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잡이 목사 부부

▲ 이계선 목사 - 뉴욕거주 <대형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의 저자

<돌섬통신-3> 오늘은 조개잡이 이야깁니다. 아내는 오늘도 비치로 나가 대합을 한 소쿠리 잡아왔습니다. 지난 3월 태풍이 부는 날 우리부부는 대합잡는 요령을 알아냈습니다. 그날 아침 아내는 해변으로 나가는 나를 말렸지요.

“ 미국동북부를 강타하는 태풍이 3월의 광란을 일으키고 있대요. 뉴저지에서는 태풍에 뽑힌 아람드리 나무가 집위로 무너지는 바람에 네식구가 죽었는가 하면 가옥파괴 차량사고로 난리랍니다. 해일에 휩쓸려 갈지 모르니 바닷가에 나가지 마세요. 위험해요.”

그래도 난 막무개내였습니다. 파라커웨이로 이사온후 하루도 바닷가 산책을 걸른적이 없으니까요.
“그래? 그럼, 바다위에 펼쳐지는 3월의 광란을 보기 위해서라도 바다로 나가 봐야지”

3월의 광란(March Madness)은 3월에 벌리는 미대학농구(NCAA)토너먼트입니다. 미국 전역에 있는 350개의 대학팀이 몇달 동안 리그전을 치룬후 지역대표 64개팀이 올라와 토너멘트로 우승을 가려냅니다. 7번 만 이기면 됩니다. 그런데 미식축구처럼 한번 지면 탈락하는 단판승부라서 게임마다 사력을 다하지요. 어찌나 격렬하고 드라마틱한지 미국인들은 3월의 광란이라 부르며 열광합니다.

금년만 해도 일회전에서 하위팀이 일등팀을 격파하여 광란을 일으켰습니다. 80년대 말 에는 UNLV가 듀크와 결승에서 맞붙어 기억에 남는 명승부전을 벌렸습니다. UNLV는 리그전에서 33전 전승을 거둔 역대 최강입니다. 단 한번도 패한적이 없는 전무후무한 기록이지요.

리그전에서 듀크가 20점이상으로 패했기에 UNLV의 우승은 따 놓은 당상입니다. 시합전날밤 UNLV선수들은 미리 우승파티를 즐기고 쇼핑을 다녔습니다. 누가봐도 생쥐와 사자의 대결입니다. 그런데 듀크는 생쥐가 사자의 발톱을 물고 늘어지는 악착같은 수비작전으로 거함을 침몰시키고 참피온을 먹었습니다. 미국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은 3월의 광란이었지요.

미국 대학농구결승전은 미식축구결승 다음으로 인기입니다. 그 유명한 야구의 월드시리즈, 농구의 NBA챔피언, 아이스하키의 NHL 스탠리컵결승의 인기보다 앞선답니다. 금년에도 톱랭킹과 거리가 있는 듀크가 우승하여 3월의 광란을 일으켰습니다.

‘농구 코트가 아닌 바다에서 3월의 광란을 볼수 있다니!’

난 태풍을 뚫고 비치로 달려갔습니다. 와! 그 넓은 대서양이 하얀 파도로 가득했습니다. 한겹으로 밀려와서 해변에서 부서져버리는 파도가 아닙니다. 고래떼처럼 이리 저리 몰려다니고 있습니다. 태백산맥처럼 하얀파도가 대서양 바다 가득히 몰려다니고 있어요. 장관입니다.

태풍에 밀려다니는 파도가 저렇게 아름다운줄 몰랐습니다. 파란 수면으로 조용히 흐르는 바다보다 노도광풍에 하얀 광란을 춤추는 바다가 더 아름답습니다. 머리위에서는 태풍이 울어대는 굉음소리가 요란하게 날라다니고 있었습니다. 하늘이 태질하면서 날라가는 듯 합니다.

해일과 바람 소리 말고 아무것도 없는것 같습니다. 갈매기도 수평선도 배한척도 안 보였습니다. 나는 태풍을 뚫고 해변을 따라 동쪽으로 걸어가 봤습니다. 그런데 모래가 휘날리는 동쪽 해변가로 갈매기들이 하얗게 날라들고 있는게 보였습니다.

(갈매기들이 왜 저곳으로 몰려들까?)

궁금해서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그곳에 대합들이 있었습니다. 한두개가 아닙니다. 덤프트럭으로 자갈을 쏟아부은 듯 합니다 . 어른손바닥을 포갠것처럼 큰 놈들이 즐비합니다. 쓸어 담으면 수십가마도 넘을겁니다. 해변을 따라 수십리가 온통 대합밭이에요. 바닷속 갯벌에 숨어지내는 대합들이 태풍에 패여 해변으로 밀려온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횡재가?’

큰 놈만 골라 스물 다섯개를 주어 담았더니 바케스가 넘쳐났습니다. 집으로 들고 왔더니 놀라는 아내.
“여보, 이거 잡아와도 되는거야요?”
“걱정말아요. 경찰이 시비하면 성경을 들이댈 참이니까. 이건 대합이 아니라 하나님이 광야 이스라엘에게 태풍으로 보내주신 바다에서 올라온 메추라기라고 . 성경의 메추라기…”
“호호호호 하하하하. 맞아요 맞아!”

한바탕 웃은 우리부부는 소쿠리를 들쳐매고 다시 바닷가로 달려갔습니다. 태풍이후 대합은 일주일동안이나 올라왔습니다. 보통때는 대합구경하기가 가뭄에 콩나기라서 잡기가 여간 힘든게 아닙니다. 그런데 태풍덕에 대합을 주으면서 우리 부부는 대합의 생리를 알아냈습니다. 조개라고 부르는 이놈은 하얀조개라서 백합, 크다고 해서 대합이라 부릅니다.

큰놈 보다는 중간치가 맛있습니다. 썰물로 바닥이 들어나면 바다쪽 깊숙한 모랫속에 이놈들이 숨어 있습니다. 모래구멍을 뚫어놓고 몰래 숨을 쉬는데 꼭 모래꽃처럼 보입니다. 모래꽃을 발로 후벼차면 주먹만한 대합이 톡 튀어나오지요. 이렇게 잡은 놈들은 어찌나 싱싱한지 날로 먹어도 비린내가 나지않고 달기만 합니다.

내고향 경기도 평택군 글갱이는 삼면이 아산만으로 둘러싸인 시골입니다. 6킬로를 가면 세계에서 몇번째로 넓다는 원정리 캣펄이 나옵니다. 2킬로 너비의 갯펄이 수십리로 뻗어 있어요. 여름 방학이면 나는 망태기를 둘러매고 원정리갯펄로 달려갔습니다. 벌거숭이 망둥이가 되어 갯펄을 딩굴면서 지천으로 널려있는 게, 맛, 바지락, 조개, 망둥이를 잡았습니다. 파래같은 해초도 뜯어내구요. 그런데 대합은 여간 귀한게 아닙니다. 어쩌다 대합을 잡으면 “심봤다”기분이었지요.

그런데 내가 사는 파라커웨이는 대합이 지천입니다. 비치를 한시간만 걸으면 한소쿠리가 넘칩니다. 아내는 오늘도 “진주조개잡이”를 노래하면서 바닷가로 나갔습니다. 이제는 갈매기들 보다도 대합이 숨어있는곳을 더 잘알아 허탕치는 적이 없습니다. 노련한 사냥꾼처럼 들키지도 않습니다. 사실은 바다 경비원들도 크게 문제 삼지를 않는 답니다.

아내는 이제 대합요리 전문가가 됐습니다. 구어먹고 볶아먹고 무쳐먹고 국을 끓여먹습니다. 대합을 우려낸 국물에 국수를 말아먹으면 어찌나 시원하고 달콤한지 월남국수보다 훨씬 맛있어요. 손님 접대용으로 대합젓갈도 넉넉하게 담가놓았습니다.

아내는 매일 대합요리입니다. 난 비위가 약해서 비린내가 나는 고기나 생선을 싫어합니다. 어려서 부터 새우나 조개류를 좋아했습니다. 내 약점(?)을 알아낸 아내는 매일 대합요리입니다. 한달 내내 메추라기를 먹다가 질린 이스라엘처럼 이제는 대합먹기도 질려버렸습니다. 이빨사이에서 조개냄새가 날지경이니까요.

“이젠 질렸으니 그만 잡아옵시다”
“여보, 열심히 대합을 먹다가 진주를 발견하여 부자가 될런지 누가 알아요?”

아내의 대합잡기는 아무도 못 말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