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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 당신을 살인자로 고발합니다.전지전능한 기독교의 인격신에게, 아이티 지진을 일으킨 또는 방관한 책임을 물으며
류상태  |  sham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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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년 01월 19일 (화) 16:03:58
최종편집 : 2010년 01월 20일 (수) 10:12:56 [조회수 : 3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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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하는 예수동아리교회(http://cafe.daum.net/jsclubch)에서 한 교우님이 아이티 지진과 관련하여 질문을 주셨습니다. 질문의 내용이 그 교우님 뿐 아니라 기독교 신관에 대해 의문을 가진 모든 분들과 공유할만한 것이라 생각되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질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류상태 목사님께 묻겠습니다.

요며칠 아이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시지요?
80프로 이상이 천주교고 16프로정도가 개신교인 국민이랍니다.
너무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진으로 죽었고
약도 물도 식품도 없어 산사람마저 죽어가고 있는 모습이 세계로 생중계되고 있는데요.

초딩 수준의 질문이라고 비웃으시겠지만,
초딩 때부터 지금까지도 안 풀리는 수수께끼는...
왜 위에선 팔짱끼고 바라만 보고 있느냐는 겁니다.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못 이루실 게 없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무언가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렇게 ...이런 일이...생기지 않게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도대체 위에서 하는 일이 뭡니까?
살아있기는 하신 겁니까?

아니. 이정도로 인간에게 무심한 하나님을 계속 믿고 산다는 게 맞는 일인 것입니까?
신의 존재유무를 다시금 생각합니다.
흔한 말로 시험듭니다.
하나님은 인류전체를 사랑하신다는 그 사실을 신념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기엔 너무나 좌절입니다.
많이 아픕니다.

명쾌한 답 주시리라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나름의 생각만이라도 이야기해 주십시오.

   
W님의 진솔한 고민, 잘 들었습니다. ‘의심하는 자에 대한 경고’가 성서에는 많이 기록되어 있고, 목사들도 의심하는 신앙에 대해 수없이 비판하며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가질 것을 강조해왔기에, 전통적인 신관에 대해 의문을 품을 뿐 아니라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이 어렵고 두려운 일일 수도 있는데 용기를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랫동안 배우고 지켜왔던 기독교 신관의 흔들림으로 인하여 받는 고통을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며, 제가 이해하는 신관에 대해 함께 나누어 보고자 합니다.

먼저, 명쾌한 답을 기대하지 않는다니 다행입니다.^^ 사실 “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믿어야 하느냐?”는 명제에 대한 저의 개인적인 생각은 확고히 있지만, 제 생각이 옳다고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으며, 제가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싶은 것은 “신을 이렇게 믿어야 한다”는 또 하나의 신관보다 “적어도 신을 그렇게 이해하고 믿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라는, 기독교의 전통신관에 대한 재해석입니다.

1. 기독교의 하느님은 ‘전능자’이며 ‘사랑의 하느님’인가?

기독교의 전통신관은 매우 중요한 두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나의 기둥은 그 분의 능력에 대한 것으로, 하느님은 전지전능(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음)하시기에, 우주만물을 선하게 창조하셨고, 자신이 만드신 세상을 섭리(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도록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것)하신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전통신관의 또 하나의 기둥은 그 분의 성품에 대한 것으로, ‘하느님은 사랑’이라는 전제이며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하신 모든 일은 그 분의 속성인 사랑의 발로이며, 세상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도 이 사랑이라는 신의 근본속성과 충돌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전제의 의하면, 우리 눈에는 악하게 또는 모순되게 보이는 모든 일도 결국은 신의 깊은 의도에서 나타나는 사랑의 발로이며, 전능자의 선한 의지와 섭리에 의해 일어나는 일이기에 전적으로 옳고 선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 분의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할 수는 있지만, 그 분의 뜻을 의심하거나 감히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불신앙이며 신성을 모독하는 발칙한 짓이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을 가진 현대인이 전통신관을 그대로 긍정하기에는 너무나 아프고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 많이 일어납니다. 이번 아이티 지진도 그렇고, 몇 해 전에 동남아시아를 집어삼킨 쓰나미, 미국 뉴올리언즈를 강타한 허리케인도 신의 섭리에 의한 것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수십 만에 달하는 생명이 너무나 아깝고 허무하고 슬픕니다.

그런데 더욱 슬픈 것은, ‘신의 전능성과 그 분의 선한 섭리’를 의심해서는 안된다고 확신하는, 또는 신도들로 하여금 그렇게 확신하도록 만들고 싶어하는 몇몇 목회자들에 의해 그 희생자들이 ‘신의 뜻을 거스린 악한 사람’으로 쉽게 매도된다는 점입니다.

실례로, 수만 신도가 모인다는 G교회의 K목사는, 2004년 발생한 쓰나미 사건에 대해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 대한 심판”이라고 설교하였습니다. 그는 몇 달 후 발생한 미국의 허리케인 희생자들도 “그 지방에 동성애자가 많았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신 것”이라고 설교했습니다. (저도 그의 설교동영상을 보았습니다. 그의 설교도 가슴을 아프게 했지만 저에게 아픔을 넘어 거의 절망감을 심어준 것은 그의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하는 수많은 교인들의 합창소리였습니다.)

만약 그의 설교가 옳다면, 우리의 하느님은 이방인을 심판하기 위해 철없는 어린아이들까지 가리지 않고 살육한 셈이며, 미국 뉴올리언즈에 사는 동성애자를 심판하기 위해 동성애 ‘동’자도 모르는 어린아이와 무고한 시민을 모두 죽인 셈이 됩니다. 그 수십만의 희생자들 중에 독실한 기독교인이 단 1%만 있었다고 가정해도 하느님을 사랑의 하느님이라고 고백하는 기독교인이 수천명은 될텐데 그들에게도 하나님은 (성경에는 재난을 미리 경고해주는 내용이 많이 나옴에도 불구하고) “재난이 곧 닥칠 터이니 피하라”는 경고조차 주시지 않고 모두 죽이고 말았습니다. (재난에 대한 경고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주인공은 신이 아니라 지각변동과 기류의 변화를 읽은 과학자들이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런 폭력적인 신에 대한 의심에 쌓여있으면서도 교회를 떠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의심이 발전하여 신앙을 잃게 될 경우 가야 할 곳은 꺼지지 않는 불이 기다리는 지옥뿐이며, 어떻게 해서든 그곳에는 가지 말아야한다는 ‘무서운 설교’가 지금도 교회에서 계속 선포되고 있습니다.

신앙인들이 때로는 견디기 어려운 고통과 의문을 안고 목사님을 찾아가 그 괴로움을 토해내지만 대개의 경우는 ‘시험에 빠진 자’로 낙인이 찍혀 엄중 경고를 받게 됩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2000년 동안 계속 믿어온 신관에 감히 도전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두렵고 어려운 일이 되며, 많은 신앙인들이 의문과 불만을 묻어둔 채 결국 자신의 이성과 판단력을 교회에 갖다 바치고 더욱 교리에 세뇌되어 ‘안전한 신앙생활’, 아니 ‘안전한 보험’으로 도피하는 쪽을 선택합니다.


2. 기독교의 전통신관은 2000년 전 원시신앙인들의 어린 인식의 반영일 뿐이다

기독교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에서는 (발흥지는 근동지방이었지만) 르네상스 이후 이런 의심과 두려움에 적극적으로 맞서 합리적인 답을 시도해왔습니다. 그 결과 전통적인 신관이 객관적이고 실재적인 신의 계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천 년 전 원시신앙인(여기서 말하는 ‘원시’의 의미는 ‘미개한’이 아니라 ‘시간적으로 앞선’이라는 뜻입니다)들의 어린 인식의 반영이었다는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오늘날 지구마을의 기독교 신학자 가운데 원시신관을 그대로 정통교리로 수호하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전통신관에 의한 교리기독교를 떠받드는 신앙인도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지금은 유럽에서 교리기독교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매우 어렵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교리기독교’란 기독교의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원시 교리를 절대진리로 떠받드는 근본주의적 기독교를 말하는 것이며, 기독교의 교리 전체를 부정하는 의미로 사용하는 용어가 아닙니다.)

그러나 미국과 한국에서는 여전히 교리기독교가 기승을 부리며 마치 교리기독교가 기독교의 전부인양 인식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리기독교는 이미 사멸되고 있는 기독교의 잔재일 뿐 역사의 선택은 이미 배타와 독선에서 벗어나 지구마을의 이웃종교, 이웃문화와 상생발전하는 새로운 기독교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기독교운동이 바로 적극적인 사회참여로 세상의 존경을 받고 있는 해방신학, 민중신학 등의 실천신학운동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이웃종교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상생의 길을 찾는 다원주의운동으로도 발전하고 있으나, 미국과 한국의 근본주의 교회들은 여전히 이같은 운동을 이단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3. 이제는 “하느님은 누구인가?(Who is God?)”라고만 묻지 말고, “하느님은 무엇인가?(What is God?)”라고도 묻자.

어느 신학자는, 우리가 이제는 "'하느님은 누구인가?(Who is God?)'라고만 묻지 말고, '하느님은 무엇인가?(What is God?)'라고도 묻자."고 제안했습니다.

인간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하느님, 말을 안들으면 화를 내기도 하고 진노를 퍼붓기도 하며, 자기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이방민족을 가차없이 죽이는 하느님, 때로는 자기 백성이라도 말을 듣지 않는다 하여 수천명씩 몰살시키는 신은 ‘사랑의 하느님’과 양립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아니 이제는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확신, 그러니까 ‘하느님은 우리와 같이 감정(그것이 사랑의 감정이라 하더라도)을 갖고 계신 인격체’라는 확신도 내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이 존재로써의 격이 있다면 인격이 아니라 신격이어야 할 것이며, 그 신격이 초인격적일 수는 있겠으나 ‘사람과 같은 인격 안에 갇힌 존재’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천년 전의 원신신앙에서, 또한 원시신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저는 여전히 하느님을 믿고 있으나 제가 경외하고 믿는 하느님은 ‘우주와 자연의 법칙과 질서’이지 ‘인격을 가진 존재’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모든 기독교인이 저와 같은 신관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저마다 자기가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신관이 있듯이 저 역시 제 신관을 당당히 밝히고 싶고 존중받고 싶을 뿐입니다.

만약 제가 갖고 있는 신관을 많은 기독교인이 공유하게 된다면, 인류는 오래된 속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독한 종교갈등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며, 아이티 지진이나 쓰나미 사건에 대해 하느님께 책임을 묻거나 괴로워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단지 신의 뜻(자연의 질서, 또는 순리)을 ‘구하고’(연구하고) ‘찾고’(이성과 합리로 해결점을 찾아내고) ‘두드리면’(실제 해결을 위해 행동하고 참여하는 것)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의 많은 기독교인이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구하지도 않을뿐더러 찾거나 두드리는 일은 아예 포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구하고 구하고 또 구하지만, 즉 열심히 기도하지만 하느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연구하고 대처하며 실천하는 데는 미숙합니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이여, 이제는 이런 이기심과 두려움에 기반한 무모한 신앙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아이티 지진에 대해 신의 전능성과 사랑의 속성을 생각하며 하느님께 “어찌 된 것이냐?”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묻는 것은 아무 유익이 없을뿐더러 적절하지도 못한 물음입니다. 지난 이천년 아니 삼천년 동안 신의 사람들이 계속 이 문제를 붙들고 씨름했지만 신은 한번도 “이래서 그렇다”고 시원하게 대답해 준 적이 없습니다. 잘못된(또는 어린) 신관에 의한 잘못된 물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라도 우리가 “하느님, 당신은 누구십니까?”라는 물음에만 매달리지 말고 “하느님, 당신은 무엇입니까?”라고도 묻는다면, 신은 우리의 마음 가운데, 깨달음을 통해, 이렇게 응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네 벗(이웃종교인)들과 대화하고 배워라.
그들은 나를 여러 이름으로 불러왔다.
때로는 법(法)으로, 또는 공(公)으로, 이(理)로, 자연법칙으로, 우주정신(cosmic mind)으로..

너희들(기독교인)은 오래 동안 “나(기독교)만 옳다”는 생각에 갇혀왔기에
벗들과 대화하지 못했고 배우지도 못했다.
그러나 진리를 탐구하는 자는 모두 길벗으로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가까운 이웃과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는 나를 사랑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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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삶니다 (211.218.123.176)
2013-03-15 14:56:25
이사야의 망언
현대판의 이사야는 불의를 질타하고 정의를 이땅에 선포 하는 것이 아니라 불신, 불평,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와 같이 기독교를 부정 일변도 이다 이사야라 말하는 자의 자기모순이다 요즘 출연하여 망발하는 이사야는 자기가 주장하는 개독교 이사야 아닌가? 이 개독교 이사야의 망언이 끝나는 날 악인의 심판의 날이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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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124.76.43)
2013-01-18 11:04:52
사랑의 종교
저는 앞뒤 꽉막힌 교리주의한국교회에 숨이막혀 교회를 떠난 사람입니다.
우연히 웹서핑중 당당뉴스로 들어오다가 이 칼럼들을 죽 읽어나가면서 희망을 가져봅니다.
좋은글들 참 감사합니다.
전 하나님 존재가 신격이라 느끼는 사람입니다 또한 사랑의 종교가 어떻게 구현되어야할지 참 가슴 먹먹하게 느끼는 사람이지요. 시어머니 다니시는교회에서 하나님을따르지않아 북한주민이굶주린다고 했다는말 등등 가슴 미어지는 이곳에서 저는하나님의 왕국엔 종교도 종파도없으며 모든사람과 생명들이 하나님의 사랑스런 자녀라고 믿고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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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돌 (210.111.239.234)
2010-03-01 18:59:32
예수는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다
예수는 처음이고 나중이며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다 예수만이 길이고 진리이고 생명이다 모든 인간은 나나 너나 공자나 석가나 무두 길을 찾고 진리를 구하고 생명을 두드리는 자이지만 예수는 우리가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길자체이시고 진리 자체이시며 생명 자체이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 것이고 그는 죽음이 가두어 둘수가 없고 다시 살았다 만약 그가 죽어 나나너나 석가나 공자같이 무덤에 묻혀 뼈가루만 남았다면 아떻게 그에게 믿음을 찬양을 보낼수가 있는가 죽은 송장 뼈가루를 믿으란 말인가? 그것은 성한자가 하는 짓이아니고 정신이 나간자들 미친자들이 하는 짓이다 그보다는 살아있는 내가 훨씬 낫다 이 예수와 다른 인간을 같은 자리에 놓고 왈가 왈부하지 말라 캄캄한 밤중에 촛불은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전기불이 들어왓다 이제 촛불은 필요없고 꺼야하고 박물관에 진열하거나 고물상에 팔아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 오셨는데 그가 우리를 위해 죽었는데 다른 누구가 무엇이 더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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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돌 (210.111.239.234)
2010-03-01 18:47:06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신다
하나님은 하나의 신격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이치가 곧 하나님이라는 말은 천부당 만부당한 말입니다. 모세가 질문을 했읍니다 하나님은 누구냐고(who is God? ) 이 물음에 하나님이 대답을 햇읍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 l am who l am ) 내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런말을 할 수가 없읍니다 인간은 누가 있기에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능동태이고 인간을 비롯한 피조물은 수동태입니다. 하나님은 존능한자로 사랑의 하나님으로 존재합니다 다만 의문은 있읍니다. 나역시 똑같은 의문이 질문이 있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사랑이신 하나님이 왜 왜 내버려 두시는가?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의문입니다 의심과 의문은 다릅니다. 의심은 없읍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계시기에 의문이 있읍니다 하나님이 없다면 의문도 없읍니다 의문이 있을 필요가 없지요 하나님이 없는데 무슨 의문이 있읍니까? 하나님이 있기에 왜 이런일이 일어나는가? 의문을 가지는 것이고 이의문은 인간이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의문은 곧 부정이 아닙니다.의문은 알아서 풀어야 할 대상입니다. 이런 의문은 많읍니다 인간의 한계 인간이 모르는 것 그것이 바로 의문이 됩니다. 그리고 다원주의를 말하는데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자들은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 우리의 구주로 믿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아담의 후손이 아니고 성령으로 잉태하여 처녀를 통하여 오신 하늘에서 오신 하나님이 나은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이고 이는 결코 둘 셋이 될수가 없읍니다 오직 하나입니다 그래서 독생자(only Son) 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유일성은 기독교의 생명입니다 이 유일성을 버리면 그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예수가 평화가 아닌 칼을 준것은 바로 이 유일성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아담의 후손은 아담의 원죄로 모두가 죄인이고 죄인은 죽음이며 사형수입니다 이사형수를 살리기 위해서는 누가 대신 죽어야 합니다 피흘림이 없이는 사하심이 없읍니다 그런데 아담의 후손중에는 인간 중에는 죄인 중에는 나를 위해 죽을 자가 아무도 없읍니다 사형수가 사형수를 위해 죽을 수는 없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담의 후손이 아닌 죄인이 아닌 사형수가 아닌 예수가 오시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이를 부정하는 자 그가 어떻게 기독교 인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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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님 (222.121.169.117)
2010-02-14 12:41:58
조심하세요
조심하세요
하나님에 대해 함부로 씨부렁거리면 하나님은 더 참지 않으십니다.
할말 못할말을 가려서 해야지..이론..몹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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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71.255.101.252)
2010-01-31 08:17:17
화가나서 몇마디 .....
말같지도 않은 개소리나 하는 상태의 글에 시간들도 많이 허비 했구려! 정상적이지 못하여
짓는 개에개 짓지 말라고 한다고 마주 앉아 같이 떠들면 떠들면 짓는 개와 무엇이 다르리요.
기독교라 함은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것인데 인격이 없는 하나님이라고 떠들어대며 지진은 그냥 자연 재해라고 하면서 모든것이 우연이라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부정하는 창진이나, 삼국도 목사에게 한이 맺인 이사라는 가증스러운 아디를 쓴 인간이나 글 제목을 혐호 스럽게 만들어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려고 하는 괴ㅤㅍㅕㄱ증에 결벽증까지 겹친 환자나 다름없는 글 쓴자나 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대적하고 예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잡족에 속한 부류들이라고 한다면 너무 심한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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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붕 (211.228.34.133)
2010-01-29 18:52:24
이 암흑의 시대에....
이런 글을 대할 수 있어서....좋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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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21.129.19.207)
2010-01-25 00:47:26
네가 참.....돌겠다
참네씨 그대의 목사는 홍도 국도 선도 겠지 그럼 겨우 3년의 공생애속에
별로 한일이 없는 예수가 그대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죄때문에 되져야하는 우리를 구원하기위하여 예수가 죽어따구
그래서 그대는 개독중 상개독아닌가 먹사나 막사가 주딩이질하는것에
기만당하지말고 그들의 삶을 보시길 그대가 류 목사를 탓함은
그대의 무지를 드러내며 자랑하는것이며 지옥길의 지름길일쎄...명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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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네 (109.192.120.210)
2010-01-23 16:39:59
겸손합시다.
예수님이 믿고 아바라 부른 하나님은 구약의 하나님이었고 예수님은 아버지를 살인자라 부른 적이 없다. 유상태씨가 일하는 예수 동아리의 예수라는 이름을 떼어내고 목사라는 직함도 내놓고 말하는 것이 더 솔직한 태도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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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담 (121.130.231.67)
2010-01-23 12:57:07
책을 주위에 지인처럼 특히 신앙서적은 쌓아놓고 살지는 않지만
여전히 버리지 않는 책중에 2001년에 본 "예수는 없다"라는 책이있지요.
그때의 논쟁을 다시 보는 것 같아 감회가 새롭네요.
그리고 정상적인(?) 사고체계를 가지고 있다면 앞으로도 계속 될것 같은데

부디 당부하고 싶은 것은,
여기서 던져진 터무니 없는 것(?)이나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있다면,
지혜롭게 잘 준비하여 유사한 질문이나 생각 가지고 있는 이에게 잘 답변해주시길 바랍니다.
그들이 벽보고 애기하는 심정이 안들도록 말이죠.
그러할려면 그들이 왜 그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지까지 들어가셔야 할껍니다.

전가의 보도처럼 말하는 절대신앙을 지키는 좋은 숙제이지 않을까 합니다. ^^
참고로 전 아직 숙제 다 못풀었고요, 그래서 대신 잘 풀어주었으면 하는 치사한 마음으로 적은 면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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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21.129.19.207)
2010-01-22 20:56:03
그대들이 하나님이라는 말인가
맹신하는자들의 드러나는 그들의 한계...하나님 은 이런것이다 라는 그들의 한계
하나님의 마음보다 존제적 의미로 해석하며 사기치며 장사하고자하는 막사와 먹사와
맹신자들 그래서 이땅의 기독교는 개독교 아닌가...감리교 개독의 정점에는 선도 홍도
국도가 있음 아는이는 다 알것이다....예수를 죽이는 자들아
류목사님.......개독이 소멸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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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 (115.41.59.127)
2010-01-22 14:19:47
안타깝고 씁쓸하네요
"제가 경외하고 믿는 하느님은 ‘우주와 자연의 법칙과 질서’이지 ‘인격을 가진 존재’는 아닙니다."
이 고백에 의하면 성경에서 이야기되는 죽음 이후의 세계라는 것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와 죽음 이후의 두 경우가 있는데, 전자만 있고 후자는 거짓말입니다.
영생도 이 땅에서와 죽음 이후의 두 경우가 있는데, 마찬가지입니다.

요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안다고 하며 그것을 소망하는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고 적었습니다(요일 3:2-3).
이 또한 한마디로 헛소리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란 없는 것이라는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이 땅과 관련하여서 강조합니다.
다만 지난 과거의 한 위인에 대해 듣고 그를 본받으려고 하는 차원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고 계십니다"(갈 2:20).
고대에 원시 사고를 가진 한 인간의 되도 않은 헛소리일 뿐입니다.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하면 그나마 그렇게 생각하는가 보다 할텐데 기독교인이라면서 그렇게 말하니 안타까우면서 씁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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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 (211.106.111.75)
2010-01-21 16:26:35
아! 아젠 정통성 을 원시 신앙 이라 하는구나....
그러군요!
현시대의 재해석 그런거 아닌 성경의 정통성 성경 그대로를 믿는 우리에게 "원시신앙" 자
라 그리 부르는군요.....

주님! 이들의 의견 이해가 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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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 (211.172.69.254)
2010-01-21 14:02:08
아주 좋은 말씀입니다.
한국에도 이런 열린 사고를 지닌 목사님이 계시다는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근본주의자들은 아직도 원시신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배타적 사고를 버리지 못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그런 목사를 추종하는 어리석은 신도들이 많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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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자 (121.73.203.84)
2010-01-20 18:53:57
류상태 목사님은 자신이 만든 하나님을 믿는 듯
생각은 자유이지만,
하나님께서 류 목사님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외에도 구원이 있다는 종교적 다원주의는 세상이 말세라는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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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 (211.106.111.75)
2010-01-20 18:01:06
껄쩍지근 합니데이-
아주 좋은 글 입니다.
그런데! 명확해야 하는것은 아니나, 대강의 결론 아니면 생각의 취합정도....도 아니고...
결국 은근히 NCCK 쪽의 성향으로, 시각으로 글을 중간에 몰아가네요...ㅠㅠㅠ

전 생각이 다릅니다.

성경?
희랍어----> 영어---> 한글 로 재탕되면서 사실 그 문체나 단어 에서 많이 틀린 부분이
전해져 온것 만큼은 사실 입니다.
그래서 많은 신학자들도 원문을 해석하고 나서는 좀 많은 고민을 합니다.

그리고 구약/신약 전체의 역사와 과학적으로 공룡시대부터 운운하는 역사의 차이는
매우 큽니다.
그래서 전문가들도 일부 고민이 많습니다.

자!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것은 고지식하지만 성경 그대로를 믿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고지식 하지만 다른종교를 이해는 할수 있지만, 받아 들이지 말아야 한다는것 입니다.

이시대의 성경 재해석???
금지품목 입니다!!!
다원종교??? 안됩니다!!!

글쓰신분 뭐하시는 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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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자 (124.60.171.48)
2010-01-20 17:25:30
살인 하셔야, 좋은 하나님 이신줄 모르는 범법자들
왜 이 나라는 지진이 안 일어나는가!! 하나님도 너무하신다. 저 높은 빌딩, 관공서와 아파트가 한순간에 다 무너져 내렷으면 차라리 좋겠다. 바울도 그런 심정이엇지 않은가!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고.. 요즘 목사들이 세상에서 평안히 넉넉히 사니, 지진일어난게 살인 같겠지. 류상태목사님, 지진이라도 일어나길 원하는 비참한 사람들이 이따에 얼마나 많은지 아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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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담 (121.130.231.67)
2010-01-20 16:48:15
제목 가지고 운운하시는분들...
제목이 담고 있는 상징을 바라봐주십시요.
문자 그대로 보면
예수보고 뭐라 하고 자기 옷찢던 바리새인과 다를 바 없지 않나요?

그나저나 "하나님은 인격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는
제가 반문해보지 못한 도전입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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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총강 (65.46.143.62)
2010-01-20 16:12:27
온유함으로 !
자극적이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듯한 제목을 내려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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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대언자 (124.60.171.48)
2010-01-20 15:59:54
아담의 죄이후 땅은 저주 받았다. 자연재해가 당연
예수 믿는 다고 잉태의 고통없이 애를 날 수있겠나? 기독교인 이라고 비 안 맞고 살수 있나? 땅은 창세기 이후 저주를 받아 원래부터 인간을 배반 하였다. 고로 이 땅에서 살 동안 예수 안 믿는 다고 지진 피해 당하지 않는 다는 건 있을 수 없는 바보같은 소리다. 자기가 멀쩡하다고 재난 당한 사람 죄인 취급하는 건 정말 싸가지 없는 소리다. 아직도 그런 목사들이 있으니 개독교 소리 듣는거 아닌가! 그런 멍청한 소리 하는 사람, 아이티에 가서 구조하다 죽던지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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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 (115.41.59.127)
2010-01-20 13:48:27
참 피곤한 대언자 그리고
아이티의 지진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하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과거의 쓰나미에 대해서도 그런 소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국가 단위이던 옛 언약 시대에는 자연을 통한 국가적인 하나님의 심판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나 이스라엘과 관련하여 악을 행한 어떤 국가에.
신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국가 단위가 아닙니다. 교회입니다. 심판은 촛대로 옮기거나 토하여 내치는 것입니다.
비신자들에 대한 심판은 별도로 이야기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벗어나지 않지만 직접적으로 개입하셔서 어떤 일을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라면 그 심판의 정도를 경감시키려는 모든 시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에 내려진 심판, 40년의 광야 생활, 이스라엘의 멸망과 70년이 찬 이후에 돌아오게 됨.
하나님의 심판이라면 복구를 위한 구호 활동도 잘못된 것이 됩니다.
심판을 그대로 받아야지 그것에 어긋나는 인간의 행동은 심판에 대한 거역으로 또 다른 범죄가 됩니다.

아이티의 지진은 하나님의 심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자연 재해일 뿐입니다.
이는 상식적인 수준의 합리적 사고만 되면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구호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특히나 기독교회가 앞장서서 최선을 다하여야 합니다.
이 일에 적극적으로 나선 분들에 아무런 질병이나 사고가 없이 구호를 마치고 무사히 돌아오시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신자들이 상식적인 수준의 합리적인 사고가 되면 정말 좋겠습니다. 꼭 되어야 하는데... 좀 감감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서 안타깝기만 합니다.

물론 위의 글도 어느 면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자연 재해는 자연의 법칙에 의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연 재해는 많은 경우에 인간들이 이제껏 잘못된 행동을 하여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연 재해에 대한 대처를 제대로 못하는 것은 인간의 책임이지 하나님의 책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자연 재해를 막으면 사랑이고 그렇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라는 식은 유치한 소리일 뿐입니다.
자연은 자연이고 자연에는 법칙이 있어서 그 법칙을 따라 움질일 뿐입니다.
사람은 그 법칙을 바르게 알고 그 자연과 바른 관계를 가지도록 하여야 하며 자연이 그 법칙을 따라 일으키는 재해에 대해 바르게 대처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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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언자 (116.47.26.61)
2010-01-20 13:04:35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계16:8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계16:9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계시록에 기록된 네 번째 대접 재앙에 대한 말씀입니다.

훼방(毁謗) = 남을 헐뜯어 비방함.
대접을 가진 넷째 천사가 그 대접을 해(태양)에 쏟으매 해가(태양이) 권세를(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받아 불로(태양의 뜨거운 불로=태양이 매우 뜨거워지는 것을 말함) 사람들을(이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태우니, 사람들이(이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하나님, 당신을 살인자로 고발합니다.” 등의 참람한 말로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하나님이 있으면 태양을 왜 이렇게 뜨겁게 하여, 사람들을 못 살게 괴롭히고 죽게 하느냐.”라는 등의 말로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기독교인들이 성경말씀에 기록된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여=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이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는 것임) 영광을 주께(하나님과 예수님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지금 아이티에 지진이 일어나서 아이티 사람들이 재앙 당하는 것을 보고도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지은 죄를 회개하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 당신을 살인자로 고발합니다.”라고 하는 하나님 앞에 참람한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성경말씀(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깨닫지 못한 이런 부류의 기독교인들은, 앞으로 해가 뜨거워져서 이 지구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태워서 죽이는 재앙이 일어나면, 회개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도리어 하나님을 훼방하는 말을 반드시 하게 될 것입니다.


시49:20 존귀에 처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

존귀에 처하나(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만물을 다스리게 한 존귀한 자들이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성경말씀(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성경말씀(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 당신을 고발합니다.”라고 하는 어리석을 자들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백 보좌 심판을 받은 후에 유황 불못에 들어가는 짐승같도다).

기독교인들을 성경말씀(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깨달아서 자신들의 지은 죄를 회개하여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지혜로운 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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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언자 (116.47.26.61)
2010-01-20 12:22:39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눅13: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눅13: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또 아이티 지진으로 죽은 사람들이 한국의 모든 기독교인들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말하노니, 아니라 한국의 기독교인들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기독교인들이여!
이런 재앙이 ‘아이티’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도 닥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자신을 돌아보고 잘못된 신앙을 회개하고 돌이켜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일을 당하기 전에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은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지은 죄를 중심으로 회개하고 돌이키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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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언자 (116.47.26.61)
2010-01-20 12:05:41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잠1:24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잠1:25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잠1:26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잠1:27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잠1:28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잠1:29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잠1:30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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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언자 (116.47.26.61)
2010-01-20 12:01:02
아이티의 지진은 노아의 홍수에 비하면, 재앙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 홍수 때에 노아의 가족 8명 만 살리고, 그 외의 사람들은 다 죽이지 않았습니까?

류상태 씨는 아이티의 지진으로 하나님을 고발할 것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노아의 홍수를 읽었다면, 노아의 홍수의 재앙을 내린 하나님을 이미 오래전에 살인자로 고발했었어야 할 것입니다.

아이티의 지진 정도는 노아의 홍수에 비하면, 재앙이라고 할 수도 없는 수준입니다.

노아의 홍수로 지구의 모든 사람을(노아의 가족 8명은 제외) 죽인 것이, 아이티의 지진보다는 더 끔직한 재앙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을 살인자로 고발하려면, 류상태 씨보다는 노아가 먼저 하나님을 살인자라고 고발(누구에게, 어디에 고발하는지는 모르겠지만)해도 했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을 살인자로 고발하겠다.”는 그러한 참람한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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