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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누리 북누리 함께 어우러지는 평화의 섬 교동을 꿈꾸며

                - 제2회 ‘한강 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에 부쳐

                                                                       이희환(인천도시환경연대회의)

정전협정 발효로 53년의 분단의 비극

올해로 남·북 분단의 실질적 결절이 된 1953년 7월 27일의 정전협정이 발효된 지 어언 53주년이 흘렀습니다. 정전협정 이후 기나긴 분단의 세월 동안 남·북의 민중들은 총성 없는 준전시의 정전상태에서 살아왔습니다. 1950년에 발발하여 한반도의 전역을 3년여의 기간 휩쓸었던 한국전쟁으로 말미암아 20세기 후반의 역사가 동·서 냉전체제로 균열하는 가운데 가장 많은 고통을 당한 것이 바로 우리 남·북한 민중이었습니다. 이 끔직한 냉전체제의 최전선 충돌지점에서 작동하기 시작한 한반도의 분단체제는 기나긴 세월 동안 남·북의 민중에게 실로 형언할 수 없는 분단의 비극을 선사하였을 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생존과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엄청난 피를 흘리며 야만의 세월과의 싸움을 강요했습니다.

그런데 어인 일인지요. 1990년을 전후하여 세계 냉전체제가 매가리 없이 와해되었음에 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분단체제는 21세기에 이르러서까지도 서슬 퍼런 고통을 자아내게 하고 있습니다. 냉전체제의 해체 이후 전세계의 유일 강대국으로 군림한 미국의 강력한 패권주의와, 동아시아의 맹주에서 세계의 맹주를 자처하는 중국과 일본의 발호 속에서 한반도 주변의 군사적 긴장감은 예전과는 전연 다른 방식으로 세계화되고 있습니다. 수백만의 인명의 죽고 다친 한국전쟁과 그 이후의 분단체제가 낳은 온갖 고통과 상처를 치유할 겨를도 없이 우리는 저 강대국들의 패권과 갈등 속에서 흔들리며 우리가 결코 원치 않는 한반도의 분단을 오늘날까지도 감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평화를 향한 교류와 협력으로 분단체제 허물기

그러나 거듭 말하거니와 그것은 결코 우리가 원했던 삶이 아니었습니다. 숙명이라니, 이는 더더욱 아닐 것입니다. 죽음과도 같은 전쟁의 엄청난 폐허와 상처를 딛고 굳게 닫힌 마음의 벽과 분단의 철조망을 허물면서, 이미 형태화된 타자의 이념을 넘어 한반도에 진정 평화로운 삶을 가꾸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과 헌신은 멈추지 않고 지속되어 왔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21세기의 첫머리에서 분단 반세기만에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였고, ‘한반도식 통일’을 향한 6·15공동선언의 유연한 합의에 기초하여, 분단의 계선을 넘나드는 활기찬 교류와 협력을 일구어가고 있습니다. 155마일 휴전선 지대에서는 철조망이 허물어지면서 도로와 철도길이 하나씩 놓여가고 있으니, 바야흐로 분단체제가 서서히 허물려가고 있는 것이지요!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꿈꾸며

허나, 지난 2002년 6월 황해바다의 보이지 않는 분단선 NLL(이는 우리 남측의 일방적인 북방경계선이다)에서 일어난 서해교전에서 보듯, 준전시체제의 위험한 생존경쟁이 배태한 연이은 핵무기와 미사일의 긴장에서 보듯, 한반도의 이 불안한 분단체제는 잠정적인 정전체제가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전환하지 않는 한 근본적으로 극복될 수 없습니다. 정전협정은 모든 자연과 사물과 인간을 적(敵)과 아(我)로 구분합니다. 지금 한반도의 평화로운 생태적 삶의 원형을 이루었던 휴전선 비무장지대는 무수한 지뢰와 감시초소로 살벌할 뿐입니다. 이 정전체제의 지뢰밭과 적대적 감시초소를 갈아엎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은 영구히 평화를 저당 잡히고, 반목과 적대의 고통스런 생존만을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강하구 평화의 배 띄우기는 평화의 바다 황해로 나아가는 첫걸음

지난해부터 서울, 인천, 강화의 시민들이 모여 분단체제의 차가운 경계선으로 얼어붙은 한강하구에 평화의 배를 띄우기 시작한 이 행사가, 한갓 호사취미가 아닌 화해와 평화를 위한 절체절명의 몸짓인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휴전선 비무장지대와 마찬가지로 철저히 인적이 끊겼던 한강하구는 인간들이 남겼던 오욕의 역사를 치유하고 다시 짙푸른 자연 생태가 되살아났습니다. 이 위대한 신생의 자연이 우리 인간들에게 손짓하노니, 화해와 평화의 물결로 합류해 흘러갈 것을 내내 종용하였습니다. 이 부름을 따라 한강하구의 이 종요로운 평화의 강줄기를 흘러 떠가는 우리들의 조그만 평화의 배는 우선 지난 세기의 끔찍한 학살과 전쟁의 상처를 위무할 것입니다. 그리고 끝내 정전체제의 불안한 준전시상태를 걷어버리고 드넓은 평화의 바다 황해로 끝내 ! 나아가야 합니다.

상처와 고통의 절해고도의 섬 교동도

마포나루에서 출항하여 한강하구를 목전에 두고 멈출 수밖에 없었던 지난해의 항로를 훌쩍 지나쳐, 올해 우리가 띄우는 평화의 배는 황해바다의 초입에 자리한 교동도에 마침내 가닿고자 합니다. 교동도, 이 섬의 슬픈 역사를 아시나요? 교동도는 전쟁 이전 황해도 연백과 그 주변 해안 마을들 간에  5일장이 열리며 서로 교류하고 어울리는 소통과 형제자매의 정을 나누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전쟁기에 가장 끔찍한 고통과 상처를 받았던 절해고도의 섬이 바로 교동도였습니다. 전쟁 통에 북녘의 땅이 된 연백과 직선거리 뱃길로 불과 1.8㎞의 거리에 육박해있던 교동도에서는 남·북의 양민과 군경들이 뒤엉키면서 피아간에 엄청난 학살과 살육이 저질러졌습니다. 크지도 않은 이 저주의 섬 교동도에서 터무니없이 죽어간 수백 명 양민의 슬? ?영혼은 오늘도 구천을 떠돌고 있습니다.

전쟁과 분단체제로 인한 시름을 겪지 않은 곳이 우리 국토에 그 어딘들 있겠습니까! 하지만, 분단의 결절지에 위치한 고도 교동의 고통은 한층 끔찍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교동은 그 결절에 위치한 까닭에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고 화해와상생의 미래를 열어나가는 평화의 등대섬으로 다시 불을 밝혀야 합니다. 우리의 평화의 배가 교동도에 기어이 당도하여, 악몽과도 같은 역사의 상처를 치유하고, 여기에 순결한 평화의 제단을 쌓고자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평화의 신세계를 여는 평화의 섬 교동도로 거듭나라

한반도의 평화를 염원하는 남·북의 민중과 전세계 평화시민들의 마음을 간직하며 한강하구를 타고 내려온 우리의 조그만 평화의 배가 정기적으로 이곳에 기착하는 날, 그런 날들이 계속 이어진다면 교동도의 모습은 달라지겠지요. 그리하여 이곳에서 남·북의 헤어진 이산가족이 만나고, 남·북의 어부들이 함께 공동어로의 슬기를 모으며, 남누리 북누리 함께 어우러지는 화해의 섬이 되겠지요. 더 나아가 동아시아의 민중들이 교류하고 협력하는 평화센터가 교동도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면 이야말로 한반도 신생의 첫걸음이 아닐는지요.

황해의 조그만 섬 교동으로부터 전국토로 평화의 기운이 뻗쳐 한반도의 분단체제가 그야말로 거품처럼 사라지고 항구적인 평화의 신세계가 열리는 그날은 과연 올까요? 오고야 말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평화의 배에 승선한 우리 모두가 함께 꾸는 꿈이니, 어쩌면 벌써 성큼 우리 앞에 다가와 있는 생생한 현실이기도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