 살려낼 길을 모색해야 할 때가 아닐 런지요.
 이 길만이 울 어머니(감신모교)를 다시 살리는 길이라 확신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저마다의 상처는 우리를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어머니 감신을 미치도록 사랑하다 생긴 상처랍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저의 아버지는 밥상에 앉으시면 늘 하시던 말씀이 있었습니다.
  ‘하얀 이밥(쌀밥)에 무보다 소고기가 많은 소고기국을 배터지도록 실컷 먹어보면 한이 없겠다’ 가난이 한이셨던 아버지의 그 말씀이 어린 제 가슴에 못이 박히도록 박혔습니다.

  감신대를 졸업하고 목회지가 아닌 여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고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하고 아버지를 저희가 모시고 살았습니다. 아내도 직장에 다니고 나도 적잖은 봉급을 받았기에 사흘이 멀다 하고 한우 최고 좋은 부위를 사다가 아버지의 상에 올려드렸습니다.

  한 달쯤 지났을까? 아버지가 밥상 앞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야야... 이젠 소고기는 그만 사라. 이가 없어서 먹을 수가 없구나.’ 그 말씀에 눈물이 팽 돌았습니다. 효도를 하고 싶어서 최선을 다했는데 내 생각대로 내 방법대로만 했던 것입니다. 그때 그 소고기는 효도가 아니라 이가 없는 아버지에겐 아픔이었음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모두들 어머니 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규학 이사장님(이사님)들을 존경할 수밖에 없었고, 이환진 총장대리님(교수님들)이 고맙고 자랑스러웠습니다. 모든 동문들께는 감사하다는 말 밖에 할 수가 없고 재학생들에게는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제 어머니 감신을 살리는 길은 내 생각, 내 방법이 아닌 주님의 방법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내가 꼭 해야 함이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어머니를 이해하고 어머니 입장에서 보아야 할 때” 인 것 같습니다.

  어느 날 타 대학 교수인 감신 후배가 전화를 했습니다. 형님, 죽어가는 감신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고 물어 왔습니다. 그때 이렇게 대답을 해 주었습니다. 어머니(감신모교)가 사는 길은 어머니를 살려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죽어야 어머니 감신이 산다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얻은 자리인데... 그래서 내려놓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하지만 효도란 내 편에서 생각하고 내 방법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 편에서 고려해야 하고 아버지가 원하는 방법대로 해드리기 위해 내 방법 내 생각을 죽여야 합니다.

  아버지에게 필요한 것은 맛있는 최고급 한우가 아니라 인플란트입니다. 그 후 돈을 모아 아버지에게 인플란트를 해드리려고 했는데 아버지는 하늘나라로 가시고 이제 더 이상 효도할 길이 없어졌습니다.

  “어머니 감신을 살리는 길은 옳고 그름도 아니고 탁월한 방법론도 아닙니다. 따스한 사랑으로 관계를 회복하는 그길 만이 지금도 울고 있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 주고 죽어가는 어머니 감신을 살리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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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식 목사 (115.23.147.226)
2017-07-05 06:29:22
천목사님
오랜세월이 흘렀습니디
서울 성북하늘아래 목회하던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수십년이 흘렀습니다
어머니 감신을 위해 애절한 모습이 저를 감동시킵니다
감신은 비상할것입니다
감신은 다시 날개를 펼것입니다
목사님 목양승리하시고 행복하시기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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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5
참으로 (217.249.75.113)
2017-07-04 14:07:24
아! 이 사진
옛생각이 나게 만드는 이 사진....
당시 학교에 근무하시던 이XX 장로님의 유명한 사진이 기억나네요
은행나무의 노란 색이 더 많이 들어간 사진도 있었는데...
지금은 당시의 신학교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해도 너무 많이 와 버려서....
학장에서 총장으로 바뀌면서 저 사단이 시작되었습니다. 안타깝습니다
리플달기
4 8
참으로 (93.194.88.187)
2017-07-05 15:32:10
사진을 보고...
개인의 취미로 사진전도 열었던 이 장로님....그 분의 제일 멋진 사진이
본관?으로 가는 층계 맨 위에서 웰치강당을 찍었던 것이라는 저의 생각.
1년에 50명씩 뽑고 대학원도 10명이내만을 뽑다가
왕창 늘려서 뽑기 시작한 때
박아무개 총장?이 탄생하면서 '자립'을 정책으로 내세우면서
망가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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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
그건 맞소 (117.111.24.54)
2017-07-05 11:09:07
뭔 총장?!
학장을 총장으로 둔갑시켜 권력과 지위를 포장한 바람에 실속은 사라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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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5
이 장로님? (116.33.203.144)
2017-07-04 18:53:16
그게 누구지요?
좀 알려주소!
리플달기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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