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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도> 또는 <조용한 기도>에 대하여묵도합시다..., 주기도문으로 폐회합니다...,가 빠지면 이단인가?
정기호  |  texas.ch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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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04월 01일 (토) 00:00:00 [조회수 : 7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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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잘못 습관화된 종교적 흐름에 대하여 때로는 잘못된 것이 정당화 되거나 ,제거시키면 이단으로 단죄하는 생각없는 행동을 할 때가 많다. 그 중에 하나가 <묵도 >와 <조용한 기도>다. 이 말은 침묵의 기도라는 말이다.

일본의 신사 참배 광경을 중계하는 일본의 방송을 보면 <묵도56> 라는 말이 분명하게 들린다. 오랜 습관으로 예배 전에 “다같이 묵도(조용한 기도를) 하심으로 주일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 하는 사회자의 거룩한 음성이 들리면 교인들은 거룩하게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예배에 참석한다.

그러나 “묵도합시다” 라는 말은 일본인들이 그들의 신인 “신사”에게 먼저 절하고 난 후 너희 하나님께 예 배하라는 강압적인 명령이었다. 강제적으로 한국을 점령한 일본군국주의의 종교탄압이었다.

미국에서 선교를 받은 한국의 개신교회는 미국교회의 예배 순서를 처음에는 그대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강제적 종교 탄압에 의한 개신교의 “신사참배 결의”는 예배 시작 전에 “다같이 신사께 묵도”가 첨부 되었고 그 후 습관화된 예배의식은 아무런 저항 없이 개신교회에 암묵적으로 흘러들어와 지금에는 “묵도함으로...” 또는 “조용한 기도를 드림으로...” 등을 빼고 바로 예배의 부름으로 들어가면 이단으로 정죄하게 되었다.

해방된지 벌써 몇년인가? 아직도 일제의 잔제를 버리지 못하고 답습하고, 젊은 목회자들도 이 말을 사용하지 않으면 영성이 부족하다고 판단을 받을까 겁이 나는지 앞 다투어 사용하고 있다. 조금만 생각을 하면 없어도 되고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을 것이다. 예배학에 관한 연구를 조금더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감리교회가 발간한 <새 예배서>에는 주일 예배와 저녁, 수요일, 각종 기념일, 취임, 통과 의례가 모두 예배로 되어있다. 미국 연합 감리교회 예배서를 번역하여 그런가?
예배는 주일 낮에 드리는 것 외에는 주일 오후 성서연구, 수요일 기도회, 금요일 심야 기도회(철야 기도회라는 말은 빼자, 밤도 새지 못하고 한두시간 찬송과 통성기도로 피곤함과 졸음을 억지로 참으면서 인상쓰고 몸부림 치는 모습은 지도자로서 위선이다. 피곤하면 잠를 충분히 자라. 교인들은 연로하면 잠이 없다. 그러니 새벽에도 일찍 일어난다. 그러나 젋은 2-30대의 목사들이야 말로 죽을 맛이다.)

000 취임 예배가 아니라 ?000 취임식”이어야 한다. 예배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이다. 죄인인 인간이 어찌 예배의 대상이 되는가? 그러므로 000감독 취임 감사 예배”라는 식의 인간 숭배는 없애자. 아니 감독(감리사) 취임식도 없어야 마땅하다. 돈으로 표사고 파는 감독은 공사판 현장 감독만도 못한 비열한 짓거리다.

필자는 초년병 시절에 예배학을 공부했다는 자부심으로 새벽기도회를 인도한 후 <주기도문>을 하지 않고 폐회를 선언하니 이단이라고 빌미가 잡혀(물론 그들의 눈에 들지 않은 몇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그 교회에서 오래 있지 못하고 이동하게 된 경험도 있다.

<주기도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기도할 줄 모르니 가르쳐 달라고 하여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고 모범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이것이 습관화된 종 교행사에서 원시종교의 샤먼이 행하는 “주문” 이나, 절간 스님의 염불와 같은 선상에 놓이는 결과를 낳았다.

주께서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신 것은 종교적인 주문의 성격으로 사용함이 아니라 그 속에 있는 하늘 본향정신으로 이땅에서 살라는 가르침인 것이 아닌가? 주기도문 1천을 하면 소원성취가 이루어 진다는 설이 난무함은 남묘호랭교의 소원기도와 비슷하졌고, 솔로몬의 1천 번제는 불교의 천도제에서 따온 것인가 아니면 불교가 솔로몬에게 배운 것인가? 예수님은 일절 언급도 없으셨던 기복신앙이 정당화 되는 현실에 가슴이 아프고 저리다.

오래된 관습을 버리기는 그 내용불이 마땅히 버러져야 할 검불과 같은 것이라 할지라도 버리기가 아까워 싸질머져 그 짐이 점점 더 무거워진다. “묵도합시다” “주기도문으로 마칩니다”를 하지 않으면 이단으로 정죄하는 풍조도 문제다.

내가 행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안하면 이단이다. 예수님도 유대교의 전통을 따르지 않음으로 이단으로 몰려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신 것이다. 이처럼 종교적 관습, 쓰레기와 같은 인간적 전통은 무서운 것이다. (다음 글에는 <청빙>, <증경>에 관한 말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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