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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 떼어먹는 교회겉모습은 정통이나 속은 사이비
신성남  |  canavillage@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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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2년 03월 01일 (목) 08:26:50
최종편집 : 2016년 03월 06일 (일) 16:22:35 [조회수 : 1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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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말 3:8)."

예수님 시대의 유대교는 스스로 정통을 자랑하던 교회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자부하였고 누구도 감히 교권에 대항하지 못했습니다. 사실상 온 백성이 모두 신도이었으니 교세 역시 막강하였습니다.

그들은 거대한 건물 헤롯성전을 자랑했고 적어도 겉으로는 율법도 잘 지켰습니다.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고, 제사를 드리고, 십일조와 연보도 잘하였습니다. 아마 겉모습으로만 본다면, 당시 유대교는 정통성을 매우 잘 갖춘 교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과 세례요한은 유대교 지도자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독사의 새끼들'이라는 극언을 퍼부으셨습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겉과 속이 매우 달랐기 때문입니다. 백성은 로마제국과 헤롯 왕가의 압제 아래 고통을 받고 있었으나,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사욕을 따르며 도리어 백성을 수탈하였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바와 같이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라는 표현이 이들의 배도한 행위를 구체적으로 시사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 역시 당시 유대교 부패의 한 단면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건물 신앙'은 교회 사이비화의 전조

진리에는 무지하고 무관심하였으나 무리한 건축에 몰두하며 교세 확장에만 열심이던 교회가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중세 교회입니다. 특히 1625년 11월, 교황 우르바누스 8세에 의해 완공되기까지 무려 120년이 걸린 성베드로대성당의 증축은 교회사적인 사건입니다. 엄청난 헌금과 수고가 이 건물에 소모되었습니다.

교황 레오 10세가 성베드로대성당의 증축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면죄부를 팔면서 "면죄부를 산 돈이 금고에 떨어지는 순간 본인은 물론 그의 가족과 친족의 영혼까지도 지옥에서 구제받아 천국으로 간다"는 거짓말을 하여 루터가 '95개 조 반박문'을 통해 이를 비판하게 되었고 그 결과 종교개혁이 시작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교회가 타락하면 이 정도로 유치한 거짓말에도 신도들이 쉽게 잘 속아 줍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속화한 많은 교회에서는 지도자들이나 신도들이 모두 '그 나물에 그 밥'이 되어 '성전 건축'이니 '정당한 세습'이니 하며 불의한 거짓을 교묘히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교회가 부패할 때는 희한하게도 꼭 '헌금 독려'나 십일조 강요로 그 자폐적 증상이 시작되고, '건물 신앙'으로 그 타락의 꽃이 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단순한 건물을 '성전'이라고 오도하거나 그 부지를 '땅 밟기'하며 신성시하는 행위가 교세 확장에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별도의 성전이나 거룩한 땅이란 결코 없습니다. 신자들 자신이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성지, 성인, 그리고 성물을 따로 구분하고 신성시하는 행위는 중세 교회의 미신적 악습일 뿐입니다. 바른 교회는 진리의 전파에 힘을 쏟는 반면에, 사이비나 이단은 언제나 기만적 잔수를 부리며 외형적 교세 확장에 애를 씁니다.

그런데 과거 유대교나 중세 교회가 그토록 큰 건물을 짓고 아름답게 치장하였으나 그 결과는 과연 무엇이었습니까. 교세가 확장된 것이 바로 진리의 확장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준 유대교는 오히려 불과 한 세대 만에 로마군에 의해 그들이 자랑하던 헤롯성전과 함께 처참하게 멸망했습니다.

한국 개신교를 제외한다면 역사상 가장 부패한 교회가 중세 교회입니다. 진리는 왜곡되고 직분자들은 부패했습니다. 신도들의 맹신과 무지 속에서 일부 사제들이 처자식까지 두고 교회 재산을 횡령하고 사유화하였습니다. 많은 수도원의 지하에서 유아들의 시신이 나왔습니다. 수녀원의 화장실에 아이들이 버려지고 갓난아기의 시체가 벽 속에 숨겨졌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독선적 교리에 항거하는 사람들을 모두 이단으로 몰아 처형하였습니다.

우리는 역사가 증거하는 이런 아픈 교훈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됩니다. 천사가 타락하면 사단이 되는 것이고, 정통이 타락하면 바로 사이비나 이단이 되는 것입니다.

십일조 떼어먹는 교회

오늘날 한국교회가 지탄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 교회의 본질을 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예수님의 삶과 그 가르침을 따라야 마땅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그리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이웃을 사랑하고 공의를 지키며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주일예배에 잘 참석하고, 헌금 잘하고, 심방 잘하고, 그리고 봉사를 잘해 그 결과 세속적 복을 듬뿍 받으라는 그런 수준의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그저 신자들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지엽적인 것들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이시고, 교회의 본질은 예수님의 제자 된 삶을 가르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런 고귀한 삶이 어찌 단순히 잘 먹고 잘사는 정도에서 충족될 수 있을까요.

일부 귀족 목사들의 상투적 선전처럼 '예수를 잘 믿으면 잘 먹고 잘산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예수를 믿지 않는데도 잘사는 나라들을 어찌 해석해야 합니까. 또한, 많은 대형 교회 목회자들이 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데 이는 저주를 받은 것인가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잘 먹고 잘사는 길이 아니라 도리어 고난을 각오하고 십자가를 지는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제자 중에서 부귀와 영화를 누리다 간 사람이 단 한 사람이라도 있었던가요. 백성과 함께 고난을 나누는 것이야말로 교회의 바른 모습입니다.

참된 선교 역시 백성의 마음속에 진리가 확장되고 정의를 흐르게 하는 것이지, 단순히 외형적 교세를 확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한국에 선교사나 목회자가 부족하여 전도가 잘 안 되고 교회 성장이 둔화하였다고 보십니까. 요즘 길에서 행인들에게 예수 믿으라고 한번 말해 보십시오. 아마 욕을 안 먹으면 크게 다행일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 신도들이 신자답지 못한데 누가 예수를 믿으려 하겠습니까.

과연 거대하고 화려한 성베드로대성당에서 그리스도 십자가 고난의 모습이 느껴지십니까. 또한, 한국의 수백억 또는 수천억짜리 대형 교회당에서 병든 나사로의 집을 방문하시던 가난한 목수의 마음이 느껴지십니까. 분수에 맞지 않는 제사장적 가운을 걸치고 화려한 대형 교회 높은 강단에 선 자들이 정말 종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까.

건물에 대한 투자는 적정선에서 반드시 절제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언제나 가난한 이들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부자는 가난한 자를 결코 돕지 않는다"는 다소 풍자적인 말이 있습니다. 가난한 이를 전심으로 계속 도우면 결코 부자가 될 틈이 없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로, 한국 중대형 교회들이 부동산 부자가 된 것은 결국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경시하고 열심히 돕지 않았다는 강한 반증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재산을 최소화하고 주머니를 비우며 스스로 가난해져야 합니다. 건물은 절박해하면서 사람은 경시하는 교회, 이는 병든 교회입니다. 이웃 작은 교회들이 셋방살이 좁은 예배당조차 다 채우지 못해 노심초사하건만, 한국의 중대형 교회들은 여전히 확장에만 몰두하고 있습니다. 미자립 교회들을 돕는 것 자체가 매우 좋은 선교이건만, 그들이 죽든 말든 자신만 키우겠다는 그 심보가 매우 비신앙적입니다. 하여튼 대형 교회 하나가 증축되면 근처의 작은 교회 수십 개 또는 수백 개가 줄줄이 문을 닫고 있습니다.

더구나 오늘날 많은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부끄럽게 하고 있습니다. 등록한 첫날부터 헌금 채를 내밀거나, 십일조를 제대로 못 하면 차별하는 교회가 적지 않습니다. 돈이 없으면 정상적인 교회 생활이 아예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거둔 돈이 과연 어디에 쓰이고 있습니까.

성경 어디에 십일조를 선교나 건축에 사용하라고 가르쳤던가요. 왜 걷을 때는 성경대로 한다고 호들갑 떨면서 막상 쓸 때는 성경대로 가난한 이들에게 사용하지 않습니까. 본래 가난한 이들의 몫인 십일조를 도대체 어떤 종놈이 감히 함부로 가로채는 것입니까. 목사들 연봉은 제때에 꼬박꼬박 잘 챙겨 가면서, 왜 십일조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즉시 나누어 주지 않습니까.

가끔 보면 십일조를 안 하면 주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라고 신도들에게 호통치는 목사들이 있는데, 이런 말은 먼저 목사나 장로들에게 해야 적합하지 않습니까. 구약 말라기 시대에 제사장들이 십일조를 도적질한 것과 무엇이 다른가요.

한국교회 수입의 절대 액수가 이 십일조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단체로 합심하여' 가난한 이들의 것을 도적질하는 교회가 하늘 아래 또 어디 있습니까. 그동안 한국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피처럼 소중할 엄청난 액수의 십일조를 거의 통째로 다 떼어먹고 이처럼 땅 부자가 된 것이 아닌가요. 그리고 사실은 십일조 뿐만이 아니라 연보 역시 본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이 글은 교회당 건물이 필요가 없다거나 또는 외적 성장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매도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적당한 건물도 필요하고 건강한 성장도 소중합니다. 다만 교회가 내면적 본질과 우선적 사역을 잃고 지나치게 겉을 치장하는 오류를 깊이 반성하자는 것입니다.

정통 교회의 사이비화

갈수록 한국의 중대형 교회에서 그리스도 고난의 모습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자기들끼리 모여 오직 '기복'과 '확장'이라는 맘몬적 물레방아만을 열심히 돌리고 있을 뿐입니다. 헌금을 많이 거두어 교회당을 증축하고, 신도들을 더 모으고, 선교사를 더 많이 보내고, 신학교를 지원하여 목회자를 양산하고, 그리하여 교세가 확장되면 결국 다시 더 많은 헌금을 걷을 수 있게 될 것이라는 극히 기업적 성장 논리가 한국교회에 만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리를 상실한 단순한 외적 성장은 복음의 확장이 아니라 단지 또 다른 중세 교회를 확장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사이비'란 겉으로는 정통과 같아 보이나 실제로는 그것과 전혀 다르거나 아닌 것을 말합니다.

중세 교회는 정통을 가장한 사이비 교회이었습니다. 아름다운 교회당, 장엄한 예배, 잘 조직된 성직자들, 그리고 구름같이 많은 신도 등 거의 모든 것을 정통처럼 잘 갖추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정적으로 성경 진리에 따른 바른 신학, 바른 목회, 그리고 바른 생활이 결여된 교회이었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지금 한국의 일부 정통 교회들이 이처럼 사이비화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교단 상층부까지 매우 폭넓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목사들이 부정한 뇌물을 주고받고, 공금을 횡령하고, 성추행을 감추고, 그리고 교회를 세습하며 사유화하는 일을 아주 당당하게 자행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맹신화 또는 어용화한 장로와 집사들이 이를 방관하거나 동조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교리는 비교적 정통인데 목회와 생활은 내부로부터 매우 지능적으로 사이비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교회는 이처럼 겉과 속이 많이 다른 교회입니다. 소수 교회만이 예외입니다. 어느 분의 신랄한 지적처럼 무슨 대단한 신학적 경륜이나 특별한 계시 또는 학문적 통찰력이 별로 없어도 단지 파산한 '양심의 찌꺼기'만이라도 조금 남아 있다면 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더는 정통이니 보수니 하며 허세 부리지 말고, 진정으로 속 모습도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여 주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고 이웃에 복음을 전하는 바른 교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차라리 건물은 좀 미흡해도 오히려 신실한 믿음의 일꾼이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의 진리를 정통이라는 틀에 가두고, 기득권을 포장하여 보수라고 주장하는 억지를 더는 부리지 말기 바랍니다. 부패한 영혼까지 팔아 사욕을 채워 속이 시꺼먼 정치 목사들이나 귀족 목사들이 정통이니 보수니 하며 썩은 무덤에 알량한 회칠을 하는 것을 보면 정말 구토가 납니다.

그리고 교회 비리에 대한 비판이 교회에 상처를 내는 일이니 최대한 자제하자는 안일한 주장을 가끔 봅니다. 그러나 교회에 진정으로 상처를 주는 것은 비리이지 비판이 아닙니다. 한국교회는 이미 극심한 비리로 때문에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품고 있습니다. 은밀하게 숨기고 덮는다고 그 상처가 아물거나 없어질까요. 이제는 그 상처를 공개하고 수술하지 않으면 죽느냐 사느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교회 비리에 대해 침묵하자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대적하는 일임을 엄중히 경고하고 싶습니다.

교회는 건물보다 사람을 키워야

양들은 오늘도 목이 마릅니다. 고개만 돌리면 쉴 만한 물가가 있는데 결코 생수로 마셔서는 안 되는 욕망의 바닷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거짓 종교 지도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들이 대형 콘크리트 덩어리를 우상으로 모시고 저리 삽질만 하고 있으니 기복과 맹신으로 기만당하는 양들은 언제쯤 시원한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을까요.

진리는 결코 건물에 있지 않습니다. 교회당 건물은 성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건물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임재하십니다. 서구의 많은 교회당이 술집이나 카지노 또는 모텔로 나갔습니다. 중세 교회가 그토록 자랑하던 성소피아대성당이 오히려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었고 관광객의 눈요깃감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한국의 교회당도 타 종교에 나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공룡처럼 커진 대형 교회가 작은 교회들을 포식한 결과입니다.

그동안 건물이나 목회자가 부족해서 이 모양이 되었을까요. 이는 교회가 본질은 외면하고 껍데기만 치장하여 순진한 교인들마저 교권주의자들의 배를 채우는 종교 업에 이용한 결과가 아닐까요.

백 명이 모이는 교회는 천 명이 모일 수 있는 교회를 지으려 하고, 천 명 교회는 만 명 교회를, 그리고 만 명 교회는 다시 십만 명 교회를 지으려 한다면 도대체 일은 언제 제대로 할 예정인가요. 해마다 무리하게 증축을 위한 재정을 모으다 세월 다 보내고, 과도한 은행 이자까지 갚으며 남은 쥐꼬리만 한 예산으로 교육하고 선교하고 구제하는 데에 생색을 내려 하니 세계 개신교 역사에 보기 어려운 이런 기형적인 교회가 된 것이 아닌가요.

그렇게까지 치졸하게 덩치를 키워 비만해진 교회에 수만 명 또는 수십만 명이 모여 정통이라고 자부하며 분주하건만 도리어 목회 비리가 진동하고 담임목사의 시녀가 된 장로들은 교회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도 제대로 모르는 것이 과연 정상이고 그게 자랑거리입니까. 차라리 복부비만을 자랑하십시오.

한국교회는 허세 부리는 겉치장에 너무 분주합니다. 마르다처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건물과 시설은 크게 좋아졌는데도 참된 주의 종은 오히려 보기 어렵습니다. 집요하게 십일조를 강요하여 재정은 풍부해졌지만 이를 가난한 이웃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을 교회 내부에서 자기들끼리 먹고 마시고 겉치장하는 데에 소비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일부에서는 여전히 망국적인 기복 설교로 기독교 신자가 아닌 '기독교 환자'를 더욱 양산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교회가 좀 더 차분해져야 합니다. 거창한 사업과 행사를 좋아하고 요란하게 떠벌일 것이 아니라 마리아처럼 조용히 주님의 말씀을 열망하면 좋겠습니다. 분명히 물가에 앉았건만 아직도 한국교회의 많은 신도는 너무나 의에 주리고 목이 마릅니다. 그래서 이분들에게도 우물가의 그 여인처럼 예수님을 직접 만나는 놀라운 복음의 역사가 속히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교회는 건물보다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헌금을 잘 걷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헌금을 바르게 잘 사용하는 것입니다. 초기 한국교회는 비록 다양한 프로그램이나 반듯한 교육관도 없는 허름한 예배당이었지만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신실한 일꾼들이 많이 성장했습니다. 분명히 지금보다 훨씬 좁고 불편했던 건물이었건만, 요즘 그런 소박한 옛 모습과 옛 신앙이 더욱 그리워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샬롬!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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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 (203.243.15.4)
2012-03-05 11:03:06
탐욕스런 목사들
지금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유대교인들도 십일조를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십일조를 받을 제사장이 없고, 매일 짐승 등을 잡아 제사를 드리는 재물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에서 일부 탐욕스런 목사들은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복 받지 못한다거나 더 나아가서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협박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까워서 십일조를 하지 않는다고 성도들을 책망합니다.
그리고 신약시대의 십일조는 필요하면 전 재산은 물론 몸까지도 바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그런 주장을 하는 목사들은 오히려 초화생활을 하면 잘 살고 있습니다.
목사들이야 전 재산을 바쳐도 교회에서 먹여 살리지만 성도들은 전 재산을 바치면 당장 갈 곳이 없어서 노숙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리플달기
18 0
연길의 정 형제 (58.245.92.70)
2012-03-27 19:02:09
화이팅! 펜을, 자판을, 부디 놓치 마시기를.
신성남 선생님, 형제님,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 계속 순수하고도 겸손하며 확고하고도 타협 없는 지금과 같은 글을 토해내 잠든 교회가 깜짝 놀라게 해주십시오.
리플달기
5 0
노장청 (65.49.14.86)
2012-03-14 16:28:14
십일조는 사라졌다
예루살렘 공회에서 바리새파 중에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이 이방인 그리스도인에게 할례를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고 명령해야 한다고 했으나 사도들과 장로들은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행15장)” 외에는 이방인 중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바리새파가 누구인가? 십일조를 과잉으로 지키고 자기들은 구별된 사람들이라는 자부심이 가득한 사람들이었다. 바리새파를 설명하려면 십일조를 빼놓을 수가 없다. 바리새파는 인과 의와 신은 무시하고 살지라도 십일조만큼은 과잉으로 지켰다. 바리새파가 사도행전 15장 5절에서 모세의 율법을 제시했는데, 구약을 살펴보면 모세의 법에는 할례가 대표적이고 바리새파가 혼신의 힘을 다해 지켰던 십일조도 포함된다. 바리새파는 할례를 선봉에 세워 이방인도 할례를 받아야 주장하면서 아마도 공회에서 십일조도 언급했을 것이다. “많은 변론”(7절)이 있었다고 한다. 공회의 많은 변론 중에 바리새파는 할례를 비롯해 모세의 율법을 지키자고 주장했고(5절), 15장에는 십일조는 나오지 않고 '할례와 모세의 율법'이 많은 변론 중에 바리새파에 의해 제시됐다고 하는데, 아마도 바리새파는 모세의 율법에 포함되는 것들을 일일이 열거했을 것이다. 십일조도 언급했을 것이다. 공회 결과는 성령의 이름으로 사도들은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피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이방교회에 요구하지 않았다.

십일조 헌금은 내 소유 전부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앙고백을 의미한다는 말도 악용의 소지가 있다. 만약에 십일조를 하지 않는다면 이런 신앙고백이 없다는 말인가? 만약에 십일조는 내지 않지만 의롭고 정직하게 살고 하나님과 교통하며 사는 사람이 소득을 생활비로 잘 쓰고 직접 남을 도와주는 삶을 산다면 이는 소유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고백하는 신앙고백이 없는 사람인가? 내 소유 전부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앙고백을 왜 십일조 헌금으로만 설명하는가? 십일조를 하지 않고 헌금을 소정액만 교회에 내도 나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신앙고백하는 것이다. 신앙고백을 십일조로 정해놓은 것은 악용의 소지가 많다. 만약에 교회에 헌금하는 십일조만이 물질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앙고백을 드러내는 행위라고 말하는 목사가 있다면 그는 돈을 신자들의 헌금을 탐내는 사람이다.

미국도 십일조는 몰몬교, 안식교와 일부 교회에서만 한다. 미국의 한인교회도 거의 십일조를 하지 않는다. 미국백인교인들도 십일조를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십일조를 하는 소수의 미국백인교인들마저 한국처럼 의무로 요구하거나 신앙고백으로 설명해서 십일조 헌금을 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유럽은 교회십일조가 없다. 시민들은 소득 10%를 십일조로 교회나 정부에 내지 않는다. 10%가 아니라 소득의 0.8~2% 정도이다. 독일은 정부에 등록된 기독교인만 종교세 명목으로 소득의 1~2%만 정부에 납부한다. 소득이 100만원이면 만원만 종교세를 정부에 낸다. 독일정부가 종교세를 모아서 교회에 나눠준다. 독일은 한국처럼 전체 소득의 10%를 교회에 내라고 하지도 않는다. 다른 유럽나라도 소득의 1% 정도만 교회를 위해 종교세로 국가에 바쳐서 국가가 그 종교세를 교회에 나눠준다. 이마저도 완전히 폐지된 유럽 국가들도 있다.

율법은 십계명이 도덕법으로 그리스도인의 규범이 되어 남아있다. 이점에서 나는 박창진님과 의견이 많이 다르다. 제사는 사라졌다(히10:10-12) 구약 십일조는 의식법에 속한다. 성전과 제사가 사라진 지금은 십일조가 구속력을 잃게 되었다. 내가 말미에 제시한 율법들이 더 이상 신약 그리스도인에게 구속력이 없듯이 십일조도 신약 그리스도인에게 구속력이 사라졌다. 십일조 제도는 사라져버렸다. 그 자리에 연보가 들어섰다. 예루살렘 교회가 가난으로 고난에 빠졌는데 이방인 교회가 십일조를 하고 있었다면 바울이 이방교회에 간단하게 십일조를 모아놓아서 예루살렘 형제들을 도와주라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전혀 십일조를 언급하지 않고 오히려 편지에서 연보만 부탁한다. 적어도 이방교회는 십일조가 없었다. 부유한 지역인 고린도의 교회도 십일조가 언급되지 않는다.

십일조는 종교국가인 이스라엘의 성전과 제사가 유지되기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된 국민 의무금이었다. 성전과 제사장을 유지하려는 종교세 같은 성격이다. 주후 70년에 건물성전이 무너졌는데 적어도 그때까지 이스라엘에 제사장 제도가 있었을텐데 건물성전이 무너지기 전까지 제사장들은 십일조도 받았을 것이다. 그나마 과도기였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로 성전과 제사장 제도가 전혀 효력이 없어졌고 스데반이 사람의 손으로 지어진 건물성전이 더 이상 효력이 없다고 외치다가 신성모독죄로 돌에 맞아 죽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리에 바울이 스데반을 배격하는 사람으로 서 있었다. 그랬던 바울이 이제 예수를 믿고 성전과 제사장이 없어졌다고 선포한다. 성전과 제사장과는 전혀 상관없이 이방지역에서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은 십일조제도가 없었다. 사도들도 공회에서 이방교회에 요구하지 않은 십일조를 지금 우리가 신약에서 교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성도들을 구속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이 율법을 완성하셨다. 이제 성전과 제사장이 없고, 십일조도 없다. 예수님이 구약 제사를 완성하셨다. 예수님이 완성하셔서 제사는 신약교회에 구속력이 사라졌다. 지금도 짐승과 곡식을 바치는 제사가 있고 건물성전이 있는가? 가나안 땅을 못받고 그 건물성전에서 일하던 제사장과 레위인이 지금도 있는가? 예수님의 영단번 제사로 우리는 구약의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제사를 지내지 않아서 짐승 잡는 제사장도 필요없고 건물성전도 필요 없다. 그 제사장들을 먹여 살리는 십일조도 없어졌다.

십일조는 건물성전에 바쳐서 제사장과 레위인에게 주어야 하는데, 신약에 십일조는 누구에게 주고 어디에 바쳐야 하는가? 예루살렘 건물성전은 무너지고 이제 예수님의 부활로 우리가 주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고, 우리 모두가 왕같은 제사장(벧전 2:9)인데, 구약 제사장과 레위인과 제사와 건물성전이 사라진 지금 십일조는 누구에게 주고 어디에 바쳐야 하는가?

누구보다 율법을 정통하게 이해했던 바리새파 출신의 엘리트 바울은 예수님의 사역완성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율법의 구속력이 사라졌음을 깨닫고 십일조는 말하지도 않고 자유롭게 내는 연보만을 간절하게 언급했다.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파 출신의 바울은 십계명에 속하는 살인하지 말라 음행하지 말라 우상을 섬기지 말라 탐심을 품지 말라와 같은 많은 규범들을 편지에 적어 신자에게 지키라고 제시하지만 십일조, 할례, 다른 모세의 법은 전혀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몸에 하는 할례를 철저하게 배격하고, 모세의 의식법들도 지키지 말라고 한다. 바울은 어려운 상황도 십일조가 아닌 연보만 제시한다. 십일조는 언급도 하지 않는다. 바울은 복음을 제시할때 '자유'를 중요하게 다룬다. 연보도 복음의 정신으로 신자가 자유롭게 책정해서 교회에 내면 되고, 직접 다른 사람을 도와줘도 된다.

한국남자들은 포경수술을 많이 받는다. 이것은 종교적인 의미가 아니기 때문에 얼마든지 수술해도 된다. 그러나 만약에 지금 우리들 교회가 할례를 구원의 길로는 지키지 말아야 되지만, 단순히 신앙의 유익으로 할례를 받자고 주장한다면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단순히 신앙의 유익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구별된 백성이라고 신앙고백차원에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면,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근데 구약 율법 십일조는 왜 이제와서 신앙고백차원에서, 내 소유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앙고백 차원에서 지키자고 하는가?

구약 율법인 십일조를 지키는 분들은 아래 율법들을 여전히 구속력 있게 지키고 계신가? 만약 안지킨다면 이유는 무엇인가? 아래 율법은 안지키면서 유독 십일조만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새신랑은 1년동안 집을 떠나지 못하게 하고 이 기간 동안 새신랑은 모든 의무에서 자유롭다
◈대제사장은 처녀와만 결혼해야하고 과부와 결혼해서는 안된다
◈남자는 결혼한 여자가 숫처녀가 아니면 친정집 문 앞에 끌어내서 돌로 쳐 죽이라.
◈안식일에 불을 피워서는 안된다
◈짐승에게 짐을 싣거나 내릴 때 도와줘야 한다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야 한다
◈양털과 베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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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0
신성남 (49.50.206.22)
2012-03-14 16:40:55
매우 잘 정리된 글입니다
십일조를 이해하기 쉽게 요약해 주셨군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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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바다로 가는 샛강 (211.187.2.91)
2012-03-13 22:31:20
본문의 내용과 일부는 관계가 없음
십일조가 지금 교회와 무관한 것이라면,

첫째, 교회재정을 무엇으로 확보할 것인가요?
구약에서의 십일조의 가장 중요한 사용처는 하나님의 전에서 전임으로 일하는 제사장과 기업을 가지고 있지 못한 가난한 자들입니다. 오늘날 교회 재정의 절반 이상의 수입이 십일조에서 옵니다.
그러면, 교회가 무엇으로 재정을 확보해야 하는지 답을 주세요.

둘째, 그렇다면, 담임목회를 위해서는 담임자가 이중직업이거나 자비량을 해야 한다는 말인데, 그것이 그렇게 쉽다고 생각하십니까? 새벽예배 및 수요예배 혹은 금요예배를 당장 폐해야 할 것입니다. 직업을 가진 담임자가 그 모든 것을 감당하기란 버거울 것입니다. 답을 주세요.

셋째, 사실 이러한 차원에서 본다면, 목회는 부한 자나 후원배경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에 대해 답을 주세요.

교회의 부패가 십일조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는 발상 자체가 지극히 불신앙입니다. 교회의 부패나 쇠락은 당신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판단하는 그러한 인간중심적인 사고에서 나온 것입니다.
물질주의, 현실중심주의 등도 당연히 비판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더 비판받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생각으로 너무 쉽게 난도질하는 것입니다.
나이들수록 더욱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의 엄중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물한방울 내지 못하는 인간이 무슨 인간의 말로 하나님의 법과 그 뜻을 헤아리지도 못하면서 너무 쉽게 지금 우리와는 무관한 것처럼 말하는 그 자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의 타락은 성도의 시각이 물질중심적이고, 현세중심적인 것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교회의 쇠락은 하나님의 뜻을 깊이 생각하기보다는 자기 중심적으로 판단하고 신학교에서 배운 어저짢은 인간의 논리로 하나님의 깊은 진리와 뜻을 너무 쉽게 난도질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은 하나님의 법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습니다.
물론 구약의 법을 안식일 교인들처럼 문자 그대로 지키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모습이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가 그들을 내 잣대로 판단하고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시대가 변하였을지라도 하나님의 법을 지키려고 하고,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알려고 하면 됩니다.

구약의 법을 목회자가 자기 중심적으로 혹은 목회자를 위한 인간의 법과 성도들을 속박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시키는 것이 문제이지, 하나님이 명하신 것을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위해 행하는 것이 무엇이 문제입니까?

문제를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시한 문제제기에 대한 성경의 명확한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면 이 글은 그저 비난이나 자기 중심의 논리에 의한 비판일 뿐입니다.
이상주의자는 아니신지요? 주님도 땅을 밟으셨는데, 땅을 밟으세요.
그리고 주님이 십일조를 왜 하라고 하셨는지 깊이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이 부모님을 왜 공경하라고 하는지 생각해보세요.
이미 지난 구약의 법이니 지키지 말아야 합니까?
간음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준 법이니
이방인인 우리들과는 무관한 것입니까?
답을 주세요.......

명확한 답을 줄 수 없다면, 함부로 글을 쓰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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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7
노장청 (65.49.14.86)
2012-03-14 16:29:16
부족하지만 답을 드립니다
첫째, 교회가 사업체입니까? 교회가 먹고 사는 곳입니까? 교회의 재정확보로 무엇을 하려고 하십니까? 결국 목사들이 먹고 살기 위해 십일조를 강조하는 것이군요.

둘째, 새벽예배, 수요금요예배.. 있어도 되지만 없어도 됩니다. 아디아포라입니다.
주의 날에 모여서 예배드리면 되겠습니다.

셋째, 바울은 자비량을 했습니다. 자비량을 하지 않으려면 신자들에게 목사의 최소생계는 유지해달라고 호소하세요. 그래도 신자들이 내지 않으면 어쩔 수 없습니다. 밖에 나가서 일해야 합니다. 사모들이 나가서 생활비를 벌어오는 교회도 많습니다. 가난하다고 목회가 불가능하다는 발상은 불신입니다. 어느 정도 생활이 충족돼야 목회가 가능하다는 발상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닙니다.

마23:23에 예수님이 십일조를 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직 성전이 있고 제사가 있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후에는 제사가 필요없고 십일조도 필요없습니다.

신자는 소득의 10%를 십일조로 교회에 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신자의 마음을 구속하고 속박하는 것입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하나님이 주신 법이지만 십일조는 신약에 사라졌으며 더이상 하나님의 명령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이 아닌데 하나님의 명령인 것처럼 신자들에게 말하면 신자들의 영혼을 속박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십일조를 말하지 않고 연보를 말했습니다. 연보는 자유롭게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똑똑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충만해서 성경을 적은 바울은 연보만 말했습니다.

목회자가 먹고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억지로 해석해서 십일조를 내라고 설교하면 안됩니다.

가난이 싫고, 풍족히 먹고 살고 싶으면 목사를 하지 말고 사업가가 돼서 풍족하게 살면서 하나님을 섬기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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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0
kimchgoo (59.26.219.57)
2012-03-15 15:15:16
'노장철 님의 글'에 찬성하면서,

교회에 다니는 분은 누구나 알겠지만, 기독교에는 '10계명'이 있지요? 모세의 5경(토라)을 읽어보면, 그 십계명은, (다른 글도 그러하다고 하지만) 하느님으로부터 내려받은(계시받은) 율법이라고 써있습니다. 수많은(어느 글에는 670 여개 조의 율법이 있다고 하더군요) 율법 중, 십계명은 너무도 소중한 것이라 해서, 성경 본문 앞쪽에, 특별하게 기록해 놓았지만, 그 속에 '십일조'에 대해서는, 한 글자도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십일조 않는 교인은 백안시 되고, 목사님들은 예배 때 반드시 십일조를 거론하는데, 그 십일조가 10계명에 끼지 못한 사유는 무엇일까요? 교회에서는 만사를 "하나님, 하나님께서---.운운"하는데, 성경이 하느님의 지시(계시)로 이루어진 글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을 보면, 십일조는 모세 부족이 자기들부족의 생계와 국가통치를 위한 자금(오늘날의 세금 같은 것)을 모으는 수단으로, 하느님을 빙자해 내세운 말에 불과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십일조가 그렇게 소중하다면, 아마, 십계명의 제1조가 됐어야 할 것입니다. 목사님들도 사회에 나가, 돈벌이를 해보아야, 십일조 내기(헌금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것입니다. 또, 교회가 받는 모든 헌금에 대해서, 각교회는 그 수입과 지출을, 구체적으로 환하게 밝혀야 합니다. 숫제 밝히지 않거나, 공개를 해도 애매하게, 추상적으로 이것저것 묶어서 밝히는 것은 일종의 기만입니다. 요즘 재판중에 있는 서울 어느 교회의 '횡령혐의 사건'처럼. 쓴 돈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하는 것은, "나는 정의롭지<깨끗하지> 못합니다"하는 증거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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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0
신성남 (49.50.206.22)
2012-03-14 11:49:06
전세계 90% 이상의 교회들이 십일조 없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교회 재정은 사도바울의 가르침대로 '자율적인 헌금'으로 충당하면 됩니다. 십일조가 없었던 사도들의 교회가 그랬고, 현재 십일조가 없는 대부분의 외국 교회들 역시 그리 하고 있습니다. 님의 논리라면 위의 외국 교회들은 모두 문을 닫았어야 하겠군요.

그리고 과연 지금 한국 중대형 교회들이 십일조가 없어서 운영을 못할 정도로 가난한가요. 무리한 건물 증축이나 사업 확장을 하지 않는다면 주일 헌금으로도 얼마든지 적절하게 운영을 할 수 있습니다. 단 미자립 교회의 경우는 어차피 별개의 문제입니다.

보다 큰 문제는 인식의 차이에서 옵니다. 어차피 교회 재정은 신도들의 주머니에서 충당됩니다. 그런데 '강요적 십일조'가 아니면 헌금을 충분히 걷을 수 없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이는 신자들의 신앙을 너무 과소평가하는 것이 아닐까요. 건강한 교인들이라면 헌금 종류에 관계없이 자신들의 교회운영에 필요한 재정을 형편에 따라 자발적으로 기꺼이 낼 것입니다. 또한 그래야 옳구요. 반강제적으로 내는 것은 결코 '헌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십일조가 없으면 담임목회가 불가하다는 논리는 잘못입니다. 아울러 자비량 목회는 스스로가 결정할 문제일 뿐입니다.

나머지 주신 의견은 제가 명석하지 못해 논리적으로 잘 이해할 수가 없군요. 다만 타인의 글에 대해 정당한 지적과 비판은 좋지만, '함부로 글을 쓰지 말라'는 식의 태도야말로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긴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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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0
대 학자 (183.101.87.75)
2012-03-13 20:54:31
십일조는 목사들의 입질의 먹이감일뿐, 성경적이 아니다(냉무)
없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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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양사랑 (112.163.44.49)
2012-03-11 18:13:43
신성님의 정의와 도전의 글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신성남 선생님의 글을 참으로 통감합니다.
십일조의 문제는 우리교회도 심각합니다.
우리교회의 예를 한번 들어 보겠습니다.
100만원 수입있는 성도가 10만원 십일조내고 어렵게 생활하는 성도가 있고 300만원 수입있는 성도가 30만원 십일조 내고 270만원가지고 생계를 꾸미며 살고 또어떻 성도는 1000만원 수입이있어 100만원 십일조 내고 900만원을 가지고 호화롭게 살고 100만원 십일조 내었으니 헌금의 의무를 다했다고 하는 성도들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모든 수입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것 좋은 신앙고백이지요 10%라는 구지 구분지어 헌금을 내는것은 모순이 있는 것 아닙니까?
교회에서 목사들이 헌금을 성도들에게 강요하는것이 아니라 성도들 스스로가 하나님의 은헤에 감사하며 인색함없이 드리는것이 진정한 헌금이며 신앙생활하는것 아닙니까?
오늘날 우리교회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설교시간마다 무슨 서약서를 할때마다 십일조의 강조와 형이상학적인 헌금 강요로 인하여 성도들이 교회나올때마다 목사보기에 미안스럽고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고 있는 현실이지요.
담임목사는 매주 성도들이 얼마나 헌금을 하였는지 관찰하고 이사람은 얼마를 내야할사람인되 내지않는다고 평가하고 하지말아야될 설교시간에 예를 들며서 설교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 깝습니다.
연말되면 헌금적게한다고 신앙생활의 문제가 있다고 집사직분을 주지않는 것이 우리교회의 현실이며 한국교회의 현실입니다.
경제적 형편이 좋은 성도가 오면 온갖 아부를하며 심방을 자주가며
무엇이라도 내어줄것 처럼 행세하는것이 우리교회의 현실이며 교회의 가난하고 병들고 돈없고 나이들고 어려운 사람에게는 생색내기식의 도움을 주고 떠들어대는 교회 환멸을 느낌니다. 목사님들은 그러한걸 못느끼는지 화인 맞은 목회자가 많습니다.
얼마전 교회의 연간 수십억원의 헌금 사용내역서를 공식적으로 투명하게 공개하고 홈페이지에 올리는것 좋지 안겠느냐고 건의하였더니 목사공격하고 사탄이 교회지도자를 음해한다고 설교시간에 공개적으로 말하고 그런성도는 떠나라고 합니다.
하나님보기에 두렵지도 않는지 천국가서 어떤심판을 받을지 무섭지 않는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요즘세상은 기업체든 관공서든 어느곳이든 투명하게 돈을 사용한 내역서를 공개하고 감사를 받는데 교회는 왜이런지 목사님과 성도들의 답변 부탁합니다. (제왕적인 목사는제외)도저히 이유를 알수가 없으며 떳떳하게 왜 공개를 하지않는지 너무너무 탄식합니다.
이렇게 하니 많은성도들이 저희교회를 떠나고 또 이런사실을 모르고 들어온 성도들이 들어와보니 이것은아니다 하여 소문듣고 성도들이 떠나는것을 너무나 많이 볼수가 있습니다.
이런케 교회가 잘못을 저질러놓고 많은성도들이 주5일제니하여 핑게를 달아 성도들이 예전처럼 열심이 살아지고 떠난다고하고 있습니다.
교회 목회자는 반성을 하여야 합니다. 책임은 교회지도자의 책임이 엄청큼니다.
신앙생활을 돈의 부담과 목사의 평가없이 예배를 드리며 기도 하며 신앙생활했으면 하는것이 저희의 소원입니다.

요즘 세상에 이것이 이루어 질까 속상합니다.
예수님오면 이루어 지겠지....
부목사님도 담임목사의 눈치나보고 떠나하면 부목사님의 생명이 끝난는 현실 이것 또한 참담합니다.
마음의 위로가되는 되는 댓글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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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0
신성남 (49.50.206.22)
2012-03-14 11:57:08
종교화 또는 교권화가 문제입니다
동감입니다. 일부 잘못된 목회자들은 신도들을 마치 바지나 저고리처럼 취급하고 있습니다. 세상이 말세가 되니 '주의 종'이라는 목사가 '주의 자녀'인 교인들에게 교회에서 나가라고 하는군요.

신자들이 깨어 기도할 때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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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0
조심스럽게 (180.64.40.183)
2012-03-07 00:21:45
십일조 하지 마세요
저는 처음 개척해서 성도들에게 십일조뿐만 아니라 헌금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안하는 것 부터 배워야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십일조도 감사헌금했습니다.
지금은 주일학교 어린이들 중 많은 어린이까지도 십일조는 꼭 하고 있습니다.
제가 십일조 하는 신앙으로 저의 어린이들이 십일조와 헌금을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잘못 가르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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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신현호 (119.212.6.103)
2012-03-06 12:24:29
십일조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신현호 (119.212.6.103)
2012-03-06 12:06:27


십일조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십일조)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마 23;23)(눅11;42) "

성경적 근거를 잠시내려놓고요. 십일조 폐지를 주장하면서 목사의 탐욕을 비난하니 그렇다면 소득의 십분의 일만큼은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인가요? 한편으론
십일조의 폐지를 주장하면서 십의 십조를 드려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분도 계시니....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사정이 어려우면 십일조도 안내도 된다는 믿음은
도대체 누구를 믿는 믿음입니까?

내 모든 것이 주님것이라면 십일조가 옳으니 그르니 하며 성도간에 다툴이유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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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1
박평일 (72.196.235.211)
2012-03-07 03:00:51
신목사님,
저는 성경해석의 논쟁에는 가급적 꺼어들지 않으려고
결심를 거듭해 온 사람입니다.
토론에 끼어들만한 성경지식이 턱없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같은 성경구절을 두고 읽는 사람에 따라서 해석이
서로 다를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가 헌금문제에 대한 글이 나올 때마다
주제넘게 한마디씩 하는 이유는 개인적인 체험때문
입니다.
이지역에 수백개에 달하는 한인교회를 마다하고
굳이 미국교회에 나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저는 내아들을 두고 단한번도 도둑놈이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한인교회에 나가면
"하나님 돈을 떼먹는 도둑놈" 이라는 설교를 자주 듣게 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을 십일조를 속인다는 이유로
도둑으로 생각하고 계실까?. 참담한 생각이 듭니다.

자영하는 사람들에게는 십일조의 계산이 쉽지안습니다.
미국에서는 거의 50% 가까운 수입을 지방정부, 연방정부에
세금으로 납부하고있습니다. 참 힘듭니다.
.
반면에 헌금액은 전액 세금공제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만약, 모든 기독교인들이 제대로 십일조를 내고,
전액 세금공제를 받응 경우를 가정해 보십시요.
재정적으로 연방정부, 지방정부 가릴 것 없이
모두 파산를 하고 말 것입니다.
그나마 십일조를 내고 잇는 미국인들이 숫적으로
소수에 불과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알기로는 한인신도들처럼 소득에 헌금액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이 높은 민족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미국에 5000 여개에 달하는 한인교회가 존재할 수 있는
한이유가 되겠지요. 과다한 헌금액때문에 미국국세청으로 부터
세무감사를 받는 교포신도들도 허다합니다.
미국세무당국은 도네이션이나 헌금액이 5 %(?)가 넘으면
일단 감사대상으로 주목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수입의 10%를
십일조로 내고 나면 각종 페이먼트 내면서
경제적으로 생활을 유지해 나갈 수도 없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대분분 신도들이 이름뿐인 십일조를 내면서
자기를 속이게 되지요.
.
솔직히 저는 여지껏 페니도 속이지 않고
십일조는 내시는 분들을 단 한사람도 직접 만나 본 적이 없습니다.
실제로 그럴 수도 없고요.
미국에서는 직업상 100불이상 상당의 선물을 받으면
반드시 세금보고를 해야 합니다. 아주 엄격하지요.
그러면에서 한푼도 속이지 않고 십일조를 내고 있다고
주장하고 계시는 분들도 하나님앞에서는 고사하고
미국세무법상 속이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십일조는 현실적으로 지켜질 수 없는 율법이지요.
이미 죄사함을 받은 모든 신앙인들을 죄의식 속에
다시 가두어두고 있는 족쇄가 되기도 하고요.

저는 그런헌금제도가 기독교인들이 추구하고 있는
복음의 본질이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또 실제적으로 헌금문제로 인해서 많은 분들이
교회를 기피하고 있고, 또 교회를 떠나고 있는
신도들도 생각보다 많습니다.
헌금이 복음전도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도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이라는 증거지요.

그렇다면 복음전도를 목적으로 삼고 있는 교회나 성직자들이
헌금문제를 깊게 생각해 보야야 하지 않을까요 ?
복음전도와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서...

저의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물론 헌금이 복음의 본질이고.
심지어는 복음보다 중요하다고 믿고계시는 분들도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분들은 헌금제도가 무너지면 교회도 무너진다고
두려워하고 있지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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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게 (180.64.40.183)
2012-03-05 11:54:39
가난한 사람?
돈이 없어 가나한 사람
이 세상 지식이 없어 무식의 가난한 사람
진리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해서 하나님의 뜻에 무지해서 가난한 사람
기독교가 어느 무에 어느 가난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요
이글을 읽으면서 물질이 없어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것이 기독교의 전부라고 주장하는 것 같아 안타깝꾼요
그렇다고 현상의 기독교가 옳다고 변명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기독교의 문제를 어디에서 찾아야할 지를 고민하자는 말입니다.
기독교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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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121.130.158.249)
2012-03-03 22:07:24
전부를 드리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글의 요지는 십일조를 옳바르게 사용하자는 취지 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옳바른 사용인지에 대해서는
가난한 자들에게, 어려운 자들에게 나누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군요.
물론 선교를 위해서겠지요.

좋은 비판 같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를 외곡하고 있습니다.

헌금은 우리의 전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믿는 자의 신앙의 표현입니다.
자기의 생명, 자기의 자녀, 자기의 시간, 자기의 물질...
이 어느 것도 자기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이지요. 즉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것을 자기의 것이라고 도적질하면서도 그것이 도적질인지 모르거나, 그것이 도리어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헌금이 마치 자기 마음이 차서 만족함이 있을 때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질은 결코 우리의 생명을 대신 할 수 없습니다.
다만 그것에 대한 표현일 뿐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물질은 자신의 것입니까?
아니죠,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용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헌금이며, 헌신입니다.
성도가 십일조는 교회에 바쳤으나, 나머지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였다면 그 헌금을 한 것이 도리어 그에게 화가 됩니다. 그 나머지는 교회에 바치지 않았어도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다른 어떤 무엇을 하는 모든 것이 일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모든 것이 하나님께 드려진 것입니다.

십일조에 눈독을 들이는 사람이나,
그 십일조를 바라보고 말하는 사람이나,
나머지 구조는 다 사람들에게 돌려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나머지 구조도 하나님의 것이므로 성도들이 하나님께 돌려 드리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십일조가 헌신이라고요? 아닙니다.
겨우 십분의 일을 가지고 싸우지 마시고, 성도들이 믿음으로 드린 십분의 일에 흠 짓 내는 일은 그만 두고, 그들의 믿음이 십 분의 십에 이르도록 가르쳐야하지 않겠습니까?

몇몇 병든 자들을 비판하는 글보다는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더욱더 신앙으로 바로 설수 있도록 그들의 신앙이 성장할 수 있는 글이 많이 실리기를 바랍니다.

건전한 비판이라고 하셨는데,
이런 글로는 결코 사람을 세우지도, 키우지도 못합니다.
사람을 세우는 글을 저자 스스로가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당당 뉴스도...
세계적인 신문이 되기 위해서는 건전한 글이 많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편집자님의 눈이 더 넓어 져야 겠습니다.
승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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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65.49.14.51)
2012-03-04 13:18:22
소망님... '네 말은 하지 말고 내말만 하라!' 라고 하셨읍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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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호 (119.212.6.103)
2012-03-06 12:27:51
마태복음 23:23 눅 11;23
바리새인들에게 하는 말씀일뿐이라고 진실된 마음으로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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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180.64.40.183)
2012-03-05 12:06:37
십일조 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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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121.130.158.249)
2012-03-04 14:39:43
예수께서는 전부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헌금(생활비의 일부)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도 귀중하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전부를 원하시지 그 사람의 일부를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전부를 내셨지 그의 일부를 내신 분이 아닙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삼위일체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마가복음
12:41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쌔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12: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12: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12:44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위의 마가복음의 말씀은 예수께서 과부에 대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개역성경에는 ‘생활비’라고 번역했는데 이 단어는 ‘비오스’라는 말씀으로(물론 한글 성경에는 제물이라고도 번역되었습니다만) 그의 생명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이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조에)와는 다른 것으로 그가 하나님을 떠나 살던 모든 ‘생’을 예수께 바침으로 예수의 말씀으로만 살기로 한 것입니다.

과부는 예수께 자기와 관계된 모든 것을 드리는 헌신을 한 것입니다.

아래 사도행전의 말씀은 예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2: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2: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2: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2: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제자들도 자기의 소유(물질 뿐만 아니라, 생명, 시간, 자녀... 등등 자기의 것이라고 하는 모든 것)를 모두 버리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마태복음 19장 27절)

거지로 살라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능력 주시는 대로 열심히 일하되 먹고 마시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자신을 위해 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는 말씀입니다.

고전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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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65.49.14.51)
2012-03-04 14:55:45
잘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소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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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121.130.158.249)
2012-03-04 17:21:14
먼저 예수께서 그대의 주인임을 믿으세요.
앞에 쓴 글의 의미를 알았다면 이런 무의미한 논쟁을 또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대는 먼저 예수께서 그대의 주인이심을 먼저 믿으세요.
예수께서는 그대를 내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서 도적질 하지 말라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의 것을 훔치지 말라는 말로 이해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의 윤리를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여 자기의 것이라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간큰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것도 훔치는 것은 당연한 결과겠지요.

그대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십일조든, 십이조든, 십삼조든 선을 긋지 않게 될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래도 나머지는 나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내가 이만큼 헌금하면 됐다는 것이지요.

그대의 전 재산을 다 드렸다 해도 예수를 좇지 않으면 그것은 다 헛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부자 청년에게 네 전부를 나눠주라고만 하시지 않으시고 예수 자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9장 27절에서 베드로가 부자 청년은 예수의 말씀도 듣지 않고 예수를 따르지도 않고 제물 때문에 죄의 자리로 돌아갔지만 제자들은 모두 다 버리고 예수를 따랐다 말하면서 무엇을 얻을 것이냐고 예수께 직접 물은 것입니다.

제자들도 특별한 사람들이니까 그렇게 했다고 하면 성경에는 특별한 케이스만 기록된 것이군요...

그러나 성경은 보편적인 진리의 말씀으로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성도를 온전케 하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은 어떤 특별 케이스가 아니라 나에게 그리고 그대에게 하시는 영원하신 변함이 없으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항상 이 말씀은 누구누구에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나에게 하시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으로 들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예수의 말씀을 들을 것입니까? 아니면 신학자의 말을 들을 것입니까? 그대가 판단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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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65.49.14.11)
2012-03-05 02:40:43
소망님.. 그렇게 해석하시면 안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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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121.130.158.249)
2012-03-05 14:54:48
감사합니다.^^
한국교회가 헌금 때문에 부패한 것인가요?
아닙니다. 헌금은 부패한 교회가 잘못 사용하는 것일 뿐 헌금이 나쁘거나,
헌금의 항목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세요. 시간과 돈 당신의 생각과 목적, 가치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 그대 안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거지로 살라고 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물질을 버리라는 것이 곧 거지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정도는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로 대화를 하면서 서로 한 말은 기억해 주기를 바랍니다.

그대가 가진 모든 것, 이것은 비단 물질(돈, 땅, 집 기타 등등)뿐만 아니라 그대와 관계된 모든 것입니다.
생명, 가족, 가치관, 목적, 시간, 직장, 기술 등등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그대와 관련된 모든 것....
그것들을 모두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대가 먹든지 마시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한다면
교회에 얼마를 헌금을 하든지 그것은 그대에게 아무 문제가 아닙니다.
그대가 십일조 문제에서 걸리는 것은 그대가 10%는 연보를 하지만,
나머지는 자신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2: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2: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그대의 논점은 물질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물질을 나누려고 오신 분이 아닙니다.
교회의 물질에 눈독을 들이는 사람들은 결국 그 교회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교회에 물질에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남의 교회의 물질을 어떻게 나누는지는 저나 그대에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다면 그것을 족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린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용하지 않는 병든 자들은 하나님께서 고치시거나, 혹은 영원한 심판을 하시겠지요.
그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입니다. 저나 그대는 절대로 그들을 고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 외에...

그러면 우리는 책임 없나? 아닙니다. 성경을 가르치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성도들에게 바로 외침으로 한국 교회가 바뀌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해야 하나? 안 해도 되나?’는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난 지엽적인 논쟁입니다.

그대가 아직 신앙으로 들어오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십일조가 있는지 없는지 헌금의 항목을 가지고 싸우는 것은 바리새인과 같은 것입니다.
구약에 분명히 십일조가 있고, 그리고 그것을 교회가 계승하였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율법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것이지요.
그 율법이 끝났나? 아닙니다. 심판 때 까지 계속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까지 전해 진 것이고 앞으로도 전해 질 것입니다.

다만 예수께서 사람은 다 이룰 수 없는 이 거룩한 율법을 다 이루셨음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율법에서 자유하여 율법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율법의 정죄를 받지 않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켜야 구원 받는다’고 하면 이단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니 따라야지’라고 마음에 생각나서 실천하면 이는 신앙입니다. 그렇다고 율법을 지키지 못하여서 형벌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대변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대 안에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나도 따르는 것이 마땅하지!’라고 생각나거든 따르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할 필요가 없어’하면 따르지 않겠지요.
그러나 어떤 것이 신앙의 발로인지 생각해 보세요.

마 23:23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이것은 십일조에 대한 말씀인데, 이것도 특별한 케이스라고 하면, 저는 그대를 설득할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저도 하나님께 드리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매일 매일 진지하게
살펴볼 것입니다.

저나 그대나 헌금만 드리고 나머지도 하나님의 것인데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나를 위해 쓴) 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 돌려드립시다.

그대가 나를 향한 모든 말들이 혹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하시는 말씀 같아서 감사하고, 또 회개하게 되는군요...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그대로 그 앞에 굴복하고 순종하는 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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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65.49.14.73)
2012-03-05 17:07:59
소망님의 삶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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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121.130.158.249)
2012-03-05 19:53:25
제 이야기를 잘못 이해하신 것 같습니다.
우리가 공연한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닌지...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와 그대를 이런 자리에서 만나 얼굴은 보지 못하지만 이렇게 글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나누게 하신 것은 그 뜻하신 바가 있으리가 믿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헌금을 하는 것이 전부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헌금해야만 헌금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대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은 교회에 헌금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물론 교회 선교를 위해 또 성전을 유지하기 위해 또 섬기는 자들을 위해 물질이 필요합니다. 또한 물질 뿐만 아니라 그대처럼 열열한 신도들이 필요합니다. 반갑습니다. ^^

하나님을 위한 삶은 직장도 그만두고, 자녀도 교회에 데려다 놓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말씀하신 여러가지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하나님의 뜻에 합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이겠지요.

그리스도인들이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데 사용되었다면 이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한 것입니다. 빛과 소금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먹고 마시고, 또 입어야 할 필요가 있어서 그것을 위해 사용하였다면 이 또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사용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사치하는 것이 아니라면...

구약을 계승하였다는 것은 간단합니다.
그대도 구약을 배우고 있지요? 그리고 구약을 신약과 동등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요?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치지요?
그대는 또한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이지요?
그러면 교회가 구약을 계승한 것입니다.

만나서 너무 반가왔고, 제 답변이 별로 신통치 않더라도 많은 이해 부탁드립니다. 다만 성경을 더욱더 상고 배우시면서 지금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기위해 열심으로 활동하시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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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65.49.14.83)
2012-03-05 20:33:20
신구약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생각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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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121.130.158.249)
2012-03-05 21:57:52
종료되었다면 폐지 되었다는 것인가요?
아니면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인가요?
종료가 무엇을 의미하나요?
그러면 십일조가 종료되었다고 선언한 성경이 있나요?
이제는 그대가 대답할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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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65.49.14.80)
2012-03-05 22:52:50
종료되었다면 폐지되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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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121.130.158.249)
2012-03-06 06:46:16
지금은 교회와 또 섬기는 자들이 있습니다.
제 말에는 대답하지 않으셨군요. 성경에 폐지되었다고 선언한 말씀이 있냐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대는 성경에 폐지되었다고 선언한 성경을 대지 않고 다른 소리만 하는 군요.

레위인과 제사장은 오직 하나님을 기업으로 주의 성전과 주의 일에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목사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목사는 제사장이나 레위인과 같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와 성전만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만을 위해 드려진바 된 사람이죠.

제사장과 레위인만 아니라 자신의 생계를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업으로 삼고 주의 일을 위해 드려진 목사와 전도가 있고, 또 교회가 있습니다.

폐지되었다고 하셨는데,
예수께서도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하려고 오셨다고 했습니다.
또 바울도 우리가 믿음으로 율법을 폐하느냐? 오히려 굳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그대는 이런 말씀들은 어떻게 해석합니까?

율법은 폐지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를 드리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사람의 모양으로 오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께서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십일조를 하라고 하셨지 내가 대 제사장으로 왔으니 그만 두라는 말씀은 없으셨습니다.

마 23:23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예수께서는 십일조와 또 율법의 의와 인과 신 모두를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시는데 그래도 폐지된 것입니까? 그러면 당신은 예수보다 더 위대한 분이시군요.....
예수께서 완성하신 율법을 그대는 폐지 시켰으니.

어쩌다가 그대의 논쟁에 내가 말려들었습니다. ㅋㅋㅋ
그러나 그대가 모든 것을 주님의 것으로 믿으면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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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65.49.14.55)
2012-03-06 09:43:46
알고보니 소망님 여태껏 의외로 취약한 논리나 욜씸히~ 붙들고 계셨군여~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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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121.130.158.249)
2012-03-06 11:34:10
함께 성경을 상고해 봅시다.
그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풀어 해석하지 않음으로 서로 자신의 주장만 되풀이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군요.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입니다. 구약의 율법이 폐지되었다고 하시니 예수의 말씀을 듣고 잘 생각해 보세요.
이 말씀은 앞에서도 언급한 말씀이나 한 본문 전체를 다룬 것이 아니고 한 절만 따로 설명하다보니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습니다.
이 본문은 17절부터 48절 까지가 한 본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매우 긴 본문입니다. 이 전체의 말씀은 지금 17절에서 20절에 하시는 예수의 말씀과 관계된 말씀입니다. 21절부터는 예수께서 율법을 풀어 그 뜻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왜 율법을 주셨는지 그 의미를 분명하고 명확하게 풀어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17절부터 20절 까지는 서론이기도 하며, 대 전제입니다. 예수께서 모든 율법을 다 설명하시지 않았지만 이 대전제 아래서 21-48절까지 설명하시는 것이고, 또 우리도 이 대전제 아래서 구약의 모세의 율법을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제가 모든 율법을 다 설명할 수 있다면 좋겠는데, 저는 아직 그 실력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신약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을 같이 상고해 보면 좋을 것 같아 이렇게 합니다.

마태복음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5: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5: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이 말씀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산상 수훈의 말씀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줄 생각 말라고 아주 강력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자들은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여기서 폐한다는 것은 ‘파괴하다 destroy, 부수다 demolish, 폐지하다 abolish.’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께서는 이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고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런 줄 아는 사람은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까지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천지가 아직 없어지지 않았으니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폐지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율법을 어기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가?
아닙니다. 19절에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여기서 ‘버리고’라는 말씀 또한 ‘풀다, 해방하다, 석방하다, 풀어놓다, 취소하다, 폐지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께서 풀어 놓거나, 예수께서 폐지한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자가 스스로 이것은 폐지되었다고 하면서 그것에서 풀어 놓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것도 ‘지극히 작은 것’은 것 하나입니다. 이는 17절의 ‘폐하러’와는 다른 뜻입니다. 17절에서는 모세의 율법을 완전히 깨부수는 쓸모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19절에서 버린다는 것은 사람들을 모세의 율법에서 풀어 놓는다는 의미입니다.

눅 19:17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또 계속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전자는 천국에는 들어가지만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습니다. 그러나 후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습니다.

20절에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잘 들으세요.

20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여기서 ‘너희는 예수의 제자 된 모든 사람들’이고 ‘너희의 의’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의’입니다. 그리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는 자신들의 율법 즉 사람의 유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7:7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7: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그대는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이 폐하여졌다고 하므로 그것은 17절의 ‘폐하다’의 의미에 더 가깝습니다. 그러나 그대의 설명은 19절에서 ‘버리다’와 더 가깝게 생각되는 군요...
그대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산다면 그대가 지극히 작은 것을 버리고 가르칠찌라도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예수께서 율법의 일부라도 폐하러 오셨다고 한다면 천국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대와의 대화가 성경을 깊이 보는 기회가 되어서 기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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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65.49.14.76)
2012-03-06 19:59:18
소망님.. 딴소리 마시구여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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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121.130.158.249)
2012-03-06 21:28:08
내가 쓴 글을 잘 읽고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소망.
제가 쓴 글을 바로 읽기는 읽으셨나요?
제가 언제 십계명에 대하여 말하던가요?
딴 소리는 그대가 하는 군요.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이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이야기와 무관한 딴 소립니까?
논쟁의 쟁점인 율법의 폐지와 관련된 핵심 말씀입니다.

마가복음 7장 7절은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와서 예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먹으니 율법을 범한다고 할 때 예수께서 그들을 향해 꾸짖으신 말씀입니다.

성경의 내용은 알고 저하고 대화하는 것 맞죠?

그대는 성경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안중에도 없군요.
성경에 예수께서 율법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제가 자세하게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전제가 되는 마가복음 5장 17절부터 20절의 말씀을 해설해 놓았습니다.

그대가 폐했다고 주장하는 율법을 예수께서는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들리지 않으시나요?

율법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가르치지 않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라 할 것이요, 율법을 행하면서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큰 자라 일컬음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율법을 버리고 가르치지 않는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율법을 폐하러 오셨다고 하면 이는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십일조뿐만 아니라 그들이 정한 많은 장로들의 유전 곧 사람의 계명을 교훈을 삼아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모세의 율법과는 다른 것입니다.

참 애석합니다. 그대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듣지 않는다면 그대는 무슨 방법으로 예수를 믿을 것이며, 어떻게 예수를 따를 것입니까?

저는 구약의 모든 율법을 다 배워 알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모든 율법을 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모세의 율법을 다 아시고, 그가 이루셨고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온전케 하려고 오셨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앞에서 그대는 예수께서 율법을 폐하셨다고 하면 누구 말이 옳은 것입니까? 그대의 말입니까? 아니면 율법을 내신 삼위일체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십니까?

참으로 딱한 일입니다. 십일조를 내기 싫거나 믿음으로 하나님께 당신의 전부를 바치는 것이 아깝거든 드리지 마세요. 그 예물은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으시고 도리어 그대에게 화가 미치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믿으세요. 성경에서 당신에게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으세요.
예수의 말씀이 믿어지거든 예물을 주님께 바치세요.

디모데후서
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1: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10절에 보면 “사망을 폐하였다.”고 말씀하시죠?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사도 바울은 똑같은 단어를 사용해서 말씀합니다. 디모데후서에서는 “사망을 [폐하]였다.”고 하고 로마서 3장 31절에서는 "율법을 [폐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굳게 세웠다"고 말씀합니다. 이 두 말씀은 똑같이 사도 바울이 하신 말씀입니다.

그대는 성경을 바로 읽는 법부터 배워야 겠습니다.

그대에게 성경을 가르쳤으나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어쩔 수가 없네요.
하나님께서 그대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시고 눈과 귀를 막으시면 제가 어찌 들려지게 하겠습니까? 그대에게 속히 예수의 말씀이 들려지기를 소망합니다. 그럼 늘 평안하세요.^^
저도 웬만하면 끝까지 하는 편인데, 그대에게는 더 이상 설명할 성경 말씀이 없네요. 제가 알고 있는 성경은 충분히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 판단은 그대에게 넘겨졌습니다. 저도 자꾸 근본적인 믿음에서 떠나 지협적인 한가지를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좋지 않습니다.

저와의 대화를 잘 읽어 보시고 잘 소화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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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65.49.14.88)
2012-03-06 22:55:35
횡설수설 딴소리 마시구요 소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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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님은 (211.253.82.235)
2012-03-10 13:08:53
정말 건설공사현장에서 한달간 일을 시켜야 겠습니다.
바로 이런 공부도 못해서 신학교 간 염치도 없는 입나불, 같은 사회나 성도에게 아무런 쓸모도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건설공사 현장 1년 정말 죽도록 고생하면서 일하면서 가족에게 한푼도 못가져가게하는 성도들의 현장체험을 추천합니다. 정말 군대안갔다와서 군대가서 목숨을 바쳐야된다고 얘기하는 전형의 사람입니다. 정말 싸구려 양아치. 사기꾼 같습니다. 이런분들을 위해 진짜 직장에서 고통받으면서 일을 시켜야 합니다. 몸으로 힘들어야 조금은 뉘우치고 느끼는게 있을까 말까 합니다. 왜 목사는 이상하죠? 눈빛이나 말하는게 뭔사 음흉해보이고. 거짓스러운 미소에 번들번들한 얼굴. 진실성없는 말투와 행동, 느낌, 사기꾼의 캐릭터에 딱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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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네 (121.156.177.230)
2012-03-12 12:13:21
위의 ㄴ은 님의 글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시간 낭비마세요. 어짜피 저 ㄴ 은 자기 주장하고 싶은 말만 주절댄답니다. ㅅ ㅊ ㅈ 놈들과 똑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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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평일 (72.196.235.211)
2012-03-04 07:45:38
아주 부러운 신앙관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자신을 100% 헌신하고 계시는
소망님의 아름다운 삶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당당뉴스를 읽고 있는 독자들에게도 신앙적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이 확실합니다. 사람을 키우고
세우시는 글 말입니다..
그러나 글은 자신이 누군인지를 우선 밝히고
가명이 아닌 실명으로 쓰셔야 도자들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목사님이라면 교회소개도 아울러
해주시며 좋은 교회를 찾고 계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듯합니다. .
필자 신성남 선생님처럼 가명의 독자들로부터
혹독한 비난과 비판을 받으실 수도 있겠지요.
많이 기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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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121.130.158.249)
2012-03-04 10:19:39
사람(죄인)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세요.
제가 죄인이 아니냐고요? 그렇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왜 자신을 실명으로 공개하지 않느냐고요?
구태여 나를 공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또 교회를 공개해서 양들을 이리가운데 밀어 넣고 싶지 않군요.

박평일 선생처럼 저는 그렇게 의롭지 못합니다.
제가 빗댄다면 만약에 그렇다면 저는 신앙생활도 목회도 그만 두어야 마땅한 죄인입니다.
죄인중의 괴수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저를 잡아 두셨나 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모아놓으신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죄인입니다.
그중에서도 목회자는 가장 악랄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꼼짝 못하게 잡아두고는 '네 말은 하지 말고 내말만 하라!'고 잡아 두신 것이죠.

지금 신문에 보면 대부분 목회자를 비난하는 글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목회자들은 아마도 다 공감하고, 자신이 직접 거기에 실명이 거론되지 않더라도 자신도 그 비판에서 비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다 인정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그런 죄인을 불러 회개케 하시려고 오신 것이고요.

비록 지금 세상은 악하고 교회도 그 악한 세상에 물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악하신 것이 아니고, 예수께서는 그 세상에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니 내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말씀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내 말이 아니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9: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19: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19: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19: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
19:25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19:26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19: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19:28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19: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19: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부자 청년이 예수께 찾아 와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겠습니까?’ 하고 물은 말씀입니다.
이 본문을 다 설명하자면 지면이 부족 하겠지요.
그런데 부자 청년은 자기 제물이 많은 고로 예수의 말씀을 듣고도 예수를 따르지 않고 자기 맘대로 갔습니다. 이는 그가 예수를 따지 않고 죄의 자리로 다시 돌아갔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27절에 보면 ‘베드로가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예수의 제자 된 자들이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버리고 주를 좇았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면 거지가 되었다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이는 자기의 것을 자기의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주를 위해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또 29절에서 예수께서는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지금 많은 성도들이 아직 주의 제자가 되지는 못했다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주의 제자가 되도록 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하지 말라...
네게는 본받을 바가 없으니 그런 말은 네가 먼저 지킨 후에야 하라! 고 하면
저는 제 말이 아니고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고, 예수께서 다 이루신 말씀으로 예수의 말씀을 들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나를 따른 다면 누구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세상 말로 털어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말은 제게 비유하기에는 적절한 표현은 아닙니다. 저는 털지 않아도 먼지가 많이 나니까요. 그러나 예수의 말씀을 듣고 따른 다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부디 박평일 선생이 저를 판단하려고 하시지 말고 예수의 말씀을 들으시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제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 예수의 말씀을 증거 하는 예수의 증인입니다.
제 실명과 관계없이 제 말이 예수의 말씀을 전달한 것이라면 성경을 읽어 보시고 사실 유무를 판단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박평일 선생에게 하시는 말씀을 믿으세요. 성경에 영생의 말씀이 있고, 영생의 길이 있고, 당신의 주인이 계시며, 세상을 창조하신 만물의 주인이 계십니다.
거룩한 주일 아침 박평일 선생께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총이 부족함 없이 풍족하게 내려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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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평일 (72.196.235.211)
2012-03-05 00:16:38
상세하게 인용한 성경구절 잘 읽었습니다.
저의 댓글을 비난으로 이해하시는 것이
다소 의외로 느껴집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이나 성경해석을
비난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일반적인 토론문화지요.

저는 오늘날 기독교계의 문제가 성경에 좋은 말씀이
없거나 신도들이 그내용을 제대로 이해를 못해서 비롯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교회를 나가는 사람들이면
자신이 삶이 자기것이 아니라는 것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된다는 것은 늘쌍 들어오는
설교말씀이지요.


문제는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그런 기본을
삶을 통해서 실현할 수가 때문이겠지요. 물론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에게 당신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예수는 내가 말하고 행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바로 나다"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신앙이란 이론이 아니라
체험이고 삶이라는 의미겠지요.

저는 평생 사업을 해 온 사람들입니다.
제 경험으로는 성공적인 기업인들 중에
탁월한 이론가나 학자들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 이론가들은 대학강단에서나 찾아 볼 수 있지요.
대부분 성공한 기업인들은 작은 이론을
위험을 무릅쓰고 실제로 기업운영에 적용하는
행동파들입니다. 물론 그과정에서 잦은 실패로
고생과 고난을 무수히 경험하게 되지요.

그들에게, "당신은 어떤 사업가입니까?" 하고
묻는나면 그들은 장황한 이론을 늘어놓는 대신에
자기의 사업장으로 대리고 가서 그대로 보여 줄 것 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교계와 기독교인들이 사회의 지탄을
받도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의 가르침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까?
성경에 좋은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훌륭한 신학이나 설교가 없기 때문이니까?
아니지요. 그모든 것들은 이론적으로 아름답고 훌륭하지요.
다만 이에 따른 열매와 향기가 없기 때문이지요.
.
그리고 우리들은 "이는 바로 네탓이다" 하며
서로에게 돌팔매질만 하고 있습니다.
" 죄없는 사람이 나와서 먼저 돌을 던로 쳐라 " 하는 예수의 외침소리를
들으면서 우리들은 앞다투어 돌팔매질을 하고 있지요.

그런면에서 자기삶을 100 % 하나님께
헌신하고 계신다는 소망님의 삶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제가 실명으로 글을 부탁한 것은 선생님을 비난하려는
의도는 숨어 있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자기 말이나 주장에 책임을 지는 댓글문화가
아쉽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둠 속에 숨어서 가명으로는 무슨 비판이나
주장을 자유롭게할 수가 있습니다. 책임을 질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당당뉴스에 글을 올리는 필자들은 입장이 다릅니다.
자기 주장과 이론에 공개적인 책임을 져야 합니다.숨겨두고 싶은
개인적인 약점과 부끄러움이 공개해야 할 경우도 자주 있습니다.
글이 신문에 실리고 나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으로
후회를 할 때도 있습니다. 솔직히 나를 아는 사람들이 위선자라고
비난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합니다.
신선생님은 아주 무던한 인격자 같습니다.
욕설에 가까운 비판과 비난성 댓글에도 일일히 부연해서
설명을 하고 계시니 말입니다. 가끔 자기의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하고 이해를 구하시기는 아량도 있으시고.
아주 당당해 보입니다.

그헐다면 그분을 비판하는 분들도 자신이 누구인가를
밝히는 최소한의 의무는 가지고 있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이는 같은 신앙인으로써가 아니라 글을 읽는 한인격자로써의
의무사항일 것입니다.


저는 무명이나 가명으로 복음을 전도했다는
성경구절을 아직 읽어 본적도 없습니다. 또 순교한 분들 중에서
그런 가명을 사용한 분들은 없었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신앙의 지도자들이나 신약에 나오는
12제자들도 그들의 인간적인 추악함과 잘못을 숨기려하지 않고
사실대로 기록에 남겨두었습니다. 아주 당당했지요.

저는 타인의 글에 동의하거나 칭찬하는 경우에는
곧이 실명을 쓸 필요가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에 따른 책임이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타인을 비난하는 행위에는 이에따른
책임이 반드시 따르게 됩니다.
타인의 인격과 마음에 상처를 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선행은 다른 손이 모르게 숨어서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비판을 숨기라고 말씀하신 적은 없습니다. 오히려
남을 비판하면 그비판으로 너도 비판을 받을 거라고 경고하셨습니다.
비판은 책임이 따르는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가 소망목사님께 실명으로 사람을 기르고 세우는 글을 써달라는 부탁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비성서적인 요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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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121.130.158.249)
2012-03-06 11:54:14
박평일님 반갑습니다.
마태복음의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주님의 명령은 우리가 그 모든 명령을 다 지킬 수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말씀이 세상의 지식이나 사상에 물들지 않고 오직 예수의 말씀으로만 지키라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말로는 지키라는 말의 뜻이 참 여러가집니다. 그러나 원문에서는 예문을 들자면 '옥문을 지켜라'입니다.
누군가 예수의 말씀을 흐리거나 그 말씀에서 떠난 이야기를 하면 그렇게 되지 않도록 지키라는 것입니다.

저의 변명같지만 성경 마태복음 28장 19절의 뜻입니다.

저는 그대와 같지 않아서 용기가 부족한 사람인가 봅니다. 소심하고...
언젠가 제 실명을 공개할 날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대가 나를 공격한 것이 아닌데 저는 그만 그대의 말이 찔림이 되었나봅니다.

저는 님이 당당뉴스에서 열심히 활동하시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저도 제 필명을 바꿔가며 아무렇게나 말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저는 '소망'입니다. 뉴스미션에도 가끔 댓을을 달았습니다.
지금은 들어가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당당뉴스에 자주는 들르지 않는데 이렇게 들어와 보게 되었습니다.

저도 성경을 잘 모르지만, 성경을 모르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방식으로 교회를 새롭게 하려는 시도를 보게 됩니다.
그러나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주님의 말씀이 아니고는 교회가 정상화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이 대두 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박평일님이 댓글을 다실 때 일반적인 상황에 대한 것 이 아니라 그 상황을 이겨 낼 수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해 주시기를 부탁해 봅니다. 그리고 박평일님의 생각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각을 써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그렇다고 제 생각이 다 예수의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털어 먼지 많이 나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미국에 계신 사업가라고 하시니까 반갑고, 저는 한국에 있는 목삽니다.

저는 이름은 알지만 얼굴도 모르고, 님은 저의 이름도 모르지만,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한 형제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겠죠...
그리스도 안에서 만나서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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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평일 (72.196.235.211)
2012-03-06 20:24:19
고맙습니다. 제주위에는 훌륭한 목회자, 신앙인들이
많이있습니다. 신앙을 떠나서 인간적으로
아주 존경하고 있는 인격자들입니다. .

저는 성경에나오는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를 아주 좋아합니다.
이세상에 의인은 아무도 없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들이 서로 용서하고 용서 받을 수있는 출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간디는 자서전에서 아버지장례식 날 밤에
자신의 정욕을 견디지 못하고 부인과 동침한 사실을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저는 바로 그점이 간디의 위대함이요,
수억의 인도인들이 그를 신뢰하고 따랐던 이유 중 하나라고
믿고있습니다. 완벽한 우상이 아니라 저들과 같은 연약한 인간으로써
인간 간디 말입니다.
제가 우리 기독교지도자들에게서 아쉬워하는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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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11.117.119.172)
2012-03-03 22:5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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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망 (121.130.158.249)
2012-03-04 10:29:55
분명 예수는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면 신문의 기사나 그대의 말로 세상을 바꿔 놓을 수 있다면 예수께서는 오실 필요가 없는 것이죠. 신문이나 그대에게 부탁하면 될 것을
그런데 예수께서는 구태여 당신에게나 신문에 부탁하지 않으시고 세상에 오셔서 유대인과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데도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셨습니다. 그리고 구태여 십자가를 지시고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시어 모든 사람을 하나님께 구속하셨습니다.

그대가 만약에 예수께서 하시지 못하기 때문에 그대의 능력으로 세상을 변화 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면 그대는 아마 세상의 그리스도겠군요..

만약에 그런것이 아니라면, 당신의 말을 하지 말고 예수의 말씀을 하세요.
그대의 말에는 아무 능력도 없지만 예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대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히는 때가 속히 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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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
영혼사랑 (119.197.216.249)
2012-03-03 20:08:19
구구절절 옳으신 말씀에 깊은 감동받고 갑니다.
이러한 설교를 왜 교회에서는 들을수가 없을까요
늘 십일조 잘하면 축복받는다는 설교만 들어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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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평신도 (61.170.232.92)
2012-03-03 18:22:56
목사들에게 고함
1.목사는 교회의 CEO가 아니라 하나님의 종, 성도의 머슴임을 아십시오.

2. 목사 보다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이 없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3. 한번 목사는 영원한 목사라고 오인 하지 마십시오.

4. 목사가 되겠다고 서원한 초심을 잊지 마십시오.

5. 교회를 자신의 야망 실현과 목회성공기지로 삼지 마십시오.

6. 장로, 권사, 집사, 모든 성도를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로 섬기십시오.

7. 설교와 기도를 조건반사적으로, 약장사 같이, 녹음기 처럼 하지 마십시오.

8. 돈과 명예와 교권을 탐하지 마십시오.

9. 성질대로 목회를 하지 마시고 바른 사고와 건강한 몸으로 겸손하고 교양적인 신앙인이 되십시오.

10. 선교헌금으로 가족해외여행 다니지 마시고 , 검소하게 생활하는 신앙인이 되십시요.


11.헌금금액을 성도들의 믿음의 기준으로 삼지 마십시요.



12, 제발 양심을 찾아, 쪽팔리게 살지 마십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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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0
목회자 (61.170.232.92)
2012-03-03 18:20:34
저는 개같은 목사가 되렵니다
나는 차라리 개같은 목사가 되렵니다.
경건을 보수의 울타리에 가두고
학문을 교리의 울타리에 가두고
실천을 교회의 울타리에 가두고
그리고 나면 우리는 감옥에 갇힐 겁니다.

역사의 암울한 시기에
한 번도 목소리를 내지 못한 교단에서
한 발작 벗어나는 것이
이리도 힘드는 일일까요?



성경을 교리로 난도질하는 인본주의적 인습에서
혁명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무릎꿇는 길로 가는 것이
이리도 어려운 일일까요?



목사님들은 모를겁니다.
그래서 저도 모를겁니다.
교회를 보며 갑갑해 하는 일반 성도들의 마음을,
이리를 보고도 짖지 못하는 개와 같은 목사들을 보며
물려죽으며 분통이 터져가는 양들의 마음을 ...



예수님을 잃은 중세카톨릭이 부패하였듯이
개혁정신을 잃은 개혁교회가 썪고 있는 것을 보며
혹시 우리가 양들을 지키는 개가 아니고 이리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사나운 개가 몇 마리만 더 있어도 좀 덜 할 터인데
개는 없고 양반들만 있으니 양들이 죽는 것이 아닌지요.
소금은 없고 설탕만 있으니 썩는 것이 아닌지요.



그래서 결심해 봅니다.
나는 개같은 목사가 되어야겠다고
설탕보다는 소금을 뿌리는 목사가 되어야겠다고
거룩한 목사님들은 모르실 겁니다.
왜 제가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왜 차라리 개같은 목사가 되려고 하는지 ...

양들 가운데 있다보면 우리는 양같은 목사가 되어
양을 바로 인도하지 못하는 거룩한 양같은 목사가 되거나,

이리 같은 목사가 되어 양을 잡아먹게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개같은 목사가 되어야 할 겁니다.

젊잖은 목사님들은 못 들으실 것입니다.
이리를 만난 저 성도들의 아우성을...
천사들의 찬양 소리만 들리실 터이니 ...

저는 이리를 물어뜯는 개같은 목사가 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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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0
포청천 (119.197.216.249)
2012-03-03 20:12:51
목사님 속이 후련합니다.
아까운 시간과 땀흘려 수고한 헌금과
온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주님만을 섬기며
교회 생활을 착실하게 하고 있는데
교회가 점점 세상보다 더욱 썩어져가는
모습에 너무 가슴이 아파 가슴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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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0
신성남 (49.50.206.22)
2012-03-03 18:50:14
존경하는 신현우 교수의 글이군요.
여기서 다시 읽게 되니 새로운 감동입니다.
올려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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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222.64.11.72)
2012-03-03 23:26:38
개같은 목사들은 어디에 ?
개 같은 목사들이 많이 나와 이리같은 목사들 이 양들을 다 잡아먹기전에 지켜줘야 할텐데
개 같은 목사는 신학교에서 쫒겨나니 ,누가 양들을 지켜 주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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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
섬기는 자 (112.171.136.14)
2012-03-03 17:18:12
낮은곳에 처하는 자
주님의 제자이길 원한다면 주님이 가르치신 삶을 살아야하고

적어도 애를 써야합니다.

담임직 세습, 성직 매매, 돌림 세습등을 행하는 자는

이단이며 사탄의 종일 뿐입니다.

높은 강대상에서 거드름떨며 주님의 종 어쩌구 함은

지옥문을 향하는 지름길이지요.

그들의 뒷모습을 주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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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네 (118.44.221.161)
2012-03-03 08:13:11
정말 십일조의 적용을 알고나 쓴 글인지
당당뉴스의 이런 그들은 정말 뭐라고 비난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겠습니다. 자기 멋대로 성경을 해석하고 적용하여 교회를 비난할 이유만을 찾기 때문입니다. 묻겠습니다. 구약의 십일조와 신약의 십일조의 다른 점은 무엇인 것입니까? 이것에 대해 제대로 정의하지 않고, 무조건 구약의 십일조 사용이 신약시대, 지금의 교회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입니까? 구약의 십일조는 의무이지만, 신약의 십일조는 은혜입니다. 물론 구약의 십일조 정신으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고, 사용해야겠지요. 그러나 은혜로 드리는 십일조는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심을 믿고 고백하며 드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사역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사용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기고자의 말대로 구약적 십일조만을 그렇게 강조하면, 당신은 지금 왜 구약적 제사는 드리지 않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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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28
신성남 (49.50.206.22)
2012-03-03 14:35:57
십일조의 적용이라... 정말 그리 생각하시나요?
자기 멋대로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 신약 성경 어디에 신약의 십일조를 '은혜'로 하라고 했던가요. 예수님 십자가 사건 이후 신약교회에서는 아예 십일조라는 언급조차 없습니다.

오히려 제가 묻고 싶습니다. 누가 무슨 근거로 제멋대로 '신약의 십일조'를 정의하고, 제멋대로 사용하고 있는지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차라리 은혜로 한다면 '감사헌금'을 할 것이지 왜 하필 '십일조'인가요? 어느 신학자나 목사가 감히 신약의 십일조를 토지소산물이 아닌 '수입의 1/10'로 걷어 제멋대로 적용하여 사용하라고 결정했습니까? 아울러 십일조와 주일헌금과 연보의 적용에서 그 차이가 과연 무엇이며 누가 이를 정했는지요? 헌금 종류가 다르다면 용도도 달라야 하건만, 한국교회는 일단 걷으면 모두 통합해서 제멋대로 쓰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제가 언제 구약적 십일조를 강조하였던가요. 한국교회가 구약 십일조를 인용하며, 이를 제멋대로 적용하여 십일조를 걷고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아울러 "교회를 비난할 이유만 이유만 찾고 있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거꾸로 비난 받을 행동을 칭찬해야 옳은가요. 님의 무례한 댓글이야말로 언급할 가치를 별로 느끼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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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5
웃기네 (121.156.177.230)
2012-03-03 18:04:11
제가 신약의 십일조를 은혜라고 말씀드린 것은 의무에 반대되는 의미로 사용한 의미라는 것을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은 아니시겠지요. 이런 글을 쓰실 정도면 은혜는 단지 자기 마음에 들면 하고, 들지 않으면 하지 않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아실텐데요. 그리고 예수님 십자가 사건 이후 신약교회에서는 아예 십일조라는 언급조차없다고 했는데, 언급이 없으면 십일조를 안 했다는 말입니까? 예수님께서도 분명히 십일조에 대해서 마23:23절에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약교회에서는 십일조를 하지 않았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무엇때문이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구원의 감격 속에 하나님과 예수님을 그들의 주인으로 섬기는 은혜의 믿음으로 당연히 행했기 때문에 언급이 없는 것이지요. 또한 "신약의 십일조를 토지의 소산물이 아닌 수입의 1/10조로 제멋대로 적용하여 사용하라고 결정했다."는 말씀은 구약시대에 토지의 십일조만 드렸다는 의미인가요? 그래서 요즘 교회들이 십일조를 잘못거두어들인다는 의미이신데....그런데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드린 십일조가 토지의 소산물이었던가요? 그리고 야곱이 하나님께 서원했던 십일조가 토지의 소산물이었던가요? 뿐만 아니라 십일조와 주일헌금과 연보의 적용에서의 차이와 적용, 용도를 말씀하셨는데, 구약성경에 번제와 소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등의 제사와 제물에 대해서는 모르시나요? 이 제사들에는 드리는 사람의 형편에 따라 드릴 수 있게 되어있죠. 마찬가지로 지금의 교회도 그 의미를 생각하며 헌금의 종류도 달라질 수 있는 것아닐까요? 그리고 "헌금 종류가 다르다면 용도도 달라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은 드리는 사람의 믿음이지, 그 사용도 꼭 그 용도로만 사용해야 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목적 헌금일때는 예외이겠지만....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드려진 헌금이 사용되는 것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겠지요. 헌금을 거둔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는데, 이것은 결코 거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헌금을 드리는 성도들을 모독하는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의 제목을 "십일조를 떼어먹는 교회"라고 해야 했을까요? 이 글 속에는 님의 교회만 십일조를 떼어먹지 않고 다른 교회들은 모두 십일조를 떼어 먹는 아주 나쁜 교회라는 인상이 들게 만들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당당뉴스에는 기독교인들이 아닌 사람들도 들어와 보는데, 그들에게 이런 바르지 못한 이해 속에서 쓴 글이 무슨 선교가 되겠습니까? 제 댓글이 무례하다고요? 님의 글로 인하여 열심히 헌금하고 사역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것이 더 무례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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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2
신성남 (49.50.206.22)
2012-03-03 18:31:44
"신약교회에서는 십일조를 하지 않았다는 기록도 없습니다."라고 하셨는데...
당시 신약 초대교회에는 바리새인이 드리던 구약의 십일조 외에는 다른 십일조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습니다. 즉 지금과는 달리, 구약의 직접적인 연장선 상에 있었던 교회입니다.

그런데 구약 십일조는 반드시 성전에서 현물로 드렸습니다. 성전이 사라졌는데 무슨 방법으로 십일조를 드릴 수가 있었을까요. 만일 그래도 다른 방법으로 십일조를 해야 함이 옳았다면, 반드시 바울이나 다른 사도들이 그 새로운 적용에 대해 언급을 했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자발적인 연보를 매우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십일조에 대한 어떠한 언급 자체가 아예 없었다는 것이 새로운 방법의 십일조는 없었다는 증거이지요.

아울러 아브라함의 십일조 등 구약의 다른 십일조는 하나님이 직접 명령하셨던 '정기적이며 의무적인 십일조'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상 현재 한국교회가 강조하고 있는 십일조와는 아주 다른 별개의 십일조입니다.

그리고 다른 여러 의견을 주셨는데... 그것 역시 크게 동의하고 싶지는 않군요. 저는 열심히 헌금하고 사역하는 분들에게 상처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신도들의 순수한 열정을 악용하여 사욕을 채우려는 교권주의자들을 경계하고, 교회가 바른 사역을 하는 것이 옳다고 보기 때문에 그러한 제목을 쓴 것입니다. 비록 서로 의견은 크게 다르지만, 적극적인 댓글 참여에 깊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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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
웃기네 (121.156.177.230)
2012-03-03 18:46:52
신약 초대교회에는 바리새인이 드리던 구약의 십일조 외에는 다른 십일조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다구요? 새로운 적용에 대한 언급이 없었기에 드리지 않았다구요? 언급이 없었다는 것은 언급하지 않아도 그들이 왜 헌금을 드려야 하는지를 깨닫고 드렸기 때문이아니었을까요? 사도 바울과 베드로 등이 왜 서신을 썼는지도 아시겠네요? 그것은 그 당시의 교회와 성도들에게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 문제들을 해결해 주기 위함이고, 그들의 신앙이 바르게 성장하게 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이지요. 중요한 것은 헌금(십일조를 포함)을 왜 드리느냐는 것이겠지요. 내라고 해서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며, 내 모든 것이 내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더 큰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서 드리는 것이지요. 그래서 헌금은 많이 드려도 아깝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더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자꾸 비난거리만 찾다보면 비난할 것만 보입니다. 물론 잘못된 목사, 파렴치한 목사, 교회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더 좋은 모습을 보면서 사역을 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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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3
익명 (211.117.119.172)
2012-03-03 23: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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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
익명 (211.117.119.172)
2012-03-04 09:4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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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
웃기네 (118.44.221.161)
2012-03-03 23:10:27
제 글에서 연봉 많이 받겠다는 의미를 발견하셨나요? 무서운 통찰력이십니다. 사탄의 통찰력 말이죠. 당신은 신천지 교인임에 틀림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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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0
익명 (118.44.221.161)
2012-03-03 23: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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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9
익명 (222.64.11.72)
2012-03-03 23:42:51
서푼짜리 성경지식으로 먹고사는 직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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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2
익명 (211.117.119.172)
2012-03-04 09:5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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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익명 (211.117.119.172)
2012-03-04 10: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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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0
웃기네 (118.44.221.161)
2012-03-04 17:27:22
누명을 씌웠다? 누가 먼저 누명의 씌웠습니까? 십일조의 진정한 의미의 논쟁에 "연봉 3억5천 받고 싶어서 그러신 거에요? 주거비, 전기세, 차량유지비, 자녀교육비, 의복비, 의료비, 기타 제세금 별도로 받으시고 여행비 별도 3천 쓰시고요...."등등의 모욕을 가해 마치 제가 그런 사람인 것처럼 매도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논쟁의 핵심을 분명히 하고 끼어들어야지요. 신천지인들이 바로 엉뚱하게 목사를 매도하고, 교회를 매도하여 교인들을 현혹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행태를 하시니 신천지라 한 것 뿐입니다. 본질을 분명히 하셔야지. 이해력이 떨어지면 참여하지 마시고.....비난을 위한 비난은 하지 맙시다. 왜 이 문제를 가지고 논쟁하는지나 아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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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7
익명 (211.253.82.235)
2012-03-10 13: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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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익명 (118.44.221.161)
2012-03-11 23:3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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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11.253.82.235)
2012-03-09 09:5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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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11.253.82.235)
2012-03-09 09:4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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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118.44.221.161)
2012-03-11 23:4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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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2
익명 (211.253.82.235)
2012-03-12 09: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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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118.44.221.161)
2012-03-11 23:5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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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211.253.82.235)
2012-03-12 09:35:26
웃기네 님이 목사님이 맞다면 욕좀 하지 마세요.
무슨 목사가 욕을합니까. 그리고 이런 소모적인 얘기 그만해야 겠어요.
이제 리플은 그만달겠습니다. 그리고 웃기네님 제발 욕좀하지 마세요.
아무리 그래도 마흔은 넘으셨을텐데 그리고 목사님이실수 있을텐데 어떻게 그런 인격을 가지고 합니까. 동네 양아치입니까?
그리고 저는 IIT 출신입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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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네 (121.156.177.230)
2012-03-12 12:23:23
언제 제가 욕했나요? 님이 욕했지. 모욕...IIT출신? 그게 어딘데요. 난 무식해서리...상위 5%에 들지 못해서...아! "아이구 아이구 더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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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불쌍한 (211.117.119.172)
2012-03-17 20:39:39
불쌍한 사람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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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네 (211.253.82.235)
2012-03-12 08:57:20
웃기네 씨는 제정신이 아닌가 보네요. 안녕히 가십시요 인생의 마지막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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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11.253.82.235)
2012-03-12 09: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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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11.253.82.235)
2012-03-12 09: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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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평일 (72.196.235.211)
2012-03-03 20:54:34
웃기네 목사님의 댓들 읽고 몇자 적습니다. 저는 헌금에대한
성경해석의 논쟁에는 끼어들고 싶지가 않습니다.
헌법이나 육법전서도 학자들이나 판검들에 따라서
해석이 서로 다르지 않습니까 ? 그러니 성경이 성령의 감화로
기록되었다고 가정한다면 읽는 사람에 따라서 다를 수 밖에 없겠지요.

저는 현재 헌금을 전혀 강조하지 않는 미국교회에 나가고
있읍니다. 그교회는 헌금봉투도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이지역이서 가장 큰 교회 중 하나지요.
그교회는 매주 신도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건물을 확장하지 않고 신도들의 교통편의를 위해서
다른지역에 작은 지교회를 세워나가고 있습니다.
십일조와 선교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는 객관적 증거가 되겠지요.
어떤 한국목사님은 그교회가 십일조를 내지 않는다고
이단이라고 단죄를 하시더군요.
십일조헌금이 구원을 얻는데 꼭 필요한 전제조건이라면
분명히 그교회의 목사와 신도들은 이단이겠지요.
.
제 주위에서 교회를 기피하는 비신자들이나 교회를 등지고
떠나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거의 100 % 가
"교회의 헌금강조, 돈문제 때문이다 " 라고 대답을 합니다.
어떤 목사분들은 "그들이 신앙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하고
주장을 합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돈을 강조하는 교회에 지쳐있고, 또 그런 신앙을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많은 문제들이 대부분 헌금문제, 돈문제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통해서
서 십일조헌금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계실 것입니다. .

그렇다면, 교회가 십일조를 계속 강조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웃기네 목사님같이 성경지식에 정통한 목사님들이
앞장서서 개선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선교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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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0
능마을 (218.155.180.207)
2012-03-16 22:55:07
맞는 말씀이십니다. 웃기네 목사님은 성도들을 웃기는 목사님 입니다.
웃기네 목사님이 십일조를 걷우어서 가난한자들에게 준다면 얼마던지 그렇게 하십시요. 그러나 목사의 급여(사레비)만 올려려면 당당 목회조차도 중단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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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익명 (72.196.235.211)
2012-03-03 20: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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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2-03-03 19:00:10
대다수의 신학자들이 동의하는 사실입니다...
'신약 초기교회에 어떤 종류의 십일조도 없었다'는 것은 제 개인의 사견만이 아니라,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절대 다수의 신학자들이 동의하는 사항입니다. 어느 신학세미나에 가서 '신약교회에 십일조가 있었다'라고 주장한다면 아마 용감하고 무모하다는 말을 반드시 들을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적이나 문서적인 아무 증거없이 단순히 '당시 십일조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만으로 한국교회가 십일조를 지금처럼 집요하게 강조한다면 정말 비상식적인 이야기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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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3
웃기네 (118.44.221.161)
2012-03-03 19:56:14
인터넷 위키백과에 초대교회 십일조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되어 있네요. "십일조에 대한 가르침은 《디다케》(Didache)[2]라는 문서에 나오며, 오리겐, 이레나이우스,,크리소스톰,어거스틴도 스스로 드리는 십일조를 가르치고 있다. 스스로 드리는 십일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내면 좋지만, 안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그 실례로 크리스소스톰 콘스탄티노플 대주교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께 십일조를 정성껏 드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으며,이레나이우스 주교는 그리스도를 통해 자유를 얻은 사람은 주님을 위해 기쁘게 헌금을 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디다케"는 110년 정도에 기록된 문서라네요. 초대교회 문서가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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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2-03-03 20:45:22
참고로 헌금과 관련된 디다케 기록 내용입니다
<붙박이 예언자들과 교사들 공양(13장)80)

13. 1 81)여러분 곁에 머물기를 원하는 참 예언자는 누구나 먹을 자격이 있습니다. 2 같은 모양으로, 참 교사도 (먹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꾼이 먹을 자격이 있는 것처럼 그도 그렇습니다. 3 82)당신은 포도짜는 확과 탈곡장과 소들과 양들의 소출들 중 맏물을 모두 거두어 그 맏물을 예언자들에게 드리시오. 그들이 바로 여러분의 대제관들이기 때문입니다. 4 83)〔만일 여러분에게 예언자가 없다면 가난한 이들에게 주시오.〕5 84)당신이 밀가루 반죽을 할 때에도 맏물을 거두어 계명대로 주시오. 6 같은 모양으로, 당신이 포도주나 올리브 기름 그릇을 개봉하여서도 맏물을 거두어 예언자들에게 주시오. 7 돈과 의복과 모든 재산 중에서 당신 생각대로 맏물을 거두어 계명에 따라 주시오.>

위의 디다케의 내용중에 그나마 십일조와 연관된 부분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주로 목회자들의 생활보장과 성만찬에 필요한 것들을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계명대로>라는 것이 확실히 십일조를 말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습니다. 디다케 전체를 보면 오늘날의 십일조와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즉 2세기 초 문서인 디다케에서는 <십일조>를 직접 언급하고 있지 않고 있슴을 잘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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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2-03-03 20:18:04
오리겐, 이레나이우스, 크리소스톰,어거스틴 등은...
사도 이후 시대의 사람들입니다. 즉 그들의 말은 '사도적 권위'를 지니고 있지 못합니다. 단지 권장일 뿐입니다.

게다가 그들의 가르침은 "내면 좋지만, 안내도 상관없다는 것이다."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가 "안 내도 상관이 없다"고 그리 가르치던가요. 요즘 십일조 안 내면 정상적인 교회생활 참여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아울러 위키백과도 마침 제대로 잘 설명을 했군요. "신약성서에는 십일조를 드리라는 말은 없다. 구약의 율법이므로 굳이 지킬 필요가 없다고 가르쳤다." 라고 썼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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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네 (118.44.221.161)
2012-03-03 23:17:01
"신약 초기교회에 어떤 종류의 십일조도 없었다"는 것이 절대 다수의 신학자들이 동의하는 사항이라고 우기셔서 제시한 글입니다. 초대교회 때도 십일조를 드렸던 것이죠. 단지 강요에 의한 십일조가 아닌 자원하는 십일조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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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2-03-04 07:54:35
제가 말한 신약 초기교회란 '사도들의 초대교회'를 의미합니다~~
용어의 혼선이 있었군요. 사도들의 초대교회에는 분명히 십일조가 없었습니다.

그 후 일부 교부들이 <선택적 십일조>를 간간히 주장하였으나, 그 역시 지금 한국교회가 강요하는 <의무적 십일조>와는 크게 다릅니다.

그리고 일부 교부들이 주장하던 십일조가 더욱 변질하여 의무화한 것이 바로 중세교회 십일조입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현재 이런 중세교회식 십일조를 부활시켜 답습하는 것입니다.

하여튼 좋습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가 과연 <자원하는 십일조>를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말로는 자원하는 십일조를 걷는다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신자의 당연한 의무처럼 강요하며 십일조를 못하면 교회 내에서 큰 차별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말과 행동이 크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는 매우 가증스러운 일입니다.

하여튼 어떤 종류의 십일조이든 좋습니다. 무슨 방법으로든 십일조를 걷었으면 본래 십일조의 정신에 따라 가난한 이들을 위해 써야지 왜 그들의 것을 가로채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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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네 (118.44.221.161)
2012-03-03 22:46:24
초기 초대교회의 기록들이 지금 남아있나요? 지금 남아 있는 초대교회 기록들은 어떻게 남아있게 된 것인가요? 오리겐, 이레나이우스, 크리소스톰,어거스틴 등은 사도 이후 시대의 사람들이라서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구요? 그럼 이들은 자기들의 생각과 주장으로 이렇게 말했을까? 아니죠.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랐고, 이 가르침대로 사도들도 성도들에게 가르쳤으며, 이 가르침을 교부들인 이들도 가르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가르침은 "내면 좋지만, 안내도 상관없다"는 것을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 더 믿음으로 드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지요. 목사님 교회는 십일조를 안 내도 좋다고 가르치나보죠? 내면 좋고(좋은 것은 또 뭐고) 안 내면 말고.....이렇게 가르치면 성도들이 그 말을 옳다고 박수치나요? 특히 목사님 말씀처럼 초대교회는 구약의 율법적 신앙에 철저했던 성도들이었는데, 이렇게 말하면 그들이 박수치며 환호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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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네 (118.44.221.161)
2012-03-04 06:19:41
중요한 것은 헌금을 드리는 성도들의 신앙과 목적입니다. 헌금을 드림으로 인하여 더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열망하고, 하나님의 목적이 세상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바라는 믿음 말이죠. 이러한 좋은 모습은 보지 않고 "십일조를 떼어먹는 교회"라고 성도들을 현혹하여 교회를 비난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가르치는 사람이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잘못하는 것은 있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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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65.49.14.51)
2012-03-04 13:54:21
웃기네 목사님~ 이건 어떻게 보시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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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네 (118.44.221.161)
2012-03-04 23:23:25
사도들의 1세기 초대교회, 속사도 교회, 고대 교회 2세기... 십일조가 없었다? 그것은 기록으로 남아있는 십일조에 대한 주장일 뿐이겠지요. 일단 이 문제는 뒤로하고, 현재 한국 십일조는 중세 부패한 로마카톨릭의 악랄한 십일조를 답습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그렇게 볼 수도 있죠? 그러나 종교개혁이 무엇때문에 일어났습니까? 중세교회의 부패한 행태 때문이 아니었나요. 그렇기에 지금의 교회가 배운 것은 중세의 교회가 아닌 성경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가 요시아가 율법책을 발견하고 그것을 준행치 못한 것을 회개하고 옷을 찢으며 통곡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르게 믿음 생활 하고자 십일조 헌금을 행하는 것이지요. 또한 십일조가 당시에 농산물로 드렸기에 드릴 필요가 없다는 말은 정말 신앙생활 하려는 사람들의 생각인지를 되묻고 싶습니다. 십일조의 의미를 정말 모르고 그러한 말을 하는 것인지요? 시대가 달라지면 헌금을 드리는 방법도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시기 때문이죠? 구약시대에 양과 소, 곡식을 드렸다고 지금도 그렇게 드려야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추수감사, 맥추감사를 드리며 농사를 짓지 않는다고 드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그렇게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바르게 알고 믿는 성도라면, 그 시대에 맞게, 그가 처한 상황에 맞게 하나님께 더 많은 헌금을 드리며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의 바른 신앙생활이지요. 마지막으로 왜 그렇게 십일조를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나누어주라고 하십니까? 물론 구약성경에 가난한 자들을 위해 십일조를 사용하라고 하셨지만, 더 큰 비중은 성전을 섬기는 레위인들의 몫이 십일조인 것을 모르시지는 않겠죠? 그렇다면 이것을 모른 척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십일조를 그렇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알려지는 것이 두려운 것이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성도들이 어떻게 하면 지금 여기에서 바른 헌금생활하며, 그 헌금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아름다운 사역을 행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 문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교회를 십일조 떼어먹는 파렴치한 곳으로 매도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교회의 지도자들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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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65.49.14.11)
2012-03-05 02:14:26
그래서 신약에 십일조가 시행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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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네 (118.44.221.161)
2012-03-05 08:19:16
십일조에 대해서 정말 제대로 알고 있기나 한 것인가요? 도대체 신앙생활은 왜 하시나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의 소산과 가축의 십일조를 드려 기업이 없는 레위인들의 기업이 되게 하셨습니다.(민18:21-24)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의 소산으로는 곡식과 과실의 십분의 일을 드렸으며, 가축은 막대기 아래로 통과시키면서 열 번째 통과하는 것마다 십일조로 구별하여 드렸습니다.(레27:30-32) 그리고 레위인들은 자신들이 받은 것 가운데서 다시 십일조를 드려 제사장들에게 돌렸습니다.(민18:26-29)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소득의 십일조만을 드리게 하지 않았습니다. 신14:22-27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레위인들에게 십일조로 드리고 남은 십 분의 구의 십일조를 성소로 가져 가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때 성소가 너무 멀면 현금으로 가지고 가서 성소 부근에서 잔치예물을 살 수 있었습니다. 이 잔치에는 가족과 친지는 물론 종들과 성읍에 거하는 레위인들이 참석하였는데, 이것을 “축제의 십일조”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신14:28-29, 26:12절을 보면, 고아들과 과부를 돕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 매 3년 십분의 일을 바치게 했는데, 이것이 바로 구제를 위한 “자비의 십일조”였습니다.
특히 출애굽 이후 시대의 십일조는 하나님의 성전을 섬기는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받아야 하는 정당한 분깃으로 드려져야 한다는 명령이 수반되어 있습니다. 이는 십일조가 더 이상 감사하는 심정에서 자발적으로 드려지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레위지파를 위해 배당하셨기 때문에 반드시 드려져야 할 것으로 정해지게 되었습니다.
왕정시대 중에서는 히스기야 왕이 통치하던 때에 아주 모범적으로 십일조가 드려진 예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왕정시대의 대부분의 기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적으로 타락하여 우상을 숭배했고, 하나님께 십일조 드리는 일에 소홀히 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여 나라는 피폐해지고, 백성들은 말할 수 없는 곤경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깨달은 히스기야는 대대적인 우상척결 운동과 신앙부흥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큰 복을 주셨고, 백성들은 십일조를 넘치게 드려 쌓을 곳이 없으므로 따로 방을 마련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백성들이 십일조를 드리고,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더욱 온전한 마음으로 성소의 직무를 수행하자 하나님께서는 히스기야 시대를 형통케 하셨습니다.(대하31장)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하나님을 반역하고 우상숭배를 하여 이스라엘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그 후 포로생활 70년 만에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사 이스라엘 백성들을 본토로 귀환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본토에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재건하고 성전에서 일할 레위인들을 소집했습니다. 그래서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이 모여 성전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지 않음으로 인하여 레위인들은 생활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결국은 성전을 떠나는 등, 히스기야 시대와는 대조적인 현상이 발생하였습니다.(느13:10)
잘못된 헌금의 모습만 비난하지 말고, 바르게 헌금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에 대해서 말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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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65.49.14.88)
2012-03-05 16:19:11
웃기네 목사님.. 신약에십일조가 계승됐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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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네 (118.44.221.161)
2012-03-05 17:59:34
구약의 율법과 제사가 계승된 것이 아니라, 구약의 율법과 제사의 정신(하나님의 뜻)이 계승된 것이지요. 그래서 지금 교회가 구약을 성경으로 믿고있지 않습니까? 님은 십일조를 땅의 소산물로만 드렸다고 주장한 근거도 구약아닙니까? 논리를 분명히 하셔야지요. 입맛에 맞는대로 가져다 붙이고 비난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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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65.49.14.58)
2012-03-05 18:35:43
그래서 지금 십일조가 계승 됐습니까 안됐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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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네 (121.156.177.230)
2012-03-06 17:13:14
십일조가 성도의 자유를 옭아매는 잘못된 헌금의 모습이라구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유를 옭아매려고 십일조를 하라고 하신건가요? 십일조를 통해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능력을 믿으며 살라는 것이었지요. 교회가 십의 일을 십일조로 내라고 말할 하등의 성경근거가 없다구요? 님은 지금까지 위에서 말한 내용은 아예 읽지도 않고, 님이 말하고 싶은 것만 주장하는군요. 성경적인 근거는 위에 충분히 제시한 줄로 압니다. 성도에게 맡겨놓으라구요? 인간은 육적본능이 있습니다. 님처럼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기쁨으로 드리고자 하지 않고 안 낼 구실만 찾지요. 그래서 십일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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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21.129.18.196)
2012-03-06 21:24:37
만몬주의자....누구일까.....하느님위에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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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네 (118.44.221.161)
2012-03-07 20:59:21
또 웃기는 소리, 엉똥한 소리....결국 ㄱ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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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2
익명 (118.44.221.161)
2012-03-06 08:5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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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웃기네 (118.44.221.161)
2012-03-06 08:51:52
당신은 성경을 바라보는 이해 자체가 잘못된 사람입니다. 지금까지 당신이 리플 단 것을 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주관적이고, 악의적인 단신의 판단만이 있을 뿐입니다. 구약을 성경으로 아예 받아드리지도 않고....당신의 판단으로 정죄하는 것뿐.....왜 나쁜 모습들만 봅니까? 지금까지 잘못행해왔다면 바르게 행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십일조? 사도들, 초기기독교회에서 없었다구요. 그래서 계승이 안 됐다구요. 하나님은 남은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어오셨듯이 남은 자들을 통해서 계속하게 하셨고, 요시야가 깨닫고 통곡하여 바르게 말씀대로 행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바른 신앙의 열망으로, 더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며 사역감당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야 할 사람들에게 비난뿐인 당신은 진정한 기독교인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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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65.49.14.55)
2012-03-06 09:22:57
에혀~ 말문이 막히면 "너는 진정한 기독교인이 아니야"라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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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네 (121.156.177.230)
2012-03-06 13:04:18
말문이 막혀서가 아니라 안타까워서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을 왜 하는 것이겠습니까? 비난거리만 찾다가 결국 얻는 것은 무엇인가요. 신앙의 진정한 기쁨을 찾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님은 정말 신앙생활, 헌금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활을 하고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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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65.49.14.76)
2012-03-06 19:21:47
그래서 십일조를 지금도 내야하는지 근거를말해보라니까 딴소리는..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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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65.49.14.50)
2012-03-09 04:46:57
누가 말씀하시었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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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65.49.14.50)
2012-03-09 04:40:31
삯군?? 소명은 개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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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네 (118.44.221.161)
2012-03-07 07:03:24
또 근거없다고 우기네. 이해력이 떨어지는 것인지, 자꾸 주장하여 쇄뇌시키는 것인지.....의분? 비난할 꺼리만 찾아가 헐떡거리는 무리들에게 의분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죠. 집요함, 깔아뭉개기, 광기....뭐 이런 말이 어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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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65.49.14.50)
2012-03-09 04:42:14
누가 말씀하시었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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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65.49.14.59)
2012-03-07 08:58:57
이제야 너님의 수준을 보여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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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네 (118.44.221.161)
2012-03-07 21:06:01
아마도 이런게 작전? 신성남씨는 작극적인 글로 불지르고....나중에는 무조건 우겨대는 너님같은 사람들이 나서서 본질을 흐리고....후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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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네 (118.44.221.161)
2012-03-07 21:03:27
비난거리만 쫓아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너님은 수준이 어떻고...말도 안 되는 어거지나 풀어대고...믿고자 함이 아니라, 말장난 하며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으로 쾌락을 누리는 너님...다른 글들을 보니까 장난 아니데...
그 수준을 가지고 무슨 신앙생활 한다고...정말 신앙생활 하는 것 맞소?
아마도 교회도 근거가 없어서 안 나간다고 하시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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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2-03-04 08:06:28
그런 논리라면 중세교회도 사도들과 교부들의 가르침을 이었으니 바른 교회이겠군요~~
즉 예수님->사도->교부->교황으로 이어지는 중세교회가 크게 변질하여 오류 투성이의 교회가 된 것을 어찌 설명하려 하시는지요.

하여튼 '웃기네' 님께서 좋은 뜻으로 십일조를 열심히 하시는 것을 막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얼마든지 하십시요. 다만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이를 바르게 사용하도록 권면해주시기 바랍니다. 주신 의견에 깊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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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네 (118.44.221.161)
2012-03-04 23:25:22
훗~ 말꼬리 잡고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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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타 (118.176.113.77)
2012-07-08 19:25:33
많이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명쾌한 정답이 없는것 같읍니다.십일조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교회에 십일조를 바치셨나요? 또한 열두제자가 십일조를 바쳤는가요? 아니면 사도바울도 ? 그리고 종교개혁을 한 마틴루터가 십일조 생활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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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11.117.119.172)
2012-03-03 06: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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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2-03-03 07:18:46
안타까운 일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일부 교회들이 마치 마피아처럼 '불의한 카르텔'을 형성해가고 있는 것은 틀림이 없는 사실입니다.
신자들이 더욱 깨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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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평일 (72.196.235.211)
2012-03-02 22:57:45
구구절절절 옳은 지적입니다. 비단 한국교회뿐 아니라
세계의 대부분교회, 그리고 현대종교가 겪고있는 비극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며칠전에 60이 넘은 나이에 목사안수를 받고 목회의
길을 시작하는 친구가 이곳을 다녀갔습니다.
그는 한때, 미서부 엘에이에서 사업가로써 경제적으로
아주 잘나갔던 고등학교 동기동창생입니다.

몇달전에는 평생을 교회에 나가며 관련분야에서 열성적으로
봉사하던 벗이, 당분간 교회와의 모든 관계를 정리하고
쉬고 싶다는 이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신선생님께서 지적하신 교회의 실상을 직접 체험하며
실망을 많이하신 듯 합니다.

한사람은 뒤늦은 나이에 목회를 시작하고, 한사람은
비슷한 나이에 교회를 떠나고, 참 모순처럼 생각됩니다.

제가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를 나가며 보고 느꼈던 점들을
몇가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토론에 다소라도 참고가 됐으면
합니다.

첫째 대부분 교인들이 "크고 많은 것이 좋다 "는
숫자에 대한 우상을 섦기고 있습니다.
그점에 대해서는 저도 예외가 아닙니다.
교회에 나가는 지인들을 만날 때마다
우선 "어느교회에 나가느냐 ? " 물은 다음에
"그교회 신도들 숫자가 몇명이나 되느냐" 하고 꼭 묻거든요.
저도 신도들 숫자로 교회와 목회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습관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지요.

두번째는 교회건물을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으로
착각하고 있는 점입니다.
대부분 신도들은 교회건물을 크고 아름답게 짓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가시적 사랑의 표현이라고 믿고있습니다.
이는 일부 목사들 탓만은 아닙니다.
제가 가깝게 지내고 있는 목사친구 두분이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두분은 큰교회건축을 적극적으로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일부 열성교인들의 성화와 비난에 못이겨
결국 교회를 확장했지요.그후 교회가 오랫동안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목사는 그책임을 물는 신도들로부터 무수한 돌팔매질을
받고 있고요.
.
세번째는 봉사와 교회제직을 동일시 하는 점입니다.
미국교포사회에서는 교회장로가 되는 것을 가장 큰 출세중
하나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장로직은 대부분
교회에 나가는 신도들이 탐내고 있는 명예직이지요.
그래서 장로선출때가 되면 교회가 아주 소란해 집니다.
그후유증으로 교회가 분열되었다는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듣어 왔습니다.
또 신앙에 열성적인 분들 중에서 자기가 직접 목사가 되어서
봉사하겠다는 분들의 수가 의외로 많습니다.
그 수요때문에 일정한 자격을 갖추지 않은 신학교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고 있지요..

네번째는 교회에 대한 불평을 일삼는 사람들입니다. 이점은
신선생님께서 오해가 없었으면 합니다. 저는 불평과 건설적 비판을
식별할 줄 아는 최소한의 지혜는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저가 가깝게 지냈던 교회에 아주 열성적인 몇분들의 예를
들겠습니다.
그분들은 만날 때마다 출석하고 있는 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불평을 늘어 놓습니다. 그중 공감이 가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문제는 만날 때마다 그분들이 다른 교회에 나가고 있는 데 있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아마도 그동안 수십차례이상 교회를 바꾸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분들은 이상적인 교회를 찾아 헤매이고 있습니다.
항상 현재진행형이지요.

저는 그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근본적인 문제는
그분들 자신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세상에 그분들이 찾고 있는 이상적인 교회가 과거에
존재해 본적도, 현재에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예수체포소식을 듣자마자
열두제자들도 모두들 그의 곁을 떠나
도망가지 않았습니까?
그것이 신앙입니다.

이상적인 교회는 자기자신 속에 있습니다.
타인이나 교회에서 찾으면 실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두서없이 평소생각을 적어 보았습니다.
저의 무지를 너무 꾸짖지 마소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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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121.168.246.42)
2012-03-11 07:27:10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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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34
펜입니다 (125.130.186.103)
2012-03-05 10:05:03
언제나 선생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좋은 기사에 좋은 리플 참으로 공감을 가집니다
한국교회가 다시 복음의 본질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음의 기대를 저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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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31
만년왕국 (24.173.66.129)
2012-03-03 22:32:48
성경에는 천년왕국이 있는데/한국에는 만년왕국이 있답디다.
2천억대 이상 자산을 가지고 세습하면서 계속 퍼쓰는 교회(호위병은 태촌파)/조용기목사님 1뜽!/김홍도/선도/국도깡독님 2등!(홍도가 선도 보다 많
음)/충현재단(김창인목사님 아들) 2천5백억 3등!/소망있다 소망교회 강남+분당성전 2천억 4등!/호문감독 뛰어라 2천억 육빡 5등!

한가구 월3백만원 쓴다면/1년=3천만원/100년=30억/만년은 3천억.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달도록/물뱀떼가 지나간 자리에는 적막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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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 떼먹는 교회 잡아야 (24.173.66.145)
2012-03-08 02:25:54
당당뉴스 암만봐야/그타령 노타령!
3월15일/한.미FTA 발효/미국 국세청 싸이트에 신고하면 될일.
1등 조용기목사/가족은 미국 켈리포니아주에 주로 많고,
2등 김홍도목사네도 미국 켈리포니아에 많고
3등 김성관네도 미국 켈리포니아에 많고
4등 곽선희님네는 뉴저지/뉴욕쪽에서 하시면 될꺼고
5등 이호문님은 여기 저기 ㄸ인데/켈리포니아에 하면 된답디다.
-회수 보상금은 미국 27%/한국또 세금 떼고 27% 준답디다.

감리교 목사님들 "바보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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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바람 (210.2.47.57)
2012-03-03 11:13:11
이상적인교회
공감이 가는 좋은 말씀입니다.
예수님도 타파하지 못한 종교의 폐해를 몇 사람들의 글로 이룬다는 것은 넘 먼 예기이고 실천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몇 사람이 이 글을 읽고 실천할 것이며 대형교회 목사들이 미동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옳은 지적이긴하나 큰 틀에서의 실천을 어떻게 이루어 나가느냐 하는 문제를 심도 있게 고민할 사안이라고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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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2-03-03 07:15:16
"이상적인 교회는 자기자신 속에 있습니다..."
박 선생님의 글은 언제나 깊은 공감을 주시는군요.

지적해주신 대로 현실에서 '이상적인 교회'를 이루기는 정말 어렵겠지요. 초대교회조차 문제가 많았으니까요. 다만 우리는 그저 바른 교회를 위한 '최선의 노력'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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