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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심는 사람, 박흥규 목사의 사랑방이야기 제8회인디안은 주술바퀴를 가지고 기도한다. 아침에는 동쪽을 향해. 동쪽은 새로운 시작과 젊음과 밝음을 의미한다. 저녁에는 서쪽을 향해 기도한다. 서쪽은 미지이며, 어둠, 명상, 기도를
김명엽  |  yub55@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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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03월 18일 (토) 00:00:00 [조회수 : 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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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시간이다. 사랑방 강의는...
그동안 얼마나 서로에게 놀라운 경험이었는지. 강의에 참여한 우리 모두는 정직한 사유의 지평에 대해, 우리 삶의 실천의 장이 어디여야 하는가에 대해 소리 없는 가르침을 배웠다. 섭섭해 하시며 강의를 듣는 이들을 위해 더욱 치열하려 애쓰셨다는 고백에 우리는 모두 고개를 숙였다.

   

나가자와 신이찌의 ‘대칭성 인류학’을 중심으로 강의가 이어졌다. 신이찌가 신화에 대한 연재를 쓰게 된 동기는 2002년 9.11테러에 대한 충격 때문이란다. ‘문명과 야만’ 이라는 것에 대한 구별과 경계는 무엇인가? 잭 울포드는 ‘야만과 문명’이란 저서에서 과연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주제를 다루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 ‘포드아’라는 섬이 있다. 이 섬은 세계 최대의 남단의 섬이다. 이곳은 여름 내내 푸른 숲이며, 서늘한 날씨라 나무가 타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의 원주민인 ‘테즈메니아’라는 종족은 1만 2천년동안이나 외부와의 접촉이 없었으며, 옷을 입지 않고, 불을 사용하지 않았단다.

그러나 1788년 영국의 점령으로 인하여 외부와 접촉하게 된 ‘테즈메니아’족은 영국의 폭력 앞에 납치와 강간과 노예화로 인하여 말살 위기에 놓였고, 그 곳에 교도소를 지어 3만명의 죄수들을 본국에서 수송해 수용했다고 한다.

이곳은 그야말로 8살 아이까지 착취했으며, 쟁기를 사람이 끌고 마차도 사람이 끌었다고 한다. 10년 후 정신병원을 바로 이 자리에 세웠는데 단 한 명도 치유된 이가 없다는 기록이 남았다. 또 '에버리진족은 현재 1%만이 생존하고 있다고 한다.

위의 두 가지 사례가 주는 교훈은 바로 유럽의 제국주의 침략의 본성이 무엇을 남겼는지, 무엇이 야만이고, 무엇이 문명인가에 대해 우리의 상식을 뒤바꾸는 진실을 담고 있다.

미국시민들의 여론조사에서 이라크전을 찬성하는 찬성율이 69%였다고 한다. 미국시민들은 걸프전 때 현지인들이 20만명이나 죽었으며, 경제봉쇄정책으로 인해 100만명이나 죽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선택된 사람으로 명백한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근본주의 보수신앙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곧 부시정권의 후원세력들이며 이들은 ‘신자유정책’을 통해 ‘빈익빈 부익부정책’을 추구함으로서 민중들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마지막 카드로서 종교카드를 사용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3차 세계대전의 시발이 중동에서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우리는 기억해야한다고 목사님은 말씀하신다. 미국의 근본주의 보수세력은 한국의 기독교세력과 동일선상에서 보는데 그 중심세력은 맹신을 강조하고, 역사 분별력이 없으며 강렬한 민주적 열망만이 있다고 하신다.

결국 우리가 문명이라 말하는 것이 인류를 황폐하게 만들고 만 것이다. 기원전 4천년전의 수메르 문명을 담고 있는 ‘길가멧’은 자유인간인 ‘엔카드’를 빵을 먹게 하고 성전의 창녀들과 숲속의 인간을 만나게 함으로서 멸망시킨 것을 기록하고 있다.

‘테즈메니아’족이 영국의 식민주의를 드러냈다면 ‘에버리진’족의 말살은 미국의 살인적인 횡포를 고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신이찌는 현대 문명의 현주소를 볼 때 이 책(대칭성인류학)을 통해 미래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대칭성인류학’이란 무엇인가? 이는 1만 2천년전의 현생인류인 호모사피엔스의 원초적 사고(야만적 사고)가 오늘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살아 있으며, 인간의 무의식의 세계가 가지고 있는 힘이 잘 작용 할 때는 소통시킬 수 있는 문화로 바꿀 수 있음을 제시한다.

이것을 신이찌는 신화이야기를 통해, 곧 ‘곰 이야기’, ‘야생염소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끌어낸다. 곰이란 북반부에서 가장 큰, 왕 같은 존재이며, 자연 속의 위대한 힘이면서 인간과 소통하고, 곰이 인간의 옷을 입고 인간과 이야기하며 생활하는 정령신앙을 전제한다.

곰이 인간 속에서,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 모습을 인정하면서도 정령의 세계와 따뜻하게 소통하는 것이다. 신화와 철학이라는 것은 항상 한쪽으로 연결해서 보는데 있다. 박흥규 목사님께서는 산에서 산딸기를 딸 때 자연 안에 숨겨진 풍부한 것을 찾아내는 느낌을 갖는다고 하신다.

자연이 내게 주는 선물로서 고마움과 기쁨을 동시에 느낀다는 것이다. 자연을 억지로 개발하고 도굴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있는 것을 선물로 받는 것은 신화적 사고 속에서 찾을 수 있으며 신화적 사고를 통해 예술과 철학, 자연과 과학도 나오는 것이다. 억지로 개발하는 것은 기술이며, 자연을 죽이는 것이다.

이제 곰 이야기를 다시하면, 정령의 상징인 곰에게 인투옷을 입히고, 곰을 잡아먹고 뼈를 추려서 물에 띄워 주고 제의를 치른다. 이는 선물을 받아들이는 자세이다. 사냥감을 대할 때도 그냥 먹어치우는 것이 아니다.

곰을 하나의 정령으로 보고 새끼 곰을 데려다가 3살짜리 아이와 함께 키우다가 제의 당일 날 곰에게 맛있는 음식을 주고 함께 놀다가 마을 밖, 눈길을 걸어 데려다가 곰을 죽인다.

곰을 죽이는 인투족을 통해 신이찌는 예수를 죽인 기독교의 의식을 본다. 순수한 신화는 시공, 우주적 시공으로서 인간과 곰을 함께 보는 사고를 가지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 신화의 이야기로 돌려서보면, 박흥규 목사님께서는 산에서 7년째 농막생활에서 뱀이 제일 두려웠다고 한다. 처음에는 백반을 많이 사서 이곳저곳 뿌렸는데 아직까지는 뱀에게 봉변을 당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멧돼지에게도 무사하고.

결국 내가 해꼬지를 하지 않을 때 야생동물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하셨다고 한다. 신화적 사고란 현실을 보는 눈이 야생동물을 그냥 고깃덩어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성 안에서 인간과 동물을 하나의 교통하는 생명체로 보는 것이며, 영혼의 실체로 동물의 인격을 보는 것이다.

책 속의 그림을 보여주셨다. 어미곰과 새끼 곰의 사진을... 큰 어미 곰 옆에 어미 곰의 발바닥만한 새끼 곰의 모습. 그 새끼 곰이 제의 때 제물이 되는 곰이다. 새끼 곰을 정중히 보내는 의식을 통해 인간은 먹을 수밖에 없고, 그래야만 생존하는 인간의 모순을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로 터득한 것이다.

야생염소 이야기는 두 번째 사랑방 모임에서 자세히 다루었으므로 생략한다.

그렇다면 신화를 만들어 내는 시각이란 무엇인가? 이는 사물을 보는 시각이 3차원이 아닌 고차원의 시각으로 동물과 자연을 보는 것이다. 신화와 철학 중 어느 것이 더 진보적인가?

요즈음 교보문고나 영풍문고에 가면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 이 새로 나와 화제이다. 분단의 입장에서 삼팔선을 중심으로 ‘해전사’가 쓰여 졌다면, 새로 나온 ‘해전사’는 인간의 내부에 있는 좌익과 우익과의 분쟁요소로서 분단의 원인을 찾는다. 이는 친일 중심적인 사고를 진보적 사고로 보려는 음모가 있다고 하신다.

덧붙이자면 현대사를 인식하는 주체는 시민이지, 역사를 전공한 사학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역사는 사학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신화가 가지고 있는 철학이 얼마나 깊은데, 역사를 보는 역사학자들의 시대인식이 그토록 조악한가에 대해 박목사님이 말씀하셨다. 인식이라는 것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과거 역사를 재인식하는 그들의 눈높이가 허망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조셉 캠벨은 신화는 머릿속에서 나오는 개념이 아니며 삶의 실제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한다. 현대의 비극은 신화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비극은 현대사만이 아닌 우리의 역사를 보는 관점을 잃어버린데 있으며, 우리의 신화가 무엇인지 물음 조차 하지 않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신이찌는 ‘대칭성인류학’에서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해 말한다. 책 속의 사진을 보여주셨다. ‘테레사와 예수의 사진’을. 이어서 하신 말씀. “나는 수녀를 참 좋아해.” 강의를 듣는 이들이 나오는 웃음을 참았다.

박목사님의 어머니께서는 수녀를 참 좋아하셨다고 한다. 일찍 혼자되셨으므로. 특별히 ‘뎀마 갈간’이라는 수녀를 무척 좋아하셨다고 한다. 목사님도 군대 갈 때 수녀 사진을 가지고 갔고 전방에서 미군들과 이야기도 많이 나누게 되었다고 한다.

사진을 설명하셨다. 사진 속의 테레사 수녀가 열심히 기도하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창으로 찌른다. 내장까지 다나와 그 고통을 느끼는데 그러면서도 쾌감을 느끼는 것을 고백한다. 이 쾌감은 신이 애무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테레사 수녀는 고백한다. 고통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이다.

테레사 수녀는 신의 자비를 고통을 통해 느끼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테레사는 신과의 합일을 체험했고 이는 성적인 기쁨과 유사하게 고백했다. 결국 인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 사랑하는 사람과 성적인 결합을 할 때 만족한 상태이며, 이는 신과 합일된 상태와 같다는 것이다.

신이찌는 무의식의 세계 안에서 느끼는 황홀감은 3차원에서 고차원으로 넘어가는, 유한에서 무한으로, 다시 무한에서 유한으로 넘어 오는 그 순간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대칭성 무의식으로 오는 인간의 잠재된 억압에서 풀려나는, 무의식이 소통하는 그 순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행복이라는 말 자체는 수직으로 가르듯이 적절한 때 경험하는 것이며, 인간이 선물로 만나는 것이다. 이때가 행복이다. 무언가를 선물로 받을 때 느닷없이 일상의 사이클을 끊고, 신적인 체험을 하는 것, 바로 그것이라고 한다.

'사치'는 일본말로 행복이라는 뜻인데 ‘사’는 경계이며, '치'는 영역이라는 뜻이다. 결국 행복이란 유한과 무한 사이의 경계이다. 수렵과 어업을 하던 사람들은 갑자기 풍부한 어획을 할 때 느끼는 것이 '사치' 라고 했고, 그냥 주어진 것을 행복이라고 했다.

결론적으로 신이찌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현생인류의 무의식과 오늘의 현대 인류가 함께 어울리는 유동적 지성을 통해, 서로 소통하는 대칭사회 속에 행복이 있다는 것이다. 대칭 무의식 속에서.

정리 하자면, 신화를 가지고 있는 민족 중에서 가장 좋은 신화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인디안의 세계라고 말씀하셨다. 중남미국가의 사람(카스트로나, 체 게바라 같은...)들을 보면 미국의 지배구조 밑에 있으면서도 무너지지 않고 싸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신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를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앞에 저항하고, 자신을 분리해 낼 수 있는 힘을  그들에게서 볼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어마어마한 풍차(신자유주의)에 덤빌 수 있는 힘이 그들이 가진  문화적 틀 안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인디안의 신화에 대해, 그들의 영성을 소개하셨다.

인디안은 주술바퀴를 가지고 기도한다. 아침에는 동쪽을 향해. 동쪽은 새로운 시작과 젊음과 밝음을 의미한다. 저녁에는 서쪽을 향해 기도한다. 서쪽은 미지이며, 어둠, 명상, 기도를 의미한다. 이때는 내 자신의 영혼과 조물주가 만남을 의미하는데, 몸으로 만남이며 곧 기도이다.

낮에는 남쪽을 향한다. 남쪽은 감정의 세계를 조절하는 능력을 준다고 생각하며, 인간이 가진 의지적 사고 속에서 가능하다고 본다. 신에게 받는 가장 큰 선물은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아차 싶었다. 우리가 이미 잃어버린 배려의 덕목에 대해...

북쪽을 향할 때는 산, 강, 호수 등 자연을 향하는데 이는 지혜를 찾는 기도를 한다. 주술바퀴를 보면서 우리는 우리 신화를 발굴해야 하고, 부탁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상적 바탕 안에서 소화시킬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나라의 동학이나 증산교, 원불교가 다 그 바탕이 무교신앙을 토대로 하는데 이들이 조금 더 대중화시킬 수 있는 터전으로 연구되어 나오면 더욱 가능성이 있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 종교들이 발전되지 않고, 굳건한 터전을 못 잡는 것이 현실적인 액션과 구체성이 취약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면에서 개신교도 같다. 선교 초기부터 개인주의를 가지고 왔으며, 현실의 구체성이 없는, 사회성을 잃은 기독교가 뿌리가 취약하기에는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몇  가지 질의가 오가고 사랑방 이야기는 끝났다.
목사님을 존경하는 후배 목회자들이 모여 푸짐한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다시 그들만의 따뜻한 사랑방 이야기가 오갔다.

그리고 이틀 후 박흥규 목사님은 대관령 산으로 들어가셨다. 새로운 신화를 만들기 위해. 아니 당신 몸으로 신화가 되기 위해. 그날도 갑자기 춥고 눈발이 내렸다. 3월의 눈을 맞으며 다시 대관령 가막산으로 나무 심으러,

마지막 말씀이 남는다. 올 농사에서 참깨농사는 6되 정도 거둘 예정이라고. 후배들이 혹 산에 놀러 올라면 꽃씨나 묘목을 가져와서 제 이름으로 심고 자리를 남기면 좋겠다고.

대관령 농막에는 12시간 이상 불 없이 캄캄한 밤하늘과 검은 나무를 느끼고 산 속의 고요를 경험할 수 있다. 만약에 당신이 그 곳엘 간다면 당신은 분명 하나님과 자연, 우리의 신화를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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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종 (218.235.162.185)
2006-03-21 09:47:08
죽음을 준비하는 자기성찰이였습니다.
조우만 하였던 곰목사님을 만나뵈었다.
잛은 만남이었지만 한 사람을 만나서 좋았다.
두번 들은 강의는 죽음을 준비하기위한 자기성찰로 들렸다.
곰목사님과의 만남을 통해 삶의 깊이를 더하는 기분이었다.
모두 수고들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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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완 (218.237.92.70)
2006-03-20 10:49:10
다시 한번 공부를 잘했습니다.
샬롬!
김명엽님의 사랑방 내용 정리 대단합니다. 어쩜 이렇게 정리를 잘하는 지요? 박목사님의 강의를 직접 들을 때보다도 더 머리에 잘 들어오네요. 수고 많았습니다. 그건 그렇고 다음 사랑방 모임은 누굴 모시고 어제 열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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