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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섬과 새 섬
“목사님의 돌섬통신을 읽노라면 새 섬 갈매기가 돌섬으로 이사 온 느낌입니다. 전에는 새 섬 이야기를 많이 하셨으니 까요. 목사님에게 돌섬과 새 섬은 어떤 관계인가요?”
벨트파크웨이를 타고 부르크린쪽으로 달려가 보라. 크로스베이 사우스로 나가서 5분쯤 운전하면 오른쪽으로 Wild life Refuge란 싸인 이 보인다. 대서양을 건너 뉴욕으로 날라 오던 새들이 날개를 내리고 쉬어가는 새들의 쉼터다.
케네디 공항 서쪽에 있는 이 섬을 나는 새 섬이라 부른다. 섬 가운데 민물호수가 있고 섬 둘레로 개펄이 널려있다. 개펄에서 망둥이 조개 홍합으로 점심을 끝낸 수천마리가 넘는 고니 백조 청둥오리 갈매기들이 호수로 넘어와 장관을 연출한다. 호수를 만리장성으로 두르고 있는 하얀 갈대도 새 섬의 명물이다.
봄여름 가을, 푸르던 갈대가 흰 눈을 맞으며 겨울을 지내고 나면 하얀 갈대가 되어 봄을 기다린다. 그래서 하얀 갈대다. 호수를 돌고 있는 한 시간짜리 황토 길을 걷고 있으면 해당화 종달이가 반긴다. 고향 길을 걷는 기분이다. 노랗게 꽃핀 선인장사이로 거북이가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이게 되서야 ‘여기가 이국땅이로구나!’하고 퍼뜩 정신이 들곤 한다.
관리소 건물 말고 새 섬은 모든 것이 자연그대로이다. 고향이 그리울 때면 난 즐겨 새 섬을 찾곤 했다. 조개껍질이 하얗게 깔려있는 새 섬 길을 걷고 있으면 난 그만 고향의 거리를 걷고 있는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새 섬은 내 문학의 산실이다. 갈대숲을 거닐면서 애정소설 “하얀 갈대”를 썼다. 칼럼 집 ‘멀고먼 알라바마’에 ‘새들의 공원’이라는 제목으로 새 섬 이야기를 실었다. 새 섬은 독자들과 즐겨 만나는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다. 친구가 오면 새 섬으로 안내한다. 새 섬을 걷고 있노라면 우리는 백조가 되기도 하고 갈매기가 되기도 하여 사랑과 우정의 나래를 편다. 새 섬 남쪽에 동서로 흐르는 섬이 보인다. 물위에 떠다니는 아파트 섬처럼 아름답다. 그 섬을 보고 있으면 정종현의 2행시가 생각난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은퇴하면 저 섬에서 살고 싶다. 그러면 자주 새 섬에 올수 있겠지!’
흙의 아들로 태어난 나는 농촌이 싫었다. 농사일을 하다가 농촌을 탈출하여 서울로 올라가 야간고등학교를 다녔다. 서울로 부산으로 전전하다 세계의 수도 뉴욕까지 왔다. 인류문명의 첨단이라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올라가 뉴욕을 바라보니 고향이 그리웠다. 고향에 가고 싶다. 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다. 난 성지여행도 유럽관광도 별로다. 내가 제일가고 싶은 관광명소는 고향이다.
그런데 고향은 그립다고 가는 곳이 아니다. 금의환향이 아니면 고향을 찾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고향을 찾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 대신 밤마다 꿈속에서 고향을 찾아간다. 내 맘을 아는지 의사 시인 산우(山雨)가 제안했다.
“등촌, 내가 뉴욕 근처 산자락에 산우문학관을 지을 테니 우리 같이 삽시다. 낮에는 텃밭을 일구며 밤에는 달빛아래서 풍류를 즐기는 거예요. 우리들의 고향시골을 만드는 거지요.”
그런데 산우가 갑자기 영구귀국(永久歸國)을 결심하는 바람에 난 노인아파트를 신청해야 했다. 세상만사는 돌고 도는 회전목마인가? 그 많은 노인 아파트중에 내가 걸려든 곳이 화라커웨이(Far Rockaway)였으니 말이다.
와보니 건너편에 새 섬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새 섬에서 바라보던 바로 그 섬으로 온 것이다. 와! 내 집 처마에서 파랑새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나는 그 즉시 Far Rockaway를 ‘돌섬’이라 불렀다. 새들의 천국인 Wildlife Refuge를 ‘새 섬’이라 부르듯.
돌섬은 반은 시골인 반반도시(半半都市)다. 돌섬에서 우리부부는 농어촌 생활을 시작했다. 태풍에 밀려 조개가 가마니로 올라오는 3월에는 조개잡이를 했다. 6.7.8월은 꽃게 낙시철. 지난여름에는 9백여 마리나 잡았다. 제일 즐거운 건 농사짓기다. 오피스에서 불하(?)받은 30평 밭에 각종 과일과 채소를 심었더니 일류 종합농장이 됐다. 우리 집 식탁은 일 년 내내 싱싱한 유기농이다. 한 겨울에도 밭에 묻어둔 무 배추를 꺼내어 먹는다.
해저에서 올라오는 오존향기를 맡으며 2시간동안 해변을 걷는 건 낭만이다. 아파트옆 테니스 코트에는 여섯 개의 네트가 깨끗하게 설치돼있다. 포구로 들어온 바다 곁인데 해변숲속이라 아주 시원하다. 이명박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에 몰래(?) 치다가 말썽을 일으켰다는 황제테니스코트는 저리 가라다. 놀랍게도 지난 일 년 동안 사용자는 달랑 우리부부뿐이다. 우리 부부의 전용코트인 셈이다. 우리는 황제가 되고 황후가 된 기분으로 테니스를 즐긴다.
돌섬아파트는 겨울에도 팬티만 입고 문을 열어놔야 할 정도로 덥다. 후로리다에서 겨울을 보내는 기분이다. 눈 비오는 추운 겨울 아파트거실에서 커피를 들면서 창밖을 바라보는 낭만도 괜찮다. 창밖에 서있는 미니공원은 조형미술(Land Scape Architecture)의 극치. 창밖에 함박눈이 펑펑 내리면 우리부부는 하얀 방한외투를 걸치고 비치로 달려간다. 하얀 북극곰이 된 기분이다. 바다는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 푸르기만 한데 천지는 하얀 설국(雪國)이다. 아내는 갈매기들이 몰려있는 쪽으로 달려간다. 나는 물 건너 북쪽에 있는 새 섬을 생각하면서 비치를 걷는다.
‘새 섬에도 지금 눈이 내리고 있겠지! 그러면 우리가 걸어 다닌 지난날의 발자국들이 모두 하얗게 묻혀버릴 거야’ 난 몰래 짝사랑을 하다가 들킨 소년처럼 얼굴이 붉어진다. 그래도 마음은 첫사랑의 이야기를 숨기고 사는 여인처럼 행복하기만 하다. 집에 돌아오니 아내가 바다 솔개처럼 외친다.
“황제폐하 이것 봐요, 내가 갈매기들을 물리치고 대합을 다섯 개나 잡아왔어요. 한 겨울인데도 말예요” 이 겨울 한파에 대합을 먹는다는 것은, 진시황제나 제국의 제왕들보다 더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고향은 마냥 그립기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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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촌 이계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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