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성지순례란 이름으로 여행을 한 게 꼭 14년 만인가 보다. 1996년 10월에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출애굽여정을 순례한 이래로 말이다. 사이에 간간이 해외여행이란 걸 하기는 했었다. 남들은 여러 번 성지를 다녀왔다는데 난 한 번도 이리 힘드니. 하긴 전혀 한 번도 못 가본 이들도 많으리라. 그들에게 나의 여정은 호사인지도 모를 일이다.

▲ 인천공항에서 항공기를 기다리는 필자

실은 바람과는 달리 이곳을 가볼 기회가 그리 주어지질 않았었다. 연서교회에 다시 부임하여 교회는 물론 내 자신이 안정을 되찾으면서 꼭 한 번 터키와 그리스를 중심으로 한 바울여정을 가기를 소망했었다. 이번 여행은 지방회에서 추진하여 성사된 순례 길이었다. 남들은 교회적으로도 성도들과 함께 간다지만 시골교회 형편이 그리 녹록하지 않은 처지라 우리교회는 그런 순례는 더 시간을 요할 것 같다. 조만간 성도들과 함께 순례를 떠나는 꿈도 다시 꿔보면서….

어느 개그맨이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마요.”라는 멘트를 날려 웃음을 자아냈다. 그런데 그게 진리다. 굳이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란 말을 열 짓지 않아도, 성경 속 지명들이 내 속에 녹아들기 위해서는 언젠가는 꼭 바울여정도 가 보리라 마음먹었었다. 이번에 그 바람을 이룬 것이어서 행복한 여행이었다.

첫 번째 순례 이후 이스라엘과 이집트를 중심으로 한 지명이 성경에서 나올 때마다 전혀 감이 안 잡히던 순례 전과는 달리 마치 내가 그곳에 있는 듯 또렷했었다. 성경시대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도 아닌데 그게 참 야릇하다고 느꼈었다. 그러기에 더욱 간절히 바울여정을 바랐는지 모른다.

설교자로서 성경의 지명이나 인명이 그리 다루기 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한 번 성지들을 답사한 후에는 조금 수월스럽다. 이번 여행도 그런 이유가 강했다. 굳이 좋은 여행을 하려면 터키나 그리스를 택할 이유가 없다. 더 멋진 환경과 더 진보된 인간문명을 가진 나라들이 얼마나 많으냐.

아, 바로 그렇게도 꿈꿨던 여정의 시작이 다가왔다. 2010년 8월 23일, 오후 5시! 유재성 성도가 승용차로 조치원제일교회 앞까지 데려다 줬다. 참 감사한 일이다. 그곳에서 공항으로 향하는 전세버스에 몸을 실었다. 어린아이가 기다리던 소풍 날 짠한 가슴으로 먹을거리들이 가득 담긴 보따리를 가슴에 보듬어 안 듯, 푸근한 성도들의 사랑을 가슴에 모아 안으며 13일 동안의 내 몸뚱이를 가려줄 입성들이 가득 담긴 하드케이스의 여행 가방을 차 트렁크에 집어넣었다.

기어이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밤 11시 55분 비행기인데 이리 일찍 가나 하는 울가망한 마음도 잠시 들긴 했지만, 여럿이 움직이는 여행이다 보니 여행사나 주관하는 분들이 그렇게 결정한 것이겠지 어글어글한 마음으로 울가망한 마음을 눌렀다. 이렇게 마음잡기에 성공하면서 우리 부부의 두 번째 성지순례는 시작되었다.

중간에 막히는 구간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꽤나 수월하게 인천공항에 닿았다. 가다가 공항 신도시에서 저녁을 먹은 것을 감안해도 이른 시간이었다. 공항에는 약속한 대로 여행사에서 인솔자가 나와 있었다. 짐을 부치고, 공항을 돌아보고, 핸드폰 로밍을 하고…. 그렇게 비행기 출발 시간 한 시간 전에 출국심사를 마치고 드디어 정한 시간에 항공기에 탑승했다.

창가가 아니라고 아내는 맞갖잖아 했지만 난 아내의 그런 투정을 들으면서도 그리 서운한 마음이 없었다. 아마 여행을 한다는 즐거움을 그런 것으로 아스러뜨리기 싫었나 보다. 참으로 물쩍지근한 비행이었다. 아직은 여행의 시작이라 컨디션이 팔팔하여 잠도 안 오고 12시간이 넘는 비행은 그야말로 고행이었다. 이런 고행을 하면서도 마음이 너fms 것은 아마도 바울이 3차에 걸쳐 죽을 고생을 하며 전도하였던 전도루트를 밟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리라.

▲ 수리아 안디옥에 있는 베드로 동굴교회 외관

그의 고난을 감안하면 이것은 고생도 아니지 않겠는가. 여행 내내 그런 심정으로 보내고자 마음먹었다. 세상만사 마음먹기 나름 아닌가. 애당초 편한 여행을 기대한 게 아니니 웬만하면 즐겁고 행복하게 이겨내리라. ‘바울 때처럼 고생스럽기야 하겠는가?’ 이게 이번 나의 여행의 마음다짐이다.


가는 날도 그렇고 오는 날도 그렇고, 항공기 안에서 잠을 자는 스케줄인데 그리 쉬울 것 같지 않다. 사정이야 있겠지만 아마 비용을 줄이기 위해 여행사가 선택한 계획인 듯하다. 그렇게 12시간이 지나고 우리들의 첫 번째 기착지인 이스탄불 아타 투르크 공항에 도착했다. 현지시간으로 아침 6시경이다. 참고로 터키는 우리나라 시간보다 6시간 뒤진다.

국내선 항공기로 갈아타기 위해서 아타 투르크 공항에 머무는 시간도 만만치 않았다. 슬슬 배가 고파 오는지라 아내와 둘이 아무 가게나 들어가 초코바 2개와 작은 비스킷 한 개를 집어 들고 값을 물었다. 놀라지 말라. 5.5달러, 그러니까 6천 원이 넘는다. 우리나라 같으면 2천 원이면 충분할 상품이다.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보니 카페에서 음료수와 샌드위치를 먹고 있었다. 자그마치 그것도 1만 원이 가까운 값이었다. 이곳에서는 작은 물 한 병에 5천원 정도했다. 터키 공항에서는 상품을 살 게 아니다 싶었다.

(계속)

김학현/연서교회(http://연서.kr) 목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