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엮은 민중신학(19)  - 기독교인의 삶

                                                      정연복 엮음(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첫째 마당: 빼어난 인간, 예수

1. 밥으로 오신 예수/이현주

     사람을 비롯하여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더불어 나눔으로써만 살아갈 수 있다.
     이 거룩한 나눔이 끝장나는 곳,
     거기에 죽음이 있다.
     생명은 곧 나눔의 연속일 따름이기에.
     소유에 대한 집착에서 풀려남이 곧 해탈이거늘,
     닥치는 대로 모든 것을 소유코자 하는
     이 불쌍한 중생의 모습은 그 자체가 지옥이렷다.

     이 무간지옥에서
     사람을 건져내고자 오신 분이 예수시다.
     보라, 그분은 처음부터 스스로 남에게 먹힘으로써
     비로소 존재하는 ‘밥’으로 오셨다.
     구유는 밥통.
     밥통에 누워 있는 아기 예수는
     자신을 남김없이 내주어 인간을 살리시는
     하늘의 밥(누가 2:12; 요한 6:48-51).
     밥으로 오신 예수는 사랑을 설명하여,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고 했지.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가 나란히 있는 곳(누가 16:19-21 참조),
     부유한 자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눔을 베풀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조롱하고 희롱하는 곳,
     그곳은 이제 하늘로부터
     유황불이 떨어질 일만 남은 소돔이다.
     부자만이 나누어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가난한 자는 그 가난을 나누어야 한다.
     더불어 나눔은,
     하면 좋고 안 해도 그만인 하나의 선행이 아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 살아남을 유일한 길,
     유황불과 홍수에서 건짐받을 하나뿐인 길이다.
     (이현주, 『칼아, 너 갈 데로 가라』, 생활성서사, 16-19쪽.)

2. 예수의 인간애/앨버트 노울런
    
     예수의 인간애는
     인류 일반에 대한 막연한 추상적 태도가 아니었다.
     모든 사람을 일반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개별적으로는 아무도 사랑하는 사람이 없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예수는 그 누구라도
     혈통, 인종, 국적, 계급, 가문, 지능, 업적 등
     어떤 자격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대했다.
     이런 구체적·직접적 인간관계라는 의미에서
     예수는 모든 사람을 사랑했으며
     온 인류와의 연대성 속에 살았다.
     또 바로 이 때문에 예수는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 다른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사람들과 한편이었다.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
     ‘쓸모 없는 사람들’과의 연대성이야말로
     온 인류와의 연대성을 실천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앨버트 노울런, 정한교 역, 『그리스도교 이전의 예수』, 분도출판사, 109-110쪽.)

3. 독선을 거부한 자유인/송영

     살아 있는 예수님.
     이 말의 뜻은 그분이 그렇게 인간적이라는 말을
     강조해서 사용하는 말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따라서 예수님은, 살아 있는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생활인으로서 현실을 도피하지 않고
     현실을 극복하고 이겨 내는
     예수님이라고 생각한다.

     만약에 그가 그런 분이 아니고,
     번쩍이는 복장으로 몸을 단장하고
     저 웅장한 성전을 조석으로 드나들며
     시끌벅적하게 예배를 올리고 있는
     그 사람들만을 비호한다면,
     그리고 길을 걸을 때나 다방에 앉아 있을 때나
     자기의 신앙심에 도취된 나머지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을 무조건 경멸하고 긍휼히 여기는,
     그런 세례교인들에게만 하나님의 은총을,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그런 사람이라면
     나는 서슴없이 그분에게 등을 돌릴 것이다.

     감히 말하지만 그가 다만 세례교인에게만
     신의 선택된 사도의 특권을 부여하고
     그밖에 거리에서 방황하는 무식한 사람들,
     문자를 모르기 때문에 성경 한 구절도 읽지 못해
     원죄의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외면한다면,
     나는 그가 말하는 윤리를 신용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만든 제도 가운데는
     그 비슷한 모순을 담고 있는 사례들이 얼마든지 있다.
     그 제도가 인간을 얽어매고 채찍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런 따위 제도는 아니라고 믿고 있다.
     적어도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예수란
     단순히 한 가지 제도의 옹호자나
     혹은 그 제도에 군림하는 우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박두진 외, 『한국인의 예수체험』, 다산글방, 179쪽.) 

4. 예수의 경험/존 쉘비 스퐁

     예수 경험은 사랑의 경험이었다.
     이 사랑은 생명을 긍정하는 강력한 실재였다.
     그 사랑은 모든 인간의 장벽을 제거하고
     모든 사람의 편견을 없애버린 그런 사랑이었다.
     그 사랑은 인간의 영혼과 심성을
     심원한 변화에로 초대하였다.
     그런 사랑이 불러일으킨 것은 개방성, 편견의 소멸,
     자신의 안전을 고려하지 않고 완전한 접근을 허락하는 인간성,   
     그리고 어떤 사람도 고립시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런 사랑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내용의 진수(眞髓)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예수는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계셨다.
     이것이 바로 동정녀 탄생, 성육신, 삼위일체 따위의 신조의
     개념화된 언어로 나타내려 한 근원적 경험이었다.
     각종 신조의 언어들이 거룩한 게 아니라
     그 언어 뒤에 있는 경험이 거룩한 것이다.
     그 경험이 거룩함을 만나는 곳이다.
     그 사랑의 무제약적 내용을 직접 살아보는 경험을 거치지 않고
     단지 예배에서만 사랑이신 하나님께 접근할 수는 없다.

     예수는 우리를 개방하여
     좋은 일을 하다가 상처 입을 것도 각오하게 하는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이런 예수의 능력은 각 시대마다 알려지고 경험된다.
     내가 이런 그리스도를 경험한 것은,
     교회라는 세계에서 밀려난 변두리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교회로 자처하는 사람들에게서 배척받은
     희생자들에게 나 자신을 열었을 때였다.

     예수의 경험은 또한 생명의 경험이니,
     곧 온전한 생명을 말한다.
     예수는 인생의 의미를 그토록 깊게, 풍요하게,
     그리고 너무도 완전하게 보여주었기에,
     바로 생명의 근원이 그의 안에 나타난 것 같았다.
     첫 크리스천들의 경험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이 생명이 인간 수명의 유한한 장벽을 돌파하고
     그것을 깨뜨려 열었다.
     죽음이 이 신성한 생명을 주는 사랑을 가둘 수 없었다.
     그것이 바로 부활 이야기 배후에 있는 실재다.

     예수는 살아 있었고, 진실로 완전히 살아 있었기에,
     그의 활기찬 삶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했다.
     이 생명이 완전에 이르면,
     예수가 생전에 겪었던 똑같은 하나님 경험 속으로
     우리도 들어갈 수 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을 예배하며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을 긍정하며
     과감히 열린 삶, 충만한 삶, 완전한 삶을 살면,
     이런 예수의 구원의 능력을 인정하게 된다.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 계신다고 주장했던 하나님이
     삶의 헌신으로 그 하나님의 현존을 인정하는
     우리 안에도 또한 계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수의 경험은 존재(Being)의 경험이었다.
     성경은 자기 자신이 과감히 존재의 근원이 된
     예수를 보여준다.
     아첨하는 것이 불필요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는 자기의 생명을 앗아간 만행을 겪어야 했지만,
     그의 “존재”는 손상 없이 남아 있었다.
     그의 “존재”는 외부적 조건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참으로 유일하게도 예수는
     하나님이 그를 그렇게 창조하신 그대로였다.
     예수 안에서 창조의 온전한 의미가 터져 나왔다.
     그는 자신의 삶으로 존재의 근원을 살아냈으며,
     자신의 사랑을 통해 남들에게도
     그들의 존재의 깊고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게 했다.

     자기 자신이 되는 용기를 갖는 일,
     자기 자신을 주장할 수 있는 능력을 주장하는 일,
     그리고 자신의 삶을 자유롭지만 힘있게 사는 것이
     곧 인간 경험의 진수(眞髓)다.
     진정한 기독교는 궁극적으로 깊은 인간성으로 귀결된다.
     내가 나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고
     용기 있게 그 존재를 살아가며,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도
     과감히 그들 자신이 되라고 초정할 때,
     나는 예수를 예배하는 것이다.
     (존 쉘비 스퐁, 한성수 역, 『성경을 해방시켜라』, 한국기독교연구소, 326-333쪽.)
                       
5. 하나님을 보여준 예수/존 쉘비 스퐁

     우리가 ‘인간적’(human)이라고 부르고
     또한 ‘신적’(divine)이라고 부르는 자질들은
     서로 배타적인 것인가?
     아니면 그것들은 서로 통하는 것인가?

     인간이 하나님의 무한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무한이 모든 인간의 삶의 핵심에서
     발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둘은 서로 구별되는 게 아니다.
     인간성과 신성은 서로 통한다.
     요한문서 기자가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랑 안에 계십니다”(요한1서 4:16)라고
     주장했을 때 말하려 했던 게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접근하고자 하는 한 존재,
     즉 바깥에 계시며 초자연적이며 유신론적 존재는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내 인생의
     심층적 차원에서 발견되는 현존(presence)이며,
     생명의 잠재력, 사랑의 능력, 존재의 용기 속에서
     발견되는 현존이다.
     하나님의 의미를 궁극적으로 계시한 것은
     바로 예수의 존재, 예수의 완전한 인간성이었다.
     또한 우리를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의미와 연결시킬 것도
     역시 우리 각자의 존재,
     우리의 완전한 인간성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제자가 되는 것은
     내가 충만한 삶을 통해, 무진장한 사랑을 통해,
     하나님이 나에게 창조한
     모든 잠재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용기를 통해,
     예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현존을 닮음에 있어서
     예수의 능력을 얻는 것만을 요구한다.
     내가 이처럼 비유신론적 하나님,
     혹은 이처럼 계시적인 그리스도를 섬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모든 사람의 완전한 인간성이 발휘되지 못하게 가로막는
     온갖 장애물이 제거된 세상을 건설하려고 노력하는 길이다.

     예수는 나에게 신학적·인간적 성실성을 지니고
     나의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진리다.
     예수는 나에게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신 생명이다.
     그래서 나는 예수를 “주님”이라 부르며,
     “그리스도”라 부르며,
     내게 하나님을 보여주신 분이라고 주장한다.
     (존 쉘비 스퐁, 김준우 역,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한국기독교연구소, 165-168쪽.)   

6. 예수는 정치적이었다/프란츠 알트

     예수는 개인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답변하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정치적이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돈 문제와 권력의 문제,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하여
     예수는 놀라운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다.
     역사적 예수, 
     그의 산상수훈을 비정치적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예수를 모르는 사람이다.
     힌두교도였던 간디는
     예수가 얼마나 정치적 인물이었던가를 알았고,
     ‘예수의 정치’를 이용하여 성공한 사람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예수는 일관되게 비폭력의 대가(大家)다.
     원수를 사랑하는 정치로써 예수는
     폭력과 대응폭력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왕도를 제시한다.
     폭력을 거부하는 예수의 길을 따르는 자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가 가리키는 길은 우리 시대의
     제국주의적 팽창의 논리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이다.
     (프란츠 알트, 구승희 역, 『인류 최초의 멋진 남자 예수』, 한얼, 43-45쪽.)

  
     
7. 사탄의 세력에 승리한 예수/호세 까르데나스

     크리스천은 예수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예수가 했던 대로 행동해야 하기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
     초대교회 신자들처럼
     예수는 사탄의 끄나불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가 행한 일은 마귀의 힘에서 나온 것으로
     몰아붙여졌다(마가 3:22; 요한 10:20; 8:48).
     예수의 힘 곧 예수의 능력은 바로 성령이다.
     예수가 하는 일은 인간성을 말살하는 세력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바로 이 일은 모든 인간이 자유롭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신다는 표명이다.
     
     예수는 언제나 사탄에 대한 승리를 가르친다.
     사탄의 세력은 사람들을 짓누르며,
     사람들을 눈멀게 하고 불화하게 하는 세력이다(마태 6:13; 행전 26:18; 골1:3).
     사탄의 세력은 민중을 지배하고(요한 12:31)
     기만하고 파멸시킨다(요한 8:44; 계 12:10).
     사탄의 세력은 온갖 수단을 강구하여
     사람들을 죽음에 처넣으려 한다(누가 13:11-16).
     사탄의 세력은 사람들을 노예 상태로 몰아넣으며
     죽음에 이르게 한다(행전 2:20).
     우리에게 고통을 주고 민중을 짓누르는 현실은
     바로 악마적 체험이다.
     그러나 크리스천의 믿음은
     그러한 체험으로 인해 끝장나지 않는다.
     오히려 크리스천의 믿음은 어마어마한 세력의 악마와
     대적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가져다 준다.
     결국 겉으로 보기에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악마보다 ‘더 힘센 사람’(누가 11:22)이 있다.
     즉 그가 바로 순회 설교가이며 가난한 목수인 예수,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으로 나타난 예수,
     역사상의 실존 인물인 나사렛 예수다.
     (호세 까르데나스, 이종렬 역, 『민중의 예수 - 마르코복음에 의한 고찰』, 성요셉출판사, 74-77쪽.)

8. 겸손한 마음과 강력한 해방실천의 결합/박재순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낫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예수는 말한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강조하고
     엄격히 지키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일반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
     그리스도인의 의는 바리새인의 의와 어떻게 다른가?
     한마디로 그들은 사회적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고
     율법을 실천하려 했다.
     율법의 본뜻은 이웃사랑과 민중해방에 있는데
     그들은 율법을 문자적으로 지키는 일에만 힘썼다.
     불의한 사회 체제와 질서를 그대로 둔 채
     종교적인 법을 민중에게 강요하려 했다.
     결국 고달픈 민중에게 무거운 짐을 더 지우고
     형식적인 율법주의와 위선에 빠지게 되었다.
     
     예수는 어린아이처럼 낮아져서
     민중 속에서 민중과 함께 살았다.
     그는 민중과 더불어 살며 민중을 해방했기 때문에
     참으로 율법을 완성했다.
     그는 무한히 겸손하게 민중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민중해방의 길을 열었다.
     민중 속에 들어가려면 민중처럼 낮아져야 한다.
     어린아이처럼, 흙처럼 무한히 낮아진 마음만이
     민중과 하나 되고 민중을 해방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회개하는 세리를
     의롭다고 자처하는 바리새인보다 더 높이 평가했다.
     예수에게는 겸손한 마음과 강력한 해방실천이
     결합되어 있었다.
     그러나 후대의 기독교는 세리의 회개만을 받아들였다.
     회개하는 세리가 그리스도인의 모범이 되었다.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에 따르면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바리새파적 세리가 되었다.
     스스로 죄인이라고 말하고 겸손을 미덕으로 내세우지만
     속에는 교만과 위선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바리새파적 세리는 바리새인보다도
     훨씬 더 사악하고 위험하다고 한다.
     겸손을 가장한 교만,
     죄의 고백과 회개로 위장한 위선이기 때문에
     세리나 바리새인보다 훨씬 더 구제받기 어려운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율법을 지키려고 애쓰는 바리새인보다 더 의로워야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고 예수는 말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더 선하고 의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세상 사람들보다 더 꼬이고
     더 부끄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박재순, 『예수의 눈길』, 나눔사, 205-206쪽.)       
 
둘째 마당: 세상 속의 기독교인

1. 행동하는 신앙인들/존 호기

     복음은 더 이상 말로 그칠 수 없다.
     진정한 복음 선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변혁하려는
     노력을 유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앙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우리를 온전하게 만들고,
     육체적 사회적 실존의 상처들을 치유하고,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의 지상의 실존에 침입해 들어오도록
     이 통치에 참여하게 만드는 능력이다.
     “신앙은 해방시키는 능력이다.
     속박과 소외와 죄책 한가운데서
     삶에 온전성과 보람을 부여함으로써
     생명을 ‘구원’하는 능력이다”(허드슨).

     신앙이란 하나님이 결정하셔서 행동하시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는 게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능력에 힘입어
     주도권을 쥐고 세계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이해와 실천,
     정교(orthodoxy)와 정행(orthopraxy) 사이의
     변증법적 상관관계가
     성서 본문에는 빈번히 나와 있다.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은 빛이 있는 데로 나아간다”(요한 3:21)는
     말씀만 해도 그렇다.
     진리를 따라 사는 것이
     진리를 믿는 조건이라는 의미가 된다.
     바울은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갈 5:6)이라는 말로써
     신앙이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세계를 효과적으로 변혁시키는 힘임을 밝혔다.
     신앙은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보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존 호기 편, 성염 역, 『정의를 실천하는 신앙』, 분도출판사, 40-41, 47-48쪽.)

2. 예수의 제자된 사람들/존 호기
    
     자유주의와 개신교는
     하나님 나라를 순수한 영성적 실재로만 보았다.
     그런데 구약성서의 배경에서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의 지상권의 현실적 행사로 이해되면서
     획기적인 타결이 이루어졌다.
     하나님 나라가 하나님의 실재적 통치를 가리키는 한,
     그 공간적 차원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그 통치가 사실상 행사될 장소(영역)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는 세계 한가운데서 역사하고 변혁시키고
     세상 권세들과 투쟁하는 하나님의 ‘권능’이다.
     예수가 하나님 나라의 정확한 뜻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신 행적이 있다.
     그것은 죄인들, 세리들,
     당대에 법적으로나 제의적으로나 배척당하는 부류들과
     가깝게 교분을 나누고 식사를 함께하시는 행적이다.
     예수의 설명에 따르면,
     자비와 정의는 대립되기는커녕 역설적으로 통일을 이룬다.

     복음서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선포에 뒤이어
     제자가 되라는 부르심이 뒤따른다.
     제자는 재산과 일상의 요긴한 일에 대한
     걱정과 불안에서 벗어나야 한다(마태 6:25-33).
     제자됨은 예수가 영위했던 동일한 투신을 요구하며,
     예언자 노선에 입각하여 소외된 사람들에게
     동정과 자비로 헌신할 것을 요청한다.
     그것이 곧 세상에서 악한 세력과 대결하는 길이다.
     (존 호기, 『정의를 실천하는 신앙』, 분도출판사)
    
3. 세상에 맞서는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지성수
           
     예수는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악의 세력에 대해
     하나님 나라를 선포함으로 정면으로 대결했다.
     전투란 상대가 만만치 않을 때는
     언제나 엎치락뒤치락하게 마련이다.
     싸울 때마다 백전백승인 그런 것은
     만화에 나오는 슈퍼맨이지
     살아 있는 하나님일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역사 안에서든지 역사를 초월해서든지
     하나님이 최후의 승리를 할 것을 믿는 것이다.
     최후의 승리를 얻기까지는
     수없는 패배와 쓰라린 전투를 거쳐야만 한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에 대해 일찌감치 포기하고
     저 천당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악하다고 일찌감치 포기하고
     천당에 갈 생각만 하는 기독교인들보다는,
     세상이 아무리 악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싸우며 나아가는 사람이
     진짜 기독교인이다.
     
     예수는 한 과부가 못된 재판장을 상대로
     끈질긴 투쟁을 통해
     끝내는 정의를 이루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다시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이런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누가 18:8)라고 했다.
     이것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되풀이되는 물음이다.
     (지성수, 『옛날 하나님과 요즘 하나님』, 영림출판사, 151-152쪽.)
               
4.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크리스토프 블룸하르트

     오늘날 경건한 집회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도움도 안 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세상을 향해 울려 퍼지는 나팔소리에
     귀를 기울이라!
     그것이 경건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세상 안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이 세상을 향해 오래 전부터 울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그리스도인은 두 번의 회심을 해야 한다.
     첫째는 그리스도를 향해,
     그 다음으로는 세상을 향해 회심해야 한다.
     그리스도 자신이
     이 세상 안에 들어오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인간이 되셨다.
     오늘도 여전히 그분은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세상의 곤궁한 사람들을 돕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하나님 나라는 가장 곤궁한 사람들이 있는 곳,
     또 버림받고 핍박당하는 사람들에게 온다.

     예수는 가난하고 억눌리고 병들고 소외된 이들,
     자기를 주장할 수 없는 사람들의 편이었다.
     가난과 불의와 억압으로 얼룩진 세계,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은 탄식하고 계신다.
     인간 세계가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을
     슬퍼하고 안타까워하신다.
     예수는 인간이 만든 지옥들 속에 있다.
     예수께서 경건한 자들 저편에 있는
     가난한 자들과 고통받는 자들에게로 갔다면,
     우리의 신앙의 길도 낮은 곳을 향해야 한다.
     복음의 기쁜 소식은 일차적으로
     가난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한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탄식을 대변해야 하며,
     가난한 이들의 인권을 위해 일해야 한다.
     (손규태 편저, 『혁명적 신앙인들』, 한국신학연구소, 22-23쪽.)

5. “사람다운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최종수

     신앙인은 바른 사람이다.
     하나님 앞에 그 뜻 따라 바로 사는 사람이다.
     스스로 올바른 길을 따라 살 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올바른 인생길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이웃에게 어진 사랑을 베풀며
     무엇이든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고
     기꺼이 나누는 사람이다.
     사람답지 못한 삶 속으로 우리를 몰아넣으려는
     불의를 보고 분노하고
     담대히 몸으로 “아니”라고 꿈틀하는 사람이며,
     세상 풍조가 변해도 요지부동
     사람답게 사는 길을 굳게 지킴으로써
     정의로운 세상이 이룩되도록 애쓰는 사람이다.
     때로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며
     힘없고 가진 것 없기에
     핍박 중에 고통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고통당하는 일그러진 아픈 모습 중에
     그를 괴롭히는 자들의 죄악을 반증하기 때문에,
     그 스스로의 고통이 극복되는 날
     고통을 가하던 자마저도 구원하는 그런 사람이다.
     이러한 삶의 원형이
     예수의 십자가 죽음에서 보여졌다.
     
     가진 것, 배운 것이 별로 없어도
     사람답게 살려는 노력을 끝까지 멈추지 않는
     저 모든 보통의 사람들,
     그들이 바로 바른 사람, 바로 사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이름도 없이 살아서 알려지지도 않고,
     소리없이 살기 때문에
     빛내 주는 사람도 하나 없다.
     그러나 사실상 역사를 움직여 올바른 역사를 전개함으로써
     역사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역사의 주역인
     보통 사람들이다.
     이들이야말로 사람다운 삶을 살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요,
     자기 겨레의 양심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민족적 평화통일이
     분단 시대를 사는 오늘날
     우리의 첫째가는 역사적 과업임을 생각할 때,
     바른 사람, 바로 사는 사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신앙인이란
     바로 자주적 민족 평화통일을 위해
     온몸으로 사는 사람을 가리킨다.
     왜?
     그 통일만이 “사람다운 삶”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최종수, 『예수와 인간해방』, 선교신학연구회, 218-219쪽.)
     
6. 진정한 자유인/알란 부삭

     하나님은 해방자다.
     우리는 그분을 믿으며 신뢰한다.
     그분은 사악한 사람들을 정의로 심판하시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원하시며
     압제자들을 깨뜨리신다(시 72:4).
     우리는 자유를 향해 부름받았으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님이 되시도록
     자유를 계속 견지해야 한다(갈 5:1).
     진정한 자유인은 하나님께서 자유의 기초이며
     보증이 되심을 깨닫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유의 사소한 침해도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충성한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우리의 판단 기준이다.
     아무리 위협적이라고 할지라도
     현상 유지를 위한 요구에 그대로 따를 수는 없고,
     아무리 마음을 끄는 것이라고 해도
     어느 이데올로기의 요구에도 넘어갈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믿음과
     복음의 해방시키는 능력이,
     우리가 세상에서 겸손히 종노릇하는 기초가 되어야 한다.
     (알란 부삭, 『아프리카의 교회와 해방』, 형상사, 25-26, 49쪽.)
     

셋째 마당: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하는 삶

1. 분개의 모체이어야 할 연민과 사랑/서준식

     경직화·형식화되지 않기 위해
     항상 새로운 피의 순환과 신선한 이상에의 회귀가
     필요한 우리들에게 
     예수가 주는 교훈은 매우 값진 듯합니다.
     그것은 가장 근본적이어야 하고,
     또한 항상 옳은 방향과 길을 잃지 않으려는
     우리가 가장 확실하게 의지할 수 있는 지표가
     ‘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강렬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사회적 약자를 사랑하고 연민했습니다.
     그러나 그 연민이나 사랑이
     그것으로 그치고 분개를 동반하지 않는다면
     어찌 진정한 연민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사회적 약자를 약자이게 하는
     여러 가지 구속에 대한 분개는
     사실 복음서의 여러 곳에서 발견됩니다.
     ‘속류’들에게 있어서는
     분개의 ‘모체’이어야 할 연민과 사랑은
     희미하거나 증발되어 버립니다.
     속류들의 사상과 행동 밑에는
     충분하고도 두꺼운 ‘사랑’이 깔려 있지 않습니다.
     속류들에게 있어서는
     아름다운 이상이나 따뜻한 인간성이 후퇴하고
     기술과 효율과 명분과 소속 같은 것들이
     상대적으로 전면에 나오게 됩니다.
     (서준식 옥중서간, 『모래바람 맞은 영혼』, 형성사, 361쪽.)

2. 복음적으로 가난한 사람/L. 보프·C. 보프
     
     무수한 사람들이 불의에 희생되어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세계에서
     어떻게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될 수 있는가?
     이런 답변 외에 달리 답변이 있을 수 없다.
     즉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하여
     해방의 복음을 생활화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의 추종자들이 되고
     참된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될 수 있다.

     복음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과 다른 인간 형제·자매들에게 헌신하기 위해
     자신의 전 존재와 능력을 쏟어붓는 사람이다.
     복음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자기 속에 갇히거나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 아니고,
     자신의 안전과 자기 삶의 활동의 의미를
     이 세상에서 대우받고 재산과 명성과 영광을 누리는 데
     두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기꺼이 개방하고
     사심 없이 타인들을 섬기고 원수까지도 섬기며
     만민이 보다 인간다운 품위를 지니고 살 수 있는
     수단들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다.
     착취와 소비가 미덕이 된 사회에서,
     복음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이 세상의 재물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눌 목적으로
     절도 있고 검소하게 사용한다.
     복음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계획이 실현될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내맡기는 사람이며,
     따라서 하나님 나라의 도구와 표지가 되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역사상의 예수께서 그렇게 하신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하며
     가난한 사람들과 일체화되는 사람이다.
     복음적으로 가난한 사람은 특히
     비록 사회·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의 위치에 있지 않을지라도,
     사회·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하고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불의한 가난에 대적하는 그들과 힘을 합쳐 싸우고
     해방과 정의에 입각한 단결을 추구하기 위해,
     기꺼이 그들 가운데 똑같은 한 사람이 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물질적 가난을 찬양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물질적 부를 찬양하지도 않는다.
     물질적 가난은 착취적 범죄의 소산이며,
     물질적 부는 억압적·배타적 축적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만민을 위한 사회정의를 찬양하고 소망한다.
     제3 세계의 맥락에서는,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과 구체적으로 억압받는 사람들의
     생명과 문제점과 투쟁에 연대하지 않는 사람은
     복음적으로 가난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야말로
     나사렛의 빈자, 예수님을 추종하여
     자기 자신으로부터 해방되고,
     가난한 사람들과 억압받는 사람들의 모습 뒤에
     숨어 계시는 하나님께 몸바치기 위해
     온전히 자기 자신을 해방시키는 사람이다.
     (L. 보프·C. 보프 공저, 김수복 역, 『해방신학 입문』, 한마당, 20, 73-74쪽.)

3.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에 대한 민감성/S. 갈릴레아

     그리스도교와 그리스도교 정신과
     그리스도교 사상이란 그 본질에 있어서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에 민감하고
     우선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택하며
     가난한 사람들에게 헌신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일이 그 핵심이다.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처지에 대한 민감성은
     ‘하나님께 대한 민감성’과
     뗄래야 뗄 수 없을 만큼 긴밀한 중요성을 갖는다.
     그 중요성은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훑어보아도
     명확히 드러난다.
     예언자들에게 있어서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찬양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정의 실천과 사랑이 없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진정한 회개는 자기 형제들,
     그 중에서도 특히 억압받는 사람들과
     정당한 권리를 빼앗긴 사람들에게
     헌신함으로써만 표명된다(이사 1:10-17; 58:6-7 등).
     ‘최후의 심판’(마태 25:31-46) 비유에서 볼 때,
     비단 물질적 원조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가난한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헌신만이
     구원에 이르는 길이며,
     만일 가난한 사람들을
     궁핍한 내 형제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들의 처지를 민감하게 느끼지 않는다면
     그것은 파멸에 이르는 길이다.
     (S. 갈릴레아, 김수복 역, 『해방신학의 개관』, 성바오로출판사, 52-54쪽.)

4. 해방의 복음을 생활화하기/L. 보프·C. 보프

     무수한 사람들이 불의에 희생되어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세계에서
     어떻게 그리스도 신자들이 될 수 있는가?
     이런 답변 외에 달리 답변이 있을 수 없다.
     즉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하여
     해방의 복음을 생활화할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예수님의 추종자들과 참된 그리스도 신자들이 될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의 해방운동에 투신하다 암살당한
     루띨리오 그란데 신부의 시체 앞에서,
     그때까지 보수적인 정신에 사로잡혀 있던
     엘 살바도르 공화국의 대주교인 오스카 로메로는
     가난한 사람들의 옹호자로 변신했다.
     순교자가 흘린 피가 그의 눈에서 비늘을 떼어내고,
     그는 급기야 해방의 시급성에 눈뜨게 된 것이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명을 자기 사명으로 삼는다는 것을 뜻하고,
     그 사명을 수행하다 받는 박해들을 견딘다는 것을 뜻하며,
     부활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충만한 해방을
     돌려받으리라는 희망 안에서
     예수님의 운명을 성심껏 자기 운명으로 삼는 것을 뜻한다.
     (L. 보프·C. 보프, 김수복 역, 『해방신학입문』, 한마당, 20, 22, 81쪽.)

5. 진정한 인간적 봉사/J. 바니에

     결국 가장 중요한 일은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해주는 게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자신감을 갖고
     스스로 부여받은 선물을 깨닫도록 돕는 일이다.
     진료소나 학교를 세울 돈을 들고
     빈민가에 도착하는 것이 중요한 일은 아니다.
     그보다는 빈민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스스로 깨닫도록 도우면서 함께 시간을 보낸 후에
     그들과 더불어
     그들이 원하는 건물을 세우는 일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하면
     세운 건물이 그다지 아름답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건물을 더 많이 활용하고
     더 깊이 사랑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건물은 모든 사람의 것이지
     좋은 생각을 가진 한 이방인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무릇 진실로 인간적인 봉사란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J. 바니에, 성찬성 역, 『공동체와 성장』, 성바오로출판사, 109-110쪽.)
     
6. 형제애의 실천을 통한 자기 초월/함세웅

     구원은 인간의 문제이기에
     인간과 관계된 일체의 것,
     곧 세상과 무관할 수 없다.
     세상의 일들, 나와 관계된 종교, 교육,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에 대한 관심은 바로 우리의 의무이며
     그것이 우리의 삶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특히 한국에서
     모두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정치 현상이다.
     정치 영역을 벗어난 인간의 행위를
     우리는 생각할 수 없다.
     인간의 모든 행위는 결국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

     이웃은 바로 또 하나의 나 자신이다.
     이웃을 위한 헌신 자체가
     바로 자기 구원이며 자기 완성이다.
     사회적 투신은 자기 실현,
     아니 바로 자기 초월을 뜻한다.
     그러므로 성서는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고 선언하고 있다.
     순교란 바로 신화(神化)다.
     그것은 인간이 지닌 초능력의 장엄한 표현이다.
     평등성의 확인, 형제애의 실천, 초능력의 창조성 발휘,
     이를 통해 우리는 자기 초월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자기 초월의 경지,
     바로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곳이다.
     (함세웅, 『멍에와 십자가 - 교회의 사회비판적 기능』, 빛두레, 28, 53, 56쪽.)
     

넷째 마당: 기독교인의 행복한 삶

1. 기독교보다 진리를/새뮤얼 테일러 콜러릿지

     진리보다 기독교를 더욱 사랑하는 사람은
     기독교보다 자기 교파를 더욱 사랑하게 되고,
     마침내는 그 어떤 것보다도
     자기 자신을 더욱 사랑하는 것으로 끝나고 만다.

2. 남을 위한 인간/디트리히 본회퍼

     신은 스스로를 십자가로 추방당하게 한다.
     신은 이 세상에서 약하고 무력하다.
     그리고 바로 이렇게 해서, 또 이렇게 해서만
     우리와 함께 있고 우리를 도와준다.
     그리스도는 그의 전능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의 약함과 고난에 의해 우리를 도와준다(마태 8:17).
     인간의 종교성은,
     인간이 곤궁에 빠졌을 때
     이 세상에서 신의 능력에 호소하도록 가르친다.
     그러나 그것은 “임기응변의 신”에 지나지 않는다.
     성서는 인간이 신의 무력함과 고난을 바라보게 한다.
     고난당하는 신만이 인간을 도울 수 있다.

     신이란 무엇인가?
     신의 전능 따위에 대한 추상적 신앙이 아니다.
     이런 신앙은 순수한 신체험이 아니라
     이 세상을 연장시킨 것에 불과하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은
     오직 남을 위한 관심만 있는 예수를 체험함으로써
     인간 존재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것을 뜻한다.
     이 남을 위한 예수의 관심을 깨닫는 것이
     바로 초월 체험이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유한 것,
     이것만이 그의 전지전능하고 무소부재한 속성의 근거다.
     신앙은 이 예수의 존재,
     그의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에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와 신과의 관계는,
     절대적인 능력과 선(善)을 갖고 있는
     어떤 가장 숭고한 ‘존재’와의 종교적 관계가 아니다.
     이것은 초월에 대한 그릇된 개념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와 신과의 관계는,
     ‘신의 존재’에 참여함으로써 생겨나는
     남을 위한 새로운 삶을 뜻한다.
     (본회퍼, 『옥중서한』) 

3. 사랑을 위하여/이현주

     그렇다. 결국은 사랑이다.
     눈에 보이는 어떤 성과를 남기려고 꾀하지 말아라.
     인생이 추잡스러워져.
     명심해라. 길을 걷는 자에게 목적이 있다면
     길을 걸어서 마침내 스스로 길이 되는 데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끝없는 길을 끝없이 걷다가
     마침내 스스로 길이 되어 눕는 그 순간까지,
     필요한 모든 것의 이름이 ‘사랑’이다.
     사랑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여,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한다.
     그렇다.
     사랑이 없다면,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인생을 위하여 사랑이 있는 게 아니다.
     사랑을 위하여 인생이 있는 것!
     사랑이야말로
     온 우주의 유일한 원인이자 결과다(고전 13:1-3).

     걷지 않고서는 ‘사랑’을 모른다.
     사랑은 문이다.
     순간에서 영원으로 들어가는 문.
     사랑은 언제나 ‘순간’에 산다.
     (이현주, 『칼아, 너 갈 데로 가라』, 생활성서사, 130, 133쪽.)
      
4 . 하나님을 보여주는 모자이크/헨리 나우웬

     공동체란 거대한 모자이크 같은 것이다.
     작은 조각만 보면 다 시시해 보인다.
     한 조각은 밝은 빨간색인데
     다른 조각은 차가운 파란색이다.
     칙칙한 녹색도 있고 따뜻한 자주색도 있고
     선명한 노란색도 있고 눈부신 금색도 있다.
     귀해 보이는 것도 있고 평범해 보이는 것도 있다.
     요긴해 보이는 것도 있고 쓸모없어 보이는 것도 있다.
     번듯해 보이는 것도 있고 가냘프게 보이는 것도 있다.
     개개의 돌로 친다면
     서로 비교하며 멋과 가치를 따지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별로 없다.
     그러나 작은 돌들이 모두 한데 모여
     커다란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여주는 모자이크를 이룬다면
     누가 감히 돌 하나하나의 중요성에
     의문을 달 수 있겠는가?
     가장 볼품없는 것일지라도 단 한 개라도 없으면
     얼굴이 온전할 수 없다.
     한 모자이크 안에 함께 있을 때
     작은 돌은 저마다 필수 요소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에 제몫을 담당한다.
     그것이 공동체다.
     함께 이 세상에 하나님을 보여주는
     작은 사람들의 모임인 것이다.

     개인 간의 차이를 더 이상 경쟁의 근거로 보지 않고
     오히려 풍요로운 공동체의 기여 요소로 인식할 때
     우리는 비로소 공동체로의 부르심을 듣게 된다.
     나이와 생활방식과 인종과 계급과
     언어와 교육 수준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함께 모여
     세상에 하나님의 긍휼의 임재를 증거할 수 있다.
     서로 짐을 져주고 서로 기쁨을 나누는 모습을 통해
     이 세상에 하나님의 임재를 증거하는 것이다.
     (헨리 나우웬, 윤종석 역, 『꼭 필요한 것 한가지, 기도의 삶』, 복 있는 사람, 131-132쪽.)
           
5. 물질의 공유/안병무

     물(物)을 존중하는 것은 물질주의가 아니다.
     가장 탐욕스럽게 물질을 추구하며
     물질에 예속되어 있으면서도
     물질을 혐오하는 체하는 것,
     남에게 물질을 경시하도록 하면서
     물질을 독점하려는 이데올로기가 바로 물질주의다.
     그러므로 물을 존중한다는 것은 가장 정신적인 말이며,
     곧 노동을 신성시하고
     노동을 통한 인간의 연대 추구를 귀하게 여긴다는 말이다.
     물질은 인류가 공유하고 나눔으로써
     하나님 나라 건설에 이바지하는 데 쓰여야 한다.
     유물론이란
     물질의 독점을 위한 이데올로기로 전락한
     유심론(관념론)에 대한 상대개념이요 대안이다.
     그러므로 물질의 공유와 정의로운 분배가
     물질주의일 수는 없다.
     그리스도인은 물질의 공유와 정의로운 분배를
     구체적인 사랑의 행동으로 알아야 한다.
     이 사랑의 행동이 없이는 그리스도인이
     한국 역사 속에서 그 정체성을 형성할 수 없다.
     테이야르 샤르댕의 말대로
     “하나님이 태초에 물질을 창조했다.”
     이 물질은 인간이 함께 누리며
     사랑하고 친교하며 평화스럽게 살아가기 위한
     은총의 선물인 것이다.
     (안병무, 『역사 앞에 민중과 더불어』, 한길사, 30쪽.)

6.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구스따보 구띠에레스

     사람들이 돈에 자신들의 희망을 둘 때,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맞아들일 여백을 전혀 갖지 못한다.
     그런데도 돈을 숭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아주 일상적이고 실제적인 유혹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반대된다.
     그래서 마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전하면서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다음과 같은 설명을
     주님의 입에 담아 드린다: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말씀을 억눌러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마태 13:22).
     예수께서 취한 이처럼 뚜렷한 태도는 바울에게 이어진다.
     그는 탐욕스런 자들을 명확히 우상숭배자들로 기술한다:
     “음행하는 자와 더러운 짓을 하는 자와 탐욕을 부리는 자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상속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탐욕을 부리는 자는 우상을 숭배하는 자입니다”(엡 5:5).
  
     탐욕은 돈을 신격화하고 절대화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첫째 편지에서 말한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 다니다가 길을 잃고 신앙을 떠나서
     결국은 격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딤전 6:10).
     돈(재산, 맘몬)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우리의 얼을 빼놓는 마력을 갖고 있다.
     복음서들이 주의 깊고도 강력하게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나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마태 6:24)고 못박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구스따보 구띠에레스, 황종렬 역,『생명이신 하나님』, 분도출판사, 132-134쪽.)

7. 영원을 준비하는 삶/존 쉘비 스퐁

     나는 우리가 영원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
     종교적인 사람이 되고
     규칙들을 지키는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들 각자가 지닌 능력만큼
     충만하게 살고, 열심히 사랑하고,
     용기 있게 실행하는 것에 의해서라고 주장한다.
     나는 또한 다른 사람들도 누구나 그렇게 살고,
     사랑하고,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독교인들이 맡은 유일한 사명이라고 주장한다.
     우리의 과제는 개종시키는 게 아니다.
     우리의 과제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능력껏
     그런 깊이 속으로 들어가도록 요청하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존재 안에 사는 신자로서,
     하나님의 사랑과 더불어 사랑하는 신자로서,
     그리고 사랑의 힘에 의해 구별되고 규정된 나의 존재가
     모든 존재의 근거와 하나 된
     다른 사람들과 결합되는 영원성을 예상하는 신자로서
     그 여행을 계속할 것이다.
     내가 나의 깊은 곳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무한하며, 무제약적이며, 초월적이며, 내재적이며,
     실재하는 하나님이 된다.
     내가 이 하나님을 아는 정도까지만
     나는 인생의 의미를 알고 있다.
     이런 신앙 속에서 나는
     인생이 영원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고 믿는다.
     (존 쉘비 스퐁, 김준우 역, 『기독교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한국기독교연구소, 25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