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에 흐르는 눈물

김종길(金宗吉)

1

산골 윗마을에 사는 단성댁은 인시(寅時)에 일어나 몸을 씻었다. 옷장 깊이 넣어둔 깨끗한 옷을 꺼내 입고 집을 나섰다. 제수(祭需)를 담은 소쿠리를 머리에 이고, 마을 뒤에 있는 당산을 올랐다. 입춘이 지났지만 날씨가 쌀쌀했다. 응달쪽에는 아직 잔설이 남았다. 찬바람이 지나는 나뭇가지 끝에 잔월이 걸려 있었다. 아직 어둑새벽이지만, 그는 익숙하게 산길을 걸었다. 집에서 산길을 따라서 한 마장쯤 올라갔다. 거기서부터 산세가 험하고 골이 깊어졌다. 심마니나 약초꾼들은 그 골짜기를 통하여 산을 오르내렸다. 계곡 입구에 큼직한 바위가 있는데, 마치 아이를 안고 있는 형상이어서 사람들은 ‘엄마바위’라고 불렀다. 그래서 그곳 골짜기를 모암골이라고 하였다. 자식을 얻기를 원하는 몇몇 아낙네는 엄마바위에 가서 정성을 드렸는데, 두 아들을 둔 단성댁도 엄마바위를 섬겼다. 그가 엄마바위와 인연을 맺은 것은 병약한 둘째 아들 때문이었다. 작은 아이가 세 살이었을 때 심한 열병을 앓았다. 어린 것이 고열로 시달리고 경풍을 일으켰지만, 산골에는 의원도 없고 약도 없어 제대로 치료할 수 없었다. 단성댁은 절박한 심정으로 엄마바위에게 치성을 드렸다. 작은 아들은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아들이 살아난 것이 하늘의 보우라고 믿었다. 그 일 이후로 마음을 다하여 엄마바위를 섬겼다. 명절이나 집안에 일이 생기면 그는 모암골에 가서 정성을 드렸다. 해마다 서낭제 비용을 부담하고 부락민들과 함께 서낭당에서 제사를 드려왔지만, 그의 마음은 엄마바위에게 더욱 기울어졌다.

단성댁은 작은 아들이 서울에서 내려온다는 기별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엄마바위를 찾아뵌 것이다. 갓밝이에, 그는 준비해온 신찬(神饌)을 바위 앞에 차려놓고 양초에 불을 붙이고 향을 피웠다. 몇 차례 절을 하고 손을 비비며 기원했다.

“어무이요! 우리 작은 아이가 집에 온담니더. 지금까지 생명을 지켜주시고, 건강하도록 이끌어 주시서 정말 고맙심니더.”

단성댁은 참종이에 불을 살라 소지(燒紙)를 올렸다. 주문을 외우며 몇 번이나 허리를 굽혀 절하였다. 지난 일을 생각하니, 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엄마바위의 보우로 죽을 뻔한 아들이 살아났다. 게다가 서울과 미국에서 공부하여 출세했다. 엄마바위가 고맙고 고마웠다. 그는 오래도록 엄마바위 앞에서 손을 비비며 기원했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일찍이 벌목장에서 노역하다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을 여읜 단성댁은 두 아들을 의지하고 살았다. 큰 아들 태우는 소학교를 마치고 농사일을 거들었다. 청년이 되자 부산에 가서 일자리를 찾았다. 한동안 하역부로 일하다가 방직공장에 들어갔다. 단성댁은 흉흉한 시절에 두 아들이 모두 객지에 나가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외지에서 몇 해를 보낸 태우는 연로한 어머니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귀향한 이듬해에 전부터 마음에 두어왔던, 아랫말에 사는 처녀와 혼인하였다. 그의 아내는 인물이나 성품이 수수했다. 부부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농사를 지으며 집안을 돌보았다. 물려받은 토지라고는 산비탈에 붙어있는 밭과 한 마지기 되는 계단식 논이 고작이었지만, 그들은 힘을 합하여 부지런히 땅을 일구었다. 건강과 근면성이 그들의 자산이었다.

작은 아들 준우는 일찍이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서 공부하였다. 튼튼하고 일을 잘하는 형과는 달리, 아우는 몸이 약하지만 영리하였다. 소학교를 마칠 즈음에, 아저씨뻘 되는 이가 나서서, 시골에서 썩히기는 아까우니 준우를 도회지로 보내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친척들이 십시일반으로 학자금을 마련하였다. 준우는 서울에 소재한 명문 중학교에 합격했다. 서울에 있는 중학교에 진학한 것은 마을에서 전에 없는 경사였다. 상급 학년이 되었을 때, 준우는 폐결핵을 앓았다. 학교에 소속된 미국인 선교사의 도움으로 신식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있었다. 그 선교사로부터 전도를 받고 기독교에 관심을 지니게 되었다. 병원과 요양소에 입원하여 있는 동안에 준우는 선교사를 통하여 얻은 영영사전을 뒤적이며, 미국의 초등학생용 교과서를 통째로 암송했다. 복학할 즈음에 그는 영문 단편소설과 영어성경을 읽었다. 학교에서 그보다 영어를 잘하는 학생은 없었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겠다던 그는 부흥집회에서 신앙체험을 하고나서, 돌연히 신학을 공부하겠다고 선언하였다. 법학을 포기했다는 소식이 고향에 전달되면서, 친척들로부터 학비 지원이 끊어졌다. 그 대신에 미국 선교부에서 수여하는 장학금을 받고 미국에 유학할 수 있었다. 이역에서 지내는 동안에 여러 손길을 통하여 학비와 생활비를 공급받았다. 어려울 때마다 도움을 베푼 미국인들이 고마웠다. 학부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준우는 미국의 유수한 신학교에서 이른바 정통 보수로 자처하는 기독교 근본주의 신학을 수학했다. 신의 주권을 믿었고, 성경은 거룩한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비평적인 방법으로 성서를 연구하거나 인간의 노력으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자 하는 자유주의 신학을 경멸했다. 미국은 그에게 신앙의 모국이며 삶의 표준이었다.

우수한 성적으로 신학교를 졸업한 준우는 귀국하여, 한동안 교단 선교부에서 일했다. 본부에서 보장하는 편안하고 안정된 자리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이미 목회 쪽으로 기울어졌다. 아골 골짜기나 소돔 거리에 복음을 들고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불 일 듯 일어났다. 때마침 고향 근처에 있는 교회에 담임자가 공석이라는 소식을 듣고, 영적 광야에서 목회하기로 작정했다. 선지자는 자기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유대 속담이 있었지만, 그 말이 고향을 복음화하려는 준우의 뜻을 꺾지 못했다. 그는 교단본부에서 사임하고 후임자에게 업무를 인계하는 절차를 밟았다. 준우는 사범학교를 마치고 교편을 잡은 여성과 혼인했다. 그는 외모가 빼어나고 성격이 명랑한 신여성이었다. 교회에서 진행된 혼인예식은 조촐했지만, 내노라 하는 하객들이 참석했다. 난생 처음 서울에 올라가본 단성댁은 출세한 작은 아들이 마냥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다.

2

복사꽃이 피고 보리이삭이 팰 무렵에, 준우는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 산골 부락에서 열차역까지 가는 데 반나절이 걸렸다. 태우는 이른 시각에 역에 나가서 아우를 기다렸다. 정한 시각이 훨씬 지나서 열차가 도착했다. 하이칼라 머리에 현대식 양복을 입은 준우가 나타났다. 어깨에 가방을 메고 큰 트렁크를 들고 열차에서 내렸다. 태우는 언젠가 부산항에서 보았던 신사의 모습이었다.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는데도, 말쑥한 옷차림을 한 동생을 보니 자신의 행색이 초라하게 여겨졌다. 잠시나마 동생과 비교한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는 마음을 추스르고 아우를 반갑게 맞았다.

“어서 오이라! 먼 길 오느라 고생했재?”

십여 년 만에 형제가 상봉하였다. 준우는 세련된 서울 말씨로 태우에게 인사했다. 어린 시절에는 스스럼없이 지냈으나, 아버지를 대신하는 형이기에 경어를 썼다.

“아, 형님! 오래 기다렸지요? 열차가 연착하는 바람에 늦었어요.”

영어로 된 제목이 두꺼운 표지에 금박으로 인쇄된 책이 준우의 손에 들려있었다. 태우는 아우가 창문 쪽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는 모습을 상상했다. 읽던 책을 넣고자 가방을 열자, 그 안에도 두툼한 책이 몇 권 들어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려운 서적을 보는 동생이 부럽고 자랑스러웠다. 한때 그도 공부하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학업을 포기했다. 부산에 있는 방직공장에서 일할 즈음에 일본에서 온 한 노동자를 만났다. 고등교육을 받은 그가 관리직도 아닌 일반 직공으로 일하는 것이 의아했다. 아무튼 그 사람은 태우에게 좋은 선생이었다. 그와 교제하면서 현실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그때부터 농민과 노동자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꿈꾸게 되었다. 태우는 밤이 늦도록 그와 대화하며 세상 돌아가는 것을 배웠다. 때로는 숙소에서 일본 서적에서 부분적으로 발췌하여 번역한 유인물을 읽었다.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하루하루 배움을 즐겼다. 어머니 때문에 귀향하는 바람에, 더 이상 공부할 수 없었다. 그 노동자도 태우와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괘안타! 너를 보니 반갑고, 참 좋다.”

환하게 웃는 태우는 허우대가 좋고, 구레나룻이 잘 어울렸다.

“그란대, 제수씨는 함께 안 오시나?”

“이곳에서 어느 정도 자리 잡으면 내려올 겁니다.”

그는 큼직한 손으로 동생의 트렁크를 받아들었다. 형제는 해질녘에 집에 당도했다. 단성댁은 오랜만에 만난 작은 아들을 반갑게 맞았다. 어려서 집을 떠나 어른이 되어 돌아온 아들을 쓰다듬었다.

“그래! 애 썼구마. 이렇게 훌륭한 모습을 너그 아부지가 보시면 참 좋을 낀대.”

“어머니, 앞으로 저희가 어머니를 잘 모시겠습니다.”

단성댁은 대견스럽게 여기며 작은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래, 고맙데이. 너그가 잘 살면 내는 안 묵어도 배부르다.”

간단하게 안부를 나누고, 단성댁은 부엌으로 나갔다.

“시장하재? 퍼뜩 상을 차려 올 테니, 우물에 가서 씻고 오너라.”

저녁식사를 마치고, 세 사람은 호롱불 아래서 밤이 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두 아들을 거느린 단성댁은 세상을 얻은 듯이 마음이 흡족했다.

다음 날 아침식사를 마치고, 단성댁은 아들에게 아버지 산소에 성묘하기 전에, 엄마바위를 먼저 찾아뵙자고 청하였다. 준우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리하겠다고 대답했다. 두 아들과 함께 엄마바위를 만나러 가니, 단성댁은 감개무량했다. 머리가 희어지고 허리가 조금 굽어진 단성댁이 앞장서고, 말쑥한 차림으로 준우가 그의 뒤를 따랐다. 제수가 담긴 소쿠리는 태우의 손에 들려있었다. 산길은 골을 따라 이어졌다. 봄을 맞은 산야는 생기가 돌았다. 산은 아래서부터 신록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산야초가 산비탈을 치장하고, 맑은 물이 바위를 타고 흘렀다. 저 멀리서 이름 모를 새들이 명랑하게 지저귀었다. 골짜기가 깊어지는 곳에서 엄마바위가 나타났다. 아이를 품에 안고 산에 기대어 앉아있는 엄마바위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단성댁은 길에 앉아 숨을 고른 후에, 골짜기에 흐르는 시원한 물에 세수하고 광목 보자기로 얼굴을 닦았다. 그리고 정성된 마음으로 엄마바위 앞에 음식을 차렸다. 태우는 부싯돌에 부싯깃을 놓고 부시로 쳐서 불을 일으켰다. 제수용 양초에 불을 붙이고 향을 피웠다. 주전자를 든 단성댁이 잔을 준우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인자 어무이한테 술을 따르고 절을 올리거라.”

“저 …… 어머니, 저는 바위에 절할 수 없습니다.”

뜻밖에 준우는 어머니의 명을 거절하였다. 어린 시절에는 시키는 대로 절을 했던 그가 순순히 말을 따르지 않자 단성댁은 순간 당황하였다.

“오래간만에 왔으니, 돌어무이한테 절을 올리거라.”

어머니의 간청에도 아들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아닙니다, 어머니! 저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아들의 표정을 보니 더 말해도 들어줄 것 같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단성댁은 혼자서 정성을 드려야 했다. 몸에 밴 순서에 따라서 의식을 진행하였다. 정성을 다해 엄마바위에게 절을 하고 손바닥을 비비며 아뢰었다.

“어무이요! 우리 작은 아가 어무이한테 인사드리러 왔심니더. 그동안 서울하고 미국에서 공부하고 목사가 되어서 왔심니더. 이 모든 게 다 어무이 은덕입니다······.”

그는 몇 차례나 더 절을 하고 소지를 올리며 축원했다.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던 준우는 자신을 바위덩어리의 아들이라고 여기는 무지한 어머니를 안타깝게 여겼다. 늦기 전에 어머니를 어두움에서 건져내야 한다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어머니, 앞으로 바위에게 바치는 정성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바꾸면 어떻겠습니까?”

“머라꼬? 예배가 머꼬?”

“살아 계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고?”

아들의 제안에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하나님은 천지를 지으시고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전능자이십니다.”

그는 성경을 펼쳐서 하나님의 천지창조를 이야기하였다. 이어서 인간의 타락과 하나님의 구원에 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머니를 사랑하시어 구원의 길을 마련하셨지요. 죄인을 구원하고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듣고 있는 어머니에게 결단을 촉구했다.

“어머니, 주 예수를 믿으세요. 그리하면 우리 집이 구원을 받습니다.”

단성댁에게는 대부분의 내용이 생소했다. 비록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어려서부터 반듯한 아들의 말을 허투루 여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까지 섬겨온 엄마바위를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내는 이미 바우어무이를 섬긴다 아이가. 그 분도 신령하고 영험하데이. 네가 병났을 때 고쳐주고, 지금까지 길러주신 분이 바로 돌어무이데이. 그란대 이자 와서 내가 우찌 어무이 은혜를 저버리겠노?”

단성댁은 아들의 눈치를 살피며 간곡하게 말을 이었다.

“네 말이 다 올타. 네가 믿는 하나님도 좋은 분일끼다. 하지만 내는 바우어무이를 섬겨야 하니라. 모두 너 잘되라고 하는 게 아이가. 그동안 돌어무이가 돌봐주시지 않더나?”

준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단성댁의 손을 붙들며 말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어머니! 저 바위는 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피조물 앞에 엎드려 절하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됩니다.”

아들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단성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태우는 종교에 마음을 두지 않았지만, 드러내놓고 어머니와 동생의 믿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경우에 무속 신앙은 힘겨운 삶의 버팀목이었다. 준우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어린 나이에 객지에서 생활한 아우에게는 기독교가 정신적인 기둥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신앙을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그가 입을 열었다.

“그만 하거라. 어무이가 이제껏 믿어 오신 대로 해 드리자.”

준우는 어머니로부터 몸을 돌려 태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니가 그릇된 길을 가시게 그냥 지켜보자고요?”

“와 그릇된 길이라? 어무이는 우리가 잘 살기를 비시는 기 아이가?”

“잘 사는 게 뭔데요?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 먹고 마시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같은 사람한테는 굶지 않고 하루 세 끼 묵고 사는 기 가장 큰 일이라.”

“사람이 밥만 먹고 살 수 없다고요. 하나님 말씀을 먹고 살아야지요.”

“하나님 말씀으로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겄나? 배고픈 사람한테는 밥이 하늘인기라!”

“밥이 하늘이라고요? 아니! 하늘이 밥이지요. 생명의 양식이 하늘로부터 땅으로 내려오는 겁니다. 예수님의 몸은 생명의 밥이고, 그분의 피는 참된 음료지요.

“예수가 우찌 사람의 양식이 되는 긴지 내사 모르겄다.”

“예수님은 우리의 소망입니다. 눈에 보이는 소망은 헛것이지요! 이 세상에서는 소망을 이룰 수 없어요.”

“와 이 세상에서 소망을 이룰 수 없겠노? 인민이 뭉치서 이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맹글어야 하지 않겄나?”

형제는 서로의 말이 어긋나는 것을 느꼈다. 같은 말을 쓰는데도 벽에 막힌 듯하였다. 종교 문제는 앞으로 천천히 생각해 보자고 태우가 말했다. 세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골짜기에 흐르는 물소리만 들려왔다.

그날 단성댁은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작은 아들을 만나서 반갑고 기쁘기는 한데, 무언가 허전하고 답답하였다. 형제가 서로 뜻이 맞지 않은 게 마음에 걸렸다. 아들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라도 생기면 어찌 할까 하여,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이 일어났다.

3

읍내에는 유생들이 공부하던 서원이 있고, 동리 입구에 서낭당도 있었다. 마을 모퉁이에 작고 낡은 교회 건물이 서있었다. 일찍이 기독교가 이곳에 들어왔지만, 토착민의 성향이 드세어 전도가 잘 되지 않았다.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내려온 준우는 여기서 시작해보기로 작정했다. 한동안 기도와 성경 읽기에 전념했다. 이어서 교회와 주택을 수리하고, 주변 환경을 정리하였다. 시간 나는 대로 읍내를 다니며 주민들에게 인사하며 전도했다. 어둠의 세력에 사로잡혀 죽음의 골짜기로 끌려가는 영혼들을 구하려는 사명감으로 그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가 담임목사로 부임한 이후로 읍내에 있는 교회는 오랜 침체기를 벗어나 차츰 변화하기 시작했다. 교인 수가 조금씩 증가하였다. 미국에서 공부한 목사가 왔다는 소문을 듣고 구경삼아 교회에 와보는 이들도 있었다. 방학 때에는 서울에 있는 학생들이 내려와서 봉사활동을 하여, 교회에는 활기가 넘쳤다. 인근에 있는 군부대도 힘이 되었다. 열렬한 기독교 신자인 연대장은 대민지원에 적극적으로 교회 일에 협조했다. 교회가 성장하는 데에 특히 미국의 도움이 컸다. 준우의 통역으로, 가끔 미국인 선교사가 와서 설교하였다. 교인들에게 미국은 우리나라의 우방이며 은인의 나라였다. 마을 사람들은 교회를 통하여 여러 가지 혜택을 누렸다. 미국에서 온 구호물자는 교회를 통하여 마을에 보급되었다. 밀가루, 설탕, 의복 등은 전도에 한 몫을 담당하였다. 관공서에 들어가려고 목사의 추천서를 받고자 교회에 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과자나 문구 같은 미제 물건은 아이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일요일이면 교회학교에 아이들이 북적거렸다.

몇 달 전에 미국 선교부에 교회건축 지원을 신청했는데, 요청을 승낙한다는 연락이 왔다. 유려한 영문으로 설득력 있게 작성한 서류가 유효했던 것 같다. 준우가 건축 건으로 회의를 소집했다. 그런데 연로한 박 장로는 미국에 의존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았다. 유학자 집안에서 자랐고 서당 훈장 노릇을 한 탓인지, 그는 성질이 꼬장꼬장하고 깐질겼다. 박 장로는 비록 느리더라도 자력으로 교회를 건축하자고 하였다.

“외부의 지원을 받아서 건축하는 것을 신중하게 재고하면 어떨까예?”

담임목사의 목회방침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송 집사가 그의 말을 맞받았다. 송 집사는 공산당이라면 치를 떠는 반면에, 미국에 대해서는 호의적이었다. 물건도 미제라면 무엇이든지 좋게 여겼다. 그래서 미국 선교부의 지원을 감지덕지 여겼다.

“장로님은 왜 절호의 기회를 저버리고, 미국 선교부의 호의를 거절하시겠다는 거요?”

일본 패망 이후, 자본주의 세력과 공산주의 세력이 한반도에서 충돌하였다. 동족의 분열과 반목을 겪으면서 서북지역 출신의 기독교인들이 38도선 이남으로 대거 이동하였다. 황해도 해주가 고향인 송 집사는 일찍이 신식 교육을 받았고, 고등보통학교 시절부터 교회에 나갔다. 송 집사의 아버지는 일본에 부역하여 재산을 늘렸다. 가업인 약재사업에다가 토목사업을 확장했다. 백석지기 논을 가지고 있던 그는 소작인들에게 인심을 잃어서 혼란기에 좌익 사람들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그 사건이 일어나고 나서 송 집사 가족은 선산과 넓은 토지를 버려두고 월남하였다. 다행히도 사업차 마련해둔 현금과 금붙이를 가지고 피난할 수 있었다. 송 집사는 이곳저곳을 전전하다가 마침내 읍내에 정착했고, 마을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공산주의자들에게 아버지와 재산을 잃은 그는 좌익 세력에 대하여 깊은 적개심을 품고 있었다. 서북 지역의 청년들을 중심으로 ‘서북애국청년단’을 조직하여 좌익 척결에 앞장섰다. 신탁통치에 대하여 찬성과 반대로 의견이 분분할 때, 송 집사는 청년단을 이끌고 다니면서 찬탁자들을 겁박했다. 제주도에서 총선거를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났을 때, 서북애국청년단은 그곳으로 건너가서 시위대와 맞서 앞장 서서 싸웠다.

송 집사의 반박에 박 장로는 주저하는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호의를 거절하는 기 아이라 우리 심으로 교회를 짓자는 기지요.”

“우리 힘으로 하자고요? 좋은 말이지요. 하지만 어느 천 년에 될까요?”

좁고 낡은 교회는 건축이 필요했지만, 자체적으로 해결하기에 역부족이었다. 두 사람의 언쟁을 듣고 있던 준우는 회의를 정리했다.

“두 분의 말씀이 모두 일리가 있습니다. 교회 건축에는 우리 모두 뜻이 일치합니다만, 방법과 절차에서 생각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미국 선교부는 선교 차원에서 교회건축 사업을 시행하여 왔고, 이번에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기회가 온 것입니다. 순리대로 주어진 기회를 선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박 장로는 근래에 와서 교회 건축 문제로 그의 입지가 좁아짐을 느꼈다. 담임자는 중요한 일이 생기면 연로한 박 장로를 제쳐놓고 순발력 있고 협조적인 송 집사와 상의하는 일이 많았다. 의회에서 논의한 끝에 교회를 건축하기로 결정했다. 송 집사가 건축위원장을 맡게 되었다. 그는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있는 넓은 땅을 신축부지로 선뜻 기증하였다. 미 선교부가 건축비용을 후원하고, 군부대에서는 인력과 중장비를 지원하였다. 송 집사가 이끄는 서북애국청년단이 튼실한 인력을 제공했다. 도로를 확장하고 교회 부지를 조성하는 데 동원된 불도저와 굴삭기는 아이들에게 큰 구경거리가 되었다. 건축자재를 실은 군용트럭이 지나가면 아이들은 그 뒤를 쫓아다녔다. 조감도에 그려진 교회는 근방에서 볼 수 없는 현대식 건물이었다. 전망이 좋은 장소에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교회가 건축되었다.

읍내의 교회는 일취월장 부흥하였다. 교회를 완공하고 나서, 예배당 봉헌식과 아울러 송 집사의 장로 장립식을 거행하였다. 단기간에 괄목할 교회성장을 이룩한 준우는 지역사회와 교단으로부터 유능한 목회자로 인정받았다. 교회는 봉헌 기념으로 마을 사람들에게 잔치를 베풀고 선물을 돌렸다. “가나안을 정복하라”는 주제로, 닷새 동안 부흥회가 열렸다. 정복해야 할 대상은 우상숭배와 공산주의였다. 부흥회 이후에 교인들은 낮에는 전도하고, 밤에는 기도회로 모였다. 목사는 십계명에서 첫째와 둘째 계명을 내세워, 우상을 버리라고 설교했다. 교인들은 삼삼오오 마을에 전도하러 다녔다. 교회는 미신 타파 운동을 전개하였다. 전도된 가정에서는 부적을 태우고 성주단지를 깨뜨렸다. 준우는 유다 왕국의 경건한 왕인 요시야의 종교개혁을 모범으로 삼았다. 교회를 통하여 마을에 새로운 일이 일어났다.

마을 어귀에 서낭당이 있었다. 서낭나무 옆에는 큼직한 돌무덤이 있었다. 임진왜란 때 한 의병 장수가 마을을 지키고자 싸우다가 그 자리에서 전사하였다고 한다. 피난 가는 사람들이 장사 지내지 못한 시신을 돌로 덮어주었다고 한다. 그 뒤에도 오가는 사람들이 던진 돌이 큰 무덤을 이루었다. 수백 년 됨직한 돌무덤은 세월의 흐름을 견디며 마을과 애환을 함께하여왔다. 주민들은 돌무덤에 함부로 손대지 않았다. 서낭나무는 마을을 지켜주는 신목이었다. 한때 하늘로 무성하게 가지를 뻗으며 기세를 자랑하던 나무는 이제 고목이 되어 속이 비었고, 땅에 쓰러질 듯 힘겹게 서 있었다.

준우는 서낭당을 비롯하여 마을에 있는 우상들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었다. 대동회로 주민들이 모였을 때, 그는 군청과 군부대의 지원을 받아서 교회가 마을에서 읍사무소로 이어지는 도로를 내겠다고 하였다. 도로 확장은 마을 사람들의 숙원사업이었다. 신작로를 확장하는 명분을 내세워, 동리 입구에 있는 서낭나무와 돌무덤을 철거하기로 하였다. 어느 날 송 집사가 은밀하게 이장을 만났다. 그는 이장에게 인부와 연장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식사라도 하라면서 두툼한 봉투를 내밀었다. 이제까지 의좋게 지내던 마을 사람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졌다. 이장패들은 마을을 발전시켜야 한다면서 서낭당을 없애는 일에 찬성했다. 일부 사람들은 서낭당을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의 땅을 빌어 농사짓는 이들은 내놓고 반대하지 못했다. 샘터에서 몇몇 아낙네들이 수군거렸다.

“서낭나무는 우리 마을을 지켜주는 신목인데, 우짤라고 그러노?”

교회 안에서도 조심스레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신작로를 서낭당 옆으로 내면 될 낍니더. 민간신앙은 전통문화인데, 구태여 서낭당을 없앨 필요가 있겠심니꺼? 잘못하면 교회와 마을이 멀어지게 됩니더.”

박 장로가 서낭당을 함부로 건드리지 말자는 의견을 내놓자, 송 장로가 씩씩거리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드러냈다.

“미신을 감싸주자는 겁니까? 교회의 사명은 우상을 진멸하는 겁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담임목사의 방침과 힘 있는 송 장로의 입장을 따랐다. 몇몇 사람들이 볼멘소리로 불평하였지만, 서낭당을 지켜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신작로 공사를 앞두고 교회는 동리 입구에서 시공감사예배를 드렸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리고 성 주위를 돌듯이, 교인들은 서낭당 주변을 돌면서 소리 높여 찬송했다. 교인들은 이 마을을 사로잡고 있는 어두움의 영이 떠나도록 통성으로 기도했다. 이어서 인부들은 철거 작업을 시작했다. 인부들은 사방에서 밧줄로 서낭나무를 묶어놓고, 나무밑동에 도끼질하고 톱질하였다. 마침내 서낭나무는 육중한 몸을 땅에 눕혔다. 나무는 여러 토막으로 나누어졌다. 일꾼들은 옆에 쌓였던 돌무덤을 허물어, 움패진 길에 깔았다. 신작로 공사가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단성댁은 작은 아들의 뜻을 받아들여, 교회에 나가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겠노라고 약속했다. 엄마바위든 하나님이든 모두 아들이 잘되라고 하는 일이기에, 아들이 원하는 대로 따르는 것이 도리라고 여겼다. 그는 마지막으로 엄마바위를 찾아가서 하직하고, 그동안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였다. 준우는 어머니의 회심을 기뻐하며, 성경전서와 찬송가를 선물하였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의인 아흔아홉이 행한 것보다 더 기쁜 일이라며, 온 교인이 단성댁을 환영하였다. 마음을 먹고 예배에 참석하였지만, 오랫동안 바위를 섬기던 그의 마음이 하루아침에 돌아서지는 못했다.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아들의 설교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글을 몰라서 성경을 읽을 수도 없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이름들이 그에게는 낯설었고, 이국적인 내용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설교할 때마다 ‘원죄’와 ‘대속’ 그리고 ‘삼위일체’ 같은 교리를 강조했지만, 단성댁은 그 내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교인간의 불화로 단성댁의 마음이 복잡했다. 언제부터인가 박 장로를 따르는 사람들과 송 장로 편에 선 교인들 사이에 미묘한 관계가 형성되었다. 교회를 건축하는 과정에서 양편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 박 장로는 생전에 남편과 가까이 지냈다. 그래서 그를 남편처럼 든든히 여겼다. 일전에 예배를 마치고 교회 마당에서 박 장로와 송 장로가 언쟁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박 장로가 아랫사람에게 면박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마음이 아팠다. 싫은 내색을 보이지 않았지만, 단성댁은 교회에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 불현듯 모암골이 그리웠다. 엄마바위를 섬기는 데에는 어려운 교리나 복잡한 절차가 없어도 되었다. 그곳에는 시샘도 다툼도 없었다. 언제든 가서 빌면, 마음이 편안했다. 어떤 투정이라도 받아주는 엄마 품이 그리웠다.

4

제2차 세계 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면서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 중심의 공산주의 진영이 대립하는 냉전 체제가 시작되었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하였지만, 여러 해가 지나도 한반도의 독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반도는 승전국의 전리품이었다. 소련이 한반도를 단독으로 장악할 것을 우려하여, 미국은 38도선을 군사분계선으로 제안하고 군정을 실시하였다. 국내의 정국은 여전히 불안했다. 1945년 연말에 모스크바에서 삼상회의를 개최한 이후, 신탁통치 문제로 사회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미국은 전략상 한반도의 분단을 꾀하고, 한국의 독립을 유보하고자 했다. 약소국의 독립보다 자국이 이익이 우선했던 것이다. 미국은 한국에 대한 신탁통치를 고집했다. 한반도 지배에 유리한 입장에 있다고 판단한 소련은 신탁통치 안을 수용했다. 그런데 동아일보는 “소련은 신탁통치 주장, 미국은 즉시 독립 주장”이라고 사실을 뒤집어 보도하였다. 동아일보의 오보 때문에 찬탁은 매국이고, 반탁은 애국이 되었다. 신탁통치를 두고 두 진영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고, 마침내 군중 시위가 촉발하였다. 반탁 세력과 찬탁 세력이 연일 충돌하였고, 우익과 좌익의 골은 갈수록 깊어갔다. 미소 공동위원회가 해체되면서 신탁통치도 무산되었다. 38도선을 기준으로 나라는 남과 북으로 분할되고, 한반도에서 미국과 소련이 각축을 벌였다.

통일 상태에서는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고 판단한 미국은, 남쪽 지역에 단독정부를 수립하고자 하였다. 이남의 정치 세력은 친미적 이승만, 민족주의 김구, 공산주의 박헌영 등의 계파로 분열되어 있었다. 미군정은 위임통치를 청원한 이승만을 내세워 남한에 단독으로 정부를 수립하고자 했다. 국제연합 총회에서 한국임시위원단의 감시 아래 제헌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결의했다. 단독 총선거는 남과 북을 분단시키는 것이기에, 전역에서 반대 운동이 벌어졌다. 봄에 제주에서 총선거에 반대하는 시위가 크게 일어났다. 경찰이 시위대에게 발포하였고, 이에 항의하여 도민들이 궐기했다. 좌익 세력이 합세하여 무장 봉기를 일으켰다. 미군정은 보다 강경하게 사태에 대처하였다. 폭력적인 진압에 대하여 저항의 불길은 제주 전역으로 확장되었다. 그해 가을에, 제주도에서 발생한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방경비대 14연대에 대대 병력을 출동시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자 일부 군인들이 진압 명령에 거역하고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미군정과 이승만 세력은 신속하게 반란군을 진압하고, 이어서 제주도에서 경찰과 군인 그리고 민간 우익 단체를 동원하여 시위대와 주민을 잔혹하게 탄압했다. 결국 38도선 이남에서 총선거가 실시되어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섰다. 이에 맞서 이북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탄생하였다. 남과 북에 각각의 정부가 수립됨으로 남북통합은 멀어져갔다. 돌아가는 사태가 심상치 않았다. 무슨 일이라도 터질 것 같은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돌았다.

읍내 부락들에서도 사람들이 좌와 우로 나뉘어 서로 반목질시하였다. 송 장로가 조직한 서북애국청년단은 군인 가족과 경찰 가족을 흡수하여 ‘대동애국단’으로 발전하였다. 송 장로는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대동애국단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에 맞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년들과 인근 부락 주민들이 연합하여 ‘평등세상연맹’이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대동애국단과 평등세상연맹은 서로를 적대시하였다. 때로는 언성을 높여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주먹다툼을 하였다. 주민들은 대동과 평등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었다. 부락민들에게는 이념보다 생존이 절박한 과제였다. 양편을 가르는 기준이 이념만은 아니었다. 무리 가운데 이해득실에 따라서 부화뇌동하는 인숭무레기들도 있었다. 개인적인 원한감정 때문에 남에게 누명을 씌우거나, 쌀 몇 말을 얻고자 이웃을 고발하는 일도 있었다.

여름이 깊어가던 어느 날, 읍내에 나갔던 몇몇 어른들이 돌아와서 “난리가 났다!” 하며 부산을 떨었고, 마을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그 즈음에, 평등세상연맹 청년들은 팔에 붉은 완장을 차고 다녔다. 그들은 농민에게 토지를 무상으로 재분배할 것이라고 선전하였다. 평등 측의 행위는 공포를 자아냈다. 마을 공터에서 인민재판이 열렸고, 대동애국단에 소속된 몇몇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다가 연합군이 인천 상륙작전에 성공함으로 전세가 바뀌자, 군대와 경찰이 세력을 회복하였다. 평등에 속한 청년들은 타지로 흩어져 잠적하였다. 평등이 와해되고, 대동이 득세하였다. 대동 단원들은 몽둥이를 들고 몰려다니면서 평등에 소속된 청년들을 구타했고, 평등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을 색출하여 경찰서로 넘겼다. 갈수록 대동의 기세가 등등하여졌다. 전쟁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낮에는 군경이 마을에 주둔하였고, 밤에는 산사람들이 부락을 장악하였다. 어느 날 경찰이 인민군 복장으로 마을에 나타난 적이 있었다. 그때 목숨을 구하고자 “인민군 만세”를 불렀던 이들은 모두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주민들은 이쪽저쪽 눈치를 보며, 양쪽 사이에서 시달렸다. 앞날을 예측할 수 없었고, 사람들은 하루하루 불안한 삶을 이어갔다.

미국 선교사는 물론 미군과도 통하는 준우는 지역의 유지가 되었다. 관공서나 군경도 그를 예우하였다. 준우와 가까운 사이로 지내는 연대장이 그에게 정신교육을 부탁하였다. 어느 날 준우는 연대 지휘관들을 대상으로 “반공사상과 북진통일”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였다. 그는 해박한 식견으로 세계정세를 분석하고, 한반도의 미래를 전망하였다. 우리의 소원은 북진통일이다, 조국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공산주의를 반대하고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 강연의 요지였다. 강연 후에 준우는 차를 마시며 연대장과 환담을 나누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연대장은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곳곳에서 공비들이 준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리산에서 설치는 빨치산은 뿌리가 쉽게 뽑히지 않습니다. 대통령 각하께서도 이 문제로 심려하시고, 상부에서도 특별 지시가 있었습니다. 우리 연대의 최우선 목표는 빨치산을 소탕하는 것입니다.”

준우가 찻잔을 탁자에 놓으며 연대장에게 말했다.

“국가안보를 위해 불철주야 노고가 많습니다.”

“국가의 녹을 먹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요.”

“이제 곧 공비 소탕전이 대대적으로 벌어지겠군요.”

“내가 중국에서 국민군에서 복무할 때, 중공군과 맞서 싸운 적이 있지요.”

“중공군과 싸우신 체험이 토벌 작전을 수행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연대장은 중국 국민군에서 복무한 경험을 자랑삼아 한참 늘어놓았다.

“그런데 공비들과 내통하는 부락민이 골칫거리입니다. 본거지를 공격하기 전에, 공비들이 디딜 발판을 없애야 합니다. 공비들에게 식량 공급원이 되는 통비분자들을 먼저 조치해야겠어요.”

“먹을 게 없으면 창고에 쥐가 꾀지 않겠지요.”

“맞습니다. 먼저 놈들의 밥줄을 끊고 나서, 숨통을 조여야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대장은 상부의 재가를 받아, 지리산 일대에서 활동하는 공비들의 활동 근거지를 초토화하는 작전을 실시하였다. 연대본부는 통비분자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예하 부대에 하달하였다. 연대장은 “적의 손에 있는 사람은 전원 총살하라”고 지시했다. 명령을 받은 대대는 구역을 나누어 동시 다발적으로 작전을 전개하였다. 구정을 기하여 작전을 개시하기로 예정했다. 대대 병력은 야음을 타서 이동하여, 산중에서 잠복한 상태로 때를 기다렸다. 드디어 설날이 왔다. 집집마다 차례를 준비하느라 부산했다. 먼동이 틀 무렵, 대대 병력이 졸지에 산간 부락에 들이닥쳤다. 군인들은 집집마다 뛰어들어 부락민을 색출하였다. 영문도 모르고 불려나온 사람들을 논밭에 모아놓고 군인들이 갑자기 총을 쏘아댔다. 살아남은 이들을 총검으로 찌르며 확인 사살을 하였다. 군인들은 소와 돼지를 끌고 가고 곡식과 가옥을 불태웠다. 병력은 계곡을 따라서 이동하면서 인근 부락들을 연이어 초토로 만들었다. 아랫마을 강변에서는 먼저 이동한 중대가 시국 강연회를 개최한다고 하여 부락민을 집결시켰다. 군인들은 장정들에게 교실 넓이만한 구덩이를 서너 군데 파게 하였다. 거기에 사람들을 무더기로 몰아넣은 다음에, 수류탄을 투척하고 기관총을 발사했다. 그리하고 나서 구덩이에 나무를 베어 넣고 그 위에 휘발유를 뿌려 시신을 소각하였다. 하루아침에 칠백여 명이 황천객이 되었다. 사망자 가운데 젊은이는 드물고 대부분이 노인들과 부녀자와 어린이들이었다. 국군부대는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여 계속 작전을 수행하였다. 통비분자로 의심되는 주민을 소탕한 병력은 공비들이 드나드는 보급로를 차단하고자 모암계곡에 거점을 확보하였다.

단성댁은 작은 아들이 집안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해서 며칠 동안 집을 비웠다. 볼 일로 타지로 외출했던 태우는 가까스로 화를 면했다. 사태가 절박했다. 마을 소식을 들은 그는 목숨을 건지고자 몇몇 청년들과 함께 지리산으로 도망했다. 그들은 산에서 반정부 유격대원들을 만났고, 모두 산사람이 되었다. 여름이 깊어갈 무렵, 태우는 남부군 산하 전투부대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그가 소속된 부대는 모암계곡을 관통하는 보급로를 확보하는 임무를 맡았다. 태우는 엄마바위가 있는 부근을 바라보며 어머니를 생각하였다. 어머니에게 그 바위는 희망이었다. 엄마바위의 도움으로 아우는 건강을 회복하고 서울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자기가 믿는 하나님을 섬긴다는 명목으로 엄마바위를 부정하였다.

“엄마바위에 십자가를 새기고, 그 바위를 하나님께 바칠 겁니다.”

읍내 동리의 서낭나무를 베고 나서, 산골 부락을 방문한 준우는 들으란 듯이 말했다.

“니가 그리 하는 기 어무이께 잘하는 기라고 생각하나?”

태우의 물음에 준우는 냉정하게 대답했다.

“미신을 수수방관하는 것이 진정한 효도가 아닙니다.”

“그라먼, 우리 전통이 모두 미신이라는 기가?”

“기독교에 배치되면 미신이지요. 엄마바위는 우상입니다!”

“어무이한테는 엄마바위가 하느님인기라.”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 앞에 다른 신을 둘 수 없어요.”

형제는 엄마바위 문제를 두고 다투었다. 단성댁은 두 아들의 다툼을 수습하지 못하고 넋놓고 앉아있었다.

모암계곡의 전투는 치열했다. 태우네 부대는 주요 보급로를 확보하고자 사력을 다해 싸웠다. 낮에는 토벌대가 모암고지를 차지했다가, 밤에는 유격대에게 내주곤 했다. 엄마바위에 숱하게 탄흔이 새겨졌다. 한동안 밀고 당기는 전투가 이어졌다. 사령부는 토벌대에 병력을 증파했다. 날이 갈수록 전세는 입지가 유리한 토벌대 쪽으로 기울어졌다. 보급이 끊긴 유격대는 큰 타격을 입었다. 산비탈과 골짜기 여기저기에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은 검붉은 빛이었다. 태우를 포함한 소수의 대원들이 구사일생으로 모암계곡을 빠져나가 산으로 도주하였다. 한동안 소강상태가 지속되었다.

토벌대가 빨치산을 격퇴한 후에, 교회는 군경의 보호 아래 엄마바위에서 작업을 개시하였다. 송 장로는 일꾼들을 이끌고 모암계곡으로 올라갔다. 석공들은 며칠 동안 열심히 작업하여, 단성댁이 신봉하던 엄마바위를 기독교식으로 바꾸었다. 바위 머리에 보기 좋게 십자가를 음각으로 새기고 붉은 페인트를 칠했다. 그 아래로 오직 믿음으로 의로움을 얻는다는 뜻으로, “以信得義”라는 글을 새기고 흰 페인트로 썼다. 십자가와 신앙표어는 멀리서도 눈에 잘 띄었다. 하나님께 봉헌된 바위는 기독교 신앙이 우상숭배와 공산주의를 물리친 것을 증명하는 승전비였다. 작업을 마치고, 감사예배를 드렸다. 연대장과 경찰서장 그리고 지역 유지들도 예배에 참석했다. 준우는 감격에 겨워 눈시울을 적시며 열정적으로 설교했다. 만군의 여호와는 전쟁의 하나님이시다. 공산 세력에 맞서 싸우는 것은 거룩하고 정의로운 성전이다. 모암계곡에서 국군이 공비를 진멸한 것은 하나님의 승리다. 예배를 인도한 목사는 대한민국의 자유를 수호하는 십자군인 연합군을 축복하였다. “영광 영광 할렐루야!” 하는 찬송이 산골짜기에 힘차게 울려 퍼졌다.

작전 기간 동안 단성댁은 작은 아들 집에서 지냈다. 군경에 쫓겨 산으로 도피한 빨치산은 한동안 활동이 없었다. 큰 아들 일로 애태우던 단성댁은 소식을 들을까 하여, 산사람이었다가 토벌대가 된 마을 청년을 찾아갔다. 그 청년은 태우와 부대는 다르지만 가끔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아마도 병에 걸린 것 같았다,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말했다. 지리산 전역에 돌림병이 퍼진 적이 있었다. 미군 비행기가 이상한 단지들을 숱하게 투하한 이후로, 지리산 일대에 갑자기 원인 모르는 전염병이 나돌았다. 수많은 빨치산들이 열병으로 사망하여, 병력의 손실이 컸다. 병에 걸린 산사람들은 움막이나 동굴에 격리 수용되었다. 많은 대원들이 약도 못쓰고 죽어갔다. 그곳에 실려 온 환자들은 대부분 죽어서 골짜기에 버려졌다고 하였다. 겨우 기력을 회복한 그 청년은 사력을 다하여 탈출하여, 읍내에 있는 경찰서에 찾아가서 자수하였다. 지리산 호랑이로 알려진 유격대장이 이끄는 ‘사찰유격대’가 있었다. 유격대장의 회유로 그는 토벌대에 입대하였다. 산길을 잘 아는 그는 산사람이 숨어 있는 곳을 여러 번 찾아냈다. 공을 세운 대가로 그는 나중에 정식 경찰관이 되었다. 사찰유격대가 출동했다는 소문이 돌면, 단성댁은 하루 종일 안절부절 못하였다.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그 해 겨울에, 국군부대는 지리산 일대에서 대대적으로 공비 토벌 작전을 수행하였다. 국군은 화력이 우세하고 병력이 많았다. 보급로가 차단되고 퇴로가 막힌 빨치산 부대는 심한 타격을 받고 후퇴를 거듭하였다. 태우가 소속된 부대도 조직이 분산되었다. 대원들은 양식이 떨어져 굶어 죽기도 하고, 추운 밤에 바위틈에서 웅크리고 자다가 얼어 죽기도 하였다. 몇몇 사람들은 대열을 이탈하여 토벌대에 투항하였다. 소대원 한씨도 비행기로 살포된 삐라를 주워 읽고 마음이 흔들렸다. 다리에 총상을 당한 후로 그의 마음은 더욱 약해졌다. 열병의 후유증이 채 가시지 않은 태우는 한씨를 부축하고 산과 계곡을 헤맸다. 마지막으로 생쌀을 씹은 지도 며칠이 되었다. 더욱이 한씨의 다리는 총상과 동상으로 상태가 심각했다. 태우는 한씨를 부축하여 민가를 찾아서 하산하였다. 간신히 산막을 발견했지만, 군인들이 거주민을 소개한 뒤라서, 그곳에는 사람도 없었고 남아 있는 양식도 없었다.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그들은 헛간에 쓰러져, 죽은 듯이 잠이 들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은 근처를 수색하던 군인들에게 발각되었다.

토벌 작전이 진행되던 어느 날, 연대장이 교회로 전화하였다.

“좋은 소식입니다. 목사님의 형님을 찾았습니다.”

“아, 그래요? 형님의 근황을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목사님! 형님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까요? 전향서를 쓰면 일이 수월하게 풀릴 텐데요.”

“생각할 여유를 주시겠습니까? 먼저 면회하고 나서, 곧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시지요. 마음을 정한 후에 전화를 주십시오.”

준우는 태우가 혹이라도 열병으로 죽거나 토벌대에게 사살당하지 않았을까 하여 걱정하였는데, 살아있다는 말을 듣고 반가웠다. 다른 한편으로, 형의 운명이 자신에게 넘겨진 것 같아서 연대장의 전화가 부담스러웠다. 그는 형과 함께 지닌 추억을 되새겼다. 형에게 빚진 것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형은 힘이 세고 정이 많았다. 자기더러 약골이라고 놀리는 놈을 가만두지 않았다. 산에 가서 머루와 다래를 따서 둘이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다. 몸이 아프거나 피곤할 때, 형의 등에 업혀서 학교에 가곤 했다. 그때 형의 어깨가 큰 산처럼 느껴졌다. 서울에 유학하게 되자, 아우의 학비를 마련하고자 형은 진학을 포기하였다. 몇 해 전에도 자신을 구해준 적이 있었다. 전쟁 전에 준우는 경찰서장의 권유로 대동애국단의 고문을 맡게 되었다. 전쟁 직후 어느 날 읍내 마을 공터에서 평등세상연맹은 친일 및 친미 전력이 있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인민재판을 열었다. 거기서 대동의 간부 몇 명이 멍석에 말려서 사람들로부터 뭇매를 맞고 죽었다. 기독교 목사인 준우도 서양 무당과 제국주의 하수인이라는 죄목으로 재판받는 자리에 섰다. 그때 험악한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태우가 나서서 아우를 변호했다.

“여러분의 말씀에 일리가 있심니더. 그러나 그가 대동애국단의 고문이 된 것은 경찰서에서 임의로 명단에 올렸기 때문입니더. 그라고 서양 학문을 공부한 게 무슨 죄가 되겠심니꺼? 우리 같은 무식한 사람들끼리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겠심니꺼? 미제국과 싸울라 카먼, 미국을 제대로 알고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있어야 안 되겠심니꺼?”

태우의 설득력 있는 웅변에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준우는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준우는 태우가 석방될 수 있는 길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그는 군부대 내에 설치된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는 형을 면회하였다. 몸이 전보다 수척해지고 얼굴은 까칠하였지만, 태우의 눈빛은 살아있었다.

“형님!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안 죽고 살아있구마! 견딜 만하데이.”

“왜 이리 부질없이 고생하는 겁니까?”

“부질없다고? 좋은 세상 맹글라 카먼 겪어야 하는 일이라.”

“형님이 원하는 좋은 세상이 무엇이지요?”

“좋은 세상은 모든 사람이 굶지 않고, 바르게 사는 세상이라. 힘 있고 가진 사람들만 배부르고 등 따시먼 머 하노?”

“좋은 세상은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아요. 인력으로 쌓은 것은 또 다른 바벨탑이 될 수 있어요. 하나님 나라는 투쟁과 혁명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오직 하나님 은혜로 오는 것이지요.”

“투쟁과 혁명이 필요 없다고? 새로운 세상이 올 때까지 손놓고 기다리자고? 좋은 세상은 농민과 노동자가 심을 합해 싸워서 얻어야 하는 기라.”

준우는 형과 논쟁하고 싶지 않았다. 잠시 숨을 고르고 나서 본론을 꺼냈다.

“형님, 내 말 들어봐요! 전향서를 작성하면 일이 잘 풀려갈 겁니다.”

“전향서를 쓰라고? 한 솥밥 먹던 동료들이 산에 남아 있는데, 내가 우찌 그 짓을 하것노?”

“동료를 배신하자는 게 아니라, 그들을 구출하자는 것이지요.”

“구출? 제 발로 걸어서 산에 간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 있다더나?”

“그릇된 사상에 붙잡혀 있으면 이념의 포로라고 할 수 있지요. 사람은 진리를 알아야 자유롭게 되는 겁니다. 동료들이 자유 독립 국가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게 하는 것이 그들을 돕는 길이지요.”

태우는 정색하고 대들 듯이 대꾸했다.

“자유 독립 국가? 일본에 붙어살던 놈들이 설쳐대는 곳이 자유 세상이가? 미군이 통치하는 나라가 진정 독립국이가? 이대로 가다가는 이 나라는 미국의 노리개가 된다 아이가! 애들이 부르는 노래 가운데, 미국을 믿지 마라, 소련에 속지 마라, 일본이 일어난다 하는 노래가 있더라. 조선 사람은 조심해야 한데이.”

“미군정은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한 과정입니다. 우리 힘으로는 혼란 정국을 수습할 수 없어요. 미국은 우리의 우방입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것은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 덕분이지요. 그리고 일본과 미국에서 배우고 일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협조가 필요해요.”

“시방 이 나라의 주인이 진정으로 대한 사람이가? 나라를 미국에 통째로 갖다 바친 대통령이 주권국의 대통령이가? 양민을 학살하는 국가가 제대로 된 나라가?”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이승만 대통령님은 대한민국을 건국한 국부이십니다. 그리고 유감스럽지만, 양민 사건은 공비토벌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했습니다. 대를 위해 소가 희생된 것이지요.”

“동학 전쟁 때도 봤듯이, 강대국이나 국가권력은 인민의 편이 아이다. 새로운 세상을 맹글라먼, 우리 인민들이 똘똘 뭉쳐서 아래로부터 세상을 바꿔야 한다 아이가! 이 나라에는 이승만 같은 권력자가 아니라 전봉준 같은 지도자가 필요한기라.”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마세요! 형에게는 균형 잡힌 인식이 필요해요. 지금 상황에서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는 것은 위험해요.”

“세상이 한쪽으로 구부러져 있어서, 바로잡을라 카먼 반대로 휘어야 하능기라!”

“형님은 가족을 생각해야지요. 어머니와 형수님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가족을 언급하자, 말없이 태우의 눈이 붉게 젖었다. 한동안 면회소 안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헤어져 있는 사이에 서로가 많이 변했고, 공유하는 부분이 좁다는 것을 통감했다. 언제 어쩌다가 그가 사회주의에 물이 들었을까. 입산 이후 더욱 과격해진 형의 사상과 언동이 염려스러웠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압제에서 해방된 것은 미국의 덕분이라고 준우는 확신했다. 해방 이후 미군정은 불안정한 정국에서 혼란을 막아주었다. 미군정 덕분에 대한민국을 건국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선교사들은 미개국인 조선에 복음을 전하고 문명을 열어주지 않았던가. 고마운 미국에 도리어 적대감을 품고 있다니. 그것은 형이 역사에 무지하고, 현실 인식이 부족한 탓이라고 여겼다. 아니, 형의 왜곡된 신념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때때로 잘못된 사상과 그릇된 신념이 무지보다 더 많은 해독을 끼친다. 준우는 미신에 매인 어머니와 공산주의에 빠진 형을 자신이 짊어진 십자가라고 여겼다. 그에게는 가족이 부끄럽고 버거웠다. 교회에서도 우상을 없애라고 당당하게 설교할 수 없었다. 무지한 어머니 때문에 아내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형만 아니면 연대장이나 경찰서장에게 떳떳할 것이었다. 한 집안에서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는 법이다. 한 믿음으로 온 가족이 구원받아야 한다. 그런데 바로 가족이 원수다. 그는 그동안 참아왔던 말을 불쑥 내뱉았다.

“형님, 제발 정신 차리세요! 공산주의는 자유민주주의의 원수이고 적그리스도 세력이란 말입니다!”

태우가 보기에는 준우의 태도가 마뜩찮았다. 어째서 기독교 이외에는 아무 것도 인정하지 않는가? 더욱이 친미와 반공을 내세우며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교회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그가 반사적으로 아우의 말을 맞받았다.

“그렇다면, 인민을 그릇된 길로 이끄는 기독교야말로 인민의 아편이 아이가!”

기독교가 인민의 아편이라는 말에, 준우의 얼굴빛이 변했다. 공중의 권세인 공산주의가 형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확인했다. 성경을 잡고 있던 손이 부르르 떨렸다. 항아리가 돌 위에서 깨어지듯이, 희망이 산산조각 나는 듯했다. 전향서를 쓴다면 석방되도록 조치하겠다고 연대장이 약속한 바가 있었다. 그리고 미군 고위 장성에게 줄이 닿는 미국 선교사에게 형의 선처를 부탁해볼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막상 형의 얼굴을 대면하고 보니, 그의 생각이 달라졌다. 태우의 강경한 태도를 확인한 준우는 자신의 호의가 부질없는 일이라고 여겨졌다. 석방이 최선의 해결책은 아니었다. 사상의 감옥에서 해방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면회를 다녀온 이후로, 준우는 예배당 안에서 밤을 지새우며 기도했다. 많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국가 안위와 형제애 가운데 양자택일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구명 운동을 포기하면, 어머니에게는 뭐라고 말할 것인가? 새벽기도회 시간이 가까웠을 때, 문득 성경 말씀이 떠올랐다. 예수께서 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들인가를 물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당신의 가족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육신의 형제보다 영혼의 형제가 중요하다. 늘그막에 얻은 아들인 이삭을 여호와 하나님이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했을 때, 아브람은 지체하지 않고 아들과 함께 모리아에 있는 산으로 가지 않았던가. 혈육의 정보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아무리 형제지간이지만, 신앙과 사상의 문제에서는 한 치도 양보할 수 없었다. 준우는 마음을 다잡고 오전 중에 연대본부대에 전화했다. 연대장과 연결되자, 그는 간단명료하게 통화했다.

“연대장님, 여러 모로 배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형님 문제는 대한민국의 법대로 처리해 주십시오!”

준우의 전화를 받은 연대장은 걱정하는 듯이 거듭 확인하였다.

“가족 일로 목사님 마음이 아프시지 않겠습니까?”

전화기를 움켜잡은 준우는 갈등했던 흔적을 지우려는 듯이 힘을 주어 대답했다. “사사로운 인정에 얽매이는 것보다, 자유민주 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연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위로의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한씨는 당국의 요구대로 전향서를 쓰고, 병원에 이송되어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태우는 회유와 협박에도 흔들리지 않고 전향서 제출하기를 거부하였다. 결국 그는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실형을 선고받고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연대장은 준우를 만났을 때, 본인이 재판과정에 개입하여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강조했다. 정상을 참작하여 사형을 면하게 하고, 할 수 있는 대로 형량을 줄이도록 했노라고 귀띔해 주었다.

5

봄이 다가도록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태우가 석방된다는 소식은 없었다. 단성댁은 하루하루 애가 탔다. 교인 가정을 심방하고 돌아오는 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야야! 네 성은 어찌 되는 기고?”

준우가 저고리를 벗으며 무심하게 대꾸했다.

“글쎄요, 아직 달라진 게 없습니다.”

“네가 어디 손 써 볼 데가 없더나? 네가 연대장하고 친분이 있으니, 부탁하면 안 되겄나?”

“제가 도와주려 해도, 형님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전향서를 쓰라 해도, 형님이 듣질 않아요.”

“그라먼, 마을 사람들과 함께 탄원서를 올리면 어떻겠노?”

“형님이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탄원서를 올려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산사람이면 어떻고, 빨갱이면 어떻노? 우애롭게 지내는 기 안 좋나?”

“아무리 형님이라 하더라도, 우상숭배와 공산주의는 안 됩니다.”

“공산당 이전에 우리 가족 아이가. 내는 기독교가 무엇인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아무 것도 모른데이. 너그 형제가 화목하게 사는 게 소원이데이.”

“육신의 형제보다 믿음이 같은 영적인 가족이 더 중요합니다.”

“믿음이 다르다고 해서, 예수님은 부모형제도 모른다 카더나?”

“기독교 신앙과 공산주의는 공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우상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와 공산주의를 진멸하라고 하셨습니다.”

“네가 믿는 하나님은 그리 모질고 무서운 분이가?”

단성댁은 형무소에 수감된 큰 아들 생각으로 귀살쩍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밤이 많았다. 밥을 제대로 먹는지, 병에 걸리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되었다. 이따금 공식예배와 기도회에 참석하여도 마음은 여전히 허전했다. 교회에서 두 아들을 위해 빌고자 하여도 정성이 모아지지 않았고, 기도가 허공에서 맴돌다 땅에 떨어졌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여호와 하나님에게는 엄마바위에게서 느끼는 따뜻함과 넉넉함이 없었다. 엄마바위가 훼손된 이후로는 알 수 없는 불안이 단성댁의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아들이 목회하는 데에 걸림이 될까 하여 아무에게도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했다. 수더분한 큰 며느리한테는 거리낌 없이 속말을 하는데, 신식 교육을 받은 작은 며느리 앞에서는 왠지 마음부터 쪼그라들고 입이 열리지 않았다. 편리한 시설을 갖춘 교회 주택에서는 도리어 거동이 불편하고 조심스러웠다. 밀린 집안일을 핑계 삼아 단성댁은 산골에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어느 날 깊은 밤에, 태우가 산에서 내려왔다. 그의 팔에는 붉은 완장이 둘렸고, 손에는 죽창이 들려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눈을 번득이던 그는 곧장 준우가 있을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총소리가 났다. 비명이 들리더니 정적이 흘렀다. 단성댁이 깜작 놀라 눈을 뜨니, 꿈이었다. 문 밖에서 빗소리가 들려왔다. 잠결에 몸부림한 그는 윗목에 있던 자리끼를 들이키고 나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비록 꿈이었지만, 그의 마음이 어지러웠다. 도대체 누가 총을 쏘았는지, 어떤 아들이 해를 당했는지 궁금해 하며, 안절부절 못하였다.

선잠을 깨어 한숨으로 밤을 지새운 단성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무엇엔가 홀린 듯이 주섬주섬 옷을 입고 집 밖으로 나가 산으로 올라갔다. 밤새 줄기차게 내리던 비가 그쳤다. 새벽의 찬 기운이 옆구리께로 스며들었다. 그가 산을 오르면서 두 아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고 두려웠다. 아직 어두울 때에 모암골에 도착했다. 문득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바위에 제사하고 절하는 것은 우상숭배라는 아들의 말이 떠올랐다. 하나님을 미워하고 우상을 섬기는 자에게는 그 죗값으로 본인과 삼사 대 자손에게까지 하나님이 벌을 내린다고 들었다. 단성댁 안에서 두 가지 마음이 싸웠다. 지난밤의 사나운 꿈자리가 스치고 지나갔다. 한참 동안 넋놓고 서있던 단성댁은 쓰러지듯 땅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울면서 엄마바위 앞으로 나아갔다.

“아이쿠! 어무이, 돌어무이요! 얼매나 아픈교? 어무이요, 제가 잘못했심니더. 제가 배은망덕했심니더. 저를 벌하시고, 어무이 아들들을 용서하이소!”

단성댁은 한참 울고 나서, 엄마바위를 우러러보았다. 오래간만이었다. 여느 때처럼 그를 반기는 것 같았다.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듯 크게 숨을 쉬었다. 비에 젖은 공기가 촉촉하고 시원했다. 땅 냄새, 풀 냄새, 솔향기가 폐부에 배어들었다. 거듭거듭 숨을 가슴 깊이 들이마셨다. 비 온 뒤에 먹구름이 걷힌 하늘처럼, 차츰 마음이 개이고 생각이 맑아졌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숨을 쉬어야 한다. 사람마다 제 숨을 쉰다. 저마다 제 길이 있다. 제 방식대로 신불을 믿는다. 문득, 엄마바위가 하느님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기가 엄마 품에 안기듯이, 단성댁은 바위 앞에 엎드려 마음을 다하여 빌었다. 큰 아들의 무사생환을 위해 빌었고, 작은 아들의 잘못을 용서하여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혀 절하며 빌기를 계속했다. 언젠가는 큰 아들이 밝은 세상에서 살기를 희망하며, 작은 아들이 엄마바위에게 돌아오기를 기원했다. 형제가 싸우지 않고 우애롭게 살기를 마음껏 기도했다.

갓밝이 무렵에 엄마바위는 모습을 드러냈다. 바위에 새겨진 붉은 십자가와 흰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단성댁은 온몸을 정으로 쪼는 아픔을 느꼈다. 우는 듯 웃는 듯 묘한 표정이 바위에 서려있었다. 자식의 죄로 말미암아 고난받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밤새 내린 비로 바위가 흠뻑 젖어있었다. 단성댁은 간밤에 온 비를 자식 때문에 애타는 엄마바위가 흘린 눈물이라고 여겼다. 구름을 헤치고 붉은 해가 앞산에서 떠올랐다. 비에 젖은 바위가 아침 햇살에 반짝거렸다. (☯)

▲ 피카소 <한국에서의 전쟁>

* 에필로그 :

자비로운 하느님은 세상에 정의와 평화와 생명을 구현하기를 소원하십니다.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자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탐욕과 독선으로 인하여 교회는 상처 입고 병들었습니다. 졸작 “골짜기에 흐르는 눈물”은 자아비판적인 고백입니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기독교회를 자리매김한 것입니다. 선교 초기에 미국을 통하여 주로 세대주의적 근본주의 기독교가 한반도에 이식되었습니다. 평양을 중심으로 서북지역에서 개신교회가 놀랍게 부흥했습니다. 내세적이고 보수적인 신앙 경향은 한반도 전역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근본주의 신앙에 경도된 교회는 문화제국주의 입장에서 고유한 전통문화를 배척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난을 겪었습니다. 일본 패망 이후, 미군정으로 인하여 대한민국의 역사는 더욱 뒤틀리게 되었습니다. 친일의 역사를 청산하지 못했고, 독재 정권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특히 한국전쟁과 기독교의 관계는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는 자본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으로 재편되었습니다. 국제적 모순이 한반도에서 충돌하고 폭발한 것이 한국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우리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기독교 신앙의 왜곡입니다. 한국 기독교는 근본주의에 더하여 반공주의, 친미사대주의 그리고 자본주의를 신봉하게 되었습니다. 정교분리의 원칙에 근거하여 권력을 비판하고 견제해야 할 교회가 실상은 정교유착의 관계를 누리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기독교는 기득권 종교가 되었습니다. 사회를 통합하는 역할을 맡은 교회가 도리어 힘 있고 가진 자의 편에 서서, 사회의 양극화를 조장하고 있지는 않은지 적잖이 염려됩니다. 폐쇄적 이념에 사로잡히고 권력과 맘몬에 집착하면서 참 하나님을 섬길 수 없습니다. 이 길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한국 기독교회는 회칠한 무덤이나 민중의 아편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오늘날 이 땅의 부조리한 현실을 굽어보시고 마음 아파하실 것입니다. 산골짜기에 흐르는 엄마바위의 눈물은 하느님의 눈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만 옳다 여기고 서로 미워하는 인간 때문에 상처 입은 하느님이 흘리는 눈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