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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탈북자들이 ‘탈남’하여 다시 북으로 되돌아가는가?
김택규  |  petertk2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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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년 12월 16일 (일) 15:22:33
최종편집 : 2017년 11월 11일 (토) 21:00:22 [조회수 : 7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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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택규(전 감신대객원교수)

얼마 전, 당당뉴스에서, 서부연회가 후원하여 개최된 ‘탈북 크리스천연합’ 세미나 소식을 접하고, 늦었지만 한국감리교회가 ‘탈북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기쁜 일이며, 또한 대단히 소중한 일을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탈북자들이 한국에 유입되어오는 수가 꾸준히 늘었었는데, 금년 들어서는 그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역(逆)으로 ’탈남‘(脫南)하여 북으로 재 입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 북한으로 돌아간 탈북자는 김광석, 고정남 부부이다. 북한, 중앙조선통신은 “김씨 부부가 남한 정보기관의 회유와 꼬임, 조정 아래 남조선에 끌려가서, 비참한 생활을 하다가 속은것을 깨닫고 조국의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발표하였다. 김씨부부는 북의 TV에 나와서, “남조선에서 비참한 생활을 했다.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 남조선은 썩을대로 썩은 더러운 사회였다. 가정도 직업도 제대로 가질수 없었다.”고 울분을 토하는듯이 외쳤다. 그들이 목숨 걸고 떠나왔던 북으로 다시 되돌아간 이유는 무엇일까?

한데 문제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와는 달리, 탈북해서 남한에 와 살던 탈북자들중 상당수의 사람들이 북으로 다시 재 입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금년에만도, 박인숙(재입북한뒤 북한 TV에 나와 남한사회를 비난한 여성), 전영철(동까모 소속이라는자), 그리고 제주도에 거주하던 3명의 여성들의 재입북이 공식 확인되었다.

그런데 탈북자 관계에 많은 활동을 해온 박선영 전의원에 의하면 금년들어 약 100여명의 탈북자가 북한으로 재입북했다는 주장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는 “공식 집계가 없기 때문에 정확한 수는 파악할수 없으나 그저 ‘수 명’에 불과하다”고 말했지만, 만일 ‘100여명 재입북 설’이 사실이라면 탈북자들의 ‘탈남’, 재입북 문제는 쉬쉬하고만 있을수 없는, 무언가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하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들의 재입북 동기에 대해서는 흔히 (1)생활고 (2) 북한에 재입북하면 죄를 묻지않고 평양에 새집과 직장을 준다는 회유공작에 의해 (3) 북한에 있는 가족을 위협하는 협박 등으로 알려져 있다. 박인숙의 경우는 (3)에 해당되는 경우이고, 제주도에 살던 여성 3명은(1)에 해당, 동까모 전영철도 어떤 직업이 없이 떠돌이 생활을 했다고 한다. 김광혁이 남한에서 비참한 생활을 했다는 주장은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많은 경우 (1), (2) (3)등의 요인이 복합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런 몇 가지 사례를 보면 그들이 단순히 변심을 해서 북으로 되돌아갔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이제 이 문제를 ‘이민 사회학’적 관점에서 분석,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 북한과 남한은 같은 ‘한 민족’이기 때문에, 두 개의 다른 나라가 아니며, 북한에서 남한으로 이주해온 탈북자를 ‘이민자’라고 부를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엄밀하게 이민사회학적 관점에서 보면 북한인들에게 남한은 일종의 ‘외국’(A strange country)같은 나라이며, 국경을 넘어 온 탈북자들은 일종의 ‘난민, 이민자’(Refugee, Immigrant) 범주에 속한다.

'외국‘ 이란 많은 경우, ’국경 밖’뿐 아니라, 언어, 풍습, 문화, 라이프스타일, 사회제도 등이 다른 나라를 의미한다. ‘이민’이란 그런 ‘다른 나라’에 ‘영구적’으로 거주하기위해 이주하는 것이다. 북한과 남한은 같은 언어, 같은 민족이니 ’외국‘이나 이민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미국과 같은 영어를 쓰며, 또 (최초에는) 같은 ’앵글로색슨‘ 민족계이지만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해가는것도 ‘이민’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북한에서 남한으로 이주해 오는것도 하나의 특수한 ‘이민’으로 보고, 또 그들을 특수 ‘이민자’라는 관점을 가지고, ‘외국’ 같은 남한 땅에서 잘 정착해 살도록 도와주고 배려해 주어야 한다.

‘이민자’들이 이민 온 새로운 땅에, 정착하는 과정에 대하여 여기서는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으나, 대체적으로, 거치게 되는 몇 가지 단계가 있다.


첫째는, 흥분(Excitement), 충격(shocking) 단계이다.

한국에서 미국에 처음 이민 오면 누구나 처음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또 염원하던 미국에 드디어 왔다는 ‘흥분’ 상태가 얼마동안 지속된다. 또 새로운 사회제도, 특히 낯선 ‘문화’에 충격(cultural shocking)을 받기도 한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개3개월- 6개월 정도이다. 북한에서 한국에 들어 온 탈북자는 이에 비할바가 아닐 것이다. 서울시에 그렇게 많은 사람, 그들의 옷차림, 언행, 차량행렬, 지하철, 고층 아파트군, 모두 잘사는 것 같은 모습을 볼 때 너무나 신기하고, 충격이고, 흥분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둘째는, ‘더듬는’(fumbling) 단계이다.

대낮에 밝은데 있다가, 극장에 들어가면, 처음에는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손으로 더듬거리며 내 앉을 자리를 찾는다.(안내원이 없는 경우) 한참 지나면 서서히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여 내자리를 찾아 앉을수 있다. 언어, 풍습, 문화, 사회제도가 다른 외국에 처음 이민 오면 그 이민생활 시초가 이와 비슷하다.

북한에서 남한에 온 탈북자도 마찬가지이다. 우선 같은 언어를 쓴다고 해도 북한 언어와 남한에서 쓰는 말은 다른 것이 너무 많다. 필자 자신은 미국에서 38년을 살았다. 나는 한국인이며 여전히 나의 모국어는 한글이다. 한데 서울에 나가면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많다. 특히 젊은이들의 ‘떠드는 소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소통에도 문제가 있다. 하물며 67년간 단절된 북한에서 살던 사람이 서울에 왔을 때는 어떠하겠는가?

중요한 것은 ‘사회 시스템’, ‘문화’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되던 사회 시스템에서 이제는 자기 스스로 ‘알아서’해야 하는 자율 시스템의 생활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사회시스템, 문화, 살아가는 방법 등을 모르니 마치 ‘어두운 극장’안에서 더듬는 것 같은 단계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단계는, 낙심(disappointment), 후회, 좌절의 단계이다.

‘이민자’들은 대체로 6개월쯤 지나면, ‘내가 괜히 왔구나’ 하며 후회하는 단계가 온다. 모든 것이 너무 다르고, 낯설고, 또 차별받고, 언어소통에 문제가 있고, 직업 얻기도 힘들고, 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갈 방법도 막막하게 느껴지게 된다. 물론 떠나온 고향에 대한 향수도 작용한다. 탈북자들에게는, ‘문화적 쇼크’, 다른 사회시스템에서의 이질감,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의 경쟁과 ‘자유’라는것이 불편하게 느껴질 것이다.


넷째단계는, 적응의 단계(Period of Adaptation)이며, 끝으로 ‘동화’(Assimilation)의 단계가 찾아온다.

내가 과거 해군본부에 근무할 당시 바로 옆 사무실에 이 모 대위가 있어서 그와 가까이 지낸 적이 있었다. 이 대위가 누구인가? 북한 해군대위로 소형선박으로 서해바다에 나와, 그 안에 있던 다른 승조원을 죽이고, 남쪽으로 내려온 인민군 장교다. 그는 대한민국 해군대위로 특별 임관되어, 정훈장교로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남한의 자유로운 생활에 적응이 참 힘들다며, 특히 남한 사회체제를 이해할 수 없다면서 불평불만을 계속 토로하고 있었다. 그때 그는 남한에서 생활한지 벌서 7년이 지났는데도 그의 걸음걸이는 여전히 북한 인민군 식으로 평소에도 팔을 높이 올려 걸으며, 물론 말도 북한 사투리를 강하게 쓰고 있었다. 대한민국 장교가 되어 신분이 보장되고, 생활에 별 문제가 없이 생활하는 ‘탈북 장교’도 이렇게 적응이 힘든데, 하물며 일반 탈북자들이야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탈북자들도, 물론 각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대체로 위와 같은 ‘단계’들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에 정착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종의 ‘난민, 이민자’들인 ‘탈북자’들을 남한 사람들은, 그들에 대하여, 어떤 의원처럼 ‘배신자’라고 하거나, 냉대 혹은‘차별’하거나, ‘2등시민’취급하지 말고, 그들이 대한민국 땅에 잘 정착해 살수 있도록 따뜻한 인간애로 보듬어주고 배려해주어야 할것이다.

베트남전 이후 미국에 많이 들어와 살고있는 ‘라오스’계의 산족(山族),‘흐몽’(Khmong)민족이 있다. 이 ‘흐몽’족은 라오스에서 ‘Pathet Lao 공산정권과 싸우던 전사들이다. 베트남전때 미군은 이 ’흐몽‘족 전사들을 특수부대로 모집하여 훈련, 무장시켜 라오스 국경지대에서 월맹군의 보급루트를 차단시키는 등 미군 작전을 도와 큰 전과를 이룩하기도 했고 또 1만 여명이 죽기도 했었다. 베트남전이 종전되자 이들은 곤경에 처하게 되고, 수만 명이 태국으로 피란을 갔다. 이들을 미국으로 이주시키는 법이 의회에서 통과되어 1975년도에 최초로 3,466명이 미국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그들은 ’전사’들인 남자들뿐이었다.

이때 미국의 연합감리교회를 비롯한 교회들은 한가정이 흐몽족 한가정씩 스폰서가 되기로 하여 그들이 미국에 와 살수있도록 도움을 줌으로, 흐몽족들이 1970년대 말 부터 수만 명이 본격적으로 미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때 미국교인들은 자기들이 ’스폰서‘가 된 흐몽족 가정들을 자기네 가족처럼 여기며, 미국에 잘 정착할수 있도록 물질적으로, 또한 심리적 정신적으로 여러가지 많은 도움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었다. 그래서 지금 미국에는, 26만 명의 흐몽족들이, 과거의 전쟁의 상처를 씻고 미국사회에 적응하여 잘 살아가고 있다.

한국교회도 탈북자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그들이 남한사회에 잘 정착해 살 수 있도록 ‘스폰서’가 되어주고, 그들을 따뜻한 사랑으로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특히 신앙적으로 그들을 잘 인도한다면 그들이 교회생활을 통해 남한사회에 적응하며 사는데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해외선교도 중요하지만 국내 특수층에 대한 선교도 중요하다. 특히 탈북자 청년들을 신앙인으로 잘 성장시키면 장차 그들이 통일일꾼, 북한 선교 역군으로 큰 일을 할수도 있을것이다.

‘탈북청년 크리스쳔연합’ 쎄미나에서, 김기택 임시감독회장이 탈북청년들에게, “지금은 탈북자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앞으로 ‘통일의 일군’이라는 자랑스런 이름이 붙여질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말이다. 정부의 탈북자 지원금은 내년에 3분의 1로 줄어져 1천만 원 정도가 된다고 한다. 정부에게만 맡기지 말고 이제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탈북자들을 돌보는 귀한 일을 시작하기를 권고 드린다.

 

 

   
▲ 지난 1일 열렸던 '탈북청년 크리스쳔연합;세미나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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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연 (116.33.84.49)
2016-05-02 13:07:46
북한사이트들 만만하게 보면 안되는 이유
북한에서 만든 사이트들중에서 가장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대남선전매체중의 하나인 우리민족끼리 사이트같은경우 특히 극우보수종편방송에 단골로 출연한 유명탈북자들의 과거사와 과거학력 과거경력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나와있다~!!!! 다른 서방국가 언론들에서도 보수탈북자들의 과거사에 대해 그렇게 많이 나와있지않는것과는 완전 대조된다~!!! 종편방송출연자들은 이들의 과거사에 대해 전부 모르쇠로 일관하고있으니 내가봐도 어이없더구먼?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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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연 (116.33.84.46)
2015-03-07 13:10:48
이런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께서도 두손두발 다 든놈년들입니다!
백인우월주의자들 IS(이슬람국가) 극우보수주의자 정통유태교도들 개신교근본주의목사들과 그 신도들은 예수그리스도께서도 이걸보시면 피눈물흘리시며 통곡하실겁니다! 아무리 주님께서 용서해라해도 두손두발 다들고 내치고 싶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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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팤 (72.196.234.24)
2012-12-17 02:24:33
선생님의 글에 많은 공감을 합니다.
솔직히 이민사회학이라는 말은 저에게 생소한 단어입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관심를 가지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저의 체험담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10여년 전에 미국봉사단체을 통해서
북한어린이들의 참상을 비디오로 본 적이 있습니다.
저도 한 아들의 부모로써 비디오에 나오는 북한 어린이들의
비참한 모습을 차마 눈으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아들과 상의해서 북한 어린이 몇명을 입양하기로
결정하고 그 봉사단체에 필요한 수속을 의뢰했습니다.

결론은 현재 미국과 북한이 적성국관계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입양이 불가능 하다는 것입니다.
방법이 하나 있는데 어린이들을 일단 북한으로 탈출시켜서
중국국적을 얻게 한 후 입양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적은 액수의 도네션만을 하고 그 계획을 단념했습니다.

톨스토이가 정통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했던 이유와 유사한 경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념과 정치적 이해관계로 물들어 있는
기독교인들의 모습입니다.

미국에 한국말을 사용하는 한국계 후손 몽골리아
불법 이민자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습니다.
법적신분이나 언어장벽 때문에 마땅한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주로 한인들이 밀집해 살고 있는 대도시에서 머물면서
교포들의 사업체에서 노동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 가고 있습니다.

그 분들 중에 의외로 자기나라로 돌아가겠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미국사회가 싫어서가 아닙니다.
일부 미국교포 고용인들의 인권침해, 경제적 착취를
도저히 견딜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같은 언어를 쓰는 동포들에 받고 있는 차별대우이니
실망과 서러움 정도가 더 크겠지요.

저는 직업상 하루에도 수명의 미국이민자들을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습니다.
종교적으로 러시아 정교, 모슬람, 불교, 힌두,
유태교..

자역별로 유럽, 러시아, 동구, 중국, 동남아, 중동, 남미, 아프리카...

정치적으로 공산권, 군사독재, 근본주의 종교국.. 등 아주 다양합니다.
그 분들은 대부분 자기들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 종교를 지키면서
미국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헤어지기 전에 그 분들에게 미국이민생활에 대한 그분들의
견해를 묻곤 합니다.
거의 대부분이 현재 미국사회에서 누리고 있는
자유와 기회, 경제적 지위에 대해서 만족감을 표합니다.
물론 게중에는 지나치게 물질주의적인 미국사회에
실망하시는 분들도 다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때문에 자기나라로 돌아가겠다는 분들은
여지껏 단 한 분도 만나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 " 자유와 기회" 야 말로 미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위대한 점이라고 믿고있습니다.

이차대전 후 미국과 구 쏘련이 한참 자본주의체제와 공산주의체제의
우위를 두고 이념적 냉전을 벌이고 있을 당시 에피소드입니다.
미국 아이젠 하워 대통령이 쏘련 후루시죠프 수상이를
국빈으로 초청을 했습니다. .
그러면서 후르시죠프 수상에게 " 몇 개월 동안
미국에 머물면서 보고 싶은 곳들 마음껏 둘러 보고,
만난고 싶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라고 제안 했습니다.
미국체제에 대한 철저한 자신감에서 나온 제안이었지요.

후루시죠프는 일주일(?) 정도 미국에 머물면서
미국의 중서부의 농부들, 시카고 지역의 산업노동자들,
뉴욕의 빈민 촌 사람들을 만나보았습니다.
그는 크게 실망을 했습니다.
기대와는 달리 공산주의사상과 체제에 동조는
사람들을 단 한사람도 만나보지 못했가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나라에 돌아간 후
서구와의 교류와 개방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한국의 기독교계, 보수분들에게 바라는 바가 바로
아이크 대통과같은 자유민주체제에 대한 자신감입니다.
대한민국은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면에서 북한보다
수백배 우위의 지위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는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입니다.
그런면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대한민국을 과감하게 북한사회게
개방해도 전혀 염려할 것이 없다고 믿고있습니다.
만약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개선, 개혁을 통해서
보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민주사회를 만들어 가면 됩니다.

물론 현 러시아나 동독에서
아직도 공산주의 시대를 그리워하고 동경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히틀러 나치시대를 그리워하는 독인일인들,
스탈린을 그리워하는 러시아 인들,
일본의 군국주의 시대를 그리워하는 일본인들,
프랑코를 그리워하는 스페인 사람들,
사담 후세인과 카다피를 그리워하는 중동인들...
다수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미국에서도 백인우월주의를 주장하는 KKK 단과 이에 동조하는
백인들이 다수 있습니다.

그분들은 자유나 인권 보다는 이념, 인종 내지 국가지상주의,
또 주인의식보다는 노예근성에 길들여지고, 익숙해 진 분들입니다.
이성적으로 설득이 도저히 불가능 하다는 것이
저의 개인적인 신념입니다.

기독교인들이 개인적 혹은 교회를 통해서
북한 난민들을 돕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개인적 접근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정치, 경제, 사회의 변화와 개혁을 통한
접근이 펼요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물고기에게 내 필요에 따라서 물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들이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강이나, 호수, 바다를
제공하는 방법이지요.

하고 싶은 말을 하다 보니 글이 생각보다
길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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