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최재석 칼럼
동정녀 탄생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최재석  |  jschoi@cnu.ac.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6년 12월 07일 (수) 22:49:02
최종편집 : 2017년 01월 15일 (일) 15:19:07 [조회수 : 2726]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요즘 젊은이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젊은이들이 줄어드는 교회의 미래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다. 그래서 젊은이들을 위한 신앙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거나 젊은이들을 위한 적극적인 전도운동이 필요하다고 한다. 참 좋은 말이다. 그런데 그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에게 젊은이들을 위한 실현성 있는, 설득력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어 있는지 의문이다.

 

주견이 분명한 젊은이들

그들이 마련한 교육 프로그램이 구태의연한 방식이라면 효과가 없을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공부하느라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그들이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그들은 예수님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다는 말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학교에서는 고등동물이나 인간의 경우 남녀의 성관계가 없이 새끼나 아이를 낳을 수 없다고 배울 뿐 아니라, 그들도 그것이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데, 교회에 오면 처녀가 아이를 낳았다고 가르치니 젊은이들은 이 두 가지 가르침 가운데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구세대의 젊은이들과 달리 요즘 젊은이들은 자기의 주견이 뚜렷하다. 연애를 할 때도, 결혼을 할 때도 필이 꽂혀야 한다. 아주 옛날에는 부모가 정해주는 상대면 얼굴조차 보지 않고 부모의 말에 따라서 결혼했다. 그 다음 세대에서는 맞선을 본 후 자기 마음을 정했다. 지금은 소개를 받는 경우에도 만나보고 마음에 들면 여러 차례 만나서 상대를 알아보고 나서 결정한다. 그래서 요즘 중매가 아주 어렵다.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연애를 하거나 오랫동안 사귀어 본 다음에 결혼을 결정한다. 그리고 결혼을 한 후에도 서로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미련 없이 이혼한다.

이렇게 자기 주견이 분명한 요즘의 젊은이들은 학교에서 배운 것과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이 다르면 학교에서 배운 것을 따르려고 한다. 결혼과 마찬가지로 예전에는 부모가 교회를 다니면 자녀들도 응당 교회를 다녔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처녀 마리아가 아이를 낳았다고 말하면, 미혼모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마리아의 경우 약혼한 요셉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는 속도위반을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전 세대에서는 동정녀 탄생이 믿어지지 않아도 어른들이 믿으라고 하면 그 말을 받아들이려고 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다 보면 그 말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졌다. 그러나 요즘은 젊은이들의 주견이 분명해서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것, 받아들이기 힘든 것에 대해서는 태도를 분명히 한다.

하용조 목사가 연예인 교회를 맡았을 때의 일이다. 주일 오후 성경공부 시간에 하 목사님이 열정을 다해서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나셨다고 가르치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젊은 연예인 하나가 손을 들고 “목사님 농담하지 마세요. 어떻게 처녀가 아기를 낳아요!”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자 하 목사는 이 사실을 믿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더 상세히 설명했지만, 그 젊은이는 굽히지 않고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구봉서 장로가 벌떡 일어나서 상기된 얼굴로 소리쳤다. “야 인마! 마리아의 신랑 요셉도 믿었는데 네가 뭔데 안 믿어!”

이 에피소드는 신성종 목사의 『목회유머집』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에피소드는 단순한 유머가 아니라 요즘 젊은이들의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목사의 설명을 거부하는 젊은이가 믿으라는 장로의 우격다짐을 받아들이겠는가? 목사나 교사의 성경 본문에 대한 반복적인 설명도 장로의 강요도 요즘 젊은이들에게는 먹혀들지 않는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하라고 배운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신화적 이야기

나는 일전에 당당뉴스에 올린 글에서 부처의 출생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부처가 어머니의 왼쪽 옆구리로 나왔다는 기록은 신화적 이야기라고 말했다. 부처의 출생에 관한 기록을 읽는 사람들 중에는 그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 대부분은 부처의 출생 기록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예인 교회의 젊은이처럼 요즘 젊은이들은 동정녀가 아기를 낳았다는 기록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설명을 듣고 그들이 거부감을 표시하지 않고 침묵한다고 해서 그들이 그 설명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판이다. 그들은 속으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나?’ 의심하면서도 ‘교회에서는 그렇게 가르치는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심과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반복되면 주견이 분명한 요즘 젊은이들은 그들의 상식과 맞지 않는 교회의 가르침을 불신하게 된다.

우리는 그들이 수긍할 수 있는 새로운 설명을 찾아야 한다. 역사적 기록을 통해서 우리는 부처나 예수님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으로 출생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서도 단군을 비롯해서 김알지나 박혁거세 등의 탄생기록이 나온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단군은 사람이 된 곰과 환웅에게서 출생했고,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서는 김알지가 금궤에서 나왔고 박혁거세는 알에서 나왔다고 한다. 우리는 이들의 출생에 대해서 말할 때 단군신화나 개국신화라고 한다. 부처나 예수님의 출생도 이와 비슷한 설화 혹은 신화적인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런 신화적 이야기에서 문자적인 의미 그대로의 역사적인 정보를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유의 영웅 신화는 역사적 사실이나 생물학적 사실과 상관없이 그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의 위대함과 비범함을 나타내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설화에서 문자적 의미가 아니라 그 이야기가 전하려는 신앙적 의미를 중시해야 한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사람이 그 신적인 분을 일상적인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기 때문에 신화적인 표현을 빌려서 그 위대한 분에 대한 자신의 확신을 나타내려고 했다. 예수님의 탄생 설화는 예수님의 위대하심을 나타내려는 방편이다. 예수님의 출생이 남달랐기 때문에 그분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위대했기 때문에 이런 신화적인 이야기로 그분의 위대함을 그렸다. 따라서 신화적인 기록은 생물학적 상식에 맞지 않는 것이니까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신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탄생 설화를 문자 그대로 믿는 사람이든 그 설화를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든 신화는 본질적으로 역사적 사실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신화는 평범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를 표현하는 특수한 표현양식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신화적 이야기를 놓고 그것이 거짓이냐 진실이냐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예수님은 단순히 역사적 존재가 아니라 신앙의 대상이다.

때때로 우리는 언어로 우리가 느끼는 것을 표현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경험한다. 그래서 시인들은 자신의 느낌을 좀 더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서 비유를 사용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기는 하면서도 정확하게 설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을 목자에 비유해서 ‘하나님은 나의 목자’라고 말한다. 더구나 우리의 이해의 한계를 뛰어넘는 능력을 지닌 신적 존재를 표현하는 데에는 일상적인 경험을 표현하는 언어로 그 대상을 표현할 수 없다. 그럴 때 우리는 비유, 상징, 혹은 신화적 이야기를 동원한다.

원래 이런 용어들은 문학가들이 즐겨 사용하는 문학의 용어였지만, 현대에 와서는 이 용어들을 심리학자, 종교학자, 신학자들이 사용하고 있다. 분석심리학자 칼 융은 집단무의식을 설명하면서 원형과 상징, 신화와 종교를 언급했다. 종교학자 미르치아 엘리아데는 현상학적으로 종교의 역사를 논하면서 신화와 종교의 관계, 종교적 상징의 형태를 중시했다. 그리고 실존주의 철학을 공부한 신학자 폴 틸리히는 궁극적 관심에 관해서 말하면서 종교적 언어는 상징의 언어라는 점을 강조했다.

20세기 초에 융을 필두로 해서 나오기 시작한 이들의 이론은 19세기 후반에 시작된 종교학의 발달에 발맞추어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들 인문학자들의 이론은 성경에 나오는 신화적 이야기들을 젊은이들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해주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우선적으로 그들에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왜 종교적 신앙을 신화적 이야기나 상징을 통해서 표현하는지 알려주어야 한다. 신화나 상징에 대해서 이해하고 나면 그들이 학교에서 배운 것과 교회에서 배우는 것 사이에서 혼란을 겪지 않을 것이다.

동정녀 탄생에 대해서 문자적 의미대로 젊은이들을 가르치려고 해서는 전도의 성과를 거둘 수가 없다. 그런데 한국 교인들의 대부분이 문자적 성경읽기의 틀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그것이 큰 걸림돌이다. 그들이, 하영조 목사처럼, 열심히, 자세히, 반복적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친절하게 설명한다 하더라도 젊은이들은 남자를 모르는 처녀가 어떻게 아기를 낳겠느냐고 그 가르침의 진정성을 의심한다. 성령으로 잉태했다고 말하면, 그 성령이 남자였던 모양이라고 생각한다.

동정녀 탄생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젊은이들에게 영웅들이나 위대한 인물들의 탄생 설화를 예로 들면서 예수님의 출생도 그런 인물들의 출생과 마찬가지로 신화적 이야기를 빌려서 표현된 것이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교사들이 이야기해 주기 전에 그들은 위대한 인물들의 탄생 설화를 배워서 이미 알고 있다. 이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는 예수님은 그 사람들하고는 다른 분이라고, 하나님의 아들이어서 성령으로 잉태했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산타클로스에 대해서 말하듯이,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했다고 문자 그대로 말해주어도 되겠지만, 중학생만 되어도 신화적 이야기를 빌린 표현인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마치면서

교회에서 젊은이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먼저 젊은이들의 생각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예전에는 30년이 한 세대라고 했지만, 요즘에는 5년이 한 세대라고 말한다. 그만큼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이 급격히 바뀌어가고 있다. 요즘 학교교육 현장에서는 상대주의, 다원주의, 열린 사고를 가르치고 소위 열린 교실에서 인지주의나 구성주의적 교육방법을 중시한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교사들은 성경을 가르치기 전에 먼저 이런 교육현장의 교육내용이나 교육방법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융, 엘리아데, 틸리히 같은 신화, 종교, 신학을 연구한 인문주의자들의 책도 읽어야 한다.

실제로 주일학교 교사들이나 교육전도사들이 폭넓은 인문학 지식을 습득하기 어렵기 때문에 현대의 인문학과 교육방법을 수용하는 교육 지침서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현 상황에서 그런 지침서가 나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혹시 개인적으로 어느 교사가 동정녀 탄생을 신화적 표현이라고 가르친다면, 당장 당회장에게 불려갈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젊은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게 가르칠 것인가, 젊은이들이 납득하기 힘들어 하더라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가르칠 것인가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후자를 택하는 경우에는 젊은이들이 줄어드는 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교회가 쇠퇴하도록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교회를 부흥시킬 것인가를 놓고 중대한 결단을 해야 한다.

대부분의 교육전도사들이나 목사들은 성경과 보수적인 신학서적에 의존하기 때문에, 젊은이들과 호흡을 맞추기 힘들다. 근대적인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현대를 호흡하는 젊은이들을 이해할 수도 지도할 수도 없다. 젊은이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을 걱정하면서 그들을 교육하는 일과 전도에 힘쓰려는 열의는 바람직하지만, 열의만 가지고 되는 일이 아니다. 신학교에서 현대 인문학을 가르쳐야 하고 목사들이 보수적인 신학서적뿐 아니라 현대신학 사상이나 인문학에 관한 책들도 읽어야 한다.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이 베스트셀러가 되면 목회자들은 그런 책도 읽어야 한다. 그래야 교인들과 대화가 된다.

젊은이들뿐 아니라 일반 교인들도 마찬가지다. 교인들의 의식은 저만큼 앞서가고 있는데, 교회에서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외면하고 답답한 이야기만 하면 교인들은 교회를 외면하게 마련이다. 일부 교회 지도자들의 비행 때문에 교인이 줄어든다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더 큰 원인은 지도자들이 교인들의 생각을 파악하지 못하는 데에 있다. 교인들은 급속히 변하는 사회에 살면서 다양한 책들을 읽고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있는데, 목사들은 근대적인 사고를 벗어나지 못하고 오로지 성경 안에 갇혀 있다면, 그렇게 뒤따라가는 지도자가 어떻게 앞서가는 교인들을 인도할 수 있겠는가?

이런 미흡한 지도력의 결과가 이미 서양의 교회에서 나타났고 점차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창세기 1장의 기록을 과학적인 기록이라고 말하거나 그 창조 설화를 문자 그대로 믿으라고 하면 교인들의 마음이 답답해진다. 예수님의 탄생설화를 문자 그대로 의심하지 말고 믿으라고 가르치면 답답한 나머지, 연예인 교회의 젊은이처럼, 손을 들고 싶어진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묵묵히 참는다. 참다보면 가슴 한 구석에 응어리가 진다. 그 응어리가 커지면 교회를 떠난다.

교회 지도자들이 교인들의 답답한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주면 교회는 부흥하게 되어 있다.

 

[관련기사]

최재석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64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17개)
 * 11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24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익명 (82.XXX.XXX.86)
2016-12-08 10:34:50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리플달기
13 4
출처 (99.XXX.XXX.163)
2016-12-11 01:54:13
뭔가를 쓸라고 했더니
걸리적 거리는게 많아서 포기하고 갑니다.
리플달기
1 0
주예수를 위하여 (39.XXX.XXX.241)
2016-12-20 17:27:52
예수의 탄생 이야기나 부활이야기나 구원에 대한 이야기나 이는 모두 신앙에대한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이런 성경말씀을 과학적인 사고 방식으로 설명하려고 하면 이해가 되지 않은것은 사실입니다. 신학이란 분야과 과학이란 분야는 탐구의 대상이 다릅니다. 신학은 신의 존재와 가르침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것이고 과학은 자연현상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따라서 탐구의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이것을 같은 맥락에서 설명하려고 하면 무리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요즈음은 신의 시대가 아니라 과학의 시대가 되다 보니 이런 논쟁이 생기는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시대에 살고있읍니까? 신의 세계에 살고있읍니까? 물론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성경말씀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면 그만입니다. 문제는 요즈음 젊은이들은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있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사실 여부를 떠나서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를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가지 말씀을 상기하고 싶은것은 현대적인과학자인 아인슈타인도 신앙심을 갖고 성경을 열심히 읽는다고 합니다. 그가 성경을 열심히 읽는 이유는 성경의 말씀에 적힌 내용을 읽으면서 많은 의문이 생기기 때문에 읽는다고 했읍니다. 즉 우리의 생각의 폭을 넓혀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의 이러한성경읽기 방법은 그가 과학자이기때문일겁니다. 신학자였다면 좀 다른 이유에서 읽지 않았겠습니까? 성경말씀에 의문을 가지고 읽는사람과 그대로 수용하면서 읽는사람은 각기 다른 목적에서 읽고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문제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신학적사고보다는 과학적사고에 길들여져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읍니다. 과학적 태도로 성경을 읽는다고 이단이라고 몰아세우면 좀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제 말이 좀 잘못된점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읽어주샤서 감사합니다.
리플달기
1 0
김태연 (218.XXX.XXX.114)
2016-12-20 14:49:47
그래서 믿음이라는겁니다.
전도를하되 구걸은 아닙니다.
좁은길을 잊으셨나요?
부활을믿니요?
그럼 동정녀탄생을 믿어야죠?
수밴년전에 예언된.
기독교는 예언성취가 아닌가여?
리플달기
1 0
화평 (122.XXX.XXX.192)
2016-12-20 13:32:12
동정녀 탄생을 신화적으로 읽는다고 해서 기독교 신앙 전체가 와르를 무너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읽으면 오히려 성경말씀을 더 잘 이해하고 믿을 수 있게 됩니다. 성경에 서로 맞지 않는 글귀나 사건이 나올 때 그것을 보면서도 성경은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 말씀이라고 믿으려 노력하면 신앙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지요.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점점 더 많은 것을 의심하게 됩니다. 결국은 성경 전체를 불신하게 될 수도 있지요. 창세기 1장이나 동정녀 탄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정녀 탄생을 터무니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에게 그것이 신화적 이야기라고 설명해 주는 것이, 그들의 말을 빌려서, 훨 낫습니다.

많은 사람이 신화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우리는 많은 학자들이 종교적 신앙이 신화를 통해서 표현되어 왔다고 말하는 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리플달기
0 2
개혁본부 (210.XXX.XXX.164)
2016-12-16 14:21:40
지금의 성경은 길고 긴 시대를 거쳐오면서, 엄청난 감수와 수정을 반복하였습니다.

지금처럼 세상이 발달 하였다면 다소 어눌한 기록들이 깔끔하게 획일적으로 정리 되었겠지요.
그 시대는 낙타타고 말타고 다니던 시대 입니다.
답답하면 핸드폰해보고, 인터넷 뒤져보는 시대가 아님을...다 알진데...

여기에서 더 쪼갠다고?
우리들의 선배들도 다~ 그러한 문제에 봉착했었지만, 그래도 이러한 기록들을 더 이상 수정하지 않고 이 바탕 그대로를 유지하는 것은 왜일까?

여러분들 보다 더 연구하고, 고민한 믿음의 선배들의 노고에 침 뱉지 말고,
성경과 신의 경지에 인간의 손바닥만한 두뇌로 더렵히지 말지니.

여러분들이 신 보다 더 뛰어나나?
신의 그 역사하심과 그 방대한 섭리를 우리 인간이 해석해 본다구?

..........할말이 없다.
리플달기
4 2
그러나 (175.XXX.XXX.170)
2016-12-16 03:11:16
잘못 짚으셧네요
젊은이들은 교회의 가르침에 관심이 없을 뿐입니다. 또 예수님이어떻게 태어났는가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리플달기
3 0
잔소리 (122.XXX.XXX.192)
2016-12-14 13:52:56
본인에 의해서 삭제되었음
리플달기
1 1
한심하네 (121.XXX.XXX.219)
2016-12-12 17:50:32
아니 지금 글을 쓴 사람들이 목사요? 장로요? 기독교인입니까?
이곳에서 이런글을 봐야 하니 어처구니가 없네요
성경의 논리가 시대에 맞지 않아 유렵교회가 몰락하고 있다고? 성경은 성경 그대로 믿어야지 근본을 흔들면? 글 쓴이가 누군지 알고 싶네요.
교회가 성경의 본질을 상실하고 신화니 논리에 맞지 않으니 그러니까 유렵교회가 몰락하는 겁니다.
리플달기
5 8
물떠온 하인 (39.XXX.XXX.42)
2016-12-10 23:18:49
세상의 마지막은 어떠하리라는 것이 성경에는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차원이 적어도 1차원 이상있다고 믿습니다
리플달기
3 0
아름다운동산 (115.XXX.XXX.230)
2016-12-10 11:17:12
*세계인구중20억기독교인의 80%인 16억이 자유주의 신학을 따르고 있다고 합니다.자유주의 교단은 종교다원주의(모든 종교는 알고보면 다 같은 것이다)WCC에 들어있는모든교단이 이런생각,궁국적으로 만인 구원론,이슬람도 우리의 원수가 아니고 대화상대로 간주해야
*신학복음서중 제일먼저 나온 마가복음서는 마태,누가,요한과는 달리 동정녀 탄생설,성령잉태설은 한마디도 없다
*마가는 베드로로 부터 받은 구전자료를 종합하여 "베드로 복음"이나 "바울복음"
이 아닌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천명했습니다.
*모든종교가 교주를 신격화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21세기 현재도 고수하려는 근본주의를 신봉하는한 교세의 확장은 불가 하지요.
*예배중 사도신경을 암송하는것도 시대착오가 아닌지.신화적 내용은 신화로만 그냥 두는게 어떨지?
*예수님이 위대한 것은 신화적 내용이 아니고,그 당시 유대교의 병폐를 지적하고,모든인간 병자/과부/고아 등 소외자들을 보살펴 하나님의 나라를 이땅에 세우려 해다는것이지요.
리플달기
2 1
익명 (82.XXX.XXX.86)
2016-12-08 10:34:50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리플달기
13 4
출처 (99.XXX.XXX.163)
2016-12-11 01:54:13
뭔가를 쓸라고 했더니
걸리적 거리는게 많아서 포기하고 갑니다.
리플달기
1 0
나영우 (223.XXX.XXX.188)
2016-12-08 10:07:11
기자님 부활은 믿나요? 죄사함은 믿나요? 그것도 신화인가요?
리플달기
3 6
오주여... 이런 망령된 말을.... (169.XXX.XXX.200)
2016-12-08 08:45:56
최재경 장로님?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하면 이단인것은 알고 계시죠?
죄인이 죄인을 구원할 수 없는 당연한 결론을 부정하는 겁니까?
아니면 전도를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부정하고 거짓말을 하자는 겁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아십니까?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면 그것은 가짜 기독교입니다. 하나님이 천지창조 하신것은 믿으십니까?
교회의 부흥은 회개하는 인간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 거짓말(혹은 하나님능력을 부정)한다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고 사죄하세요.

당당뉴스에서는 왜 이런 기사를 허락하는 것입니까!!!
리플달기
8 11
거듭나기 (211.XXX.XXX.112)
2016-12-09 13:43:41
곰이 사람이 된 초자연적 현상을 역사적 사실로 믿으시나요?
곰이 마늘과 쑥만 먹고 100일 동안 굴 속에서 견뎌내고 사람이 되었다는 얘기를 사실로 믿으시나요? 부처님이 어머니의 옆구리로 나왔다는 얘기를 사실로 믿으시나요? 김일성이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어 일본군을 물리쳤다는 얘기를 사실로 믿으시나요? 믿지 못하시겠다면 예수님이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 것은 어떻게 사실로 믿을 수 있나요?
리플달기
6 2
불임과 임신 (99.XXX.XXX.117)
2016-12-08 07:47:17
아무리 씨를 뿌려도 안 되요.
씨도 있고, 밭이 좋아도 안되고요.
여자분들이 씨가 있고, 밭이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결혼을 하지만, 애가 안생기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아세요. 검사해 봐도 원인이 발견되지 않는 것들이 수도 없이 많은데, 이것은 뭐라고 하실래요. 남자들의 논리적인 사고 해결되지 않는 것이 얼마나 많은데요. 교회에서 여자분들이 많은 이유중에 하나가 비논리적인 부분이예요. 남자들의 머리로는 해결, 이해가 안되는 부분입니다. 목회자들이 성경만 보지말고, 의학도 좀 공부를 해서, 교회에서 이러한 문제로 고통받는 분들에게 도움을 줘야 합니다.
리플달기
0 0
김경환 (110.XXX.XXX.34)
2016-12-08 03:13:40
이렇게 하면 이게 울고, 저렇게 하면 저게 운다!
나치스의 경우 우파도 포용하고 싶고, 좌파도 포용하고 싶고, 공산당으로부터 노동자들을 빼앗아야 하겠고... 그러다보니 <민족(국가)주의+사회주의+노동계급>이 두루 짬뽕이 된 누더기 정강정책에, 당명도 <민족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이 되었다.

이렇게 되자 나치스당이 도대체 무엇을 지향하는지 모르겠다며 여기저기에서 정강정책을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히틀러는 “성경도 읽어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부분이 있는 데 하물며 정강정책쯤이야 무슨 상관이냐? 즉 동정녀를 부정하면, 성경의 다른 부분도 의심을 받게 된다. 닥치고 믿으라고 할 수밖에 없다. 카톨릭은 교황의 쇼맨십과 경건한 미사 따위로 사람들의 넋을 빼놓아 2000년 이상이나 지속되고 있지 않은가? 우린 이걸 배워야 한다. 우리가 군중집회와 가두행진으로 사람들의 넋을 빼놓으면 어느 누구도 정강정책 따위에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라며 개정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성경은 점 하나라도 바꿀 수 없다라는 원칙을 저버리면 다른 것도 와르르 무너진다. 동정녀 등의 문제는 정말 난감한 문제이다.
리플달기
1 0
신화와 사실 (116.XXX.XXX.57)
2016-12-08 02:34:30
예수 탄생 설화가 신화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신화라는 것을 알려주면서도, 생물학적 사실도 동시에 알려주어야 합니다. 즉 예수님은 요셉(?)의 정자와 마리아의 난자가 만나서 생성되었다는 것도 알려 주어야합니다.

왜냐구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만, 한 가지만 적습니다.

목사들도 신화를 사실로 착각하는 데, 일반 사람들은 더욱 더 그렇습니다. 즉 신화라고 알려주어도, 일반 사람은 특히 독실한 신앙인이라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사람은 신화를 사실로 신념화합니다. 이러한 착각이 불러오는 해는 많습니다. 목사를 우상처럼 숭배하는 것, 문제 많은 번영의 신학, 기타 등등의 문제는 신화를 사실로 착각하는 것에 기원합니다.

따라서 예수는 하나님의 정자(성령)이 아니라 인간 정자와 인간 난자가 만나서 태어나게 되었다고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연 현상을 직시하고, 신화와 자연 현상을 비교하여, 그 신화가 가지는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리플달기
6 7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