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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히 할지니라미리보는 교회력 설교/오순절 후 넷째주 20090628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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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06월 22일 (월) 21:30:55
최종편집 : 2009년 06월 22일 (월) 22:25:34 [조회수 :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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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후 네 번째 주일(20090628)
성서일과/ 시 130; 삼하 1:1,17-27; 고후 8:7-15; 막 5:21-43
본문/ 고후 8:7-15

풍성히 할지니라

   
          (고후 8:7-15) 『[7]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8]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코자 함이로라 [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10] 이 일에 내가 뜻만 보이노니 이것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 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11] 이제는 행하기를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성취하되 있는 대로 하라 [12]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 [13] 이는 다른 사람들은 평안하게 하고 너희는 곤고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요 평균케 하려 함이니 [14] 이제 너희의 유여한 것으로 저희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저희 유여한 것으로 너희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평균하게 하려 함이라 [15] 기록한 것같이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은 풍성하신 분입니다.
오늘 우리가 주 앞에 예배할 수 있는 것도 그의 풍성하신 인자 곧 인애와 자비 때문입니다.
          (시 5:7)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리이다』

이 은혜를 알고, 예배하는 자를 위해 준비하신 은혜와 능력도 풍성하기만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 교인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엡 1:18-19) 『[18]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오늘 예배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바울의 기도대로 이루어지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고린도 교회의 교우들에게 기근이 닥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연보할 것을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이 권면은 8장과 9장에 걸쳐 길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울은 8장 1-5절에서 먼저 마게도냐 교회의 연보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고후 8:1-2) [1]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마게도냐 교인들은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형편이 넉넉하고 여유로워서가 아니었습니다.
환란과 시련이 많은 가운데, 극한 가난 가운데 이렇듯 풍성하게 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베푸신 은혜로 말미암은 기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은혜가 고린도 교회의 교우들에게도 풍성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7]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우리가 알다시피 고린도 교회는 은사가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방언과 예언, 신유와 환상, 지혜와 구변에 이르기까지 은사로 풍성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은사들이 교회를 갈가리 찢어 서로 분쟁하게 만든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을 근심케 하는 교회였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대한 바울의 마음이 이랬습니다.
          (고후 2:4)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반대로 마게도냐 교회는 많은 환란과 시련 그리고 극한 가난에 시달리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고린도 교회에는 없는 은혜가 풍성했습니다.
바로 주께 드리는 연보의 풍성함이었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바울의 기쁨이요, 보람이 되었습니다.
기쁨으로 연보함은 자기 자신을 주께 드리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고후 8:1)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연보는 내 몸을 주께 드리는 일입니다.
바울은 이를 두고 은혜라고 합니다.
다른 모든 은사가 주께로부터 내게 오는 것이라면, 이는 나로부터 주께로 가는 은혜입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우리 예배의 시작은 주께로부터 임하는 은혜에 대한 찬송입니다.
우리 예배의 마침은 마땅히 나로부터 주께로 올리는 은혜 곧 연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예배요, 온전한 예배입니다.
이것이 피 흘림이 없는 제사는 제사가 아니라는 말씀의 뜻이요,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하신 말씀의 뜻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은혜가 없이는 이 예배를 드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고후 8:6) 이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케 하라 하였노라

아무쪼록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이 은혜에 풍성하시기를 소망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연보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미 앞에서 말한 것이 이유가 되겠으나 바울은 보다 구체적인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사랑입니다. 
          [8]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코자 함이로라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요청하는 연보는 예루살렘의 형제들을 위한 구제헌금이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물질을 내어 놓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마다 형제를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함께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피를 나눈 형제들이기 때문입니다.
          (요일 5: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면서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거짓으로 사랑하는 자입니다.
          (요일 4:7-8)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구제헌금에 해당되는 말이 아닙니다.
모든 연보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마리아의 향유를 기뻐하셨습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랑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성탄절이 되면 늘 새로워지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 헨리라는 소설가가 쓴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짧은 소설입니다.
가난한 부부가 살았습니다.
때로는 집세를 낼 돈이 없어 허덕이기도 하는 그런 팍팍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둘은 항상 행복했습니다.
서로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부부에게는 자랑거리가 둘 있었는데 하나는 남편이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금시계였고, 다른 하나는 아내의 길고 아름다운 머리숱이었습니다.
성탄이 다가오자 아내는 남편에게 무엇을 선물할까 고민하고, 남편은 또 그렇게 고민했습니다.
그러나 고민해 봤자 없는 것이 땅에서 솟아날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성탄절이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품속에서 조그만 선물상자를 꺼내어 아내에게 주었습니다.
아내는 그보다 더 작은 상자를 꺼내어 남편에게 주었습니다.
포장을 뜯던 둘은 깜짝 놀라 서로를 쳐다보았습니다.
말없이 서로를 쳐다보던 두 사람의 눈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아내의 선물상자 속에는 머리빗이 들어 있었고, 남편의 선물상자 속에는 금으로 된 시곗줄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잘라 시곗줄을 샀고, 남편은 물려받은 금시계를 팔아 머리빗을 산 것입니다. 이제는 둘 다 소용없는 물건이 되었지만 둘 사이의 사랑과 기쁨은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성탄절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께 드리는 연보가 사랑의 예물이 될 때 하나님은 가장 기뻐하시는 줄 믿습니다.
아무쪼록 하나님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연보하는 자들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연보하는 두 번째 이유는 감사입니다.
          [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만물의 주인으로서 부요하신 예수님이 가난하게 되어 우리에게 오신 이유는 우리로 부요케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그로 말미암아 부요케 되는 것은 그가 당신의 생명까지 우리를 위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생명까지 주셨는데 무엇인들 아끼시겠느냐는 것입니다.
          (롬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

이 은혜를 믿는 자들의 사는 모습을 바울은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고후 6: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모든 것의 주인 되시는 주께서 주시는 은혜로 살기 때문입니다.
근심 가운데 기쁨을 찾고, 가난함에서 부요케 되고, 없는 중에서 있게 하시는 것이 부요하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하는 은혜인 것입니다.
믿는 자들은 빠짐없이 이 은혜 받으실 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부요케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은 하나님을 부요케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 길이 감사입니다.
물질이 하나님을 부요케 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아낌없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아는 자들이 주를 부요케 할 수가 있습니다.
그 길이 감사입니다.

주님이 열 명의 문둥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런데 돌아와 감사한 자는 하나뿐이었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눅 17:17)  .....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감사하지 못하는 아홉이 주님의 마음을 어둡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돌아와 감사하는 그 하나로 인해 풍성히 기뻐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눅 17:19) ...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

하나님께 드리는 연보에 감사가 담겨야 하겠습니다.
감사로 주의 마음에 기쁨이 풍성하게 하시는 이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연보하는 이유의 세 번째는 소망입니다.
연보에 대한 권면의 마지막 부분은 주는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복 주심에 대한 것입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고후 9:8)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광에서 인심 난다고 했습니다.
있어야 줄 수가 있다는 뜻이니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가운데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자에게 넘치는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아도 남에게 주지 않는 사람이 있고, 모자라도 남에게 베푸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베푸는 자가 마침내 넘치는 은혜를 받습니다.
바울은 다시 말합니다.
          (고후 9:10)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심는 자는 하나님께 드리는 자입니다.
하나님께 드린 것도 본시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추수할 때까지 양식을 주셔서 견디게 하시고 마침내 풍성한 열매로 복 주신다는 뜻입니다.

저는 지난번 담임했던 교회에서 드려진 십일조 봉투를 잊지 못하고 기도하곤 합니다.
봉투 겉에 그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십일조 제일 많이 하게 하소서!’
제일가는 부자 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자칫 욕심일 수도 있는 소원입니다.
그러나 그 소원에는 단순히 부자 되게 해 달라는 것 외의 것이 담겨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더 많이 드릴 수 있게 해 달라는 소망이 담겨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많이 허락하심으로가 아니었습니다.
같은 형편이라도 이보다 더 많이 드릴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읽혔습니다.
평소의 그를 잘 알기에 그렇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가정이 반드시 그 복을 받으리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마 6: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썩지 않는 소망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 가운데 풍성히 갚아 주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연보하는 자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어떻게 드려야 할까요?

얼마나, 언제 드려야 할까라는 문제입니다.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죠.
적으면 적은 대로 염려가 되고, 많으면 많은 대로 염려가 되는 것이 이 문제입니다.
답은 무엇입니까?
문제는 어려운데 답은 아주 간단하고 쉽습니다.
첫째는 마음에 원하는 대로요, 둘째는 있는 대로 입니다.
원하는 대로, 있는 대로 이것이 답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이미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로 마음을 먹었드랬습니다.
그것이 일 년 전의 일입니다.
          [10] 이 일에 내가 뜻만 보이노니 이것은 너희에게 유익함이라 너희가 일 년 전에 행하기를 먼저 시작할 뿐 아니라 원하기도 하였은즉

고린도 교우들 가운데는 이미 연보를 드린 자도 일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이미 이 일을 마쳤는데 고린도 교회는 일 년 전부터 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아직도 행하지를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11] 이제는 행하기를 성취할지니 마음에 원하던 것과 같이 성취하되 있는 대로 하라 [12]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

처음 마음에 원하던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가장 흔히 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니 훌륭한 핑계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원함은 있는데 형편이 되지 않고, 사정이 허락하지를 않다고 합니다.
마음에 원하는 대로 하지 못하는 자신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대개는 자기변명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심은 제자들의 사정과 형편을 아셨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제자들의 약함이 안타까워 나무라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바울은 원하던 대로 하라고 말합니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 처음에 작정했던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처음 생각대로 하지 못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원함이 줄어들다가 마침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율법은 말합니다.
          (민 30:2)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

십일조 해야 되겠다, 매주 감사해야 되겠다, 이런 마음이 들면 미루지 말고 실행해야 합니다.
원함이 생기는 것 그것이 곧 은혜입니다.
은혜가 없고서야 어찌 하나님 앞에 드릴 엄두를 낼 수가 있겠습니까?
처음에 마음에 우러난 대로 드리는 것 그것이 곧 하나님께 풍성히 드리는 은혜에 넘치는 길입니다.

얼마 전에 교우 중에 누가 저를 찾아 왔습니다.
저만 알고 있고, 절대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시면서 보자기에 싸 가지고 온 것을 내어 놓았습니다.
거의 천만 원에 가까운 금액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작정한 건축헌금인데 예배당 지은지 몇년이 됐는데도 여태 드리지 못해 항상 마음에 걸렸다고 하셨습니다.
예배당 건축과 관련이 없던 제가 말했습니다.
건축한지 모래 됐고, 빚도 없고, 형편도 어려우신데 일부만 하시고 나머지는 댁에서 쓰시라고... 

내 입으로 말하면서도 이 말이 과연 합당한 말일까 염려스러웠습니다.
그 분은 그럴 수 없노라고, 굳이 처음 작정한 대로 하시겠다며 기어이 놓고 가셨습니다.
그야말로 많은 환란과 시련 가운데, 극한 가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대하여 신실하신 분이었습니다.
두 아들이 목회를 하는 권사님이었는데 두 아들 모두 미자립교회를 담임하는 어려움이 있었고, 교회건축과 비슷한 시기에 집을 지었는데 사기를 당해 짓다 만 집에서 사시는 분이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고후 9:6)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하나님의 저울은 세상의 저울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의 풍성함을 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자의 은혜는 언제 가장 풍성합니까?
처음 마음에 원하던 대로 드렸을 때 가장 풍성할 줄로 믿습니다.
세월은 모든 것을 바래게 하는 힘이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는 것이 상례입니다.
처음 원했던 대로 드리는 것이 가장 많이 드리는 것입니다.
많이 심는 자가 많이 거둔다 하셨습니다.
마음에 원하는 대로 연보하는 자가 되셔서, 많은 것을 거두는 복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또 있는 대로 드려야 합니다.
부자의 많은 돈 보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을 많다고 하신 주님이십니다.
          (눅 21:3-4) [3]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 보다 많이 넣었도다 [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저울은 우리와 다르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연보하지 않는 사람들의 핑계는 많이 있으면 많이 드리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있는 것을 있는 대로 드리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많이 있어도 칭찬받는 연보를 드리기는 어려운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많이 가지고 있을 때 드리는 많은 것 보다, 지금 있는 대로 드리는 적은 것을 더 많다고 하시는 분입니다.
원하는 마음이 생길 때, 있는 대로 드리는 것이 주님 보시기에 가장 많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연보하는 일은 우리의 신앙을 시험하는 일입니다.
바울이 너희의 사랑을 증명하려 함이라 하는 말의 뜻도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드리는 일을 멈춘 채 가난을 탓하고, 환란을 호소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말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하시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스스로를 시험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찍이 말씀하셨습니다.
          (신 26:10-15) [10]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 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12] 제 삼년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다 내기를 마친 후에...(기도하기를) 주께서 내게 명하신 명령대로 하였사오니 내가 주의 명령을 범치도 아니하였 고 잊지도 아니하였나이다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사오니 [15] 원컨대 주의 거룩한 처소 하늘에서 하감하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시며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복을 내리소서 할지니라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 후에 복을 빌라는 것입니다.
한 번 빌어 보라는 뜻이 아닙니다.
반드시 복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말씀하신 대로 행하시는 분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눅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우리가 헤아리는 대로 헤아림을 받는다니 주를 크게 헤아리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과 감사 그리고 소망의 크기는 우리가 주를 헤아리는 것과 비례합니다.
그 크기가 클수록 주께서 우리를 크게 여기시게 될 것입니다.
그 후에 마음에 정한 대로, 있는 대로 주께 드리는 자가 되셔서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주시는 주의 복을 받는 자들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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