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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에 대한 불편한 진실자영업자는 세습한다.
최우성  |  d2newschoy@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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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년 02월 27일 (수) 22:41:37
최종편집 : 2013년 02월 28일 (목) 10:57:28 [조회수 : 7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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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기억 ‘프레스 기계’

어렸을 적 우리 집은 공장을 했었더랬다. 이름하야 ‘하청공장’. 큰 회사의 공장에서 필요한 부품을 주문받아 생산하는 ‘작은 공장’ 말이다. 내 기억으로는 우리 아버지의 공장에서는 자동차 부품부터 시작해서 기계부품, 인테리어 장비까지 원청업체에서 요구하는 모든 부품을 만들어 냈었다. 비록 자주 망했었지만...

그 당시, 우리공장에는 아버지와 아저씨들이 ‘프레스’라고 부르는 기계가 있었다. 원체 아버지의 공장이 부침이 많기는 했지만, 많을 때는 그 프레스 기계가 공장 안에 10대까지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혹시 프레스 기계를 잘 모르시는 독자들을 위해 잠깐 설명하자면, 프레스는 대략적으루다가 독서실 책상 모양으로 생겼는데, 오른발 쪽에 자동차 엑셀처럼 밟는 페달이 있고, 위쪽에 달려있는 장치에 원하는 틀을 끼워놓고 페달을 밟는다. 그러면 그 장치가 내려와 미리 끼여 놓은 틀 모양의 부품을 찍어내는 기계다. 뭐 대충 그렇다.

 

   

 

근데, 이 프레스라는 놈이 사실은 힘이 장사다. 만들어야할 부품의 재질이 무엇인가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그것이 철이든, 알루미늄이든 플라스틱이든 말이다. 페달을 밟기만 하면 무조건 찍어낸다. 중요한 건 ‘틀’이 어떤 모양이냐는 거다. 원 모양의 틀은 틀림없이 원 모양의 부품을 만들어 내고, 네모 모양의 틀은 네모 모양의 부품을 생산해 낸다. 예외는 없다. 그러다 보니 종종 사고가 나서 공장 아저씨들이 잘린 손가락을 들고 병원으로 뛰어 가는 모습을 한 두번 보고 그랬었다. 아! 그 장면은 생각만해도 아직도 몸서리가 처진다.  

우리가 사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금 내가 어떤 사회적 시스템(틀)에서 살고 있는가 하는 거다. 자본주의틀 안에 살면 경쟁에 날렵해지고, 공산주의에 살면 자기가 스스로 알아서 하는게 힘들어지는 거다. 예외는 없다. 다만 그 시스템을 스스로 거부할 수만 있을 뿐.

눈치 챘겠다. 그렇다. 난 지금부터 이 사회 시스템(틀)이 중요하다는 얘길 할 거다. 그러기 위해 엄한 유년의 기억에 대해 길게 얘기했다.

세습 문제가 시끄럽다. 특히 최근엔 임마누엘 교회 목사 부자가 당구 랭킹 세계 1위에 빛나는 '브롬달' 형님급의 ‘투다이 쓰리쿠션’의 신기술로 세습을 감행하셔서 더욱 그리됐다. 그런데... 사실 여기서 한 가지 구분해야할 것이 있다. 그건 앞으로 교회세습을 논할 때는 임마누엘교회의 세습과 그 이전의 세습들에 대해서 분리해서 얘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임마누엘 교회의 세습은 감리교의 ‘세습금지법’이 발효된 이후에 나온 거다. 그 이전엔 세습문제가 좀 더 고차원적인... 즉,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차원의 문제였다. "탐욕을 버리십시요." "아닙니다. 이건 탐욕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같은 거 말이다. 그런데 임마누엘교회는 그게 아니다.

이건 ‘교리와 장정’이라고 하는 감리교의 실정법을 자기 맘대로 유린한 문제다. 다시 말하면 윤리보단 좀 더 낮은 단계라 여겨지는 법에 관한 문제란 말이다. 이 경우는 전후좌우를 따져봐야할 문제가 아니라 그냥 그분이 파렴치하신 거다. 법을 어긴 목사. 그냥 그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렇게 정리할 수도 있겠다. 임마누엘 세습 문제는 비윤리적 문제가 아니라 불법적인 차원의 문제다. 라고 말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당당뉴스를 창간하신 바 있는 이필완 목사님께서 당신의 칼럼을 통해서 이미 날카롭게 설파하셨다. 궁금하신 독자들은 이목사님의 기사를 참조하시기를 바란다. ‘관점의 명확성’... 그것의 극치를 보여준 명문이기도 했지만, 제목이 더 죽였다. “세습방지법은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농락당했다.”


세습 금지 노력, 뭔가 2%가 부족하다.

작년에 교회세습반대운동연대(세반연)이라고 하는 단체가 출범했다. 최근, 좌담회, 여론조사발표, 세습에 관한 학술 심포지엄 등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감리교에서는 장정수호대책위원회가 참여하고 있다.

기자로서는 이 세반연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왜냐? 양질의 기사거리를 많이 제공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그런데... 먼저 사과부터 전해야겠다. 진심으로 죄송하다. 기자로서 감사하기도 하지만, 또한 기자의 입장에서 뭔가 2%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세습을 반대하며...

먼저 세습을 반대하는 논리를 두 가지로 넓게 정리 했다.

첫째, 세습은 성직중심주의, 성장지상주의, 교회의 사유화, 세속화(맘몬숭배, CEO 같은 목회자), 교회내의 비민주적 절차, 부와 권력의 세습으로 인한 목회자 계층간 이동성 저하 및 고착화 등 “한국 개신교회가 안고 있는 모순들의 총합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런 질문이 가능해진다. 위에 열거된 이 모든 폐해들이 꼭 세습교회에서만 보여지는 현상일까? 라는 것 말이다. 가령 성장지상주의가 세습하는 교회에서만 존재하는 아주 유니크한 특징이냔 말이다. 세습하지 않는 교회들도 성직중심주의, 성장지상주의 등등... 똑같은 병폐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세습교회 목사들의 항변이 설득력을 얻는 순간이다.

이렇게 물으면 이해가 쉽겠다.

“세습만 없어진다면, 이 모든 한국교회의 병폐들이 사라질까요?”

이 반론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유는 이렇다. 첫째 세습하는 교회보다 세습 안하는 교회가 훨씬 더 많다는 것이고, 둘째는 훨씬 많은 세습 안하는 교회들 역시 '성장주의의 포로가 아니라고 주장하기 힘든 까닭'이며,  셋째 그렇다면 꼭 세습하는 교회의 병폐만 제기해야 하는 이유가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습이 싫다면, 이 ‘반론’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도 반드시 말이다.

둘째, 세습허용의 기준에 관한 문제다. 좌담회나 학술제에서도 동일한 주제가 언급됐지만, 과연 박수 받는 세습과 욕을 먹어야 하는 세습의 기준이 뭐냔 얘기.

세반연은 이렇게 말했다. “미자립을 벗어날 가능성이 없는 시골교회나, 아무도 가지 않으려 하는 어려운 교회는 세습이 괜찮지만... 혹은 그런 분들은 존경할만 하지만...” 또 세미나에서는 “이전의 교회세습은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가업을 잇는 숭고한 결단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고 했다. 세습금지법 통과를 위한 목회자 기도회에 취재 갔을 때도 비슷한 취지의 발언이 있었다. ‘옛날에는 아들이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으면 박수를 받았지만...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박수 받는 세습과 비난 받는 세습은 어떻게, 뭘 기준으로 나누지? 당연히 드는 합리적 의문이다.

 

   

 

그런 와중에 감리교의 세습금지법은 너, 나 할 것 없이 감리회에 소속된 모든 교회의 세습을 금지시켰다는 측면에서 훌륭하다고까지는 아니래도, 상당히 논리적이었다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모든 감리교회는 안된다고 했으니 말이다.

세습금지법에 대해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세습금지법이 “‘연속해서’ 동일교회의 담임자로 파송할 수 없다”라고 하는 조항 때문에 ‘편법’이 생길 거라는 글을 감리교 게시판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그 때는 그냥 지나갔는데, 기사 작성을 위해서 조항을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니, 연속해서라는 말은 단순히 ‘세습’이라는 단어의 뜻풀이일 뿐이란 사실을 발견했다.

이런 말이다. “... 연속해서 동일교회의 담임자로 파송할 수 없다.”는 말이나 “세습해서 동일교회의 담임자로...”나 같은 뜻이라는 말이다. 세습은 원래 연속해서 하는 거다. 만약 아버지의 재산이 제3자에게 갖다가 아들에게로 오면, 사람들은 그것을 세습이 아니라 ‘증여’라고 부른다.

그러니 이 법 조항을 만든 목사들이 무지했거나 혹은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똑똑했던 거다. 자! 보자. 만약 ‘연속해서’라는 문구가 없으면 아버지가 담임이었던 교회에 아들목사는 10년, 20년 후에도 담임으로 올 수가 없는 이상한 역차별 사태가 벌어지게 될테니까 말이다.

단, 세습금지법에 대해 아쉬운 것은 가령 “몇 년 내에는 동일교회에 아들이 올 수 없다”는 문구가 있었으면 하는 것하고, “이를 어길 시에는 작살날 줄 알아라” 같은 처벌 조항이 없다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다시 돌아와서...

바람직한 세습과 나쁜 세습에 대한 기준이 없다는 것은 너무나 치명적인 핸디캡이다. 물론 세반연의 주장이나 세습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정서를 모르는 바 아니고, 그들의 주장이 틀렸다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심지어 그들의 주장에 지지를 보내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이 좋은 세습과 나쁜 세습의 기준을 정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사안이다. 만약 기준을 세우지 않고, 계속해서 세습에 대한 대응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해 나간다면, 이는 언제든 ‘마녀사냥’식으로 흐를 위험성이 상존하기 때문이다.

비슷한 규모의 교회가 세습을 했다고 치자. 기준이 없다면, 내가 좋으면 ‘좋은 세습’, 내가 싫으면 ‘나쁜 세습’이라고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농후해진다는 말이다. 아님 '걸리면 나쁜 세습이 되는 거고, 모르게 넘어갔는데 아들 목사가 목회를 잘해...' 그러면 그냥 세습의 바람직한 예가 되는 거다.

자, 실제로 세습 반대 측의 레이더 망에 포착된 교회보다 그냥 아무도 모르게 세습이 진행된 교회가 훨씬 더 많다. 기준이 있다면 일일이 찾아 다니며 반대할 필요가 없다. 딱 그 기준에 맞춰보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감리교는 대략 3500만원이 미자립 교회를 가르는 기준이라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3400만원이면 좋은 세습이고, 3600만원이면 나쁜 세습이 되는 건가?(모든 교회의 세습이 불가하다는 일관된 논리성을 부여해주신 세습금지법 제안자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단 위에 열거한 이유로 열화와 같은 박수는 못 보내겠다.)

그러니 세습은 무조건 안 된다고 하거나(감리교처럼) 아님 유치하더라도 ‘교인 몇 명!, 예산 얼마! 그 이상은 안 됨’이라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라. 그게 합리적이다.

이 외에도 세습에 반대하는 논리들에 대한 반론은 좀 더 있지만, 나름 지엽적인 것이라 판단해 과감히 생략했다.

그리고 사족으로 달자면,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왜 나만?’ 혹은 ‘샘(질투)나서 그러냐?’ 같은 역공을 막기 위함임을 밝혀두는 바이다. 그러니 제발 오해하지 마시길...

개교회주의의 허와 실.

세습하는 교회의 주장 중에 이런 게 있다. ‘왜 남의 일에 당신들이 감나라 배나라야?’라는 거 말이다. 나는 기자로서 그들의 이런 주장에 100% 동감할 수는 없지만, 일정정도 동의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왜냐면, 한국 개신교는 성공회 정도를 제외하곤, 전부다 ‘개교회주의 시스템’ 하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123년 전인 1890년 6월, 장로교 선교사들은 중국에서 선교하고 있던 네비우스라는 목사를 강사로 모시고 2주간의 세미나를 열게 된다. 그리고 그 영향으로 1891년 장로교는 소위 규칙과 내규를 만들어 그것을 한국선교의 주요한 강령으로 삼았다. 그것이 이른바 ‘네비우스 선교정책(이하 정책)’이라는 것이다.

 

   

 

이 정책의 핵심은 3가지다. 자전, 자립, 자치.

쉽게 말해 이거다. 한국 교회는 ‘스스로 전도하고’, ‘알아서 치리하고’, ‘교인들끼리 책임지고 교회를 유지하라는 것’. 이것이 바로 '개교회주의의 원형(archetype)'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장로교의 “개교회주의 역사”는 문헌상으로는 적어도 122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겠다.

감리교에서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장로교에서는 이 네비우스 선교정책을 아주 비중 있게 다루는 모양이다. 대부분의 장로교 관련 자료가 이 정책으로 말미암아 장로교 교세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진짜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1890년 당시 감리교인이 165명, 장로교인이 100명으로 감리교인이 무려(?) 65명이나 많았었단다. 그런데 유동식 교수가 쓰신 책에 보니 1900년에는 장로교 14,509명 감리교가 5,006명이다. 1905년엔 39,897명 VS 12, 418명, 20년 후인 1910년, 장로교가 176,356명, 감리교가 50,435명이다. 점점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였을까? 감리교에서도 1967년 제10회 특별총회에서 파송제를 폐지하고 사실상의 청빙제로 돌아서게 된다. 장로교의 정책을 받아들인 것이다. 당연히 ‘네비우스의 자립, 자치, 자전의 철학과 정책도 함께’다.

그래서 오늘날 적어도 장로교회와 감리교회는 별 차이 없이, 개교회주의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개교회주의를 좀 더 쉬운 말로 하면 자영업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가 알아서 경영해야 하는 자영업 시스템! 이것은 이런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교회의 성장도 알아서 하지만, 반대로 교회가 망하는 것도 스스로 책임지라는 뜻 말이다.

이런 시스템 아래서는 모든 촛점이 교회의 양적 성장과 교인 수 늘리기로 환원되는 것이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쓰러지지 않으려면 자전거 페달을 계속 돌려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

그러니 이 자영업 시스템 하에서 개교회의 인사(세습)문제에 대해서 외부에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뭔가 어색하다. 오해하지 마시라. 논리적으로 그렇단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 동네에 4개의 치킨가게가 영업 중이라 치자. 근데 나는 스스로 엄청난 닭 튀기기 기술자라고 자부하고 있다. 물론 돈이 없어 치킨 가게는 못하고 있다. 근데 그 4개의 치킨가게가 가게를 모두 아들에게 물려줬다. 그렇다고 내가 그 가게를 찾아가서 “사장을 공채로 뽑지 않고, 아들에게 물려주는 법이 어디 있느냐?”고 따질 수 있는가?

정리하면 이렇다. 현재와 같은 자영업(개교회주의) 시스템 하에서는 세습을 막을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다만 세습하지 말라고 주장만 할 수 있을 뿐...

 

문제는 시스템이다.

한국 교회는 그동안 많이 성장했다. 이제는 종교 백화점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거느린 1등 종교다. 그래서 그런지 곧 잘, 세상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들을 아무렇게나 저지르고는 한다. 요즘 들어 그런 일들이 더 자주 일어난다.

비이성적 믿음 강요, 헌금 강조, 교인들 짜내서 교회 크게 짓기 뺏어서라도 교인수자 늘리기 등등... 이런 것들이 오늘날 개신교를 개독교라고 욕하는 요인들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문제제기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개교회주의 시스템' 하에서는 이런 폐해를 절대로 바로 잡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세습을 막을 수도 없음은 물론이고 말이다.

 

   

 

 

그러니 이제는 시스템의 변화라는 패러다임 시프트를 고민해야 할 때가 된 거다. 한국교회는 이미 충분히 돈이 많다. 이제는 더 쌓기 보다는 나눌 시기가 도래했다. 꼭 10만 명씩 데리고 목회를 해야 할 피치 못할 이유가 있는가? 1000명씩만 쪼개도 100개의 대형 교회를 만들 수 있다.

누구는 배불러 죽고, 누구는 배고파 죽는 이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설파하고 싶나? 정말 무례가 안된다면 꼭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다.

진정으로 성장이 아니라 성숙을 원한다면, 지금 현 상황에서는 파송제/교구제가 정답이다. 자본주의 시스템 중에서 자유주의와 케인즈 주의가 서로의 위기 상황을 번갈아 가며 서로 극복해 준 역사처럼 말이다.

카톨릭 사제들은 적어도, 우리 성당을 세계에서 제일 큰 성당으로 만들려는 이상한 욕망에 사로잡히지는 않는다. 그리고 참고로 모 케이블 TV에서 조사, 발표한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직업 3위가 신부다. 목사는? 40위다. 만약 카톨릭 신부님들에게 성당을 각자가 꾸려가고, 알아서 살아돌아오라고 한다면 그래도 3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이미 시대는 이성을 초월한 목사가 아니라, 이성에 깊이 뿌리박은 지극히 합리적인 성직자를 원하고 있다. 그만큼 객관성과 합리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민의식이 성장했기 때문이다.

개신교가 욕을 먹는 이유는 ‘초월적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이 없음 때문이다. 더나가 난 이렇게 주장하고 싶다. “목사들이 탐욕의 노예로 전락하는 이유는 심성이 고약해서가 아니라 이 개교회주의 시스템 때문이다‘라고 말이다.

세습을 진짜로 막고 싶은가? 시스템의 변화, 그 것 외엔 별로 길이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기자의 눈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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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바람 (110.47.76.103)
2013-03-29 18:59:57
세습방지가 시스템 개혁이 문제해결이라는 논리에 대해
임마누엘 교회로 인해 한국교회가 떠들석한 것 같다. 항간엔 세습이냐 계승이야를 따지고, 다른 곳엔 세습자체가 무조건 죄라는 논리를 펴는것이 더 많은 글로 도배되고 있는 것 같다. 이글은 쓰는 나도 목사지만 작은교회냐 큰 교회냐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문제는 우리의 논리의비약이 과연 <성경적이냐>하는 것이다. 작은 공간에 많은 글을 올릴 순 없다고 생각되기에 골자만 적어보려 한다. 일단 첫째:시스템의 변화가 건강한 감리교회를 만들것이라는 생각에 반대다. 왜냐하면 시스템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온전치 못한 사람들은 또 나오기 때문이다. 둘째:세습은 죄악이다 라고 말하는 그 말은 진리는 아니다. 좀 더 정확하게 얘기한다면 작은 교회의 세습은 주님이 기뻐하실 세습이고, 큰 교회의 세습(또는 계승)은 부를 세습하는 것이기 때문에 죄악이라는 논리는 부적절하다. 신앙인이라면 이렇게말해야 할 것이다. <이 일이 과연주님이 원하시는일인가?>하고 말이다. 문제는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자기 입맛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세습을 시키려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의 입맛말이다. 정말 세습을 반대하는 것이 죄악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일단 임마누엘교회에 자리가 날 때에 이력서를 제출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당신보다 더 좋은 사람이 그곳에 갈 수 있는 기회를 당신이 줘야되기 때문이다. 셋째:하나님은 아버지 목사가 아들목사에게 세습(또는 계승)하는 것을 찬성하실까 반대하실까? 답은 이래야 한다. 그 아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잘 준비된 아들이라면 좋아하실테고 불순한 아들이라면 참 괴로우실거다. 지금 우리 교회의 문제는 두가지다. 하나는 세상논를 쫓아가며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고, 세상논리를 이겨낼 수 있는 진리와 논리의 방패막이가 너무초라하다는것거이다. 감독회장선거로 초라한 신앙인이 되었다. 감독회장 해보겠다는 사람은 다 못했다. 그렇다면 신앙의 논리가 세상사람들에게 진하게 어필되는 것은 무엇일까? 상식일까? 그럴수 있다. 그러나 교회가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하나님과의 교통이다.하나님에게서 들려지는 목소리가 끊어진 교회는 이미 교회가 아니다. 세상을 이끌어갈 힘도없는 교회이다. 이말은 신비주의를 독려하기 위한 말이 아니다. 구지 자기 아들을 자신의 교회에 심으려면 적어도 6년이상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목사안수 받은 후) 물려주면 어떨까? 부끄러운 논리가 진리의 전부인 양 긁적대는 인터넷 판이 참 안스럽다. 정말 교회를 사랑하는 방식은 어떠해야 할까? 물론 들추어내는 사람이 있어야 문제가 드러나겠지만 정해진 원칙은 없이 문제부터 드러내고 정죄하는것은 지혜로운 방식은 아닐 듯 싶다.결론적으로 <기본에 충실하고> <네가 뿌리지 않은 것을 먹으려하지 말라> 이 말이 정답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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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근 (14.52.86.246)
2013-03-05 11:54:52
왜 계승(세습)에관한 법(기준)을 기습적으로 만들렀나.
왜 계승(세습)에관한 법(기준)을 기습적으로 만들었나.
하나님의 뜻인가. 몇몇 계승반대자들,주창자들의 면면을 자세히 봐주시기 바란다. 누구를 겨냥한 법을 그렇게도 신속하게 제정하셨나? 우리모두 하나님만 바라보며 의견을 개진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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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 (42.82.105.143)
2013-03-02 09:30:59
우리의 입장에서 선이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지체를 사랑하며 나아가 비신자들을 사랑하고 자연세계를 다스리는 것이다.
우리의 입장에서 악이란 그것에서 벗어난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지체를 사랑하며 나아가 비신자들을 사랑하고 자연세계를 다스리는 양상은 시대에 따라 변화가 있다.
성경의 진술에 담긴 원리를 바르게 파악하고 그 원리가 이 시대에 적실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문제는 원리와 이 시대에 적실하게 적용하는 것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원리는 이것이며 지금의 시대에는 이렇게 적용되는 것이 옳다고 말씀해주시지 않으시니 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기에 신자는 겸손하게 하나님을 바라며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고 함께 마음을 열고 대화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열린 마음과 열린 대화가 필요하고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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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 (42.82.105.143)
2013-03-02 09:23:30
머리에 쏙 들어오는 글이네요
사역지 세습에 대한 여러 문제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요.

파송제/교구제가 그 문제에 대한 답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글쎄요.
사도 시대의 교회는 파송제/교구제가 아니었음에도 사역지 세습의 문제가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그 당대의 교회와 같지는 않기에 그것을 문자적으로 대입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 시점에서 사역지 세습이 보여주는 문제가 있고 그에 대한 대안을 찾고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역지 세습이 문제가 되는 오늘날의 교회 현실에 대한 진단.
사역지를 세습하는 이들의 내면에 있는 사고에 대한 진단.
사도적 복음에 담긴 원리에 입각하여 그 부분을 정확하게 평가하고 그것을 토대로 어떤 대책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리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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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0
익명 (218.39.77.67)
2013-03-01 06:19:52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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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익명 (218.39.77.67)
2013-03-01 06:22:05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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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129.105.63.211)
2013-03-01 03:20:20
세습이라는 단어는 가치중립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글 쓴 분께서 지적하셨듯이 세습의 찬반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세습은 옳은 것이고 어떤 세습은 옳지 않은 것인가의 고민입니다. 문제는 이를 판별할 합리적 기준을 세우기가 어렵다는 것이고 그것은 누구도 잘 알 수 없고 많은 경우 자신도 속게 되는 마음과 의도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짧은 생각이지만 저는 교구화가 답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개교회 전통이 더 좋다고 봅니다. 더 자유롭게 다양한 교회의 모습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그리고 뜻을 같이 하는 교회가 많이 만들어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비판하며 자신의 생각은 더 공고해 집니다만 달리보면 필요한 긴장요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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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철 (121.170.245.215)
2013-02-28 13:13:37
"그리고 참고로 모 케이블 TV에서 조사, 발표한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직업 3위가 신부다. 목사는? 40위다." 요 부분 좀 정확한 자료를 알려주시면 큰 도움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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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D (121.191.175.235)
2013-02-28 19:57:22
그러게요
신부님에게 자식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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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미 (121.191.28.68)
2013-03-09 14:29:38
tvN 채널의 강용석의 고소한 19라는 프로에서 나왔습니다.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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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mail-x (112.222.123.131)
2013-02-28 13:10:34
흠 나는 기독교가 엉터리 종교라는 것을 성경으로 알았는데...
.

그리고 천국이나 지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목사들을 보고 알았다.


만약 정말 신이 존재하고 천국 지옥 따위가 존재한다면

목사들이 이렇게 살지 않을거니까.


목사들은 실은 신이라든지 천국 지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요 방증이다.



앞서 말한대로 기독교가 엉터리 종교라는 것은 예수의 가르침으로

알았다.

예수는 열매를 보고 그 나무를 안다고 했다.

기독교는 특히 한국 기독교는 악의 열매를 가득 가지고 있는

사교집단이다.


이것은 비난이나 비방이 아니다.

나는 예수의 가르침대로 판단할 뿐이다.


사교집단에서 무슨 개혁이니 옳으니 그르니 이런 주장하고

글 올리고 하는 것도 웃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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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3-01 08:09:47
기독교=그리스도교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11:26)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행26:28)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벧전4:16)

그리스도인을 음차한 것이 기독인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를 음차한 것이 기독교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따르는 무리를 세상 사람들이 보고 붙인 명칭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보고 기독교가 사교집단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사교 집단(?)의 경전을 바탕으로 하여 그 경전의 내용을 옳은 것으로 생각하고 그 경전을 믿는 자들을 사교 집단이라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말씀대로 열매를 제대로 맺고 있다면 바른 종교집단이라 하실 것입니까?
그런 곳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님이 지적하는 일부는 정말 뼈 아픈 말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사교집단이라 욕할 정도로 기독교가 잘못된 것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그리스도인도 있음을 아셨으면 합니다.
온전하고 완전하지 못한 것도 알지만 그것 또한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서는 날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고백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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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사 (72.196.234.24)
2013-03-03 10:10:50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77)가 100억원대 배임과 탈세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부장검사 이헌상)는 조 목사가 2002년 아들인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이 한때 소유했던 회사의 주식을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사들여 교회에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가 있어 수사중이라고 28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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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76.23.169.116)
2013-02-28 11:21:30
문제는 시스템이다???
정말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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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목사 (125.179.213.96)
2013-03-01 02:12:49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1. 물론 시스템만의 문제는 아니다. 단지, 기자는 소위 세습을 비판할 때 개인의 도덕성이나 불법성만을 시비하는 현실을 넘어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읽혀진다.

2. 나 역시 기자의 지적대로 세습은 '개교회주의'라는 나무(시스템, 본질)가 만들어 낸 하나의 열매(현상)일 뿐이라는 지적에 공감하면서 오늘날 세습이 만연하는 이유 몇 가지를 더 들고 싶다.

3.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토록 멋진 말을 한 사람은 일명 '몰개성화'(沒個性化 , deindividuation)로 일컫는 스탠포드 감옥의 간수와 죄수 실험(1971)으로 유명한 필립짐바르도의 말이다.

4. 그는 악이 세상을 지배하게 하는 세 가지 조건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는 악한<상황> 둘째는 악을 유지하는 <시스템> 셋째는 악에 대한 사람들의 <방관심리>다. 그는 악을 가능케 하는 핵심사유로 <방관심리>에 방점을 두고 있다.

5. 나는 한때 외로이(?) 감리교회의 시스템 개혁을 부르짖은 적이 있다. 하지만 요즘 '시스템' 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바로 악한 구조에 저항하지도 못하고 그저 악한 시스템에 굴종하며, 수수방관하는 무기력하고 몽매한 '방관의식'이 악한 상황이나 악을 지속하게 하는 시스템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여긴다.

6. 나름 본질을 규명하고 해법을 모색하고자 애쓰는 글에 입바른 댓글을 다는 모습 조차 나에게 메마른 방관심리로 보이는 까닭은 나의 상처와 절망이 너무 큰 탓일까???

7. 더 이상 악이 세상을 지배하지 않게 하려면 '분노하라' 그리고 '저항하라' 거창하게 예수정신이나 하나님나라로 포장하지 않더라도 이것은 오늘을 사는 자칭 기독교인들의 시대적 과제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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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76.23.169.116)
2013-03-01 07:53:36
악이 도대체 뭔가?
멋있는 단어들이 나열되어있지만 도대체 악이란 게 뭔지 제대로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 말은 그냥 수사어일 뿐이다.

세습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세습을 하는 사람들에게 악을 행한다고 말한다면 세습을 하는 사람들은 그 세습이라는 것이 악이라고 인정하면서도 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들의 기준에는 그것이 악이라고 판단되지 않기 때문에 하는 것일까?

도대체 왜 서로의 기준이 다르냐는 것이다.

기독교에서 흔히들 말하는 그 진리라는 것이 왜 이다지도 사람들마다 다른지 아무도 질문하려들지 않는다.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세습?


그딴 것은 안중에도 없다.

중요한 것은 아무도 문제의 뿌리에 숨겨진 기독교에 대한 불편한 진실은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악이 세상을 지배하지 않게 하려면 분노하라고? 그리고 저항하라고?

실체도 모르는 것을 놓고 무엇때문에 분노해야 하고 무엇을 저항하란 말인가?

그 악이란 것에 대하여 분노하고 저항하라고?

나에게 선은 타인에게 악이 되는 수많은 경우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절대적 악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절대적 선이 존재하는가?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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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ker (211.192.90.233)
2013-03-01 10:27:20
저도 그 부분이 사실 궁금합니다.
기독교가 진리라면 왜 그렇게 사람들마다 이야기가 다를까 하는 것 말이지요. 이 질문은 결국 역사에 관한 질문으로도 생각이 됩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살펴볼 때 , 초기 기독교 때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유지해온 교리나 정신이 과연 있었는가 하는 것이지요.

이 질문에 대해서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면 결국 기독교는 실체가 없는 것이 될 것이고,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그것을 기준으로 기독교내의 다양한 논쟁들을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이 질문을 그냥 무시하지는 못하겠더군요. 혹시라도 초기 기독교가 믿었던 것과 지금의 기독교가 믿었던 것 사이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주는 도서가 있다면 추천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 책들을 읽는 것이 두렵거나 하진 않습니다. 이런 책들을 접해서 이성적으로 도전을 받고 깨어진다면 제 안에 있는 것이 진리가 아니라는 이야기겠지요. 어차피 그럴거라면 빨리 그렇게 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을 합니다.

다만 이런 류의 책들 중에서 어떤 책이 정말로 풍성한 지적인 도전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기가 어렵고, 아무 책이나 골라서 읽어볼 시간적 여유는 없기에 추천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본 기사에 대한 선생님의 댓글에 대한 제 의견은 '양심이 기준이 될 수 있다'입니다. 일전에 어떤 기사에 대한 선생님의 댓글에서 '세속적인 맘모니즘'이라는 구절을 본 기억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단어 자체가 이미 선과 악에 대한 가치판단을 담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그런 가치판단의 근거는 보편적인 윤리의식, 혹은 상식적인 판단이겠지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공유하는 그러한 가치판단을 양심이라고 부른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양심에 비추어 봐서 아닌 문제는 일단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고 봅니다. 세습이 과연 이런 양심에 비추어볼 수 있는 문제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이 중요하겠지요.

세습의 문제 같은 경우에는 판단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 작동하는 욕망이 드러날 경우에는 판단할 수 있다고 봅니다. 감리교에서 법을 제정했는데, 그것을 편법으로 피해가면서 세습을 성사시킨 경우가 그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어떤 것을 갈구하는 것 자체를 악이라고 하거나 욕심이라고 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공동의 합의를 피해서까지 어떤 것을 추구할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것을 악이라고 하거나 욕심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관건은 세습이라는 형태보다, 그것을 추진하는 동기가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가 아닐까 합니다. 그 영역에 관해서는 명확히 드러나는 바가 있을 겨우에는 선과 악에 대한 판단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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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잎 (67.233.80.209)
2013-03-02 12:53:06
역사적인 기독교 교리와 정신 있습니다.
교회가 전통적으로 고백하는 공통된 신앙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 기독교의 특징은 스스로를 정의하는 '진리'가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랑은 성문화, 규율화하기 어렵습니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담으셨고, 성령으로 우리 안에 창조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진리를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함에 있어서, 부족한 인간들은 항상 이견이 있을 수 있고, 또 그것이 당연합니다. 단지 교회는 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안에서 하나가 된다는데서 그 진리가 있고 실체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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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76.23.169.116)
2013-03-02 06:52:17
영어로 저자와 책 이름을 쓰니까
금지어라고 입력이 안됩니다. 저에게 이메일 주소를 주시면 개인적으로 이메일 드리겠습니다. 만일 불편하시다면 제가 영어 단어를 한글로 모두 바꾸어서 다시 댓글로 올리도록 시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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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76.23.169.116)
2013-03-01 23:24:09
조만간 다시 글을 드리겠습니다.
님과 같은 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고 지금까지 글을 쓴 사람입니다.

저도 기독교인이면서 님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많은 변화를 경험하였구요.

몇가지 읽을만한 책과 님의 생각에 대한 저의 의견을 적어보겠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없고 조만간 다시 글을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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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ker (211.192.90.233)
2013-03-02 09:13:37
감사합니다.
caracus80 이라는 아이디를 쓰고 계정은 네이버입니다.
메일로 의견 주시길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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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2
Picky (76.23.169.116)
2013-03-02 12:42:15
알겠습니다.
보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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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목사 (125.179.213.96)
2013-03-01 09:48:13
사물은 사건을 통해 존재한다.
1.악이 도대체 뭐냐는 추상적이고 막연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사물은 사건을 통해서 존재한다' 참으로 멋진 이말 역시 내것이 아니고 어디서 줏어 들은 얘기다. 하지만 그 의미는 명료하다. '악은 따로 떼어 놓고 설명할 수 있는 사물(실체)가 아니라 사건과 경험 같은 관계를 통해서 비로소 그 존재를 인식하는 대상이다.

2. 오늘날 세습과 같은 교회 안에 있는 성장주의, 성공주의, 물량주의에 뿌리가 되는 개교회주의는 마치 자본주의와 아주 유사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자본주의는 어떤 이들에게는 무한리필의 편리함을 주는 선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현실 자본주의는 악이 된다.(물론 사회주의도 예외는 아니다)

3. '세습' 역시 어떤 이들에게는 엄청나게 편리하고 유익한(?) 수단이 되고, 어떤 이들에게는 극도의 불편함을 주기에 악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마치 한국교회 성장동력이었던 개교회주의나 자본주의 처럼...

4. 절대악이나 절대선 따위를 함부로 정의할 수도, 할 필요도, 한적도 없다. 하지만 악과 선은 분명히 실제한다. 앞서 말한대로 '사건' 즉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아래 5번 부터 11번까지는 내글이 아니고 인터넷에서 줏어 담은 글이다.

5.`생각을 뛰게 하라`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지식창조경영의 대가인 일본의 노나카 이쿠지로 교수에 따르면 사물은 리얼리티(reality)로 존재하고, 사건은 액추얼리티(actuality)로 발생한다. `관찰`을 통해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 리얼리티라면, `행위`를 통해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 바로 액추얼리티다.

6. 리얼리티는 대상을 객관적인 사물로 바라보는 사물적 현실이지만, 액추얼리티는 사물의 이면에 숨겨진 관계성을 바라보는 관계적 현실이다.
예를 들어 `나무에서 떨어진 사과`는 사물이지만,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진다`는 사건이다. `나무에서 떨어진 사과`처럼 사물 중심의 표현에서는 사과가 떨어진 사실을 본 사람이 그곳에서 제거된다. 즉 주체는 없고 사물만 존재한다.

7. 반면에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진다`는 사건에는 그 사건을 경험한 사람의 주관적 행위가 개입되어 있다. 자신이 사과가 떨어지는 사건이 일어난 시·공간에 존재했기 때문에 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진다는 행위가 생긴 것이다.

8.“사물은 인간과 관련이 있든 없든 존재하지만, 행위는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성립된다. 관계는 언제 어디서든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여기`에서 형성된다. 따라서 매순간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진다.” 노나카 교수의 말이다.

9. 사건을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은 사물과 사물이 특정한 상황에서 만들어가는 역동적인 관계에 초점을 둔다. 사물은 독립된 개체로서 언제나 거기 있지만, 사물과 관계돼 일어나는 인간의 행위나 사건은 언제나 변한다.

10. 사물이 어떤 사건과의 연관성 속에 존재하는지에 따라 동일한 사물도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 동일한 사물도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에 따라 다른 기능이나 용도로 재개념화된다.

11. 사실 사물도 그냥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물이 거기에 있는 이유와 원인이 있으며, 다른 사물과의 관계 및 특정한 상황적 맥락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12. 답답할 것은 없다. 다만 분노하고 저항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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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목사 (125.179.213.96)
2013-03-01 09:50:36
순환논리를 통한 글쓰기^^
"멋있는 단어들이 나열되어있지만 도대체 악이란 게 뭔지 제대로 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 말은 그냥 수사어일 뿐이다."

이 글은 순환논리의 전형적인 실예다. 왜냐구??? 잘 읽어보면 알 수 있다.
악에 대한 모호성을 이용해서 상대방의 글을 단숨에 한낱 수사어로 전락시키려는 발칙한 글쓰기를 하는 까닭이다. 거기에 진리를 묻는 진지함을 더하는 센스까지...하지만 그의 댓글들에서 여전히 기독교에 대한 애정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뭔지 모르지만 아마도 상처가 많은 분인 것 같다)

새삼 느끼는 일이지만 익명의 댓글쓰기란 놈은 참으로 편리한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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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76.23.169.116)
2013-03-01 10:19:54
순환논리? 그냥 말만 가져다 붙이면 다 말이 되나?
지독한 이원론자들이 하는 말 - 이거 아니면 저거.

그대들에게는 그리고 그대들이 맏는다는 그 진리에는 순환논리라는 것 조차 적용할 수 없는 가정만 존재한다는 것도 모르는지.

그래 그럼 악이란 무엇인지 대답을 해보라.

사물이 사건을 통해 존재한다고? 그럼 사건이 게연되지 않은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가?

다시 묻는다. 그럼 존재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무엇이 존재하는 것이고 무엇이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무존재에 대하여 인간의 어떤 의식을 가지고 인식할 수 있는가?

계속 대답해보라. 결국 인간이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에 다다를 것이다.

개혁?

백날 개혁 해 봐라.

예수이래로 개혁은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이 모양 이꼴이다.

ㅎㅎㅎ

개독이 달래 개독이 아니다.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또 하나의 새로운 개혁의 대상을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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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습목사 (125.179.213.96)
2013-03-01 10:52:12
몰라서 의문을 던지는 것인지, 주장을 하는 것인지...
1. 사물이 사건을 통해 존재한다고? 그럼 사건이 게연되지 않은 사물은 존재하지 않는가? 다시 묻는다. 그럼 존재란 무엇인가? 인간에게 무엇이 존재하는 것이고 무엇이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무존재에 대하여 인간의 어떤 의식을 가지고 인식할 수 있는가?

2. 많은 난제를 던지시는 까닭은 위에 질문에 대해 궁금해서라기 보다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노력으로 여겨지기에 과감히 대답을 생략하오니 이점 양해 바랍니다.

3. 이렇게 멋대로 판단하는 근거는 님의 댓글에 다음과 같이 담겨 있습니다. "계속 대답해보라. 결국 인간이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에 다다를 것이다."(Picky)

4. 이미 스스로 모든 정답을 가지고 있다고 맹신하는 사람에게 과연 무슨 대답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님이 비판하는 보수꼴통개독이든 철학과 과학의 첨단을 걷고 있는 지식인이든 말입니다.

5. 이미 스스로 답을 확신하는 이에게 또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냥 조용히 혼자 노시는 편이 낳지 않을까 사료됩니다. 아니면 상대방이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답을 가질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전제하는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먼저 배우시든가 말입니다.

6. 이것은 종교를 떠나 일상의 대화 아니 인간 관계의 기본입니다. 사물은 사건(관계)을 통해서 존재한다. 이 말이 좀 어렵나요. 내가 꿈꾸는 교회개혁은 거창한게 아니고 그저 상식이 통하는 교회가 되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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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ky (76.23.169.116)
2013-03-01 13:23:23
그저 상식이 통하는 교회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가능하죠. 그 상식이라는 것을 또 다시 군중들에게 강요하면 되니까요.

아마도 서로가 다른 말을 주고 받은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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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ilip Im (70.62.49.64)
2013-03-01 09:29:44
절대적 악이 존재하는가? 묻는 님의 답답한 심정이 느껴집니다.
기독교에서 흔히들 말하는 그 진리라는 것이 왜 이다지도 사람들마다 다른지 아무도 질문하려들지 않는다는 궁금증 또한 공감합니다.

그런데 제가 궁금한 것은 진정으로 모르셔서 답답하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님의 댓글을 보면 세상 이치를 꿰고 계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이 말은 님을 비꼬아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정말 몰라서 답답해 하시는가 하는 진정성을 알고 싶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님의 여러 말씀들은 한마디로 하자면 선한 행위를 하라는 것인데(그것이 소위 그리스도인이라는 사람들 특히 목사들이 제대로 아니 전혀 행하고 있지 않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 선한 행위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님은 예수 정신을 말씀하셨는데 제가 지난 번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시대가 흐르면서 예수 정신도 바뀐다면 절대적 선의 기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 시대를 대변하는 시대정신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이고 또 다른 시대정신을 찾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 정신을 시대정신 정도로만 생각한다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타 다른 성인들의 말씀과 동급으로 취급한다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에수님에 대하여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이루어진 것이요
따라서 그 예수님의 삶(정신?)을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산다는 것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선이나 악은 각주구검과 같아서 시대정신따라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영원합니다.시대정신따라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을 따른다 하면서 자신의 욕심을 따라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진리)를 변개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절대적 선입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저 자신을 부끄러워하면서 이 말씀을 드립니다.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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