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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rt Cobain, 그는 나에게 예수가 되었다.Rock은 Rock이 지적인 음악이라는 생각을 거부한다. Rock은 Rock이 저항적인 음악이라는 생각을 거부한다. Rock은 Rock이 예술적인 음악이라는 생각을 거부한다.
방현섭  |  raceer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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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02월 23일 (월) 15:37:58
최종편집 : 2009년 02월 23일 (월) 16:41:15 [조회수 : 4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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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Firewitch 닉네임을 쓰시는 분의 글로 본인의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
록음악이라는 장르와 기독교라는 정서가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지만 좋아하는 거야 어쩌겠습니까!
그래도 그 안에서 예수를 발견하였다니 한번 관심 갖고 읽어볼 만하겠습니다.
혹시라도 교리와 고백의 차이에 대한 구분 없는 공격과 매도는 사양하겠습니다.
록을 사랑하는 사람도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섬길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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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커트 코베인(Kurt Donald Cobain)에 대한 글을 한번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별로 자랑할 만한 일 없는 내 인생에서 삶의 한 축이 되어왔고, 앞으로도 쭉 그럴 것인 Rock을 그저 듣고 즐기고 카피하는 것이 아닌 삶의 태도로 인식하게 해준 커트 코베인을 늘 존경하고 사랑해왔으니까...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쓴다는 것이 오랜만의 일이라서 잘 될지 모르지만, 서른일곱, 어정쩡한 나이, 내 안의 젊음과 반항적인 기질과 불순한 것들이 다 사라지기 전에, 그에 관한 글을 써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80년대 중반 이후, 내가 음악을 듣기 시작하던 시절은 Rock의 르네상스라고 불리던 시절이었다. 국내에는 들국화, 부활, 시나위, 외인부대 등 이름만 들어도 기억할만한 대단한 밴드들이 수없이 많았고, 영-미의 팝 음악계는 거의 Rock이 모든 것을 지배하다시피 하는 시절이었다.(오죽하면 Michael Jackson도 Dirty Diana 같은 하드한 기타연주가 나오는 곡을 만들었을까) 이름을 다 대기도 어렵다. Quiet Riot이 ‘Cumon Feel The Noise"외친 것을 시작으로 Van halen, Aerosmith 같은 어르신들부터, Phantom Blue, Vixen 같은 여성 밴드까지 정말 다양한 밴드들의 음악들이 빌보드를 장악하고 있었고, 그 정점에는 Guns N' Roses가 있었다.

펑크의 거칠음과 70년대 Rock의 예술성, 글램락 스타일의 현란함과 스타성을 겸비했던 GNR은 소위 LA 메탈로 부르는 80년대 Rock의 절정이었다. 당연히 나는 GNR을 좋아했다. 좋아했다고 표현하면 그들에 대한 내 애정을 다 표현한 것이 아니다. 지금도 그들의 앨범 전곡을 다 외우다시피 따라부를 수 있을정도... 한동안 열정을 갖고 했던 밴드에서도 늘 GNR의 음악을 카피했었으니까...하지만 GNR은 오래 가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다 있었다.

엄청난 판매량, 평단의 호응, 각종 음악상 수상... 그러나 모든 것을 다 가졌던 것이 그들이 무너진 이유였던 것 같다. 먼저 이지 스트래들린, 스티븐 애들러 같은 소박한 멤버들이 떠나고, 결국 밴드의 한 축이었던 슬래쉬가 더프와 함께 떠나면서 GNR은 액슬만 남은 껍데기가 되었다.(최근에 GNR의 이름으로 나온 액슬의 앨범은 그래도 여전히 좋다)

지금 생각해보면 80년대의 Rock은 무언가 사회, 정치적으로 거세당한 음악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GNR에는 원초적인 거칠음이 남아있었지만, 그 거칠음은 그들의 음악을 약간 더 세련되게 하는 좋은 껍데기일 뿐이었지 본질적인 부분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도 80년대 미국의 풍요로움과 보수적인 정치상황의 영향이었을 거라는 짐작을 그냥 근거없이 해본다.

그때쯤 해서 나는 운동에 빠져있었다. 학내문제, 사회에 대한 분노같은 것들이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를 전후로 LA 메탈이라고 불리우던 80년대의 Rock은 시들해져가고 있었다. 커트 코베인과 Nirvana를 알게 된것은 그로부터 몇 년 뒤였다. 물론 그 전에도 Smells Like Teen Spirit 같은 노래는 알고 있었다. 거의 모든 밴드들이 그 곡을 연주했었으니까... 내가 커트 코베인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이미 고인이었다. 충격적인 권총자살로 전 세계의 음악팬을 충격에 빠져들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의 음악적 영향으로 영-미의 Rock 음악들이 완전히 다 바뀌는 굉장한 일들이 일어났다고 하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저 흔히 일어나는 일이듯이 약물이나 알콜 같은 문제가 있던 사람일거라 생각했었다.

To Boddah

Speaking from the tongue of an experienced simpletion who obviously would

rather be an emascluated, infantile complain-ee. This note should be pretty easy to understand. All the warnings from the punk rock 101courses over the years, since my first introduction to the,shall we say, ethics involved with independence and the embracement of your community has proven to be very true . I haven't felt the excitement of listening to as well as creating music along with reading and writing for too many years now. I feel guilty beyond words about about these things. For example when we're backstage and the lights go out and the manic roar of the crowd begins, it doesn't affect me the way in which it did for Freddy Mercury, who seemed to love, relish in the love and adoration from the crowd, which is something I totally admire and envy. The fact is, I can't fool you, any one of you. It simply isn't fair to you or me. The worst crime I can think of would be to rip people off by faking it and pretending as if I'm having 100% fun. Sometimes I feel as if I should have a punchin time clock before I walk out on stage. I've tried

everything within my power to appreciate it (and I do, God believeme I do, but it's not enough). I appreciate the fact that I and we have affected and entertained a lot of people. I must be one of those narcissists who only appreciate things when they're gone. I'm too sensitive. I need to be slightly numb in order to regain the enthusiasm I once had as a child. On our last 3 tours, I've had a much better appreciation for all the people I've known personally and as fans of our music, but I still can't get over the frustration, the guilt and empathy I have foreveryone. There's good in all of us and I think I simply love people too much, so much that it makes me feel too fucking sad. The sad little sensitive, unappreciative, Pisces, Jesus man. Why don't you just enjoy it? I dont know! I have a goddess of a wife who sweats ambition and empathy and a daughter who reminds me too much of what I used to be , full of love and joy , kissing every person she meets because everyone is good and will do her no harm. And that terrifies me to the point where I can barely function. I can't stand the thought of Frances becoming the miserable, selfdestructive, death rocker that I've become. I have it good, very good, and I'm grateful, but since the age of seven, I've become hateful towards all humans in general. Only because it seems so easy for people to get along and have empathy. Only because I love and feel sorry for people too much I guess. Thank you all from the pit of my burning, nauseous stomach for your letters and concern during the past years. I'm too much of an erratic, moody, baby! I don't have the passion anymore, and so remember, it's better to burn out then to fade away.

Peace, Love, Empathy
Kurt Cobain

Frances and courtney, I'll be at your altar.
Pleas keep going Courtney, for Frances.
For her life, which will be so much happier without me. 
  

I LOVE YOU, I LOVE YOU!

To Boddah

...경험 풍부한 바보라고 말하는것 보다 명확하게 고집이 없는 불평꾼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 친다면 여기에 써있는 내용이 이해하기 쉬우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최초에 우리들 공동체의 독립심과 용인을 지지하고 있던, 윤리라고 할까... 그것에 접해 있던 이래 몇 년에 걸쳐 펑크록 101코스로부터 파생된 모든 것에대해 그리고 만드는 것에 대해 흥분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이것에 대해 나는 뭘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무대 뒤에 있고 쇼를 알리는 표시로 객석의 불이 꺼지고 관객들의 열광적인 환성이 들리기 시작해도 아무런 감동이 없다. 프레디 머큐리처럼 그것을 사랑하고 관객들이 바치는 애정과 숭배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나는 되지 않는다.그렇게 할 수 있었던 그가 정말 존경스럽다. 움직일수 없는 사실은 여러분들을 속일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 한 사람 속이고 싶지 않다. 그런 짓을 하는 것은 상대에게도 나에게도 공정하지 못하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최악의 범죄는 거짓을 통해 마치 내가 100퍼센트 즐기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며 모두에게 돈을 뜯어내는 일이다.

...나는 때때로 무대를 내려오기 전에 시간 기록기를 한방 먹이고 싶은 감상이 들곤 한다. 나는 지금까지 이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있는 노력을 다했다. 정말 노력하고 있다. 믿어주기 바란다. 하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나는 내 자신이 그리고 우리가 많은 사람에게 영향받고 즐거움을 제공 받았던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나는 아마도 잃어버린 순간에 그것의 고마움을 깨닫는 소위 나르시스트 타입인가 보다. 너무 신경이 예민하다. 어린시절에 가지고 있던 정열을 다시 찾기에는 조금은 둔감해 질 필요가 있다.

...가장 최근에 치뤘던 3번의 투어 동안에 나는 개인적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로부터 너바나의 팬에 이르기까지 주변 사람 모두를 예전보다 훨씬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내 안에있는 부담과 죄책감을 지울 수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선의 부분을 가지고 있으며 나는단지 단순히 지나치게 사랑했으므로 이렇게 처량한 신세가 되버렸다. 한심하고 보잘것 없고 연약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물고기자리(별자리)의 되게 재수없는 녀석이 된거다. 왜 아무 생각 없이 즐기려고 하지 않는 것인지. 나도 더이상 모르겠다.

...나에게는 야심과 배려가 넘치는 여신같은 아내와 너무나도 어린시절의 나를 닮은 딸이있다. 사랑과 기쁨이 넘치는 프랜시스는 만나는 사람마다 누구에게나 키스를 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선하고 그녀에게 위험을 가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나에게는 어떻게 손쓸수 없을 정도의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나는 프랜시스가 나처럼 한심하고 자기 파괴적인, 죽음으로 달려가는 일만을 생각하는 인간이 되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찢어질 것 같다.

...즐거웠다. 매우 좋은 인생이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크게 감사하고 있다. 일곱 살 이후, 인간이라고 하는 것 전부에 대해 증오를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단지 그들의 너무도 쉽게 타협하고 서로에 대해 공감을 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공감! 분명 그것은 단지 내가 너무나도 모두를 사랑하고 미안한 기분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 몇 년간 편지를 보내주고 염려해 주었던 모든 이들에게 타서 진무른, 토할것 같은뱃속 바닥에서부터 감사를 표하고 싶다. 나는 손 쓸 방법이 없을 정도로 정상을 벗어난 변덕쟁이 갓난 아기다. 이미 나에게는 정열이 없다. 그리고 기억해 주기 바란다. 점점 소멸되는 것보다 순식간에 타오르는 것이 낫다는 것을...

Peace, Love, Empathy.
Kurt Cobain

프랜시스 그리고 커트니,
나의 모든 것을 그대들에게 바친다.
계속 전진하길 커트니, 프랜시스에게 건배.
내가 없다면 더욱 온화하고 행복해질 그녀의 인생을 위해.

I LOVE YOU, I LOVE YOU! 
 

   

그러다가 우연히 커트 코베인의 유서를 읽었다. 뭔가 횡설수설이지만 그 속에 있는 어떤 열정, 몸부림, 애절함, 소통의 단절로 인한 고통이 느껴진다. 그의 삶이 궁금해졌다.

그는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을까? 상업적 성공, 대중과 평론의 환호, Rock의 제왕이라는 칭호.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손에 쥐고 싶어하는 거의 모든 것을 가졌던 그는 왜 활활 타올라버렸을까?

한참 전에 Rock 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짧은 글을 썼던 적이 있다. 한마디로 Rock은 ‘삶의 태도’이다. 어떤 시끄러운 음악의 장르가 아니라, 삶의 태도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김규항 선생이 ‘지식인들 록을 고르다’라는 글을 쓰신 적이 있다. 거기에서 김규항 선생은 ‘한국 지식인 사회에서 록은 지적이고 저항적인 음악으로, 쓸만한 예술양식으로 여겨지는 분위기가 있다’라고 했다. 웃기는 얘기다.

Rock은 Rock이 지적인 음악이라는 생각을 거부한다.

Rock은 Rock이 저항적인 음악이라는 생각을 거부한다.

Rock은 Rock이 예술적인 음악이라는 생각을 거부한다.

Rock이라는 것은 그것을 규정하고 틀에 가두려는 모든 시도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변화하고, 계속해서 즐거우며, 계속해서 비장한 그런 것이다. Rock이라는 장르가 시작된 이래로 예술적인 Rock이 주류이다 싶으면 어느새 단순하고 거친 Punk가, 또 어느새 대중성으로 무장한 LA 메탈이, 그런가 싶으면 얼터너티브가.... 끊임없이 자기를 부정하고 또다시 부정하는 것이 Rock의 본질이다.

커트 코베인은 어땠을까? 그의 삶을 보면 그에게는 ‘공감’이라는 중요한 삶의 질문이 있었던 것 같다.(유서참조) 겉으로만 사랑하고 이해하며 배려하는 위선자의 공감이 아니라, 화해하고(Peace), 사랑하고(love) 깊은 감정을 나누는(empathy) 그런 것을 꿈꾸었고 그런 것들을 노래했나보다. 대중들을 속이고 그저 10대들의 용돈을 뜯어내기에 바쁜 그런 밴드, 그런 Rock이 아니라 정말로 공감할 수 있는 Rock을 되살리려고 했던 것이다.

그러나 거대자본과 공생하는 거세된 락 밴드들을 비판하며 진정한 락 음악을 추구했던 그를 자본(음반시장)이라는 거대한 악은 그를 집어삼키려고 했다. Nirvana의 음악을 듣는 것이 최신 유행이 되어버리고,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청소년들이 범죄를 저지르며, <뮤리엘의 웨딩>같은 영화에선 아직도 ABBA를 듣는 뚱뚱하고 못생긴 뮤리엘에게 세련되고 예쁜 그녀의 친구들이 Nirvana의 음악을 권하는 장면이 나온다. 음악을 통한 대중과의 공감에 절망을 느낄수록 그는 더 성공의 가장 높은 자리로 올라가며 끊임없이 번뇌했다.

비판하고 공격하면 할수록 그는 더 큰 상업적 성공을 맛보았다. 그것도 자신이 그토록 경멸했던 거대 자본에 의해서... 커트 코베인은 자본의 무서운 속성 -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어 욕망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리는 - 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했다. “in utero"라는 새로운 앨범(‘자궁안에서’-마지막 정규앨범)을 발매하며, 원초적인 자신의 모습, Rocker로서 모든 규정과 틀로부터 탈출하려는 그의 몸부림에 자본과 대중은 발매 첫주에 빌보드 앨범차트 1위라는 거대한 성공으로 대답했다.(얼트문화와 록 음악 1권) 헤어나올 수 없는 자본의 탐욕스러운 그물에 걸린 그는 결국 ‘권총자살’이라는 충격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완성한다.

“너희가 나를 Rock의 제왕으로 만들게 내버려 두진 않을꺼야”라는 생각이었을까?

아무튼 그는 죽었다. 그의 유서대로 ‘서서히 사라져가는 것’이 아니라 활활 타올라버렸다. 자신을 규정하고 틀에 가두려는 모든 시도를 거부하는 Rock의 태도를 죽음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예수를 떠올렸다.

“이와 같이 예수는 자신의 존재로부터 반항한다. 비록 그의 언어는, 그의 일상은, 그의 삶 전체는 자신의 존재로부터 충분히 탈주하지 못했음에도, 끊임없이 그를 인습의 끈 속에 구속하려는 전능자와 같은 악마의 마수에서 헐떡거려야 함에도, 그의 밖을 향한 탈주의 여정은 점차 격렬해지고, 근원적인 곳에로 접근해간다. 마침내 그는 그 질곡에서 해탈을 체험한다. “다 이루었다!”는 말과 함께”(「갈릴리의 현실과 예수의 목회」,김진호)

커트 코베인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로부터 반항했다. 비록 그의 음악과 삶이 거대한 자본주의의 틈 속에서 완전히 탈주하지는 못했지만, 그를 욕망의 대상으로 판매하려는 자본과, 그를 시대의 우상으로 만들려는 대중의 유혹 사이에 고민하면서 그는 결국 죽음으로서 원초적 Rock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Remember it's better to burn out than to fade away"

예수도 죽고 커트도 죽었다. 여전히 악마들은 예수를 팔아 자신의 배를 불리우고, Nirvana의 음악과 그 유산들로 돈을 번다. 그러나 그게 끝일까? 예수의 죽음 뒤 제자들은 예수와 공감하기 시작했다. 복음의 의미를 깨닫고 천국의 소망을 갖게 되었던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약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사 53:5) 선지자께서 예수를 가리켜 한 말씀이 동일하게 커트 코베인과 겹쳐진다. 커트의 죽음으로 눈을 뜬다.

끊임없이 나를 욕망하게 만드는 탐욕의 시대, 커트 코베인이 보여준 Rock이라는 삶의 태도를 생각한다. 모든 것을 욕망의 대상으로 만들어버리는 자본의 논리를 거부하고, 이웃을 사랑과 존중과 배려의 대상이 아닌 경쟁의 대상으로 여기는 생각을 거부하는 것, 슬픔에 빠진 사람들과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는 사람들과는 함께 기뻐하셨던 예수와 같은 솔직한 감정의 공유, 그리고 그를 통한 진정한 평화와 사랑, 이것이 커트 코베인이 원했던 것은 아닐까? 즐겨입던 티셔츠에 새겨진 커트의 얼굴이 묘하게 예수의 얼굴과 겹쳐진다.

늦은 밤에 나를 압박하는 세상의 통념들을 생각하며 이 노래를 따라 불러본다.
“Fuck you I won't do what ya tell me!"(Rage Against The Machine - ‘Killing in the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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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늑대 (76.185.5.122)
2009-02-25 09:49:32
존재의본질
현재의 자본주의체제하에서 모든 교육이 그러하는 것처럼 서로를 물어뜯고 밟고 올라가서
정점에 섰을때 그를 최고로 인정한다라는 신념을 다시한번 회고하게 해주는 에세이.
또다시 존재의 본질과 크리스천으로써의 길을 곱씹어 보는군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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