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 > 꽃우물 이야기
북한방문기어?
박인환  |  gojumool2@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05년 10월 20일 (목) 00:00:00 [조회수 : 5370]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1)어?


몇 년 전부터 북한을 다녀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한 번 다녀왔으면”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런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은 것이 항상 걸림돌이었다. 돈의 액수도 만만치 않았지만 내 나라의 다른 한 쪽의 땅을 밟기 위해 큰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 더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백두산관광 길이 열려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왔다. 나도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백두산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 역시 중국을 통해 간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언젠가는 중국 땅을 통하지 않고 삼지연을 거쳐서 걸어서 백두산을 등정할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런데 오래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북한방문은 엉뚱하게 이루어졌다. 기독교대한감리회가 ‘북한선교주일’을 지키면서 헌금한 돈으로 밀가루, 분유, 냉온방기, 그리고 평양 칠골교회에 보내는 음향기기 1세트 등을 북에 전달하는 임무를 가지고 남포를 방문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몇 달 전, “내가 월남 실향민의 아들이며 시집을 따라 혼자 월남한 어머니 가족의 생사여부라도 알아야겠는데 막막하다”는 말을 듣던 서부연회 전용호총무가 “그럼 내가 북한 방문할 기회를 한 번 줄까?” 했던 당신의 말을 잊지 않고 연락을 해 와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같이 동행한 사람들은 부평서지방 샘터교회의 김성복목사, 적십자요원인 최현복선생(여)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었다.

10월 12일 오전 10시에 인천항을 출발한 배가 남포항 묘박지(외항)에 도착한 것은 그 다음날 새벽 6시. 그런데 오후 1시가 되어서야 북의 도선사, 출입국관리소 직원, 검역소 직원 등이 승선하였다. 우리는 서로 반갑게 악수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만나자마자 모나미에서 메서 만든 샤프펜슬을 하나 씩 돌렸더니 고마워했다.

그들은 생각보다는 훨씬 더 친절하고 부드러웠다. 승선한 북의 직원들이 배에서 먼저 점심식사를 하더니 우리에게 여러 가지 궁금한 것들을 묻기 시작했다. “남쪽에서는 떼레비를 유선으로 봅네까? 케이블로 봅네까?”

“선생님들이 소속한 감리교는 기독교 하고 어떤 관곕네까?” “최선생님은 몇 살이십니까? 참으로 고우시구만요.” 그들은 특히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최선생에게서 “어떻게 그렇게 미인이냐”며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남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또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했다. 남한사람들이 아주 잘 산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들은 또 “남쪽에서 비료를 준 것 때문에 금년 농사가 풍년이 되었다”면서 감사한 마음의 표현도 숨기지 않았다.

 한참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서해갑문을 향해 출발하였다. 서해갑문은 북한이 가장 자랑하는 시설이다. 배에서부터 시작하여 돌아오는 날까지 여러 사람들로부터 서해갑문에 대한 자랑을 들어야 했다.

서해갑문은 과연 그들이 자랑할 만한 것이었다.(이것은 나중에 쓰겠다.) 남포갑문을 지나면서 배에서 내려다 보니 민간이들이 많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어떤 아낙네는 기차침목 짜투리를 머리에 이고 가고 있었고 어떤 아저씨는 방구들 한 번 덥히기에도 부족할 것 같은 나뭇가지 단을 지고 걷고 있었다.

총을 멘 군복차림의 소녀,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 맨손으로 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전거에는 꼭 바구니가달려 있었고 자전거를 타지 않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헝겊으로 만든 배낭을 지고 있었다.

그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어? 인천항과 비교가 되네?” 하는 것이었다. 적어도 인천항에는 그렇게 한가로이 거니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안다. 배와 관계된 사람이 아니면 한 사람도 인천항 안에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후부터 4박5일간 북한에 머물면서 얻은 결론은 ‘오늘의 북한은 매우 느슨한 사회’라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평양아리랑축전 등에서 보여준 카드섹션이나 집단체조, 그리고 조선논동당 창건기념행사 등에서 보여주는 열병식 같은 것을 보면서 온 몸에 소름이 돋는 듯한 느낌과 더불어 북한은 그렇게 규격화되고 빈틈이 없는 사회라고 생각해 왔었다.

그러나 며칠 안되는 짧은 북한체험이었지만 느슨하다고나 할까, 아니면 군기(?)가 빠진 듯한 북한주민들의 모습이 자꾸 보이는 것이었다.

남포항에 내리니 저녁 7시가 되어있었다. 무려 33시간이나 배에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비행기 타고 아프리카나 남미 어느 국가에 가는 것보다도 긴 시간이다. (사진은 후에...)

[관련기사]

박인환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3309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