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로 엮은 민중신학(17) - 여성   

                                                 정연복 엮음(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첫째 마당: 예수와 여성

1. 예수 시대의 여성들/호세 까르데나스

     예수 시대의 여성은
     오늘날보다 훨씬 더 억압받고 있었다.
     여성에 대한 권리 침해와 모욕으로 나타난
     그러한 억압은 하나님의 뜻으로 합리화되었다.
     여성은 법적 신분이 사유재산에 속했으므로
     사회활동을 하지 못했다.
     여성은 어떠한 공적 생활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미혼 여성은 거의 집안에 갇혀 살았다(마카베오하 3:19).
     학교는 사내아이들만을 위해 있었고
     여성 교육은 가사를 배우는 것에 한정되어 있었다.
     여성의 말은 법정에서 증언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여성은 남자 상속인이 없을 경우에만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민 27:8).
     여성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불임은
     하나님이 내리신 벌로 간주되었다(누가 1:25).
     여성은 그녀가 낳은 사내아이 숫자로 평가받았다(창 29:31-35).
     
     남자가 아내를 맞이하면
     그때부터 그는 그녀를 마음대로 처리할 수 있었다.
     남편이 갖는 권리에는 법적 제약이 거의 없었다.
     오직 남자만이 이혼할 권리가 있으므로
     아내는 남편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여성은 이혼 소송을 제기할 수 없었다.
     1세기 말에 한 랍비는
     남편이 자기 아내보다 더 아름다운 여성을 발견했다는 사실은
     자기 아내에게 뭔가 수치스런 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종교적으로 정당화된 것은 단지 이혼만이 아니었다.
     여성에 대한 온갖 형태의 억압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권리로서 행해졌다.
     아무래도 여성은 결점투성이,
     거짓말쟁이, 수다쟁이로 간주된 것 같으며,
     게으르고 경박하게 보였으며,
     요술을 부린다고 생각되었다.
     따라서 여성은 경멸을 받아 마땅했다.
     여성은 색정광으로 여겨졌다.
     여성은 율법 교육을 받을 만한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고 여겨진 까닭에,
     계율을 지킬 수 없는 무리라고 쉽게 단정지어 버렸다.
     여성은 성서를 읽지 않았다.
     랍비 유다는
     “오, 야훼여! 저를 여자로 태어나지 않게 하셨으니
     감사하나이다!”라고 기도했다.
     (호세 까르데나스, 이종렬 역, 『민중의 예수 - 마르코 복음에 의한 고찰』, 성요셉출            판사, 81-85쪽.)

2. 여성을 바라보는 예수의 시각/호세 까르데나스

     예수 시대의 팔레스틴에서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를 명백히 드러내는
     이혼법에 감히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바리새파 사람들은
     바로 이 이혼에 대해 예수에게 질문하고 있다(마가 10:2).
     복음서 저자는 그들의 의도가
     예수를 시험하는 데 있다고 덧붙이고 있다.
     만약 예수가 이혼법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는 모세의 법과 반대 입장에 서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는 자기 민족의
     사회·종교 질서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질문이 바리새파 사람들,
     즉 예수를 신성모독죄를 범한 자, 악령에 사로잡힌 자,
     전통과 규범 위배자라고 비방한 사람들에 의해
     제기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예수를 죽여 버리기로 이미 마음먹고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의 답변에서
     그를 죽이기 위한 또 한 가지 구실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예수에 따르면,
     남성이 여성을 지배할 만한 권리는 조금도 없다.
     여성을 물건이나 소유물로 취급하는 것은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예수는 사람들에게 창조 질서,
     그리고 그 무엇으로도 갈라놓을 수 없는
     근본적인 결합을 상기시키고 있다.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다(창 1:27).
     즉 예수는 남자와 여자를 동일한 차원에서 보고 있다.
     하나님은 둘을 한몸으로 만들고자 하셨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인격적으로 속해
     헌신하게 하셨다(마가 10:8-9).
     
     예수의 실천으로 말미암아
     성(性)을 도구 삼아 사람을 복종시키는 온갖 명분은 사라졌다.
     이제 여성을 한갓 소유물이나
     쾌락의 도구로 여길 이유는 사라졌다.
     예수는 여성을 번식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것을 반대했으며,
     남자와 여자의 결합을
     육욕적인 교미로 여기는 것을 거부했다.
     예수는 이 결합의 근본을
     동일시, 일치된 삶, 인격적인 헌신에 두고 있다.
     이제 종속의 관계는 평등의 관계로 전환된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 때문에
     소유물이란 개념은 사라지고 만다.
     예수의 이러한 시각은
     하나님 왕국에 대한 그의 체험에서 나온 것이다.
     (『민중의 예수 - 마르코 복음에 의한 고찰』, 87-93쪽.)

3. 여성적 남성, 예수/프란츠 알트
   
     그는 여성적인 것을 내면에서 몰아내지 않고
     자기 속에서 발전·통합시킨 여성적 남성이었다.
     그래서 2,000년 전에 그를 만난 모든 여성들은
     예수만 보면 열광했고 금방 그에게 매료되었다.
     
     예수의 제자들 중에는 여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그의 변함없는 동반자들이었다.
     경건하게 대접받기를 원하는 유대의 랍비들은
     어느 누구도 여성 제자들에 둘러싸이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아주 달랐다.
     “예수와 함께 갈릴리에서 온 여인들”(누가 23:55),
     “수많은 여인들이 그를 슬퍼하며 그를 위해 울었다”(누가 23:27).
     누가복음에 따르면,
     이름이 알려진 여섯 명의 여성 제자들 외에도
     많은 여인들이 예수를
     도시에서 도시로, 마을에서 마을로 따라다녔다.

     “예수는 여자들에게 어떤 적대감도 나타내지 않는 최초의 남성이며,
     이는 아주 드문 일이다”(한스 볼프).
     여자들과의 인간적 교제,
     어머니 같은 아버지의 모습을 지닌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여성적 묘사들은
     의심할 바 없이 예수가 꿈꾸는 신세계가
     가부장제의 종말을 전제조건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프란츠 알트, 구승희 역, 『인류 최초의 멋진 남자 예수』, 한얼, 12, 78, 180쪽.)

4. 여인에게서 배우는 예수/프란츠 알트

     야곱의 우물가에서
     그는 거만한 유대인답게 사마리아 여인을 만났다.
     여인은 예수에게 신학적 추상적 대답이 아닌
     여성적이고 구체적인 대답을 했다.
     “주님은 물그릇도 갖지 않았고 우물은 이렇게 깊은데
     어떻게 생수를 얻는단 말씀입니까?”(요한 4:11).
     그녀는 예수가 전형적으로 과대망상적 남자라고 생각했다.
     여전히 유대인의 인습에 사로잡혀
     예수는 ‘유대인의 신’을 믿었다.
     예수는 이 여인과의 대결을 통해 비로소
     자신이 갖고 있는 신의 형상이
     얼마나 근시안적인지 알게 되었다.
     신은 유대인만의 신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성령이며 모든 사람을 위한 신이다.
     예수가 신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도록 한 사람은
     바로 이 여인이었다.
     예수는 스스로 인간 경멸의 단계를 거쳤으며,
     자기 잘못을 뉘우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기에
     타인의 교사가 될 수 있었다.
     예수는 처음부터 완전한 인간은 아니었다.
     실수를 통해 배우고 또한 여인을 통해 배우면서
     그는 자신을 완전한 인간으로 발전시켰다.
     예수가 여성에게서 배우고자 했던 마음 자세는
     남녀의 교류 관계가 전혀 없었던 당시 상황에서는
     대단히 새롭고 놀랄 만한 것이었다.

     마리아는 예수의 정신적 파트너였다(누가 10:41-42 참조).
     예수는 여성들이 자기를 해방시킬 것과
     그들의 정신적 가치를 자각할 것을 주장했다.
     예수는 권리가 짓밟힌 자들의 정신적 존엄성을 회복시켜 주었다.
     예수는 부활한 인간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당시 사회의 오로지 남성 주도 정권을
     최초로 폭로하고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남성이 지배하는 교회는 미래가 없다.
     그러나 여성과 협동하는 예수의 정신을 본받아,
     태초의 교회가 지녔던 정신을 구현할 때,
     그 교회는 장래가 있는 것이다.
     (『인류 최초의 멋진 남자 예수』, 36-37, 73, 81-86쪽.)

5. 에로스의 대가, 예수/프란츠 알트

     다수의 금욕주의자와는 반대로,
     예수는 남녀의 성(性)이나 혹은 여자에 대한 공포가 없었다.
     예수는 모든 인간의 마음 속에는 ‘신적인 핵심’,
     즉 하나님의 자식됨의 핵이 있음을 인정했다.
     예수는 연애와 성행위에 관한 한
     결코 사시(斜視)의 눈으로 보지 않는다.
     그에게서 결혼은 육체적 및 영적 조화의 생활이고
     남성과 여성의 조화이며,
     에로스적, 정신적, 영적 포옹의 학교다.
     예수는 에로스와 사랑의 대가(大家)였다.

     그에 반해 바울은 성(性)에 공포를 느낀 대표적인 사람이며,
     여성에 대해 적대적인 관념의 소유자다.
     그는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인물 중 가장 심한 여성 적대자다.
     바울에게 여자들이란 오로지 ‘침묵’해야만 하는 존재다.
     그는 예수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서간은 교회사에서
     예수의 구체적 삶과 실재적 삶의 가르침보다
     더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  
     (『인류 최초의 멋진 남자 예수』, 76-78쪽.)

6. 마르다와 마리아(누가 10:38-42)/안병무

     마르다는 전형적인 ‘모성성’의 근거다.
     그러나 예수는 마리아를 칭찬함으로써
     새로운 여인상을 제시한다....
     예수는 가부장적 세계 한가운데서 여성들을 향해
     자신을 해방시키고,
     자신들의 정신적 가치를 생각하라고 요구한다.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인간상은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의 통합이다.
     이것이 “참 인간”을 만든다....
     예수는 여성적인 것을 자신의 내면에 발전시킨 남성이었다....
     하나님 나라는
     이제까지 지배와 독점으로 이어져온 남성문화를
     생명과 평화로 이어지는 여성문화로 바꾼다.
     (『함께읽는 신약성서』, 한국신학연구소, 94-96쪽.)

7. 간음한 여인과 예수 - 요한 8:4-9/박경미

     이 이야기에는 간통 금지라는
     당시 사회의 성윤리를 깨뜨린 한 여인이 등장하고,
     다른 한편으로 그 원칙을 관철시켜 나가려는
     무리가 등장한다.
     그리고 예수는 그 둘 사이에서
     어려운 외줄타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미워하지 말라는
     인도주의적 교훈 말고 성윤리와 관련해서
     이 이야기는 무엇을 말해 줄 수 있을까?

     이른 아침 성전에서 무리를 가르치고 있는 예수 앞에
     간통 현장에서 잡힌 한 여자가 끌려온다.
     그를 붙잡아 온 자들은 서슬이 퍼렇게
     예수에게 질문을 들이댄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돌로 쳐 죽여야 합니까?
     당신이라면 어쩌겠소?“
     흐트러진 옷매무새의 여인과
     살기동등한 유다인들을 마주하고
     예수는 잠시 딴청을 피우듯
     묵묵히 땅바닥에 뭔가를 쓴다.
     한참 후 예수는 이렇게 답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를 돌로 쳐라.”
     사람들이 물러가고
     이제 예수는 여인에게 말한다.
     “그들은 다 어디 있느냐?
     너의 죄를 묻던 사람은 아무도 없느냐?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말라.”
     악의가 번뜩이고 긴장감 넘치는 상황 속에서
     예수의 태도는 놀랄 만큼 침착하고 절제되어 있다.
     (최만자·박경미 공저, 『새 하늘 새 땅 새 여성』, 생활성서사, 112-114쪽.)

8. 예수운동과 여인들/안병무

     최초로 쓰여진 마가복음은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를 줄곧 따라다닌 것은
     여인들이라고 증언하며,
     예수가 여인들과 접촉한 경우가 여러 차례 전승된다.
     그 중 일부에서는 여인들과 대화를 통해
     예수 자신이 새로운 인간 이해를 갖게 되며,
     자신의 태도를 변화시켜 가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 중에는
     여성적 표현들이 중요한 내용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가
     여성들과의 만남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배웠으며,
     ‘여성성’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보았음을 의미한다.
     특히 열두 제자로 대표되는 남성 제자들보다
     예수에게 더 밀착되어 있고
     끝까지 “예수를 따른” 집단으로
     막달라 마리아로 대표되는 또 다른 제자 집단을 언급한다.
     복음서 기자는 향유를 부은 여인과
     유다의 배반을 극명하게 대조시킨다.
     이 절박한 순간에 예수와 함께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마가복음 기자는
     이제까지 대조의 기법을 통해 반복해 온 목소리를
     예수의 최후 순간의 목격자들 명단을
     일일이 공개함으로 폭발시킨다(15:40-41).
     
     그리스도교가 예수의 부활사건에서 출발했다면,
     그리스도교의 출발, 교회 출발의 시점은
     사도들이 아닌 바로 이 여인들이다.
     기름 부은 익명의 여인,
     베다니의 마리아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는
     한 여인, 혹은 예수의 운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한 여인 집단을 상징하는 대표적 이름일 수도 있다.
     예수가 처형됨으로 해체되었던 예수운동,
     하나님나라운동이 여인들에 의해 재건된 것이다.

     마가가 제자들에 대해 이렇게 비판적으로 서술한 것은
     마가 당시 이미 교권화되고 권위주의화된 교회,
     교회 직제에서 여성을 차별하던 제도,
     그리고 이러한 권위의 온상인 사도권에 대한
     민중적·여성적 저항이며 고발이다.
     예수가 부활하신 후 갈릴리로 가셨다는 보도는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교회가 이념화되고 도그마가 되고
     세례와 성찬 의식에 의해
     전례화·제도화된 것에 대한 비판이다.
     (『함께읽는 신약성서』, 한국신학연구소, 84-93쪽.)
     

둘째 마당: 여성적 성서읽기

1. 여성적 성서읽기/기독여민회 신학위원회

     성서의 하나님은 출애굽 사건을 통해
     인간의 억압을 해방으로 이끄는 당파적 실천을 보이시고,
     그것은 결국 인간의 자유 확대라는
     보편적 구원으로 완성된다.

     그러나 이 구원의 역사를
     가부장 사회의 억압에서 해방되어야 하는
     여성의 관점에서 보면 걸림돌이 존재한다.
     성서도 오랜 시간에 걸쳐 쓰여진 역사적 산물이므로
     가부장 사회의 영향을 받아
     가부장적 서술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약 대상자로
     아브라함-이삭-야곱-롯-요셉에 이르기까지
     믿음의 조상들로 불리는 남성들만 등장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또한 여성들이 자기 해방의 전거로 삼을 수 있는 본문들도
     선택자들에 의해 외면당하거나
     여성 억압적으로 잘못 해석되고 있다.
     그것은 여성이 창조되는 이야기와 타락 이야기를
     성차별적으로 잘못 해석하는
     오랜 기독교 전통이 잘 말해 준다.
     차별을 당하는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이야기는
     아예 언급되지 않거나
     위대한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다.
     지금까지 민중적 성서읽기에서도 배제되어 온
     여성들의 사라져 버린 이야기를 이제 찾아보려 한다.

     이 여성적 성서읽기에서는
     오늘 이 땅에서 여성해방을 지향하는 여성의 경험을
     해석학적 기준으로 삼고
     여성적 당파성과 여성적 실천을 시각으로 삼을 것이다.

     여성 억압의 경험에서 해방되기 위한 여성적 실천은
     결국 여성뿐만 아니라 여성을 억압하는 대상들도
     동시에 해방시키는 보편적 경험을 지향하기에,
     성서의 당파적 실천은
     여성적 실천과 접점을 이룰 수 있다. 
     (기독여민회 신학위원회, 『성서가 보는 여성 여성이 보는 성서 - 창세기에서』, 녹두,           14-15, 19쪽.)

2. 하나님은 여성들에게도 응답하셨다/기독여민회 신학위원회

     아브라함-이삭-야곱 등
     남성 중심으로 이어지는 족장사에서는
     하나님의 약속이 남성에게만 임하는 것처럼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남성들에게만 응답하신 게 아니라
     하갈에게도 응답하신다.
     하나님은 하갈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그녀가 겪은 일을 말할 수 있게 하셔서
     마침내 그녀는 자기에게 임한 하나님을 고백한다(창 16:13).
     따라서 남성들의 역사 이면에는
     여성들이 차별받는 아픈 이야기가 있음을
     기억하고 찾아내어,
     이제는 해방자 하나님의 영이 여성에게도
     임한다는 사실을 증언해야 한다.

     믿음의 조상들뿐만 아니라
     예언자, 예수님, 제자들, 사도들, 교부들,
     가톨릭의 교황, 신부, 목사들까지도
     남성 일색이다.
     왜 보다 중요한 부름은 남성들만 받을까?
     창세기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거의 다
     아들을 낳는 생명 재생산의 도구로 등장하거나
     성적인 문제와 관련해서만 거론된다.
     이런 현상은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거나
     여성이 남성보다 신앙심이 부족한 때문일까?
     이것은 성서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속한 사회의 영향을 받으며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이것은 가부장 중심의 사회에서 비롯된다.
     가부장 중심의 사회란
     남성 가장이 중심이 되어
     경제권을 가지고 가계를 아들 중심으로 이어가고,
     여성은 주변적 존재로 밀려난 사회 형태를 말한다.
     남성만이 표준적 인간으로,
     권력을 틀어쥔 남성들이
     정치 경제 종교 학문 문화 전반을 지배하면서
     남성 중심의 지식을 생산하고 역사를 써내려간 것이다.
     성서도 다른 지적(知的) 생산물과 마찬가지로
     가부장 사회 속에서
     가부장적 언어와 가치관을 바탕으로 쓰여졌으므로,
     여성들은 아들을 낳는 도구로서밖에는
     역사의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있다.
     우리는 차이를 차별로 정당화시키는
     가부장 사회의 논리가 문제임을 알아야 한다.
     (『성서가 보는 여성 여성이 보는 성서』, 20-22쪽.)

3. 하갈과 함께하신 하나님/기독여민회 신학위원회

     성서는 기독교인들에게 절대적 의미를 지닌
     종교적 경전이다.
     일반적으로 경전은 하나의 절대적 진리를 표상하며,
     우리는 그 사실을 전제로 성서의 의미읽기를 해왔다.
     그런데 기독교의 경우 오랜 시간 동안
     소수의 남성들에 의한 성서 해석만이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성서 본문은
     닫혀진 체계가 아니라 진리를 향한 열린 체계이므로
     여성적 성서읽기도 가능하다.
     이 여성적 성서읽기는
     보편적인 불변의 진리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여성해방적 실천을 향한 대답 찾기다.

     창세기에서 여성적 성서읽기를 통해
     기존의 성서읽기를 뒤집을 수 있는 가장 두드러진 실례는
     하갈이다.
     기존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만 나타난 걸로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족장들만 만나신 게 아니라
     이방인이며 노예이며 씨받이였던
     하갈에게도 나타나셨음을 여성들은 발견했다.
     씨받이였던 하갈이 사라에게 쫒겨나자
     하나님은 하갈에게 임하셔서
     그녀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
     그녀를 돌보며 함께하셨다(창 16:13).
     우리 생각에 하갈은 첩이며 노예인 하찮은 여성이라서
     돌보지 않으실 것 같지만
     하나님은 하갈을 돌보셨다.
     하갈에게 임하신 하나님은
     히브리 노예에게 임하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다.
     (『성서가 보는 여성 여성이 보는 성서』, 26-27쪽.)        
       
4. 남성 중심의 족보/기독여민회 신학위원회

    창세기에는 참으로 많은 족보들이 언급된다.
    족장사 전체가 하나의 족보라고 할 만큼
    족보가 많이 나오는데,
    이 족보의 중심은 믿음의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삭-야곱-요셉 등으로 이어지는 남성에게 있다.

    또한 이 족보에 대한 관심은
    P(제사) 문서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이것은 바빌론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생명의 전수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비롯된다.
    족보를 통해 그들은 천지 창조부터 유배지의 사제들에게까지
    하나님의 계약이 이어진다고 보았다.

    족보에서 여성은 일반적으로 배제된다.
    그 수많은 족보에 거론되는 이름 가운데
    출생이 기록에 언급된 여성은 디나 한 명으로,
    그는 야곱의 족보에서 유일하게 언급된다.
    그러나 디나는 강간 사건으로 성서에 언급되는
    비극적인 인물이다.
    그 외에는 여성이 거론되지 않으므로
    마치 남성만 이 세상에 태어난 듯한 인상을 준다.

    족보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것은 청세기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족보에서도 딸은 기록하지 않는 반면
    사위는 누구의 몇째 아들로 들어간다.
    결혼한 남성은 자기 족보에도 오르고
    사위로서 처갓집 족보에까지 두 번씩 기록된다.
    그리고 여성은 죽어서도 묘비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고
    누구의 처로 남는다.                         
    (『성서가 보는 여성 여성이 보는 성서』, 28-29쪽.)   
               
5. 창세기의 저작 의도/최만자

    유배민으로서
    나라도, 성전도, 종교전통마저 빼앗긴 약소민족으로서,
    그리고 바빌론의 권력과 문화의 도전 앞에
    절망적인 삶 가운데 빠진 백성들이
    야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그 분의 의(義)에 회의를 느낄 때,
    그들에게 민족적 비전을 제시하고 희망과 용기를 주려고
    민족의 역사와 전통을 깊은 신학적 숙고로 재정리한 문서가
    바로 창세기 1장이다.
    여기에서 선포된 모두의 평등은
    억압당하는 경험 속에서 체득하게 된
    ‘지고한 인간 존엄’에의 자각에서 연유한 것이기에,
    거기에서는 성차별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불의로 인식되었다.
     
    여자가 남자의 갈비뼈에서 취해졌다고 해서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을 정당화한다면,
    남자는 흙에서 취해졌으니
    흙의 지배를 받고 그것에 종속되어야 한다는
    논리 또한 성립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창조하실 때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창조에서
    아담의 역할을 전적으로 배제하심으로써
    여자의 창조주는 오직 야훼뿐임을 명백히 하신 것이다.
    성서에서 남자가 여자를 다스린다는 표현은
    오직 인간이 타락한 사건 이후에 나타난다(창 3:20).
    성서 저자는 남성의 여성지배를
    타락한 인간의 악한 현실로 생각하고 있다..

    종교는 하나의 문화 현상이다.
    종교는 그 시대의 상황과 연관지어 이해·해석되어야 한다.
    성서와 교회의 신학은
    가부장적 문화의 맥락 안에 있다.
    고대 수메르 문명의 딜문동산 신화에서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수메르 신화에서는 최고신이 여신이며
    선악과를 따먹는 게 여자 아닌 남자로 묘사되어 있다.
    고대의 모가장(母家長) 제도의 반영이다.
    즉 전통의 형성은 문화적 영향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성서의 기록 안에
    가부장적 지배구조의 가치들이 내포되어 있더라도,
    성서는 오히려 그것에 반하는,
    지배구조들에 도전하는 새로운 가치들을 지향함으로써
    가부장적 문화와 긴장 관계를 일으키는 데서 형성되었다.

    뱀이 여자를 유혹한 원인에 대해
    성서는 침묵을 지킨다.
    창세기 3장 자체 안에는 여성을 성적인 유혹자나
    도덕적으로 연약한 존재로 표현한 부분이 하나도 없다.
    히브리 원어에서는 뱀과 여자의 대화 장소에
    남자도 내내 같이 있었다고 말한다.
    남자는 무언의 공범자다.

    범죄한 인간의 고통의 실상!
    그것이 성서 저자가 인류 타락의 기사를 기록한 근거다.
    인간의 실존적인 고통들,
    죽음을 극복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
    남자는 여자를 지배하고
    여자는 노예처럼 예속되어 있는 불행한 현실,
    천재지변과 자연의 신비한 힘과 늘 대결하면서
    땅을 경작해야 하는 남성의 운명,
    여자는 오직 아들을 출산해야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는 문화,
    그리고 모든 인생이 허무한 죽음으로 끝나는 것을 보면서
    “이러한 일들이 왜 발생했을까?”라는 기원론적 의문을 품고
    성서 저자는 신학적으로 숙고했을 것이다.
    (최만자·박경미 공저, 『새 하늘 새 땅 새 여성』, 생활성서사, 13-17, 21-24쪽.)

6. 성서의 고난 받는 여인들/최만자
     
    성서 안에는 사회적·가부장적 폭력에 의해
    고통받고 수난당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아주 많다.
    씨받이로 들어가 성적 도구로만 이용당하고
    아들과 함께 황량한 광야로 쫓겨난 하갈,
    이복오빠 암논에게 강간을 당해
    자신이 지녔던 지혜와 아름다움을
    송두리째 사장시킨 채 재를 쓰고
    통곡으로 유폐된 듯 살게 된 다윗의 딸 공주 다말(삼하 13장),
    권력의 횡포 아래 남편을 죽인 남자의
    첩이 되는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었던
    헷사람 우리야의 아내 바쎄바(삼하 1장),
    그리고 가장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한 이름 없는 여인의 처참한 죽음 이야기(판관 19장)....

    사실 저 이름 없는 한 여인은
    인류 역사 속에서 수없이 살다 간,
    남성들의 성폭력에 고통 받았던 모든 여성을 대표한다.
    그는 우리 민족의 정신대 여성들 중 하나이며,
    오늘날 성폭력에 희생되고
    남성 군사문화에 의해 고난 받고 있는
    기지촌 여성들을 대표하기도 한다.
    조금의 능동적인 행위도 없이 오직 능멸당하기만 하는
    이사야서의 ‘고난받는 종’의 모습은
    오히려 이 레위인의 첩의 모습과 너무도 일치한다.
    그녀의 능욕당함은 후세의 우리 여성들을
    성폭력에서 해방시키기 위함이며,
    그녀의 사지가 토막남은
    만신창이가 된 여성들의 몸의 수난을
    대신 폭로하기 위함이다.
    그는 볼품도 없고,
    눈길을 끌 만한 아무것도 없었으며,
    오직 멸시와 퇴박과 능욕을 당한 고난 받는 종의 모습이다.
    이제까지 그가 멸시만 당해왔기에
    우리도 덩달아 그를 업신여기고
    성서의 한구석에 처박은 채 기억도 하지 않았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지금까지 우리들은
    기지촌의 여성들, 정신대의 여성들을
    창피스럽게 생각하고 업신여겨왔던 것이다.
    우리가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며
    제멋대로들 놀아났지만,
    야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구나!
    그 횡포한 남성 폭력의 죄악까지도 다 짊어진
    한 여종의 위대함이여!
    예수의 십자가 고난이
    식민지의 억압 아래 고통 받는 그 민족의 구원과
    인간성을 말살하는 지배구조에 의한 불의를 극복하기 위해
    온 민중의 고통을 대신 짊어진 것이라면,
    이 이름 없는 한 여인의 도륙당함은
    가부장적 불의의 폭력을 고발하고 그 아래 신음하는
    역사 속에 희생당한 여성들의 고난을 대신한
    대속적(代贖的) 고난의 종의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새 하늘 새 땅 새 여성』, 30-33쪽.)

7. 여성 경제권 인정의 새로운 판례 - 민수 27:6-11/최만자

    사실 여성들은 인류 역사 이래
    언제나 생산의 담당자였고
    경제활동에도 남성과 똑같이 참여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은
    늘 경제권으로부터 소외되었다.
    그리고 여성의 활동 곧 출산, 육아, 가사노동 등은
    그 가치가 평가 절하되었으며
    화폐가치로 환원되지도 않았고
    늘 이차적이고 열등한 것으로 인식하게 하는
    성별 분업 고정관념이 여성차별 이데올로기로 작용해서
    고대로부터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요셉 후손, 므나쎄 지파의 헤벨 갈래에서
    슬롭핫이 딸만 다섯을 두었고(민수 26:33),
    슬롭핫이 죽었으나
    그 딸들은 땅을 분배받지 못했다(민수 27:1-4).
    그러나 이 슬롭핫의 딸들의 도전은
    모세를 통해 내려진 하나님의 말씀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민수 27:4).
    모세는 이러한 여성들의 도전을 받고
    야훼께 이 문제를 여쭈었고,
    야훼 하나님은 “슬롭핫의 딸들이 하는 말이 옳다”는
    판결을 내리셨다.
    물론 전체적으로 이 이야기는
    ‘아들이 없는 경우’라는 전제 아래 펼쳐진다.
    그렇다고 해도,
    아들이 없는 상황에서도 딸들의 상속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던 철저히 남성 중심의 문화권에서
    이 다섯 여성들이야말로
    고대 사회의 인권운동가요 여권운동가라고 할 수 있다.
    (『새 하늘 새 땅 새 여성』, 37-40쪽.)

8. 하나님의 모성적 표상 - 열상 3:25-27/최만자

     역사적으로 볼 때 하나님은 남성적으로 인식되었고
     따라서 그것은 남성 우월 사회를 정당화하는
     가부장적 이념의 근거가 되어왔다.
     성서에는 하나님에 대한 남성적 묘사가 
     여성적 표현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빈번하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기록된 성서이기에,
     그런 사회 문화적 배경이
     성서의 하나님 표상에까지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에서 보다 핵심적인 하나님의 속성은
     여성의 신체기관(자궁, 모태)에서 유래된 은유에 의존한다.
     성서는 그러한 모성적 자비의 속성은
     하나님과 여성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의 존재 양식임을 말한다.
     예를 들어, 요셉은 이집트 땅에서 만난 자기 동생 베냐민을 보고
     자비심이 북받쳐 올라 심히 통곡했다(창 43:30).
     (『새 하늘 새 땅 새 여성』, 56-58쪽.)

9. 가난한 여성의 꿈을 실현한 라합 - 여호 6:22-25/최만자

     라합이라는 여성을 생각할 때
     사실 우리는 약간 혼란을 느끼게 된다.
     그녀는 가나안 주민임에도 불구하고
     적군인 이스라엘 편에 붙어
     자신의 국가 기밀을 제공하는 첩보원 노릇을 했으며,
     결국 이스라엘이 승리한 후에
     그녀의 가문만은 전쟁의 피해 속에서도
     안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토록 개인주의적인,
     자기 혈족만 생각하는 이기적 행위를 했다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국민윤리 의식으로는
     용납하기 어려운 걸림돌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는 이 라합을
     당당한 조상으로 예수의 족보에 올리고 있다(마 1:5).
     뿐만 아니라 라합은
     살아 있는 신앙의 증거자로 불리며(히 11:31),
     더 나아가 그녀의 행동이 정당했음을
     후손들에게서 인정받고 있다(약 2:25).
     
     이스라엘이 가나안 점령을 시도할 당시의
     사회·역사적 배경을 우리가 새롭게 이해한다면,
     라합에 얽힌 불투명한 내용들을
     보다 명백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호수아가 정탐꾼을 라합에게 보내는 걸로 보아
     이미 밖의 하삐루와 가나안의 하층계급 사이에
     연대가 이루어졌던 게 분명한 것 같다.
     그녀는 가슴에 한이 맺혀 새 세상을 꿈꾸며 살아온
     가나안 민중이었던 것이다.
     
     국가보다 우선하여
     인간의 생존권과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 실현에
     구체적으로 참여했던 성서의 인물은
     바로 창녀 신분의 여성 라합이었다.
     남성이 주도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여자, 더욱이 사회적으로 멸시를 받는 창녀의 신분으로
     기존 질서를 과감히 부정하고
     새 세상을 실현할 꿈과 이상을 품었으며
     또 구체적으로 몸으로 실천했던 여성 라합,
     그녀는 사회에서 한을 품고 살아가는 모든 여성들,
     가난한 사람들의 행동의 모범이 아니겠는가!
     학자들에 따르면,
     라합의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전설이다.
     전설이란 그 전설이 만들어진 시대의 사람들이
     당시의 사회적 상황에서 지향했던
     가치나 의식을 반영하는 이야기라고 볼 때,
     라합의 이야기는
     새 세상을 꿈꾼 단지 한 개인의 이야기를 넘어
     그 시대의 고통 받는 가나안 민중들의 집단적 이상을 
     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새 하늘 새 땅 새 여성』, 68-73쪽.)

10. 정치 지도력을 발휘한 미리암 - 판관 5:1-3, 7/최만자

     미리암과 아론과 모세가 실제로 혈연관계인지에 대해 
     성서학자들은 의심한다.
     오히려 이 세 사람은 출애굽과 광야 시절의
     유랑공동체 안에 있었던 세 지도자였을 것이다.
     이들이 한 가족관계로 연결된 것은,
     후대에 출애굽과 광야 사건을 모세 중심으로 편집하면서
     각각 별개 집단의 지도자로 기억·전승된
     세 사람을 하나의 이야기 속에 편집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당시 지도자들 사이에
     지도력을 둘러싼 투쟁이 있었으며,
     특히 여성의 공적(公的) 지도력을 놓고
     그 위치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가졌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미리암의 배후에도
     그녀가 이끈 한 집단이 있었던 걸로 생각되며,
     그래서 미리암은 지도자로 기억·전승되었는데
     모세 중심의 표현에서
     아론의 누이로 명명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모세 중심적인 그 편집 의도는
     지도력 다툼의 이야기에서
     어떻게든 미리암의 지도력 곧 여성 지도력을
     낮게 평가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미리암의 지도력은
     한 집단을 이끈 명실상부한 지도자의 모습으로
     성서의 곳곳에 흔적이 남아 있다.
     (『새 하늘 새 땅 새 여성』, 82-83쪽.)

셋째 마당: 여성과 교회 개혁

1. 그리스도교는 남성적이다/오쇼 라즈니쉬

     그대는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대는 다시 존재 속에서 자궁을 발견해야 한다.
     그대가 존재 속에서 자궁을 다시 발견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와 똑같은 따뜻함과 똑같은 삶,
     똑같은 사랑과 똑같은 애정을 발견할 수 있다면,
     존재는 그대의 집이 되고 그대의 어머니가 된다.
     그리스도교나 모하메드교 그리고 유대교가
     그들의 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에 반해
     힌두교에서는 그들의 신을 어머니라고 부른다.
     이 점이 힌두교의 한발 앞섬이다.
     모하메드교나 그리스도교는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들은 지상에 있는 하나의 재앙이었다.
     그들은 살인자였던 것이다.
     이는 그것이 남성으로부터 기원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노자에게는 조직화된 종교가 없다.
     일단 종교가 조직화되면 폭력이 그 안에 들어온다.
     조직은 폭력적이 되는 것이다.
     조직은 반드시 남성적이 되는 것이다.
     조직은 남성이다.
     그러나 종교는 여성이다.
     일단 교황이 있게 되면 그리스도는 잊혀진다.
     일단 사원이 생기면 붓다는 살해된다.
     종교는 항상 붓다의 무덤 위에 조직되는 것이다.

     여자들은 보다 더 쉽게 감응할 수 있다.
     그들은 어머니이며 또 본질적으로 자연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여자는 복종할 때 전체적으로 복종한다.
     그들은 명상을 할 때 전체적으로 명상한다.
     그때 그들은 쉽게 성장하기 시작한다.
     남자는 복종을 한다 해도 전체적으로 복종하지 않는다.
     그들은 항상 약간을 남겨 놓는다.
     아주 어릴 적부터 사회는 남성들을 공격적이고 폭력적이며
     항상 어떤 것을 잡으려 하거나 달성하려 하고
     야심적인 남성이 되도록 강요해왔다.
     존재를 투쟁이 아닌 즐기는 것으로 보라.
     존재를 전쟁이나 충돌이 아닌 찬양으로 보라.
     찬양은 무한하다.
     환희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기쁨 위에 기쁨이 있는 것이다.
     (오쇼 라즈니쉬, 김석환·신종현 공역, 『노자와 라즈니쉬의 대화(상권)』, 까치, 93-95쪽.)
     
2. 여성신학의 창조적 가치/함세웅

     여성신학은 참으로 혁명적이다.
     잘못된 과거를 무너뜨리고 그 위에 새로운 집을 짓는,
     죽음을 통해 부활을 실현한 십자가의 원리에 기초한
     철저한 투신과 사랑, 회개에서 출발한다.
     때문에 여성신학은 미래를 위한 창조적 가치를 지닌다.
     여성신학은 오늘의 문화, 사회구조, 역사인식에 대한
     근원적 회의, 근원적 이의 제기에서 출발한다.
      
     슈쓰러 피오렌자는
     특히 구약성서는 유대 문화권에서,
     신약성서는 로마-그리스 문화권에서 형성된
     가부장적 종교문화의 산물이란 점을
     끊임없이 강조하며 상기시킨다.
     성서와 함께 교회의 모든 문서들은
     억압자와 피억압자가
     각기 자기 입장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인용할 수 있는 양의성, 모호성, 애매성을 지닌다.
     더욱이 여성과 관련된 부문에서는
     가부장적 권위와 영향으로
     여성을 은폐시켰고 때로 무력화시켰다.

     피오렌자는 참된 여성해방 신학은
     바로 여성들의 삶, 여성들이 살아온 삶의 현장,
     그들의 고유한 체험과 아픔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부장적 성서의 메시지는
     여성의 삶과 체험에 의해 철저히 도전을 받고,
     이로써 성서의 가부장적 남성 위주의 요소가 제거되어야
     성서의 전인적 해방의 메시지가
     보다 분명히 드러난다는 주장이다.
     여성해방 해석자들은 성서 본문을
     여성의 삶, 여성의 해방체험이라는 권위 다음에 둔다.
     그래서 성서를 믿음으로 전면 수용하든지
     아니면 전면 거부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극단을 피하고
     다만 억압적 요소의 전승과 해방적 요소의 전승 가운데
     후자를 분명히 선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성서는 불변의 권위의 원천이 아닌,
     여성해방을 위한 풍요로운 자원의 샘이라는 주장이다.

     피오렌자는 마가복음 14장의 수난기록 첫머리에 등장한
     베드로, 유다, 익명의 여인을 주의 깊게 재관찰한다.
     결정적 증언의 시간에
     스승 예수를 세 번씩이나 공개적으로 배반한 베드로,
     스승 예수를 반대자들에게 팔아 넘긴 배반자 유다....
     그러나 스승 예수의 머리에 기름 부은 익명의 여인,
     남성 사도들과 제자들은
     이 여인의 용감한 행위를 비판했지만,
     예수는 오히려 이 여인을 칭찬하며 높이 들어올렸다.
     그리고 분명히 선언하셨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과 전해질 때마다,
     이 여인의 행적이 함께 기억되리라고.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피오렌자는 여성신학 재건을 위한 자신의 저서에
     『그녀를 기억하며』라는 제목을 붙이고,
     복음 선포는 그녀의 영웅적인 신앙 결단의 행적을
     반드시 끊임없이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익명의 이 여인의 기름 부은 행위는
     정치·종교적으로 기존 질서와 체제에 대한
     철저한 도전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익명의 여인이 예수의 머리에 기름 부었다는 것은
     바로 그분께 대한 메시아성의 고백,
     그분을 통한 구원의 실현,
     그분을 통한 새 시대의 도래를 선포한
     깊은 뜻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여인의 행위는
     기존의 정치체제와 종교질서에 대한
     철저한 거부이며 엄청난 질타라는 것이다.
     메시아 고백과 증언에서 여인이 중심이 되었다는 이 사실은
     가부장적 문화권의 당시 남성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도전적인 사건이었다.
     그래서 성서 작가들은 이 엄청난 사건을 은폐할 수는 없고,
     기억하되 다만 문서상으로, 익명으로,
     그리고 비정치적으로
     기존의 가부장적 질서를 깨뜨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기억하고 있음을 피오렌자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여성의 자기 실현을 위한 우리 시대 최대의 장애물은
     가부장적 교회, 성직 중심의 교권 체계다.
     따라서 오늘의 교회가 속죄하고 실천에 옮길 회개의 첫 단계는
     가부장적 문화, 남성 위주의 권위주의 문화,
     성직자 중심의 여성차별 문화를 극복하여
     참된 인간평등 문화를 교회 안에 뿌리내리는 일이다.
     여성들의 아픔과 고민, 사색과 깊은 성찰은
     교회와 사회 등 모든 기존의 문화를 정화시키고
     풍요롭게 하는 창조적 계기를 마련하는 게 분명하다.
     이것이 바로 여성신학이 지닌 창조적 가치다.
     (함세웅, 『멍에와 십자가 - 교회의 사회비판적 기능』, 빛두레, 125-141쪽.)

3. 여권신장 운동가 예수/레오나르도 보프

     예수 그리스도는 모름지기 여권신장 운동가였다.
     인간 존재들은 다른 모든 인간 존재들을
     차별과 구별 없이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사랑해야 하며,
     따라서 서로간에 하나님 안에서 형제·자매가 되어야 한다.
     예수가 착수한 이 윤리적 혁명은
     여성을 인격으로 해방시키기 위한 공간을 창조했다.
     우리가 예수의 태도를 고대 유대 사회의 조건과 비교할 때
     예수의 태도는 전율할 만하다.
     예수의 많은 비유와 표상들에서
     여성은 주도적인 역할을 맡은 자로 나타난다
     (마태 12:41-42; 13:33; 22:23-33; 24:40-41; 25:1-13;
     누가 4:25-27; 15:8-10; 18:1-8; 21:1-4 참조).
     마르다와 마리아에 대한 예수의 태도는 놀랍다(누가 10:38-42).
     정통 랍비가 결코 하지 못할 일을
     예수는 척척 수월하게 해낸다.
     예수는 제자가 스승의 발치에 앉는 것처럼
     그의 발치에 앉아 있는 한 여인에게
     신학을 설명한다(누가 10:39).
     여성에 대한 예수의 태도는
     여성의 평등성과 존엄성에 대한 그의 존중을 보여준다.
     교회는 그 신적인 설립자의 기준에 맞추어 살고
     이로써 여성에 대한 이해의 비판적 척도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인가?
     여성이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해 가는 세계에서
     교회는 여성해방을 위한 요소가 될 수 있는가?
     아니면, 교회는 여성을 비인격화시키는 상황을
     정당화하는 신학적 기질을 공급할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가 남성이었다는 것은
     단지 역사적 우연에 속하는 문제다.
     예수 자신은 그것을 결코 신학적 원리로 삼지 않았다.
     그의 모든 전도 활동에서 예수가 강조했던 것은
     인간 존재들 사이의 모든 구분을 뛰어넘는 일이었다.
     진실로 예수는 새 인격을 결정함에 있어서
     생물학적·성적 요소가 의미를 갖는 것을 명백히 배제했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다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마태 12:48-50).
     (레오나르도 보프, 김쾌상 역, 『새롭게 탄생하는 교회』, 성요셉출판사, 176-183쪽.)

4. 바울의 여성관/레오나르도 보프

     바울의 주장들(고전 11:5; 14:34-35; 딤전 2:11-12)은
     그것이 씌어졌던 세계,
     여성은 아예 시민권도 갖지 못했던
     세계 안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이 문화가 바울의 살과 뼈에 스며 있다.
     바울은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그밖에 다른 길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듯 시간적으로 결정된, 즉 역사적으로 제약된
     주장들로부터 보편적 규범을 이끌어 내려는 것은
     역사를 동결시키고 결과적으로 역사를 파괴하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신앙과 신학,
     그리스도교 메시지와 그 사회적 표현,
     그리스도교와 제약되고 한정된 언어적·문화적 세계 안에서
     구체화된 형태들을 구분해야 한다.
     이런 구분은 교회 안에서의 여성의 위치에 관한
     현재의 논의에 필수 불가결한 가치를 지닌다.
     (레오나르도 보프, 김쾌상 역, 『새롭게 탄생하는 교회』, 성요셉출판사, 187쪽.)

5. 세례는 차별성의 타파/최만자·박경미

      세례란 무엇입니까.
      결국 차별성의 타파가 아닙니까.
      갈라디아서 3장 28절을 봅시다.
      유대인-이방인, 자유인-노예, 남자-여자라는
      당대의 삼중의 벽을 깨는 작업이었습니다.
      예수는 누구입니까.
      기존의 전통문화를 깨고
      만민이 하나님 앞에 평등하고 모두 함께 구원될 수 있음을
      과감하게 선포한 분이 아닙니까.
      회개란 무엇입니까.
      일체의 차별성을 깨는 작업입니다.
      만일 여전히 우리 안에
      남성 우월감과 함께 여성 경시사상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아직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못했다는
      구체적인 증거입니다.
      (『새 하늘 새 땅 새 여성』, 4-5쪽.)

6. 밥상공동체 실현의 주역인 여성/박재순

     민족적 또는 세계적 밥상공동체를 실현하는 데
     여성은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자격과 역량을 지니고 있다.
     여성은 생리적으로 공동체적 삶을 살아왔다.
     여성은 열 달 동안 다른 생명체를
     몸 속에 품고 있으면서
     살과 피와 뼈를 나누어 주며
     그 생명체를 형성한다.
     그리고 태어난 아기를 젖으로 먹여 살리고 길러낸다.
     더불어 사는 삶의 조건이 생리적으로 형성되었다.
     역사적으로도 여성은
     더불어 사는 삶의 주역이었다.
     여성이 주도한 모계 사회는
     소유와 권력이 집중되지 않은 밥상공동체였다.
     이에 반해 남성이 지배한 가부장제 사회는
     소유와 권력의 집중에 의존한 사회였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도 여성은
     밥상공동체의 전형인 가정 공동체의 살림을
     가꾸고 꾸려가는 위대하고 창조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여성의 강인한 생명력과 어머니다운 포용심이
     밥상공동체의 초석이 될 수 있다.
     여성의 사치심과 허영심은
     인류 역사에서 비교적 짧은 기간에
     가부장제 사회로부터 오염된 질병이다.
     (박재순, 『민중신학과 씨알사상』, 천지, 14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