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 26일부터 28일까지, 미국 Drew 대학교에서 있었던 감리교신학대학교 전 학장 故 변선환 박사 관련 세미나에 다녀온 감신대 이정배 교수의 후기 글을 널리 나누고자, 변선환아키브에서 전문을 보내와 게재합니다(당당뉴스 편집자 )

고 변선환 학장 추모, 드류 대학 학술대회에 다녀와서

                                                                                                  이정배 교수

▲ 故 변선환 교수(전 감신대 학장)

이를 위해 선생의 제자로서 미 연합 감리교회 감독이 된 정희수박사의 헌신과 열정어린 수고가 컸고 그의 제안을 수락한 미주 한인 감리교회 및 목회자들의 추모의 정 역시 큰 힘이 되었다. 아울러 선생을 졸업생으로 배출한 드류 대학 역시 다른 한 손을 기꺼이 내주었다.

신학적 토론 없이 교회 밖으로 내몰린 선생의 입장을 안타깝게 여겨 금번 학술대회를 통째로 그에게 헌사 했던 것이다.

널리 알려졌듯 드류 대학과 선생의 인연은 남다른 점이 있다. 두 차례에 걸친 유학을 통해 1967년 이곳에서 석사학위를 마쳤고 당시 교환교수였던 바젤대학의 스승 프릿츠 부리를 만났던 장소였던 탓이다. 이후 선생은 드류의 스승이었던 칼 마이켈슨을 선불교 신학자 야기 세이찌와 비교하며 역사의 종국성(Finality)을 주제로 부리 교수의 지도하에 바젤대학 신학부에서 박사학위(1976)를 취득할 수 있었다. 1987년에는 드류대학교 보스보그 방문교수로 초빙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이렇듯 재차 강조하는 바, 스승의 뒤를 이어 불교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목회하다 UMC 감독으로 피택된 정희수 박사의 헌신과 드류 대학교의 학문적 관심이 하나로 수렴되어 세계적인 학자들을 초빙하여 금번 학술대회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

정감독과 함께 본 대회를 실질적으로 주관한 제퍼리 콴(Kuan) 드류 학장은 학술모임의 긍정적 결과물들을 향후 드류 신학부의 커리큐럼에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최초 아시아인 학장으로서 그의 지도력과 신학적 판단력은 드류 대학의 학풍을 선도적으로 이끌 것이란 확신을 갖도록 하였다.

여하튼 중세이후 전무후무한 종교재판으로 한 신학자가 사상적 열매도 맺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으나 누구도 이런 현실을 주목하지 못한 정황에서 금번 학술대회는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고마움과 더불어 큰 자극과 반성을 가져다 줄 것이다.

드류 대학에서의 조그만 날개 짓이 한국 기독교의 개혁을 위한 큰 바람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먼 거리 마다치 않고 달려와 힘이 되어준 일백여 동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본 학술대회가 진행되는 내내 주변에서 들리는 소리는 미국 신학대학교에서 이런 모임이 열리게 된 것은 거의 기적과 같은 일이라는 것이었다. 출교당한 졸업생을 추모하는 학술대회의 성격 자체도 놀랍거니와 이런 취지에 선뜻 동의하여 강연을 수락한 학자들의 면모 또한 대단했던 까닭이다.

일본인 산요(Sayo) 감독, 김해종 감독을 비롯한 아시아인으로서 전 현직 미국 연합감리교회 감독들 여럿이 자리했고 한국에선 신경하 감독회장이 참여한 것도 놀라운 일로 여겨졌다. 이들 감독들은 설교와 예배를 주도하며 복음의 아시아적 시각을 말했고 변선환의 인간됨을 상세히 소개했다.

신경하 감독의 설교를 통역한 한국인 학생이 교환교수 시절 아이스크림을 받아먹던 제자 이세형박사의 아들이란 것이 소개되면서 장중에 웃음꽃이 피기도 했다. 무엇보다 필자는 초청된 세계적 학자들 모두가 예외 없이 변선환 선생을 이런 저런 모임에서 만났고 그와의 개인적 경험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자신의 강연을 시작하는 모두에 그들은 저마다 선생에 대한 기억을 정확히 서술했다. 예컨대 하바드 대학 신학부의 다이아나 에크(Eck) 교수는 인도불교 전공자로서 기독교 영성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 주목받는 감리교 평신도 신학자인데 이미 선생은 1970대 말부터 그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 드류 대학 신학부의 교수로서 재직 중인 아시아 신학자 웨슬리 아리아자와의 교분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선생님의 학문적 깊이와 넓이를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필자는 본 학술대회의 전모를 진행과정에 따라 간략하게 소개함으로 참여치 못한 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하는 바, 독자들의 상상력이 보태져 본 대회의 실상을 더욱 여실히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학술대회에 앞서 우리는 뜻 깊은 영상물을 보았다. 변선환 선생의 미망인으로 평생 대화파트너였던 철학자 신옥희박사를 통해 인사말과 함께 그의 생애 전반을 돌아 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가족 관계를 비롯하여 북한에서 단신으로 피난했던 이야기 종교재판 시기 그가 당했던 심적 고통 그리고 그의 죽음 이후 제자들과 아카이브를 만들어 선생의 전집을 만들고 매년 묘소에 참배 갔던 이야기들은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개인사를 통해 민족사를 접할 수 있었고 특별한 한국의 종교전통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본래 함께 학술대회에 초대를 받았으나 건강상 함께 하지 못한 것이 대단히 아쉬웠다.

이 영상물은 신익상 박사가 그 선친과 함께 와서 만든 작품이었다. 변선환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썼던 그는 금번 모임을 위해 선생님의 저작물을 연대기 순으로 재정리했고 그것을 영역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어진 첫 번째 모임(Plenary)은 종교간 대화 및 종교 신학에 대한 변선환의 공헌을 조명하는 자리로서 제네바 WCC 종교대화 책임자였던 우코(H. Ucko)와 필자가 발표자로 나서야 했다.

우코 박사는 바젤 유학 시절 만났던 경험을 소개하며 필자가 보내준 선생님의 몇몇 영문 원고를 바탕 하여 의견을 개진했고 유대인으로서 유대교와 기독교의 관계를 발전시켰다. 필자는 선생님의 학문적 발전 과정을 소개하며 선생님의 종교해방신학을 不二의 관점 하에 서구의 다양성(Multiplicity) 개념과 다석의 귀일(歸一)사상을 관계시켜 새롭게 조명했다.

두 번째 모임의 발표자는 아시아 신학자로 정평 난 웨슬리 아리아자 교수와 하바드의 평신도 신학자 다이나나 엑크였다. 말한 대로 엑크 교수는 인도철학 전공자로서 그 바탕 하에 기독교적 영성을 풀어낸 탁월한 신학자이다. 우리 시대에 이웃 종교를 모르는 사람을 종교맹이라 부를 만큼 대화와 상호 관계성을 중시하고 있었다. 아리아자는 때마침 <Your God, My God, Our God>이란 책을 출판했고 이에 근거한 신학, 증 종교다원주의에 적합한 기독교 신학을 소개하였다. 책 제목이 말하는 ‘우리’의 하느님(Our God)이 바로 그를 적시한다.

세 번째 모임은 선생님에게서 직접적 영향을 받은 한국의 학자들이 자신들 신학견해를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여성신학회 회장을 지낸 이은선 교수와 생태신학자인 연세대 전현식 교수가 참여했고 시카고 신학교(CTS)에서 가르치는 제닝스(T. Jennings) 교수도도 이 섹션에 참여했다.

이은선 교수는 불교와 기독교 대화만큼이나 유교와의 대화를 중시했고, 이런 학문의 길을 제시한 분이 바로 선생 자신이었음을 밝혔다. 유교가 정의의 개념을 현재만이 아닌 과거와의 관계에서 찾게 했고 서구적 젠더 개념의 극복을 위해 우주만물을 낳은 ‘어머니 됨“(Motherhood)의 영성을 제시했다.

전현식 박사는 불이(不二)적 개념을 통해 그것이 불교를 이해하는 사유체계일 뿐 아니라 한국 자생적 종교인 동학을 이해하는 핵심단어, 곧 ’불연기연‘이란 말로서 나타났다고 보았다. 아울러 동양 종교들을 관통하는 ’不二‘를 통해 한국적 생태신학의 가능성을 열수 있다는 평소 확신을 피력하였다.

제닝스 교수는 해체주의 철학을 기저로 바울을 좌파신학자로 그리는 신학적 입장을 갖고 있는 바, 이번 대회에서는 그런 시각에서 이슬람과의 대화 중요성에 무게 중심을 두었다. 남감리교 신학대학에서 조직신학을 공부하고 내리교회 담임자로 있는 김흥규 박사는 학창시절 기억되는 변선환의 학자적 면모를 소개했고 자신의 신학적, 목회적 삶에 있어 그가 차지했던 비중이 얼마나 컸던가를 회상해 주었다.

네 번쩨 모임에서는 ’비교신학의 미래‘를 주제로 했고 이 분야의 두 전문가들, 현재 보스턴 대학방문 교수로 있는 인도 신학자 탄자라(M.T. Thangaraj)와 베트남 출신의 세계적 가톨릭 신학자로서 조지타운 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 중인 피터 팬(P. Phan)이 바로 그들이다.

이 두 학자는 필자에게 다소 낯설지만 피터 팬 같은 경우는 상당한 양의 저술을 펴낸 가톨릭 세계에서는 대단한 학자로 평가되고 있는 모양이다. 클레아몬트 대학의 한국인 가톨릭 신학자 안셀름 민(A. Min)과 절친한 친구라고 하는 소리를 직접 들었다. 언어가 서툴러 정확히 이해는 못했으나 동서양 종교를 비교신학의 관점에서 공정하게 대하려는 의도는 분명히 파악했다.

특수/상대계시의 틀에서 동양종교를 열등하게 평가하는 상황에서 비교 신학적 시도는 상호간의 다름을 전제로 한 것으로 이전의 동일성 신학의 틀을 완전히 전복시킨 것이라 하겠다. 비교신학을 통해 무엇을 목적하는 것인지 아직 알 수 없으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토착화 신학이 비교신학의 결말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 보았다.

다섯 번째 모임에서는 ’종교대화 신학, 해방 그리고 교회‘를 주제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앤드류 박(박승호) 교수와 한국인 제자를 많이 둔 드류의 조직신학자 캐더린 켈러(C. Keller) 교수가 자신의 시각을 제시했다. 민중 신학의 한(限)개념을 소개한 앤드류 박 교수는 정통 기독론대신 예수론을 통해 예수의 십자가 고난이 세상의 고통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논리를 폈다. 기독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론에 의해 세상이 구원될 수 있다는 논리는 아프리카 학생의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이미 비교 불가능한 고통을 받은 아프리카 선조들에게 예수 고통의 현실적 의미가 무엇인지 나아가 예수 고통 이전의 고통은 여전히 구원과 무관한 것인지 등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한편 켈러 교수는 과정신학과 여성신학의 관점을 종합하여 탈식민지 신학을 하는 학자로서 정평이 나있다. 많은 책을 썼으나 최근 <다중교리(Polydoxy)>란 책을 통해 그는 다원주의와 다른 ’다양성의 신학(Theology of Multiplicity)이란 개념을 탈식민지 신학의 요체로 보고 있다. 여기서 다양성은 분리된 개체들의 복수성(Plurality) 또는 무차별적 관계성과도 구별되며 전체성(一者)으로 환원되지 않기에 오히려 주변부에 강조점을 둘 수 있고 피조된 것들(성육신)간의 상호 관계성을 통해 얻는 신비(Unknown)를 계시의 원체험(에너지)으로 이해하였다.

마지막 패널에서는 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종교학자, 여성신학자를 중심으로 종교간 대화 신학의 현재를 가늠하고 미래를 예견하는 주제가 상정되었다. 먼저 조지메이슨 대학의 종교학 주임을 역임한 노영찬 교수가 첫 순서를 맡았다. 본래 율곡의 성리학을 인도 신학자 파니카의 눈으로 독창적으로 해석했던 그는 이번에도 우주신인론(宇宙神人論)적 경험을 종교간 대화의 자리로 제시했다. 변선환의 스승 부리가 말한 비(非)케리그마화의 아시아적 실상을 우주신인론적인 아시아인들의 일상적 경험에서 찾았던 것이다. 이를 통해 종교간 대화 신학이 생태계의 문제까지도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변선환의 또 다른 여성제자인 강남순 역시 패녈의 주제에 맞게 종교간 상호관계성의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해 주었고 시카고 신학교애서 조직신학을 가르치는 서보명 교수도 아시아적 시각을 견지한 채로 본 주제를 심화시켜냈다.

그리고 변선환의 종교해방신학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썼던 신익상은 ‘不二(的)’ 개념을 분석하였고 그 빛에서 변선환의 종교해방신학을 정리하였다. ‘不二的’ 이라는 대승 불교적 개념이 향후 종교간 대화를 위해 크게 공헌할 수 있다는 확신을 피력한 것이다.

이런 여섯차례 모임 전후로 두 번의 예배와 한 번의 성경공부가 있었다. 일본인 감독 산요는 80을 넘긴 은퇴목사 답지 않게 동영상을 사용하여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날 설교주제는 불교를 알지 못했더라면 기독교인이 될 수 없을 것이란 말로 기억된다. 특별히 십우도의 그림을 보여주면서 고통과, 신비한 경험(Mysterium & Tremendum) 그리고 해방을 말하는 불교적 여정이 기독교를 이해하는데 있어 없어서는 아니 될 유산이라는 취지였다.

한국서 초대된 신경하 감독님 역시 엠마오 도상에서 있었던 제자들의 이여기를 상기시키면서 부활의 주님이 제자들의 발걸음을 돌려놓았듯 한국 교회의 오류와 잘못(종교재판)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갖자고 역설하였다.

어느 하루 성서연구를 인도했던 콴 학장 역시 욥기본문을 예로 들어 종교간 만남이 오늘 뿐 아니라 성서시대에도 있었다고 강조했다. 욥기의 배경이 되고 있는 세계상이 고대 근동지방의 종교세계 없이는 이해될 수 없다고 하면서 오늘날 다양한 종교문화들과 기독교의 공존을 당연시 한 것이다.

필자가 듣기로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인 콴학장은 성서신학 영역에서 가장 진보적인 소리를 내는 학자라고 한다. 금번 변선환 선생을 추모하는 행사가 열린 것도 학자로서의 그의 학문적 소신때문 이라고들 말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몇몇 교수들이 인도하는 워크샵 그룹들이 운영되었으나 필자는 멀리서 온 동문, 후배들의 요청으로 그들과 신학적 대화를 하느라 참여치 못했다. 종교간 대화의 방법론, 종교간 대화 공동체, 다원주의와 힌두이즘, 과정신학과 불교, 종교간 대화와 생태학 등의 분과가 있었고 참가자들이 주제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능동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필자가 좋아했고 많이 읽었던 생태신학자 J 맥다니엘을 만나서 좋았고 드류대학에서 고(故) 이정용 선생을 대신하여 연세대 철학과 출신으로 밴더빌트에서 학위한 이효동 교수가 동양사상, 아시아신학들을 가르치고 있어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드류에 유학하는 아시아 학생들이 그의 영향하에 아시아를 새롭게 발견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본 컨퍼런스가 거지반 끝날 무렵 정희수 감독을 통해 콴 학장에게 한국에서 모금된 2만 1천 불의 장학금이 전달되었다. 그리 큰 액수는 아니었으나 큰 비용을 들여 금번 학술대회를 개최한 드류 대학 당국과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준 동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자리가 되었다. 정희수 감독과 함께 학창생활을 보낸 76학번들이 일 만 불을 모금했고 신옥히 사모님과 연세대 교목이자 드류 동문인 한인철 박사, 필자 부부 그리고 전현식 박사가 나머지 일만 일천 불을 만들었다.

장학금을 전달하면서 우리는 이것이 철학과 종교의 영역에서 변선환의 생각을 발전시키는 일에 관심하는 한국인 학생들에게 지급되기를 소망했고 그리하겠다는 답을 얻었다. 하지만 콴 학장은 이 장학금을 종자돈으로 생각하고 더 모을 생각을 피력했고 우리도 동의하였다. 변선환 아키브를 중심으로 향후 장학금을 모으는 일이 제자된 우리들에게 새로운 과제가 된 것이다.

아키브에는 여러 제자들이 조금씩 모아준 돈이 아직 조금 남아있다. 이것은 10월 초순 감신대 대학원 원우회가 주관하는 <올꾼이 선생님 변선환> 책읽기 행사를 위해 쓰여 질 것이다. 이후라도 변선환 선생의 생각을 잇는 학문적 작업을 위해 조그만 정성들이 모아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학술대회가 끝난 주일 저녁 드류 대학 내 감신동문들 30여명이 가족들과 함께 모였다. 옛 제자들의 얼굴을 드류 교정에서 다시 보니 너무도 기쁘고 감사했다. 공부하면서 교회를 섬기고 가족을 책임지는 이들의 열정을 느끼며 마음이 뭉클했다. 교환교수로 와있는 이은재 교수도 기쁘게 만났다. 9시간을 달려온 조항백 목사, 박효원 목사와도 십 수 년 만에 재회했고 미 감리회의 큰 재목이 될 장위헌 목사도 오랜만에 만났으며 23세의 나이에 물류회사의 경영책임자가 된 아들을 간증하는 은희곤 목사와의 만남도 반가웠다. 목원대 출신의 걸출한 목사 조정래를 만난 것도 큰 수확이었다. 그가 네게 준 <영어로 배우는 지혜>란 책을 잘 읽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인교회를 책임진 이들이 필자의 선배들이었는데 이제는 거지반 후배, 제자들이 저명한 한인 감리교회를 책임지고 있었다. 리더십이 젊어지고 있음을 실감한 것이다.

동문들이 모인날도 갈보리 교회를 시무하는 도상원 목사가 후배들을 위해 추석 잔치상을 베풀었다. 필자의 첫 조교 이용연 목사를 15-6년 만에 다시 만났고 교회개척을 멋지게 해낸 김지성 목사을 만난 것도 큰 기쁨으로 기억될 것이다. 광범위한 스펙트럼을 갖고 교회사와 의학사를 공부하고 있는 김신권 목사도 크게 쓰일 재목이라 생각되었다. 여하튼 함께 손잡고 감신 교가 1-2절을 부르며 본 학술대화의 모든 일정을 끝냈다. 힘들었으나 감사한 경험이 되었다.

끝으로 김정두 목사께 한국인 참가자들은 감사해야 할 것이다. 비록 학위를 마치고 귀국했으나 본 대회를 위한 궂은 심부름은 그의 몫이었고 우리 한국 신학자들이 그곳에 편히 머무를 수 있도록 모든 여건을 거듭 체크해 주었다. 콴 학장을 비롯한 그의 논문 주심교수였던 켈러 역시 김정두 박사의 부재를 크게 아쉬워했다.


성황리 개최된 본 학술대회를 마치며 참여한 한국학자들이 서양 신학자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었는가를 끝으로 생각해 보았다. 그들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고 지혜를 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래도 금번 기회에 우리가 그들에게 준 것이 적지 않았음을 그들의 거듭된 질문 속에서 가늠할 수 있었다. 필자가 생각하는 바는 다음 네 가지 정도였다.

우선은 우리 한국 신학자들이 서양 신학자들의 학문적 토론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인식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논의하고 토론하는 내용을 근거로 한국적, 아시아적 시각을 첨가하였기에 우리의 신학적 작업에 대한 그들의 호기심이 결코 적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이후 한국적 신학의 가능성을 그들 역시 부정할 수 없을 것이란 확신을 갖게 하였다.

둘째로 이런 전제하에 서양신학자들에게 각인된 것은 새로운 형이상학이자 인식론으로서의 不二에 대한 신학적 서술이었다. 일자(一者) 내지 유일신론에 대한 비판을 근거로 다양성(Multiplicity)을 전면에 내세웠으되 ‘하나’의 개념을 부정할 수 없었던 그들로서 불이적 세계관은 다양성의 신학을 위해서도 유용한 개념인 것을 그들 스스로 인정하는 듯 보였다.

셋째로 서구적 주체성에 대한 아시아적 도전이 그들에 의해 수락되었다는 점이다. 주지하듯 서구적 주체성은 항시 현재적 지평에서 형성되어왔다. 하지만 인간 주체성은 자신의 과거, 전통의 영향사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정의의 문제와도 연관되는 사안이다. 일반적으로 정의를 현재와 미래의 관계에서 이해하나, 정의는 과거(전통)와 오늘(미래)의 관계 속에서도 물어져야 할 주제인 것이다. 자신의 과거가 주체성 형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탐구는 한나 아렌트의 문제의식인 바, 이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동양이 기독교 서구에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자신들이 극복했다고 하는 동양이 이제 서구의 미래를 위한 빛이 될 수도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 필자 / 감신대 이정배교수

조만간 종교개혁 500주년이 다가온다. 들리는 소리로는 구텐베르크 시가지 여관과 호텔이 한국 교회들로 예약이 끝났다고 한다. 수많은 한국 교인들을 그곳 관광객으로 만들 모양이다. 독일 교회들도 의아해하면서 자신들 나라를 위해 나쁘기 않다고 수용한 것 같다. 그러나 종교개혁 500주년을 이런 식으로 보낸다면 그것은 기독교의 수명을 앞당기는 일이다. 가톨릭교회도 개신교 축제에 맞설만한 대대적인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고 하니 모두가 나락에 빠지는 형세이다.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 한국 교회를 찾을 길 없다면 우리가 여전히 기독교인으로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지 묻고 싶다. 아시아의 종교성과 가난, 두 축을 부여잡고 아시아적 종교해방신학을 꿈꿨던 그의 열망이 다시 살아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