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돌오돌 떨고 있는 참새



소설小雪인 오늘 ,이름 값을 하는지 눈이 내렸다. 어지럽게 흩날렸다. 차량 운행이 빈번한 아스팥트 길 위에 떨어진 것은 녹았지만 다른 곳엔 그래도 조금 쌓였다.  

아파트 화단 앙상한 나뭇가지에 참새 한 마리가 오돌오돌 떨고 있었다. 베란다 유리창 밖에 보이던 참새가 어디론가 포르릉 날아가더니, 잠시 후 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다시 돌아와 옆가지에 앉는다.

그런데 돌아온 새는 어느덧 어린아이가 되어있었다. 추위만이 아니라 두려움에 떨고있는 아이. 거친 눈발을 맞으며 비탈에 서서 새파랗게 울고있다. 산동네 희망교회 어린이집에서 '뽀뽀뽀' 노래를 부르며 해맑게 자라던 아이다. 중학교 졸업 뒤 편물기술을 배우며 희망야학에 다니는 제 이모나 내가 달래도 소용 없었다.

아마 이제 30대 중반의 엄마가 되어 있을 이 아이의 엄마는 아빠와 함께 지금 전선戰線에 나가 있다. 이 전선은 몇 일, 아니 몇 달 전부터 조성된 것이다. 3일 전에도 엄마,아빠는 일을 나가지 못하고 다른 주민들과 함께 이 전선에 섰었다. 그 날 백여 명의 철거반원들이 몰려왔다가 주민들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물러갔었다.그리고 한 방송사는 철거를 무기한 연기한다는 뉴스를 내보냈다. 그러나 오늘 기습적으로 들이닥쳐 철거를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판자촌 주민들 대부분은 일을 나갔었다.

동네 근처 봉제공장에서 일을 하던, 아이의 부모는 연락을 받고 급히 달려와 철거반원들과 몸싸움을 벌였지만 역부족이다. 전투경찰 수 백명의 호위 아래 행동을 하는 건장한 체격의 철거반원들과 구청직원들을 감당할 힘이 주민들에게는 없었다. 그래도 일부 남자 주민들은 완강하게 저항했다. 그러다 몇 사람은 개 끌리듯 끌려가 일명 '닭장차'에 실렸다. 달동네 꼭대기에서부터 사지가 들린 채 끌려 내려가는 남편을 바라보며 울부짖던 아이의 엄마는 그만 털버덕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집마저 폭격을 맞은 듯 부서진 몰골을 보며 넋을 잃고 말았다.

서울 사당3동 산 24번지. 동작동 국립묘지 뒤편,지금은 번듯한 아파트단지가 들어선 곳. 비록 판자집이라 불리지만 어려운 사람들의 따스한 보금자리 2백여 채가 비탈에 다닥다닥 모여 있는 그 산동네를 숙대밭으로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단지 한나절이었다. '정의 사회 구현'이라는 간판을 관공서마다 내걸은 정권 아래 아파트건설업체와 관청이 손 잡고 치른 행사는 속전속결이었다.그야말로 전투였다. 약육강식의 전투.

주로 농촌에서 상경하여 단순노동을 하며 옹기종기 모여살던 사람들이 산동네 지주와 협의해 자신들의 형편에 맞는 작은 연립주택을 짓고 살겠다는 계획이 묵살당한 채 쫒겨난 날은 마침 11월 눈이 흩날리는 날이었다. 이런 거사 날짜는 흔히 추위가 닥치는 시기에 잡힌다.

눈발을 맞으며 떨고있는 아이들이 지금도 여전하지 않은가? 비탈로 밀리는 사람들과 밀어내는 사람들이 여전한 현실을 생각하면 가슴이 시리다. 이 질곡의 사슬을 끊을 지혜는 어디 있는가. 그나저나 비탈에서 울던 아이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김달성목사(부평동지방,십자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