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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와 이명박예수의 가르침을 찾아서(불과 평화5) - 탐욕의 역사는 피를 먹고 흐른다1
한성영  |  h680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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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08월 14일 (토) 21:25:55
최종편집 : 2010년 08월 16일 (월) 16:30:33 [조회수 : 4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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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 대통령에 대하여.............


2010년 7월 21일 밤이었다. 브라질의 대통령 룰라 다 실바는 방송 프로그램 TVRecord에 출연해 인터뷰하던 도중 두 번 이나 울었다. 브라질에서 룰라의 인기는 폭발적이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룰라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는 80%를 넘어가고 있다. 브라질 민주주의 사상 최고 지지도라는 분석이다. 룰라의 집권 기간 동안 빈곤층은 2000만 명이나 줄었다. 다음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가 선정 되었다. 실업률은 사상 최소치에 근접하고 있다.

브라질 헌법상 3선연임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일부지지자들은 개헌을 통한 연임을 요구하고 있고. 룰라 대통령 자신이 재선 임기를 마치고 퇴임할 것이라고 거듭 밝히고 있는데도, 언론은 삼선 출마 가능성을 꾸준히 제기하며 국민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2010년 대선에서 룰라가 지지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다는 시민들이 51%에 이르고 있다.

룰라는 민주주의를 위하여 일찌부터 후임자를 물색해왔고 군사독재시절 게릴라 여전사 질마 호세우피를 차세대 지도자로 낙점하여 에너지 장관, 내각서열 1위인 정무장관 자리에 임명하여 지지하고 후원해 왔다. 퇴임후에 룰라는 세계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히고 있고 오마바는 세계은행장에 자리에 룰라를 추천하고 있다는 소문도 나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세계 최초로 노동자출신의 세계은행장이 나올수도 있다.

룰라는 현 정부가 국내외에서 칭송받는 데 대해, 이 정부의 업적은 룰라 개인이 아니라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않은 선반공을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룰라의 눈물은 노무현의 눈물만큼이나 진실해 보인다. 대통령의 눈물.......65세의 노련한 정치가는 왜 두 번이나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울었을까?

룰라는 브라질 북동부 페르남부쿠의 한 빈민촌, 극심한 가뭄이 끊이지 않고 사람들의 발길조차 뜸한 가랴늉스마을에서 도나 린두로 알려진 어머니 에우리지시 페헤이라 지멜루와 아버지 아리스치데스 이나시우 다 실바사이에서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정한 기술이 없는 일용직 농사꾼이었다.

슬하에 8명의 자녀를 두었지만 1945년 룰라가 태어나기 한 달 전에 고향을 버리고 상파울루 해변가로 떠나 가족 몰래 새살림을 차렸다. 생활력이 강한 어머니는 아이들을 홀로 키웠고 후일 어머니는 모든 가산을 처분하고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아버지는 두 집 살림을 오가며 가족의 생계를 최대한 책임지려했지만 문맹에다가 무능했고 완고하고 독선적이며 차별이 심한 가부장이었다.

남편이 술에 취하는 일이 잦아지고 폭력을 행사하게 되자 어머니는 룰라를 비롯하여 일부자녀들과 함께 아버지와 결별했다. 이후 룰라는 구두닦이, 염색공장에 옷을 배달해주는 등의 일을 하다가 15세가 되어 나사와 볼트를 생산하는 빠라푸주스 마르찌스 공장에서 정식노동자로 첫 직장생활을 하게 된다. 또한 자동차 부품생산공장인 프리스 몰두까르에서도 일했고 알리앙사 금속공장에서는 졸고 있던 동료가 압착기를 잘못 조작하는 바람에 새끼손가락을 잃었다. 첫 번째 부인과 결혼하여 달콤한 신혼을 보내다 임신한 아내가 간염에 걸려 병원에 갔지만 돈을 먼저 요구하는 의사 때문에 치료를 거부당하여 결국 아내와 아이가 사망하게 되었다.

이런 시련의 경험 속에서 사회현실에 눈을 뜨게 된 룰라는 동료의 권유로 노조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그랑시 상파울루 대주교인 파울로 에바리스투 아른스 추기경은 룰라와 그의 동료들에게 영향을 끼칠 파스토랄 오페리아 운동을 조직했는데 문맹퇴치, 노동자들의 지적, 영적 교육을 이끄는 것이 목적이었다. 1973년 3월23일 오후 상베르나르두 캄푸의 빌라 에우클리디스 운동장에는 8만 명이 넘는 파업 금속노동자들이 집결했다. 군부독재치하 법령에 따르면 이것은 불법파업이었다. 룰라도 이 파업에 참가하여 상베르나르두의 돔 클라우디우 우메스 주교의 연설을 들었다.

노조투신 5년 만에 대표자리에 오르고 1980년 노동자당을 창당한다. 대부분의 브라질 사람들처럼 카톨맄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던 룰라는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고 타인을 포용하고 이해하며 관용할 줄 아는 균형 잡힌 인성 때문에 노동자들로 이루어진 교회단체들과 쉽게 가까워졌고 해방신학의 대부라고 불리는 빠울루 프레이의 교수법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어머니는 종종 룰라에게 "권력은 돈, 섹스이상으로 인간이 안고 있는 가장 큰 유혹중의 하나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1980년 사망한 어머니에 대한 이와 같은 기억 때문에 그런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스스로의 존엄성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또 그의 형 프레이가 체포되어 감옥에 가게 되었을 때 이런 결심을 하게된다. "나는 속으로 끊임없이 질문했다.대체 프레이 형을 체포한 녀석은 어떤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한 것일까? 국가의 사회 부조리를 들추어 내고 반대했다는 이유만으로 일개 노동자를 감옥에 처넣는단 말인가? 나는 프레이 형이 고문을 당하고 심한 폭행을 당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가슴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분노의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도대체 무슨 명분으로 군인이 갑자기 들이 닥쳐서는 한 가족의 가장이자 10년동안 몸이 부서져라 일만하고 머릿속에는 온통 가족과 자신의 신념에 대한 생각밖에 없는 견실한 노동자를 체포한 것인가? 무엇의 , 그리고 누구의 이름으로? 그때 내 마음속에서 격한 반항심이 일었다. 그때부터 내게서 두려움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가진 신념때문에 감옥에 가야 한다면 기꺼이 가겠다고 다짐했다"

룰라는 말한다. " 계급에 대한 편견은 심지어 노동자들 자신의 마음과 정신으로도 파고들어 우리 스스로에게 역사의 주체로서 행동할 수 있는 역량까지 의심하게 만든다." 브라질의 80%에 달하는 피지배계급은 수세기 동안 지배계급이 만들어낸 편견을 내재화함으로써 자신들은 스스로를 통치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믿고 있었다. 또한 그는 " 나는 한 번도 파업을 도모해야 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원했던 것은 오직 이 세상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꿈꾸는 그런 소박한 것이었다. 안정된 삶과 월급을 꼬박꼬박 받는 것,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내 소박한 꿈이었다."

1980년 4월 18일 밤 룰라는 집에서 경찰에 체포되었고 같은 날밤 상파울루 산업지대 전역에서 수백 명의 조합원들이 체포되었다. 그러나 경찰은 베투와 제랄두를 체포하지 않았는데 이 두 사람이 아른스 추기경과 우메스 주교에게 이 소식을 전했고 두 성직자는 외국 언론에 이를 알렸다. 국제 엠네스티는 룰라를 이 달의 수감자로 결정했다. 5월이 되자 브라질 독재정권은 룰라를 석방했다. 집으로 돌아온 룰라는 거실에 매달려있던 두 개의 새장을 열고 그 안에 있던 새들을 놓아주었다. 왜 그랬을까?

1982년 1월 파스토랄 오페라리아의 비밀집회에서 룰라는 민중운동 분야의 살아있는 전설,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해방신학자중의 한 사람인 프레이 베투를 만나 큰 영향을 받게 된다. 대학생, 사제, 교수, 노동조합들로 구성된 사람들이 카룰루스 마리겔라가 지휘하는 국가해방투쟁과 반구아르디아 혁명 팔마레스 두 기관에 소속되어 군부독재에 저항했는데 군부는 고문기술자를 동원하여 이들에게 온갖 고문을 자행했다.

수 많은 주민들이 남부지역 도시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다 목숨을 잃었고 카를로스 마리겔라는 길 한가운데서 살해당했다. 마리겔라를 지지하던 도미니크 사제 티투, 로렌두, 이부, 베투도 체포되어 끔찍한 고문을 당했고 감옥에 수감되었다. 이 중 티투는 석방된 뒤 고문의 악몽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다. 그러나 프레이 베투는 현재 브라질리아 플라날투 대통령 관저에 들어가 대통령 집무실 옆방에서 일한다.

룰라는 투쟁을 통해 지도력을 단련시키고 수십 년간 거듭되는 실패에도 오히려 의지를 불태우며 살아왔다. 승리는 사람을 거만하게 만들고 패배는 사람을 겸손과 학습하기를 가르친다. 실수와 패배는 좋은 학교요 스승과 같다. 룰라와 노동자당은 패배를 통해 배웠고 발전했으며 변화하였다.

룰라는 1982년 상파울루 주지사 후보로 나섰다가 까르도주 전 대통령과 같이 브라질 사회민주당을 설립했던 프랑꾸 몽또루(Franco Montoro)에게 첫 번째 패했다. 룰라는 1982년 선거에서 나타나는 유권자들의 메시지가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했고 정치의 작은 교훈들을 하나씩 배우기 시작하였다.

1886년 650,134표를 획득하여 연방하원에 당선했다. 1986년 노동자당 대통령 후보로 출사표를 던졌으나 2차 경선에서 급조된 국가 재건당 페르난두 꼴로르 지멜루에게 패배, 1994년 두 번째 대통령직 도전, 그러나 당시 재무부부장관으로서 '리얼 플랜(Plano Real'을 실시 치솟는 인플레를 잡는데 성공한 브라질 사회민주당 PSDB 소속의 까르도주에게 1차 경선에서 패배했다. 1998년 대선에서 리얼 플랜의 정착과 함께 인플레 억제와 공공적자 해소 그리고 조세 및 사회 보장제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인기를 끌던 까르도주에게 또 다시 1차 경선에서 다시 패배했다.

"사람들은 과거에 무엇을 했던 사람이니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재의 실생활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으며 그 일에서 승리한 자를 원할 뿐 과거에 무엇을 하던 사람인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그런 사람을 원치 않는다."라고 말했다. 그 결과 룰라는 자신의 슬로건과 연설을 바꾸었고 다른 사회계층과 다른 지역의 유권자를 찾아 나섰다.

그 이후 다당주의(多黨主義)의 일환으로 다른 당들과 동맹을 맺는 법을 배웠으며 드디어 2002년 대선에서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는 브라질 대통령으로 역사적인 당선을 하게된다.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것은 룰라 개인의 승리만이 아니라 브라질 민주주의의 승리이자 정치엘리트들의 정권세습교체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며 500년 브라질 역사의 불문율을 깨고 국민들과 노동자들의 정치권 참여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룰라의 가족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불평등한 브라질의 심각한 소득분배의 희생자들이었다. 그러나 룰라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훌륭한 브라질사회의 유동성 덕분에 살아남았다. 브라질 국민 거의 모두가 그렇지만 룰라는 소외된 소수와 다수가 필요로 하는 것을 대변해주는 거울이며 그것을 이룩하기 위하여 자신의 장점은 물론 단점을 숨기지 않은 채 온 몸으로 투쟁하였다.

룰라는 평생을 대쪽같이 살아왔다. 룰라는 마음만 먹었다면 백만장자가 될 수도 있었을 거다. 파업을 중단하면 무엇이든 해주겠다는 제안이 수도없이 많았다. 몇몇 기업가들은 룰라가 브라질을 떠나는 조건으로 많은 액수를 제안했다. 집앞에 새차도 보내고 오디오세트도 보내고 온갖것들을 보냈다. 하지만 룰라는 아무것도 받지않았다. 그 무엇도 받지 않았다.

룰라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바로 브라질 민중이 이룩하고자 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실바"라는 룰라의 성은 외래어가 아닌 토종 이름이다. 이것은 일반 시민들로 하여금 친근감을 느끼게 했으며 룰라의 파란만장한 이력은 가난한 사람도 실수로 넘어지거나 남에게 떠밀리지 않는 이상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룰라는 자신이 그랬듯이 브라질의 모든 '실바'들로 하여금 미래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지도록 하고 있다.

룰라 대통령! 이제 눈물을 거두세요. 당신은 브라질의 희망이자 남반구와 제 3세계의 희망이며 세계의 희망이기도 합니다. 세계는 당신의 희생을 통해 그리고 수더분하고 촌스럽지만 솔직하고 성실한 당신의 가족과 친구들을 통해 뜨거운 인간애의 가능성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하여...........

자, 그런데 철저하게 화려한 부르조아의 길을 걸었던 한국의 이명박대통령은 어떨까? 이야기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너무나 초라하기 그지없다. 이익과 자신의 영달을 쫒아 탈법, 편법, 불법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열차게 달려왔던 장사치의 징그러운 괘적이 한반도의 피부 깊숙히 남아있다. 얼마전까지 인터넷에서 누리꾼들에게 회자되고 있었던 몇 가지 사실들을 열거해보자.

위장전입 5차례, 자녀 및 운전기사 위장취업을 통한 탈세, 건강보험료 13000원, 보유한 건물의 등록세를 12년 동안 안내고 버팀, 국회의원시절 선거법 위반(증거 은닉, 증인도피, 위증교사 포함)으로 94년에는 의원직 중도하차, 98년 당선무효, 성매매업소 ‘섹시클럽’ 이명박 소유 양재동 빌딩 건물에서 최근까지 성업하다 기사화된 후 갑자기 ‘공사중’, 개발정보취득부동산투기, 현대노조위원장납치 노조설립방해 노동조합법위반, 건축법위반공개수배구속, 지방세체납 6회재산압류, 고용산재보험료미납강제추징, 소유사업장건보료40개월미납,

건강보험법령11차례위반, lk이뱅크 등기이사 변경 과정에서 형법 제228조(공정증서 원본 등의 부실기재)와 지방공기업법 제61조(임직원의 겸직제한)위반, 국가공무원법제64조(영리업무 및 겸직금지)위반, 지방공무원법제56조(영리업무의 겸직금지)위반, 공직자윤리법위반, 정치자금법제36조위반(회계책임자 통하지 않고 월급 제공), 재산축소신고, 조세범처벌법 제9조위반, 임대소득축소신고 소득누락 횡령탈세, 소유건축물불법용도변경, 자동차보험사기(사고대리처벌), 친인척 여의도면적땅투기, 무주택직원용현대아파트 친인척불법분양, 현대건설 대표 시절 노태우 전대통령에게 비자금 상납

‘법과 질서가 바로 잡아지면 경제가 2% 성장한다.’ ‘대통령이 되면 가장 먼저 기초질서를 바로 잡겠다’다고 말했던 한국의 대통령은 국민의 기본적인 의무인 납세부터 시작해서 선거법까지 화려한 전과를 자랑한다. 좋다, 좋다, 국민들은 사업가로서 잔뼈가 굵었던 당신이 소박한 밥상과 일자리, 평범하지만 소소한 일상을 지켜줄 것이라 믿고 그것쯤이야 큰맘먹고 딱 눈감아 주었다.

747 (7%성장 , 국민소득4만불 ,세계7대 강국) 을 내걸고 경제 대통령을 부르짖었던 2년동안의 경제지표는 어떨까?

경제 성장률: 2008년 2.2%, 2009년 0.2%, 국민소득: 2009년 1만 7천달러로 4년전으로 회귀, 세계경제 순위는 15위로 하락, 2007년 3위하던 IT경쟁력은 2008년 8위, 2009년 16위로 하락했다. 녹색성장을 외쳤지만 환경지수는 43계단 떨어진 94위, 세계 경제 포럼이 발표한 국가 경쟁력은 2007년 11위에서 2008년 13위, 2009년 16위, 언론자유지수는 지난정권에 비해 무려 30단계 떨어진 69위로 대한민국은 보츠와나, 세르비아, 탄자니아, 토고보다 언론자유가 없다. 실업률은? 사상최대다. 부동산 아파트 가격이 23.29%나 상승했다. 좋다, 좋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있지 않았나, 국정 초기 아닌가. 조금 기다려 주자

자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는 2010년 상반기 성장률 7,6%의 진실은 무엇인가? 이명박정부는 이를 두고 지난 상반기에 있어서는 747 공약 중 일부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2009년 실적이 워낙 나쁘다 보니, 2008년 수준으로 회복한 지표들이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났을 뿐이다. 이것을 경제학 용어로 '기저효과'라고 하는데 기저효과란 비교시점의 상대적인 위치에 따라서 현재의 지표가 실제보다 왜곡되어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즉 경기 호황기를 기준시점으로 비교하면 현재의 경제지표는 실제보다 더 위축되게 나타나고, 경기 불황기를 기준시점으로 비교하면 실제보다 더 부풀려져 나타나게 되는 현상이다. 2006년에서 2010년까지 GDP상승률을 비교해보면 이명박정부 집권기간인 2008~2010년의 GDP상승률은 현저히 저조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상반기 기준으로 2006년에서 2008년 GDP 증가액은 44조2000억 원이었다. 그러나 2008년 에서 2010년 증가액은 20조2000억 원에 그쳤다. 그러니 지난 상반기 7.6%라는 성장률은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그래서 서민들은 고단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정부는 이런 지표를 가지고 국민들에게 눈속임을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비교적 빨리 금융위기에서 벗어난 원인을 경기부양책때문이라고 자화자찬을 하고 있다. 그러니 이또한 사실이 아니다.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정책에는 크게 세금부담을 덜어주는 감세와 공공사업 증대 등을 통한 재정지출 확대가 있다. 우선 감세정책은 세금부담을 줄여 줄어든 세금만큼 소비와 투자를 늘림으로써 경기회복을 유도하려는 정책이다.

납부할 세금이 적어진다면 사람들이 소비를 위해 지출할 수 있는 돈이 늘어나게 된다. 기업들도 여윳돈이 생겨 생산에 필요한 기계 또는 건물 등에 대한 투자를 늘리게 된다. 기업의 투자확대는 일자리 증가로도 이어지는 등 경제활력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재정지출 확대는 민간의 부족한 소비나 투자지출을 정부가 보충함으로써 경기부양을 도모하는 정책이다. 대규모 자금을 도로,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SOC)에 투자하여 투입물품 등에 대한 수요를 늘리고 고용을 창출함으로써 경기를 즉각적으로 부양하는 데 효과가 있다.

우선 정부가 경기침체를 해결하기 위해 재정지출을 늘리면 단기적으로 투자와 고용증대에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물가상승이라는 희생을 치르게 된다. 한국의 소비자 물가는 꾸준히 상승해왔고 2010년 9월부터 전기ㆍ가스ㆍ고속버스 등 공공요금이 줄줄이 오른다. 더불어 설탕 가격도 인상될 예정이어서 물가 비상으로 가계의 주름살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수입에 비해 정부지출이 과도할 경우 적자재정 문제를 피하기 어렵다. 만약 세금을 더 거두거나 빚을 통해 적자를 메우고자 하면 이는 결국 국민적 부담으로 고스란히 남게 되고 후손에게 그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즉 경기부양은 후세대의 혈세를 끌어다 쓰는 것이다. 금융위기가 닥치면 어느 나라나 경기부양책을 쓴다. 이명박정부는 다른 나라에 비해 천문학적인 경기부양책을 썼다.

그러나 다른 나라에 비해 후세대의 혈세를 더 많이 끌어다 쓴 것이 대단한 업적이라도 되는 것처럼 주장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지금 당장의 현실의 어려움을 모면하고자 딸,아들들이나 손녀손자들이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명박정부는 당장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고자 후손들의 고통을 담보로 정책을 펼치는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어려운 경제여건속에서도 경기부양책을 끝까지 고려하지 않은 것은 이와 같은 고뇌가 담겨있었던 것이다. 경기부양책이 성공하려면 국가경영에 관한 구체적이고 전반적인 청사진을 가지고 제도개혁과 행정개혁, 정치권과의 조율을 통해 순조로운 입법, 이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서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부패의 고리를 근원적으로 끊을 수있는 자구책들과 꼼꼼한 연구와 조사를 통한 노련한 정책이 뒷받침되어야 하며 책임감을 가지고 깊이 있는 정책들이 잘 실현되고 있는 지 국정을 성실하게 챙겨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명박정부는 부유층과 대기업에 천문학적인 감세혜택을 주며 후세대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일에 진력해왔다.

전시행정은 여전하고 6.2 지방선거 참패 이후 영포회 권력사유화 파문과 총리실의 불법사찰 등 갖은 악재들을 모면하기 위해 꺼내든 친서민정책과 허울좋은 사면권을 통해 면피용 정책만을 남발하고 있으며 노인가정, 장애인, 영세민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돌아가야할 복지예산도 대폭 줄인채 토건마피아들의 배만 불려주고 천문학적인 재정부담이 드는 4대강 사업에 대해서는 경제적 가치와 사업의 타당성을 사전에 점검해보려는 "예비타당성 조사"도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4대강사업이 정말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해 가치가 있는 사업이라면 왜 정정당당하게 조사할 것은 조사하고 의심이가는 부분이 있다면 떳떳하게 국민앞에 밝히지 않는 것인가? 4대강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의 아주 일부만이라도 제대로 활용하여 현실적이고 탄탄한 복지정책을 추진한다면 국민의 삶의 질은 지금보다 휠씬 나아질 것이다.

이명박씨!! 실용정부, 친 서민 대통령을 외쳤던 당신의 실용은 누구를 위한 실용이며 당신의 서민은 과연 누구란 말이요? 답을 해보시오!!!!

 


그리고 그대, 국민에 대하여(선거혁명, 국민혁명을 바라며..........)


그대여!! 대통령제와 대의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우리의 행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진정 무엇인가? 오직 이윤동기로만 점철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제, 경제, 경제 동물인가? 아니올씨다.

부끄러움을 아는 양심과 도덕성, 이웃의 아픔을 함께 느낄 줄 아는 감수성, 지혜를 발휘하는 통찰력 그리고 국정을 조화롭게 운영할수 있는 능력을 겸비한 인재이며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알아보고 키워낼 수 있는 국민, 바로 그대의 안목이다.

우리의 선배들과 우리는 소중한 피값을 치르고 민주주의를 이 땅에 심어왔다. 국민의 투표로 대표를 뽑는 민주주의 제도는 어쩌면 인류의 역사에 가장 큰 혁명이다. 이 지구별의 민초들은 언제나 게걸스럽게 욕심많고 교활하며 힘쎈 놈들에게 착취당하고 기만당해 왔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제 그들을 다스릴 힘이 생겼다.

바로 그들을 뽑을 수 있는 투표권이다. 우리의 조상과 부모와 형제와 이웃과 우리들은 이것을 얻기 위해 너무나 많은 희생과 대가를 지불했다. 우리는 이제 이 힘을 현명하게 사용하여 우리의 복지와 행복을 증진 시켜야한다. 바로 우리, 천대받고 멸시 받은 민초들의 행복을 정당하게 누리는 것 그것이 바로 선열들의 피에 보답하는 길이다.

지금의 현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현실은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닌 바로 국민, 그대의 책임이다. 그대는 현명해져서 자신의 권리와 혜택을 누리고 살던지 지금까지 처럼 당하고 살던지 선택해야한다. 그리고 어리석음에 짓눌려 있지말고 용기를 내야한다.

그대의 밥상과 복지와 행복을 책임져 주는 것은 그대가 무엇에 잘 반응하고 자지러지는 지 잘 아는 간교한 정치모리배들의 수사와 비열한 술책이 아니라 그대가 정당하게 누려야할 몫을 성실하게 책임져주는 일꾼을 잘 가려뽑을 수 있는 그대의 지혜와 용기 그리고 눈 앞의 당장의 간사한 이익이 아니라 긴 안목으로 자신의 미래를 가늠해 보는 지혜로운 안목이다. 자! 그대의 선택은 무엇인가?


(예수의 불과 평화의 지혜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서 인간의 탐욕의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장대한 여정은 계속됩니다.)

 

 

* 이 글은 당당뉴스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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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4ryu (218.148.155.30)
2010-08-19 17:24:36
인신공격등 운영자 원칙을 준수해 주십시오.
국가 원수에 대한 인신 공격을 용남해서는 않됩니다.
보라질과 한국은 그문화적 배경이나 발전 과정의 차이로 볼때 1:1의 비교는 문제가 있고 인신공격적 내용은 운영 원칙에 위배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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