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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순교신앙, 그대로 좋은가?‘순교 신앙’보다 ‘순교하지 않아도 되는 신앙’을 가졌으면
류상태  |  sham5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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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년 09월 07일 (일) 11:35:24
최종편집 : 2008년 09월 07일 (일) 22:24:11 [조회수 : 3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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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고민하며 생각해왔던 문제를 개신교와 천주교를 포함한 그리스도교 자매형제님들과 조심스럽게 나누고 싶습니다. (앞으로 개신교를 지칭할 때는 ‘기독교’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개신교’라고 명확하게 표현하겠습니다. ‘기독교’라는 말이 현재 개신교를 지칭하는 말로 넓게 쓰이고 있기는 하지만, 본래 단어가 가진 뜻은 ‘그리스도교’의 한자어로서, 개신교 뿐 아니라 가톨릭과 정교회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가톨릭을 제외한 신교를 지칭할 때는 ‘개신교’로, 가톨릭과 정교회를 포함한 기독교 전체를 말할 때는 ‘그리스도교’라는 명칭으로 사용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에 저는 종교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을 뿐 아니라 막연한 거부감마저 갖고 있었습니다. 종교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보다는 너무 많은 제약을 가하고, 결국 신도들이 자유로운 삶을 살지 못하도록 방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제가 대학 입학 후 2년 정도 지나 개신교에 입문하게 된 이유는 모든 사람을 아무 조건 없이 하느님의 자녀로 품어주신 예수님의 무한한 생명존중사상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라는 가사의 찬송가를 부르며 하염없이 눈물 흘리던 기억이 아직도 저의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무조건적 절대사랑’으로 정리된 저의 그리스도교관이 큰 혼란을 맞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가르치는 하느님의 사랑이란, 말로는 아무 조건이 없는 무한사랑이었지만 실제로는 교리에 의해 큰 제약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이천년 동안 주류 그리스도교회에서 말하는 신의 무한한 사랑은 그리스도교 교회 안에 들어오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특혜였고, 교회 밖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 신의 절대사랑이 오히려 가혹한 저주가 되었습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저를 오랫동안 괴롭힌 또 하나의 의문점은, 신에 의해 베풀어지는 사랑이 절대적인 것만큼이나 인간도 자기 생명을 바쳐 신을 전적으로 사랑해야 하는 의무가 부과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신이 인간을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기꺼이 내어주었기에 인간도 신을 위해 자신을 아낌없이 바쳐야 한다는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순교신앙에 대한 찬미로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로 그리스도 교회가 시작된 초기부터 오늘날까지, 신구교를 막론하고, 하느님 이외에는 그 어느 것도 섬기거나 절할 수 없다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본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은 거룩한 성인들로 추앙을 받았고, 대대로 교회와 신도들의 존경을 받아왔습니다.


순교자에 대해 그리스도교인들이 보내는 경외감과 찬사는 우리나라라고 예외일 수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표적인 순교자로 주기철 목사님을 들 수 있겠습니다. 그 분은 일제시대에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감옥에서 순교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예수께서 ‘아빠 하느님’이라고 가르쳐주신 그리스도교의 신이 자기 자식과도 같은 신도들에게 순교신앙을 진정으로 원하시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식의 희생을 원한단 말입니까?


그리스도교의 정통 교리는 신이 모든 사람의 죄를 씻어주기 위해 독생자를 내어주셨다고 가르칩니다. 외아들을 내어줄 정도로 사람을 사랑하는 신이라면 그 신도들의 생명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교회는 지난 이천년 동안 별 고민이나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줄기차게 순교신앙을 찬미해 왔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쩌면 그건 하느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 조직을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발칙한 의문이 드는 것은 오로지 저의 무지와 삐딱한 성향 때문일까요?


제가 그리스도교에 입문한 청년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순교자들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신앙에 대한 찬사를 들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수없이 물어온 질문이 있습니다. 만일 내가 그 시대의 그 분이었다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물음입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제 안에서 들려오는 대답은 늘 “아니오”였습니다.


저는 지금도 누군가, “당신이 일제시대의 목사였다면 주기철 목사님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겠는가?” 하고 묻는다면, “아니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주기철 목사님 같은 큰 그릇이 못 된다는 점을 먼저 인정하고 싶습니다. 그 분의 정결한 신앙과 기개, 신념은 함부로 폄하할 수 없는 존경스러운 면이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분과는 다른 저의 신념과 신앙에 따라 신사참배를 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가 목회하는 교회 안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순교를 각오하는 신자들이 있다면 적극 말렸을 것입니다.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한 것은 분명 부당한 짓이며 저항해야 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상에게 절하는 것은 죄’라는 교리적인 이유로 목숨을 버리는 것은 저에게는 종교 교리에 의해 생명을 경시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차라리 겉으로는 신사에 절을 하더라도 자신의 목숨을 지키고 가정에 대한 책임도 다하면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죽은 사람의 희생을 저는 더욱 가치있게 여기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그 어떤 숭고한 교리도 사람의 목숨보다 더 중요할 수는 없다고 믿기 때문이며, 또한 교리가 사람의 생명보다 위에 자리 잡는 순간, 그 교리는 사람 잡는 도구로 전락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이 교리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교리가 사람을 위하여 있다”로, 또한 “사람이 종교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사람을 위하여 있다”는 말씀으로 바꾸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리스도교 뿐 아니라 어떤 종교도 교리를 위해 그 구성원들에게 생명의 희생을 요구하거나 찬미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리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생명까지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설교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사람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과연 무엇이며 종교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까? 가정을 거느린 신도들에게 ‘거룩하고 순수한 순교신앙’을 지키라고 요구하기에는 그들에게 딸린 자식들, 봉양해야 할 부모들이 저에겐 너무나 소중하게 보입니다.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는 우리의 하느님도, 또한 그 분을 ‘아빠 하느님’이라고 부르도록 가르쳐주신 우리 주님께서도, 완고한 교리보다는 기꺼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선택하시리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 교회는 순교신앙을 찬미하는 그 이면에 신의 뜻보다는 교회 조직을 위한 논리가 숨어있지는 않았는지, 또한 순교신앙을 찬미하는 것이 자칫 생명경시풍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천년을 이어온 그리스도교 역사를 냉정히 살펴보면, 교회가 존경하고 찬미하는 순교자들 중에는 진리를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문화와 다른 종교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교리를 지키기 위해 죽은 분들도 매우 많습니다. 배타적인 교리를 수호하기 위해 결연히 목숨을 내놓았다면, 그건 교리가 사람을 죽인 것이며, 그런 순교신앙은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저는 그리스도교인들, 좀 더 넓게는 유대교와 이슬람교를 포함한 유일신종교 삼형제가 ‘순교를 각오하는 신앙’이 아니라 ‘순교하지 않아도 되는 신앙’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이들 유일신 종교들이 순교자를 많이 배출하지 않아도 되는 열린 종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교가 앞장서서 이천년 동안 간직해왔던 교리적 배타와 독선에서 반드시 벗어나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편협하고 배타적인 교리 대신 모든 생명을 아무 조건 없이 신의 자녀로 인식하고 가르쳐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너무나도 따뜻한 포용 신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작년 여름에 발생했던 아프가니스탄 사태와 같은 끔찍한 비극을 다시는 겪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 이 칼럼은 격월간지인 <공동선> 2008년 9+10월호에 실린 글을 다시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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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나그네 (71.208.54.38)
2008-09-15 07:45:40
나는 걱정 많이 하고 살겠으니 당신은 절대 걱정하지 마라. 당신에게 걱정은 너무 위험해 보인다.
내 유한함으로 하나님의 무한함을 바라보는 것이지, 하나님의 무한함으로 내 유한함이 사라졌다고, 그래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은 심리적 환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의 행복에 대한 주장을 내가 무슨 권리로 부정할 수 있겠나. 서로 불쌍하게 여기면 그걸로 다행이지. 비판적인 사고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너무 대형교회 피해 망상에 걸린 환자로 보진 말아달라. 그저 세상이 더 정직하고 자유로운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노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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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71.126.118.130)
2008-09-14 22:14:00
자신을 모르는 자가 불쌍한것 아닌가?
인간이 걱정을 한들 털끝 만큼도 나아질게 없느니라
자네는 걱정 많이 하고 지네게나
자네는 유한 하겠지만 하나님은 무한 하시느니라.
유한한 한계 내에서 사는 자네 불쌍한 것인지?
무한한 분의 자녀로 사는 내가 행복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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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10
너 나그네 (71.208.54.38)
2008-09-14 12:07:07
너 나그넨지 바그넨지 참 불쌍하다
할말없다. 참 사는게 먼지. 라인홀드 니버를 꼭 읽어봐라. 인간이 왜 걱정할 수 밖에 없는지, 왜 두려워 할 수 밖에 없는지 - 인간은 그렇게 유한한 존재이니까. 당신에 대해서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근데 참 불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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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68.238.228.54)
2008-09-10 01:21:57
무엇이 불의한 일인가?
대형 교회와 목사들만 보면 피가 꺼꾸로 솟는 정신질환자 새 머리여!......
그대의 소원대로 그대는 작은 것만 추구 하다가 가거라.
그대의 뜻대로 자자 손손이 이루어 지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를 비방하는 일보다 더 불의한 일이 무엇이드냐?
그 일로 그대가 불의자가 되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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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0
먹 탐 (121.129.18.145)
2008-09-09 18:46:31
예수보다 더 예수같은 사이비 먹사와 맹종자들
세상이 어떻케 돌아가던 예수 구원이라는 말한마디가 모든것을 해결 해준다
그문제에 코딱지 만한 의문을 제기하면 곧 사탄이돼고 사이비가 된다
그런데 예수믿고 죽으면 <사실은 세상 먹사에게 잘길드려지면 복종과 맹종>
구원 받는다며 목이 쉬도록 소리 질러되는데 자신들을 위한 보수주의자
대형교회 먹사들이 잘못되가는 세속에서 작은 십자가라도 순수하게 지는
넘을 못 봤으니 그라고 왜 세속의 흐름을 그리 잘 이용하는지 망우리
어느 늙은 먹사는 수십억 짜리 강변 집에서 살고 있으니..그잡놈 뿐이랴 구역질이
나서 견딜수가 없구나 구원.믿음. 성령 .순종.충성.십일조.선교를. 강조하는 목사중에
제대로 된 목사가 몇이나 될까 ? 아마 먹사가 7.80% 는 될것이다 교회가 작을 때는
순수하기라도 한데 중형교회 및 대형교회 로 갈수록 주딩로 회유와 협박하며
겁주며 경쟁심 유발과 소수의 순수한 신앙의 소유자를 모델로 열나게 이빨을
까고 있지 개 두환 시절 상상하기도 싫은 그때 누가 십자가를 졌는가 ???
한기총<대다수 사이비> 인가 kncc 목사와 교우들 이였는가 지금 류 목사님에 글에
딴지 거는 인간들의 속내를 볼것 같으면 영락 없는 예수를 죽이지 못해 안달하는
그시대 사악하고 추악한 제사장과 율법사 장로 바리세 등등 과 무엇이 다른가
딴지 거는 자들아 아직 이나리에 십자가 질일이 많으니라...그대들의 영혼을
기다리는 불의한 일들이 많다네...이일이 류 목사님을 향한 진실한 안티네
행동을 하시게................구원을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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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0
aledmadmfh (211.114.22.102)
2008-09-09 14:22:53
류상태씨에게 묻고싶은게 많네요
칼럼내용과 상관없는 내용이지만

전에 쓰신 칼럼에

사람이 물고기에 삼켜진 채로 물고기의 내장 안에서 기도한다는 것, 또한 사흘 만에 토해져서도 여전히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자연 상태에서 불가능하다는 것은 그들도 알고 있다. 그러
나 그들은, 전능하신 하느님이 개입하시면 그 모든 일이 가능하다고 ‘진실로’ 믿고 있다. (이런 이런~!! 그들이 믿는 하느님은 짖궂은 마술사 수준인 게로구만.)
라고 하셨는데 당연한 말 아닌가요??
전능하신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불가능한일도 가능한일도 바뀌는게 당연합니다.....
체험을 못하셨나보군요


또한 인터뷰내용중에 '산의 정상의 오르는 길이 여러 갈래가 있듯이 진리에 이르는 종교도 하나가 아니다"라면서 "만일 어느 종교가 자신만이 구원과 진리를 독점하려 한다면 그런 종교는 멸망해도 좋다. 라고 하셨는데요 저도 다른종교에도 진리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리는 있겠죠 불교하면 자비의 종교가 떠오르니까요.. 하나 구원문제는 다릅니다. 교회나가지않아도 구원은 받을수 있겠죠 하지만 은혜받고 구원받으면 교회를 자기도 모르게 나갈수밖에 없습니다.
구원문제는 완전히 다른 문제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고서는 구원을 받을수없습니다.
그것을 부정하면서 안다고 하지마세요.

아무래도 당신에겐 박태선장로처럼 유혹에 넘어가버린거 같군요..
아니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거나 류상태씨 당신이 구약시대에 태어나지않은것을 다행으로 여기십시요 구약시대에 태어났으면 벌써 죽은 목숨입니다 그당시에 지금
당신처럼 당신의 잣대로 함부로 하나님을 평가하시는데 그당시에는 감히 못하였습니다.
지금이라도 그만 하시지요
당신혹시 지금 상태가 성경에서 말하는 적그리스도가 아닐지 의문이 듭니다..
천주교처럼.. 성경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라고만 나와있는데 천주교에서는 마리아도 찬양하고있고 다른 성인들도 찬양하고....오죽하면 마리아송도 만들고...천주교에서는 우상숭배하지않는다고 하지만 그런 찬송을 만든것자체로도 우상숭배이다 마리아나 바울 베드로 이런사람들도 믿는 사람들처럼 다 도구로서 쓰임받은거다..
특히 동정녀마리아는 존경받아야하지만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니다 그이상이야말로 우상숭배이다


예수님이 성령님이 중보자로서 기도하시고 계신다고했는데 성경에도 없는 마리아보러 같이 중보 기도해달라고 하질않나... 성경에서 말하는데 예수께서 내이름으로 구하라고 그거면 된거지

성경을 믿는것도 구원받는것도 하나님의 은혜없이는 힘들다고 하는데 류상태씨는 은혜를 받지 못했나 보군요 아니면 체험이 없거나....

하루빨리 예수님을 체험하시고 바꾸어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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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68.238.226.237)
2008-09-08 23:55:27
모든 기준을 자기 생각에 두는 자여....
상태가 여전하군!..... 조금도 나아진 것이없어.......오직 자기중심 적이야!.......
이기심과 독선과 삐뚜러진 가치관!.......................

상태의 글 중에는 내가....내 생각에는.....내가 보기엔.....나 같으면!...
이 라는 자기 중심적인 기준으로 하나님을 보는 가증함이 있다는 것이고!.......

하지만.....그게 아니고,,,,,그러므로 이것도 아니고,,,,,,,그렇기 때문에 저것도 아니고 오직 내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저상태의 입을 막을수 있겠는가?........

상태는 먼져 비틀려진 마음의 상태부터 바로 고쳐져야 성경을 바로 볼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개신교인 이라고 말해서는 안되는 것은 개신교라는 공동체의 안에 서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로는 상태는 항상 개신교에서 주장하고 가르치는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언제나 잡신을 숭배하는 자들이 사용하며 부르는 하느님이라고 사용하는 것이다.

또한 상태는 지난 수세기 동안 변치 않는 성경의 말씀안에서 믿음을 지킬려고 목숨까지 받친
믿음의 조상들이 지킨 믿음의 근본을 부정하고 허물려고 하는 마귀의 짓거리 이외는 아무것도 아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순교로 예수님의가르침을 본을 보였고, 초대 교회의 성도들도 제자들의 가르침에 따라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를 했으며, 지금도 세계 처처에서 순교를 해도 하나님의 사랑을 다 표현할수 없는 숭고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 하는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상태의 입을 누가 막겠는가?......

믿음의 기준도 자기가 잣대가 되어서 자신은 초대 교회 시대나 일제 시대의 상황이 자신에게
있었다면 자신은 어리석은 죽음을 당하지 않고 살아서 하나님의 일을 많이 했을 것이라고 하는 괴변을 늘어 놓는 저 상태의 입을 누가 막겠는가?

성경을 믿지 않으니 자신의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 세상 사람들에게는 부끄러움을 당할 일도 없겠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이 하나 있는데 성경에 기록된 말씀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순교를 당한 분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멸류관이 있겠지만, 자네와 같은 자들은 하나님께 부끄러움을 당하리라.

모든 것은 인간을 구원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 안에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있는것 이니라. 자네의 상태는 자기 중심으로 생각하고 인간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그것이 자네의 현재 상태라는 것을 모르고 갈수록 상태가 나빠지는 저 상태를 누가 고쳐줄 사람은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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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 (121.135.88.44)
2008-09-08 20:27:00
순교신앙이 생명 경시인가요?
"차라리 겉으로는 신사에 절을 하더라도 자신의 목숨을 지키고 가정에 대한 책임도 다하면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죽은 사람의 희생을 저는 더욱 가치있게 여기고 싶습니다."
위의 글의 한 부분입니다.

독립을 위해 싸우다 죽는 것이나 신앙적 가치를 위하여 죽는 것이나 가족들을 남겨두고 죽는다는 것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독립도 신앙적 순교와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가치의 하나입니다.
신앙적 순교가 생명 경시라면 독립을 위해 싸우다 죽는 것도 생명 경시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가치 추구를 위한 삶 가운데서 반대편에 있은 사람으로 인해 겪게 되는 죽음은 모두 생명 경시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과연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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