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에 내비게이션을 달 때면(여름 동안 더위에 고장 날까 봐 운전할 때만 부착한다) 서울에서 목회하고 있을 때인 몇 해 전 생각이 난다. 친구 목사가 휴가라고 양평에 온다고 했다. 음식이 특이하고 맛있어 몇 번 자랑을 했더니 그 음식점을 찾아온다고 했다.

그 음식점에서 만나기로 하고 찬구에게 음식점을 대강 가르쳐 주고 전화번호를 불러주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길을 묻는 전화가 없다. 다른 때 같으면 전화를 해 몇 번씩 길을 물었을 텐데 이상했다. 길치라 길이 어둡기로 호가 난 친구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내비게이션이란 물건을 차에 달았는데 그 놈이 길을 끔찍이도 잘 안내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편리한 물건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나도 이 내비게이션 덕을 톡톡히 보며 산다.

예전에 이웃 교회 목사님 차 앞 한 가운데 앉아서, ‘전방 30미터 앞에서 좌회전 하십시오. 안전 속도를 유지하십시오.’라면서 시끄럽게 떠들던 내비게이션이 이제는 내 차 앞에도 덩그러니 앉아있다.

두 목사가 내비게이션을 보고 한 말이 같아 새삼 되새길 때가 많다. 두 목사는 내비게이션을 아주 대견스럽게 여겼다. 모르는 길을 잘 안내해 줘서도 그렇지만 내비게이션은 결코 화를 내는 법이 없단다.

혹 내비게이션이 말하는 대로 미처 좌회전 하지 못하고 직진을 해도, ‘경로를 벗어났습니다. 다시 검색중입니다.’라는 말을 뱉고는 다시 검색하여 거기서부터 목적지를 표시하고 안내한다. 정말 얼마나 착하고 기특한지 모른다.

기계이니 당연한 것이다. 옳고 그른 것을 말하지 않는다. 잘못을 지적하지도 않는다. 바로 있는 그 지점에서 목적지를 찾아 다시 길 안내를 시작하는 것이다. “진작, 이 원리를 적용하여 자식들을 길렀으면 아이들이 대성했을 텐데.”하던 친구 아내의 말이 생각난다.

내비게이션은 판단하고, 심판하고, 비판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린 어떤가. 자식뿐 아니라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내 식으로 재단하고 비판한다. 인간에게 있는 비판능력이 잘못 사용될 때가 얼마나 많은가. 내비게이션을 보면서 차라리 비판 능력이 없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비판 능력이 없으면 바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비판 능력을 가지고는 있지만 비판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분명히 내비게이션보다 훨씬 나은 모습일 것이다. 능력이 없어서 못 하는 것과 능력이 있지만 안 하는 것은 다르다. 예수께서 비판하지 말라고 한 것은 능력을 무시하신 게 아니고, 능력은 있지만 사용하는 것에 신중을 기하라는 뜻일 것이다.

내비게이션은 정직하다. 프로그램대로만 움직인다. 그러기에 분명히 목적지까지 안내하고야 만다. 좀 멍청한 듯 보이지만, 자기 할 바를 해내고야 만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요새 자기가 가야 할 바는 잊은 채 남이 가는 길이 옳은지 그른지에만 관심을 갖는 것 같다. 내비게이션에게 배울 것이 있다.

김학현/ 안디옥교회 목사·시인