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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하나 강하다오순절 후 다섯 번째 주일(20090705)
박성규  |  theos53@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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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06월 29일 (월) 23:45:24
최종편집 : 2009년 06월 30일 (화) 00:29:37 [조회수 :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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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후 다섯 번째 주일(20090628)
성서일과/ 시 48; 삼하 5:1-10; 고후 12:2-10; 막 6:1-13
본문/ 고린도 후서 12:2-10
약하나 강하다 

          (12:2-10)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 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6] 내가 만일 자랑하고자 하여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참말을 함이라 그러나 누가 나를 보는 바와 내게 듣는 바에 지나치게 생각할까 두려워하여 그만 두노라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이사야선지가 말했습니다.
(사 55:8-9)  [8]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9]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이렇게 높은 하나님의 생각과 역사를 사람의 말로 표현하는 것은 하늘을 땅 아래로 끌어 내리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들이 전하는 진리가 사람의 생각과 길을 벗어나 엉뚱한 말처럼 보이는 수가 흔히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고후 6:9-10)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무명과 유명, 죽음과 삶, 근심과 기쁨, 가난과 부요 서로 반대되는 것들이 같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네모난 동그라미’처럼 이치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는 것은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은 무명해도 유명한 자요, 죽어도 사는 자요, 근심해도 기뻐하는 자요, 가난해도 부요한 자인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반대되는 말과 이치로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을 역설이라고 합니다.
기독교는 역설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마 20:26-27)  [26]...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를 주요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은 이 역설의 신비를 바로 깨달아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도 세상이 말하는 이치로는 도무지 설명할 길 없는 은혜를 받은 바울의 간증이요, 신앙고백입니다.
오늘 말씀을 살피는 가운데 바울이 체험한 은총의 신비를 깨닫고, 그와 같은 은혜 누리기를 소망하며 사는 자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바울이 체험한 은혜의 역설은 무엇입니까?

첫째는, 삼층천에 오른 영의 영광과 찌르는 가시로 말미암은 육체의 고통 사이의 역설입니다.

바울은 적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선교하는 중에 만난 이방인들도 그랬지만, 처음에는 기독교인 중에서도 그의 사도성에 의구심을 갖는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도 그런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바울에 대한 그 사람들의 평가가 이랬습니다.
          (고후 10:10) 저희 말이 그 편지들은 중하고 힘이 있으나, 그 몸으로 대할 때는 약하고, 말이 시원치 않다 하니...

편지를 봤을 때는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았더니 별 게 아니더라는 말입니다.
약하다고 했습니다.
사실이 그랬습니다.
볼품이 없었습니다.
전해오는 기록(the Acts of Paul and Thecla)에 의하면, 바울은 키가 작고, 머리숱이 없고, 안짱다리에, 눈썹은 서로 붙어 있고, 코는 매부리코였다고 합니다.

또 병약한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에 바울 스스로 말합니다.
          [7] ....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사소한 질병이 아니었습니다.
끊임없이 찔러대는 가시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의 병명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안질이라고도 하고, 간질이라고도 합니다.
바울은 사단의 사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육체의 질병을 인하여 얼마나 큰 고통을 받고 있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또 말이 시원치 않다고 했습니다.
단순히 말을 잘 못한다는 뜻으로 읽어도 되겠습니다만, 고린도 교회의 사정을 알면 다른 뜻이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사정이 어땠습니까?
한 마디로 영적인 은사가 풍성한 교회였으나 정작 가장 큰 은사인 사랑이 부족한 교회였습니다.
은사는 넘치는데 사랑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은사를 자랑하는 말들로 넘쳐났을 것입니다.
나는 방언, 나는 예언, 나는 신유, 나는 환상, 나는 입신의 은사를 받았노라고 자랑하는 일에 골몰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가 실제로 그랬습니다.
          (고전 1:1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그러면 바울은 어땠습니까?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난 사람입니다.
삼층천 곧 셋째 하늘에 이끌려가는 체험을 했습니다.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 사 년 전에 그가 세 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이것만이 아닙니다.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그런데 어떻게 했습니까?
바울은 이 큰 은사들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흉보고 트집 잡는 그것을 자랑했습니다.
숨기고 싶은 것을 오히려 자랑한 것입니다.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5]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이런 사람, 삼층천에 이끌려가서 사람의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말을 들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울입니다.
크게 소리 내어 자랑할 만한 일이요, 아름다운 말로 간증해 마땅한 일이었지만 마치 남의 말 하듯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런 신령한 은사를 자랑하지 않고, 자기 육체의 약한 것을 자랑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주의 참된 은혜를 받은 자들은 나를 자랑하는 자들이 아니라, 주의 능력과 권세를 자랑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은혜 받았다는 사람 중에 어느 사이엔가 은혜의 주이신 하나님은 사라지고, 사람의 모습만 남아있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나 영적인 은사를 받았다고 자랑하는 사람치고 끝이 좋은 사람을 보는 경우가 드뭅니다.
아무리 큰 은사를 지녔어도 사람은 질그릇에 불과합니다.
질그릇이 귀한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담긴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질그릇의 쓰임과 귀천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했습니다.
          (고후 4:7)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자신의 영적인 영광 곧 강함을 자랑하면 어떻게 됩니까?
주님이 허락하신 은혜가 선물이 아닌 상급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은혜가 온전해지지 않는다는 말의 뜻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영광스러운 체험보다는 남들이 흉보고 멸시하는 것 - 약한 것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그의 약한 그 곳에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게 되기 때문입니다.
          [9] ...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약할 때 주님이 강하게 하십니다.
내가 엎드릴 때 주님이 일으켜 주십니다.
내가 죽을 때 주께서 내 안에 들어와 사십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하나님의 은혜의 신비를 깨달아 나를 죽이고 그리스도로 다시 사는 자들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둘째는, 간절히 구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기뻐하는 역설입니다.

바울도 사람입니다.
때로 사람이 생각하는 이치로 생각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답답한 사람들을 향해서는 저주를 퍼붓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그랬기에 자신의 육체를 찔러대는 가시를 느낄 때에, 이것만 사라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했습니다.
이 병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세 번이나 간절히 구했다고 했습니다.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은 의외였습니다.
          [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거절당한 것입니다.
그대로가 좋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마 처음에는 그 말씀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믿고 구했는데, 건강한 몸이 되어 육체의 정욕을 쫓으려고 한 것이 아닌데, 주를 위해 더욱 힘쓰려고 했는데, 그렇게만 되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하나님은 그게 아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기도에 응답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은 세 가지로 온다.
첫째는, 구하는 대로 즉시 허락하신다.
둘째는, 구하는 대로 주시지만 천천히 임한다.
셋째는, 구하는 대로 임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응답하신다.‘

사람들은 구하는 대로 곧장 허락하시는 것에 집중하기 마련입니다.
더디 임하는 것도 견디지 못해 합니다.
더구나 다른 방법으로 응답이 오리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응답이 없다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거절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거절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거절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내 생각과 다르게 응답하시는 것뿐입니다.

어떤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 앞에 여기저기 암초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대로 가다가는 암초에 걸려 배는 뒤집어지고, 물에 빠질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암초를 피해 갈 길은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물살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라서 배를 돌이켜 갈 수도 없었습니다.
간신히 배를 물가에 대고 궁리를 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배를 젓던 사람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저 앞에 암초를 없애 달라고....
얼마나 기도했을까?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지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던 사람이 기겁을 했습니다.
설상가상이라더니 암초를 없애달라고 기도를 했는데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는 것입니다.
아주 물에 빠뜨려 죽이시려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비가 멈추고 하늘이 개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사이에 강물이 엄청나게 불어 있었습니다.
그 순간 기도를 멈추고 하늘을 탓하던 그 사람이 다시 엎드려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감사의 기도였습니다.
강물이 불어나는 바람에 암초들이 전부 물에 잠겨 있었던 것입니다.
배가 지나가는데 전혀 지장이 없었습니다.
바위를 없애 달라고 했는데, 바위는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큰 비를 내려 강물이 불어나게 함으로 바위를 잠기게 하신 것입니다.
기도하던 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응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드리는 간구에 반드시 응답이 있을 줄로 믿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응답이 더디더라도 믿고 기다리시기를 기원합니다.
당장은 거절하시는 것 같이 느껴져도, 주께서 더 좋은 길을 예비하고 계심을 믿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바울의 간구에 주님이 그렇게 응답하셨습니다.
간절히 구해도 낫지를 않았습니다.
간절함이 부족해서 그런가 싶어 다시 더욱 간절히 구했습니다.
그렇게 세 번을 구했다고 했습니다.
세 번이라고 말함은 할 수 있는 대로 다 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응답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 짐이라’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랬을까요?
그렇게 꼭 집어서 말씀하셨을까요?
그럴 것 같지 않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사람의 말로 응답하시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바울이 응답하지 않으시는 주님의 뜻을 헤아려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오래 하나님 앞에서 기도한 결과 그렇게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낫게 해 달라는 간구에 응답이 없으신 하나님의 뜻을 기도하는 중에 깨달아 알게 된 것입니다.

간구가 무엇입니까?
나의 소원과 필요를 따라 주님께 요구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무엇입니까?
말없이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헤아리는 일입니다.
간구가 주께 말하는 것이라면, 기도는 주로부터 듣는 일입니다.

바울의 세 번에 걸친 간구는 기도로 끝났습니다.
하나님께 말하는 것으로 시작했으나 하나님으로부터 듣는 것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말없이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영의 귀로 들은 것입니다.
          [9]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강한 것을 들어 더 강하게 하지 않으시고, 굳이 약한 것을 강하게 하시는 뜻도 알게 되었습니다.
교만하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령한 은사를 크게 체험한 바울입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자랑하는 그 어떤 은사보다도 큰 은사를 지녔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의 약한 것들을 자랑했습니다.
자랑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자랑이 아닙니다.
부끄러운 것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바울은 자기의 약함을 드러내서 유일하고 참된 자랑인 십자가를 자랑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간구했으나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말 없으심 가운데 하나님의 큰 목소리를 들은 것입니다.
너의 강함을 자랑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구원의 능력을 자랑하는 자가 되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네 육신의 강건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네 약함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라는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가시는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있는 사단의 사자는 무엇입니까?
우리를 약하게 하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말합니다.
          [10] ...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바울에게나 우리에게나 일반입니다.
능욕과 핍박을 제외하면 바울의 약한 것들이 곧 우리의 약한 것들입니다.
질병과 궁핍과 곤란이 그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아픈 사람이 많습니다.
궁핍한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일이 풀리지 않아 곤란한 사람도 많습니다.

주께 간구하는 자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모든 병을 고치시는 주께서 고쳐 주실 것을 믿고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부요케 하시기 위하여 스스로 가난하게 되신 주의 풍성하심에 기대시기를 바랍니다.
형통케 하시고, 창대케 하시는 주의 은혜에 갈급한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자랑이 되시는 주께서 응답해 주시리라 믿고 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응답이 더디더라도 실망치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겔 12:22-23)  [22] 인자야 이스라엘 땅에서 이르기를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응험이 없다 하는 너희의 속담이 어찜이뇨 [23]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이 속담을 그치게 하리니...

설령 응답이 없더라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구해도 응답이 없거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간구하는 입을 다물고 여호와의 소리를 들으십시오.
주께서 예비하고 계신 더 좋은 길을 찾게 될 줄로 믿습니다.

성경에는 자랑이라는 말이 아흔두 번 나타납니다.
그 중 절반을 넘는 마흔일곱 번이 바울의 편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바울의 속에 얼마나 자랑이 크게 자리하고 있는지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랑하고 또 자랑해도 여전히 자랑할 만한 것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바울의 자랑거리 중 하나가 바로 주께 간구했으나 응답이 없었을 때 깨달은 자랑거리였습니다.
약한 것이 자랑이었습니다.
부끄러운 것인 줄만 알았는데 오히려 그것이 자랑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내가 약할 그때에 하나님이 강하게 역사하신다고 응답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응답이 없을 때 오히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신비를 체험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미세한 음성을 듣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응답 없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네 부끄러움이 오히려 네 자랑이 되게 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귀가 열려야 되겠습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게 역사하시는 주의 은혜의 신비를 깨닫는 자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질병과 궁핍과 곤란이 가시가 되어 찌르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어, 우리를 풍성하신 주의 은택(恩澤)으로 인도하는 물꼬가 되리라, 믿고 사는 자들 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시 84:6)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 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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