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은 오는 날 다시 들러 하루를 들러 보는 일정이어서, 짐은 찾지도 않은 채 터키 국내 항공에 탈 수속을 했다. 짐은 항공사에서 알아서 옮겨 태워 줄 것이다. 현지 시간으로 아침 9시 10분, 터키항공을 타고 수리아 안디옥이 있는 하타이공항으로 날았다. 10시 55분에 하타이공항에 도착, 가이드를 만나 순례를 시작했다. 그러니까 잠도 못 잔 채 항공기에서 날밤을 새우고 일정에 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어떠랴? 소위 성지 순례를 하는 건데. 몸은 대꾼하지만 그렇게 수리아 안디옥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성경에는 안디옥이란 이름으로 비시디아 안디옥과 수리아 안디옥이 대표적으로 나온다. 첫 번째 방문지는 수리아 안디옥이다.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이 불린 도시가 바로 이곳이다. (행 11:26) 안디옥교회는 스데반의 순교로 힘을 얻은 바울을 비롯한 기독교 박해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박해를 할 때, 유대인 성도들이 이주하여 폐허인 도시에 교회를 세운 최초의 이방 교회다. 

▲ 수리아 안디옥에 있는 베드로 기념 동굴교회 안의 모습(김학현)

 
박해를 피해 온 성도들이 베니게·구브로·안디옥에까지 와 복음을 전했는데 처음에는 유대인들에게만 전하다, 후에 헬라인들에게도 전해 복음이 확산되었다. 부흥한 안디옥교회는 예루살렘교회에 정식으로 목회자 파송을 건의했고 초대 목회자로 바나바가 파송되어 목회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곳에서 1년간 복음을 전했고 안디옥교회는 이방 선교의 모태 교회 역할을 하였다.

베드로가 외식으로 바울에게 책망을 받은 적이 있고(갈 2:11), 초대 교회의 일곱 집사 중 하나인 니골라 집사의 고향이기도 하다. (행 6:5) 니골라는 후에 음행을 용납하는 이단자로 낙인 찍혔다. 바울의 3차례 전도 여행은 대부분 이 안디옥교회가 출발점이다. 가장 먼저 세워진 이방 교회이면서 다른 이방 교회를 세우는데 모체요 산실이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안디옥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교회들이 많은데 모두 이 교회를 모델로 하는 교회들인 셈이다.

역사적으로 안디옥은 세계를 제패했던 헬라 제국의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B.C. 323년) 시리아 일대를 장악한 셀루커스 니콰도르 1세(B.C. 304~280년)가 부친인 안티오쿠스를 기념하여 세운 도시다. 이 왕조가 건설한 도시들은 대부분 안티오쿠스 이름을 따서 지었기 때문에 안디옥이란 지명이 16곳이나 된다고 한다. 터키의 지중해 동북쪽 오른테스 강구에서 32km 지점에 위치하며 현 지명은 안티키아이다. 터키와 시리아의 국경에서 가깝다. 이 도시의 외항이 바로 실루기아항이다. (행 13:4)

▲ 베드로 기념 동굴교회 바닥의 모자이크(김학현)

 
A.D. 313년 기독교가 공인된 후 로마, 예루살렘, 콘스탄티노플, 에베소와 함께 기독교 5대 도시로 기독교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A.D. 638년부터 시작된 아랍인·몽골인·터키인들의 침략으로 이 도시는 폐허가 되었고, 1097년 십자군 전쟁 때 9개월간 십자군의 통치 하에 있다가,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오스만 투르크가 패배로 끝나자 프랑스 자치령으로 되었다. 1923년 터키공화국이 세워지면서 터키에 속할 것인가, 시리아에 속할 것인가를 주민 투표로 결정 지금의 터키에 속하게 된 도시다.

지금은 초대 감독이라고 할 수 있는 베드로를 기념하는 동굴 교회가 남아 있다. 이는 베드로가 이곳에 와 선교하였다는 근거가 되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이곳에 와 살았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아직도 남아 있는 마리아상과 베드로상은 바로 이런 근거로 세워진 것이다. 동굴 교회는 안디옥 시내에서 4km 떨어진 살피우스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높이 13m, 넓이 9.3m, 길이 7m의 동굴에 입구의 내실 바닥이 모자이크 십자가형으로 되어 있다.

교회 내부는 박해자들을 피하기 위해 여러 갈래 지하 동굴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 길이가 4km 정도라고 하며, 박해자들이 오면 즉시 연락을 취하여 이런 여러 갈래의 지하 통로로 도망갔다고 한다. 지금은 메인 동굴 교회만 관람이 가능하다. 교회 외부는 십자군 시대의 것이라고 한다.

동굴 교회에 들어서자 먼저 온 프랑스 관람객들에게 그들의 가이드가 열심히 무언가 설명하고 있었다. 그게 너무 길어 우리를 안내하던 가이드가 관리인에게 항의를 해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그곳에서 그렇게 오래도록 설명하게 되어 있지 않은데 그렇게 해 우리 가이드가 항의하였다고 나중에 말해 줬다. 동굴 교회의 역사를 잠시 안내받고 사진 촬영을 했다.

▲ 베드로 기념 동굴 교회가 있는 살피우스산 중턱에서 내려다본 안디옥 시내(김학현)

 
동굴 교회 밖으로 나와 산등성이를 보고 사진 몇 컷을 찍고 안디옥 시내를 바라봤다. 한가로운 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조악한 기념품을 파는 한 어린이를 카메라에 잡으려니 웃으며 포즈를 취해 준다. 그 웃음이 해맑다. 안디옥은 아는지 모르는지? 바울이며 바나바, 베드로 등의 사도들이 이 땅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내리쬐는 뙤약볕만 따갑게 낯선 순례자를 맞아 줄 뿐 여전히 살피우스산 중턱에서 내려다보이는 안디옥 시내는 한가롭기만 하다. 인기척이 거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번성할 때 50만이었던 도시가 지금은 16만 정도가 산다고 한다.

그래도 전 세계 과일의 50% 정도가 이곳에서 난다고 하니 풍요로운 땅이기는 그대로인 것 같다. 맑은 하늘, 그 밑에 늘어선 가옥들의 한가함, 어쩌다 지나는 자동차들의 작은 경적 소리, 지난한 성경의 과거를 발밑에 묻고 가려는 한 순례자의 고독한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동굴 교회를 알리는 표지판은 늠름하다.

이내 언덕을 내려와 기다리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어느새 점심시간 터키에 와 처음으로 하는 식사 시간, 아다나 케밥이란 메뉴의 식사를 했다. 케밥은 많이 들어 본 터키 전통 음식이라 기대를 했지만 우리가 아는 그런 케밥하고는 좀 달랐다. 어쨌든 배를 채우고 숙소로 향했다. 피곤하던 터라 가이드의 "오늘은 일찍 쉬게 해 드릴게요"라는 말이 왜 그리 달콤하던지.

그리고 이어진 가이드의 말, "내일은 6, 7, 8입니다." 무슨 뜻이냐고? '6시 모닝콜, 7시 아침 식사, 8시 출발'이라는 말이다. 하하하. 첫날이라서 좀 봐주는 거란다. 이제 본격적으로 빡센 순례가 시작되는구나, 생각하며 Inciotel(이곳에서는 Hotel을 Otel이라고 하는 게 인상적이다)에 여장을 풀었다. 단꿈.

(계속)

김학현/ 연서교회 목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