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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는 정말 어머니의 옆구리에서 나왔는가?
최재석  |  jschoi@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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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년 12월 05일 (월) 23:46:40
최종편집 : 2016년 12월 07일 (수) 22:42:47 [조회수 : 6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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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는 기원 전 6세기경 네팔과 인도 접경 지역에 위치한 조그만 왕국의 왕자로 태어났다. 아이를 낳지 못하던 부처의 어머니 마야부인은 45세쯤 된 어느 날 하늘에서 큰 코끼리가 흰 연꽃을 코로 물고 나타나서 그 부인의 주위를 몇 바퀴 돈 다음 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그 후 마라부인은 잉태했다.

해산일이 다가오자 마야부인은 관례에 따라 친정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한 동산에 이르러서 마야부인이 나뭇가지를 잡으려고 오른손을 드는 순간 아기가 왼쪽 옆구리로 나왔다. 그런데 아기가 나오자마자 놀랍게도 일곱 발자국을 걸어가서 오른손으로 하늘을, 왼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우렁찬 목소리로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고 외쳤다.

부처의 탄생 기록을 읽은 불자들 중에는 이 기록을 문자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 있다. 마야부인이 꿈을 꾼 것은 흔히 말하는 대로 태몽이다. 그런데 신실한 불자들 가운데는 오른쪽 옆구리로 코끼리가 들어오고 왼쪽 옆구리로 부처가 나왔다는 것을 정말 일어난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세상에 나오자마자 일곱 발자국을 걷고 우렁찬 소리로 외친 부처는 우리와 다른 분임이 분명하다고 그의 기적적인 탄생을 말 그대로 믿으면서 부처 앞에 엎드린다.

그러나 이 기록을 읽는 일반 독자들은, 특히 불교에 대해서 각을 세우는 기독교인들은 그 기록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어떻게 아기가 어머니의 옆구리로 나올 수 있고, 세상에 나오자마자 걷기도 하고 외칠 수도 있단 말인가? 우리나라의 고대 국가의 출현에 관한 기록을 보면 단군, 김알지, 박혁거세 같은 경우 지도자들의 탄생이 신화적 이야기를 빌려서 기록되었다. 대부분의 일반 독자들은 그런 탄생 이야기들은 역사적인 기록이 아니고 생물학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부처의 탄생 기록은 믿을 수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신화적 이야기에서 문자적인 의미 그대로의 역사적인 정보를 얻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유의 영웅 신화는 역사적 사실이나 생물학적 사실과 상관없이 그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의 위대함과 비범함을 나타내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부처의 탄생 설화에서 문자적 의미가 아니라 그 이야기가 전하려는 종교적 의미를 중시해야 한다.

부처가 위대한 분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이 그런 위대한 분을 일상적인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신화적인 표현을 빌려서 그 위대한 분에 대한 자신의 확신을 나타내려고 했다. 그 신화적 이야기는 불교에서 흔히 말하는 방편이다. 부처의 출생이 남달랐기 때문에 그분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부처가 위대했기 때문에 이런 신화적인 이야기로 그의 위대함을 그린 것이다. 따라서 신화적인 기록은 생물학적 상식에 맞지 않는 것이니까 전혀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신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부처의 탄생설화를 문자 그대로 믿는 사람이든 그 설화를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든 신화는 본질적으로 역사적 사실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신화는 평범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를 표현하는 특수한 표현양식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신화적 이야기를 놓고 그것이 거짓이냐 진실이냐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엄마가 좋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얼마나 좋으냐고 물으면, 두 손을 들어서 손짓을 하면서 ‘하늘만큼 땅만큼’이라고 말한다. 그 아이는 엄마를 좋아하는 정도를 자기가 아는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기 때문에 손짓을 곁들여서 그렇게 말한다. 그런 비유적인 표현을 통해서 엄마는 아이가 한없는 사랑을 표현하려고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아이의 볼을 비벼주고 안아준다. 이렇게 인간의 언어는 우리가 느끼는 것을 모두 표현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 더구나 우리의 이해의 한계를 뛰어넘는 능력을 지닌 존재를 표현하는 데에는 일상적인 경험을 표현하는 언어로 그 대상을 표현하기 어렵다. 그럴 때 우리는 비유, 상징, 혹은 신화적 이야기를 동원한다.

부처의 탄생설화 외에 부처가 제자들을 모아 가르칠 때 그가 강을 날아서 건넜다든지, 그의 제자를 투명 인간으로 만들었다든지 하는 기적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부처가 발이 젖지 않게 물위를 걸었다는 이야기도 그의 제자가 떡 한 덩이를 가지고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주어도 떡이 그대로 남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기적적인 일이 정말 일어났는가 일어나지 않았는가를 묻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그런 기적을 기록한 사람은 그 이야기를 통해서 부처의 뛰어난 능력을 한껏 표현하려고 했다는 것을 이해하면 된다. 이런 기적 이야기는 부처의 설법이 진리라는 것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고안된 방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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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나기 (211.34.110.112)
2016-12-06 14:00:25
예수는 정말 처녀의 몸에서 나왔는가?
부처님 이야기를 빌려 예수님 이야기를 하신 그 훌륭한 설명 방식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군요. 그렇습니다. 모든 종교의 경전에 나오는 신비한 이야기들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평범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를 표현하는 특수한 표현양식입니다. 불교나 기독교나 똑같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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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2
화평 (122.35.176.192)
2016-12-16 19:56:26
'개혁본부'님, 말이 너무 거칠어요. 지나치게 감정에 휩쓸리는 것 같아요.
감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 여기서 평소에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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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개혁본부 (210.210.254.164)
2016-12-16 09:41:43
이 글의 숨은 의도가 심히 불쾌하고, 교회는 다니되 비신앙인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아주 마이 듭니다.

심지어는 예수가 공 생활 3년전까지 어디에 있었는가? 에서 어떤이들은 불가에서 공부하고 왔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물 위를 걷는다든지, 오병이어 등... 같은 구석의 사랑방 이야기 같은 점이 참 많지요.

제가 아는 한 땡중(조그만 암자의 승려)은 내이름을 부르면서 "기독교는 못써" 라고 하면서 그 역사는 민생안정을 위하여 정치적으로 만들어지고 창작 된거야~ 라고 어느날 얘기를 했다가 서로의 이론 싸움이 밤샘으로 이어 졌죠.

이글의 숨은 의도는 "종교는 다 같다" 천당 지옥이 어디있냐?, 예수의 재림이 어디 있냐?" 라는 그 주장을 실제로 얘기하고 싶은데 현실성있게 그 얘기를 돌려 이러한 빗댄글로 기독교를 폄하한 글 이라는 주관적인 판단이 듭니다. 요즘 신학을 공부할 수록, 목회의 해를 거듭할 수록, 출신학교에 따라서 이러한 생각의 결론에 도달하는 이들이 참 많아 지는것을 느낍니다.

정국도 어수선 하고 크리스마스를 앞둔 이 시점에서 이러한 글을 쓰고, 이러한 글을 게제한 그 의도를 아주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 입니다.
때가 되 가는가 봅니다.

통탄할 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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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
거듭나기 (112.214.202.24)
2016-12-16 12:14:36
통탄할 것 없습니다
님의 생각대로 이 글은 예수님과 얽힌 신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쓴 글이 맞는 것 같습니다(기자가 이어서 쓴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라는 칼럼을 참고하세요). 그러나 이런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은 통탄할 일이 아니라 반가워해야 할 일입니다. 이제 한국 교회도 신화를 맹신하는 수준을 벗어나 이성의 힘으로 진리를 찾아가는 수준에 이른 것이니까요. 목회하시는 분 같은데 진리의 길에 동행하심이 어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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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본부 (210.210.254.164)
2016-12-16 13:22:40
항상 유혹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한마디로 X까고 있네~
그리고 나는 목회자가 아니라는것을 말해둡니다.

신의 그 큰 경지를 인간이 이해할 수 없었던 대목을 논 하는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옛날부터 있었던 일일진데~
그 시대마다 첨단의 세상을 빗대어, 과학의 논리에 빗대어 신의 창조와 그 역사를 정면 부인하는일~ 그거! 그거 조심해야 한다는!

여러분의 그 두뇌가 신의 그 생각/보살핌영역보다 뛰어나나?
옛날 성경을 기록했던 그 당시의 기자들 보다 지금의 기자들이 그 옛날의 현실성 있는 기사보다 더 뛰어나게 써댄다구?

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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