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의 뿌리를 찾아서 

▲ 등촌 이계선

“세계는 바야흐로 이민시대입니다. 대한민국도 이미 2백만 명의 외국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민천국 미국에는 400년 전부터 170여개 세계민족들이 모여 초강대국 USA를 건설했지요. 그런데 뒤늦게 미국이민을 시작한 한인들이 선두대열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한인 이민의 성공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민의 땅에 씨앗을 제대로 뿌렸기 때문이지요. 스페인은 황금을 노리고 남미로 대거이민 왔습니다. 초창기는 미국 못지않은 호황이었지만, 황금을 다 캐내어 버리고 난 황무지처럼 남미는 지금 3류 국가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미국은 유럽의 청교도들이 몰려와 신앙의 씨앗을 뿌리고 이민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성경대로 세계적인 복을 받고 있어요. 한국의 이민은 특이합니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자 남부여대(男負女戴)하고 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이민 길을 떠났습니다.

충청도 부자 만석꾼도 재산을 다 팔아 독립운동 하러 북간도로 떠났을 정도였으니까요. 엘리트들은 더 멀리 미국으로 이민하여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한국이민은 독립운동을 위한 이민이었습니다. 세계 이민사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특이한 경우입니다” 

▲ 박용만 지휘하의 대한인 국민회 하와이 대조선 군단 사열. 1914년  ⓒ하와이의 한인들/로베타장.웨인 페터슨/한국 눈빛출판사

이민의 뿌리를 찾아 이민 2세들 에게 교육적인 자료들을  펼쳐 보였다. 현 이민세대는 자녀교육과 아메리칸드림을 위해서 이민 왔다. 그러나 우리 선배들의 이민살 이는 오직 조국의 독립투쟁이었다. 돈을 벌어도 조국독립, 공부를 해도 대한독립이었다. 참으로 위대한 우리의 선배들이다.

토론토의 시인 석천(石泉) 이상묵이 쓴 “박용만과 그의 시대”를 보면 소설처럼 눈물겹다. 이승만 안창호 서재필 박용만은 미주 독립운동의 4인방이었다. 덴버 네브라스카 하와이에 한인군사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한다. 샌프란시스코에는 비행학교를 세워 일본본토폭격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 당시 독립운동이 활성화 되려면 수많은 돈이 필요했다. 다행히 그 돈은 거의가 하와이 한인 교포들 주머니에서 나왔다.

하와이사탕수수밭에서 노예처럼 일하는 한인노동자들의 한 달 임금은 겨우 16불이었다. 그들은 밀가루 죽으로 배를 채우면서 돈을 모아 상해로, 미주로 독립자금을 보냈다. 조선에서는 일본의 감시가 심해 돈이 나올 데가 없었다. 오직 미주에서 보내는 독립자금이 유일한 독립자금이었다. 해방될 때까지 그들이 내놓은 후원금은 무려300만 달러나 됐다. 당시 달러가치가 지금의 200배라면 지금 돈으로 6억불인 셈이다. 상상을 초월한 액수다.

▲ 한인들이 하와이에 도착했을 당시 사탕수수 밭의 작업 현장의 모습 ⓒ하와이의 한인들/로베타장.웨인 페터슨/한국 눈빛출판사

▲ 김종림이 1920년 캘리포니아에 세운 한인비행학교 ⓒ하와이의 한인들/로베타장.웨인 페터슨/한국 눈빛출판사

▲ 송재 서재필

송재 서재필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갑신정변에 실패한 송재는 미국으로 망명하여 한국인 1호 미국시민권자, 동양인 1호 의학박사가 된다. 미국의 명문가 규수와 결혼하여 부와 명예를 보장받는다.

그러나 송재는 부귀영화를 다 내 던지고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애굽 황실에서 부귀영화를 버리고 출애굽의 깃발을 들고 광야로 달려간 모세처럼, 송재는 술수를 모르는 순수한 애국자였다. 그래서 조국이 해방되었어도 배재학당의 제자인 이승만에게 밀려 필라델피아로 돌아와 쓸쓸하게 말년을 보내다 묻혔다.

송재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이민선배다. 뉴욕의 이웃인 필라델피아에서 살면서 그의 활동무대는 뉴욕을 포함했다. 또한 송재는 모든 미주한인 이민자들의 대선배로서 최초 한국인 미국시민권자요, 최초 동양인 미국의사였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우리의 선진인가.

그런데 뉴욕한인동포들은 송재를 좀 서운하게 대접했다. 우남이승만이나 도산안창호는 그들의 업적을 기리는 사업회가 활발하다. 그러나 정작 뉴욕에서 활동해온 송재 서재필은 거의 잊힌 상태다. 정촌 서황석이 필마단기로 뛰어다닌 끝에 송재 ‘서재필 선양회’를 만들었다.

4월 25일 밤 7시 뉴욕후러싱 대동연희장에서 송재 서재필기념교육관건립 모금파티가 열린다. 필라델피아에는 서재필센터와 서재필기념관이 있다. 서재필기념관 옆에 서재필기념교육관을 세우면 ‘서재필 랜드’가 새롭게 탄생한다. 총공사비 300만 불 중에 한국정부에서 150만 불 유한양행에서 30만 불을 약속했다. 어렵사리 30만 불을 마련해낸 필라델피아지역 맏형격인 뉴욕한인사회에 25만 불 지원을 요청한 것이다.

“요즘 이민살 이가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150불씩 내고 참석해줄 동포들이 얼마나 될까요?”누군가가 걱정하며 한 마디 했다.

“그래도 이민선배들의 조국사랑을 생각하면 어려울 것도 없지요. 우리들은 뉴욕한인회가 내달라는 일 년 회비 10불도 못 내는데, 하와이 동포들의 애국정신을 생각하면 4월 25일 150불 들고 대동연회장으로 못 갈것도 없지 않겠어요?"

 “아들딸들아! 미국의 이민뿌리가 청교도신앙이요, 히스페니시의 이민뿌리는 황금노다지였다면, 우리한국인의 이민뿌리는 조국독립운동이었단다. 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숭고한 정신인가, 너희가 100불내고 양키스타디움에 가는 대신, 서재필교육관 모금파티에 가서 이민의 뿌리를 확인해 보는 게 어떻겠니?” 

모두가  다 옳은 말이다. 바라기는 이번 기회에 이민 1.5세, 이민 2세들을 앞세우고 와주었으면 좋겠다. 지난 날 나라를 빼앗긴 치욕 앞에서 끝까지 굴하지 않고 이 땅에서 우리의 선진들은 광복과 부국의 씨앗을 뿌렸다. 지난 날 애국투사들의 살신성인정신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지금 우리는 성실과 근면의 옥토 땅에서 이민 2세들의 눈부신 결실을 거두고 있지 않은가.

험악한 비바람과 폭풍을 막아준 위대한 애국투사들의 발자취를 잊어서도, 모른 체해서도 안 되기에 말이다. 우리는 지금 누군가의 피와 땀과 헌신의 옥토 밭에서 풍성한 열매로 부와 평안을 누리고 있다. 이 땅에서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한국의 피가 흐르는 모든 이민후세들을 향해 만세 삼창을 보낸다.

"대한민국 만세!! , 애국투사 만세!!, 이민 세대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