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길 교수와 토요토론   

“1년 전 목사님이 김동길 교수와 라디오토요토론이 다시 회자되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천안함 사고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김교수 이야기가 나왔답니다. 요즘 김교수가 전 총리였던 한명숙 뇌물수수사건 재판에 검찰을 두둔하더니 이번에는 ‘천안함 침몰은 김정일짓이니 이대통령은 이승만대통령처럼 목숨 걸고 대응하라, 목숨을 버리면 대통령도 살고 백성도 산다.’라고 질타했답니다. 김교수의 좌충우돌에 대결할 상대가 없나요?”
최장로는 나를 보면서 엄지손가락을 거꾸로 찍어 누르는 시늉을 했다.

시종일관 정부가 대북강경으로 나가니 동에서는 “금강산남측재산 몰수”로 서에서는 천안함 사건이 터지게 마련 아닌가? 죽으면 산다는 말이 링컨에게는 맞는 말이다. 그 당시 남북전쟁에서 졌어도 앙앙불락하던 남부가 링컨이 죽자 북과 손을 잡고 USA로 살아났다. 그러나 과연 이승만식 북진통일이 가능할까? 6.25때 세계유일의 핵보유국 미국도 시행치 못했던 북진통일을 핵보유국인 북한을 가능하다 생각할까?

“김교수와 토론이 벌써 지난해 6월 27일에 있었던 일인데 아직도 이야기로 돌아다니는군요. 하기는 6월이 오면 한국에서는 지자체선거가 있고, 지난해 5월에 투신한 노무현대통령 죽음이 부활하겠지요. 그래도 그렇지, 권투나 씨름처럼 승패를 가리는 게임도 아니고 그저 말장난일 뿐인데, 뭘 그걸 갖고...”

매주토요일 아침(9시-11시)뉴욕라디오 토론에 나는 패널로 자주 나가는 편이다. 김교수와 토론은 단둘이 붙는 맞장 토론이었다. 한국최고의 보수논객(保守論客) 김동길교수와 1:1 토론을 벌리다니, 내가 진보논객(進步論客) 진중권도 아닌데! 방송국에 나가보니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격이 돼있었다. 엎친 데 덮친다고 사회자가 나에게 선제발언을 요구했다.

“라디오 토요토론의 크리스장입니다. 김동길교수께서 얼마전에 ‘김대중씨도 부엉이바위에 올라가 뛰어내려 자살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 토요토론의 주제입니다. 멀리 서울에서 김동길교수께서 전화로 참여하시고 뉴욕에서는 이계선목사님이 패널로 이 자리에 나와 계십니다. 청취자 여러분은 두 분 토론을 들으시고 전화로 참여 부탁합니다. 그럼 먼저 이계선목사님께서 질문해주실까요?”

순서가 바뀌어 순간 당황했다. 나는 얼른 우문현답(愚問賢答)으로 밀고 나갔다. “이틀 전 뉴욕 여성네트워크세미나에서 만난 장의사 사장님이 이런 걱정을 하시는 거예요.“이목사님 큰일 났어요, 저희 장의사에서 돌아가신 동포들의 장례를 모시는데 전에는 없던 자살자가 많아지고 있으니 저희 장의사와 목사님들이 자살방지캠페인을 벌려야 겠으니 협조해주세요”라는 부탁을 듣고 노무현전대통령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더니 네티즌들이 ‘이명박 대통령도 자살하라!!’ 온라인상에서 성토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오늘 토론 자료를 얻으려고 김교수님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김대중 대통령도 부엉 바위에 올라가 투신자살하라’는 글을 보았죠. 그런데 또 다른 사이트에서는 ‘김동길도 자살하라’는 성토가 뜨겁더라고요. 아마 오늘 이 토론이 끝나면 틀림없이 나에게도 전화가 올 것 같아요. ‘이계선도 자살하라!!’

그러나 저는 이렇게 호소하고 싶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자살하지마세요,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자살하지마세요, 그리고 김동길 교수도 제발 자살하지마세요!!’ 우리 모두 자살하지 말고 죽음이 우리를 부를 때까지 만수무강하면서 나라사랑 하며 장수 합시다.”라고 답했죠. 그리고 지금 곤경에 처해있는 한명숙 전 총리도 절대로 자살하지 말기를 바라며 법의 저인망에도 살아남으라고 꼭 한 마디 전하고 싶습니다.

다시 사회자가 김교수에게 질문을 던졌다. “자, 이제부터 김교수님께 질문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피가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노무현전대통령의 자살을 애도하는 전 국민의 아픔이 되 살아났기 때문이다. 전화기에서는 김동길교수의 웃음소리대신 무거운 침묵이 지나가고 있었다. 난 일부러 바보처럼 우문현답(愚問賢答)으로 말했는데 예상대로 상대는 현문우답(賢問愚答)으로 알아차린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자살하게 한 이명박 자살하라, 김대중 자살하라고 하는 김동길 자살하라”고 들렸을 테니 얼마나 교묘하고 모욕적인 답인가?
우문현답으로 기선을 제압했으니 토론은 거칠게 없어졌다.

이 토론은 처음부터 김동길교수에게 아주 불리했다. 김동길교수는 80여권의 책을 펴냈고 많은 강연을 하여 아킬레스건까지 노출되어있는 상태다. 나는 김교수 책을 거의 읽어 장단점을 환이 알고 있었으니 공격하기가 쉬웠다. 그러나 무명(無名)의 백면서생(白面書生)인 나를 김동길 교수가 알 길이 없다. 김교수는 벌판에서 알몸을 노출시킨 채 서서 싸우는 입장이요 나는 캄캄한 숲속에 숨어서 몰래 화살을 쏘는 입장이다. 천하의 요설가라 해도 당황했을 것이다. 차 후 나는 이런 편지를 써 보냈다.

尊敬하옵는 金東吉 博士님

지난 토요일 뉴욕 라디오 코리아 “토요토론”패널 이계선 목사입니다. 박사님은 “씨알의 소리“ ”사상계“에서 촌철살인의 필봉으로 독재타도의 선봉에 서셨습니다. 그런데 정계에 입문하신 후 보수의 선봉장으로 용명을 떨치셔서 우리들은 박사님의 변신(?)을 서운해 했습니다. 엊그제 전화토론에서 들려오는 부드러운 목소리, 경계가 없는 넓은 철학을 듣고 이분은 해탈한 사람임을 직감했습니다. 달라이 라마와 친분이 있는 뉴욕의 모스님은 절 만나면 “목사님은 불교로 말하면 해탈한 수준입니다”하고 농을 걸지요. 그러면 저는 “해탈한 고승이나 타락한 파괴승이나 엉터리는 마찬가지죠. 나도 엉터리목사이니 해탈이란말도 틀린 것은 아니겠죠?” 하고 웃습니다.

김박사님은 슈바이처박사를 빼닮은 얼굴에 내적자유가 확립된 분입니다. 속에 독이 없어서 아무리 남을 욕하고 규탄해도 남을 죽이거나 상해하지는 못할 분입니다. 엊그제 토론하면서 알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노무현전대통령이나 김동길박사님이나 그런 면에서는 비슷합니다. 성공과 실패를 초월하고, 삶과 죽음을 초월한 분들이니까요. 가고 싶은 대로 가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자유인들이지요. 나는 자서전이나 유고집을 청탁받아 여러 번 대필했습니다. 제 이름으로는 9년전 “멀고먼 알라바마"와 이번에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를 펴냈습니다. “대형교회...”는 기업화 세속화 되어가는 한국교회의 개혁을 위한 목소리를 담은 잡문입니다. 한권 보내드리오니 몇 줄 읽어주세요.

박사님의 반대편에서 발언하는 저를 두고 “이계선목사님은 중도시군요...”하시는 말씀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잘 보셨습니다. 뉴욕 “토요토론”에 패널로 자주 나가는데 진행자 크리스장이 묻지요. “반대편에 서시겠습니까? 찬성편에 서시겠습니까?” “어느 편이건 상관없습니다. 사람 없는 편에 서지요” 저는 다 옳다고 봅니다. 김정일이나 군사독재치하에서는 찬성만이 맞아야 하지만 민주주의 하에서는 찬성도 반대도 일리가 있어요. 둘 다 필요하구요. 그래서 그날 서로의 역할에 충실 했던 것 같습니다. 주안에서 만남을 기뻐하며 건필 하시고 오래오래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 후 이러한 짤막한 답신이 왔다.

이계선목사님께
보내주신 책과 글 잘 받아서 읽었습니다.
“한국판 95개조”를 미국 땅에 앉아서 쓰셨으니 대단합니다.
말솜씨, 글 솜씨가 다 대단합니다. 뛰어 납니다. 요다음 책 제목은 <한국교회 살면 대형교회 죽는다> 로 하시면 더 호응도가 높으리라 짐작합니다.
외국 땅에서 외로우시더라도 주님 맡기신 사명 다 하시기 빌며.
八十二 壽 老師 김동길 적음
 

▲ 등촌 이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