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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이와 철수 그리고 개[5]
이승칠  |  gooneye7805@m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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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06월 08일 (수) 00:00:00 [조회수 : 4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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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데~ 꼭꼭, 꼬꼬데~ 꼭꼭”
호반의 첫 아침은 닭의 울음소리로 시작이 되지만 영이는 아직도 잠결에 꿈을 꾸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으나 누군가 영이의 젖가슴을 만지고 얼굴을 입술을 대는 촉감에 졸리는 눈을 살짝 떠 보니 실내는 창문을 통해 들어온 아침 햇살로 훤하다.
영이의 젖가슴에는 춘원의 손이 얹어 있었고 영이의 얼굴은 밍키가 핥고 있었는데, 영이의 얼굴에 아침인사를 한 범인인 밍키는 친구들이 밖에서 부르니 빨리 방문을 열어 달라는 표현을 하는 것 같았기에 문을 열어 주자 오줌을 오랫동안 참았는지 쏜살같이 밖으로 뛰어 나간다. 사실 밍키도 일행처럼 미는 문에는 익숙하나 미닫이 문은 낯설은 모양이다.

강원은 모기장 밖으로 몸이 반쯤 나간 것도 모르고 싱글거리며 신나게 자고 있었고 춘원 또한 영이의 젖가슴 대신 곰돌이 인형의 코를 만지작 거리며 자고 있었다.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동생과 친척이 없는 영이에게는 어젯밤 이들과 같이 잤다는 평범한 사실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선생님, 안녕!”
춘원도 밍키의 아침인사에 잠을 깬 모양이다.
“춘원도 안녕! 우리는 손님이니 우리가 잔 방은 우리가 청소하자. 이불은 내가 치울 터이니 춘원이는 오빠를 깨워 봐.”
춘원은 대답만 하고서 일어나지도 않고 몸을 돌려 굴러가더니 강원의 어깨도 흔들어 보고 겨드랑을 간질거려 보아도 반응이 없자 벌떡 일어나 코를 잡아 버린다. 잠시 후, 기침을 하며 강원이 일어나자 춘원은 영이의 등뒤에 숨어 버리는 것이다.

“엄마, 안녕! 그런데 여기가 어디예요?”
잠이 덜 깬 강원의 엉뚱한 말에 엄마 꿈을 꾸는 것을 깨워 미안했지만, 영이와 춘원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놀라는 표정으로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는데 오늘은 웃다가 하루가 갈 것 같은 느낌이다. 아이들과 세면도구를 챙겨 부엌과 나무담 사이에 있는 우물로 갔는데 이 곳은 지붕을 기와를 덮었기에 정자 같은 느낌을 주었으며 바닥의 사면을 높이고 밑바닥까지 자갈로 잘 포장되어 있어 세수하고 빨래하고 그릇을 씻으며 은밀한 곳이라 여자들이 자기 전에 뒷물도 할 수가 있는 다용도의 장소 같았다. 많은 장독 곁에 있는 우물에는 아주머니는 도토리를 씻고 계신다.

“다 들 잘 잤어? 조금 전에 방에서 큰 웃음소리가 들리던데 무슨 재미있는 일이 있었나 보네.”
“오빠가 선생님보고 엄마라고 그랬거든요.”
“강원이는 이담에 장가를 가면 아침에 마누라를 보고도 춘원아~ 하고 부르겠네.”
이 말을 한 아주머니도 웃고 양치질 하던 강원도 싫지 않다는 표정으로 싱긋이 따라 웃는 것은 애들이나 노인이나 시집장가 간다는 소리는 싫지가 않은가 보다.
“아저씨와 키퍼가 안 보이네요.”
“응, 새벽 일찍 다순이와 키퍼를 다리고 산으로 갔어.”
“다순이가 누군데요?”

양치질을 하던 강원은 몹시도 궁금한지 칫솔을 문 채로 물어 보는 것이다.
“응, 어제 산소에 같이 갔던 암놈 진돗개의 이름이야. 지난 여름 너희들이 가고 난 뒤에 태어났는데 다람쥐를 잘 잡는다 해서 붙여준 이름이지. 너희가 잠 자던 방 뒤편에 큰 마당에 가면 다순이가 잡아온 다람쥐들이 많이 있어.”
강원과 춘원은 칫솔을 입에 문 채로 큰 마당쪽으로 달려 가기에 영이도 양치질을 대충하고 바가지에 물을 담아 아이들이 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뒷마당은 앞마당에 비해 두 배나 넓었고 큰 창고들과 외양간이 있었고 앞과 똑같은 형태로 기와집이 서 있었다. 안방과 마주보는 외양간 옆에 철망을 친 곳에 밍키와 아이들이 서 있기에 가보니 철망 안에는 50마리 정도의 다람쥐들이 놀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 저기 보세요!”
물로 입 안을 씻던 강원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보니 키퍼가 입에 다람쥐를 물고 개선장군처럼 걸어 오고 대나무 바구니를 등에 맨 아저씨와 다순이가 뒤따라 오는 것이다.
“와~, 우리 키퍼가 다람쥐를 잡았네.”
강원은 키퍼가 장한지 머리를 연달아 쓰다듬어 준다. 빙그레 웃던 아저씨는 바구니에서 다람쥐 6마리를 꺼내어 철망으로 넣고서는 키퍼의 입에서 다람쥐를 빼더니 키퍼와 다순이 눈 앞에 한번씩 갖다 대더니 갑자기 땅에 놓아 버린다. 해방이 된 다람쥐는 잠시 주춤하더니 마당의 중앙으로 도망을 치자 키퍼는 다람쥐의 뒤를 쫓는데 다순이는 45도 방향으로 뒤 좇아 간다. 다람쥐는 좌우로 빠른 걸음으로 큰 마당을 뛰어 다니며 나무 담의 틈새를 찾는데 다순이는 다람쥐의 뒤만 쫓는 키퍼의 반대 방향으로 만 계속 움직이는 것이다.

다람쥐는 키퍼에게 잡힐 듯하면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키퍼는 오토바이처럼 가속이 붙으면 빠르나, 방향전환을 하면 다시 속도를 붙여야 했기에 연결동작이 둔하였다. 갑자기 방향을 바꾼 다람쥐가 정면에서 달려드는 다순이를 보자 순간적으로 잠시 멈추어 버린다.
물듯이 정면으로 공격하던 다순이가 한 발로 다람쥐를 후려치니 다람쥐가 떼굴떼굴 굴려버린다. 다순이는 한순간 멍해진 다람쥐의 목덜미를 물고서 아저씨에게로 오는 것이다. 아저씨는 다순의 입에서 다람쥐를 받아서 철망 속으로 넣고 다순이의 머리를 만지면서 칭찬하여 준다.
“다람쥐는 꼬리가 발달되어 꼬리로 방향감각을 알기에 키퍼처럼 뒤만 따라 다니면 잡지를 못 해. 옆에서 노리다가 방향을 바꾸는 순간에 앞에서 겁 많은 눈을 향해 정면 공격을 해야 해. 키퍼는 매일 다람쥐를 입에 물고 다람쥐 꼬리가 얼마나 예민한지를 스스로 느끼면 잡을 수 있어.”
적의 장점을 충분히 알아야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여 적을 공격할 수가 있다는 이론은 적의 장점을 알기보다 약점만 노리는 치사한 인간들이 꼭 들어야 할 이야기 같았다.

“아저씨, 다람쥐를 잡아서 어디에 보내실 거예요?”
강원의 질문은 영이도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일이다.
“전에는 잡아서 강에 놀려오는 사람들에게 팔기도 했으나 거의가 조그만 상자에 가둬 키우기에 죽이는 일이 많아서 팔지를 않았는데, 쌍둥이 아범이 서울시 교육청에서 국민학교에 관찰용으로 잘 키우겠다는 조건으로 500마리를 주문을 받아 왔어. 50마리만 되면 계란차에 실어 서울로 보내.”


시골의 아침상은 산골짜기 풀들의 전시장 같았다. 한번도 보지도 못했고 이름을 모르는 것이 많았으나, 아침부터 선생이 아이 앞에서 물어보기 무안하여 먹기만 하였다. 마침 아이들의 방학숙제에 식물채집이 들어있어 이번 기회에 눈으로 직접 확인하여 머리 속에 단단히 집어 넣을 각오를 하면서. 아이들은 고추장에 발라 구운 더덕구이에 빠져 있었다.

영이는 아침식사 후에 꼭 화장실에 가는 습관이라, 아주머니가 가르쳐준 뒷마당의 구석으로 가보았으나 아무리 찾아도 화장실이 없기에 휴지를 든 채로 엉거주춤한 걸음으로 우물에서 그릇을 씻고있는 아주머니에게 다시 갔다.
“저~, 화장실이 안 보이는데요.”
아주머니에게 그릇 씻는 물을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퍼 주던 아이들이 갑자기 자지러지게 웃으며 춘원은 앉았다 섰다를 계속하고 강원은 삽질하는 흉내를 내며 웃음은 계속 되었다. 영문을 모르는 영이는 양 손을 화장실 안내자들에게 맡기고 따라 간다. 이들은 영이가 조금 전에 다녀온 외양간으로 가는데 다람쥐들이 갇혀있는, 영이도 열어 보았던, 옆의 문을 강원이 천천히 연다. 이 곳은 제법 큰 창고인데 건초를 보관하는 장소 같았다.

   

문을 열고 안내원들이 안내한 곳은 건초더미를 지나 잿더미 뒤의 공간이었는데 높이가 20cm정도 되는 편편하고 납작한 돌이 두개가 놓여 있었고 두 돌 사이는 약간의 홈이 자연스럽게 패여 있었다. 강원은 잿더미에 꽂혀있던 삽으로 재를 홈 사이에 가지런히 뿌리자 춘원은 재빠르게 두 돌 위에 발을 하나씩 얹고 앉는다.

문밖으로 삽을 들고 나갔던 강원이 옆의 외양간에서 소 똥을 담아오자 춘원은 돌 위에서 내려오고 강원은 홈에 뿌려진 재위에 소 똥을 놓더니 다시 그 위에 재를 많이 퍼 와서는 덮는다. 재로 싸여진 소 똥을 밀가루 반죽하듯 몇 번을 뒤적이더니 삽으로 두드려 네모 반듯하게 만든다. 잘 만들어진 새로운 제품은 강원이 삽으로 구석에 똑같이 만들어진 제품들 위에 얹는다. 춘원은 영이 손에 쥐고있는 휴지를 조금 떼더니 벽에 걸린 통 성냥에서 성냥을 켜서 휴지에 붙여 잿더미 위에 놓는다.

신기하게 쳐다보던 영이는 아이들의 독촉에 두 번이나 소 똥으로 실습을 한 후에 구멍 없는 변소에 쪼그리고 앉은 영이는 1894년 갑신정변을 일으켜 근대화로 가려던 풍운아 김옥균이 왜 이 변소를 보지 못했나, 안타깝게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위로를 받았다.

김옥균이 근대화를 위하여 내 건 슬로건 중에 하나가 농사보다 상공업을 하는 서울 백성들이 내다버린 오물로 서울이 똥 냄새와 벌레로 가득하다고 규탄을 하며 하수도 시설을 할 것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3일 천하로 끝이 난 풍운아를 걱정할 것이 아니라 소의 변과 사람의 변은 재를 섞는 배합과 반죽이 다르다는 현실에 영이는 치질환자처럼 구슬땀을 흘리며 한참 후에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아주머니가 점심 대용으로 챙겨 준 삶은 감자, 삶은 달걀, 들깨로 볶은 주먹밥, 반찬으로 더덕구이와 나물들을 키퍼의 자루 통에 담고 영이는 곤충채집을 위해 교과서에 쓰여 진대로 주사기, 알코올, 채집통, 동식물책들을 담은 배낭을 메고 왕진을 가는 의사를 따라가는 간호사가 된 것이다.

강원도 등에 배낭을 메었는데 대부분 춘원의 군것질 할 음료수와 과자들이었고 춘원은 잠자리채 두개를 깃발처럼 세우고 길 안내자인 진돗개들을 앞에 세우고 가는데, 그 중에 다순이가 보이지 않아 키퍼는 힘이 없어 보였는데 아저씨가 다람쥐 때문에 일행이 산만해 질까 봐 일부러 집에 둔 모양이었다. 아저씨 내외는 밭일을 하시고 영이를 대장으로 한 곤충,식물 채집단이 산으로 향했다.

도토리 섬이란 별명대로 도토리 나무들이 많았고 이름을 모르는 식물들과 곤충이 너무 많아 책에서 그림과 사진을 찾다가 한나절이 지난 것 같았으나 산을 찾고 자연과 더불어 살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앞으로 많은 시간이 있기에 일행은 서두르지 않았다. 진돗개들이 안내하는 곳으로 움직이고, 앉고 싶으면 앉고, 눕고 싶으면 누워 쉬는 것이다.

강원은 곤충에 관심이 있었고 춘원은 식물에 관심을 보였는데 곤충과 식물은 남녀와 같은 관계라 동시에 만날 수가 있는 것이다. 벌레를 잡으면 알코올 주사를 놓고 곤충함에 잘 보관을 했으며 식물은 잎을 잘 펴서 책 사이에 보관을 하였다. 책에서 사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숨쉬고 움직이는 현장에서 공부를 하기에 서로간의 호흡이 있는 것이다. 호흡, 분위기… 이것을 만들기 위하여 인간은 막대한 노력을 하나 제일 좋은 것은 자신이 스스로 해 보는 것이다.

“선생님, 하나님은 바쁘신데 왜 이런 작은 벌레까지 만들었을까요?”
작고 이뿐 벌레가 기어가는 나뭇잎을 든 강원이 심각하게 질문을 하는데 생물도감에는 이에 대한 설명은 없는 것이다.
“다 필요한 것이라 하나님이 틈을 내어 만들었지 싶어. 이 세상에 있는 것은 필요 없는 것이 없어.”
“선생님, 지금 나를 물고 있는 모기는요….”
모기에 물린 자리에 손톱으로 십자가를 찍고 침으로 바르는 춘원의 하소연이다.

저녁을 먹은 후 마당에 모기풀을 피워놓고 대청마루에서 식구들은 도토리 묵을 먹었는데 도시의 시장에서 먹던 것보다 훨씬 짙은 향기와 입안에서 연한 느낌을 주었다. 개들은 아직도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제일 체격이 큰 진돗개가 아침부터 보이지가 않았다.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키퍼 눈치가 이상하여 아주머니가 아침 일찍 목감서원으로 피난 보냈다는 것이다. 자기는 스위스와 한국이 혈연으로 자매결혼을 맺으면 어떤 후손이 태어나는지 궁금했는데, 아내는 외국여자는 체격이 좋아 한국 남자가 한번 빠지면 한국 여자들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민족주의 해석이었다고 한다.


어제 하루 종일 내린 비로 집에만 있었던 강원과 춘원은 아침부터 아저씨를 보채더니 개천에서 물고기를 잡기로 한 모양인데 아저씨도 비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산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물이 개울을 이루어 굽이굽이 돌아 흘러 목감서원 앞은 제법 깊으나 대부분 지역은 어른 무릎을 넘지를 않는다고 한다. 아저씨는 창고에서 유리로 만든 앞 뒤가 뚫린 어항을 3개 가지고 나오셨는데 영이는 처음 보는 물건이며 크기는 여름에 낮잠을 자며 베는 목침만 하였다.


 

   

목감서원과 별장을 끼고 도는 개천은 경사가 있어서인지 물살이 약간 있는 편이었고 개천바닥은 조그맣고 매끈한 돌들이 깔려 있었다. 아저씨는 영이에게 잘 배워서 새벽에 나오면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다고 한다. 개들은 개천가에 남아있고 아저씨는 춘원을 등에 업고 강원과 영이는 어항을 들고 개천으로 들어갔다.

영이의 두 손바닥을 합친 크기의 돌로 마지막 돌이 수면에 대일 듯한 높이로 성벽을 쌓고 성벽과 어항 입구까지의 20cm길이는 바닥의 잔돌을 걷어내고 모랫바닥이 되도록 했으며 성벽과 어항입구 사이에 편편한 돌에 깻묵, 된장, 밥을 섞어 돌에 부쳐서 세우고 먹이에서 15cm정도에 역시 밑바닥을 모랫바닥이 되게 하여 물로 가득찬 어항을 놓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도 길을 가다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호기심으로 가서 구경하다 야바위꾼에게 돈을 다 잃듯이, 개천과 강을 오르내리던 물고기들은 일단 미끼의 냄새에 현혹되어 성벽으로 인해 물살이 없으므로 쉬려는 본능이 발동하고 바닥이 훤하므로 고도 근시인 물고기는 미끼를 빨리 발견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계심이 발달되어 먹이를 쪼듯이 먹고는 급히 돌아서는 버릇이 있기에 돌아서면 거의가 물고기 눈에는 보이지 않는 유리어항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유리어항의 입구는 개방이나 출구는 모기장 천으로 고무줄로 묶어 막혀 있기에 물은 통과하나 물고기는 육신으로 인해 못 나가는 것이다. 물고기의 탈출방법은 들어온 입구로 나가면 되지만 이것이 물고기에게는 불도에서 말하는 인간의 해탈처럼 거의 불가능 한 것이다.

없는 물고기들은 좋은 냄새가 나고 분위기가 아늑한 곳에 친구들이 모여 있으니 자꾸만 모여 들여 영이 일행을 즐겁게 해 주었는데 20분이면 어항이 만원사례를 이룬다. 그런데 어항 하나는 텅 비어있었는데 제법 큰 물고기 한 마리만 들어 있는 것이다. 아저씨의 설명이 이 놈은 쏘가리라는 종자인데 작은 물고기를 먹고 성질이 난폭하여 다른 물고기들이 아예 상대를 하기 싫어 근처에 오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래 놔두면 어항을 깨고 탈출을 한다는 것이다. 개천이나 인간시장이나 비슷한 데가 많은 것 같았다.

아이들은 어항놀이에 지쳤는지 저녁을 먹은 후에 일찍 잠이 들었기에 영이는 마루에서 라디오를 듣고 있는 아저씨에게 가 보았다.
“아주머니는 어디 가셨나요?”
“응, 감목서원에 된장도 갖다 주고 부엌의 위생검사를 하러 갔어. 서원생들은 나는 안 무서워해도 마누라에게는 꼼짝 못해.”
“왜요?”
“군대 갔다 온 놈들은 애인이 찾아오면 하룻밤 자고 가는 것은 다 내무반장의 허락을 얻어야 하거든.”
영이는 아주머니가 안 보임으로 인사차 물었는데 이곳의 새로운 질서를 알게 되었다.
“아저씨는 젊을 때 무슨 일을 하셨나요?”
영이는 벌써부터 물어보고 싶었던 질문이었으나 기회가 없었다.
“나? 영이 생각에는 무엇을 한 사람같이 보여?”
“농사꾼 아니면 약초 캐는 사람같이 보여요.”
아저씨는 기분이 좋은 듯 크게 너털웃음을 짓는다.
“나, 노름꾼이었어.”
“아저씨같이 성실한 분이요? 믿어지지 않네요.”
영이는 아저씨의 말이 정말로 믿어지지 않았으나 표정으로 보아서 농담으로 하는 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한창 날릴 때는 춘천에서 당할 자가 없어 서울까지 원정을 갈 정도였어. 하루저녁에 서울 기와집 서너 채도 타 보았어.”
“잃을 때는요.”
아저씨는 손을 펴더니 손바닥에다 입김을 부는 것은 순식간에 다 날려 버렸다는 소리 같았다.
“그런 위험한 도박을 사람들은 알면서도 왜 하지요?”
“호기심이지, 48장이 똑 같은 모습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는 단순한 호기심이야. 호기심은 인간의 본성이기에 어쩔 수가 없는 가 봐. 그러나 48장의 작은 그림들은 사람에게 욕심을 불러 일으켜 승부에 집착하게 되어 하루저녁에 몇 번이나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리니 자연히 요행수를 자연히 바라게 되. 그래서 성실하게 개미걸음을 걷는 이웃들이 바보처럼 보이기 시작하며 진짜 바보는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시기는 빈털터리가 될 때야. 승부는 땀을 흘린 양을 측정하는 저울인데 욕심이란 불순물이 있으면 목숨을 건 싸움이 되어버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승자는 관용을 베풀어야 하며 패자는 비굴하지 말아야 한다는 성현들의 말씀은 노름판에선 정반대야.”

아저씨는 젊은 시절의 노름꾼 생활이 자기의 인생 길에서 꼭 거쳐야 하는 숙명을 지닌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숙명은 신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깨닫기 위한 과정이지 정도(正道)는 아니지만 인간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다면 자기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자살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기도 하다.

박 씨 아저씨는 운동선수가 치명적인 부상을 당해 노름판 뒷전에서 심부름이나 하며 푼돈을 얻어 쓰는 비굴한 일년의 생활에서 삶의 용기를 준 것은 고생만 해 온 아내와 3명의 어린 자식들이었다고 한다. 아저씨 부인은 유 의원 부인과 한 마을에서 자라서 잘 알고 있기에 유 의원 집안의 일을 거들어 주면서 가정을 지켰다고 한다.
“노름판 뒷전에서 심부름이나 하는 생활이 일년이 될 즈음의 나의 생일날이었어. 아침에 미역국을 먹고 나오는데 여편네가 오늘은 가족끼리 저녁식사를 같이 하자는 거야. 매일 통행금지 전이나 새벽에 들어오는 나날들이었지만 생활비도 못 주기에 퉁명스럽게 알았다고 대답을 했어.

저녁 식사 시간에 집에 왔더니 풍성하게 음식을 준비를 해 두었고 아이들이 담배 3갑과 중고 군용 지포 라이터를 선물을 하고 아내는 손으로 짠 벙어리 장갑과 속내의를 준비했더군. 가족들이 한 잔씩 따라주는 소주를 정말 맛있게 마셨어. 여편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오늘은 모처럼 이불 속에서 서비스를 해야 겠다며 자는 아내의 팬티를 더듬다 손가락이 빠져 버렸네.”
심각하게 진행되던 이야기가 갑자기 이상한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 영이는 아저씨의 얼굴을 빤히 보았더니 아저씨의 표정은 심각하였다.

“살며시 이불을 들쳐 보았더니 여편네의 팬티는 낡아 여러 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어. 노름쟁이 남편에게는 한번도 구멍 난 팬티를 입혀본 일이 없는 여자였어. 이불을 잘 덮어주고는 다시 술상에 앉아 눈물의 술을 마셨어. 노름판에서 크게 돈을 따는 날에는 기생들의 향수 냄새가 나는 나이론 팬티를 무수히 벗긴 나 자신이 부끄러웠고 아직도 이 분위기를 잊지 못해 개 노릇을 하는 내가 미친 놈이더라구.”
노름쟁이의 병은 손을 잘라도 발가락으로 화투를 만진다는 불치의 병인데 아내의 구멍 난 팬츠에 손가락이 빠짐으로 회심을 하게 되는 별난 회심가를 들려주었는데, 예수의 십자가 피가 원죄에 오염된 인간의 죄를 사하여 준다는 철수 전도사의 말도 별난 회심가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별장지기 최 노인의 사망으로 아내가 간청하기에 내가 별장지기가 된 것이야. 37살의 한창 나이에 섬 구석으로 피난 간다고 생각하니 기가 차지만 나 때문에 온갖 고생을 한 마누라가 눈물을 흘리며 하는 부탁인데 내가 참을 수 밖에. 목감서원에서 공부하는 큰 놈이 7살 때 이곳으로 이사 왔고 이듬해 전 의원이 아내와 일년을 여기서 보냈지. 처음의 별장지기 최 노인은 유 의원보다 5살이 많은 먼 친척이었는데 폐결핵에 걸려 이 곳을 맡게 되었는데, 이 곳에서는 건강하게 오래 살았어. 이들이 도토리 섬 1세고 전 의원과 나는 2세에 해당하지.

내가 전 의원보다 열살 정도 많아서인지 만나는 날부터 나를 큰 형님처럼 대우해 주는 것이 고맙더군. 전 의원과 나는 유씨 가문과 도토리 섬의 가족으로 되어갔어. 고독하게 두 장의 화투로 승부를 겨루는 것 보다 가족 속에서 사는 것이 행복하다는 사실은 시간이 흐를수록 느끼게 되었어.
인생도 화투를 치기 위한 판이지만 신이 4계절을 주신 것에서 12달로 나눈 인간의 지혜가 화투를 만든 것 같아. 48장이 변화를 일으켜 흥미를 돋구지만 우연의 일치일 뿐이야. 신이 주신 4계절도 약간의 변화는 있지만 열심히 일한 자에는 실망을 주지 않아. 현재의 삶의 판정은 미래에 하는 것이 제일 정확한 것 같아.”
인생은 정직하면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시골 아저씨의 소박한 철학이 상아탑의 지식인들이 가르치는 이념보다 신선하게 들리는 것이다. 혼자서 출애굽 한 영이 자신도 양동 이모, 삼돌엄마, 친구 희조, 전 의원 가족 등과 교류를 하면서 하나의 새로운 가족을 이루어 가는 느낌을 받았기에 아저씨의 말에 동감을 하였다.

“최 노인이 30년 동안 별장을 지키면서 금전출납부 형식의 일기를 적어 놓은 공책들이 있어. 감자 한 톨 내다 판 돈부터 송아지를 춘천 장터에서 팔아 색시 집에서 하루 저녁에 다 날린 이야기도 적혀 있어. 도토리 섬의 가보는 귀양살이 한 어른 때부터 기록한 일기식의 금전출납장인데 자신이 주인이니 누구에게 보일 필요가 없어. 죽은 뒤에 다음 별장지기가 볼 수 있는데 자립정신과 바른 정신이 깔려 있어. 안방 서재의 고서들이 다 금전출납장이며 아내들의 나름대로의 금전출납장도 보관되어 있어.

6.25 동란에도 최 노인은 혼자서 도토리 섬을 지켰는데 유 위원 어머님에 대한 재미있는 기록이 남아 있어. 환갑을 지난 이후로 치매의 현상을 보이신 할머니가 집안의 제사 일로 춘천에 왔다가 도토리 섬에서 산소를 둘러 보다 다리를 삐어 별당에서 약초로 치료를 받던 중에 동란을 만난 모양이야. 거동이 불편하기에 잠시동안만 최 노인이 모시기로 한 모양인데 육군장성의 어머니임을 알면 곤란하기에 많은 주의를 했나 봐.

외딴 섬에도 북한군이 수색을 나왔는데 최 노인이 ‘어머님, 해방군이 왔습니다.’했더니 ‘반갑구면, 우리 남편이 있던 독립군이 왔다고? 잘 대접하고 식량을 잘 챙겨 드려라.’는 말에 북한군은 절을 꾸벅하고는 가축이나 식량을 손도 대지도 않고 갔다고 기록이 되어 있어.
58년 봄에 내가 한달 동안 일을 도운 적이 있었는데 언제든지 이 섬에 들어와 살아라는 말씀을 하시더군. 그 동안 제법 많은 돈을 모아 두셨어. 이 섬에 온 날부터 나는 돈을 만지지도 않는데도 부자가 되는 것은 쓸 일과 쓸 곳이 없거든.”
“그래도 아이들 교육비가 제법 들어가지 않아요.”
“인간 교육비는 돈을 벌어들이는데 요즘 같은 기술 교육비는 돈을 부어 주어야 되더군. 교육에 돈이 많이 들어가면 본전 생각이 나서 배우는 자나 가르치는 자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 가는 것 같아.”

교육이란 인격 양성과 지식의 습득인데 아저씨는 기술자 양성소나 인맥 사교장으로 변해가는 학교의 교육을 나무라는 뜻이 있는 것 같았는데 허긴 학교 사업해서 부도난 사람이 없는 것이 한국의 교육계이며 서양식 교육은 지렛대를 주면 지구를 움직이겠다던 숫자의 제왕 피타고라스도 교육은 처음에는 학생에게 돈을 주며 배워주고 재미가 나면 학생들이 돈을 내며 배운다는 자본주의 셈법정신이 원조이기에 하는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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