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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길, 헤롯의 길미리보는 교회력설교/ 오순절 후 여섯째 주일(20090712)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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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07월 08일 (수) 09:05:05
최종편집 : 2009년 07월 08일 (수) 11:37:22 [조회수 : 2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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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후 여섯 번째 주일(20090712)
성서일과/ 시 85:8-13; 암 7:7-15; 엡 1:3-14; 막 6:14-29
본문/ 마가복음 6:14-29
요한의 길과 헤롯의 길

   
          (막 6:14-29) 『[14]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 왕이 듣고 가로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운동 하느니라 하고 [15] 어떤 이는 이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이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 [16] 헤롯은 듣고 가로되 내가 목 베인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 [17]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18]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동생의 아내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19] 헤로디아가 요한을 원수로 여겨 죽이고자 하였으되 하지 못한 것은 [20]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느끼면서도 달게 들음이러라 [21] 마침 기회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 새 [22]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및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여아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너 원 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23] 또 맹세하되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 [24] 저가 나가서 그 어미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미가 가로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25] 저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가로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한대 [26]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을 인하여 저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27]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28] 그 머리를 소반에 담아다가 여아에게 주니 여아가 이것을 그 어미에게 주니라 [29]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오늘 주어진 성서일과의 공통된 주제는 하나님이 의를 사랑하시고 불의를 미워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자의 예배를 기뻐하심으로 복을 주시는 시는 분입니다.
불의한 자의 예배를 싫어하시고 심지어 저주하시기까지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의 참뜻을 알고 그렇게 예배하는 자가 되리라 다짐하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봉독한 본문은 의로운 자가 불의한 자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의로운 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의로운 자의 죽음에 아무 간섭도 없이 두고 보시는 것이 이상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이상한 일이 너무나 자주 일어나는 곳입니다.
알고 보면 이상할 것도 없습니다.다.
예수님이 가라지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가라지는 세상에 뿌리내리고 있는 악을 말합니다.
          (마 13: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가 왜 생겼습니까?
          (마 13: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사람들이 깨어 있지 못하고 잠들어 알지 못할 때에 사단이 뿌렸습니다.
알곡의 씨를 뿌린 이는 누구이겠습니까?
밭의 주인이신 하나님이십니다.
원치 않게 생긴 가라지를 어떻게 하라고 하십니까?
          (마 13:29)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 하노라』

언제까지 그렇게 기다려야 합니까?
          (마 13: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그렇습니다.
가라지는 반드시 뽑혀져 아궁이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다만 아직은 그 때가 아니기 때문에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추수 때가 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임박해 있습니다.
          (요 4:35)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가라지의 기세는 강하기 마련입니다.
마지막이 가까움을 스스로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헤롯과 세례요한을 통해 알곡과 가라지, 선과 악을 선명하게 대비시키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광야의 사람과 궁전의 사람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였습니다.
그가 입은 것은 약대 털옷이요, 먹는 것은 메뚜기와 석청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에 거할 때를 생각나게 합니다.
이스라엘은 그 시절을 이렇게 기억합니다.
          (느 9:20-21) [20] ... 주의 선한 신을 주사 저희를 가르치시며, 주의 만나로 저희 입에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의 목마름을 인하여 물을 주시사 [21] 사십년 동안을 들에서 기르시되 결핍함이 없게 하시므로 그 옷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사오며

한 마디로 이스라엘은 주께서 주시는 것으로만 살았지만 모자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선한 신을 주사 가르치셨다는 말씀과 요한이 광야에서 외쳤다는 말씀이 연결됩니다.

만나로 먹이시고, 물을 주셨다는 것은 농사를 짓거나 우물을 파서 물을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공급하시는 것을 먹고 마셨다는 것입니다.
요한이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는 말씀과 상통하는 것입니다.

그 옷이 해어지지 않았고, 발이 부릍지 않았다는 말씀은 길쌈하여 옷을 지어 입은 적이 없었지만 옷이 없어 벗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요한이 약대 곧 낙타의 털로 된 옷을 입고 살았다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의 사람 곧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헤롯은 어떤 사람입니까?
왕 곧 궁전의 사람입니다.
그가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은 광야의 사람과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권세 있는 자가 입는 것은 자색 옷과 세마포로 공교하게 짠 옷입니다.
먹는 것은 기름지고 풍족하였습니다.
그의 삶은 한 마디로 잔치하는 삶이었습니다.
          [21] ...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 새...

헤롯의 삶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에 나오는 부자를 생각나게 합니다.
          (눅 16: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광야의 사람 요한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고 사는 이스라엘과 같습니다.
궁전의 사람 헤롯은 땅에 창고를 짓고 그 영혼을 향해 평안하기를 바라는 부자와 같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을 유업으로 받았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은 새 이스라엘은 천국을 약속으로 받았습니다.

부자는 죽어 지옥에 떨어졌습니다.
물 한 방울에 목을 매다가 아브라함에게 말합니다.
나사로를 보내어 내 형제들로 이곳에 오지 않게 해 달라고....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사는 자 곧 광야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광야의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바울이 말했습니다.
          (고후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광야의 사람은 땅에서 만족을 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광야의 사람은 하늘로부터 오는 은혜를 사모하는 자들입니다.
역시 광야의 사람이었던 모세에 대해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히 11:24-26)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궁전의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한결같은 소망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악한 길로 빠지기 쉬운 길입니다.
땅에 집을 짓고, 창고를 지으며, 우물을 파느라고 정작 돌아갈 본향을 잃어버리는 길이 되기 십상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삶은 광야의 삶입니다.
가난한 듯해도 실상은 부요하고, 근심이 많은 것 같아도 남들이 모르는 기쁨이 더 크고, 아무 것도 없는 듯 보여도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삶입니다.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속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하늘로서 우는 상이 약속된 삶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광야의 사람으로 사는 일을 괴로워하지 않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말씀을 따르는 사람과 소리를 따르는 사람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말씀은 하늘로부터 비롯되고, 소리는 땅에서 생겨납니다.
말씀을 듣는 자는 적으나, 소리는 누구나 들을 수 있습니다.
말씀은 영으로 듣고, 소리는 귀로 듣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소리에 마음을 바꾸는 일은 쉬우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따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세례요한은 외치는 자였습니다.
그는 외침으로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외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누구나 들을 수 있는 소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였습니다.
그의 음성은 사람의 소리였으나 그 소리에 담긴 것은 하나님의 영이었습니다.

요한이 외치는 소리는 온 이스라엘에 들릴 만큼 컸습니다.
그가 독사의 자식들이라 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도 그에게 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요한의 소리를 듣는 자들 중에는 그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라고 믿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오시자 그는 몸 둘 바를 모르고 말했습니다.
          (마 3:14) 『...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예수님이 내가 네게 세례를 받음으로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옳다고 하시자 요한은 두 말 없이 주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모든 의를 이룬다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자였습니다.

헤롯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보다 정욕을 따라 살며, 사람의 소리를 듣는 자였습니다.

헤롯의 본부인은 아랍 왕의 딸 곧 공주였습니다.
헤롯은 그 부인을 못 생겼다는 이유로 쫓아내 버렸습니다.
그리고 동생에게 죄를 씌워 멀리 쫓아 버리고, 동생의 아내였던 헤로디아를 빼앗아 자기 아내로 삼은 파렴치한 사람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이런 부도덕한 일이 벌어지는 것을 참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절대 권력을 지닌 임금이 하는 일이었지만 요한은 헤롯을 욕하고 저주했습니다.
땅의 권세를 지닌 헤롯이 이를 불쾌하게 여겨 그를 잡아 들였습니다.
차마 죽이지 못한 것은 그에게도 일말의 양심이라는 것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이를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20]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느끼면서도 달게 들음이러라

그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귀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는 말씀을 따라 살지 못했습니다.
요한의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를 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요한의 말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전혀 듣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헤롯의 아내가 된 헤로디아였습니다.
그녀는 요한의 말을 듣고 독한 원한을 품었습니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월에 서리가 내린다고 하지 않습니까?
원한을 품고 있던 그녀에게 좋은 기회가 닥쳤습니다.
본문 21절에 ‘마침 기회 좋은 날이 왔으니...’ 한 말씀은 헤로디아의 입장에서 본 것입니다.
그녀는 본문에서 말하는 대로 기회를 잘 살려서 요한의 목숨을 빼앗았습니다.
요한의 목을 쟁반에 담아서 가져갔다고 했으니 얼마나 독한 여자였는지 짐작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머거리인 헤로디아는 그렇다 쳐도, 요한의 말을 들을줄 알았던 헤롯은 어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줄 알았지만 결국 사람의 소리를 따르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헤로디아의 딸 곧 조카딸의 말을 듣고 광야의 사람 요한의 목을 베는 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복음을 전하다가 유대인들에게 잡혀 간 적이 있습니다.
다시는 예수의 이름을 들먹이지 말라고 관원과 장로들이 협박하자 말했습니다.
          (행 4: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베드로와 요한은 죽이겠다는 협박 앞에서도 하늘로부터 온 말씀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죽이겠다는 사람의 소리보다 살리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인 것입니다.
그러나 헤롯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옳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지 않고, 사람의 소리를 따라 살았습니다.

바울도 말했습니다.
          (살전 2:4)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의 소리는 우리에게 사람에게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면 그만이지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의식해서 괴로워 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고 우리를 유혹하고, 때로 그렇게 살다가 언제 좋은 날을 보겠느냐며, 평생 헛고생하는 것이라고 협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헤롯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자 헤롯은 세례 요한을 떠올렸습니다.
          [14] 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 왕이 듣고 가로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헤롯의 생각은 유별난 구석이 있었습니다.
          [15] 어떤 이는 이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이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 [16] 헤롯은 듣고 가로되 내가 목 베인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랐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자기가 목 베었던 그 사람, 세례 요한이 살아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있습니까?
헤롯의 영혼 깊은 곳에 지워지지 않은 흔적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애써도 지워지지 않는 흔적입니다.
헤롯은 요한을 목 베어 죽인 후 영혼에 깊은 상처를 받고 살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자 보이지 않던 그 흔적이 솟아올라서 헤롯을 괴롭게 했다는 것입니다.

헤롯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자가기 죽인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죄 없는 요한을 죽인 죄책감이 헤롯의 마음속에 자리를 잡고 떠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의 몸은 궁중에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어두운 감옥에 있는 것과 같았다는 말입니다.
아니 그것은 차라리 지옥이라고 해야 좋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지옥은 깨지 않고 이어지는 악몽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헤롯은 살아서 지옥에 사는 고통을 겪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헤로디아와 같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를 가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더 괴로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말씀을 듣지 못하는 자는 죽어 지옥에 가는 형벌을 받겠으나,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을 따라 살지 못하는 자는 살아서 지옥을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말씀을 듣는 귀가 열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주의 말씀을 무겁게 여겨 그 음성을 따라 사는 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땅 밑으로 꺼지는 사람과 하늘로 올리우는 사람의 차이가 있습니다.

헤롯은 죽을 때까지 이스라엘의 왕 노릇을 하지 못했습니다.
조카딸에게 내 나라의 반이라도 떼어 주겠다고 큰 소리쳤습니다만 사실 그의 자리는 로마의 황제에게 뇌물을 바치고 얻은 자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내 나라라고 했지만 자기 나라가 없는 꼭두각시 임금이었던 것입니다.
또 그가 다스리던 곳도 유대 땅 전체의 사분의 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그를 일러 분봉왕 헤롯이라고 한 것입니다.
분봉왕이라는 것은 나라를 나누어 다스리도록 임명받은 왕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나라조차도 영원하지 못했습니다.
영원하기는커녕 죽을 때까지도 유지하지 못하고 쫓겨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로마의 황제가 바뀌자 헤롯은 그 자리에서 쫓겨나 야만족들이 사는 갈리아로 추방된 것입니다.
그가 쫓겨난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그의 부도덕함이었습니다.

그가 왕이었을 때 그의 영혼은 이미 지옥의 고통을 맛보고 있었으나 육신만큼은 궁전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육신조차도 원치 않는 곳으로 옮겨졌습니다.
영과 육이 함께 고통 받은 곳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어땠습니까?
예수님이 요한을 두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1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 라도 저보다 크니라』

땅에서 가장 큰 자라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는 말씀입니다.
얼핏 크고 작은 순서를 따지는 말씀인 것 같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게 아닙니다.
천국에 있을 수만 있다면 크고 작은 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성경은 말합니다.
          (시 84:10)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가장 작은 자로 천국에 사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자로 지옥에 사는 것보다 천 배나 낫다는 말입니다.

다른 방법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주님이 즐겨 쓰신 역설의 방식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 20:26-27)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 천국의 사람으로 예정된 자들을 일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섬기는 자가 크게 되고 종이 되어야 으뜸이 되리라고 하십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크고 작은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섬기고, 모두가 모두의 종이 되며, 모두가 큰 자가 되고, 으뜸이 되는 곳이 천국인 것입니다.
천국에서 가장 작은 자는 거꾸로 가장 큰 자라는 뜻인 것입니다.

헤롯은 요한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헤롯은 가장 불쌍한 자가 되었고, 요한은 땅과 하늘에서 가장 큰 자가 되었습니다.
요한의 뒤를 따라 천국에 사는 자들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심으로 가는 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소망하는 것은 헤롯과 같이 궁전에 사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광야의 사람입니다.
광야의 사람은 하늘로서 오는 것을 사모하고 그로써 만족하고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광야의 사람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듣는 소리는 사람의 소리입니다.
설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가 있어도 애써 음성을 무시하고 사람의 소리를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 주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은 주의 말씀을 듣고 그 음성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하늘의 소리를 따라 사는 자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광야의 사람, 말씀을 따라 사는 사람의 결국은 영광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자가 지닌 영광보다 천 배나 큰 영광입니다.
세상의 영광은 사라질 영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위에서 주시는 영광은 영원한 것입니다.
요한은 악한 권세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은 그를 더욱 큰 영광으로 영원하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가나안에 눈앞에 둔 이스라엘에게 말했습니다.
         (신 11:2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약속의 땅에 두 산이 있습니다.
자주의 산과 축복의 산입니다.
헤롯의 길은 저주의 산 에발산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요한의 길은 축복의 산 그리심산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그리심 산으로 가는 길은 험하고 좁습니다.
요한이 헤롯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길로 가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말했습니다.
          (벧전 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의 길로 가시기를 바랍니다.
당장 힘들고 어려워도 기뻐하며 감사하며 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 재림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는 자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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