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쏟아진 것 

여러 목회자들과 그 부인들 그리고 교인들이 기도회로 모였다. 그들은 설교가 끝난 뒤, 넓은 방 여기 저기에 앉아 기도하기 시작했다. 저마다 제 소원을 곧추 세우며 간절히 기도했다. 금식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기도는 대부분 '~를 달라'는 것이었다. 교회부흥을 달라, 교회건축 부지를 달라, 능력 달라, 은사 달라, 사업번창을 달라, 돈 달라, 큰 집 달라, 합격 시켜 달라, 승진 시켜 달라, 꼬리가 아닌 머리가 되게 해 달라, 지혜를 달라, 축복을 달라, 병 고쳐 달라 등 밤새워 해도 다 못할 기도 제목들이다. 외국인이 들으면 'Dollar!'로 들을 것 같다.

그런데 기도를 드리는 도중, 어느 사모에게 환상이 보였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첫 장면은 높고 푸른 하늘이었다.3층 천 같았다.

그런데 그 하늘에서 무엇인가 떨어지는 듯 했다.처음에는 하나의 점으로 시작했는데 갈수록 커진다. 그것은 어느새 축구공만한 덩이가 되어 점점 내려왔다. 한참 내려오다 중간에 펑 소리를 내며 터진다. 마치 불꽃놀이를 하듯...

햇빛에 반짝이는 오색종이 같은 것들이 눈부시게 아름답다.

여기 저기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어떤 이는 길조라 하고 또 어떤 이는 흉조라고도 했다. 그러다가 오직 한 방향을 바라보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몇 몇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반짝이는 곳을 향해 걸었다. 조금씩 사람들이 늘어났다.
돈이다!
누군가 큰 소리로 외쳤다. 여럿 중에 유독 눈이 밝은 사람이 먼저 본 것이다.

순간,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허다한 사람들이 금세 몰려들었다. 어른, 아이, 남자, 여자, 부자, 가난한 자, 높은 자, 낮은 자, 배운자, 못 배운 자, 진보, 보수, 빨갱이, 흰갱이, 신자, 비신자 할 것 없이 서로 밀고 당긴다. 아우성 치다 넘어져 밟히기도 한다. 긴장감이 돈다.그래도 달리고 또 달린다. 오직 하늘서 쏟아지는 것을 얻기 위해 앞만 보고 뛰는 군중의 꼬리가 뱀처럼 길다.

숨이 너무 차 올라, 뛰다 말고 잠시 걷다 보니, 임산부가 보인다. 의외였다. 그런데 일순간 뱃속의 아이가 튀어나온다.놀랍다. 사람들은 이게 웬 일이냐며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직 여덟 달인데 나온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갓난아이가 금방 일어나 걷기 시작한다. 돈의 위력을 실감하는 현장이다. KBS, CNN, NHK, CCTV, 알자지라, 한겨레신문 등 취재 열기가 뜨겁다.

갓난애가 뛰는 것이 신기한 지, 취재 경쟁 모습이 재미난 지 동네의 개 한 마리가 흐름에 끼어들었다. 날씬한 푸들이다. 두 귀와 꼬리의 하얀 털은 길러 황금색 물을 들였고 나머지는 삭발하듯했다. 걸어갈 때 보면 뒷태가 예쁘다. 성형미인 철학을 갖고 사는 그녀는 최근 광대뼈 수술도 받았다. 깎을 뼈도 없는 거 같은데 돈 아까워하지 않고 했단다. 앙증 맞은 운동화도 챙겨 신고 가볍게 잘도 달린다. 다이어트를 위해 평소 유산소운동을 많이 한 덕이다. 운동화도 황금색이다. 황금색은 요즈음 글로벌 트렌드이다. 근데 푸들이 뭇사람들의 눈길을 진작 끈 이유는 딴 데 있었다. 배꼽피어싱 때문이다. 순금으로 만든 피어싱이 사뿐사뿐 걸을 때마다 반짝이는 게 여간 깜찍한 게 아니다.

개가 달리다 지칠 때쯤, 어디서 왔는지 흰돼지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온다. 엉덩이 쪽에 손바닥만한 까만 반점이 있고, 목에는 금목걸이를 한 게 귀엽다. 발톱은 모두 새빨간 물을 들였다.

꿀꿀 대며 걸을 때마다 살짝 접힌 두 귀의 끝에 단 금방울 소리가 경쾌하다.
돼지는 푸들과 금방 친해졌다.종자는 서로 다른데 필(feel)은 금방 통했나 보다.

얼굴이 상기된 돼지가 먼저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을 건다.
"야,정말 많다! 이렇게 사람 많은 거 난생 처음야. 근데 이 사람들 다 어디로 가는 거지?"

"몰라, 나도...그냥 앞만 보고 뛰는 중이야. 남들이 뛰니까 나도 뛰는 거지. 시대의 흐름이니까...따라 가기도 바빠."  약간 나르시시즘의 끼가 있는 푸들이 통통 튀는 말로 답하자 돼지는 심각한 얼굴로 또 묻는다.

"그게 대세라는 거니? 언제부터 시작된 건데."
"TV 특강에서 들은 거 같은데, 태초라고 하더라."

"태초? 초면에 너무 어렵게 말하지마."
헐떡거리며 뛰던 둘은 경사가 가파른 고개의 정상에서 나무 그늘 풀밭에 앉았다.

궁금한 게 많은 돼지는 "근데, 그 태초라는 거 말야, 요한복음 1장의 태초야, 창세기 1장의 태초야?"
그러자 푸들이 무담스러운 지, 쌍꺼풀이 굵은 눈을 흘기며,

 "너야말로 초면에 무례한 거 아니니? 그렇게 어려운 걸 묻게."
그러자 돼지는 겸연쩍은 듯 화제를 바꾼다.

눈앞에 끊임없이 이어지는 무리들의 물결을 가리키며, 생뚱맞게 물었다.
"이 무리가 너는 뭐로 보이니?"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뭐로 보여?"
"나는 다 내 동족들로 보여...근데, 사실은 돼지도 급수가 있단다. 나같은 돼지가 있는가 하면 똥에 뒹구는 똥돼지도 있지. "

그러자 푸들이 눈이 휘둘그레졌다.
"너, 말실수하는 거 아니니?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들을 보고 돼지라니!"

돼지는 꼬리를 흔들며 꿀꿀 거렸다.
"왠지 오늘은 인간과 강한 동질감을 느껴..."

둘의 대화가 더 이어질듯 하는데, "다 왔다!"는 외침이 아래쪽에서 들려왔다.
둘이 고개 아래로 내려가자,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승리감에 취해 있었다. 드디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도착하는 대로 저마다 손에 하나씩 움켜쥐었다.
얼굴 환하게 기뻐한다. 춤을 추는 사람들도 있다. 기절한 건지 심장이 멎은 건지 쓰러진 사람도 보인다.

지폐였다.  고액권의 지폐.
저마다 좋아라하며,
손에 든 것을 뒤집어 보자,
한결같이

이런
글
씨
가

쓰
여
있
었
다.
회개하라! (마태4:17)

우리는 그저 입을 다물 뿐이었다. 그러자 눈이 열렸다.
눈이 열리니 '나'가 보인다.

맘몬신자이다. 꿀꿀 대는 돼지이고.  순간 나는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기도가 터졌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새나라 방언(언어)이 터진 것이다.
새 삶이 열리는 것이고......,

김달성목사 (부평동지방,십자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