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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선물 그리고 소장의 뿌듯함 [이현주 선집 전3권]1권 한 송이 이름 없는 들꽃으로 / 2권 사람의 길 예수의 길 / 3권 나의 어머니 나의 교회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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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년 12월 31일 (화) 03:31:09
최종편집 : 2014년 02월 05일 (수) 14:56:08 [조회수 : 6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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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옥 이현주 목사 선집, 선물용 할인판매!

  신앙과 지성사는 열화같은 독자들의 요청으로 이현주 선집 3권 정가 5만원을 3만원에 공급합니다.
  교인들의 진실하고 열린 신앙생활을 위해서라면, 이현주 목사 선집만큼 좋은 신앙서적이 있을까요? 
  1질 신청 경우 4,000원 송료부담 하셔야 하고요, 2질 이상은 무료로 배송합니다. (받아보실 분 특정 가능)

             계좌번호 : 국민은행 012-21-0543-137(예금주 최병천) miral87@hanmail.net
             문의 : 02)335-6579 /신앙과지성사   010-4228-8533/ 최병천장로

 

   

참 좋은 선물 그리고 소장의 뿌듯함
이현주 선집 전3권

 

“관옥 이현주 목사의 말글, 선집 3권에 담겼다” 
                                             
                                    Date: 2014.02.04, 19:32:26   기독교뉴스 홍순현 기자 | hsh342@naver.com

신앙과지성사, 정가 5만원의 선집 3권을 3만원에 특별공급

신앙과지성사(대표 최병천 장로)가 5만원 정가의 관옥 이현주 목사의 선집을 3만원에 특별 공급한다.

최병천 장로는 “교인들의 진실하고 열린 신앙생활을 위해서라면, 이현주 목사 선집만큼 좋은 신앙서적이 있을까?”라고 묻고 “이 목사의 3권 선집은 신앙성숙의 길로 인도하는 주옥같은 글들로 가득 차 있어 신앙생활에 풍부함을 채워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현주 선집 제1권 <한 송이 이름 없는 들꽃으로>

이 목사는 <한 송이 이름 없는 들꽃으로> 책 머리에서 “돌아보면 한평생 내 말(글)이 내 삶을 앞질렀다”며, “하지만 고맙게도 하늘은 내 말을 내 삶에 여러 가닥 줄로 매어놓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중에는 물론 끊어진 것들도 있지만, 그래도 덕분에 이 목사의 삶이 말에 이끌리는 수레로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당당뉴스 전 운영자 이필완 목사는 “다들 어렵다는 출판 환경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왕성하게 좋은 책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는 신앙과지성사의 최병천 장로가 이현주 목사의 칠순을 맞이하여 오래전 절판된 옛 글들을 모아 세 권 선집을 낸다니 괜히 신난다”고 소개했다.

이어 “아주 오래전에 읽은 그의 글들을, 아주 잃어버리지 않고 다시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이현주 목사를 아는 우리 모두에게 더할 나위 없이 큰 축복”이라고 덧붙였다.

이 책은 1984년, 지금은 사라진 종로서적이 펴낸 <한송이 이름없는 들꽃으로>에 실렸던 글들과 1998년, 당그래가 펴낸 <二吾 …… 北山 이야기 모음, 이름값을 하면서 살고 싶다』> 실린 글들 중 당연히 이 목사의 글들만 모아서 추린 것이다.

각각 30년, 15년 전에 쓴 글들을 이번에 신앙과지성사가 모처럼 다시 살려낸 것이다. 30년 전이면 이현주 목사가 40대 때의 일이고 그때 이미 그는 글을 쓴 지 20년이 되었을 때니 글 쓴 지 50년 연조가 됐다는 것이다.

한 송이 이름 없는 들꽃으로/피었다가 지리라/끝내 이름 없는 들꽃으로 지리라.(이현주의 시구 중에서)

<이현주 지음 / 판형 A5 / 488쪽 / 22,000원>

이현주 선집 제2권 <사람의 길 예수의 길>

이 책 서문에서 이현주 목사는 “예수, 그의 실존을 몸으로 겪어서 알고 싶었다. 그에 관한 사람들의 말(글)을 듣는 것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음식은 먹어봐야 알고 사람은 겪어봐야 아는 법! 한때 ‘예수’라는 이름으로 이 땅에 존재했다고 전해지는 그의 실존을 몸으로 겪어보고 싶다는 외골수 마음에 이끌려 여기까지 왔다”고 회고했다.

김기석 목사(청파교회)는 ‘예수에게 길을 묻다’라는 제목의 발간사에서 “저마다 불멸을 꿈꾸지만 소멸하는 게 생명의 본 모습”이라며 “세상에 존재하는 게 있다면 누군가가 남겨놓은 흔적일 뿐”이고 그 흔적이 “한 권의 책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 책도 처음 출간된 때로부터 근 30년의 세월이 흘렀다. 김기석 목사는 “한국교회가 무너지는 소리가 도처에서 들려온다”며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제 우리가 삶으로 할 차례다”고 강조했다.

<이현주 지음 / 판형 A5 / 312쪽 / 15,000원>

이현주 선집 제3권 <나의 어머니 나의 교회여>

이현주 목사는 “예수와 예수의 가르침과 그것을 좇아서 살고자 하는 무리(교회)가 없으면 기독교는 없다”며 “교회는 나에게 어머니와 같다”고 회고한다.

또 “어머니를 껴안으려면 어머니 자궁에서 나와야 하는 것처럼, 교회를 사랑하려면 교회라는 틀에서 나와야 한다. 자식이 어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듯이 나는 교회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기자도 신학을 공부했던 시절, 관운장처럼 긴 수염을 길렀던 40대 말의 이현주 목사에게 <나의 어머니> 글을 청탁해 교지로 실었던 기억이 새롭다.

정희수 감독(미연합감리교회)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는 제목의 발간의 글에서 “이현주 목사의 목회 현장은 <나의 어머니, 나의 교회여>에서 전해지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 된 교회에 대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다가온다”며 “그의 생의 전기는 죽변교회 이야기에서 철원교회 이야기까지 절절히 동료들과 후학들에게 신선한 몸말로 다가선다”고 소개했다.

이어 “교회를 다시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그 교회를 어머니처럼 사랑하면서, 그 생명의 우주성을 마음껏 탐닉하고 살아가는 새로운 세대를 향한 초대가 우리 모두를 통하여 다시 선포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힌고 있니다.

<이현주 지음 / 판형 A5 / 288쪽 / 13,000원>

문의 신앙과지성사 02-335-6579

 

   

 

이현주 선집 제1권
한 송이 이름 없는 들꽃으로

이현주 지음 / 판형 A5 / 488쪽 / 22,000원

책머리에

이현주 지음 / 판형 A5 / 488쪽 / 22,000원

말(글)

“사람이 흰소리를 하는 게 아니다. 말을 앞세우지 마라.” 초등학생이던 나에게 우리 아버지가 남겨주신 유언이다. 그러려고 노력해봤지만 되지 않았다.
돌아보면 한평생 내 말(글)이 내 삶을 앞질렀다.
하지만 고맙게도 하늘은 내 말을 내 삶에 여러 가닥 줄로 매어놓았다. 그중에는 물론 끊어진 것들도 있지만, 그래도 덕분에 내 삶이 내 말(글)에 이끌리는 수레로 될 수 있었다.
내가 쓴 글이라지만, 어디 멀리 허공으로 달아나버리지 않고 제 수레를 이끌어 여기까지 오게 했으니 다만 고마울 따름이요, 이제는 자식 손에 끌려가는 늙은 아비처럼 기운이 빠져 없어지기를, 머리카락 같은 명주실 한 가닥에도 쉬이 끌려갈 만큼 내 존재가 가벼워지기를, 애오라지 바랄 따름이다.

2013. 12
관옥 이현주



발간의 글

"이현주 목사가 어느덧 칠순이란다"

이필완 목사 (당당뉴스 前 운영자)

하긴 살다 보니 나도 어느새 육순이라는데 새삼스럽게 세월 빠름을 말해야 무엇 하랴. 다들 어렵다는 출판 환경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왕성하게 좋은 책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는 신앙과지성사의 최병천 장로가 이현주 목사의 칠순 맞이하여 오래전 절판된 옛 글들을 모아 세 권 선집을 낸다니 괜히 신난다.

그동안 일백 수십여 권의 저서와 역서를 발간한 이현주 목사의 유명세야 따로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이미 널리 잘 알려져 있으나, 그 많은 글들 중에서 난 8,90년대 이현주 목사의 글들이 특히 좋다. 이 목사의 수많은 성경풀이와 동서양의 지혜를 번역하거나 풀어낸 글들, 영성가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도사연한 최근의 글들보다 오래전 쓴 그의 동화와 초기 신앙 단상들을 더 좋아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 책은 1984년, 지금은 사라진 종로서적이 펴낸 『한송이 이름없는 들꽃으로』에 실렸던 글들과 1998년, 당그래가 펴낸 『二吾 …… 北山 이야기 모음, 이름값을 하면서 살고 싶다』에 실린 글들 중 당연히 이 목사의 글들만 모아서 추린 것이다. 다르나 같은 길을 걸어왔던 투병 중인 막역 친구 北山 최완택 목사가 이 소식 들으면 적지 아니 섭섭해 하실까?

자그마치 각각 30년, 15년 전에 쓴 글들을 이번에 신앙과지성사가 모처럼 다시 살려내는 것이다. 30년 전이면 이현주 목사가 40대 때의 일이고 그때 이미 그는 글을 쓴 지 20년이 되었을 때니 글 쓴 지 50년이 되었다는 얘기인 즉슨 최근의 글에 견주어 오래전 그의 글들을 함께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독자들은 즐거울 것이다. 새삼스레 이현주 목사의 40세 때 전후의 사진들을 들여다보니 더 정겹다.

그는 목사다. 교단의 울타리를 이미 오래전에 넘어섰다고는 하지만 이현주 그는 틀림없는 감리교회의 목사다. 혹자가 그를 가리켜 웬만한 도사보다 낫다 하고, 이오(二吾 최완택 목사가 지어준, 내가 둘이라니? 인생은 이 ‘두 나’의 조화스러운 만남에 있다), 혹은 관옥(觀玉), 관옥목인(觀玉牧人 장일순 선생이 지어준, 하느님을 뵙고 세상을 보살피는 사람)이라 하고 동화작가, 아동문학가, 최근 어느 모임에서는 영성철학가라고 부르기를 즐겨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도 그를 “이현주 목사”님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한다.

그는 아주 오래전엔 여러 번 농촌교회 담임목사 생활도 했고 성공회에서 일하기도 하다가 몇몇과 함께 공동체살이를 꾸려보기도 했었고, 몇 년 동안 누구나 어디서나 함께 모여 주일예배 드리며 생활을 나누는 ‘드림교회’ 인도에 이어, 2012년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대학로 삼무곡 카페에서 매주 토요일, 주일에, 자신부터 혁명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예수혁명교회’를 인도하기도 하거니와 누구보고도 자신을 목사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마다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니 더욱이 그렇다.

요즘 한국 교회는 빠른 속도로 침체를 거듭하면서 덩달아 그 어느 때보다 목사 값도 바닥을 치는 중이란다. 왜냐고 이래저래 설도 많지만 말하는 대로 설교하는 대로 교인들과 목사들이 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말하는 대로 사느냐 비슷하게라도 살라고 애쓰느냐 아니면 말하는 것과는 달리 사느냐의 관점이다. 그런 면에서 칠순 맞이하고 세 권씩이나 한꺼번에 선집 펴내는 현주 형은 정말 목사다운 목사다. 누가 뭐라고 다른 호칭으로 부른다 해도 말이다.

지난 10월의 어느 주일날 아침, 작심하고 대학로 삼무곡 카페에서 열리는 예수혁명교회 주일 모임에 참석했다. 20여 명이 모여 차를 나누면서 시작된 이날의 모임은 “왜 쳐다봐요?”라는 이현주 목사님의 나지막한 질문으로 시작되었다.

한참을 끝도 없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막판엔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신의 꿈을 얘기했다. 모두 2시간이 넘게 걸렸으나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그리고 각자가 준비해 온 음식을 함께 나누고는 끝이었다. 아무런 형식도 의례도 없었다. 준비해 간 헌금도 할 참이 없었다.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무슨 박스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는 사실만 기억이 났다.

이들은 모아진 헌금을 따로 지출하는 방식조차 정해져 있지 않은 모양이다. 적당히 모아지면 참석자들 중 한 분에게 그 헌금을 나름대로 의미 있게 사용하라거나 누구에게나 마음 닿는 대로 전달하라고 맡긴다고 하니 필자조차도 당혹스러울 정도였으므로 더 이상 말해 무엇 하랴!

때로는 혼자서 1시간 돌아다니다 돌아와 느낀 경험을 나누기도 하고 언제는 모두가 화가가 되어 끼적끼적 그림을 그린 후 얘기를 나누기도 하며 또 언젠가는 기타 들고 온 사람에게 노래 한번 청한 후에 모두 돌아가며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 젖히기도 한다.

그야말로 아무런 경계도 없고 시작과 끝까지도 불분명하나, 분명한 것은 누구보다도 예수를 살고 예수 따르미를 자처하는 분들끼리의 참으로 진정한 영적 주일 예배이리라.

이즈음에서 어느 누가 이현주 목사를 간단하게 한마디로 정리하거나 평할 수 있을까?
우리 모두는 다만 다시 한 번 세심하게 그의 글을 눈여겨 읽으면서 보다 새롭게 예수를 비추는 그를 바라볼 뿐이다. 평생 ‘한 송이 이름 없는 들꽃으로’ 살아왔으나, 본인의 의도와는 달리 자꾸만 널리 이름이 알려지니까 때로는 ‘이 아무개’로, 혹은 1년 이상 사람들을 떠나 무언생활을 하기도 하면서, 한 송이 이름 없는 들꽃으로 계속 살아가기를 원했고 지금도 그렇게 산다.

지금도 “이름값을 하면서 살고 싶다”면서 언제 어디서든 사람들이 얘기해 달라고 부르면 아무 조건 없이 잘 간다. 어느 때보다도 건강하고 활기차고 자신만만해 하면서 그러면서도 지독히 겸손하게 들릴듯 말듯 잔잔하면서도 짤막하게 이야기를 잘도 풀어 나간다. 왜냐하면 글쟁이기에 앞서 그도 천생 말 잘하는 목사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그가 글만큼 몸으로 행동하지 않음을 아쉬워하지만 글쟁이로만 살기에도 그의 삶은 늘 빠듯하고 힘겨운 것을 추리해야 한다.

아마 최병천 장로가, 늘 삐딱서니로 살다가 이것저것 다 내려놓고 한참이나 뒷전에 물러나, 동생 농사 도우며 사는 나를 채근하며, 전혀 무명인 내게 발간의 글을 부탁한 이유를 이쯤에서야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한 송이 이름 없는 들꽃으로” 살고 싶어 하고 “이름값을 하면서 살고 싶다”면서 멀찌감치에서 조금치라도 이현주 목사의 흉내라도 내며 살아가고 싶은 내 속마음을 그가 어느 정도 눈치 챘기 때문이 아닐까?

암튼 이현주 목사도 이제 칠순이란다. 그래서 신앙과지성사 주최로 12월 6일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출판기념회로 모이고, 김민해 목사와 더불어 이현주 목사가 오래도록 발행해 온 「풍경소리」 독자들도 핑계 삼아 12월 8일 순천에서 아예 일박이일 “도반축제”를 따로 꾸린다. 참 좋으시겠다. 그런데 과연 칠순이라는 게 과연 축하만 할 자리인지, 그저 오래오래 살기를 빌어야만 하는 복된 자리인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 주변에 육순, 칠순 하며 나이를 잡수시면서, 그동안 말하며 살아온 삶과는 달리 점점 욕심 내려 놓지 못하고 추해지는 특히 목사 어른들이 적지 않으니, 오히려 이현주 목사도 언제 그렇게 되진 않을까 노심초사 걱정해 드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저 오래오래 살기보다는, 언제까지라도 사는 동안 늘 지금처럼 씩씩하게 변함없이 건강하게 살기를 간절히 비는 마음이다.

새삼 신앙과지성사의 편집 실무자들에게 감사드린다. 오래전 절판된 책을, 당연히 원고도 없을 터이니 자동 프로그램이 있다지만 스캔을 받아서 일일이 텍스트로 바꾸며 교정하는 지난한 작업들에 참 고생 많았다. 앞장서 선집 출판에 발 벗고 나서신 친동생 이덕주 교수와 글 선정 작업에 애쓴 홍승표 목사도 참 고맙다.
여하간에 아주 오래전에 읽은 그의 글들을, 아주 잃어버리지 않고 다시 접할 수 있게 된 것은 이현주 목사를 아는 우리 모두에게 더할 나위 없이 큰 축복이다. 개발새발 발간의 글을 쓰면서 누구보다도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이다.

한 송이 이름 없는 들꽃으로
피었다가 지리라
끝내 이름 없는 들꽃으로 지리라.
(이현주의 시구 중에서)

차례

책머리에 말(글) …… 3
발간의 글 이현주 목사가 어느덧 칠순이란다│이필완 …… 4

1부 한 송이 이름 없는 들꽃으로
머리글 …… 17

<동화>
아버지 …… 20
벌거벗은 두 거인 …… 22
할머니의 거짓말 …… 24
미운 돌멩이 …… 27
날개 달린 아저씨 …… 29
알게 뭐야 …… 34
살꽃 이야기 …… 37
밤비 …… 43
웃음의 총 …… 49
개울과 앵두나무 …… 57
지구별 마지막 전쟁 …… 60
두 사람이 길에서 …… 62

<시>
나를 둘러 당신의 옷으로 삼으소서 …… 67
기도실에서 …… 68
마른 뼈의 기도 …… 69
빈들에 서게 하소서 …… 70
우리보다 먼저 당신은 …… 72
당신은 나의 노래 …… 72
고백 …… 74
하얀 길 …… 75
이제부터는 …… 77
임진강 …… 78
뼈다귀에게 …… 79
탄금대에만 오르면 …… 80
형제여, 손 내밀어 …… 84
내가 웃는다 …… 85
내 친구 …… 86
미친 바람 …… 86
눈물이 되지 …… 88
억새꽃 …… 89
꽃거리 하룻밤 …… 90
산등성이 올라 앉아 …… 92
쫓겨나면서 …… 93
늦봄 문익환 …… 94
편지를 쓰자 …… 94
그와의 만남 …… 96
바람 구름 …… 97
겨울 산행 …… 98
별들의 숲 …… 99
넋두리 …… 100
어지러운 아내에게 …… 101
쉬잇! …… 102
살찌는 걸 걱정하는 당신들에게 …… 103
다시 오리라 …… 104
기다림 …… 105
갈매기 …… 106
뽑힌 풀로 한세상 …… 107
한 송이 이름 없는 들꽃으로 …… 108
요한복음 1:1~4 …… 109
뿌리(혹은, 도살자에게) …… 110
간밤 꿈에 나는 …… 111
이쪽 저쪽 …… 112

<소설>
육촌 형 …… 114
마지막 승리 …… 129
처녀 마담 …… 143
발을 맞추지 못하는 아이 …… 152
에세이
출발 …… 164
은을 팔아 두꺼비를 사라 …… 169
바보 왕국 탄생사 …… 176
칼, 돈, 나라 …… 182
가진 것 없으니 없는 것 없다 …… 187
아Q의 자존심 …… 193
그게 아니라 …… 200

<수필>
다시 김교신이 그리운 시절 …… 207
갇힌 자유의 해방을 위하여 …… 215
화육의 끝 …… 228
등대 오르는 길 …… 232
동화 작가 권정생과 강아지 똥 …… 236
두 실패자가 쓰고 간 편지 …… 249
모세야, 누가 너를 우리의 지도자로 삼았느냐? …… 261

<생활단상>
쌀밥 이야기 …… 272
독선의 계절 …… 274
길을 묻는 소녀 …… 277
50원짜리 양심 …… 278
부친과 주기도문 …… 280
양계장 유감 …… 282
하얀 새 한 마리 …… 286
매스 게임과 농악 …… 287
대합실에서 만난 거지 …… 290
살얼음을 밟듯 산다 …… 291
나에게 시계가 없는 사연 …… 293
욕을 한다는 것 …… 297
답답하니 웃는다 …… 299

<편지>
서럽고 외롭습니다 …… 302

<논문>
중단된 논쟁의 의미 …… 309

<번역>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 …… 327

2부 이름값을 하면서 살고 싶다
머리글 …… 395

<二吾의 마음, 二吾의 약속>
상쾌한 밥상 …… 398
약속 …… 400
내 송장을 처리하는 방법에 대하여 …… 403
불개미도 생명일진대 …… 407
악마대가리좀나방을 경계하라 …… 409
감옥의 유원호 선생께 …… 412
내가 충주를 사랑하는 이유 …… 415
버림받은 자의 가을은 쓸쓸하고 …… 417
너무너무 좋아요? …… 420
어떤 이구동성 …… 423
목회서신 죽순 이야기 …… 426
목회서신 군자는 대로행이라! …… 429
목회서신 이 집에 벙어리 살지 않소? …… 431
이놈은 이놈이고 저놈은 저놈이다 …… 436
아메리칸 스타일 정직 …… 440
오직 사랑이 있을 따름이어야 한다 …… 443
제목도 없이 쓴 글 …… 449
비켜선 자의 그늘 …… 455
선생님을 잠시 보내드리며 올리는 말씀 …… 459

<二吾의 聖徑散策>
길을 떠나며 …… 463
모세의 지팡이 …… 465
현필은 현필이고, 현주는 현주고 …… 470
죽창수필 …… 472
이규보의 멋 …… 475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의 일대기 …… 478
장벽을 넘어서 …… 483

 


 

   

 

이현주 선집 제2권
사람의 길 예수의 길


이현주 지음 / 판형 A5 / 312쪽 / 15,000원

책머리에

예수

그의 실존을 몸으로 겪어서 알고 싶었다. 그에 관한 사람들의 말(글)을 듣는 것 정도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음식은 먹어봐야 알고 사람은 겪어봐야 아는 법!
한때 ‘예수’라는 이름으로 이 땅에 존재했다고 전해지는 그의 실존을 몸으로 겪어보고 싶다는 외골수 마음에 이끌려 여기까지 왔다.
그래, 그래서 그를 아느냐고 물으면 말없이 웃어줄 순 있을 것 같다.
젊은 시절, 천방지축 떠들며 기웃거리며 소란스럽기도 했겠지만 그 비틀걸음이 없었다면 내 어찌 여기까지 왔으리?
생각하면 참으로 고마운 발자국들이다.
하지만 발자국은 발자국일 뿐, 혹 뒤에 오는 이들이라면 몰라도 걸어온 놈한테는 뒤돌아볼 물건이 아닌 것이다.

2013. 12
관옥 이현주



발간의 글

예수에게 길을 묻다

김기석 목사 (청파교회 담임목사)

넌 왜 여기 가만히 있느냐? 날 사랑한다면서 왜 팔짱을 끼고 조용히 편안하게 있느냐? 넌 먹고 마시고, 내가 한 말을 편안하게 읽고, 십자가에 못 박힌 내 얘기에 눈물도 흘리고, 그리고 침대로 가서 잔다. 부끄럽지 않느냐? 그게 네가 날 사랑하는 법이냐? 넌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느냐? 일어나라!
(니코스 카잔차키스, 『수난』, 열린책들, p.376.)

유리병 속의 편지
세월이 빠르다는 말처럼 진부한 말이 없다. 하지만 그 진부한 말은 여전히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와 잠시 머물다가 떠나게 마련이다. 저마다 불멸을 꿈꾸지만 소멸하는 게 생명의 본 모습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게 있다면 누군가가 남겨놓은 흔적일 뿐이다. 그래서 문화는 시간의 퇴적물이다. 길고 짧음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흔적도 곧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 흔적에 눈길을 주고, 그 흔적과 사귀고, 그 흔적에게 길을 물으며 우리는 한 생을 건넌다. 문득 멈추어 서서 과거를 돌이키다 보면 기억의 지층 저 깊은 곳에서 한때 우리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사람들 혹은 사건들이 떠오른다. 그것이 한 권의 책일 수도 있다.

“사람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게 마련”이라는 『파우스트』의 한 구절을 붙들고, 도무지 앞이 가늠되지 않는 인생길을 마구 질주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우리 가슴에 불꽃을 일으켰던 책들이 있다. 때로는 책 전체의 서사구조가 때로는 책 속의 한 구절이 우리 앞을 비추는 등불이 되곤 했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은 책을 징검다리로 삼아 생이라는 개울을 건넌다.

관옥 이현주 목사의 글은 한국 교회라는 진리의 무덤 앞에서 울고 있던 청춘들에게 던져진 하늘의 수인사가 아닌가 한다. 악머구리 들끓듯 소란스런 말들이, 계율화된 말들이 사람들의 의식을 옥죄고, 거짓말이 참말을 억압하는 시대에, 그가 조근조근 발설한 말들은 소리 없이 사람들의 가슴에 스며들었다. 물 위에 띄워진 유리병 속의 편지처럼 그의 메시지는 불특정한 독자들의 가슴에 이런저런 파문을 일으키곤 했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때로부터 근 30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수십 년 전에 쓴 글을 새삼스럽게 재출간한다는 사실이 저자에게는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같은 강물에 두 번을 들어갈 수 없다는 말처럼 시간은 불가역적이어서 오늘의 관점에서 과거를 수정할 수는 없는 법이니 말이다. 역사에는 권력의 낙인이 찍혀 있게 마련이기에 권력의 판도가 변할 때마다 새롭게 기록되곤 한다. 그러나 작가의 글은 그럴 수 없다. 그렇기에 어떤 이들은 젊은 날의 글들을 폐기해 버리고 싶은 욕구를 느끼기도 한다. 오늘의 자리에서 뒤를 돌아보면 미숙하고 부끄러운 것들이 너무나 확연히 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재출간을 저자 자신이 원한 것은 아니다. 지인들의 요구에 소극적으로 응했을 따름이다. 하지만 이 책의 재출간은 그 자체로 귀한 일이다. 그가 30여 년 전 고민하고 성찰했던 내용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당연의 세계 낯설게 하기
『사람의 길, 예수의 길』. 편의상 나누기는 했지만 이 둘은 본래 하나다. 예수의 길이 곧 사람의 길이고, 사람의 길 또한 예수의 길이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2천 년 전 팔레스타인 땅을 주유했던 예수라는 사나이에게서 참 사람됨이 무엇인지를 본다. 그를 구원자로 믿는 이들이 아니라 해도, 진지하게 참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그를 외면할 수 없다. 예수는 이래저래 많은 이들의 상상력에 불을 질렀다. 특히 작가들은 2천 년의 기독교 역사가 그에게 덧씌운 가면들을 벗겨내고 그의 참 모습에 다가서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사실 교회는 김지하의 말대로 금관을 씌워 예수를 침묵시켰다. 작가들은 전복적인 상상력을 발휘해 예수라는 실체에 접근하려 노력했다. 인물의 생동감을 빼앗는 형이상학적 접근을 지양하면서 작가들은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예수를 상상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최후의 유혹』이나 주제 사라마구의 『예수 복음』, 보리슬라프 페키치의 『기적의 시대』나 엔도 슈샤쿠의 『사해의 호반』이 좋은 예다. 이들의 작품은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고뇌하며 살아간 인간 예수에게로 우리를 안내하는 낯선 이정표들이다.

관옥 목사의 이 책은 사유의 빈곤과 상상력 부재에 시달리는 한국 교회에게 주어진 귀한 선물이다. 저자는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하던 성경 이야기에 의문부호를 붙임으로써 익숙한 세계, 당연의 세계를 낯설게 만들어 버린다. 당연의 세계에서 벗어날 생각이 없는 이들은 낯선 것을 위험한 것이라 여긴다. 예수 시대 유대교의 사회적 세계는 예수라는 낯섦을 견디어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를 죽음의 길로 몰아넣었다. 품어지지 않는 것을 제거해 버리고 싶어 하는 것이 누릴 것을 다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못된 버릇이 아니던가. 자기들이 누리던 기득권에 작은 틈을 만드는 이들에게 가차 없이 이단자의 찌지를 붙이는 교권주의자들이 얼마나 많던가?

카타꼼의 현실
그래서일 것이다. 이 책의 1부는 카타꼼에서 행한 베드로의 증언이다. 진리가 증언되고 선포되는 자리는 지하 무덤이 적격이기 때문일까? 어쩌면 관옥 목사는 회색지대가 허용되지 않는 그 암울한 시대에, 그의 벗인 시인 양성우가 “겨울 공화국”이라 칭했던 그 시대에 예수에게 길을 묻고 싶었던 것이리라. 저자는 베드로의 입을 빌려 예수에 대해 증언한다. 관옥은 베드로에 빙의되어 때로는 예언자의 서늘한 외침으로, 때로는 예민한 시인의 감성으로 예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시종일관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그늘진 땅에 살고 있는 이들에 대한 예수의 관심이었다. 김수영의 시구대로 “바람보다 먼저 눕지만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사람들, 가혹한 생의 조건 속에서도 기어코 살아남아야 했던 사람들, 역사 변혁이라는 대의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는 못하더라도 세상이 왜 이 모양이냐며 탄식하는 사람들 말이다. 예수는 목소리 없는 이들의 목소리였고, 설 땅 없는 이들의 설 땅이었고, 땅 위를 걷는 하늘이었다.

성경은 매끈한 텍스트가 아니라 주름 잡힌 텍스트다. 지구라는 녹색별 위에 터 잡고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빚어온 삶의 이야기가 온축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에 텍스트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그들이 꿨던 역사의 꿈을 기억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뱉어내는 그들의 신음소리에 반응하는 것이다. 성경에 대한 바른 해석이란 이미 주어진 하나의 해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전통에 비추어 우리 현실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예수가 유대교의 성전 체제와 벌인 싸움도 사실은 해석학적 투쟁이었다. 똑같은 텍스트를 가지고도 성전 체제에 기생하는 이들은 자기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논리를 찾아냈고, 예수는 그 성전 체제를 탈신비화하고 탈권위화하는 길을 찾아냈다.

교회가 추문거리로 변해버린 시대이기에 이 책의 증언은 오롯이 당대적이다. 본질을 사유하는 사람에게 허락되는 길은 오직 좁은 길뿐이다. 관옥이 걸어온 길이 그러하고, 또 그가 신학적·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우리에게 열어 보이는 길이 그러하다. 본질과 비본질이 뒤섞이는 현실, 아니 그 둘이 전도된 현실을 보며 관옥은 베드로의 입을 빌려 통곡하듯 외친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대로 지니고 있던 것을 모두 버렸다. 알몸이 되어 하늘 아래 섰다. 형제들이여, 지금도 나는 분명히 증언할 수 있다. 그때 그 순간 우리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았던 거역할 수 없는 엄청난 힘을! 벌거벗을 때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을 때 우리는 온 세상을 소유한다.

하늘 아래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설 때, 우리의 앞을 막아설 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에서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가르치며 마귀들을 많이 쫓아냈고 수많은 병자들의 병을 고쳐주었다.
진실을 위하여 싸워본 자는 알리라, 가난함만이 지닐 수 있는 거대한 힘을. 빼앗길 것 없는 자의 태산 같은 용기를.”

벌거벗지 못해, 아니 벌거벗을 용기가 없어 교회는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게 우리 시대의 비극이다. 교회가 부자가 되면서 예수는 교회 밖으로 떠돌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목숨을 버리는 자가 얻는다는 부활 신앙은 고백으로만 존재할 뿐, 사람들은 몸으로 그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는 나의 길을 가리라” 외쳤던 예수, 법이 사람들을 부자유하게 하고 불의를 영속화하는 데 기여할 때 기꺼이 법을 어길 수 있었던 예수, 그래서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었던 예수는 오늘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다.

십자가 위에서
이 책의 제2부는 예수가 일인칭 화자로 등장한다. 두 개의 배신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야기의 결은 1부를 구성하는 베드로의 증언과 일맥상통한다. 예수를 팔아버린 가룟 유다는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의 약함과 실패를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스승을 배신한 후에 그것이 또 상처가 되어 자기 몸까지 파멸시켜 버린 사람 말이다. 유다의 세계에는 신의 은총이 틈입할 수 없다. 반면 예수를 세 번씩이나 부인한 베드로는 약자다. 두려움 때문이었지만 결국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나아가 통곡하는 사람 말이다. 예수는 그런 베드로야말로 교회의 기초라고 말한다.

“신 앞에서의 자기의 ‘아무것도’ 아님(無)을 발견하고 쩔쩔매며 울고 있는, 그것도 사람들이 보지 않는 곳에 숨어서 울고 있는 베드로의 나약한 어깨 위에 기초한다. 왜냐하면 거기, 인간의 약함에 신은 비로소 임재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강함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약함은 비록 악덕은 아니라 해도 사람들이 어떻게든 벗어던지고 싶은 것이다. 효율과 경쟁이 지배하는 세상, 수(數)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약하다는 것은 곧 도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질서가 도래하면서 약한 사람들은 잉여적 존재, 곧 호메 사케르(Homo Sacer) 취급을 받기 일쑤다. 그런데 예수는 그런 ‘약함’이야말로 신이 임재하는 통로라고 말한다. 오늘의 교회는 이 지극한 역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에 나오는 대심문관은 그런 메시지를 철회하지 않는 예수를 입 맞추어 추방했다. 예수를 입 맞추어 배반하는 일은 그 옛날 게쎄마니 동산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라, 유다적 강인함에 매료된 모든 세대에서 자행되고 있는 현실이다.

2부의 증언은 시종 가슴을 절절하게 만든다. 특히 십자가 위에서 천년의 고독보다 더 깊은 고독 속에서, 하나님의 깊은 침묵을 배경으로 하여 전개되는 예수의 내면세계는 가히 절창이라 할 수 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는 에덴 이후 시대를 살고 있는 인간들이 빚어내는 모든 악함에 대해 우주적인 미움과 분노를 느낀다. 미움과 분노 없이 어떻게 사랑이 발생하겠는가? 정직한 미움과 분노가 있었기에 예수는 ‘사랑’이라는 샘에 당도할 수 있었다. 그 악함과 약함까지도 품어 안는 사랑은 소용돌이치는 미움과 분노를 가라앉게 만들었고, 마침내 ‘용서’라는 한 송이 꽃이 소담하게 피어났다. 어쩌면 진정한 사랑과 용서에 이르는 이 길은 미움과 분노를 거치지 않고는 찾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예수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망치 소리를 들으며 옛 세계가 붕괴되는 소리를 듣는다. 마치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것처럼 유장하게 이어지는 말들은 읽는 이들의 가슴을 세차게 뒤흔든다. 무너지는 것은 옛 세계 전체다. 완고한 율법주의, 공산주의, 모든 ‘인위’, ‘교회당’, ‘세상의 비리’, ‘광신, 폭력, 탐욕’, ‘독재자들의 깃발’, ‘국가주의’, ‘제국주의’……. 십자가 위에서 그 모든 것들이 무너졌다.

그러나 오늘의 교회는 그 십자가를 지지 않는다. 낡아빠진 세계의 논리에 즐겨 굴복한다. 그것이 안락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베드로와 예수의 입을 빌려 발설된 관옥 목사의 증언은 통곡이다. 그 통곡은 본(本)을 버리고 말(末)을 붙잡는 세계에 대한 통곡이고,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를 부인하는 교회에 대한 통곡이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이런 통곡을 견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아니, 견디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함께 통곡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교회가 무너지는 소리가 도처에서 들려온다. 얍복강가에서 야곱은 환도뼈가 부러지는 곤경을 겪었지만 그 때문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제 우리가 삶으로 할 차례다.


차례

책머리에 예수 …… 3
발간의 글 예수에게 길을 묻다│김기석 …… 4

1부 사람의 길
머리글 …… 17
시몬의 회상 …… 20
강과 빈 들 …… 30
출발, 갈릴래아 …… 42
법과 사람 …… 54
바다에 배를 띄우고 …… 65
씨앗 이야기 …… 76
미친 바람 속에서 …… 85
두 눈 부릅뜨고 …… 95
탈리다 쿰! …… 105
그분은 가난하셨다 …… 116
죽지 않은 자의 죽음 …… 127
기꺼이 개라도 되리라 …… 138
예루살렘을 향하여 …… 149
산 아래, 죄인의 마을로 …… 160
땅 속에 흐르는 하늘 …… 171
예루살렘 입성 …… 182
무화과나무와 예루살렘 성전 …… 194
마지막 날 밤에 …… 205

2부 예수의 길
두 배신 이야기 …… 217
숫자의 심판 …… 226
침묵 속에서 …… 235
소리가 이긴지라 …… 244
정치범 …… 254
하늘이 잠잠할 때 …… 264
무너지는 소리 …… 273
내걸린 육체는 깃발이 되어 …… 284
엘로이 엘로이 …… 302

 


 

   

 

이현주 선집 제3권
나의 어머니 나의 교회여

이현주 지음 / 판형 A5 / 288쪽 / 13,000원

책머리에

교회

이 세상 모든 종교에 교주가 있고 교주의 가르침이 있고 그 가르침을 좇아서 살고자 하는 무리가 있다. 기독교라고 예외일 리 없다. 예수와 예수의 가르침과 그것을 좇아서 살고자 하는 무리(교회)가 없으면 기독교는 없는 것이다.
교회는 나에게 어머니와 같다. 교회가 없었으면 예수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고, 예수를 만날 수 없었으면 지금의 나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교회는 ‘나’라는 나무가 그 위로 솟아야 하는 땅이요, ‘나’라는 새가 깨뜨리고 벗어나야 하는 알이다.
어느 날, 문득 교회보다 커져 있는 내가 느껴졌을 때 나는 교회가 참 고마웠다. 어머니를 껴안으려면 어머니 자궁에서 나와야 하는 것처럼, 교회를 사랑하려면 교회라는 틀에서 나와야 한다. 자식이 어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듯이 나는 교회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2013. 12
관옥 이현주



발간의 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정희수 감독 (미연합감리교회)

이현주 목사님의 옥고들 중에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묶는 일은 가슴 설레는 일입니다. 제가 복이 많아서 멀고 가까이서 목사님의 목회현장을 뵈올 수 있었기에 그렇습니다. 이현주 목사님의 교회론은 복음과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지극히 우주적인 현실에서 이루고자 하시는 운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이는 교조적이고 교단적인 굴레를 거리낌 없이 드나드시는 그분의 족적을 한 귀퉁이에서 보며 비교회론자라고 반응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는 관념에 잡혀 있는 글쟁이지 목회의 현장과는 괴리되었다고 불평하며 신학적 담론에 소중한 가치를 두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게 목사님의 목회 현장은 『나의 어머니, 나의 교회여』에서 전해지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 된 교회에 대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다가옵니다. 목회의 현장에서 우리 선배들이 무슨 고백과 담론을 이어가는지 찾다가 자주 다가가는 베개 같은 글이기도 하였습니다. 이현주 목사님의 생의 전기는 죽변교회 이야기에서 철원교회 이야기까지 절절히 동료들과 후학들에게 신선한 몸말로 다가섭니다.

그리스도의 몸처럼 거룩한 공동체이기에 그 교회를 대하는 마음은 선연한 것이고, 교회 안에서이든 밖에서이든 그 교회를 그렇게 권위 있게 마주하는 목회자는 흔치 않습니다.

어머니로 마주하고 그 사랑 때문에 달구어지고, 때로는 척박한 세상의 현실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랑 이야기가 바로 구석구석에 전하여지고 있습니다. 목사님은 성서적인 교회 상 지평 속에서 살아있는 신학적 담론을 현장답사적인 살의 언어로 다양하게 마주하셨지요. 단 한 번이라도 어머니처럼 품어주고 키워주시는 자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일상에서 잊으신 적이 없기에 거룩을 사모하고 품는 마음을 격의 없이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런 바탕 마음 때문에 교회는 소박한 어머니의 덮는 속죄 사랑의 몸이고, 생명의 우주적인 모성적 대지의 품과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세속의 짙은 담장에 가려져 더 이상 교회가 교회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시대적인 상처를 직접 마주하면서도 그 교회를 뒷발질한 적이 없으셨기에 “나의 어머니, 나의 교회여”라는 말씀은 감동이 됩니다.

대안교회 운동에 대한 바람들이 이곳저곳에 일어날 때 아주 열정적인 교회운동의 중심에서 함께 거니는 모습을 아주 가까이서 뵈었습니다. 성경과 경서를 함께 아우르며 강단의 영성을 풍요로운 장으로 엮고, 다양한 동양고전들의 독서 모임과 그리스도적인 수행을 접맥하면서도 그 어머니 교회를 향한 큰 서원을 가는 곳마다 풀어가셨습니다.

‘예수살기’ 모임은 90년대 젊은 그리스도교인들이 함께 기독교적인 토박이 수행인의 모형을 찾으면서 말씀을 공부하는 초심으로 구성되었습니다. 80년대 민중교회의 현장적인 피로에 지친 동역자들도 함께 모이고, 기존교회 고립의 벽이 철옹성 같아지는 것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영의 운동으로 모이고, 공동체적인 모상을 전국을 돌면서 모였던 운동은 제게 큰 신학적인 담론을 선물한 만남의 공동체였습니다.

제가 다시 미국에 귀국하여 새로운 목회에 임할 때, ‘드림교회’라는 대안운동이 새로운 영의 샘물을 창안하여 가는 소식을 듣기도 하였습니다. 이미 교회는 감리교회의 터를 넘어서서 그리스도인들의 대체적인 몸의 운동으로 대안의 폭을 넓혀 가시는 것을 진지하게 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드림’이라는 은총의 언어로 살아있는 몸을 재구성하는 고백의 운동이었기에 아무런 형식이나 교조에 묶이지 않고 대자대비하신 하나님을 향한 넉넉한 대화와 만남의 운동으로 작은 교회나 마치 emerging church와 같은 형태로 지속적인 실험을 이루어 가고 있었습니다.

최근 이현주 목사님의 ‘어머니- 교회’에 대한 사랑의 담론은 ‘예수혁명교회’라는 운동으로 서 있었습니다. 그 속에서 진전되는 예배는 일상의 언어와 소통의 극치인 것을 뵈었습니다. 함께 모인 공동체원들은 아주 격의 없이 말씀의 잔치에 참여하고, 일상에서 체험하는 일들을 대화의 순전한 담론으로 꽃을 피워가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공동체를 마주하면서 구성한 담론은 장엄한 형식과 송가들을 독점한 모습이 아니었듯이 일상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이 겪고 체험하는 생의 이야기를 아주 화기애애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나누고 축하하는 모습을 ‘예수혁명교회’ 이야기 속에서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함께 모여서 그리스도의 변형적인 생명 이야기를 나누는 교회운동은 전문 치유 이야기이기도 하고, 생명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거리에서 탈교회적인 교회의 신앙운동으로 은총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그 예수혁명교회 공동체에 참여하면서 교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교회의 참된 권위를 강렬한 갈증으로 토로하는 세대 위에, 다시 그리스도의 자비와 사랑이 교회 담벽을 넘어서 생명이 그립고 자유가 그리운 영혼들에게 다가서야 하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어머니 되신 교회를 섬기면서 제 영혼에 어머니 되신 한국 교회를 생각하면, 다시 예수 혁명의 이야기가 광야의 소리로 들려와야 마땅하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아쉬움을 대신하여 그분께 기도하게 됩니다. “주님, 지상의 모든 교회들이 저희 어머니 되게 하소서.”

가끔 이현주 목사님을 생각하면서 이 지침 없이 지난 40여 년간 고백과 사랑, 그리고 울부짖음으로 마주하는 어머니 교회운동은 도대체 그 근원적인 헌신과 애정이 어디서 기인할까 하는 물음을 가지곤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다시 어머니라고 부르면서, 그 교회를 어머니처럼 사랑하면서, 그 생명의 우주성을 마음껏 탐닉하고 살아가는 새로운 세대를 향한 초대가 우리 모두를 통하여 다시 선포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신앙운동, 그런 영의 운동으로 새로운 성령의 바람을 이현주 목사님의 교회론 속에서 다시 마주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신앙과지성사 최병천 장로께서 이런 바람과 소리를 다시 들려주시니 감사합니다.



차례

책머리에 교회 …… 3
발간의 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정희수 …… 4

1부 나의 어머니 나의 교회여
머리글 …… 13
내가 믿는 하느님 …… 17
하느님 하나님 …… 22
그분은 세상을 거꾸로 사셨다 …… 25
나의 예수를 어떻게 사랑할까? …… 32
창을 통해 들의 꽃을 본다 …… 39
진실을 버릴 때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 46
그리스도교 즉 그리스도는 아니다 …… 53
종교가 부패하면 나라가 망한다 …… 59
하늘 가는 길은 이 땅에 있다 …… 67
진리 아니면 거짓이 있을 뿐 …… 74
이 땅에서 내가 할 일은 …… 80
목사와 목사의 일 …… 89
겸손과 오만의 경계선에서 …… 96
나의 어머니, 나의 교회여 …… 104

2부 우리가 건너면 세계가 건넌다
머리글 …… 115
‘목회’란 무엇인가 …… 119
맑은 구슬 감추어서 드러내지 아니하고 …… 141
그것 참, 되게 힘드네요(?) …… 166
당신은 무엇을 그리워하며 살고 있나요 …… 192
홀로 다니고 홀로 걷더니 …… 216
무심코 인생 …… 238
우리가 건너면 세계가 건넌다 ……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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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둥지위로나라간새 (115.161.172.167)
2014-01-02 00:29:16
연락처 남길 메일 있었으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조금 번거로우실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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