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아버지 박응남 권사.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시기 전 2년 동안을 문 밖 출입을 하지 못하고 병석에 누워 계셨다. 온 몸의 장기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해 병원에서도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병이 악화되셨다. 기침을 심하게 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 옆에 늘 붙어 계시며 병 수발을 드셨다. 아버지가 기침을 하면 어머니는 얼른 휴지로 가래를 닦아드렸다. 소화가 안 되어 된 밥을 잡숫지 못해 어머니는 멀건 죽을 쑤어 손으로 아버지 입에 넣어드렸다. 아버지 병세가 점점 악화되어가자 아버지는 칼끝처럼 예민해지셨다. 시도 때도 없이 밀려오는 고통으로 밤을 꼴딱 새우기 일쑤였다.

아버지의 신경은 점점 날카로워지셨고 주문은 점점 많아졌다. 아버지를 요에서 일으켰다가 답답해하시면 또 벽에 기대게 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끊임없는 요구에도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아버지의 손발처럼 움직이셨다. 그때 내 나이 26살, 신학교 3학년 때였다. 나는 그런 아버지가 싫었다. 외출하고 돌아와 내 방에 들어오면 아버지의 기침소리가 들렸다. 이따금 어머니를 나무라시는 소리도 들렸다.

집안은 언제나 쥐죽은 듯 조용하고 찬바람이 불었다. 어머니는 힘드실 때마다 찬송가를 부르셨다. 나는 그때 두 가지 큰 갈등에 사로잡혔다. 과연 내가 믿는 하느님은 살아계시는가? 그런데 어찌하여 예수밖에 모르는 나의 아버지가 저와 같은 고통을 당한단 말인가? 저렇게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지내며 어머니와 집안 식구 전체를 힘들게 할 바에야 차라리 빨리 돌아가시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내 방에 틀어박혀 꼼짝을 안 했다. 아버지의 기침소리가 듣기 싫어 라디오 볼륨을 크게 틀어놓았다.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아버지의 부재부터 확인하고 은근히 아버지가 돌아가시길 바랐다. 내 몸과 마음은 아버지의 긴 투병생활에 지쳐 있었고,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 친구 집에서 잠을 잘 때가 많았다.

1981년 11월 28일, 그날도 친구 집에서 외박을 하고 일어났는데 첫눈이 내렸다. 첫눈치고 많은 눈이 내렸다. 그런데 왠지 마음이 불안했다. 골목 공중전화 부스로 달려가 집으로 전화를 했다. 전혀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린다. 이상해서 “거기 잠실 아니에요?” 하고 물었더니 “너 철이니? 네 아버지가 오늘 새벽에 돌아가셨다”고 하는 것이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서대문에서부터 잠실까지 전철을 타고 가는데 한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아버지의 부재를 실감했기 때문이었을까? 장남인 내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장례식을 치르는 날에도 함박눈이 쏟아졌다.

▲ 어머니의 풍금 반주에 맞춰 아버지가 찬송을 부르신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새벽, 아버지는 수차례 나를 찾았다고 한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셨을까? 그러나 어머니는 내가 있는 곳을 모르셨다. 어머니와 막내 동생이 아버지의 임종을 지켰다. 어머니와 동생이 얼마나 당황했을까?

나도 이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나이에 가까워졌다. 아들 둘에 딸 하나가 내 자식들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피붙이들이다. 어린 내 새끼들이 감기라도 걸려 밥을 거르거나 기침이라도 하면 차라리 애비 된 내가 대신 아팠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아프면 아플수록 그런 생각이 더욱 절실해진다.

나이 50중반, 지천명의 나이가 지나 이제 부모의 마음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28년 전 나의 아버지는 얼마나 아프셨을까? 얼마나 괴롭고 답답하셨을까? 자식들에게 경제적인 부담이 될까봐 변변한 치료도 받지 못하고 가셨는데, 나는 내 새끼들이 조금만 아파도 병원으로 데리고 간다.

다 늦게 철이 드는 것인가. 요즘 들어 아버지가 무척 보고 싶다. 그리운 나의 아버지! 이 못난 아들을 용서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