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단의 긴박한 현실에 대한 우리의 입장


프로테스탄트 신앙인에게 있어 매년 10월은 아름답게 물든 단풍을 보고 즐기기엔 더 절박한 무엇이 있다. 권력집단이 되어버린 당시 교회 앞에 95개조 항목을 걸고 “내가 여기 서있다”라고 외친 마르틴 루터의 항변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감리교회 역시 ‘종교개혁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당위 속에서 생겨난 신앙운동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신이 세운 감리교회가 역사에서 지워지는 것보다 감리교 정신이 사라질 것을 염려했던 웨슬리가 가슴속에 살아있기에, 감리교단의 현 사태에 대한 교수들의 고뇌는 한없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감리교회를 섬기는 감신대 교수들은 개인과 관계된 정치적 관점과 판단을 떠나 감리교단의 새로워짐을 위한 입장을 교회현장과 제자들 앞에 천명하고자 한다.


주지하듯 감리교회는 지난 1년간 감독회장 선거 후유증으로 세간의 조롱거리가 되어 왔다. 더더욱 신앙인의 마지막 자존심도 팽개친 채 법정의 판단으로 간신히 방향을 잡은 듯 했던 본 사안이 다시금 권력욕 내지 바리새적 자기 정당화로 인해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감독회장직을 원하는 목사들 간의 이해관계, 계파 간 유 불리를 따지는 소아적 발상이 올해 10월 총회를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는 판단이다. 감리교회의 현 사태는 분명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오랜 기간 누적되어온 상처가 곪아터진 것이라 보아야 옳다. 하지만 금번 사태는 감리교단의 총체적 생명을 위협하는 중증의 상태라 하겠다. 사람만 바꾸고 제도만 손질한다고 해서 죽어가는 생명이 소생할 수는 없는 법이다. 본래 목사란 ‘가지 않는 길’을 남겨 놓은 존재들이 아니던가?

남들 가는 넓은 길 마다하고 좁은 길을 찾았던 그 때의 초심으로 돌아갈 때만 하나님은 우리의 어머니, 감리교회의 생명을 은총으로 소생시키실 것이다. 누구라도 자신을 적임자로 칭하기 전에, 혹시라도 제도를 고쳐 권력을 얻고자 하기 전에 자신들을 먼저 내려놓아야 마땅할 것이다. 인간의 욕심을 그칠 때 비로소 ‘신을 향한 여정’이 시작될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이런 전제하에 우리 교수들은 올바른 리더십을 창출할 수 있는 ‘감리교 제도개혁’을 절박하게 요청한다. 차제에 금권 및 학연에 얽힌 선거풍토를 근절하는 엄격하고 바른 제도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디모데 서에 쓰인 대로 진리를 분별하여 부끄러울 것 없는 일꾼만이 우리의 지도자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감독직의 연한이 어떠하든지 간에 ‘선거권을 지닌 주체’를 새롭게 인정하는 일이 급선무가 아닐 수 없다.

왕이 되고자 했던 “가시나무”처럼 망령되고 헛된 말을 하는 지도자를 가려내려면 무엇보다 ‘선거인단’이 재구성되어야만 한다. 이는 목회자와 평신도의 성별, 연령별, 직급별 조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말이다. 모두가 절감하듯 우리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개혁을 위한 부르심’에 직면해 있다. 위기를 기회로 살리지 못하면 감리교회는 사회로부터도 배척을 받아 발붙일 곳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장래 목회자를 키워 배출하는 소임을 지닌 우리 교수들이 깊이 염려하며 입장을 밝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이 맥락에서 우리 교수들은 ‘재선거’ 등 임시방편적 절차를 단순히 되풀이하기 보다는 문제의 근원을 철저히 파헤쳐 올곧게 바로잡기 위한 일련의 근본적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한다. 종교개혁의 시기에 현 사태의 신앙적, 역사적 의미를 진지하게 숙고한다면 폐부까지 뚫고 들어가는 개혁을 앞세워야 마땅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람과 제도를 동시에 바꿀 수 있는 신앙적 길을 택하는 것이 현 사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된 분들의 책무임을 확신한다. 제도를 통해 사람이 바뀌고 사람을 통해 제도가 달라질 때 우리 감리교회는 신학과 목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갖고 세상을 섬기되 그를 구원하는 역할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감리교 현실을 보고 절망하는 제자들, 순수하고 헌신적인 평신도들에 대한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다.

하지만 빠르고 적당하게 문제를 수습하는 것만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님을 믿고 인내하며 기도하길 부탁드린다.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10월, ‘불편한 진실’ 앞에서 애써 불편함을 감출 것인지, 아프지만 진실을 더욱 드러낼 것인지를 하나님 앞에서 고뇌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열망하며 교수들의 소견을 밝히는 바이다.

2009년 10월 20일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수들
이정배 ․ 송순재 ․ 이원규 ․ 이덕주 ․ 서창원 ․ 심광섭 ․ 박충구 ․ 오성주 ․ 이환진 ․ 임진수 ․ 장왕식(무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