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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찬 삶의 시작[설교]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 주일설교 음성듣기(2009.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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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04월 12일 (일) 15:57:02
최종편집 : 2009년 04월 12일 (일) 16:08:49 [조회수 : 3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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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찬 삶의 시작
막16:14-20
(2009/4/12) 음성으로듣기  



   
[그 뒤에 열한 제자가 음식을 먹을 때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이 믿음이 없고 마음이 무딘 것을 꾸짖으셨다. 그들이,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나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을 것이다. 믿는 사람에게는 이런 표징들이 따를 터인데, 곧 그들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으로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들며, 독약을 마실지라도 절대로 해를 입지 않으며, 아픈 사람들에게 손을 얹으면 나을 것이다.” 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뒤에, 하늘로 들려 올라가셔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으셨다. 그들은 나가서, 곳곳에서 복음을 전파하였다.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일하시고, 여러 가지 표징이 따르게 하셔서, 말씀을 확증하여 주셨다.]

• 제자들에게 다가오심
열한 제자가 모여 있습니다. 입을 열면 한숨부터 나올 것 같아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음식만 우적우적 씹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도리질을 해보아도 골고다 언덕 위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며 숨져갔던 한 사내의 모습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영혼에 봄을 가져왔던 분, 그 분은 너무나 무력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그의 죽음과 더불어 제자들의 꿈도 죽었습니다. 무너졌던 이스라엘을 회복하는 자들이 되리라던 장한 꿈은 일장춘몽이 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여인들이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그리움 때문이었을 겁니다. 안식일이 지난 후 예수의 무덤으로 달려갔던 여인들은 몹시 당황한 모습으로 돌아와 주님이 살아나셨다고 말했습니다. 제자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 말을 곧이듣지 않았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다니요. 며칠 후에는 시골로 낙향하던 두 제자들도 돌아와 예수님이 살아있다고 말했습니다. 믿을 수 없었습니다.

긁어 부스럼인가요? 주님이 살아나셨다는 그들의 증언은 애써 가라앉혀 놓았던 두려움과 절망감을 더욱 생생하게 만들었습니다. 열한 제자는 음식을 먹고 있었지만 아마 모래를 씹는 것 같은 느낌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신명이 사라진 그 식탁 공동체는 예기치 않은 손님을 맞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십니다. 왜 하필이면 밥 먹는 시간입니까? 공동식사는 주님을 따르는 공동체의 으뜸가는 특색 중 하나였습니다. 그 식탁이야말로 사랑의 기억, 공동체의 기억이 서려 있는 곳이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디베랴 바닷가로 제자들을 찾아가 그들을 위해 아침 식탁을 차리셨다고 증언합니다. 이것은 말 없는 말입니다. ‘내가 너희를 용납한다’는 것을 이보다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 순간 제자들은 죽음보다 훨씬 강력한 사랑이 자기들을 붙들고 있음을 느꼈을 것입니다.

• 애정 어린 책망
주님은 제자들의 믿음 없음과 완악한 마음을 꾸짖으십니다. 하지만 제자들을 탓할 수만도 없습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말을 어찌 믿을 수 있단 말입니까? 간혹 숨이 끊겼다가 소생한 사람은 있어도, 물과 피를 다 쏟아낸 이가 다시 살아나다니요? “나는 내 눈으로 그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고, 또 내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소!”(요20:25) 했던 도마의 태도가 오히려 정직해 보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주님과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도 부활하신 주님을 즉각적으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무덤가에서 울던 마리아가 그렇고,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그렇고, 디베랴에서 고기를 잡던 제자들이 그러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시어 마음의 눈이 새롭게 열리기 전에는 부활의 현실을 알아차릴 수 없음을 깨우쳐줍니다. 주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지금 우리 가운데 현존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그 분의 생명이 지금도 여전히 살아 역사하고 있음을 확신하고 경험하는 것입니다. 부활사건을 2000여 년 전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과거의 사건으로만 바라보는 한 우리는 십자가의 은총도 부활의 능력도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삶을 통해 경험되고 입증되어야 합니다. 그 삶을 저는 ‘힘찬 삶’이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새로운 소명을 주십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나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라.” 그 복음은 무엇입니까? 생명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세상에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며 살지만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은 죽음보다 크고 근원적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바로 이것을 증언합니다.

• 부활의 삶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축 늘어진 인류를 부축해 일으켜 세웁니다. 저희 집에 있는 화초 하나는 가끔 저를 미소 짓게 합니다. 뜨거운 햇살 아래 며칠 놔두면 마치 삶아놓은 것처럼 축 늘어집니다. 하지만 물을 흠뻑 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몸을 일으킵니다. 그 화초와 다를 바 없는 우리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임하면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덧입게 됩니다. 그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것을 마가는 몇 가지 인상적인 표현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첫째, 부활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정신을 이리저리 찢어놓는 귀신들을 향해 ‘사탄아, 물러가라’ 외칠 수 있는 영적인 담대함을 갖게 됩니다. 소비주의의 망령, 이기심의 망령, 폭력을 부추기는 망령, 가난한 이들을 땅 끝으로 내모는 망령,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함부로 파괴하도록 하는 개발주의의 망령을 쫓아낼 능력은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오늘도 부활의 삶을 사는 이들이 있어 세상은 그나마 희망이 있습니다.

둘째, 부활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새 방언으로 말하게 됩니다. 이상한 언어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모두의 가슴에까지 미치는 언어를 말합니다. 바벨탑 사건 이후 인간의 언어는 서로의 귓가를 맴돌 뿐 가슴에까지 파고들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마음을 모시는 순간, 우리는 잃어버렸던 원초적 언어를 되찾게 됩니다. 그것은 공감의 언어요, 연민의 언어요, 사랑의 언어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언어입니다. 새 방언으로 말하는 곳에 평화가 깃듭니다.

셋째, 부활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약을 마셔도 해를 입지 않습니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이들에게 이 말씀은 참 위험합니다. 꼭 해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말입니다. 이 말은 세상의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우리를 해하려는 어떤 힘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성도들의 영적인 든든함을 일컫는 말입니다. 매를 맞아도, 감옥에 갇혀도, 미움과 시기의 뱀에 물려도, 기쁨과 감사의 찬양을 바치는 사람들을 누가 이길 수 있겠습니까?

넷째, 부활의 능력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아픈 사람에게 손을 얹어 낫게 합니다. 육신의 병만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이 참 많습니다. 무정한 세상의 냉대에 주눅 든 사람들, 공평함이 없는 세상살이에 지쳐 스스로를 학대하는 사람들, 싸늘한 시선을 받으며 숨죽여 살아가는 사회적 소수자들, 바로 그들이야말로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들입니다. 그런 이들을 어루만져 낫게 하는 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어린 시절 배앓이를 할 때마다 엄마는 ‘엄마 손은 약손’을 흥얼거리며 배를 쓸어주셨습니다. 그러면 거짓말처럼 배 아픔이 가셨습니다. 엄마 손이 약손인 까닭은 무엇일까요? 엄마 손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의 마음이 우리 배앓이를 고쳐줍니다. 주님이 손을 내밀어 환자들의 환부를 어루만질 때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랑의 손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당신의 손이 되어 세상을 치유하기를 기대하십니다.

• 어둠이 이기지 못하게 하라
우리 삶은 주님의 부활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 되어야 합니다. 부활의 능력을 입고 살았던 바울 사도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갈2:20) 그는 세상에 대해서 죽은 사람입니다. 세상도 그에 대해 죽었습니다. 그러니 그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으며, 무엇을 주저하겠습니까? 주님은 한 알의 밀알처럼 땅에 묻혀 수많은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천둥처럼 울려옵니다.

“어둠이 너희를 이기지 못하게 하여라.”(요12:35)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17:33)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십시오. 가족과 헤어져 먼 나라에서 일하는 이들이 일이 고되고 힘들 때마다 지갑을 꺼내 소중하게 간직한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가끔 이 말씀을 되새기며 산다면 우리는 비루하고 누추한 실존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를 읽다가 놀라운 구절과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나른한 손과 힘 빠진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똑바로 걸으십시오. 그래서 절름거리는 다리로 하여금 삐지 않게 하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히12:13)

삶이 아무리 힘겨워도 마음을 다잡아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똑바로 걸으면 절름거리던 다리도 오히려 낫게 된다는 것입니다. 멋진 삶의 비결이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겨놓고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가야바나 빌라도는 화려하고 장엄한 권위의 옷을 입고 있지만, 그들의 정신은 남루하기 그지없습니다. 스스로 높아지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교권주의자들, 약자들을 짓밟고 제 배를 채우려 하는 사람들, 그들은 예수와 무관한 이들입니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당당하기 이를 데 없었던 참 자유인 예수, 그가 우리에게 힘찬 삶의 비결을 일깨워줍니다. 2009년 부활절, 오늘이 우리의 힘찬 삶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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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청자 (216.109.25.121)
2009-04-15 01:43:42
과거의 사건이 되어버린 부활
해마다 부활절은 오고 가지만 우리 속엔 부활의 능력도 권능도 없는듯 합니다. 이 세상 풍조에 이리저리 끌려가는 우리 모습이 그걸 증명하지요. 변함없는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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