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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년 03월 14일 (월) 22:27:35
최종편집 : 2011년 03월 15일 (화) 15:22:08 [조회수 : 41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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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을 괴롭히는 민족은?
고향의 어린 시절 친척집에 제사지내러 갈 때 마다 아버지는 꼭 나를 데리고 다녔다. 제사시간이 밤 12시인데다가 30분 동안 산길을 걸어야 하는 야행(夜行)이라 여간 무서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형을 제쳐두고 어린 나를 호위무사로 차출한 것이다.
우리부자는 보름달빛이 하얗게 깔려있는 산중(山中)을 걷고 있었다. 초등학교 일학년인 나는 밤길이 무서웠다. 달빛사이로 머리를 하얗게 풀어 제친 귀신이 달려들지는 않을까, 그리고 숲속에서 호랑이나 늑대가 튀어 나올까봐 겁이 났다. 잔득 겁먹은 나를 향해 아버지가 침묵을 깼다.
“얘야,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뭔지 아니?”
“그야 물론 귀신이나 호랑이지요”
“아니다. 귀신과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이란다.
아버지 말씀을 듣자 무서움이 조금 줄어들었다. 그건 맞는 말씀이었다. 아버지 말씀 이후 지금까지 난 귀신과 호랑이에게 해를 당한 적이 없으나 그 대신 많은 사람들에게 시달림을 당한 적이 있다.
“한국인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살면서 가장 조심해야할 두려운 종족이 누구인가요?”
“잔인하기로 소문난 히스페니이지요”
“아니요. 히스 페니는 양반입니다. 정말 무서운 건 앞뒤 안 가리는 흑인들입니다”
노인 아파트를 찾아 Far Rockaway(돌섬)에 와보니 젊은이들도 같이 사는 시영아파트였다. 둘러보니 주위가 온통 새까맣게 보였다. 90%가 흑인들이기 때문이다. 겁이 덜컥 났다. 길을 걸어도 사람을 만나도 조심 또 조심했다. 어느 날 길을 건너다가 피부가 하얀 동양인을 만났다. 반가워 손을 잡고 보니 놀랍게도 한국인 P씨였다. 더 놀라운 건 P씨는 같은 아파트 그것도 바로 내 옆 호실에 살고 있었다.
‘세상에 이럴수가!’
지옥에서 부처님을 만나도 이토록 반가울까? P씨는 나와 나이도 비슷하고 영어도 잘하는 지성인이다. 우리는 고향친구를 만난 듯 쉽게 가까워졌다. 내가 사는 돌섬 아파트는 세계에서 제일 긴 보드워크가 있는 천하절경인데 더럽고 불안 한 게 흠이다. 나는 흑인들과 친하기 위해서 좀 요란을 피우는 편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악수하고 흔들어 대면서 수다를 떤다. 자꾸만 악수를 하다 보니 잡은 손을 통하여 정이 가는 걸 느낀다. 단순한 악수와 포옹이 아니라 사랑을 나누는 즐거움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대로 휴지나 오물을 줍는다. 내가 사는 3층 복도가 더러우면 걸레질을 한다. 처음에는 위선으로 보던 검은 눈동자들이 지금은 사랑과 감사의 눈빛으로 봐준다. 많이 친해졌다.
그런데 그걸 싫어하는 한사람이 있었다. 놀랍게도 한인 P씨였다. 주말에만 부인이 오는 관계로 P씨는 혼자 있을 때 술을 즐기는 편이다. 술에 취하면 이상한 행동이 나온다. 잠을 자지 못해서 그런지 공격적으로 변한다. 그 공격성으로 유독 우리부부를 공격했다. 심지어 폭력으로 덤벼들었다.
목사라는 걸 알았기에 만만했던지, 오른 뺨 왼뺨을 돌려댔지만 소용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이종격투기를 흉내 내어 목조르기와 팔 꺾기로 그를 제어해버렸다. 그랬더니 아내만 공격하는 것이었다. 수십 차례 경찰을 불러도 소용없었다. 피해자가 다치기 전에는 경찰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아파트 거실로 쳐들어 오 길래 라운딩으로 때려눕힌 후 경찰에 인도했더니 한 동안 잠잠했다. 힘으로는 우리를 공격할 수가 없는걸 아는 그는 우리 농장으로 목표를 바꿨다. 나는 두 개의 조각 농장을 갖고 있다. 농작물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는 농장은 화원보다도 아름다웠다. 그는 심야에 A농장을 뭉개버렸다. 보름 후에는 새벽에 B농장에 들어와 쑥대밭을 만들었다. 아파트사람들이 몰려들어 욕설과 규탄을 하는 중에 난 그를 붙잡아 경찰에 넘겼다. 하루 동안 병원에서 정신치료를 받고 나오더니 좀 나아진 것 같았다. 한동안 잠잠해졌다.
지난해 11월 어느 주일 아침이었다. 밤새도록 주사(酒邪)를 벌려 우리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마침 부인이 왔기에 얘기를 하고 싶었다. 아침에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니 쇠줄로 문을 반쯤만 열어주었다.
“부인도 오셨으니 들어가서 얘기 좀 나눴으면 합니다.”
안으로 들어갔다 나 오 길래 문을 열어주려는 줄 알고 다가갔다. 순간 내아래 오른손바닥이 뜨끔하더니 피가 솟구쳐 올랐다. 회칼을 들고 나와 열린 쇠줄 문틈으로 손을 내밀어 나를 찌른 것이다. 순식간에 복도에 피가 낭자했다. 난 무뎌서 그런지 놀라움도 두려움도 아무 느낌도 없었다. 그런 걸 머릿속이 하얗게 됐다고 하는 것일까? 순간 얼굴이나 배를 찔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쓴 웃음이 나왔을 뿐이다. 사람들이 몰려오고 경찰차가 달려왔다. 그는 체포당하여 경찰서로 끌려갔고 나는 병원에 실려가 14바늘을 꿰맸다.
아픔이 있어야 해결되는가 보다. 법원으로부터 접근금지령이 발부되어 나를 보호해줬다. 난 그를 미워할 이유가 없었다. 우리 밭을 두 번이나 폐허로 만들었어도 문제 삼지 않았다. 살인미수로 증언할 수 있겠지만 경찰에 용서를 구했다. P씨는 얼마 후에 나왔다. 많이 달라져 있었다.
그가 나에게 용서를 빌었다. 나는 그를 꼭 껴안으면서 사랑을 호소했다. 법원의 접근금지령이 있어서 우리는 만나기가 어색하지만, 그래도 마주치면 포옹인사를 한다. 엊그제 찾아온 그는 아내에게 정중하게 사과했다. “그 동안 제가 아주머니에게 못된 짓을 많이 했습니다.” P씨가 많이 허약해보였다. 오늘 아침 그가 엠블런스에 실려 병원에 갔다고 한다. 가슴이 아프다. 내 이웃으로 살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기도 할 뿐이다.
미국에서 살다보면 가장 우리를 괴롭히는 민족은 히스페니나 흑인, 그리고 백인도 아닌 한인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서로 속이는 것도, 잘나가는 옆자리에 가게를 차리는 것도, 한인들이다. 이렇게 먼 타국에서도 서로 경쟁하며 열심히 산 덕분에 한인들은 대부분 중상층을 이루며 살고 있다.
지난 날 나를 괴롭힌 P형제지만, 그래도 사랑하며 함께 살아야 할 내 동포, 내 형제이기에 며칠 지나면 병문안을 가보아야겠다. 폭력을 휘두르는 그의 내면속의 분노를 몽땅 안아주며 오랜만에 심방 나들이를 계획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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