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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평교회 전생수목사, 오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다."촌에 사는 반쪽 목사의 이야기" - 세계의 신학에 실렸던 故 전생수 목사의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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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10월 19일 (수) 00:00:00 [조회수 : 47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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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뉴스에 가면 故 전생수목사 장례식 포토스케치를, 동영상갤러리에 가면 동영상을 볼수 있다.
충주동지방 추평교회 전생수목사님이 뇌졸증으로 쓰러지셔서 오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내일(20일) 충주장례식장에 빈소를
마련하고, 발인은 21일입니다.
하나님의 품에서 안식하시기를..... (농목
총무 황의환)
교회에서 기거하면서 기도하시던 중 밤중에 쓰러지셨습니다. 새벽에 발견하여 건국대 병원으로 후송하였으나 별 조치를 받지 못하고 원주
기독병원으로 가셨습니다. 거기서 수술을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하였습니다. 목사님이 장기기증을 약속하셨던 터라 서울에 있는 병원으로 옮기셔서 수요일
오후 시간에 장기이식 수술을 하고 있습니다. 수요일 밤에 충주 장례식장으로 내려가실 예정이며 입관예배는 목요일, 장례예배는 금요일입니다.
..(정창석)
촌에 사는 반쪽 목사의 이야기" - 전생수
전생수 목사님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위로를 빕니다.
전 목사님의 목회일기(세계의 신학 1996년 겨울호)를 전재합니다. 무너져내리는 농촌의 목회자로서 느끼신 여러 안타까움들을 넉넉한 지혜와
예언자적 통찰로 받아들이신 아름다움이 새삼 그립습니다....(김준우)
▣ 목회일기
▣
촌에 사는 반쪽 목사의 이야기
전 생 수
추평교회 담임
1. 나는
반쪽 목사입니다
나는 다른 교회에서는 성찬과 세례를 베풀 수 없고, 내가 목회하고 있는 교회에서만 성찬과 세례를 베풀 수
있는 목사입니다. {교리와 장정}이 그렇게 못박아 놓았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이나 후배 목회자들에게 '나는 반쪽 목사'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반쪽 목사'라는 말에 자조(自嘲)가 섞여 있거나, 나 스스로를 업신여기듯이 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협동 회원이지만 남만큼 알 것은
안다는 따위의 당당함 때문도 아닙니다.
사실 나는 서리니
준회원이니 정회원이니 협동 회원이니 하는 따위는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물론 그것이 어떤 과정을 위해서나 또는 조직과 제도 속에서 아무래도 무슨
규정이 있어야 하겠기에 이런 저런 이름을 편의상 붙여 놓은 것이라면 뭐라고 할 말이 있겠습니까만, 지금처럼 그것이 하나의 '계급'처럼 여겨지는
풍토에서는 그런 이름에 관심도 없습니다. 단지 강단에서 설교를 할 수 있고, 교회에서 성도들을 돌보며 살 수 있고,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진리를 쫓는 사람들 속에 있다는 것이 만족하고 소중할 뿐입니다.
또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거부하거나 부정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나는 '반쪽 목사'가 되려고 해서 된 것도 아니고, '반쪽
목사'라도 돼야 하겠다고 생각해서 된 것도 아닙니다. 신학교 문턱에도 못 들어가 본 것도 아닌 내가--그것도 두 곳의 문턱을
드나들었으면서도--왜 학교라는 과정을 마치지 못하고 목회를 해서 '협동 회원'이 되었는지, 어떤 사연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도 확실히 모르는
문제입니다. 그저 알기 쉽게 말하자면,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교리와 장정에 있는 '협동 회원'이라는 네 글자도 나와
무슨 연(緣)이 있어 내게 붙여졌을 터인즉, 그 속에 어떤 의미가 있든 없는 상관없이 그저 끌어안고 살 뿐입니다.
세상만사 새옹지마(世上萬事 塞翁之馬)라는 말처럼, 사람살이에 절대선(絶對善)이라는
것과 절대악(絶對惡)이 있을 수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삶이 어디 좋은 것만 누리며 살 수 있겠습니까? 바울 사도의 몸에 찌르는 가시 같은
병도 그에게 족한 은혜였던 것처럼, 나의 모자람이나 연약함이나 부끄러움이나 병통 같은 것도 그저 껴안고 사는 멋이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지붕
위에 누렇게 익은 호박이 어찌 밝은 햇살과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만 먹고 자랐겠습니까? 냄새나는 거름 구덩이에 뿌리를 내리고 때로는 먹장구름
아래서 몰아치는 비바람을 맞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해서 가을에 마침내 황금빛 열매를 맺은 것이라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날줄처럼 엉키고 짜여져서 하나의 멋들어진 삶을 만들어 낸다는 뜻은 아니겠는지요. 그렇지만 우리는 거기서 무엇이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었는지를 가려낼 수는 없습니다. 만약 그것을 가려 낼 수 있다면, 그제서 우리는 이게 선이니 저게 악이니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가능한 일인지요. 왜냐하면, 우리의 삶에는 우리가 판단할 수 없는 어떤 비밀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2. 나를 보며
(1) 한 번 쓰고 버릴 것을 위한
수고
지금 교회로 와서 목회를 하기 시작한 것은 95년
1월 3일부터입니다. 그러니까 거의 2년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에 이사를 하는 것도 그렇거니와, 새해가 시작된지 이틀만에 이사를 하는
것이 심정적으로 느긋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대개의 교역자 이동이 그런 것처럼, 나 역시 갑작스럽게 이삿짐을 싸야 했고, 14년을 넘게 목회 하던
지방을 떠나는 마음도 가볍지 않았습니다.
이삿짐을 싸기 위해
가까운 슈퍼마켓을 돌며 빈 상자를 모았습니다.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마침 95년 1월 1일부터 쓰레기 종량제를 시작하는지라 모두들
1월 1일이 되기 전에 버렸다는 것입니다. 별 수 없이 한 가게에서 한두 개 씩 얻으면서 이곳 저곳 돌아다녔습니다. 그러자니 빈 상자 몇 개를
메고 돌아다니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빈 상자 무게도 그렇거니와 상자의 크기도 똑같지 않은 것들이라서 두 손으로 어깨에 얹은 상자를 붙들고 몇
발자국 걷다 보면 작은 상자가 어느 새 주르륵 흘러 땅바닥에 떨어집니다. 그 가운데 귤을 담았던 상자는 두껍고 무겁고 크기도 라면 상자나 과자
상자와는 달라서 유별나게 잘 빠졌습니다. 상자가 땅바닥에 떨어지면 길가 언저리에 내려놓고 가지런히 한 다음 다시 메기를 몇 번씩이나 거듭하다
보니 슬며시 짜증이 났습니다. 화도 식히고 땀도 식힐 겸 빈 상자를 땅바닥에 던져 놓고 그 위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도대체 한 번 쓰고 버릴 것을 얻느라 이 고생을 해야 한담!'
빈 상자에 주저앉아 혼자 중얼거리는데, 벼락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놈아, 한 번 쓰고 버릴 것을 얻느라 이
고생하면서, 네게서 없어지지 않을 것을 얻기 위해서는 무슨 수고를 했느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렇지요. 정말
그랬습니다. 한 번 쓰고 나서 버릴 것,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을 것을 얻느라 별 고생을 다 하면서도 정작 없어지지 않을 그 어떤 것,
영원이랄지 영생이랄지 아니면 진리랄지 도(道)랄지, 하여튼 그 무엇을 얻기 위해서는 아무 수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게 수고한다고 얻어지는 것은 아닌 줄 압니다. 그러나 바울 선생이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달음질칠 뿐'이라고 한 것처럼, 그것을 얻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 무엇도 없이 거저 얻어지는 것 또한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2) 빈 상자를
지키려고
겨우 스무여 개를 모아다가 예배실로 올라가는
입구에 쌓아 놓고 보니 아무래도 모자랄 것 같았습니다. 다시 이곳 저곳을 돌며 몇 개 더 모아서 어깨에 메고 돌아와 보니, 예배실 입구에
놓아두었던 빈 상자가 하나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마침 길에서 우리 아이들이 놀고 있기에 물어 보았더니, 아이들은 태연하게 고물 장사가 다
가져갔다고 대답했습니다. 아이들이 나를 생각해서 예배실로 옮겨 놓고 일부러 그러는 줄로 여기며 예배실로 올라가 보니, 정말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만 부아가 치밀고 말았습니다.
"이 녀석들이 아빠가 힘들여
모아다 놓는 것을 보고서도 그것을 가져가는데 가만히 있었다니...."
정말 화가 났습니다. 처음에는 애써 모은 것을 누가 다 가져갔다는 것에 화가 났고, 그 다음에는 아이들이 아빠가 하는 일에 무관심한
것이 화가 났고, 세 번째는 아이들이 왜 그것을 가져가지 못하도록 막지 못했을까 하는 용기 없음에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식식거리고 있는데, 두
번째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놈아, 빈 상자가 뭐 그리
대수로우냐? 너는 애들이 빈 상자를 못 지켰다고 화를 낸다만, 어디 지킬 것이 빈 상자뿐이냐? 그리고 너는 언제 내 일에 그리 대단한 관심을
보인 적이 있느냐? 너는 말로는 내 뜻이 옳다고 동의하면서, 정작 세상의 그릇된 꼴을 보고 '그건 아니오!'라고 말한 적이
있느냐?"
그렇더군요. 지킬 것이 어디 빈 상자이겠습니까?
잠언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 무엇보다는 너는 네 마음을
지켜라.
그 마음이 바로 생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잠언
4:23).
세상 온갖 것에 마음을 빼앗기며 내 일 하기에
분주하게 살아가는 동안 지킬 것을 지키지 못하고, 아버지의 뜻은 뒷전에 두고 살았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지 알 수 없어 속만 상했습니다.
(3) 다 버리고 갈 것들을 쌓아
두고
살다 보면 번거로운 일이 한 둘이 아니겠으나 이삿짐을
싸는 것만큼이나 번거로운 일도 드뭅니다. 살림살이라는 게 쌓아 놓고 살 때는 이 틈 저 틈에 들어가 박혀 있어서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이사를 하느라 헤쳐 놓으면 이것도 한 보따리, 저것도 한 보따리가 됩니다. 이곳으로 오는 이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정말 볼품없는 살림살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짐을 꾸려 놓고 보니 4톤차로 절반이 넘었습니다.
구석구석에서 나온 쓰레기도 적지 않았습니다. 커다란 자루 한 개와 큰 상자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많았습니다. 쓰지 못할 것도
있었지만, 대개는 쓸모가 있을 것 같아 모아 놓은 것들이었습니다. 물론 이사할 때 가지고 와서 쓰려고만 한다면 못 쓸 것도 없겠지만, 짐이
된다는 생각에서 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쓸데가 있겠지'하고 모아 두었던 것을 쓰지도 못하고 버렸으니, 쓰레기만 잔뜩 보관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게 좀 바보 같았구나 하고 생각하는데, 세 번째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놈아, 고작 이 쓰레기 가지고 그러느냐? 네겐 이것 말고도 버릴 것이 아직 많아!"
그렇더군요. 언젠가 한 번은 이 세상으로부터 저 어떤 곳으로 이사를 해야 하는데, 그 때는 정말
아무런 짐보따리가 필요 없는 이사가 될 것입니다. 그 때 다 내놓고 갈 '쓰레기 같은 것'들을 잔뜩 쌓아 놓고 산다는 것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노릇입니다. 필요 없는 짐을 가지고 내가 넘어 온 대관령 구비 같은 인생 길에서 허덕일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아직도 내 삶의 틈새에는 이런
저런 것들이 보이지 않게 꼭꼭 박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찾아내서 하나씩 하나씩 일찌감치 내버리는 게 삶의 한 지혜일텐데 그렇게 하지 못하니,
나는 참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3. 사람을 보며
사람이 가장 편안함을 맛볼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그것은 품일 것입니다. 어린 아기가 엄마 품에 안겨 쌔근쌔근 잠을
자는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하느님은 모든 피조물을 안고 계신 큰 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그 품 속에서 영혼의
쉼을 얻으며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하자면, 자연 또한 하나의 품입니다. 내가 사는 촌은 아직 그런 대로 품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작은 도시를 떠나
이곳에 왔을 때, 나는 마치 깊고 고요한 품에 안긴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품에서 2년 가까이 즐겁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품은 생명을 내는 자리이기도 하며, 생명을 가꾸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품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따뜻합니다.
(1) 평생을 흙과 함께 살아온
손길
지난 해 이른 봄, 이제 막 파릇한 싹이 돋아 날
무렵입니다. 아침 산책길을 돌아오는데,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는, 그래서 언 땅이 풀려 습기만 촉촉하게 번져 있는 작은 도랑에서 연세 드신
집사님 한 분이 미나리를 뜯고 계셨습니다.
습한 땅에서 돌보는
사람이 없어도 잘도 자라는 돌미나리 햇순은 연하고 그 향기와 맛이 좋아서 반찬거리로도 인기가 있지만, 성인병 치료에 뛰어난 효능이 있어서
사람들이 잘 산다고 합니다.
도랑가에 쪼그리고 앉아 작은
칼끝으로 실낱같이 가는 줄기에 막 피어난 이파리에 몇 개씩 달린 미나리 햇순을 잘라 손바닥 두 개 만한 넓이의 그릇에 담는 집사님의 손길은
조용하면서도 부지런했습니다. 집사님은 이틀이고 사흘이고 그렇게 미나리를 뜯어, 맑은 물에 깨끗이 씻어서 충주 장날 가지고 나가, 시장 거리나
어느 길가에 앉아 팔 것입니다. 그릇에 수북히 담아 1,000원. 집사님은 그렇게 모아서 속회 헌금도 하고 주정 헌금도 하시는가 봅니다. 그
수고와 정성을 생각하면 돈 1,000원의 가치가 그렇게 크고 소중할 수 없습니다. 그건 만 원, 십만 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의
헌금보다 더 크고 귀한 헌금입니다.
도랑가에 서서
집사님의 손놀림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데, 집사님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람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방에 있으면서도 춥다, 춥다 했는데, 언 땅 속에서 어떻게 있다가 이렇게
나오는지...."
언 땅! 차디찬 땅이건만, 땅은 생명을 품고
있다가 철이 되면 어김없이 생명을 살려내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흙과 함께 살아온 집사님은 땅이 생명의 품임을 터득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2) 마른 나무가지를 줍는
노인
이곳에서 태어나 자라고, 이곳에서 결혼하여 이 날까지
사시면서 40년 넘는 교회 역사와 함께 살아오신 권사님이 계십니다. 70을 훌쩍 넘으신 나이지만, 아직 집안의 소소한 일을 돌보시기에 분주하신
권사님이 한 발쯤 되는 줄과 작은 톱을 들고 예배실 옆 도랑가로 들어가서 마른 나뭇가지를 주우셨습니다. 소여물을 데우는 군불을 지피려는
것입니다. 뒷산에 가면 나무가 지천으로 널려 있지만, 힘이 없어 가지고 올 수 없었다시며 부지런히 나뭇가지를 모으셨습니다. 권사님의 얼굴에는 그
좋은 나무들을 가져올 수 없는 아쉬운 마음이 그대로 나타나 있었습니다.
불과 십 몇 년 전만 해도 촌에서는 나무가 중요한 땔감이었습니다. 겨울을 나려면 많은 나무가 필요하기에 이웃들이 돌아가며 겨울 땔감을
마련하여 마당가에 그득히 쌓아 놓곤 하였습니다. 어쩌다가 미처 땔감을 넉넉히 마련해 놓지 못했는데, 큰 눈이라도 올라치면 그것도 여간 큰
걱정거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게으른 남편과 함께 사는 아낙이라도 있으면, 그는 쌀 많은 것 못지 않게 나무 더미 큼직이 쌓여 있는 것을
부러워하기도 했습니다. 권사님은 그렇게 소중했던 마른나무가 천덕꾸러기가 된 것이 안돼 보였던 모양입니다.
땔감으로 쓰는 나무는 대개 잡목으로 불리는 나무들이고, 그런 나무들은 잘린 그루터기에서 새순을
내며 다시 자라납니다. 그러면 그것을 또 잘라 쓰곤 하였습니다. 나무를 땔감으로 쓰고 나면 그 재는 거름이 되어 곡식을 키우고, 곡식은 재를
먹고 자라 사람들의 먹거리가 됩니다. 말하자면, 생명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셈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촌에도 그런 원시적(?)인 방법은 사라졌습니다. 집집마다 농가를 고쳐서 입식(立式)으로 바꾸었고, 연탄
보일러 시대를 잠깐 거쳐 거의 모든 집이 기름 보일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자연히 생명의 순환은 멈췄고, 나무는 나무대로 자라고 곡식은 곡식대로
금비(金肥)만 먹고 자랄 뿐입니다. 땅은 땅대로 부드러움을 잃고 거칠어졌습니다.
생명의 순환이 멈춰진 시대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제레미 리프킨이 말한 '엔트로피 법칙'이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그는
열역학 제1 법칙에서 우주의 물질과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기 때문에 생성되거나 소멸될 수 없고, 오직 그 형태만 바뀌며, 제 2 법칙에서는 물질과
에너지는 한 방향으로만 바뀔 수 있다고 합니다. 쓸 수 있는 형태에서 쓸 수 없는 행태로, 얻을 수 있는 형태에서 얻을 수 없는 형태로, 질서의
상태에서 무질서의 상태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보편적인 에너지원을 원유에 의존하고 있는데, 전세계의 땅 속에 묻혀 있는 원유가 몇 세대까지 가지 못하리란 전망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원유를 파내서 쓰고 나면 그 자리에서 또 다시 원유가 생겨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쓰여진 원유는 쓸 수 없는 찌꺼기들만
남겨 놓습니다.
사람들은 더욱 편리한 방법을 찾고 그러면
그럴수록 자원의 소비도 정비례할 것입니다. 그리고 물질과 에너지의 질서가 무질서의 상태로 바뀌는 정도가 극에 이를 즈음, 인간이 몸붙혀 살아갈
자연 환경도, 삶의 방식도 무질서의 수렁으로 곤두박질 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련스럽게도 그 이후의 시대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을 하지
않고 삽니다.
"그 때는 그 때대로 사는 방법이 어떻게
생기겠지!"
어느새 권사님은 도랑가에서 마른나무를 한 아름 묶어 머리에 이고 천천히 올라가십니다. 군불을 지필 나무를
이고 낮으막하게 경사진 길을 올라가시는 권사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무를 때던 옛날의 추억으로 엔트로피 법칙이 지배하는 오늘을 거부하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3) 천신(薦新)
천신(薦新)이라는 말을 아시는지요?
화학 비료나
농약이 없던 시절, 외양간에서 나온 거름이나 뒷간에서 나온 거름, 나무를 때고 난 다음에 모아 놓은 재, 그리고 여름에 틈틈이 생풀을 베어 만든
퇴비 따위로 농사를 짓던 시절에는 아무리 농사가 잘 되어도 요즈음 화학 비료를 뿌려 대고 짓는 농사보다는 소출이 훨씬 떨어졌습니다. 옛 농부들은
그렇게 애써서 농사 지은 열매들을 까막까치나 들짐승이나 쥐나 두더지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는 마음과 모처럼 열린 열매들이 단단하게 잘
여물기를 바라는 마음과, 어려운 보릿고개를 넘어 먹을 것을 얻게 된 것에 대하여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름 모르는 신'에게 정성을 바쳤는데, 이
일종의 민족 신앙 같은 것이 천신(薦新)입니다.
묵은 먹거리가
떨어져 이런 저런 거친 것으로 배를 채우며 버티다가, 봄을 넘기고 하지 무렵 햇감자를 캐서 먹을 때나, 여름철 풋옥수수를 먹거리로 처음 준비할
때면, 할머니나 어머니는 넓적한 그릇에 잘 익은 감자나 옥수수를 담아 밭에 다녀오라고 하셨고, 나는 어김없이 그 그릇을 받아 들고 밭에 나가
싱싱한 곡식들이 자라는 밭고랑에 갖다 놓고 잠시 있다가 가지고 돌아오곤 했습니다. 나이가 어렸을 때는 그릇을 밭에 갔다 놓았다가 곧 집으로
왔지만, 여남은 살 넘어서는 밭에 갔다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그리 길지도 않으련만 그 사이를 참기가 쉽지 않아서 밭에 갖다 놓자마자 신이 맛 볼
사이도 없이 먼저 먹기도 하였습니다.
몇 살 때쯤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한 번은 슬슬 몸살 기운이 도는데, 어머니가 옥수수가 가득 담긴 큰그릇을 주시면서 밭에 갔다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귀찮은
생각이 들어 도대체 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냐고 불만을 늘어놓았더니 옆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그렇게 해 농사가 잘 된다. 신령이 돌봐서 까마귀도 날아들지 않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못해 그릇을 받아 들고, 마당에 나서긴 했지만, 신은 무슨
신이냐는 반항으로 밭으로 나가는 길 숲에 앉아 칙칙한 어둠 속에서 모두 먹어 치우고는 곧장 집으로 돌아왔으니, 그 해의 천신은 내가 받은 모양이
되었고, 그 해에 농사가 잘 되었는지 어떤지는 기억에 없습니다. 어떻든 나는 어려서부터 농사를 지으면 첫 열매를 신에게 드리는 사람들의 정성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화학 비료와 살충제와 제초제 뿐만
아니라 이제는 유전 공학을 이용하여 옛적보다 엄청난 수확을 거두고, 생태계의 변화로 날짐승이나 산짐승이나 들짐승의 피해도 그리 심하지 않은
요즘, 모든 것은 과학의 힘과 기계의 힘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그런 정성과 감사를 찾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인간의 기술이
제아무리 발전하고 발달했다 할지라도 농사만큼은 아직 하늘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지을 수 없는 법이거늘, 인간 이상의 존재에 대한 감사를 잃은
사람들은 신이 차지할 몫까지도 자기 것으로 삼고 살아가니, 그만큼 욕심보가 커졌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 싶습니다.
그래도 아직 촌 교회에는 첫 열매로 감사드리는 정성이 남아 있습니다. 가끔 예배실
강단 앞에 감자 상자나 고추 포대, 포도나 사과 상자가 놓여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첫 열매입니다. 지난 해 추수 감사 절기에
강단 앞에 커다란 나무를 베어다 세워 놓고 감사절 장식을 하였습니다. 교우들은 나무 가지가지마다 옥수수, 감, 호박, 포도, 조, 수수 등 곡식
이삭과 열매들을 가져다가 주렁주렁 매달아 놓았습니다. 값비싼 물건으로 장식한 어느 것보다 좋았습니다. 올해도 역시 나무를 구해서 세워 놓을
작정입니다. 그러면 거기에는 천신하는 마음이 담긴 갖가지 열매들이 매달려 열매가 있게 하신 하느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나타낼 것입니다. 아직도
촌에는 옛적 '이름 모르는 신'에게 천신하던 아름다움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살고 있어 촌 교회가 더욱 아름다운가 봅니다.
4.
내가 사는 촌마을을 보며
(1) 신랑 신부 없는
결혼잔치
마을에 결혼이나 회갑 같은 잔칫집이 있으면,
마을회관 스피커에서 우렁찬 소리가 들립니다.
"추평리 주민
여러분께 알립니다. 오늘 아무개 씨네 집에 여러분들을 위해 점심이 마련되어 있으니, 모두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잔치 하루 전날이면 마을 아낙들이 모두 잔칫집에 모여 잔치 음식을 만들고,
잔칫집에서는 아낙들이 집에서 준비하지 못한 점심을 대신 마을 사람들에게 대접합니다. 논밭에 나가 일을 하던 마을 남정네들은 방송을 듣고는
잔칫집에 모여 '좋은 안주'에 소주 한 잔을 곁들여 푸짐한 점심으로 배도 채우고 마음도 채우는 관습은 예전부터 있어 온 촌마을의 정겨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겹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잔치는 있어도 신랑, 신부는 없으니까요.
우리 마을 청년회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까지의 남자들이 모입니다. 시집가고 장가들 만한 나이의 청년은
한 사람도 없고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총각이라야 봉호 씨밖에 없는데, 그도 말이 총각이지, 나이는 벌써 사십 줄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청년회라기보다는 장년회라 부르는 것이 옳을 듯 합니다.
도시에 나가 사는 청년들은 도시에 나가 살다가 결혼식이 있기 하루나 이틀 전에 와서 제 준비나 하여 결혼식을 치르고 후딱 떠나갑니다.
딸이야 으레 결혼식을 올리면 떠나게 마련이라지만, 아들조차도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 여행을 갔다가 돌아와 처가에 근친(覲親) 다녀오듯이 부모에게
인사하고 떠나면 그만이니, 마을 사람들은 그저 일이나 하고 음식이나 나누고 축의금이나 내는 잔치가 되었습니다.
교육부에서는 젊은이들을 농촌에 붙잡아 두려고 농촌에 살면서 읍, 면에 있는 고등학교를 나온 학생들이 대학에 특례 입학하도록 하는
묘수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게 별 효과가 없을 것은 뻔합니다. 모르겠습니다. 도시에 사는 어떤 사람이 지지리 공부 못하는 자식을 대학에
입학이나 시키려고 도시 가까운 우리 마을 같은 곳으로 이사를 하든지 위장 전입이라도 할는지는(그 법에 농사꾼의 자식만 해당한다는 조항은 없는
모양이니).
그러나 사람들이 농촌에 살도록 하려면, 그런 따위의
달콤한 부스러기 몇 조각 가지고는 안됩니다. 촌에 있는 초등 학교를 일년에 몇 십 개씩 없애면서 '대입 특례' 따위로 사람들이 농촌에 머물러
살거나 도시에서 돌아오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계산입니다. 정말 사람들이 농촌에서 살도록 하려면, 그런 짓은 그만두고 농촌을 사람 살
만한 곳으로 만들어야 할 일입니다. 농촌에 들어와 살려는 사람들이 쉽게 땅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고, 애써 농사지은 것을 제 값
받도록 해야 할 것이고, 대기업에 주는 금융 혜택 못지 않게 농어민을 지원해야 할 것이며, 공산품 수출량을 계산하는 것처럼 한 해 한 해의
작황과 수요를 계산하여 적절하게 작목(作木)을 선택하도록 정보를 제공해 주어 과잉 생산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 준다 해도
문화적 혜택이 어쩌니 저쩌니 하면서 촌에서 살지 말지 한데, 농어촌에 대한 그런 정책은 없고, 온갖 가지 농산물이 정부의 정책에 의해 외국에서
버젓이 들어오는 마당에 아이들 대학에나 보내려고 누가 농촌에 와서 살려 하겠습니까?
이제는 아랫마을 누이와 윗마을
오라비(이웃사촌)가 눈이 맞아 연애한다는 소문이 나돌아도 좋고, 시골 예배당이 연애당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아도 좋습니다. 시집가고 장가들 처녀
총각이 있는 농촌이 그립습니다. 그래서 도시의 으리번쩍한 예식장에서 30여 분만에 후딱 식을 끝낸 자식들이 신혼여행을 떠난 뒤 늙은 부모들은
황망히 잔치 손님이나 떠맡아야 하는 그런 결혼식이 아닌, 짓궂은 친구들에게 잿봉지 맞는 신랑, 얼굴 빨개진 신부가 초례정에서 맞절하는 잔치,
인사 치레로 축의금이나 전하고, 음식 한 끼 먹고 마는 잔치가 아니라, 온 마을 사람들이 새 사람 맞이를 기뻐하며 경사로 여기는 잔치가 벌어지는
그런 날이 그립습니다.
(2) 죽어서야 돌아오는
고향
재작년 언제쯤인가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공간으로는 남쪽에 있는 어떤 섬을, 시간으로는 6·25 동란이 일어났던 때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였습니다. 관객도 꽤 모았던
것으로 기억되는 이 영화는 동족상잔이 가져다 준 비극적인 고통을 그린 것이기도 하지만, 섬사람들에게 원한을 사서 쫓겨난 사람이 죽어서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 사람들과 화해를 이루는 것이 이 영화의 멋진 내용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가끔 우리 마을에도 외지에서 들어오는 장례
행렬을 볼 수 있습니다. 서울이나 경기도나 또 다른 도시에서 오는 장례 행렬입니다. 얼마 전에도 경기도 번호 판을 단 장의차와 함께 20여 대도
넘을 승용차가 윗마을로 올라갔습니다.
길가에서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이웃집 아저씨에게,
"고향을
떠났다가 모두 죽어서야 돌아오는 모양이지요?"하고 물으니,
"웬걸요, 그렇지도 않아요. 서울 사람들이 땅으로 사 놓고 있다가 장사지내는 사람들도 많아요." 하셨습니다.
상큼하지 못한 생각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촌은 편한데서 살다가 죽으면 돌아와 묻히는 곳인가? 촌은 돈 많은 사람들이 자기네가 필요한
땅을 값비싸게 주고 사서 별장을 지어 놓고 가끔씩 와서 쉬고 가는 곳인가? 그러다가 죽으면 와서 묻히면서 내가 내 땅에 묻히는데 무슨 잘못이냐는
듯 당당하게 백차(?) 타고 들어오는 곳인가?'
'그 섬에 가고 싶다'의 세상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섬사람들에게 못할 짓을 하고 쫓겨나 서울에서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된 사람이 '그 섬'에 땅을 사 놓았다가 죽어서 고향에 돌아가
묻히려 하였지만, 섬사람들은 누구 하나 그의 주검이 '그 섬'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물론 나중에는 화해가
이루어지지만).
물론 촌에 사는 사람들이 촌에 묻히러 오는
사람들과 무슨 철천지원수를 맺은 것도 아님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영화에서처럼 촌에 묻히러 오는 사람들을 거절할 명분도 없고, 죽어서라도 내
고향에 묻히길 희망하는 망자(亡者)와 그 자손들, 그리고 '내 돈주고 산 내 땅'에 묻히길 희망하는 망자(亡者)와 그 자손들을 밉살스럽게 생각할
이유 또한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이 땅은 죽은 자들이 묻히는 땅이 아니라, 숨이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이다. 죽어 돌아오지 말고 살아 있을 때 돌아 오라."
(3) 기업 농장 육성책 유감
우리
땅에는 도시나 농촌이나 할 것 없이 골골 마다 아름다운 전설, 슬픈 전설 혹은 역사적인 근거나 지리적인 특징이 담긴 독특한 유래(由來)가 있고,
대개는 이런 유래에 따라 마을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추평리의 중심
마을인 탑평 마을에도 이런 유래가 있어 마을 입구에 비석을 세우고 전해져 오는 이야기를 적어 놓았습니다.
우리 마을 탑평은
옛날(고려)에 세워진 삼층 석탑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앙의 넓은 바위와 동쪽의 삼성(三省--어떤 성인(?)이 지나가다가 마을을 세 번
살펴보았다 해서 생긴 말--필자주)과 서쪽의 명지동을 합하여 현재의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신비의 전설을 지닌 시루봉의 정기를 받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고장이다.... 명지에는 맑은 샘이 있어서 간이 상수도를 설치하여 넉넉하게 쓰고 있는데, 수질이 좋기로 소문이 나
있다....)
마을 입구마다 비석을 세우고 이런 글을 적어 놓은 것은 그 마을마다의 전통과 역사를 후세에 전하고자 하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나 산업화와 농촌의 피폐로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고 소수의 남은 자들이 지키는 촌마을 입구에 있는 이런 비석들은
'이곳에는 아직도 사람이 살고 있다'고 말하기 위해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지난 해 5월 25일치 어떤
신문에 실린 기사를 베껴 놓은 것이 있습니다. 머릿글은 "농촌 공동체--민자 유치--만든다"였고, "재벌 등 참여, 최고급 농산물 생산"이
기사의 뼈대였습니다. 신문에 실린 내용에 따르면, "농림수산부 관계자는 24일 '농어촌 발전에 기업의 참여를 촉진, 농어촌 자립을 지원하고
농촌의 세계화를 지향한다'는 목표로 [세계촌 구상]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계촌 구상은 기업 농장이 들어서는 마을을 그
기업의 이름을 붙이는 방안까지 제시하고 있답니다..
이런 정책이
발표된 뒤 일 년이 지난 지금 그 정책이 진행되고 있는지도 알 수 없고, 앞으로 이루어질지 어떨지도 모르는 문제이긴 하지만, 아무튼 이런
식으로는 '농촌 공동체'는 말할 것도 없고 농어촌이 발전될 리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정책 이전에 정부는 기업농 육성이라는 정책을 펴 왔습니다. 소규모 영농을 대규모 영농으로 바꾸고 재래식 영농에서
기계식 영농으로 전환하는 정책입니다. 그리고 그 뒤 농촌은 빠르게 해체되었습니다. 얼마 전, 한국 농촌 경제 연구원이 '21세기 농업, 농촌의
좌표와 정책 과제'라는 주제로 공청회를 열었는데, 거기서 밝혀진 내용을 보면, 85년에서 90년 사이에 농촌 인구 58만 1천명이, 90년에서
95년 사이에 30만 6천명이 감소되었다고 하였습니다. 95년 현재 농가 가구 수는 167만 가구에 농가 인구는 521만 명인데, 그 가운데
25.9%가 60세 이상의 고령자라고 합니다.
앞으로 농촌의
변화를 예상하는데, 2020년까지 농가 가구 50만, 농가 인구 166만명, 농경지 면적은 95년 현재의 198만 헥타르에서 164만 헥타르로
줄어 들 것이라고 합니다.
토지 면적이나 노동력이 생산성에서
기계 영농과 경쟁할 수 없는 사람들은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어 도시로 떠나 일용 근로자가 되었고, 도시 빈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농 빈민들은 도시에서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면서 삶의 터전을 제대로 가꾸지 못하고 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거기다
대기업들이 참여하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제 더 많은 농민들이 고향을 등지게 될 터이요, 농촌의 땅은 사람이 사는 땅이 아니라
물건을 생산해 내는 공장과 같은 역할을 할 뿐일 것입니다. 그리고 정책자들이 생각한 '농촌 공동체'는 어쩌면 대기업 농장의 '머슴들' 집단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리라는 생각이 앞섭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대기업들이 농사짓는 일과 고기잡이에 참여하는 것이 농어촌이 자립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 '발상'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지금까지의 기업 운영의 이익이 누구에게 돌아갔는지를 따져 본다면, 대기업들의
농어업 참여로 생기는 이윤이 어디로 돌아 갈 것인지도 분명한 일입니다.
먹고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든 곳이 도시라면, 촌은
살기 힘들어 떠나간 사람들의 몫까지 짊어진 사람들이 있음으로서 '사람 사는 곳'으로 남아 있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얼이
서려 있는 마을 이름을 '삼성 마을,' '현대 마을,' '코오롱 마을,' '대우 마을' 따위의 이름으로 바꿔 붙이고, 버려지는 땅을 등허리
휘도록 지키는 사람들을 대기업 농장의 머슴으로 만들 작정인지 답답한 노릇입니다.
농촌의 발전은 대기업들의 딱지를 붙인 농기계나 왕왕 거리며 많은 수확을 거둬들이는데 있지 않습니다. 농촌의 진정한 발전은
농부들이 신명나게 농사를 짓도록 하는데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골짝 골짝마다 버려진 땅이 다시 귀한 열매를 내도록 하고, 그렇게 되자면 도시에
나가 일용 근로자로 살아가는 중년들과 서비스 산업으로 흘러들어 간 그들의 아들딸들이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그것이
버려진 땅을 살리고, 마을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길이라고 여겨집니다.
농촌은 물건을 만들어 내는 곳이
아닙니다. 땅은 곡식을 만들어 내는 공장이 아닙니다. 농촌은 사람이 사는 곳이고, 땅은 사람들이 사는 삶의 터전입니다.
* 故 전생수목사님! 부디 좋으신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과 안식을 누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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