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2

2 충청. 드릴 목숨이 하나뿐인 것이 한이오 병천

병천 매봉교회와 유관순 생가

‘병천’을 순우리말로 풀면 ‘아우내’이다. 마을을 둘러싼 산에서 흘러내려온 물이 이곳에 모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병천의 옛 지명은 지령리였다. 한양에서 여주, 이천을 거쳐 충청도로 가는 길목에 있었기 때문이다. 100여 년 전, 충청도에 온 외국 선교사들 역시 이 길을 통해 공주로 갔다. 영혼 구원에 갈급해 이 낯선 극동의 작은 나라까지 온 선교사들은 잠시지만 빠르게 복음을 전하게 된 것이다. 쉬어 가는 와중에도 틈만 나면 복음을 전했다.

미국에서 온 감리교 선교사 윌버 스웨러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1898년, 그에 의해 처음 복음을 접하며 교회가 들어섰고, 사람들은 ‘지령리 야소교당’이라고 불렀다. 이후 로버트 샤프(Robert A. Sharp) 선교사와 그의 아내 앨리스 샤프(Alice H. Sharp, 한국명 사애리시)가 공주와 이곳을 왕래하며 성도들의 신앙생활을 도왔다. 이후 1901년 박해숙 전도사가 오면서 교회가 본격적으로 부흥하기 시작했다.

일제의 한반도 강탈이 본격화되자 매봉교회는 위험에 처한 나라와 상처받은 백성을 돌보는 지역의 중심이 되었다. 1905년 일본의 강압 속에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이를 개탄하는 의병들이 일어나 치열하게 항일운동을 전개했을 때 매봉교회 성도들은 그들을 뒤에서 적극 도왔으며, 1907년 국채보상운동으로 나라의 빚을 갚고자 할 때에도 이에 적극 참여했다. 당시 <대한매일신보>에는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한 매봉교회 성도 82명의 이름이 오르기도 했다.

▲ 교회외경 ⓒ촬영 이동훈 연구원 - 이하 동일

이렇게 교회가 주도적으로 항일투쟁에 나서자 일본은 1905년과 1907년 두 번에 걸쳐 일본의 군경을 보내 교회에 불을 질렀다. 하지만 성도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믿음으로 똘똘 뭉쳐 교회를 지켜 나갔다. 1907년 방화로 교회가 전소된 이듬해에는 지역 유지이자 유관순 열사의 일가인 유빈기와 유중무가 엘머 케이블 선교사의 지원을 받아 교회를 재건하였다. 조병옥의 부친 조인원도 이때부터 복음을 받아들이고 교회 공동체에 합류했으며, 일제의 강제 합병이 있었던 1910년에는 진명학교를 세워 민족 교육에 힘썼다.

그러던 중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이 소식을 들은 매봉교회 교인이며 지도자인 조인원, 유중권, 그리고 그의 딸 유관순 등은 4월 1일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 만세를 부르며 3.1운동에 가담하기에 이른다.

유관순은 1902년에 천안 동면 지령리에서 유중권과 이소제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유관순에게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사람은 그녀의 아버지 유중권이었다. 그는 일찍이 감리교에 입교해 개화사상을 갖고 민족계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아버지와 교회의 지도자를 보며 유관순은 기독교 신앙과 구국운동이 하나임을 배웠다.

그녀의 깨어 있는 의식과 자질을 눈여겨보고 교육적으로, 신앙적으로 도운 이는 앨리스 샤프 선교사였다. 앨리스 샤프는 남편과 함께 공주와 천안 지역을 다니며 선교활동을 펼쳤는데, 남편인 샤프 목사가 한국에 온 지 3년 만에 이질에 걸려 순교를 하고 말았다. 그러나 앨리스 샤프는 한국에서의 선교활동과 교육사업을 멈추지 않고, 도리어 더 활발히 하였다.

슬하에 자녀가 없었던 그녀는 어려운 형편의 아이들을 후원하고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유관순이었다. 유관순은 샤프 선교사가 설립한 공주 영명여학교(지금의 영명고등학교)에 1914년 입학하여 2년간 공부한 뒤 1916년 4월 이화학당 보통과 3학년에 교비생(교사가 되는 것을 조건으로 장학금을 지급)으로 편입했다. 이때도 유관순의 추천인은 앨리스 샤프 선교사였다. 아마 유관순에게 이화학당을 추천한 것도 샤프 선교사였을 것이다.

당시 이화학당에서는 조국 독립을 기원하는 기도회와 시국토론회 및 외부 인사 초청 시국강연회 등을 개최하고 있었다. 유관순은31운동이 있으리라는 소식을 듣고 당일 탑골공원에 나가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독립만세운동의 불길이 학생들에게까지 번지자 일본은 3월 10일 전국적으로 휴교령을 내렸다. 이에 유관순은 사촌 유예도와 함께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와 만세시위운동을 계획했다.

유관순의 아버지 유중권과 숙부인 유중무, 조인원 등이 나섰다. 이들은 음력으로 3월 1일이 되는 4월 1일 병천 장날을 기해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했다. 유관순은 인근 지역을 돌며 유림 대표와 큰 가문의 어른들을 찾아 만세운동에 서자고 설득했다. 또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만세운동에 사용할 태극기를 만드는 한편, 만세운동에 사용할 독립선언서를 구하기 위해 서울에 직접 다녀오기도 했다.

음력 3월 1일(양력 4월 1일) 장날, 전국에서 가장 격렬했던 아우내 장터 만세시위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3천여 명의 인파가 모였다. 오후 1시에 독립선언서가 낭독됐고, 유관순은 시위대 맨 앞에서 만세를 불렀다. 일본 헌병들은 즉각 시위대를 총검으로 무력 진압했다. 시위대의 격렬한 항쟁은 멈추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유관순의 부친인 유중권과 어머니 이소제를 비롯해 10여 명의 순국자가 발생했고, 40여 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20여 명이 체포를 당했다.

유관순과 그녀의 오빠 유우석도 체포당했다. 유관순과 유중무, 조인원 등은 “모든 것은 내 책임 아래 진행됐고 다른 이들은 죄가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유관순은 “잃어버린 제 나라를 되찾으려고 정당한 일을 했는데 어째서 군기(軍器)를 사용해 내 민족을 죽이느냐”며 “오히려 죄는 불법적으로 남의 나라를 빼앗은 일본에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17세 소녀라고 보기에는 너무나 논리정연하고 당당한 유관순의 말에 일본 재판관은 격분하고 이들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3.1운동의 민족 대표 중 하나였던 손병희가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는 점을 볼 때 이들이 받은 5년형은 상당한 중형이었으며, 유관순이 미성년에 여자임을 상기한다면, 그녀가 만세운동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 주도자들은 서울복심법원에 공소를 제기했고, 유관순은 징역 3년으로 감형됐다. 다른 이들은 최종심인 고등법원에 다시 상고했으나 유관순은 “삼천리강산이 어디인들 감옥이 아니겠느냐”고 하며 상고를 포기했다. 이후 유관순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는데, 옥중에서도 만세운동을 벌였다. 일본군은 갖은 고문을 자행하며 유관순의 정신을 파괴하려 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그 시기 유관순은 고문으로 인해 방광이 파열되었지만 마땅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되었다. 함께 옥살이를 했던 여성 독립운동가 어윤희는 당시의 유관순을 이렇게 회고한다.

“감옥 안에서 일을 할 때도 관순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순진한 마음으로 대하면서 일했다. 모자나 셔츠 같은 것을 뜨고 너무 충직스럽게…하나를 뜨더라도 성의껏 해서 모든 사람들한테 신임을 받았다. 어린애가 무슨 일이든지 충직하고 책임감이 강해 그와 같은 사람을 다시 보지 못했다. 하지만 배고픔과 외로움은 물론 무엇보다 동생들에 대한 걱정으로 슬퍼했으며, 고문과 상처의 후유증으로 고통을 받았다.”

이화학당 교사들과 가족이 마지막으로 면회했을 때에는 이미 유관순의 살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고, 결국 1920년 9월 28일 18세의 나이에 교도소에서 운명했다. 그녀가 체포되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일경과 가족들에게 남긴 말 한마디 한마디는 모두가 순수하고 뜨거운 그녀의 신앙과 애국심이 하나가 되어 나온 말로, 그 말이 전해질 때마다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지펴 놓기에 충분했다. 무엇보다 10대 소녀였던 그녀가 국권을 잃은 나라를 걱정하며 남긴 말은 당시 일제의 칼날에 힘없이 무너졌던 숱한 교회와 교인들을 부끄럽게 했다.

부모와 여동생의 죽음 이후에도 유우석은 독립운동을 계속 전개했다. 비록 가족은 독립운동으로 파멸될 지경까지 이르렀지만 그는 조국수호회, 원산청년회, 설악회 등을 조직하여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징역살이와 출옥을 반복했다.

1905년 을사의병 지원, 1907년 국채보상운동, 1919년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은 우발적으로 터진 것이 아니었다. 매봉교회에서 믿음이 자라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기독교의 정신이 나라를 살린다는 것을 깨달은 교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결국 이 만세운동으로 매봉교회는 일본군에 의해 다시 불에 타 완전히 없어졌다. 집회 금지령까지 떨어져 교인들은 모여서 예배를 드리기도 어려웠다. 그렇게 40년 넘는 세월이 흘러가면서 이 나라 독립운동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매봉교회는 잊혀갔다.

매봉교회가 다시 돌아온 것은 해방이 되고 나서 17년이나 지난 뒤인 1962년이었다. 이화여고에서 유관순을 기념하여 그녀가 살았던 지령리와 자매결연을 맺고 동창회의 후원으로 매년 성경학교와 봉사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재건 논의가 시작됐다. 그러던 중 이화여고가 개교 80주년을 맞이하던 1967년을 기념해 이화여고를 중심으로 유관순기념교회를 짓고 이를 ‘매봉교회’라 이름 붙였다. 이후 30년이 지나면서 노후화된 교회 건물을 1998년에 재건했다. 이번에는 기독교대한감리회에서 이를 주관하고 ‘유관순 기념 매봉교회’라 불렀다. 그 교회가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 매봉교회 옆에는 유관순의 생가를 복원해 놓았다.

<사진촬영 -이동훈 연구원>

▲ 외경-유관순생가     ▲ 유관순 생가 안 초가

▲ 설치물-3.1운동준비모습1     ▲ 설치물-3.1운동준비모습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